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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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구겨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

 

미용실에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외출하여 이모님 댁으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김 선생님과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로 약속한 이종동생 돌날이 되어 내가 광주에 가는데도 주인은 매정하게도 돈 한 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돈을 받은 셈 치고 그가 잘 되기를 바랐다. 전에 조금 가지고 있던 돈은 파마하러 시골로 갈 때 파마 약값과 함께 일하던 애들을 위해 썼기 때문에 다시 그 미용실에 갈 때는 차비조차 없었다.

시골에 파마하러 갈 때 쓰는 약값과 차비를 내가 내면 알아서 해줄 줄 알았는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다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쉬운 소리 못하는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오랜만에 만난 김 선생님에게 차비를 빌려야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며 우리의 사이가 가까워지도록 늘 권유하셨던 분이 내가 일하는 곳으로 발령이 나서 오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나와 김 선생님의 사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남자를 오빠라고 하라며 소개해주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소개받은 그 남자는 계속해서 미용실에 찾아와 치근대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가 곁에서 치근대면 소름이 끼치는데…. 더는 그 미용실에 있을 수가 없어 주인에게 월급을 계산해 달라고 했더니 기다려달라고 하여 그 사람이 또 찾아올까 두려운 나머지 그만두기로 했다. 나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함께 일하기를 사정하던 주인은 월급뿐만 아니라 차비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빨리 포기하고 일하지 않은 셈 치고 나오는데, 주인 남자가 미안했던지 부인이 보지 않는 골목에서 구겨진 500원짜리 지폐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것마저 받지 않으려고 하다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왔다.

 

132. 작지만 처음 받아 본 돈이 없어지다

 

내가 미용실에 근무하던 그 당시에 시골에서 쓰는 파마약은 암모니아수로 만들어져 매우 독했기에 파마를 많이 하면 그 독한 약 기운으로 인해 손가락이 다 닳아서 피가 났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달리 예방할 방도가 없었다.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는 나의 손은 아물 날이 거의 없었지만 쉬는 셈 치고 봉헌하니 그래도 기쁠 수 있었다. 손님 하나라도 놓칠세라 많은 사람의 머리를 해주다 보니 아픈 손을 움켜쥐고 밤잠을 설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쳐야 했다.

고생되어도 어머니를 향한 사랑으로 인내하며 버텨왔는데 남자 때문에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7개월이나 일을 했음에도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스스로 미용실을 나온 처지가 되다니!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잠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광주에 도착하고 나서야 주인아저씨께 받은 지폐 500원짜리가 없어졌음을 알았다. ‘원 세상에! 직장생활을 한 뒤로, 작지만 처음 받아 본 돈이었는데 그것마저 잃어버리다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란 존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인가. 남자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리저리 전전해야 한다니.

 

133. 성폭행당하려고 할 때는 이렇게!

 

광주로 와서 이모님 댁에 머물렀다. 이모님 댁에는 상하 방 셋방이었는데 아이들이 넷, 이모님 부부, 거기다가 외재당숙 딸까지 8명이 함께 생활했다. 외재당숙 딸은 전대에 근무했는데 한 살이 적은 1년 후배 여동생이다. 초등학교에서도 전체 1등만 했고 최고의 명문 학교를 나왔기에 남자가 걱정되어, 혹시라도 성폭행을 당하려고 하는 순간이 생기면 오른쪽 다리만 왼쪽으로 꽈버리면 절대로 못 푼다고 가르쳐 줬다.

“언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묻기에 고흥 과역에서 나를 성폭행 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결코 당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며 물려서 여러 곳에 멍들고 맞구멍 난 다리를 보여주었다. “언니는 정말 대단해. 그렇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맞구멍 나는데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어?” “나 스스로 나를 지키기 위해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사력을 다해 온갖 힘을 총동원했지.” “와, 언니, 언니의 그 신념 놀라워. 그럴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꼭 참고할게.”

그런데 그렇게 많이 물리고도 내가 힘이 세서 당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것 또한 주님께서 지켜주심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음을 실감한다.

 

134. 나에게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고?

