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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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천주교회는 괜찮아

 

안집 주인 할머니는 아이들이 스무 명이어도 좋으니 교회만 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세를 주셨는데 나는 이미 성당에 나갈 마음을 먹은 상태였지만, 없는 살림에 아이들이 많아 어렵게 구한 집이었기에 그 집에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안집 모르게 성당에 다녔는데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안집 할머니의 자녀가 7남매였는데 셋째 아들은 성당 가까운 곳에 살았고, 다섯째 아들은 성당을 거쳐서 학교에 다녔으며, 막내딸은 성당 근처에서 자주 마주쳤다. 성당을 나오다가 그들을 보게 되면 숨어서 그들이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왔다. 어떨 때는 골목에 숨어 세 시간을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그들을 마주칠 때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마나 콩닥거리던지….

내가 불편한 것은 괜찮으나 이렇게 주인집 모르게 숨어서 성당 다니는 것이 주인 할머니를 속이는 것으로 생각해 양심에 가책이 들었기에 너무 힘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날 안집의 형제들이 모인 곳에서 왜 교회를 싫어하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셋째 아들이 가장 큰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교회의 ‘교’ 자도 듣기 싫다고 하여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천층만층인데 똑같을 수 없잖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도 많은데 ○○이 아빠가 아시는 그분이 별난 사람이었던가 봐요.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더 나빴을 텐데,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더 잘살아 보려고 노력은했을 거예요.”

“그런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 너무 핑계나 대고 합리화시키고, 나쁜 짓 하고도 하느님과 직접 통한다고 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자기들의 잘못을 빌기만 하면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니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요? 그래서 나는 그들이 차라리 개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어 개 이름을 예수라 부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개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요?” “이 아줌마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네. 내가 아는 그들이 개만도 못해서 그런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잖아요.”

“아이참, 아줌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아줌마도 예수쟁이요? 지금 당장 교회 가서 아무나 한사람 끌고 나오면, 그 사람이 바로 도둑이고 강도라니까요.” 나는 ‘큰일 났구나.’ 생각했다. 성당 다니는 것을 숨기면서 다니기가 어려울뿐더러 양심이 허락지 않아 ‘말씀드릴까?’ 하고 생각했는데, 분노에 가득 찬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성당에 다닌다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개를 부를 때마다 “예수야! 예수야!”라고 하는 소리가 너무나 귀에 거슬리고 개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예수님을 모욕하는 거 같아 가슴이 아팠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혀 몰라서 “예수야!”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이 표양을 보이지 못하고 예수님을 앞세우거나 예수님을 팔아 사업을 한다면, 그 사람의 잘못된 행위 때문에 그 모습을 본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그들은 하느님과 가까워지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저러나 성당은 모르게 다닐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안집 할머니가 쉬는 날이었는지 채소밭에서 일하고 계시기에 그 틈을 타서 함께 일해 드리다가 “저어….” 하고 할머니 눈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시다가 “무슨 말인데 그래? 편하게 말해 봐.”라고 하셨다. 나는 ‘때는 이때다.’ 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는데 용서 청하려고요.”

“새댁이 무엇을 잘못한당가? 세상 모든 사람이 새댁만 같으면 법이 없어도 살지.”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부족한데요.” “아니야, 나는 내 며느리에게 옆방 새댁만 닮으라고 맨날 말하는데 그래.” “그러면 제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쫓아내지 않으시겠네요.” “그럼 자네를 쫓아낼 이유가 없지.”

