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일곱 통의 유서를 쓰고
청산가리를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으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웃에 사는 외사촌 남동생 길영이에게 부탁했더니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이제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와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한 장 한 장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 남편, 네 아이들, 그리고 다음 부인될 사람에게까지 이렇게 일곱 통의 유서를 써서 옷장 맨 아래 서랍 속에 넣어 놓고 나니 인생이 한없이 무상했다.
내가 살아왔던 한 생애를 되돌아볼 때, 기쁨보다는 고통과 슬픔의 세월이 더 많았던 나날들…. 외롭고 고독했던 처참한 세월 속에 묻혀서 잊혀져 버릴 나의 슬픈 운명…. 남몰래 흘렸던 그 눈물방울들이 모여져 작은 시내를 이룰 수 있을 만큼 나의 그 깊은 침묵의 절규들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내 한 몸 부서질 듯 희생해서라도 사랑을 나누며 잘살아 보려는 마음을 시샘이라도 하듯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통과 죽음이 시시때때로 나의 반려자처럼 내 뒤를 쫓아다니며, 나의 가장 가까운 길동무가 되어 눈보라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을 걷자고 끈질기게 졸라대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그 힘든 항로를 여행이라도 하듯 셈 치고의 삶으로 봉헌하며 나아갔지만, 폭풍우와 거센 풍파는 끊임없이 나를 덮쳐 앗아가려고 했었지. 그럴 때마다 나는 힘겹고, 고통스럽고, 고독한 몸부림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인내심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무기력하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칠전팔기 오뚝이처럼 포기하는 일 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며 대항해 왔었지.
그런데 이제 눈물과 동반된 피나는 그 모든 노력들과 이웃이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잘살아 보고자 했던 소박한 나의 꿈들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한번 가면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웠던 아버지가 계시는 저세상으로 가야 하다니….
이 처절한 현실 앞에서 나의 한 생애가 조용히 막을 내리려 하는 것을 함께 슬퍼하듯, 낮인데도 귀뚜라미까지 처량하게 울어대니 나의 슬픔은 더해져만 갔다. 한 많은 이 세상, 모든 괴로움을 뒤로하고 내가 없더라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죽음의 현실 앞에 나를 내어놓기 위하여, 한 많았던 이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352. 죽으러 떠나려던 마지막 순간에 남편이
1980년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정들었던 어머니와 남편과 아이들의 물건들을 눈물로 정리해 놓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내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려던 찰나 남편이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오면서 “여보, 오늘은 성당에 좀 갑시다.”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죽기 위하여 내가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아내를 성당에 데려가기 위하여 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남편은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렇게도 아내를 사랑하여 살려보려고 무진 애를 다 써줬던, 보고 싶은 남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어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육신이 이제 때가 되어 오늘 아침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 사랑하는 그이가 아니었던가?
남편은 나에게 빨리 성당에 가자고 재촉했다. 나는 혹시라도 남편이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러 가려던 길이었던 것을 눈치챌까 봐 모든 것을 숨기고 함께 성당을 찾아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 고통의 일부분을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신부님, 하느님이 계시고 신이 계신다면 너무 가혹하십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쓴잔을 마셔야만 한단 말입니까?” 하고 말했다. ‘쓴잔’, 이 쓴잔이라는 말을 들은 신부님이나 남편은 내가 받아온 고통으로 알아들었겠지만, 실상 쓴잔이라고 한 그 말은 ‘죽음’을 두고 한 말이었다.
신부님은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지금 몸으로 사랑받고 계시네요. 나도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그대로 믿으십시오.”라고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나는 즉시 그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아멘!”으로 받아들였다. ‘아! 그렇구나,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죽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으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신부님은 군종 신부님으로 1년 계시다가 나주 성당으로 발령 나서 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의 영성을 가진 분이 아니실 것이다. 그러나 이 부족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주님께서 친히 그 신부님을 통해 일을 행하신 것이다.
353. 성당에 나가다
그동안 암이 거의 온몸에 다 퍼져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디찼기에 남편은 나의 손이 살짝만 닿아도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신부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멘.”으로 응답한 바로 그 순간, 그렇게 찼던 나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하여 뜨거운 열에 순식간에 빙하가 녹듯 온몸이 땀으로 목욕하다시피 흥건히 젖었다. 뜨거운 성령의 열기가 나의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나는 성당에 다니기로 신부님께 약속하고 집으로 왔는데,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성당에 다녀온 뒤로 새로운 결심을 하며 써두었던 일곱 통의 유서를 곧바로 태워 버리고, 성물을 사기 위해 돈을 빌려 성당의 성물 판매소로 달려갔다. ‘아니, 내가 달릴 수가 있다니!’
