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무감각하게 모신 성체는 이렇게 짓밟히는가?
(1986년 7월 28일)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길을 걷는데 성체 크기 모양의 둥글고 하얀 물체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머 회장님, 저기 성체가…"
하고 말하면서 금방이라도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성체 예수님이 땅 바닥에 버려진 채 모독을 당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다급한
마음에 루비노 회장님과 함께 땅에 버려져 있는 성체 모양의 둥근 물체를 얼른 주워 들고 자세히 보았더니 다행히도 면병이나 성체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바로 막걸리 병 뚜껑 안에 붙어 있는 종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성체는 아니었지만 모령성체로 인하여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모독과
배은망덕을 배상해 드리기 위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몸을 움직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밟히는 그 종이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주우면서 기도로
봉헌했다.
어렵사리 봉일동 할아버지 집에서 1분이면 다다른 곳까지 왔는데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니 빤히 바라다 보이는 집을 향하여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음마다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가오랴…" 하고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성가를 불렀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어
나중에는 '엉엉' 울면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고통을 봉헌하였다.
시장 골목에서부터 봉일동 할아버지 집까지 5-7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으나 고통을 봉헌하면서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고 싶었던 나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를 목욕시키기 위해서는 물을 데워야 했는데 루비노 회장님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여 힘겨운
몸과 다리를 이끌고 혼자서 물을 길어다가 불을 지피고 물을 데웠다.
나는 성체 모양의 종이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불에 태우면서
"오! 주님! 주님을 합당하게 모시기 위하여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돈하기는커녕 많은 이들이 죄 중에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님을 모시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오, 주님! 이 죄녀 비록 부족하오나 모령성체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무수히 짓밟고 모독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희생하고 보속하겠사오니 위로 받으시고 찬미 찬양 받으소서" 하며 불 속에 태웠더니
향불향 내음이 진동했고 바로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 나의 사랑, 내 작은 영혼아!
매순간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과
내게 향한 사랑에 찬 열정과 희생으로 불타오르는 너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기쁨에 차 오른단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염둥이…"
"오 주님, 내 님이시여!
부족하기 만한 저, 오로지 당신의 것이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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