이 말을 듣고 나는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어 “저 성당에 나가고 있어요, 말씀 못 드리고 다녀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아, 아니야. 새댁이 다니는 성당은 괜찮아, 괜찮아. 새댁은 착하고 선한 사람임을 다 알고 있으니 마음 편히 다니게. 새댁 믿어.”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이제까지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이 날아갈 듯했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살아왔던가. 어려서부터 ‘거짓말도 못 하는 바보’,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한데, 꽉 막힌 아이’ 등등의 말을 들을 정도로 거짓말을 잘못하던 내가 시집와서 시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 때의 쓰린 마음은 평생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어렵게 얻은 집에서 쫓겨날까 봐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그동안 숨어다니느라 얼마나 마음 졸이며 다녔는데, 이제야 마음 놓고 성당에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주님, 감사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시는 주님께서 이런 일도 다 해결해 주시는군요!’

 

372. 차압을 붙이겠다고 온 사람들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부모님께서 보증 서주셨던 빚쟁이들이 시어머님이 나주 큰아들 집으로 가셨다는 말을 듣고 안집까지 찾아왔다가, 안 계시니 결국은 미용실까지 들이닥쳤다. 미용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갖은 욕설과 협박까지 해가면서 엄포를 놓는 것이 아닌가. 나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약혼식 때도 돈 없는 친정 쪽에서 모든 비용을 다 지불했고, 결혼식 때 신부 측 하객들의 축의금까지도 모두 신랑 측에 접수하도록 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난 후에는 시어머니께서 결혼 빚을 갚아 달라고 하여 결혼 전에 했던 미용실을 팔아 결혼 빚 갚아드렸고, 나머지 3만 원으로 문간채 단칸방 전세로 살다가 또 돈을 해달라고 하시기에 주인집에 사정해서 7천 원 사글세로 돌려서 살았었다. 그동안 금 열다섯 돈 다 팔아서 시부모님과 시동생들을 위하여 써주었고, 병들어가면서까지 용돈을 다 해 드렸다.

시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암이란 병이 커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았고, 결국은 온갖 합병증까지 다 걸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내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나 겨우 빚을 내 미용실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주 큰아들 집에 간다고 하셔서 그 많은 빚쟁이들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미용실에까지 몰려와 “장남이니 너희가 빚을 갚아야 한다.”, “언제까지 갚겠느냐?”라고 하면서 차압까지 붙이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시댁의 도움이라고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곤 했는데,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날 번 돈을 몽땅 털어주며 사정을 하여 그들을 돌려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 집에 오시겠다고 하셨다는 시어머님은 보이지 않고 퇴근한 남편만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노라니 남편이 너무나 측은해 보였다.

“형제가 많다 하여도 외롭기 그지없는 당신!”이라고 하며 나는 남편을 보고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갑자기 웬일이냐고 물었지만, 남편이 속상해하지 않도록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내가 갑자기 지난 일이 생각나서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쏟아져 당신께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었네요, 미안해요.”라고 했더니 남편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373. 시어머님 팔이 부러지는 사고로

 

1980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죽음에서 살아나고 미용실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미용실에서 손님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데 광주 시어머님이 다락방 계단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바로 광주로 가서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팔목의 뼈가 두 개나 부러진 데다 그 주위 뼈도 다 부서졌다는 것이다. 또, 뼈가 부러지면서 인대와 신경, 실핏줄을 건드려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 날은 미용실이 바쁠 뿐만 아니라 예약 손님도 많아 미용실을 비울 수 없었기에 광주에 살면서 살림만 하는 동서들과 형제들에게 그날 하루만이라도 시어머니 병간호를 부탁했다. 하지만 다 바쁘다고 외면했다. 나는 이것을 기쁜 맘으로 사랑 실천하며 기도하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도와준 셈 치고, 또 미용실에 나가서 돈을 번 셈 치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매일 밤을 지새우면서 대소변 다 받아내고 기쁘게 수발을 했다.시어머니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고 항상 웃으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본 옆의 환자가 “나도 저런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며느리들은 수발은커녕 병문안 와보지도 않고 다 도망가!”라고 하기에 “저는 며느리인데요.”라고 했더니 “뭐시라고라. 뭔 며느리가 딸보다도 더 간호를 잘 한당가? 세상에 저런 며느리가 또 어디 있다요?”라고 하자 시어머니는 “예, 즈그 시동기간에도 우애하고, 우리 친정어머니한테도 아주 잘 했어요.”라고 하셨다.

