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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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성금요일 새벽에 받은 놀라운 사랑 (1988년 4월 1일)

 

이번 순례 여행은 일정이 워낙 빡빡하여 전혀 쉴 수도 없는데다가 버스를 옮겨 타거나 비행기를 탈 때마다 혼자서 그 뚱뚱한 할머니를 모시면서 큰 물통을 들어 옮겨야 했기에 너무 힘이 들었다.

더구나 사순절이면 언제나 받는 고통까지 봉헌해야 했으니 매일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희생은 같은 방을 쓰는 자매님의 부산스러움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매일 밤 그 고통을 애덕으로 봉헌하는 일이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그 자매님이 먼저 목욕을 한 뒤 내가 목욕하고 나면 1-2시경이 되었다.

나는 원래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다가 남편과 잠자리를 봉헌한 뒤로는 누가 내 옆에 있으면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잠을 청해 보았지만 그 자매님이 코를 어찌나 심하게 골던지 그 자매님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자지 못한 채 그 소음을 봉헌하면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했다.

"주님, 저 자매님이 코를 한번 골 때마다 저 자매님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죄인들 안에 있는 나쁜 악습을 다 뽑아내 주시고 코고는 소리를 사랑의 기적을 행하는 사랑의 멜로디로 바꿔 주시어 주님 영광 드러내 주소서" 하고

계속 기도하며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 5시경에야 막 잠이 들려고 하면 그 자매님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내며 다니는 바람에 성지 순례 내내 하루도 잠을 자지 못하였다.

고통을 받으면서 잠을 한숨도 못 자는데다가 무거운 짐 들어야지, 할머니 부축해 드려야지 하다보니까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내가 고통을 청하고부터는 다른 날보다는 특히 목요일 저녁부터

어김없이 고통을 받기 시작하여 금요일까지 꼬박 이틀동안 고통을 받곤 했는데 외국에 성지 순례를 왔다고 예외는 없었기에 혹시라도 나로 인하여 공동체에 불편을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는 그 자매님께 간곡히 부탁했다.

"자매님! 제가 원래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까지 고통을 받는데 이번에는 성주간이니 더 심할 것 같아요. 제가 고통 받는 것 때문에 공동체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니까 제가 좀 쉬고 싶거든요.

그러니 내일 아침 하루만이라도 모닝콜 울릴 때(6시)까지 일어나지 않으시면 안될까요?" 하고 말씀 드렸더니 "그러지 뭐" 하고

의외로 너무 쉽게 대답하였다.

나는 속으로 '아, 이제 내일 아침엔 1시간이라도 잠을 잘 수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자리에 누워있는데 대답과는 달리 그 자매님은 새벽 5시가 되자 평소 때와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날보다도 더 시끄럽게 '쿵탕' 거리며 다니는 것이었다.

그 날 나는 고통이 더욱 심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눈조차도 뜰 수가 없어 이불로 얼굴을 뒤집어썼더니 그 자매님은 "너 이년 일어나 봐, 너 혼자 성녀인척 하면서 고통 받는다고 하는데 누구는 고통 안 받아 봤다더냐?" 하면서

물건 등을 마구 집어 던지고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댔는데 그 자매님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욕설은 내가 세속에 살 때도 들어 보지 못했던 아주 심한 욕이었다.

나는 주님께서 받으시는 고통들을 묵상하며 '아 오늘은 이렇게도 큰 사랑을 베푸시는구나' 하며 '주님! 이 고통들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봉헌하오니 저의 고통들이 작고 작은 것들이지만 주님의 고통과 합일된 사랑으로 받아주소서' 하고 묵상하는데

그 자매님은, 꼼짝도 못한 채 누워 있던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야, 이년아! 나는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신부님들 앞에서도 상을 엎어 버리는 사람이야. 이년아, 어디서 혼자 성녀인척 하면서 잘난 체 하는 거야, 엉? 야, 이년아! 너 오늘 죽어볼래? 예수님이 고통 받으면 너도 고통 받냐? 이년아!" 하면서 나의 이쪽 저쪽 뺨을 번갈아 후려치면서 온갖 욕설을 계속 해댔다.

나는 그 자매님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자매님! 제가 자매님의 마음을 상해 드렸다면 용서해 주세요. 네?"하고 용서를 청했더니

"흥! 개뿔도 잘난 게 없는 년이 주제넘게 잘난 체 하고 있어" 하면서 거울을 보고 화장을 다시 고치는 것이었다.

그 자매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세수를 한 뒤 화장을 진하게 하고는 5시 30분이면 밖으로 나갔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나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른 새벽부터 무엇을 하기에 매일같이 시간 맞추어 나가는 것일까? 궁금했던 나는 그 자매님을 가만히 뒤따라갔다가 뜻밖에도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같이 순례 온 60대의 유부남과 함께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그 순간 목놓아 울고 말았다.

다른 날도 아닌 성금요일에 기도와 묵상은 못할망정 유부남 유부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저렇게 좋아하다니…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지금 이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자매님에게 당했던 일들은 바로 주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희생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일이었음을 알고는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주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욱더 아름답게 봉헌하였다.

그러나 성지 순례 와서까지도 주님을 멀리한 채 욕정과 쾌락에 빠져서 주님,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있었으니 마음이 아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그만 오열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 나의 사랑, 나의 님이시어!

인류 구원을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갈바리아를 오르시는 주님의 그 힘겨운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지는 못할망정 그들은 욕정의 늪에 빠져서 오히려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더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부디 그들을 욕정의 늪에서 건져주시고 또한 세상 모든 이들도 목이 터져라고 외쳐주신 당신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자녀 되게 하여 주시고 이번 순례 길에 오른 모든 이들이 주님과 성모님 사랑 안에 하나되어 등경 위의 등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내 사랑하는 귀여운 아기야!

나를 믿는다고 하는 자녀들까지도 성금요일을 거룩히 지내기는커녕 성지에 와서까지 내 머리 위에 씌어진 가시관을 짓눌러 피를 흘리게 하고 있구나.

신앙의 유산을 지키고 전해야 할 대다수의 불림 받은 내 자녀들까지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너와 같은 작은 영혼이 있기에 상처 난 내 성심은 위로를 받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