성물 판매소에 들어가 보니 많은 성물들이 있었지만, ‘갖고 싶은 모든 성물을 산 셈 치고’ 우선 십자고상과 성모님상, 성경책, 기도서, 성가집, 묵주, 미사보, 초를 골랐다. 돈이 없으니 가장 작은 성상을 고르면서도 ‘큰 성상을 모신 셈 치고’ 구입했기에 큰 성상이 부럽지 않았다. 이 작은 성상이라도 모실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가!
성모님상을 고를 때 보니, 팔을 양쪽으로 벌린 성상과 기도하듯 손을 합장한 성상이 있어 “이분은 어느 성모님상이고, 또 저분은 무슨 성모님상이에요?” 했더니 “이쪽은 자비의 성모님상이고, 또 저쪽은 기도하는 성모님상이에요.” 하였다. 자비의 성모님상은 나에게 ‘어서 오너라.’하시는 듯했고, 기도하는 성모님상은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듯 보여 두 분 다 모시기로 결정했다.
가장 작지만, 그 두 성모상을 옷장 위에 모셔 놓고 촛불을 밝히면서 나와 가족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라고, 또 미사보를 쓰면서 나의 죄를 씻어주시어 깨끗하게 보존해 주시라고 정성을 바쳐 서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정성과 마음을 다 바쳤다. 내가 이렇게 장시간 서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긴 인고의 세월 끝에 드디어 이번엔 진짜 희망이 보여 날아갈 듯 너무 기뻤다. 모든 만물이 아름다워 보이고 온 세상이 찬란하게 빛났다.
354. 성당 찾은 지 3일 만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다
성당에 나간 지 3일째 되던 날, 그날도 나는 여전히 옷장 위에 모셔 놓은 예수님상,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하다가, 조금은 무리가 되었는지 힘이 들어 잠깐 누워있었는데 “성경을 가까이하라, 성경은 바로 살아 있는 나의 말이니라.”라고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예전에 황금 덩어리가 내 가슴속으로 쑥 들어올 때 “너의 그 인내심과 착함을 보고 나의 유산, 즉 나의 전 재산을 너에게 전하노라.”라고 하던 목소리와 성당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있었을 때와 대학병원에서 죽었을 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어서 돌아가거라.” 또 성당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집에 가야지.” 하던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경책을 펼쳤는데 루가복음 8장 40절 이하의 말씀이 나왔다. (루가 8:40-56)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 살아난 야이로의 딸」 예수께서 배를 타고 돌아오시자 기다리고 있던 군중이 모두 반가이 맞았다. 그때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께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의 열두 살쯤 된 외딸이 거의 죽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그 집으로 가실 때 군중이 그를 에워싸고 떠밀며 쫓아갔다. 그들 중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가산마저 탕진하였지만, 아무도 그 병을 고쳐주지 못하였다. 그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 순간에 출혈이 그쳤다. 예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으나, 모두 모른다고 하였다.
베드로도 “선생님, 군중이 이렇게 선생님을 에워싸고 마구 밀어 대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나에게서 기적의 힘이 뻗쳐나갔다. 누군가가 내 옷에 손을 댄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떨면서 앞으로 나아가 엎드리며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이유며, 병이 곧 낫게 된 경위를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 전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은 죽었습니다. 저 선생님께 수고를 더 끼쳐 드리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러면 딸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집에 이르러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아무도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죽었다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울지 말라,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붙잡으시고 “아이야, 일어나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아이는 숨을 다시 쉬며 벌떡 일어났다.
355. 내 인생행로의 폭발적인 대전환기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러면 딸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 두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나에게 해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장 고통이 심했던 항문이 쏙쏙쏙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만져 보니 항문 밖까지 튀어나와 있던 암 덩어리가 감쪽같이 사라져 아무 이상이 없었다. 밖에까지 퍼져 나왔던 발의 암 덩어리도 깨끗해져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잘 보이지도 않고, 바늘로 쑤시는 듯 아팠던 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약을 먹어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아팠던 머리도 아프지 않을뿐더러 개운해졌고, 두근거리던 심장의 고동 소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을 마셔보았다. 소량의 물을 삼키기도 힘들었던 목이 아무렇지도 않다. 음식을 많이 먹어보았다. 위장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장까지 유착되어 음식을 조금도 먹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모든 것이 놀랍도록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다. 꿈이 아닐까? 믿기지 않아 살을 힘 있게 꼬집어보고 또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그러면 이게 꿈이 아니고 진정 나에게 일어난 현실이란 말인가?
