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파열된 신장을 세 천사를 시켜 수술해 주시다. (1983년 3월
8일)
병원에 입원한지 사흘째 되는 수요일이었다.
그
당시 병원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만 위 내시경 검사를 했기 때문에 환자들이 많이 밀려 있었는데 내가 맨 마지막 차례였다.
위
내시경 검사를 받기 전에 먹으라고 준 하얀 약을 한번 마신 뒤 또 그 약을 입에 머금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9병동에 있는 내 병실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 부랴부랴 병실로 올라갔더니 신장이 파열된 자매가 슬픔에 사로잡힌 채 낙담하여 앉아 있었다.
나는
머금고 있었던 흰 약을 그대로 삼켜 버린 뒤 주님께 준비기도를 하고 나서 말했다.
"자매님! 우리 함께 기도할까요?"
"네, 빨리 좀 해 주세요. 어서요" 하고 그는 재촉하였다.
"자매님,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매님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용서를 하고는 싶지만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아요."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거랍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도록 도움을 청합시다." "네"
"또, 내가 상처받았거나 이웃에게 상처를 준 일들이 있다면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남편,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도 주님께 봉헌하며 기도합시다.…"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주시라고 가슴에 손을 대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먼저
주님께 부족한 죄녀인 나를 병실에 불러 주셔서 고통받는 자의 벗이 되게 해 주셨음에 깊이 감사 드리며 그 자매님의 내적 치유와 외적 치유를 위한
기도를 성모님께 의지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기도 중에
현시를 보게 되었다.
세
천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아주 예쁜 작은 삽으로 무엇인가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주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작업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천사들은 자기들이 작업한 곳을 이리 저리 살펴보다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떡끄떡' 하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자기들이 작업해 놓은 물체를 빙 둘러서서 내려다보더니 세 천사가 똑같이 양쪽 허리에 두 손을 대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갸웃하는 동작을 지었는데 바로 그때 또 한 천사가 나타나더니 넷이서 똑같이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 저 천사는 어떤 천사야? 갑자기 나타나서 똑같은 행동을 하게?' 하며 의아해
하는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귓속말로 "수호천사란다" 하고 알려 주셨다.
나는
그냥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는데 마음속까지도 꿰뚫어보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다 알려주신다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그 자매님은 얼마나 울었던지 베개가 다 젖었을 뿐만 아니라 베개에서 흘러내린
눈물로 침대시트 양쪽이 흠뻑 젖어 있었고 입고 있던 환자복까지 젖을 정도였다.
그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오, 주님 영광 받으소서. 당신께서는 저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잠자던 제 영혼이 다시 깨어나도록 이
자매를 병실로 부르셨나이까.
이
자매는 아파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 저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우렁찬 소리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그 자매의 기도 소리를 듣는 순간 시트로 가려 놓은 혈뇨
받는 병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혈뇨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상인의 것과 똑 같은 소변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현시로 보여주신 대로 주님께서 천사를 시키시어 수술해 주셨으리라 믿었지만 혈뇨 받는 그 병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기뻐 환희로 차
올랐다.
그것을 본 그 자매가 울면서 큰 소리로
"의사와 간호사에게 알려야 되겠어요" 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매님, 안돼요" 했더니
"어머머, 무슨 말이에요? 이것은 우리 주님 영광 드러내는 일이니
빨리
알려서 증거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정색을 하며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럿이 함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기도했기 때문에 전에 내가 염려했던 상황들이
혹시라도 재현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추호도 원치 않았고 이름 없는 들꽃과 같이 숨어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조금
후에 혈뇨를 체크하기 위하여 들어온 간호사가 시트를 들어 올리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웬일이에요?"
나는
또다시 그에게 눈짓으로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곧이어 의사들이 달려와 그 모습을 보고 "이건 기적이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하고
곧바로 검사를 시작했다.
양쪽
신장 모두가 완전히 파열되어 이식 수술만이 한 가닥 희망이었는데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완전히 정상인의 신장으로 치유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날로 퇴원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하루라도 더 쉬고 가라고 했더니 그대로 했다.
그는
작은 아버지가 목사인 개신교 신자였는데 오랫동안 냉담 중에 있다가 이번에 양쪽 신장이 모두 파열이 되어 초상집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내 집을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하는데 나의 이름과 세례명조차도 감춰버리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나를 잠시 잠깐 도구로 사용하여 주님께서 하신 일이지 내가 한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병실로 부르신 것도 주님이시요,
그
자매의 파열된 신장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도록 마땅히 나를 감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당시 나는 미용실을 하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손님으로 올 수도 있어 그런 연관은 더욱더 싫었다.
오로지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위로 받으실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풍족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을…
나는
그에게 천주교에 관하여 한마디의 말도 꺼낸 적이 없었지만 그는 지금 개신교 목사인 작은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시니 작은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그
즉시 천주교로 개종하겠다고 다짐했다.
