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책을 내면서

추천의 글  

목차 1   

목차 2      

목차 3    

 

 

 


177. 요셉 병원에서 (1989년 4월 9일)

 

종부성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여러 날 지속되었다.

이를 지켜보며 안타깝게 여긴 주위 분들의 권유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부산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도 극심한 고통은 지속되었다.

병실 침상에서 고통으로 몸부림하고 있는데, 그 병원에 계시는 6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수녀님 한 분이 나에게 와서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그날 따라 나는 더욱 고통스러웠기에

'아니, 이렇게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힘든 나를 위해 기도는 못해줄망정 기도를 청하다니…' 하고 생각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 옆에 계시던 장부가 "율리아는 지금 너무 고통이 심해서 정신조차 가물가물한 상황입니다" 하자 그 수녀님이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아니야, 저 수녀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렇게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나에게 기도를 청하겠는가,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내 안에 계신 선하신 주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통하여 해 주실 거야 그러니 기도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잘 올라가지도 않는 손을 겨우 들어 수녀님을 불러 기도를 해 드렸다.

소리내어 말하는 것조차도 힘든 상태였기에 그 수녀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속으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내 가슴이 예리한 칼로 찌르듯 아파 왔다. 그래서 나는 수녀님께

"가슴이 많이 아프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하기에

"마음에 깊은 상처가 많은데 지금 치유되나봐요" 하고 내가 겨우 말하는 순간 크레졸과 알콜 냄새가 온 병실 안에 가득 찼다.

그런데도 그 수녀님은 맡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장부가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크레졸과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강하게 풍겼고 그제야 수녀님도 그 소독 냄새를 맡고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기도 중에 강하게 풍기던 소독 냄새를 맡고서야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겨 그 수녀님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던 중 그 수녀님이 병원 식당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수녀님은 정말 좋은 몫을 주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기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방이거든요.

반찬을 만들 때 양념을 넣으면서

'주님께서는 지금 넣는 양념과 모든 재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모두가 사랑의 양념이 되게 해 주시어서 이 음식 먹는 모든 환자들과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 온전히 용해되어 사랑으로 거듭나고 일치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고 음식을 만들 때는 '주님! 저는 늘 부족하오니 주님과 성모님께서 사랑의 음식 만들 수 있도록 저와 함께 해 주소서.

또한 이 음식을 주님께서 흘려주신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로 변화시켜 주시어 이 음식 먹는 의사, 간호사, 환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영적 육적으로 치유 받아 부활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면서 그 음식을 의사나 간호사나 환자들에게 줘 보세요. 그대로 이루어 질 거예요" 하면서 쌀 씻을 때, 마늘 등 양념을 다지거나 찧을 때, 밥이 될 때와 풀 때, 비빔밥을 할 때, 버려질 음식을 먹을 때, 설거지 할 때 등등 생활의 기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창백했던 수녀님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면서 홍조 띈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40여 년 전, 그러니까 수도원 초창기 때였는데 그 당시에는 몇몇이 모여서 살 때라 수녀복도 입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일들을 해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때 저희들은 농사도 지을 때였는데 제가 농약을 하다가 농약 중독이 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몸이 쇠약해졌고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몸으로 병원 식당을 책임 맡아 하려니 너무 힘이 들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서 오늘 수녀원을 나가기 위하여 보따리를 싸놓고 마지막으로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저를 오늘 새로 나게 해 주셨습니다.

근 40년 동안 수녀 생활을 했는데 '언제까지 밥이나 해서 날라야 하나?' 하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주님을 정배로 삼고 살았다는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시어 나는 수녀님의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활짝 열고 나에게 돌아올 때 내 너희의 과거를 묻지 않고 너희에게 축복의 잔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수녀님의 마음을 아셨으니 축복의 잔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때는 늦지 않았으니 우리 함께 새로 시작합시다" 했더니 수녀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이제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하셨다.

"오, 나의 주님! 나의 님이시여!

제가 받는 고통은 바로 희망 있는 고통이니

어찌 행복한 고통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필요하실 때 고통도 주시고 건강도 허락해 주시니 세상 그 어떤 저울로도 가늠할 수 없는 당신의 심오한 사랑에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요. 당신의 모든 자비와 사랑, 당신께 돌려 드리오니 당신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오 내 사랑, 내 작은 영혼아!

특별히 불림 받은 내 자녀들이 불성실할 때 그들은 내 성심을 깊이 찔러대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지만 그러나 회개하여 다시 나에게 달아들 때면 나는 한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모든 갈증이 해소되고 나의 마음은 흡족하기 이를 데 없어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부활의 삶을 살도록 인도할 것이다."

 

"오 내 사랑, 내 님이시여!

언제나 당신 사랑 안에 경건한 정서로

승화되기만을 원하오니 천박하기 그지없는

제 마음에 오시어 님을 모시는 궁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

 

수녀님은 그 날 살아오면서 받은 모든 상처뿐만 아니라 40년 된 농약 중독에 의한 후유증까지 치유 받고 그 후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기도로 봉헌하며 수도생활을 기쁘게 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