 

그 남자를 피해 광주 월산동에 있는 한적한 미용실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했다. 그곳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혼자 일을 하게 되었는데 주인 언니도 마음에 들어 했고, 나 또한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어 쉬는 날이면 어머니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의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펄쩍펄쩍 뛰다가 “으악!”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고데기로 손님의 머리를 데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에서 어떤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 사람이 나가서 잠시만 이야기하자고 하여 주인 언니에게 허락을 받고 나갔다. 그는 옷이며, 구두며, 가방도 사주고,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했다. 싫다고 하면 돌아올 반응이 무서워 결정을 일단 뒤로 미루자 그는 앞뒤로 돌아보라고 하면서 “윤 양은 완벽해.” 하더니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고 했다.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빽이 없으면 안 된다며 자신이 뒤를 완벽하게 봐주겠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미용학원에 다닐 때 선배 언니가 미스코리아에 나가 예선에 합격했는데 빽이 없어서 본선에서 떨어졌다고 울고불고하여 우리 학원생들이 돈을 모아 위로연을 열어준 기억이 생생했다. 나는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전혀 없었고, 더구나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었다. 내일 시간을 내서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헤어져 미용실로 돌아왔다.

그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미용실을 그만두고 그 사람이 모르는 곳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주인에게 그만둔다고 하면 붙잡을 것이 자명하기에 월급은 받지 못했지만, 그동안 일 안 한 셈 치고 주인 모르게 나가기로 결정했다. 짐이라야 초라한 가방 하나뿐이지만 옷가지를 챙겨서 짐을 꾸려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도망쳐 와버렸다.

 

135. 이럴 수가!

 

어머니를 잘 모셔보려고 무진 애를 써 봐도 생각과 의지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니 내 뜻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 내려놓고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동네 아이가 찾아와서 “누나, 밖에 누가 찾아왔으니 나와 봐.”라고 하였다. 누가 머리를 해 달라고 찾아왔으리라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남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미용실까지 나왔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그 남자는 내가 너무나 아름답고 착하여 어느 한 곳도 나무랄 데가 없다고 하며, 일본에 계신 자기 아버지께 초청장까지 보내 달라고 하여 나를 데려가겠다고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를 소개한 사람이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큰 회사 사장이고, 그는 한국에서 사장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무리 물질 만능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마음을 선뜻 부와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남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결정한 사람이 있는데 누구에게 눈을 돌리겠는가! 어떠한 보물을 주고, 재산을 다 준다 해도 그 모두가 나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돌아가 주세요. 나를 찾아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실 텐데요.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세요?” 그는 “아니야, 윤 양이 뭐라고 해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 나는 끝까지 노력해서 윤 양의 맘에 들도록 하겠어.”라고 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를 외면하다가 여러 가지 수모를 당한 일이 얼마 되지 않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던 그가, 무엇이 아쉬워 초라한 내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는가? 나는 소름이 돋아 돌아가지 않는 그를 피하여 외가댁으로 가서 숨어 버렸다.

 

136. 그 사람이 간첩의 끄나풀이라면?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조용하게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질 않은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집까지 찾아와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 사람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남자가 혹시 간첩은 아닐까?

만약에 그 사람이 간첩의 끄나풀이라면 혹시 아버지께서 6·25 때 행방불명되었던 사실을 이용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무섭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눈을 피해 먼 곳으로 가서 취직하기로 마음먹고 미용 재료상을 찾았다. 그 당시에는 미용 재료상에서 미용사 취직자리를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타 도와는 거래를 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곳에 일자리가 있는지 사정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137. 나를 쫓아다니는 남자를 피해

 

가진 돈이 없었던 나는 다른 지방에 가서 취직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실망과 실의에 차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친 발걸음을 옮기다 학교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야기했다. 대화 중 내가 먼 곳으로 가서 일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다른 지방의 여러 곳을 잘 알고 있다면서 어느 섬에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 사람을 찾아갔더니 그는 아주 친절하게 나를 또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었다. 나는 후배를 믿었기에 그들이 하자는 대로 생전 처음으로 배를 탔다. 배에 오르자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 큰방에 나 혼자라 ‘와, 뱃삯이 많이 나오겠다.’ 생각할 때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놀란 내가 나가려고 하자 그가 나를 붙들며 안으려고 했다. 나는 기절초풍하여 그를 떠밀고 도망치려고 했다. 사력을 다해 얼른 나오려고 하는데 그가 갑자기 덮칠 기세로 나를 쓰러뜨렸다. 나는 바로 다리를 꼬고 절대 풀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그를 막았다. 배를 처음 탄 터라 심한 뱃멀미로 계속 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그는 나를 끝내 어쩌지 못하고 결국은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요. 나 이제까지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 봐요. 정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그 열정, 정말로 존경합니다.” 나는 말 없이 방에서 뛰어나왔다.

 

138. “나와 정식으로 사귑시다.”

 

그 뒤 내가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배에서 만났던 훤칠하고 잘생긴 그 남자가 찾아와서 그날의 일을 정중히 사과했다.