오오!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 내려졌구나! 그분은 실제로 성경 안에 살아계시면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시는 권능과 사랑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셨다. 이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하여,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혈압과 심장과 폐, 자궁과 간기능을 검사해 보기 위하여 나주 병원에 찾아가 검사해 본 결과 자궁도 깨끗해졌고, 간 기능도 이상이 없었으며, 50-40이었던 저혈압은 120-70으로 올라갔는데 다음에는 계속 120-80으로 정상이 되었다.
356. 나의 삶을 지배했던 어두움은 막을 내리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삶을 소급해보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나의 인생행로를 뒤돌아볼 때, 사람들 때문에 웃고 울고, 병들고, 절망스러웠던 나의 과거가 사뭇 애처롭다. 삶의 의미를 실감하기도 힘들었던 나의 과거,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눈물의 연속이었던 지난날들, 자유의지조차 무시된 채 외롭고, 슬프고 처절하기만 했던 과감하지 못했던 나.
모든 사람이 거짓말투성이에 창공은 어두움이요, 방랑자의 외로움이며 낯선 산장에서 마냥 헤매면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를 찾는 떨리는 콧노래로 위안을 삼아보았지만, 어두움만이 나의 벗이요, 흐느낌만이 나를 위로해 주는 휴식이었으며 창공엔 온통 어두움뿐이었다.
파란만장했던 나의 삶이 막을 내리려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 하느님은 빛과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기능 정지 직전에 나를 불러주셔서 각 신체 기관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힘겨웠던 나의 삶을 지배했던 어두움은 막을 내렸으니, 이제 다시 힘차게 일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보자고 희망을 노래하며 다짐해 본다.
357. 신혼여행을 떠나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부터 약혼식, 결혼식을 모두 거쳤지만, 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남편은 죽을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나자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신, 이제 새로이 부활했으니 신혼여행이나 다녀옵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아니, 신혼여행이라뇨? 결혼했을 때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지, 결혼한 지가 자그마치 십여 년이에요. 그런데 무슨 신혼여행이에요? 만약 간다면 구혼 여행이지.” 하고 웃었다.
남편은 “아니야, 여보, 당신은 죽었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새로 태어났으니 나와 새로 만나는 것이오. 그러니 신혼여행이지.” 하고 웃으며 기어이 여행 준비를 해서 친정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김 서방, 정말 잘 생각했네.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네, 내가 아이들 데리고 집을 볼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데리고 다녀오소.” 하시며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우리를 보내셨다.
이제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 구경을 처음 하는듯하였고, 온갖 만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불행이라는 깊고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는 어둡게만 보이던 창공이 이제는 드높고 밝은 광명이었고, 해맑은 공기며, 활짝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 이 모든 우주 만물이 나의 마음에 기쁨과 희망과 사랑으로 새롭게 불타올랐다.
358. “신혼여행을 가시는군요.”
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온양 온천을 가기위해 남편과 함께 앉아있는데, 어떤 낯선 중년 부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신혼여행 가시는군요.”라고 하면서 무엇 무엇을 사 가서, 어떻게 하라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심지어 목욕하고 나서 우유를 먹으라고까지 말해주어 나는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또 “색시는 나이가 참 어리게 보이는데, 왜 그렇게 염려 관을 빨리 써버렸는가?”라고 하였다.
그분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더니 “색시 시어머니는 얼마나 좋을까? 색시는 잘살 거야.” 하고 말하고 있을 때, 남편이 나를 불러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로 가려고 차를 타려는데 거기까지 따라와 “잘 다녀와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서른세 살이나 된 나를 어리게 보인다며 염려 관을 빨리 썼다고 한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데, 남편은 “왜? 아시는 분이야?” 하고 물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남편도 큰 소리로 웃었다.
