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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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나에게 치근덕거리는 남자에게 물을 부어 버리니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나를 마음에 두고 있던 한 청년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듣는 척도 않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만 열중했다. 일을 마치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일도 끝났으니 차 한 잔 마시러 갑시다.” 해서, 나는 “청소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 주세요.”라고 했더니 “내가 청소해 줄게요.” 하고 빗자루를 뺏으며 나의 손을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즉시 옆에 있는 조로를 들어 그 사람 머리에 담겨있던 물을 부어 버리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모두가 다 놀랐다. “아니, 그 사람이 누군데 어쩌려고 그렇게 겁도 없이 그래?”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주인 언니는 나를 또 구타하기 시작했다.

 

142. 어린 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듯

 

몇 달이 지나도 주인은 월급을 줄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달 월급이 10만 원이라면 1년 안에 집도 한 채 살 수 있다고 기뻐했던 몇 달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볼 때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주인에게 집에 가겠다고 했으나 가지 말라고 붙들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있을 수가 없어 ‘이제는 내가 나간다고 하여도 이 집에 손해는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말없이 빠져나와 버스를 탔다.

얼마쯤 갔을까? 택시 한 대가 버스를 앞질렀다. 그때 내가 탔던 버스도 멈추었는데, 버스 문이 열리자 표독스러운 주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어느새 버스 안으로 올라와 나의 머리채를 잡고 차 바닥에 눕혀 짓밟고 때렸다. 옆에서 “왜 이렇게 사람을 잔인하게 짐승 취급하는 거요?” 하고 항의하자, 주인 언니는 “야 이 자식아, 모르면 가만있어. 이년은 도둑년이야!”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나는 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짓밟히며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 어느 사이 택시에서 장정 세 사람이 각목을 들고 내리더니 주인과 합세하여 사정없이 각목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러고 나서 나의 온몸을 다 뒤졌지만, 팁 받은 돈으로 버스비를 마련한 내 몸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나는 흐르는 피와 피멍으로 범벅된 몸으로 어린 양이 도살장에 끌려가듯 끌려가 꼼짝도 하기 힘든 몸으로 사랑받은 셈 치고 다시 일하게 되었다.

주인은 나를 잡기 위해 타고 왔던 택시 요금뿐만 아니라, 나 때문에 일을 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인건비와 장정 세 사람의 타고 온 택시비와 일당까지도 계산하여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벗어나지 못하게 올가미를 씌웠다. 이제 나의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멍이 들어,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흘리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를 악물고 얼른 돈을 벌어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143. 탈출구를 찾다

 

연약하고 착한 사람은 악한 사람에게 이용당한다는데 내가 그랬다. 원래 나는 내성적이고,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라고 해도 쑥스러워서 그냥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기에 늘 야단을 맞았다. 그래도 손님들은 “그러지 마, 윤 양은 눈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매력이야. 그것이 우리의 심란한 마음까지도 얼마나 편하게 해주는데 그래?”라고 했다.

주인 언니는 남들 보는 데서는 나에게 너무 잘 대해 주었지만, 둘만 있으면 늘 힘들게 했다. 또 온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너무 지쳐 밤이 되어도 편지 한 장 쓸 수도 없이 곧바로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어느 날 일을 하고 있는데, 안에서 “전라도 년들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손질을 받고 있던 손님이 주인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또 전라도 사람들 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손님은 주인의 말을 듣고 물었다. “윤 양, 혹시 고향이 전라도야?” “예.” “주인은 고향이 어딘데?” “모르겠어요.” 손님은 이번엔 주인에게 고향이 어디냐 묻자 주인은 경상도라고 대답하였다. 손님은 나에게 눈짓하며 왜 저러느냐 물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너무 순진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손님은 주인에게 아주 공손하게 “윤양이 저렇게 착하고 일도 잘하는데 전라도와 무슨 상관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하고 말하자 주인은 필요 이상으로 무섭게 화를 냈다.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주인이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해?” 하며 손님의 머리채를 잡으니, 손님도 뒤질세라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손님은 내 편을 들어 “전라도 년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냐? 경상도 사람은 사람이고, 전라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어서 그렇게 월급도 주지 않고 소처럼 부려먹었냐? 이 경상도 년아!”라고 했다. 그들은 입에 담지 못할 여러 가지 욕설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싸웠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고향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한 민족이 서로 사랑하며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지역감정을 내세워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죄목으로 왜 사사건건 당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내가 당해왔던 것은 주인이 전라도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너무 아파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나중에 손님이 경찰을 불러오겠다고 소리치자 주인은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사정을 하였고, 결국 뭐라고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손님은 내 손에 돈을 조금 쥐여주며 “윤 양아! 이 불쌍한 것, 빨리 집에 가거라.” 하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내 물건도 다 그대로 둔 채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144. 다른 고장의 미용실에 취직하다

