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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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통의 시작 (1982년 4월 사순시기)


우리 가족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동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날은 미용실 일을 일찍 끝마친 뒤 저녁 9시경에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큰 아이가 12살, 둘째 아이가 10살, 셋째 아이가 6살, 넷째 아이가 4살이었는데 성경 봉독은 장부가 했고 성가는 모두가 합창으로 했으며 서로 돌아가면서 자유기도를 바쳤다.
 
자유 기도를 바치던 중 내 차례가 되었기에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십자가 앞에 가시관이 나타나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오! 내 주님이시여! 당신이 쓰셨던 그 가시관을 저에게 씌워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고통을 받음으로 인하여 많은 영혼들이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주님 맘에 드는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하며 청했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가시관이 내 머리에 씌워지는 것이 아닌가?
 
가시관이 머리에 씌어지는 순간 많은 가시가 동시에 머리에 박혔고 어떤 가시들은 머리뼈를 뚫고 들어와 박혔는데 그것은 너무나 극심한 고통이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고통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엉엉' 울며 양손을 머리에 대고 몸부림을 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땀이 이마에서 비 오듯 쏟아져 내려 두 눈을 가렸기에 손으로 땀을 훔쳐서 뿌려가며 그 아픈 고통들을 봉헌하면서 감사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도 좋으냐?"

"네, 주님! 제가 고통받음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회개할 수만 있다면요. 그렇게 해 주시어요. 네?"

"그래, 그래, 더한 고통도 받을 수 있겠느냐?"

"네, 주님! 받고 말고요."

말이 채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쓰러졌는데 순간 양손, 양발, 늑방의 오상 고통과 가시관 고통, 가슴이 터져 나갈 듯한 극심한 성심의 고통이 수반되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다 쓰러져 이리저리 뒹굴면서 "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미 받으시고 영광 받으소서" 라는 말 밖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었지만 우리 주님께서 나의 이 고통들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받아 주시고 그로 인하여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통이 끝난 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장부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장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당신은 그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어떻게 감사하단 말만 계속할 수가 있단 말이요?" 하기에 나는 "감사할 뿐이지요"

하고 대답했더니 "왜?" 하며 무엇이, 어떤 것이, 그렇게도 감사한지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주님께서는 의인 아혼 아홉보다 죄인 하나를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이신 데, 비록 부족하지만 내가 받은 고통들을 통해서 단 한 영혼만이라도 회개 할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했더니 장부는 무릎을 '탁' 치면서

"그래 대단하네, 참으로 대단해, 나 같으면 감사하다고 하면서 그런 고통들을 받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하기에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뭐하려고 죽음에서 살려내셨겠어요.

부족하지만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저를 주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고자 함이니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그 어떤 고통을 받을지라도 안타까워하지 말고 감사해 줘요. 네?"
라며 장차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고통들이 어떤 것들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치 준비라도 하듯이 다짐의 말을 하니 장부는

"그래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시간을 보았더니 11시 35분이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고통 받는 것을
기뻐하는 내 귀여운 작은 영혼아!
나는 너를 도구 삼아 사랑의 기적을 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