그분은 “우메, 당신은 복 받아 부렀소. 나는 자식이 많아도 복이 없어 다리가 부러졌어도 아무도 안 와보요. 이럴 땐 딸이 최곤디.”라고 하며 울먹였다. 그 얘기를 듣고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병원에서 지내시는 할머니가 너무 측은해 그 뒤로 나는 그 할머니까지 돌봐드렸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시어머니는 2주 만에 퇴원하셨는데 수술비만 150만 원이었고, 입원비까지 170만 원이나 나왔기에 내가 깜짝 놀라자 병원 직원은 “뼈가 부러지면서 신경과 인대도 다 손상돼 힘든 수술이었답니다. 그래도 의료보험이 적용돼서 그 정도예요.”라고 했다. 그 당시 미용실이 아주 잘 됐지만, 시어머님의 막대한 빚을 내가 대신 다 갚아주느라 돈이 없었다.

나는 고심하다가 다들 우리 집 형편보다 훨씬 나은 살림을 살고 있었기에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른 형제들에게 어렵게 병원비 얘기를 해보았으나 다들 외면했다. 나는 그들이 함께 도와준 셈 치고 이모님께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해 병원비를 계산했다. 그들은 비록 시어머님 병간호도, 병원비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섭섭하지 않았다.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셈 치고 기쁘게 봉헌했기 때문이다.

 

큰이모님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1971년,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는 급하게 돈을 해달라고 나를 수시로 찾아오셨는데 큰이모님께 부탁하면 그때마다 잘 도와주셨다. 그래서 한번은 이모님께 어떻게 그런 큰돈을 잘 빌릴 수 있었느냐 물어봤더니 “그러게 말이야. 그때 내가 돈 많은 사람들하고 친했다만 그렇다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 누가 돈을 늘 수중에 가지고 있었겠냐? 그런데 희한하게도 네가 돈을 부탁할 때마다 그들에게 돈이 있었던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부탁했었는데 매번 그랬어.”라고 하셨다. 이 또한 주님께서 주관하셨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374.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1980년도에 살림을 하며 미용실에 출퇴근하기가 힘이 들어 살림집이 딸린 새 건물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셨던 미용실)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장부가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무엇 때문인지 말을 하지 않아, 평상시 장부를 잘 따르던 고향 후배이자 직장 후배인 동생에게 알아보니 빚보증 관계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시작은집 사촌 시누이가 율리오 씨에게 찾아와 “오빠! 보증 좀 서줘. 공무원만이 보증을 설 수 있으니까 언니(교사)가 하나 서고, 오빠가 하나 서면 되니 오빠는 도장만 찍어주면 돼.”라고 하여 아무 의심 없이 도장을 찍어주었는데, 그 사촌 여동생이 대출 원리금과 이자를 갚지 않자 남편 월급에 차압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군수님은 “그것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겠거든 사표 내!” 하고 야단하시니 창피하기도 했지만, 갚을 돈도 없어 암담한 상태에서 내게는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언니도 보증 선다.”라고 했던 말도 거짓말이었고, 대출받은 후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제대로 갚지 않아 얼마 전에도 몇 달 치 이자를 내가 내주었는데, 이제는 돈 갚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우리와 같이 연대보증을 서게 한 그의 친구는 공무원도 아니었고, 미리 계획적으로 빼돌려 숨겨버렸기 때문에 꼼짝없이 우리가 그 돈을 모두 갚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 월급에 붙은 차압을 떼기 위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어렵게 돈을 빌려 원금에 이자가 불어 200여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갚아야만 했다.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빚을 얻어 미용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사촌 동생의 빚을 갚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또다시 빚을 내어 사촌 시누이의 빚까지 갚아주게 되었으니…. 하지만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내가 그 큰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헤매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돌아와, 간신히 손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사촌 큰 시누이였다. “언니!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보증 서줬어요?” 또 “보증만 서주지 않았으면 동생이 망하지 않았을 것 아니에요.” 등등 오히려 내게 화를 내며 터무니없는 말들로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 이야기를 해대니, 기다리던 손님들이 빨리 나오라고 야단이었다.