실상 내 물건을 가져와도 되는데 그 집을 탈출하려고만 생각했었기에 몸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탈출하도록 도와준 그 손님이 뒤쫓아와서 혹시 다른 곳에 취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돈 한 푼 없이 집에 가기도 그렇고 그분도 믿음직하여 한번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그분이 소개해 준 곳으로 가기로 했다.

행여나 전 주인이 찾아와 행패를 부릴까 싶어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시골로 갔다. 그곳에서도 대환영이었다. 며칠간 겪어 보더니 주인 언니는 모든 것을 나에게 온전히 맡겼다. 너무너무 좋은 미용사가 들어왔다고 맛있는 반찬도 해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어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전 미용실과 이곳 미용실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다가 마음씨 착하고 예쁘고 머리까지 잘하는 미용사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삽시간에 손님이 많아졌다.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열심히 일하다 보니 손님들이 계속 밀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손님들은 스스로 기다려 주었고 또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자기 집처럼 편하게 서로서로 도와주기까지 해서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했다.

 

145. 레슬링 선수 김일 같은 사람을 만나다

 

하루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와서 나를 이 미용실에 소개해주신 분이 다른 미용실에서 기다린다고 하여 ‘왜 이곳으로 오시지 않고? 무슨 일이지?’ 하면서 일손을 멈추고 달려갔다. 그 좋으신 분이 나를 찾는다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곳에 다다르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어서 방으로 들어가 봐”라고 했다. 나는 그분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얼른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속으로 ‘왜 문을 잠글까?’ 하고 궁금히 여기며 얼굴을 돌리자마자 레슬링 선수 김일 비슷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 무방비 상태에 있던 나를 바로 바닥에 쓰러뜨려 위로 올라오더니 자신의 입술을 감히 내 입술에 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바로 그 입술을 맞구멍이 날 정도로 사정없이 물어버리니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나는 즉시 나오려고 하니 밖에서 문이 잠겨 열리지 않는 문을 발로 사정없이 걷어차니 문짝이 떨어져 나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구경하러 모여 있던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놀라서 보고 있는데 나는 그들 속을 유유히 걸어 나왔다. 알고 보니 이제까지는 나처럼 잘하는 미용사가 없어 서로가 먹고살 수 있었는데 내가 와서 손님이 우리 쪽으로 몰리자 그 미용실에서 짜고 나를 우세시켜 스스로 도망가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용감한 그 모습에 그 집 미용실 주인도 기절초풍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론 아무도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그 소문 때문에 오히려 나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 많아져 나이 많은 남자나 어린 남자나 남자들의 성화가 극에 달했다. 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죄를 짓는다 생각하니 셈 치고 살기에도 힘들어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선물을 가지고 왔고 돼지를 잡아 잔치까지 베풀어 주었다. 주인 언니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아까워서 못 준다는 음식까지 나에게 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146. 고향으로 돌아오다

 

6개월 만에 암흑에서 해방되어 그리운 집으로 돌아오긴 왔는데 세상이 무서워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에게 있었던 그간의 모든 일을 장래를 약속한 그 사람에게 다 털어놓으니, 그 사람은 안쓰러워하며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곧,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곗돈도 넣어야 하고 결혼 자금도 모아야 하니 집에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돈을 벌기 위해 무섭고 두려운 세상으로 다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과연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메인고!

