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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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을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   (1983년 9월 6일)

     

매주 수요일 밤 8시면 열리는 성령 기도회에 우리 부부가 2년 6개월쯤 계속 참여할 때였다.

그 당시 36세였던 나를 주님께서는 열아홉 살 먹은 처녀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셨기에 내 나이를 알고 있는 봉사자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처녀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기에 성령 기도회에 참여한 이들은 누구든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율리아씨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어"

하며 내 외모에 보여지는 모습만을 보고 칭찬해 주었지만 사실 그 당시 나의 마음 안에는 오직 주님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에 세상 모든 사물이 다 아름답게만 보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럽게만 느껴졌었다.

심지어는 나를 모함한 이들까지도 나의 은인으로 생각될 때였으니 나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어있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장부는 직장인 농촌지도소에서 작물계장을 맡아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출장 다니며 농사일에 관여할 때라 늘 피곤했던 그를 위하여 기도회가 끝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는데도 아내인 나는 참석한 모든 이들과 함께 일일이 사랑의 인사를 나누다보면 늘 상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장부는 저녁도 못 드시고 잠을 자야 할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부가 "여보!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집에 오면 안될까?" 하여 나는 선뜻 "그래요" 하고 대답해 놓고도 막상 기도회가 끝나면 모두들 나를 붙들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그들을 그냥 뿌리치고 돌아올 수 없어 그들과 일일이 사랑의 인사를 나누다보면 본의 아니게 또 늦어지게 되니 장부는 기도회 참여하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일 기도회에 가기 위하여 장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7시가 넘어도 오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광주 가톨릭 센터까지 버스로 가려면 적어도 1시간 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도회에 늦으면 어떻게 하나?' 하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왔다.

"딸아! 무엇을 그리도 걱정하느냐.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어머 예수님! 어떻게요?"

"네가 가는 곳을 내가 인도하리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장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7시 20분쯤 장부가 들어왔다.

우리는 부지런히 서둘러 미용실을 나서면서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시려나?' 하는 생각으로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광주 택시가 내 옆에와 서면서 "혹시 광주에 가시지 않나요?"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예수님 광주 택시를 보내주셨군요' 하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 가톨릭 센터에 가는데요" 했더니 "거기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1000원씩만 내세요" 하는 것이었다.

가톨릭 센터 앞에 도착하여 내린 시간이 7시 55분이었으니 기도회 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광주 가톨릭 센터에 가기 위해서는 나주 터미널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광주터미널에 내려서 또 택시로 갈아타야 하는데 차비만 해도 도합 3,000원 정도의 돈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야 했는데 좋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시간도 맞추어 주시고 돈도 절약하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기도회가 끝나고 나서 '장부를 위하여 오늘은 빨리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여러 사람이 붙들며 기도를 부탁하였다.

"다른 봉사자님들에게 받으면 안될까요?" 했더니 절대로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나에게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탁하는 그들을 도저히 뿌리치고 갈 수가 없어 장부에게 "조금만 기다려요. 응?" 했더니 "그래" 하며 쾌히 승낙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