또, 얼마 후에는 보증 서달라고 한 그 시누이가 직접 전화해서 “나 오빠에게 그 돈 안 줘도 돼, 오빠를 우리 집에서 먹여줄 때도 있었으니까. 큰어머니랑 오빠,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해!”라고 해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게 그따위예요?”라고 묻자 “큰어머니에게 물어봐요, 우리도 다 그럴만하니까 그러지.”라고 하질 않는가. 그런데 시작은어머니까지도 “왜 보증 서주었어? 누구 망하게 하려고 보증 서줬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큰아버지 아들이 작은아버지 집에 좀 있었다고 그렇게 할 수 있다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촌 여동생에게 보증을 서준 사실조차 모르는 내가 대신 돈을 갚아주었으면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할망정, 오히려 그 집안사람들끼리 번갈아 가면서 몇 시간씩 퍼부어대는 욕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 그렇구나, 주님께서 나를 많이도 사랑하시니 계속해서 사랑으로 시련을 허락하셨구나.’라고 생각하고 ‘하느님! 그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이 뉘우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추석이 되어 시댁 형제들과 함께 고향인 시골에 내려가 성묘를 드리고 조모님을 뵙고 돌아오려고 할 때, 시작은집에 들르기를 싫어하는 동서들에게 “그러면 되겠는가, 그래도 윗분에게 인사하고 가야지.”라고 했더니 모두가 그러자고 하여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런데 시작은어머니는 나를 본 체도 안 하셨고, 우리가 돌아올 때쯤 판사인 다섯째 시동생에게는 가장 큰 마늘 한 접을 주고, 다른 동서들에게는 작은 마늘 한 접씩 주더니, 나에게 주는 것은 눈 흘김뿐이었다. 들르기 싫어하는 시동생들을 타일러 데리고 간 건 나였지만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을 사랑하니 인간의 모든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심’이라고 생각하며 사랑받은 셈 쳤다.

선물 대신 받은 눈 흘김은 바로 인간적인 사랑을 철저하게 멀리하라는 주님께서 주신 큰 사랑이었음이리라.

 

375. 가장 비참했던 순간

 

추석이 내일모레였다. 판사가 된 다섯째 시동생이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배 한 상자를 가지고 와서 주고 광주 시댁으로 갔다. 남편이 퇴근하고 함께 먹으려고 상자를 열어보니 한 개가 비어있었다. 나는 ‘오다가 목말라서 한 개를 빼서 먹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하나를 꺼내 깎으려고 하니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깎아지지도 않았다. 너무 이상해 맛을 봤더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짐승도 먹지 않을 이런 배를 우리더러 먹으라고 가져오다니!’ 되받으려고 가르친 것이 아니기에 선물을 안 줘도 섭섭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들 가르치고 뒷바라지하느라고 못 먹고 못 입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과일 하나도 사 먹이지 못하고 늘 상한 과일을 싸게 주고 사서 썩은 데 도려내면서 좋은 과일 먹인 셈 치고 좋은 과일보다도 더 영양가 있게 바꿔주셔서 애들 먹여주시라고 하느님께 간구하면서 먹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시동생 가르치기위해 죽다가 살아났고 몇 번의 죽음의 경지를 지나왔던가.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이나 먹어도 되는 것처럼 판사 되어 처음 받아본 선물이 먹지 못할 배라니 너무 비참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시동생을 가르치기 위해 때론 돈이 없어 아이들까지 굶길 정도로, 먹은 셈 치고 주린 배 움켜쥐고 굶주리며 헐벗고 살면서 병들어 죽어가면서까지 서울로 보내 가르쳤다.이 선물은 내 생애에 가장 비참하고 슬픈 일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해도, 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의 큰 형님과 우리 아이들을 거지 취급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좋은 과일 사 온 셈 치고 봉헌하면서 버려야했다.