 

147. 너무 힘들어 위로받고자 찾아갔더니

 

사람이 무섭고 마음이 답답하여 나주시 금천면장 집에서 하숙하던 (하숙집은 아닌데 면장님이 김 선생님을 아주 좋아하여 의형제를 맺고 데리고 있었음) 김 선생님과 의논해보고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집 아이들이 달려와 “삼촌, 누가 찾아왔어.”라고 했다. 김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나가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큰일이 있나?’ 하고 걱정되어 아이들에게 물어보려고 노크를 하고 안방 문을 열었더니 어느 여고생과 단둘이 다정스럽게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했지만 태연한 척 무슨 급한 일이 있냐고 물으니 아무렇지 않게 “그냥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라고 하였다. 나는 “그럼 말씀 나누세요. 저는 갈게요.” 하고 하숙집을 나오는데 사랑받은 셈 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무시당한 것 같은 내 뒷모습이 얼마나 초라했던지 가슴이 저렸다.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찾아갔는데 대화 중에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나가 다른 방에서 젊은 여자와 단둘이 오랜 시간을 보내니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급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면서 애써 사랑받은 셈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김 선생님은 광주에 있던 나를 찾아와 그때 미안했다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하숙집으로 찾아오라.”라고 했다. 얼마 뒤,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 금천 하숙집에 들어가는데 안방에서 금천면장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복아, 너 제발 양다리 걸치지 말고 결혼할 사람만 확실하게 만나라. 윤양이냐? ○○이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왜냐면 전에 김 선생님은 내게 청혼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부자가 아니어서 호강은 못 시켜주지만, 여자 문제로는 절대로 신경 쓰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언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에서 다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확실했다. 나는 그 길로 바로 그 집을 뛰쳐나왔다.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아이들이 “고모! 고모!” 하고 뒤따라오고 금천면장도 “윤 양! 윤 양!” 하고 계속 부르며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따라왔다. 나는 아무 버스든 빨리 오는 차를 타려고 했는데 광주 차가 먼저 와서 광주로 왔다. ‘이제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하면서 김 선생님을 완전히 잊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늘 엄청나게 당하기만 해서 사람이 무서웠으나 언제나 사랑받은 셈 쳤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다 김 선생님을 만나 내가 정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 좋은 집안의 좋은 혼처들과 나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 뒤로하고 일편단심으로 마음을 다졌는데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이모님 댁에 있는데 김 선생님이 찾아왔다.

나는 이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모님도 “잘 생각했다.”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도 사귀지도 않으리라.’ 하고 굳게 마음먹고 작은방 방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대화를 계속 나누던 이모님이 한 번만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사정을 하셨다. ‘그래, 안 맞는 인연은 빨리 끝내야 하니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가서 당당하게 말하자.’ 하고 나갔다.

내가 “이제 우리 만나지 말아요. 더 이상은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 주세요.” 하고 들어가려는데 “내 이야기 조금만 들어줘.”라고 했다. “아니요, 듣지 않겠어요. 그동안 제가 모든 남자를 필사적으로 피해오다 김 선생님을 만나 믿을 수 있는 단 한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다 믿었지만, 이제는 제가 싫어요.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고 이제 제 앞에 나타나지도 말아 주세요.”“한 번만 만나 줘. 소원이야. 한 번만 말할 기회를 주라고, 응?” 옆에서 이모님이 “그래, 같이 나갔다 오너라.” 하고 등을 떠밀어 단호하게 끊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선아! 오해야.” “무슨 오해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제가 원래 남자가 싫었는데 이제 김 선생님도 다른 남자들과 똑같아 보여 싫어졌다고요.” “선아! 나는 너밖에 없어. 네가 내 곁에 없으면 나는 아마 폐인이 될 거야. 정말이야. 믿어줘.”

이야기하면서 걸어간 곳은 사직공원이었다. 우리의 발길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한 청춘 남녀가 점치는 어떤 아저씨한테 무엇인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30cm 대나무 자로 그들의 뺨을 확확 때리더니 우리를 오라고 하기에 망설이다가 가봤다.

그는 우리에게 뭘 잡으라고 해서 잡았더니 “당신들은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고, 헤어지려고 해도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천생연분이다!”라고 했다. 김 선생님은 천생연분이라는 그 사람의 말에 화색이 돌면서 내게 “거봐, 제발 믿어줘.” 하고 사정사정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두고 보겠다.” 하고 헤어졌다.

