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책을 내면서

추천의 글  

목차 1   

목차 2      

목차 3    

 

 

 


140. 온 몸은 상처와 멍투성인데 성지 순례를 떠나다.
         (1986년 8월 4일 아침 6시경)

 

도초 공소 신자들이 나와 함께 성지 순례를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기에 구입한 과일 등을 새벽부터 관광버스에 실어 날랐는데 가족들이 도와주었다.

술집 여자들한테 심하게 두들겨 맞은 바로 그 다음날 새벽부터 관광차를 타고 성지순례 안내까지 맡아야 했으니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참된 희생과 보속은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니 나는 무척 기쁘게 일을 맡아했다.

물어뜯긴 이빨 자국이 맞구멍이 난 것도 있었고 팔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섬사람들을 인솔하여 안내하면서 내 마음은 이 고통들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기에 주님 영광 위하여 바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성령 봉사자들 네 명도 초청하여 나와 함께 섬사람들과 동참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자리가 부족했지만 앞에 세 사람이 앉기도 하고 땅에 앉기도 했다.

나는 그 많은 고통 중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앞에 앉아서 기도를 인도하면서 좋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자 했다. 거기 모인 많은 이들이 "정말 성지순례를 너무나 잘 온 것 같다"며 이구동성으로 좋아들 했다.

나의 모든 고통들을 주님 영광 위하여, 성모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온전히 봉헌하며 일하니 어제 내가 당한 그 수많은 고통들은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승화되었기에 기쁘기 한량없었다.

그렇게 쑤시고 아프던 모든 부위들이 사랑으로 꽃 피어 올랐고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이윽고 서울 새남터 성지에 도착하여 미사를 하게 되었는데 오기선 신부님께서 내게 전례 진행을 모두 맡기셨다.

미사를 마친 뒤 김대건 신부님 묘소로 출발해 가는데 광주의 한 자매가 "어머머, 율리아 형님 얼굴에서 빛이 나더니 김대건 신부님 얼굴로 바뀌네" 하고 말할 정도로 내가 기쁘게 활짝 웃고 있었다 한다.

도착하여 밥을 먹게 되었는데 광주의 봉사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나에게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뭐가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며 온갖 불평을 다 늘어놓으면서 밥을 먹다가 나에게 물 가져다 달라고 큰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공소 신자들 보기에 너무 민망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신자가 아닌 비신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좋은 표양은 보이지 못할 망정 오히려 가만히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속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할 행동들이 아닌가.

나는 구타를 당해 아픈 몸이었지만 희생과 보속과 사랑으로 기쁘게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나 평소에 도초 공소 신자들이 성령 봉사자들을 우러러 보고 있어 그들로부터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하여 그들을 초대했는데 그들의 좋지 않은 표양을 지켜보던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기에 민망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오, 나의 주님, 내 어머니시여!

봉사자들이 스스로 높아져서 대접받으려 하는 마음을 버리고 더욱 낮은 자가 되어 모든 이들을 섬기며 영적으로 도움을 주는 주님의 진정한 도구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슬퍼하지 말아라. 이제 시작이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봉사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의지가 내 의지에 무감각해 있어 소유한 바를 나눌 줄 모르니 어찌하겠느냐. 나도 무척 마음이 아프단다.

그러나 내 사랑의 감미로움을 온전히 느끼며 고통 안에서 기뻐하는 너와 같은 작은 영혼이 있기에 나는 위로를 받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