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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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온갖 수모와 매맞는 기쁨 (1985년 12월 12일)

 

나는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이 어떠하신 지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매주 목요일이면 가족들과 공동기도를 바치고 난 뒤 밤 8시부터 그 다음날까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함과 교황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성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예수님께서 받고 계시는 고통에 동참하여 위로해 드리고자 했다.

나 혼자 집에서 드리는 기도보다는 내가 두 번째 임종 준비를 하면서 흩어진 성시간 기도 모임에 참여한 이들과 함께 모여서 공동 기도를 바치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당시 본당 신부님이셨던 박 요한 신부님과 수녀님께로부터 허락을 얻어 성당에 모여서 성시간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당에서 성시간을 시작한지 8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성당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신부님께서 제단에서 기도하라고 하시어 우리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제단에 올라갔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기에 마루 바닥으로 된 제단에서는 차디찬 냉기가 올라왔지만 마루 바닥에 앉아 기도하면서도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이 바로 제대 앞이었기에 주님과 더욱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난로도, 방석도 없이 차디찬 마루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써 정말 더욱 큰 희생과 보속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눈에서는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날 신부님께서도 처음에는 잠깐 잠깐씩 우리에게 들러서 함께 해 주셨기에 어쩌다 한번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아휴, 신부님 감사도 하셔라. 추워서 함께 하지는 못하시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시어 자주 들여다보시며 마음으로나마 함께 동참해 주시네" 하며 신부님께 대한 고마운 마음에 지칠 줄 모르고 기도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 중에 나이 드신 이 안나 자매님이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이만 끝내지?"

라고 하셔서 우리는 3시 10분경에 기도를 끝내고 성당 문을 나섰다.

나는 먼저 외진 곳에 살고 있는 김 글라라 자매를 바래다주기 위하여 베로니카 자매와 함께 골목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어이, 나하고 이야기 좀 할까?"

하여 뒤돌아보았더니 한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 세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이가 39세였으나 "40대 아줌마하고 이야기해서 뭐하게?" 라고 했더니 "40대면 어때" 하며 느닷없이 그 청년의 손이 내 가슴으로 오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탁' 쳤다. 그랬더니

"이년 봐라,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하며 나의 왼뺨, 오른뺨을 번갈아 가면서 마구 때리며 가래침까지 내 얼굴에 뱉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번쩍 나는 것 같았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계속해서 때리니까 곁에서 지켜보던 베로니카 자매가 보다 못해 "언니 고발해 버려" 하니 세 청년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아나, 고발해라 이년아!"

하며 마구 발길질까지 해대기에 내가 얼른 자매들을 밀치고 막았더니 그들은 나를 사정없이 차고 때리는 것이었다.

추운 엄동설한에 차디찬 마루바닥에서 5시간이나 무릎 꿇고 기도했던 터라 그들의 사정없는 발길질에 얼었던 정강이가 어찌나 아팠던지 정신까지 아득하여 쓰러질뻔 했다.

그런데 그렇게 퍼붓는 뭇매를 맞으면서도 나의 마음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제까지 주님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했으면서도 진정으로 고통에 동참한 적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몇 시간씩 기도한 것이 어찌 주님의 고통에 동참한 것이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얼마나 많은 매질을 당하셨습니까.

그러니 이 매맞는 고통이야말로 진정 주님의 고통에 동참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죄인 감사할 수밖에요.

제가 받은 이 수모와 매 맞는 고통을 주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함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바치나이다"

하고 기도하면서 조금이나마 주님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행복감에 젖어 기쁨의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느낄 수 없었던 큰 기쁨이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비할까? 이 기쁨과 환희의 고통을 - 고통의 행복을- 이 모든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내가 그들 앞에 있었기에 그들에게 죄지을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은 바로 내 탓이요, 나의 잘못인 것이다.

나는 주님의 편태 고통에 동참했다는 그지없는 행복감에 겨워 오히려 그들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하며 두 손을 싹싹 빌자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치 우리 세 사람을 다 죽일 듯이 맹수처럼 달려들던 그들이 나의 비는 모습을 보더니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서로를 쳐다보더니

'야, 이 아줌마 머리가 돈거 아니야?' 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나는 "이 한밤중에 청년들을 죄 짓게 할 수 있는 빌미를 내가 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나의 잘못이야,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청년들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러니 용서해주고 돌아가 줘, 응?" 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청했더니 그들은 마치 그 자리에 응고되어 버린 듯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뻣뻣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 땅바닥에 반코트가 떨어져 있기에 나는 즉시 그 옷을 주워 청년 하나에게 걸쳐주면서 "이제 가봐, 나에게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아. 청년들이 오히려 나에게 사랑을 선사했으니 나는 감사할 뿐이야" 라고 했더니 그들은 더욱더 굳어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고 착하게 살도록 해, 응? 그럼 잘가"

라고 했더니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로봇처럼 뻣뻣하고 어색한 발걸음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 것이었다.

긴 골목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베로니카

자매가 그제야 "언니 내 옷" 하기에

"어머, 그 옷이 네 옷이냐?" 했더니 "그래"하는 것이 아닌가.

아까 그 청년에게 걸쳐 주었던 옷이 다름 아닌 베로니카 자매의 옷이었는데 모두들 내가 하는 행동이 하도 기가 막혔기에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내 옷이라면 그냥 놔둘 수 있었겠지만 내 옷이 아니었기에 그 청년에게 걸쳐 주었던 옷을 찾기 위하여 그들이 간 방향을 향하여 쩔뚝거리며 달려가 "나 좀 봐" 했더니 세 사람이 동시에 로봇트처럼 뒤돌아 섰다. 그들이 걸치고 있던 옷을 내리면서

"미안해, 이 옷 우리 동생 거라네"

해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굳어 있는 자세로 서 있기에 "이제 가봐" 하고 말하자 세 사람이 또 똑같이 되돌아서서 가는데 마치 그들의 모습은 완전히 로봇들의 행진과도 같았다.

"오, 주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저들은 저를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 은인이오며 십자가를 통한 기쁨과 사랑을 선사한 은인들이오니 부디 사랑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저들의 영혼 육신을 말끔히 씻어주시어 우리의 만남이 결코 헛된 만남이 되지 않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자녀 되게 하옵소서."

 

"그래,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사랑이 뒤따르지 않는 고통의 염원은 죄를 속량할 수 없단다.

그러나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너의 염원은 어떠한 죄인의 마음도 녹일 수 있는 애타적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