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발 냄새 지독한 행려자. (1990년 8월
4일)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데 온 몸에 땟국 물이 줄줄 흐르는 행려자가 여름인데도 다 헤어진
겨울옷에 너덜너덜한 털신을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오 작은 예수님이 여기에 또 계셨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피해 달아나려고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아저씨를 도와드리고 싶어요" 했더니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자신을 해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던지 더 이상 나를 피하지 않았다.
"아저씨 시장하실 텐데 국밥 사 드릴께 우리 국밥 집 함께 가요. 네?" 하면서 그를 매일시장에
데리고 가서 국밥을 사 먹였다. 국밥 집에서는 이제 내가 행려자들을 데리고 가면 으레 밖에서 먹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더 이상 꺼리지
않고 국밥을 내어주곤 했다.
국밥 값을 치를 때마다 500원을 더 보태어 주면
"공짜로 주지는 못할망정 아줌마가 좋은 일 하는데 내가 어찌 더럽다고 더 받을 수 있겠오. 나도
그것이 적선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데려오시오" 하며 웃돈을 사양하는 그분이 너무 고마웠다.
다른 곳에서는 그릇을 깨끗하게 소독해 주고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분 역시 국밥을 떠 먹여 주니까 울면서 목이 메여 잘 먹질 못했다.
그는 울면서 "세상 인심이 고약한 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좋은 분도 다 있네요. 그려" 하였고 나중에는
눈물을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국밥을 다 먹인 뒤 그분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언제나 해왔던 것처럼 그분을 위하여 새 옷을 사온 뒤 목욕물을 데우는 동안 성모님 앞에 모셔 가려고
신발을 벗기려 했더니 자꾸만 신발을 벗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는 억지로 신발을 벗겼는데 양말과 신발이 아예 딱 붙어
있었고 그나마 신발 밑창과 양말 밑은 다 헤어져 있었다.
냄새가 말도 못하게 고약했지만 우시는 성모님 앞으로 모시고 갔는데 성모님 집 전체가 장미 향기는
없어지고 고약한 냄새로 가득 찼다.
"성모 어머니,
이 분을 친아들로 꼬옥 안아주시어 모든 상처와 병든 영혼 육신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시어요"
하면서 기도했더니 그분은 땀을 줄줄 흘렸다.
그 사람은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징용에 끌려갔다가 몸이 아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등뒤에다가 주소와 이름표를 붙여서 고향으로 보내졌단다.
집에 가 보았더니 이미 집도 없어지고 가족마저도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기에 그때부터 병든 몸에
외톨이로 떠돌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고 몸이 좋지를 않다 보니 사시사철 몸에 한기가 들어 땀을 흘려 본적이 없었는데 오늘 여기 와서
처음으로 땀을 흘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양말과 신발을 벗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목욕을 시키려 했더니 부끄러워하며 자꾸 사양하였지만 억지로라도 씻겼는데 그동안 얼마나 몸을 씻지 않고
살았는지 살이 다 벗겨져 나왔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혀 놓은 뒤 나주 성모님이 모셔진 경당으로 들어 가 보았더니 그분이
딛었던 발자국마다 냄새는 둘째 치고라도 마치 검은 아스팔트를 붙여 놓은 것처럼 시커멓게 찐득찐득하여 그것을 닦느라고 여러 봉사자들이 고생했는데
나와 함께 그분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희생으로 봉헌하며 닦았다.
"주여!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제 그만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
주소서."
"그래 사랑하는 내 딸아!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했지?
너는 언제나 불쌍하고 가련한 이웃을 나를 대하듯 열렬하게
사랑하면서 애긍을 베푸니 내 어찌 그런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 염원대로 해주마."
"오, 주님 감사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청소를 마친 뒤 그분에게 갔더니 금새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저기 얼마나 많이 찾아보았지만 아무 곳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 주님! 당신이 안전한 곳으로 데려
가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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