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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 주교님의 증언

제가 율리아씨를 처음 만나고 증언을 들은 것은 1990년 3월 미국의 피츠버그시에 있는 듀케인 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던 성모 대회에서였습니다.
율리아씨는 3월 25일 일요일에 증언을 하였으며 이날 우크라이나 출신인 요시프 케렐랴씨도 증언을 했습니다. 율리아씨는 7천명 이상의 청중 앞에서 어머니의 태 안에 있는 애기가 낙태 당하는 고통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받은 경험을 얘기 해 주었습니다. 율리아씨의 증언이 계속되는 동안 고해를 듣고 있던 약 100명의 신부들 앞에 고해성사를 보려고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급속히 길어졌습니다.
그들은 젊은 여자들 그리고 좀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었는데 낙태 수술을 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율리아씨의 증언을 통하여 그 부인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사흘 동안의 성모대회 기간동안 저는 율리아씨와 그리고 부군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들과 함께 기도했고, 또 그들에게 강복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크게 감명을 받았던 것은 율리아씨의 깊은 겸손, 사제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 그리고 신심깊은 삶의 태도였습니다.
율리아씨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1994년 10월이었습니다. 율리아씨는 토론토의 대학교강당에 모인 약 3,000명의 청중앞에서 그리고 그 다음날 토론토시에 있는 한국인 성당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율리아씨의 증언의 주제는 항상 같았습니다. 즉 천주 성부의 무한하신 사랑, 성자의 거룩한 자비심, 그리고 복된 성모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증언이었습니다. 청중은 두시간이나 계속된 증언을 통역을 통해서 들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경청했습니다. 토론토에서도 역시 율리아씨는 자아 포기에 바탕을 둔 겸손과 깊은 신심의 진수를 자신의 모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토론토에서는 율리아씨와 그의 부군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때마다 저는 율리아씨의 성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사제들에 대한 존경심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율리아씨가 오늘날과 같이 가장 어려운 시기, 세속주의와 합리주의가 만연되고, 심지어는 교회의 심장부와 신자들에까지 파고든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자비심으로 손을 뻗어주시는 데 대한 증언을 해주고 우리를 회개의 길로 불러주기 위해 천주님께서 당신의 섭리로써 쓰시는 진정하고 참된 천주님의 도구라는데 대해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우리는 열매와 행실을 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율리아씨의 생애와 활동들은 풍부한 열매들을 맺고 있습니다. 그 열매들은 "회개", "예수님과 성모님께로 돌아옴", "신앙생활의 심원화", "주님께로부터 오는 평화와 기쁨", 그리고 "주님의 모친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1995년 2월 16일
토론토 대교구 사목 담당 책임자 로만 다닐락 주교
MOST REV. ROMAN DANYLAK
APOSTOLIC ADMINISTRATOR
EPARCHY OF TORONTO/
TITULAR BISHOP OF NYSSA
ST.JOSEPHAT'S CATHEDRAL
143 FRANKLIN AVE.
TORONTO, ONT. M6P 3Y9
CANADA
T.(416)535-9192, (416)538-1436
FAX:(416)538-1639
  

 

     수주교님 체험

지난 9월 17일 오후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여기 예수 성심 대성당에서 있었던 미사 중의 특별한 성체 현상에 대해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예상하고 있었더라면, 저는 성합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며, 율리아씨의 입으로부터 살과 피로 변한 성체를 꺼내어서 실험실에 보내어 분석을 하게끔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저의 신앙이 과학적인 증명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과학과 논리에 의지하는 이지적인 신앙이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신앙입니다. 이렇게 논리를 따지는 일부 신자들과 심지어는 일부 사제들까지도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오주(吾主)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율법 학자들과, 성서 학자들, 대사제들을 불러서 예수님을 평가해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평가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예수님께서 대마귀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 낸다고 비난했습니다. 끝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저는 발현이라든가 기적 등에 대하여, 환상이라든가, 기만, 불건전한 요소 등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교회가 대단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또 철저한 조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데 대해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반면, 공회 석상에서의 다음과 같은 가믈리엘의 충고를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의 계획이나 행동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지도 모릅니다."(사도행전 5:38- 39)
9월 17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매스콤에서는 전혀 보도가 없었습니다. 그 날 미사에 참석했던 이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믿는 이들은 과학적인 증명이 필요없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과학적인 증명이 있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단순하고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던 많은 이들이 그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성부와 동등하심을 말씀하시면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이를 살리시고, 빵 몇 조각과 물고기 몇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등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목격했던 일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특별한 성체 현상에 대해서 제가 홍보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은 어린애와 같은 믿음으로 믿고 있으며,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교황청에서는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성체 현상들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광주 교구의 주교님께서 조사하시도록 의지하고 계십니다. 광주 교구에서는 이미 위원회를 통하여 조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6년 9월 17일 이 곳 시부에서 일어났던 일은 광주 대교구 관할이 아니고 시부 교구의 관할입니다. 본 주교는 성체 안의 예수님의 현존을 항상 믿어왔습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기 위해서 과학적인 증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또 여기 교구의 신자들에게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자주 권고하고 있습니다.
저의 겸허한 의견과 판단으로는 이 곳에서 있었던 특별한 성체 현상이 "성체 기적"이었다고 간주합니다.
주 예수님의 성명(聖明) 이 영원토록 찬미받으시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1996년 11월 8일
시부 교구의 수도미니꼬 주교 드림
P.O.BOX 495
96007 Sibu, Sarawak, Malaysia
T.NO.084-317373
  