 

376. 철야 기도회에서 있었던 일

 

퇴근 후, 집에 들어온 장부 율리오 씨와 나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용실은 종업원들에게 맡기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주님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라,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가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 정도로 환희에 차 있었다. 우리가 철야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은 광주 무등산에 있는 소화자매원인데, 말만 듣고 어디가 어딘 줄도 모르고 불빛을 따라 찾아가니 홀몬 기도원이라는 개신교 기도원이 나왔다.

소화자매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캄캄한 밤, 비 오는 산길을 헤매었다. 어디에선가 성가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기에 희망을 갖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찾아가 보니 소화자매원이었다. 기도회 1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홀몬 기도원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비록 옷이 다 젖었고, 빗길에 미끄러져 발은 흙범벅이 되었어도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앞에서 봉사자 대표이신 이 바오로 회장님께서 “오늘 치유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특별히 강하게 받으실 분이 여기와 계십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오.” 하시자마자 나는 그 사람이 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장부에게 “어머, 율리오 씨, 나인가 봐!” 하니까 장부도 역시 “정말 그런가 봐, 당신인 것 같아!”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에게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런 기도회에 처음 참석한 나는,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 떨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여도 전혀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열심히 기도하는 그들이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눈물도 많고,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던 나인데 마치 무감각한 사람처럼 전혀 눈물도 나오지 않고, 어떤 감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들 잘 울지?’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모두가 밖에 나가 팀을 짜서 팀 대화를 나누고 들어오는데, 이 바오로 회장님께서 나에게 “아무 이상이 없어요?”라고 하시자 나는 너무 안타까워 “예, 회장님, 아무 이상도 없어요.”라고 하였다.

기도회는 계속되었는데, 어느 봉사자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자매님, 무슨 기도가 필요하세요?” 하고 묻자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아니, 어디 아픈 곳 없어요? 아픈 곳 있으면 기도해 드릴게요.”라고 하였다. 나는 “아니에요, 지금 저에게는 육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불리운 자들에게 육은 무익하지요.”라고 했더니 봉사자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대로 떠나갔다.

 

377.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십시오

 

새벽 세 시쯤 나는 ‘주님, 저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때 너무나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왔던 여러 가지 고통들, 즉 잘못도 없이 두들겨 맞은 일들, 소처럼 일하고도 보수를 받아보지 못한 일들, 남자들이 따라다니다가 응해주지 않자 그들 스스로가 절망하여 타락된 일 등이었다.

평소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상처받은 나의 과거가 스크린이 되어,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연속 상영이 되어 모두 비추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죄인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이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살아왔고, 어려서도 늘 거지들에게 먹이느라 굶어왔던 내가, 성장해서도 배가 고프면 내 허리끈을 졸라맬망정 거지에게 밥 먹여주고 나는 진수성찬에 배불리 밥 먹은 셈 치고 수없이 굶어왔으며 몇 벌 없는 옷마저 다 내어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소처럼 일하고 품삯을 받지 못해도 원망하지 않았던 나의 삶, 돈을 주지 않기 위하여 나를 모함하고 모질게 때리고 짓밟아도 나의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셈 치며 살아왔던 나의 과거가 내가 착해서 잘 살아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지켜주신 것임을 통렬히 깨달은 순간 눈물이 터졌다. 내가 있었기에 그들이 잘못하게 되었으며 죄를 짓게 된 것에 대하여 가슴을 치며 울었다.