 

148. 에피소드 하나

 

우리 동네에도 김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가씨들이 넷이나 되었다. 그들이 하루는 밤에 김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가기 싫었지만 내가 안 가면 김 선생님이 많이 서운해할까 봐 따라나섰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서 보니 어느 아가씨와 단둘이 있었다. 함께 간 이들이 가져간 음식으로 술상을 차려 같이 먹었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김 선생님은 그 아가씨를 소개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김 선생님의 여자관계에 대해 수많은 말을 들어왔지만, 대부분이 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이 지어냈던 말들이 많았다. 특히 그날 같이 간 아가씨 중 하나도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유언비어를 퍼트렸기에 그런 소문들을 더더욱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모습을 직접 보게 되어 나는 그 자리를 피해 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곁에 앉은 유언비어 퍼트렸던 그녀가 귓속말로 “봐라. 내가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했지?”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술 한 잔을 마시라고 건넸다. 어렸을 때 막걸리를 거르다 쓰러질 정도로 술은 냄새조차 못 맡았는데 김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나도 모르게 한 모금 받아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술에 취해 울기 시작했다. 온갖 슬픔이 다 몰려와 이제는 정말로 누구도 믿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김 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집에 찾아왔다. 말도 섞기 싫어서 도망쳤다.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와 광주로 갔더니 광주까지 찾아왔다. 무엇 때문에 피하느냐 물어도 침묵으로만 일관하자 답답해하면서 “난 무엇 때문에 나를 피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여 “밤에도 함께할 수 있는 여자가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

“밤에 여자와 함께했다고? 언제?” “그날 밤.” “아, 알았다. 내 여동생?” “예? 근데 왜 소개 안 해 줬어요?” “안 물어봤잖아. 춘○이가 말했다고 해서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의 소동은 여동생이 찾아온 것을 기회로 그 아가씨가 꾸민 공작이었다. 집이 부자였던 그녀는 김 선생님을 차지하고 싶어 나에게 늘 김 선생님을 여러 가지로 모함했지만 내가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런 방법까지 쓴 것이다.

 

149. 예술이라 생각하면서 수출품 일을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해야 했기에 광주로 가서 수출품 일을 했다. 이미 고향에서 해 본 일이라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일본 멋쟁이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 수출했는데 일이 얼마나 고된지 모두들 조금만 해도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사장은 직원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윤양 좀 봐라. 저렇게 빨리하면서도 예쁘게 많이 하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거냐?” 하며 타박만 하니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나는 그 일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니 너무 보람되고 좋아서 계속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아무리 일을 해도 품삯을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 사장도 나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돈을 주면 나갈까 봐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 품삯을 목돈으로 만들어 한꺼번에 많이 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돈을 받은 셈 치고’ 그동안의 수고들을 가슴에 묻고 말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어디서든 늘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언제나 빈손이었다. 우리 어머니께 돈을 가져다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지만, 그 대신 마음을 다해 어머니께서 건강하시기를 기원하였다.

 

150. 수예점에서도 일을 했지만

 

나는 이제 수예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눈과 귀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눈이 잘 안 보여 수를 놓기도 힘들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도 건강하던 나인데 일하는 첫날부터 육신의 고통이 찾아오다니….’ 함께 일하는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그러니 이상했다. 중학교 때도 수예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들거나 꾸미는 것은 늘 1등을 차지했기에 자신 있게 수예점에 들어갔는데 일하자마자 온몸이 아파서 녹초가 되니 암담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 수예점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여러 곳에 납품하는데 나를 출장 보내 설명을 해주고 가르치라고 하여 더 힘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놓는 건 아파도 견디며 건강한 셈 치고 하면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출장을 가서 남자 선생들도 만나야 하는데 그들이 또 지나친 관심을 보여 치근덕거리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나? 더 이상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눈치를 채고 조심스레 “윤 양아, 수예는 네 적성에 맞지 않나 보다. 네 진짜 기술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다. 나는 “네, 잘 알겠습니다.” 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예점을 나왔는데 수예점에서 나오는 그 즉시 잘 안 보이던 눈도 잘 보이고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디를 가든지 주인들이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스스로 놓아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또한 미용을 통한 생활의 기도로 나를 이끌어, 악습과 미움과 시기 질투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건져주시고자 하신 주님의 개입하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