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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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동심으로 돌아간 방지거 (1990년 6월 24일 열째 날)

 

방지거씨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아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되어 갔다.

다섯째 날까지는 내가 밥을 떠 먹였으나 이제는 혼자 밥을 먹을 줄도 알게 되었고 이부자리도 갤 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그는 나에게 너무 너무 예쁜 아이와도 같았다.

맨 처음 방지거씨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는 「고향의 봄」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하고 노래를 처음 들려주었을 때에는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제는 엉덩이까지 들썩거렸고 손짓 발짓을 하거나 손뼉을 치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했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만나서 같이 손뼉을 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방지거씨는 잠잘 때를 빼놓고는 하루종일 우시는 성모님이 바로 보이는 맞은편 가운데 방문을 열어 놓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성모님만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하루는 비디오 실에서 함께 밥을 먹은 뒤 내가 나오려고 하자 방지거는 계속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하여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더니 이내 부끄러워하며 손을 움츠렸다.

"내가 싫은가봐" 하며 내가 일부러 새초롬해 하는 시늉을 하자,    

질겁하여 "앙이-"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나를 바라보았다.

"악수 안 하면 나 안 올 거예요" 한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그 불구의 예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악수를 하고 그의 손에 친구를 했더니 그도 내 손에 뽀뽀를 했다.

이마에 친구를 하고 아이처럼 꼭 안아주고 나왔다.

오후에 방지거씨가 많이 울고 있다고 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은 늘 나와 둘이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율동을 하던 곳인데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는 성모님 앞이 아니면 늘 그곳에 앉아서 언제나 내가 머무는 이층 다락방만 안타까이 바라보곤 했었다. 급히 뛰어 내려가서 "왜 우느냐?" 고 물어도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우는 것이었다.

"엄마보고 싶어요?" "응" "아빠보고 싶어요?" "응" "엄마, 아빠 어디 계셔요?" 하고 물으니 하늘을 가리키면서 "어-기"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방지거씨 우리 노래 불러요 응?" 하자 "응" 하고 대답하는 그의 눈물 젖은 얼굴에는 금새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불러 주었더니 또 다시 "엉엉" 하고 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방지거씨! 이제 내가 가르쳐준 아리랑을 한번 불러 봐요" 했더니 이내 "아이양, 아이양 아야이요"(아리랑을 이렇게 발음했음) 하고 부르면서 춤을 추었는데 손뼉까지 치며 어찌나 구슬프게 부르던지 우리는 함께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