내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죄를 지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내가 그들 곁에 있었다는 그 사실이 바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내가 가만히 서 있었을지라도 돌멩이가 굴러와 내 발을 다쳤다면 어찌 그 돌멩이 탓을 하겠는가. 내가 거기에 서 있지 않았다면 다치지 않았을 것을. “많은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이용하는데, 윤 양이 워낙 착하니까 이용당한 거야.”라고 하던 사람들의 말에 수긍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으며 ‘천사 같은’, ‘선녀 같은’ 이러한 말들이 귓전을 스치자 몸 둘 바를 몰라 주님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나의 귀뺨을 때려 고막이 나가 귀를 먹게 했던 작은외숙, 일류 기술자인 나를 소처럼 부려먹고도 한 푼의 월급도 주지 않았던 미용실 주인 언니, 내가 받아들여 주지 않으니 “내가 너 같은 것한테 넉아웃, 케이오(KO) 당하다니….”라고 하면서 “나는 너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되겠어.”라고까지 하며 온갖 유언비어와 행패로 괴롭혔던 사람, 결혼하기 위해서 요꼬 학원을 그만두고 나올 때 학원에 투자한 돈과 계속해서 번 돈을 주지 않기 위하여 나를 모함하여 남편이 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두들겨 패고, 꼬집고 물고, 머리까지 깨려고 하며 온몸을 쇳덩어리 기계에 찧어댔던 사람들 등등.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겪은 많은 일이 모두 나 때문이었다니…. 나에게 못할 행동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 봉헌하며 “그들은 저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주여! 그 영혼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시어요. 제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이 저를 단련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용서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어요.”라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께 효도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아 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상대방이 언제나 나를 통해 화평하기만을 바라왔던 소망과는 달리, 나 때문에 다른 이가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그들에게, 또 주님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여 견딜 수 없어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378.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

 

나 때문에 상사병이 들어 눕게 되어도 나를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해서 온갖 모함을 다 한 남자들, 이런 일들이야말로 내가 눈길 한 번도 주지 않았기에 내 잘못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있음으로 그들이 죄를 짓게 되었다는 내 탓으로 격앙된 울음은 계속되었고, 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직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소서.”라고 하는 말뿐이었다. 절절히 통회하며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이제까지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소서.” 계속 큰소리로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이 말을 절제하기 위하여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진심으로 나를 온전히 주님께 돌려드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 청할 때 검은 장이 걷히기 시작했고, 홀연히 하늘의 문이 열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밝은 빛이 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더니 세 번이나 연이어 “하늘의 문이 열렸다. 하늘의 문이 열렸다. 하늘의 문이 열렸다.”라고 하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즉시 “제 가슴을 더 열어주십시오! 제 가슴을 더 열어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그때 나의 온몸은 경직되어 굳어있었고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어갔다. 철야 기도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길은 나에게 쏠렸고, 장부 율리오 씨와 곁에 앉아있던 사람들과 봉사자들이 경직되어 굳어진 나를 서로 번갈아 가며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어떠한 말이든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379. 늘 부족하다고 자신을 낮추는 너를 통하여

 

방에 누워있으면 혹시라도 사람들이 판단할까 봐 짐 넣어 놓은 좁은 다락에 누워있으면서 쓰라린 과거를 생각하며 나 자신의 약함을 주님께 봉헌하였다. ‘주여! 죽든지 살든지 당신 뜻에 맡기나이다.’ 하고 누워서 계속 묵주의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3일째 되던 날 다정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아! 하느님은 당신 종의 비천함을 사랑하셨고, 그처럼 자신의 약함을 느끼는 그 마음속에서 함께 작용하셨다. 어서 일어나거라, 다른 이들의 죄악까지도 ‘내 탓’이라고 받아들이며, 늘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부족한 죄인이라고 나에게 달아드는 너를 통하여 나를 전하도록 하겠다.” 나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온몸은 날듯이 가벼워졌다.