"오! 나의 주님 감사합니다.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상처받은 이를
감싸주시는 사랑의 주님! 당신은 회개하는 이를 곧 바로 치유해 주시오니 진정 우리의 구원자이시나이다.
주님께 향하는 마음이 이리도 기쁠진대 나 현세에서 무엇을 더
바라리요. 오직 당신만이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전부이시나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의 권세가 영원히 빛나시오며,
세세 영원 무궁토록 모든 이들로부터 영광 받으시기 마땅하오니 온
세상이 당신을 찬미하오리이다.
고통이 나를 억누를지라도 당신께 향하는 내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하오니 그것은 바로 휴식이요, 안식이나이다.
필요할 때 직접 어루만지시며, 필요할 때 천사를 시켜 수술하시는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사랑이어라."
하고
주님께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벅찬 감정으로 읊고 있노라니 예수님께서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무디어진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아주는 너의 그 지극한 사랑은 바로
내 사랑과 합일된 사랑이란다.
너는 언제나 모든 영광을 나에게 돌리면서 경외심으로 가득 차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찬미의 노래로써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으니 무성한 가시덤불 속을 걸어갈지라도 내 사랑의 신발이 신겨져 있어 너의 발이 상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나에게 의지하여라. 나는 너의 빛이 될 것이고 너
또한 나의 빛이 되어 온 세상에 그 빛을 전하게 될 것이다."
양쪽
신장 모두 파열되었던 자매님이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가 되자 나는 또 가래와 기침으로 고생하는 자매님에게 다가가 그를 위한 기도를
했다.
기도
중에 그 자매님은 소리내어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대성통곡하다시피 한 울음 소리를 듣고 다른 병실에 입원해 있던 사람들이
'혹시 사람이 죽었나?' 하는 생각으로 우리 병실을 기웃거릴 정도였다.
한이
많아 가슴엔 응어리로 가득 차 있었고 상처로 뒤범벅이 된 채 마음이 병들어 있었던 그 자매님은 기도가 끝나고 나자 나에게 물었다.
"워따 워메, 젊은 아짐, 나를 어떻게 그리도 잘 아요? 워메,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껏 내
속내를 누구한테 단 한 번도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는디, 어쩜 나를 그리도 족집게처럼 잘 안당가요 이- ?"
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써 가면서 "와따, 참말로 신기하당께" 하며
마치
봄날 따스한 햇볕에, 꽁꽁 얼었던 개울물이 녹아 내리듯이
지나간 세월 속에 묻어 두었던 한 맺힌 모든 응어리들을 풀어버리고 나를 부둥켜안은 채 울고 또
울었다.
그
자매님은 기도하는 시간 내내 기침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해대던 기침도 가래도 완전히 치유되자 의사도 간호사도 놀라면서
"이
병실은 참 신기하네" 하고 의아해 하면서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지요.
당신께서는 병들어 있는 불쌍한 저희들 영혼과 육신을 주님의
사랑으로 깨고 부수고 벗기고 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도록 치유시켜 주셨사오니 오직 당신께만 마음과 정열과 시간을 바치고자
하나이다.'
"그래, 내 작은 아기야!
고맙구나. 이제 너를 기다리는 곳에 가보아라"
고
하시기에 나는 놀라 "예? 어디를요?" 하며 잠시 생각하는데
그때서야 위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했던 것이 생각나 부리나케
위
내시경 검사를 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없는 동안 그곳에서는 나를 찾느라고 난리가 났단다.
방송도 여러 번 했다는데 우리 병실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부족한 도구를 통하여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려고 하는데 내 귀에 방송이 들리게 하실 리가 없지.
그리고 한 시간 동안이나 나를 찾아 헤맸다고 하는데 주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 병실에 한
번도 들르지 않았겠는가. 내선 전화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을…
위
내시경 검사를 마친 뒤 병실로 돌아오니 그 자매님은 이미 퇴원 수속을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의「하」자도 모르고 살아왔는디 이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
것 같구먼. 참말로 고맙소.
잊지
않을 것이요. 아이고, 그러나 저러나 남의 병은 고쳐주면서 자기는 고로코롬 아프니 어쩐다요. 하루빨리 쾌차해 가지고 나가시시오 이" 하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면서 작별 인사를 하기에
"자매님!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잠시 잠깐 쓰였을 뿐이니 고마운
인사는 하느님께 하십시오.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고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헤어졌다.
나도
이틀 후에 신장이 치유된 자매와 함께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깊이 묵상해보니 내 자신뿐만이 아니라 내가 땀흘려 번 돈도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번 돈으로 입원했으나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시고 사용하지 않으셨는가.
내
생명 다 바쳐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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