 

 

     경건하게 깊은 감격으로 목격했었다.

1994년 10월 21일 목요일, 나는 교황 대사관에 갈 일이 있었다.
교황 대사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나는 11월 24일에 나주에 가기로 정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교황 대사님은 나주의 성모님을 찾아뵐 의향을 벌써부터 가지고 계셨으므로 그날 함께 가기로 결정되었다. 내가 나주 순례 날짜를 1994년 11월 24일로 정했을 때 나는 기름이 그 날까지 흐르는 경우에는 향기 나는 기름이 흐르기 시작한지 2주년이 되는 날을 위해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 뵙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머리에는 같은 생각이 여러 번 떠올랐다. "성모님이 11월 24일에 다른 표를 주시려는가?"하는 것이었다.
1994년 11월 24일 목요일이 되었다. 교황 대사님과 교황 대사비서와 나 자신이 성모상을 모셔둔 경당 출입문 가까이 갔을 때 우리는 주위의 공기에 매우 기분 좋은 향기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성모상 앞에 기도를 드리러 갔다.
차차 한국인 사제와 평신도인 순례자들과 율리아와 그의 남편이 우리와 합류했다.
첫 번째로 온 사제는 춘천교구의 강릉 옥천동(남한의 동북쪽 국경 근처 바닷가에 있는)  본당신부인 오상철-토마스 아퀴나스-신부였다. 오 신부는 그의 사제서품(1971년 11월 24일에 행해진)  23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열심한 여교우 발비나의 권고에 따라 나주에 오기로 결정했었다. 그래서 그는 동북쪽 끝에서 서남쪽 끝까지 한국 전 국토를 건너질렀다. 오 신부는 그 날 있은 두가지 기적을 목격한 유일한 한국인 사제였다. 얼마동안 기도를 드린 다음 율리아가 교황 대사님께 성모님 머리에 작은 왕관을 씌워 드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사님과 저와 율리아는 함께 왕관을 씌워 드린 다음 각기 제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나는 경당 안쪽에 있었고, 내 왼쪽에 율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윽고 율리아가 "주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소서!"(요한4장, 1-15절) 라는 말이 한국말로 쓰여 있는 성모상을 모신 벽감(壁龕) 위에 있는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신부님, 저 위에서 빛이 내려 오고 있어요."하고 가만히 말했다.
나는 바라보았다. 그러나 물론 율리아에게 보이는 것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율리아는 빛이 나오는 곳을 다시 가리키면서 "신부님, 제가 성모님 가까이 가보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율리아는 "성모상의 성모님이
'교황 대리자와 영적 지도자에게 너의 손이 깨끗해지도록 강복을 받아라' 하십니다."하여 교황 대사님과 나는 율리아에게 강복을 해주고 손에 향유로 강복을 해 주었다. 그뒤 율리아는 일어나서 천천히 성모님 앞으로 가더니 몸을 깊이 숙여 절을 하고 한국식으로 꿇어 앉았다. 그는 한동안 위를 쳐다보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율리아가 팔을 뻗쳐 십자가를 향해 손바닥을 폈다. 한동안 그렇게 하고 있더니 별안간 왼쪽으로 쓰러져서 팔꿈치로 몸을 의지하고 손을 펴고 손가락은 위를 향해 세워져 있었다. 오른손은 왼손바닥에 있는 "무엇인가"을 붙잡고 보호하려는 듯이 왼손바닥에 가 닿았다.
그 때에 큰 성체 반쪽이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사이에 살짝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성체는 중지와 약지에 기대 있었지만 약간 떨어진 가운데 손가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딸이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그리고 대천사 성 미카엘을 시켜 베풀어 주시는 특별한 성체의 은혜를 "받는 것"을 경건하게 깊은 감동으로 목격했었다.
율리아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주목한 세부사항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가 율리아를 에워쌌을 때 율리아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던 성체의 반쪽 하나가 갑자기 그리고 빠르게 저절로 바로 섰다는 사실이다. 여러 사람이 크게 놀란 외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 다음 다시 잠잠해졌다.
