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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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어찌 하오리까. (1982년 6월 9일)

 

산 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환자들이 많았다.

그 중 직장암에 걸려있는 나이 많은 형제님이 누워 있었는데 가족들조차도 돌봐주지 않아 내가 돌봐 드리게 되었다.

화장실에 갈 때가 제일 문제였지만 나는 뒤처리까지 다 해 드렸다.

'왜 그를 혼자 놔두었을까? 가족은?' 그것은 바로 암으로 인하여 썩는 냄새가 지독하게 났기 때문에 아무도 그 옆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봉사자들의 질책이 시작되었다.

"너는 다른 봉사를 해야지 왜 환자 하나에만 매달려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거니?"

"죄송합니다. 그러나 거동도 못하는 환자라 제가 돌봐 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네 마음대로 해" 하며

되돌아가기에 나는 다시 그 환자에게 다가가 기도했다.

"주님, 가족도 사랑도 잃어버린 불쌍한 이 형제를 살려 주십시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사오니 주님께서 친히 오시어 성령으로 수술해 주십시오. 그것도 아니 되오면 이 형제님이 받는 고통을 제가 받음으로 이 형제님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제가 그 고통을 다 받겠습니다" 했는데 이 기도소리를 듣게 된 어느 봉사자가

"교만하게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는 거야? 고통은 응당 주님께서 받으셔야지 왜 율리아가 고통을 받는다고 하냐?" 하는 것이 아닌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일치 안에서 일해야 될 봉사자가 던지는 퉁명스러운 말투도 말투려니와 「고통은 응당 주님께서 받으셔야 한다」는 소리에 너무 놀란 나의 마음은 그 자리에서 응고가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잘못한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도를 했어야 되는데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형제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절규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기도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 봉사자 언니에게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조심해서 하겠습니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니 그 암환자는 나의 손을 꼭 잡은 채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 '미안합니다' 하며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도저히 모른 체 내 팽개쳐 둘 수가 없어 봉사회 회장님으로부터 허락을 얻어서 계속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배고픈 사람의 빵 맛이 어떤가를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 것이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암에 걸려 죽어 가는 그 고통의 쓴맛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나를 질책했던 그 봉사자의 몫까지 보속하는 마음으로 그 환자에게 더욱 정성을 다해 사랑을 베풀었다.

새벽 3시경 내가 그 형제의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내 눈앞에 아니, 제대 앞에 그것도 아주 똑똑하고 선명한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셨다.

거기 모인 봉사자들과 피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둘러보신 예수님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한 채 고통스러우신 모습을 하고 계셨는데 금방이라도 우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이 걷히고 가슴이 열리더니 갈기갈기 찢기어지기 시작했는데 예수님의 찢긴 성심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참했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위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오 주님, 나의 님이시여!

주님의 찢어진 그 가슴을 어찌하오리이까?"

그때 주님께서도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세상의 많은 영혼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내 성심은 이렇게 찢기고 있단다.

그러니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찢어진 내 심장을 기워다오."

 

"오 주님! 주님의 찢긴 그 심장을 제가 기워드리겠나이다.

제가 기워 드리겠나이다."

하며 얼마나 큰소리로 울면서 말했는지 모두가 함께 따라 울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때의 처참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나서 암환자를 보았더니 그는 이미 건강이 아주 좋아져 화장실도 혼자서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