“그날은 정말 미안했어요. 아가씨를 보는 순간 내 눈이 뒤집혔나 봐요. 순간 선택을 잘못한 거죠.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결혼하지 못한 것은 맘에 든 여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내가 원했던 사람이 내 앞에 딱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서서히 접근하려 했는데 아가씨가 선한 것 같지만 만만찮게 보인 데다가 뛰쳐나가려고 하여서 ‘우선 내 사람을 만들어 놓고 보자.’라는 짧은 생각에 그런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아가씨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런 것이니 부디 용서해 주시고 우리 새로 시작합시다. 제가 평생을 아끼며 사랑하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저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다시는 만나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옆에서 그는 잘 알려진 사업가라면서 “저렇게 좋은 사람 서로 탐내는데 왜 너는 복을 발로 차냐?” 하며 여러 가지 말들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이 설사 부족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올려다보지도 말고 내려다보지도 말며, 곁눈질도 하지 말자. 나의 약속은 영원으로 이어지리라.’ 하고 다짐했다.

 

139. 처음으로 받아 본 친절과 우정과 사랑, 그것은?

 

배에서 내리자 소개해 준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는 미용실 일을 시작하면 섬 구경하기 힘들다며 다른 아가씨와 나를 택시에 태워서 여러 곳을 이틀간이나 구경시켜 주고,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것들을 먹여주었다. 어머니랑 함께 먹지 못해 눈물이 났지만, 그 영양가는 어머니에게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기를 염원하며 먹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만 하고, 상처만 받아왔던 내가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다 있다고 생각하니 처음으로 받아 본 친절과 우정과 사랑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모든 것을 셈 치고 살아간다 해도 때로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으니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래, 사랑을 베풀어 준 만큼 나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랑과 희생을 바쳐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140. 청천 하늘에 날벼락!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 당시 공무원 월급이 만 원 정도였는데 월급은 1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 미용실에 가서 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일을 했는데도 월급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나는, 이제야 돈을 벌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미용실의 주인이 나를 째려보듯 쳐다보니 너무 무서워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나를 택시에 태워서 구경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던 분은 보이지 않았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려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미용실일 뿐만 아니라 시간이 나는 대로 가사일까지 시켰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 밤중까지 소처럼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커트하는데 하고 있는데, 내 다리를 어떤 남자가 슬쩍 만져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사정없이 쳐버렸다.

주인 언니는 그 모습만 보고 “손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되느냐?”라고 하더니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탁 때리면서 그분이 누군 줄 아느냐고 했다. 나에겐 그도 그냥 똑같은 남자일 뿐이었다. 그 사람의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거지든 부자든 똑같을 뿐이다. 아니 차라리 거지였다면 더 사랑으로 대했을 것이다.

주인 언니에게 머리를 사정없이 맞았어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지만 내 다리를 만진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돼 밖에 나가서 그 부분을 물로 씻었다. 그동안 치마만 입었던 나는 주인 언니에게 통사정하고 나가서 바지 두 개를 맞춰 입었다. 그런데 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월급을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고흥 과역에서처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언니, 집에 돈을 보내야 하는데요.”라고 했더니 바로 상스러운 욕이 나왔다. “이년아, 네가 쓴 돈이 얼마인데?” “예? 제가 쓴 돈이라니요?” “이 세상에 공것이 있다더냐?”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었는데 “너를 택시 태워서 구경시켜 주고 맛있는 것 먹여주었는데 든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그 값을 하기 위해서 너는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해야 해. 알았으면 빨리 일이나 해, 어서!” 하며 고함을 쳤다.

내가 울고 있으니 “울기는 왜 울어, 네 어미 죽었다고 울어? 너를 위해 쓴 그 돈 계산이 다 되면 월급을 줄 테니, 부지런히 일이나 해!” 하고 윽박질렀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을 과연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종이나 노예가 된 내 처지가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기엔 역부족이라 밤잠을 설치며 울고 또 울었다.

그 뒤로, 주인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구타까지 했다. 이제는 노예가 되어 두들겨 맞아 가면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나의 운명이려니 여기면서도 사랑받은 셈 치기에는 삶이 너무나 가혹했다. 그러나 하늘 아래 단 한 분,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모든 시련과 고난을 잘 극복해야지.’ 하면서 밤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남몰래 닦아야 했다.

과연 내가 머물 곳이 이 세상 어디이며, 내가 쉴 곳은 어디인가? 또 내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곧 설움과 고달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며 굳게 다짐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 불효녀를 걱정하시느라 잠 설치는 일 없이 건강하셔야 해요. 꼭 성공해서 어머니께 효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