‘아, 주님께서는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시더니, 나를 온전히 통회시키시고 눕히셨다가 3일 만에 부활시키시어 일어나게 하셨구나. 그래요, 주님, 이제부터 이 몸 온전히 당신의 것이나이다. 당신 뜻대로 사용하소서.’

 

380. 성령 기도회에서 놀랐던 일

 

성령 기도회에 참석하였을 때 봉사자들이 지나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기도를 해주는데, 봉사자 회장님은 나를 불러 봉사자들 맨 뒤에 세우고 그들을 따라서 그대로 하라고 하여 “저는 못 해요.”라고 했더니 “괜찮아요, 봉사자들이 하는 그대로만 하면 돼요.” 하시기에 나는 순명하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니, 당신이 부족한 제 손을 축복해 주시고 무한히 강복하시어 당신의 뜻대로 사용해주소서. 부족한 이 죄인 온전히 당신께 맡기고 의탁하나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시작 기도를 하고 나서 기존 봉사자들이 기도하고 지나가면 그 뒤를 이어 내가 기도했는데, 가만히 앉아있던 사람들이 내 손이 닿기만 하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목놓아 우는 것에 너무 놀라 회장님을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계속하라는 신호를 주셨는데도 멈칫멈칫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적 은사란다.” 하고 다정스럽게 속삭여주셨다. 그때 회장님이 옆에 오셔서 “내적 치유 은사를 받아서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계속해.”라고 하셔서 “네.” 하고 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날 내가 기도한 후 울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손을 통하여 친히 해주신 사랑이었으며, 나는 단지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기도회에 모시고 다녔던 이 안나 할머니가 지난번 기도회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나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율리아, 나 너무 기뻐서 율리아에게 고맙다는 인사 하러 왔어.” 나는 너무 놀라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해요?”

“내가 교회는 오래전부터 다녔지만, 이제야 율리아가 나를 주님께 올바로 인도해줬어. 기도회에 나를 데리고 가서 율리아가 기도해 줄 때 나의 가슴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잘못을 깨닫게 되어 회개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 거야.

내 마음속에 가장 크게 미움으로 자리 잡고 있던 남편은 늘 친구들과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며 나와 멀어진 지 오래인데, 율리아가 기도해줄 때야 비로소 ‘남편이 그렇게까지 된 것은 바로 내 탓이구나.’ 하고 생각이 되어 뉘우치니 견딜 수 없는 오열이 이는 거야. 자식들도 잘못한다고 불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도 바로 내 탓이라고 생각이 되어 기도회가 끝나고 나서 즉시 남편에게 달려갔어.

그 늦은 밤에도 남편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미운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 그리고 남이 보는 앞에서 남편의 손 한 번도 잡아 보지 못한 나였지만, 부끄러움도 잊고 ‘여보, 이제까지 제가 부족하고 잘못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자 ‘이 여자 미쳤어?’ 하며 정색하는데도 나는 남편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니 어리둥절하더구먼.

그 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바로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까지 모두 찾아가서 ‘내가 이제까지 잘못한 것 있으면 용서해다오.’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다, 이제야 집에 돌아와서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 하러 온 것이라네.”

그 말을 들은 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분은 남편과 자녀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면서 나에게 하소연했던가. 아들 넷을 낳은 뒤 또 아이를 갖게 되자, 자기 배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서 “이 아이가 딸이라면 꼭 수녀가 되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했는데, 정말 딸을 낳게 되어 지금은 수도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하느님의 딸이 된 것이다.

아들만 많이 낳아서 딸을 낳으면 욕심도 생기련만, 그 할머니는 약속한 대로 하느님께 딸을 아낌없이 바쳤다. 지금까지 부부간의 갈등, 자녀들과의 갈등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셨지만, 아름다운 마음으로 딸을 하느님께 봉헌하셨기에 하느님은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때를 기다리시다가, 그 도구로 잠시 잠깐 나를 사용하여 그 자매님이 회개하도록 하셨을 것이다. 결코 이 모든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