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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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하느님의 능력이 아니고서야 (1986년 9월 12일)

 

남은 한쪽 눈마저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믿습니다' 하면서도 붕대 풀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와 긴장감이 내게서 떠나지를 않았다.  

왜냐하면 시신경이 완전히 파괴된 눈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때문이었다.

드디어 눈의 붕대를 풀었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오 하느님, 당신께서 의사를 통하여 친히 수술을 해 주셨군요" 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깊이 감사를 드리면서 "이것은 무슨 색이에요?" 하고 물으니 정확하게

"파란색"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것은 무슨 색?" "노란 색"

"오, 나의 사랑, 나의 주님! 놀라우신 사랑이여"

하고 걷잡을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님, 비천한 이 여종의 기도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와 나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기에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엉엉'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함께 입원해 있으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던 많은 분들이

"우메 참말로 당신은 심청이 같은 효녀요. 몇째 딸이요?" 하고 물었다.

"예, 하나밖에 없는 딸이에요." "저 양반은 자식 난 보람 했네."

"시집갔오, 안 갔오?" "아이들이 넷이에요."

"우메, 그런디 그렇게 젊디 젊당가이!

요즘 세상에 시집간 딸이 아버지 눈을 뜨게 해 줄라고 밤낮 없이 그 정성을 드리는 사람이 어디 있당가! 워따 참말로 따님의 지극한 정성에 하늘도 감복해서 결국 눈을 떳소…"  

나는 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혼자 속으로 웃으면서

'그래,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모두가 한 형제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혈육인데 이들을 위하여 내 무엇을 아까워하랴' 하며 오직 능력의 예수님께 감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