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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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미용실을 살림집과 합치다. (1982년 4월 8일)
 

미용실이 집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밤늦게 퇴근하기도 무서웠고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고 하여 살림집이 딸려 있는 미용실을 마련하였다.

미용실 왼쪽으로는 세탁소와 식당이 있었고 오른쪽 건물에는 모텔과 목욕탕과 고급 술집이 있었으며 맞은편은 모두 창고였는데 내가 미용실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7-10 여명의 여자를 두고 장사하는 술집들이 많이 생겼다.

그 술집 아가씨들이 하는 행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는데 그 근처에는 다른 미용실도 많았지만 술집 아가씨들 대부분이 우리 미용실만을 찾았다.

일반 손님들은 그들이 오는 것을 무척 싫어했지만 나는 그 불쌍한 여자들을 다른 데로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미용실 바로 앞에 있는 술집 마담이 나를 찾아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의 앞머리를 500원씩만 받고 해달라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며칠 후에는 500원으로 옆머리까지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 며칠 후에는 뒷머리 부분 조금만 남기고 모두 500원에 다 해달라고 하더니 곧이어 500원에 2일 동안 머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손님 머리를 손질할 때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며 머리를 해 주던 때였으므로 그들이 불쌍하기도 하여 그렇게 해 주었다. 그랬더니 또 조금 지나자 아가씨들 머리하는 값을 외상으로 해 달라고 하여 또 그러라고 했다.

이틀 간 계속해서 머리를 하려면 적어도 2000원은 받아야 될 머리를 500원에, 그것도 외상으로 하다보니 매일같이 오는 그들 때문에 오히려 일반 손님 머리는 못해주고 그냥 돌려보낼 때가 많았다.

내가 그들 머리를 해줄 때는 그래도 괜찮았으나 주님 일 하면서 미용실을 비울 때가 많았으므로 미용사들이 나 대신 해 줄 때는 무척 짜증을 내었기에 나는 미용사들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장부와 약혼했을 당시에도 미용실을 했는데 그때는 술집 여자들이 불결하게만 느껴져 무척 싫어했기에 그들이 미용실에 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머리를 해 주지 않았으나 하느님을 알고 난 후부터는 그때의 잘못을 보속하는 마음으로라도 잘해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안아주고 품어주고 위로해주며 불쌍한 그들의 엄마도 되어주고 언니도 되어주었고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이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곤 했다.

그래서 우리 미용실에서는 언제나 음악을 틀어도 성가만 틀었고 책자도 세속 잡지가 아닌 신앙의 책들로만 가득히 놓아두어 손님들의 영혼에 유익이 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