359. 예수님과 함께 날다
암과 모든 질병들을 치유 받고 성당에 나가니, 성체를 너무 영하고 싶어 신부님께 “빨리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까?”라고 했더니 올해 성탄 때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며칠 후 세례받을 사람이 나 혼자여서 이번엔 못하고, 81년 부활 때 받자고 하셨다. 성체 예수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세례받을 준비를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신 사랑이라 생각하며 ‘그래, ‘성체를 영한 셈 치고’ 매일 미사와 교리에 빠지지 말고 잘 준비하자.’ 하고 기쁘게 봉헌했다. 예수님께 향한 불타오르는 내 마음은 나날이 깊어졌다.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날이 되었다. 미사에 다녀와서 기도하는 중에 황홀경에 빠졌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날아오셔서 “사랑하는 나의 아기야! 나를 따르라.”라고 하시면서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날아가시다가, “너도 날아서 따라오너라.”라고 하셔서 날아서 따라갔다. 처음에 손을 잡아주셔서 탁 날았는데 얼마큼 날다가 파닥파닥하다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다시 날려고 해도 날아지지 않고, 팔짝팔짝 뛰다가 버둥거리면서 예수님을 애절하게 바라보자 다정하게 웃으시며 다시 나에게 오셔서 “혼자서는 못 날겠지?”라고 하시더니 내 손을 잡고 날아주셔서 나도 쉽게 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얼마쯤 날았을까? 예수님께서는 슬며시 내 손을 놓으셨는데, 그때는 혼자서도 잘 날아졌다.
예수님과 함께 한참을 날아가는데 밑에 수많은 무덤이 나타났다. “무덤들이 보이느냐?” “예.” 하자 “무덤에 입김을 불어 넣어라.” 내가 머뭇거리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내 아기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입김을 불어라.”라고 하시어 “네” 하고 입김을 “후!” 하고 불자 무덤들이 열렸다. 그리고 “다시 입김을 불어 넣어라.” “후~” 하고 다시 입김을 불어 넣으니까 관이 열리고 뼈들이 드러났다. 예수님께서 “또다시 입김을 불어 넣어라.”라고 하셔서 입김을 불어 넣자 그 많은 뼈들이 소리를 내며 다 붙었다. “또 입김을 불어 넣어라.”라고 하셔서 말씀대로 하니 살이 생겨나 붙었다. “또 입김을 불어 넣어라.”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자 사람들이 숨을 쉬며 살아났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니 날 수 있었고 입김을 불어 넣자 무덤이 열리고, 관이 열리며 뼈들이 드러나고, 뼈들이 붙고, 살이 붙고, 숨을 쉬며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낸 후 예수님께서 기도하던 내 방으로 데려다주시고 다시 날아가셨다. 황홀하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들에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내 살을 힘 있게 꼬집어 봤는데 무척 아팠고, 뺨을 때려 봐도 아팠다. ‘오, 천상천하의 주인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렇게도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시나이까?’ 환희로 벅차올라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감싸 안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다.
360. 예수님을 만나는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난 나는 교리를 받는데 교리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무엇인가를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욕망에 신부님께 “신부님, 교리 말고 다른 방법으로 더 배울 것 없어요?” 하고 물었더니, 신부님은 웃으시며 “글쎄요, 아주머니는 참 욕심이 많네요. 다음에 알려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어느 날, 신부님은 나를 불러 “아주머니가 원하던 대로 배울 것이 생겼어요.”라고 하셨다. 더 배울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너무 반가워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신부님, 언제요?” 하며 나는 너무 반가워 큰소리로 물었다. 9월 15일에 피정을 하기로 했어요.”라고 하셨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교리만으로는 타는 나의 갈증을 채울 수가 없어 목마름에 헤매고 있었기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피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피정을 받기 위해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피정 당일이 되어 성당에 가니 아버지 같으신 성령쇄신 봉사자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섯 명의 봉사자들이 있었고, 첫 강의를 회장님이 하셨는데 여린 나의 눈은 마치 예수님을 보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피정에 빠져들었다.
모든 이를 위하여 희생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의 눈에는 하느님을 보좌하는 천사들같이 너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봉사하며 글씨를 쓰고 있던 팀장을 바라보다가 ‘아! 내가 줄 것이 있었구나, 저렇게 많은 글씨를 써야 하니 볼펜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허락을 얻어 남편이 쓰던 볼펜 몇 개를 호주머니에서 빼다가 팀장에게 주고 나니 너무 기뻤다.
팀 대화를 할 때 내가 지금까지 체험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듣는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였다. 우리에게 무슨 은사를 받고 싶냐고 묻는 팀장의 말에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치유의 은사를 받고 싶어요.” 하자 “왜요?” “이 세상에는 돈이 없어 병을 고쳐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수단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처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큰아들을 의학박사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좋은 은사가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만약에 치유 은사를 받게 된다면, 가장 먼저 저처럼 돈이 없어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 은사를 사용하겠어요.”라고 했더니 “자매님, 자매님은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했다.
팀장의 말씀에 나는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때 봉사자들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는 큰 화제가 되었다. 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마저도 모두 주님을 위해 봉헌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살려주셨으니 이제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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