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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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허리를 다치신 어머니 (1981년 4월 29일)


미용실에서 손님 머리 손질을 하고 있을 때 시어머님께서 찾아 오셨는데 미용실로 들어서자마자 대뜸 "너 나 좀 보자" 하시어 일손을 멈추고 시어머님을 만났다.

시어머니께서 다짜고짜로 "너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며 역정을 내셨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어머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혹시 제가 무엇을 잘못한 일이 있나요?" 했더니 "그래 내 회갑 때 왜 시골 00에게 연락 안 했냐?" 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곳은 시어머님께서 연락하시기로 했기에 연락을 안 했던 나는

"어머, 어머님이 하시기로 하셨잖아요" 했더니

"너 또 왜 네 동서가 입원해 있을 때 찾아가서 한마디도 안 했냐?"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어머니 제가 왜 한마디도 안 했겠어요.

제가 동서에게 '얼마나 고생이 심한가, 잘 참고 봉헌하세' 했는데요" 하자 큰 소리로 "아무 말도 않고 가버렸다고 하더라" 는 등 여러 말씀들을 하시어 나는 "어머님! 형제간이 많다보니 어머님께서 어려움이 많으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며 어쨌든 죄송한 마음에 그저 한 말씀 올렸는데 어머니께서는 버럭 화를 내시며

"형제간이 많으니까 네가 밥을 주었냐? 옷을 해 주었냐? 공부를 가르쳤냐? 야, 이년아! 네 주제에 서방 잘 만난 덕으로 이렇게나마 잘 살고 있는 줄 알아라. 이년아 --" 하시는 것이 아닌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계속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다못한 친정 어머니가 "사돈, 여기는 영업집이니 방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이야기하십시다" 라고 하시자 대뜸 "당신이 뭔데 그래" 하시며 사정없이 떠 밀쳐 버리는 바람에 친정 어머니는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부엌 부뚜막 모서리에 허리를 크게 다치셨다.

'우당탕' 하는 큰 소리에 미용실 손님들까지도 모두 놀라 몰려들었고 그 날 친정 어머니가 허리를 크게 다쳐 자리에 누우시는 바람에 손님들 머리를 손질해주랴, 친정 어머님 병수발하랴, 정신 없이 바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가르쳤냐?" 고 하시던 시어머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면서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시집 온 날부터 내 몸 생각하지 않고 쉴 사이 없이 일했으며 시댁 식구들 옷 해주고 먹여주고 시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하여 약혼, 결혼 패물까지도 다 팔아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하다 못해 친정 어머니께서 남의 논과 밭을 소작 얻어서 피땀 흘려 농사지어 가져다준 것으로 시댁을 돕고 심지어는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도 시댁 뒷바라지를 해주었질 않았는가?

반면에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는 먹고 싶은 것 못 먹이고 입고 싶은 옷 한 벌 사주지 못한 채 상처 나고 흠집 난 싼 과일만을 사 먹이고 헌 스웨터 풀어서 손뜨개로 옷을 짜 입히며 살았는데 이게 웬말인가.

불쌍한 내 어머니는 하나 있는 딸자식 시집 보내놓고도 호강은 고사하고 계속 도와주시느라고 고생만 하셨는데 그런 친정어머니를 밀쳐 크게 다치게 하시다니...  

나에게는 그 어떤 욕이나 몰매, 심지어는 나를 짓밟고 죽인다해도 기쁘게 받아 들였을 것이나 오로지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금까지 고생만 하고 사신 친정 어머니를 다치게 한 일 만큼은 아픈 가슴으로 남아 쉽사리 해소가 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