율리아는 그렇게 힘든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완전히 기진 맥진 했었다. 그러나 착한 남편 율리오와 박루비노의 도움을 받아 차차 몸을 일으켜서 성체 반쪽씩을 교황 대사님과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었다.
 나는 그분께 그분의 반쪽 성체에 있는 그림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 성체에는 십자가와
A,W 등의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에서 수녀들이 마련하는 성체에 찍는 수많은 그림 중의 하나이다. 교황대사님과 나는 성체를 그곳에 있던 순례객 모두에게 영해 주었고, 남은 성체는 내가 지니고 있던 작은 성합에 넣었다.
그런 다음 율리아는 성모님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율리아는 힘들게 말했다. 율리아는 성모님께서 교황 대사에게 당신 곁에 감실 하나를 마련하기를 원한다는 소원을 표명하셨고, 지금까지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소홀히 한 당신의 소원이 실현되도록 도와달라고 "교회의 대리자"에게 부탁하시더라는 말을 했다.
그런다음 율리아는 그의 다락방으로 물러가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쓰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지방에 이르러서 성모님 집을 떠나려는 순간에
"교황의 대리자와 네 영적 지도자의 손을 잡고 빨리 내 앞으로 다시 오너라"하고 부르시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율리아는 즉시 순종해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눈물의 성모상 앞으로 모시고 갔다. 율리아가 무릎을 꿇으니 교황 대사님과 나도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성모님은 친절하고 상냥하고 다정스러운 말투로 다시 말씀하셨다. 그동안 율리아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율리아가 이 메시지를 받는 동안 교황 대사님과 비서와 율리오와 박루비노와 나는 거기 율리아 곁에 꿇어서 아주 조용히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나는 율리아가 아직 성모님의 다른 말씀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율리아는 눈을 감고 경건하게 우리의 손을 잡고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강렬하고 지치게 하는 정신집중의 표가 역력히 나타났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첫 번 기적 때처럼 위를 쳐다 보았다.
 율리아가 메시지를 다 받고 "아멘."하는 순간에 작은 성체가 빛에 싸여 내려오는데
"어서 받아 모셔라."하시는 성모님의 말씀을 듣고 한 손은 교황 대사님의 손을, 한 손은 내손을 잡았기에 땅에 떨어질세라 율리아는 얼른 입으로 받아 모셨다 한다.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이 작은 성체가 내려오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큰 성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율리아는 눈을 뜨고 그의 혀에 와서 놓인 성체를 내게 보여 주었다. 성체는 평평하게 옆으로 놓여 있지 않고 거의 수직으로 놓여 있었다. 율리아에게 성체를 입에서 꺼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듣게 했다. 나는 교황 대사님을 쳐다보고 눈짓으로 성체를 꺼내시라고 권했다. 교황 대사님은 성체를 꺼내서 한 동안 손가락으로 붙들고 계시다가 작은 성합 속에 넣으셨다.
오후 1시 반경에 교황 대사님과 비서와 나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특별한 표로 인한 감격에 잠긴 마음으로 우리는 성모님 집에 달려 있는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율리아가 방금 받은 메시지들의 초를 잡은 것을 가지고 이내 우리 있는 데로 왔다. 율리아는 성모님의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간단하게 알렸다. 성모님은 경당에 있는 당신의 성상 곁에 감실을 마련하고 거기서 미사를 드리기를 부탁하신다는 것이었고...  성모님은 이러한 사실들을 목자로서 조사하고 판단해야 할 책임있는 지도자들이 체면과 이목때문에 당신의 호소를 소홀히 하는 것을 보시고 큰 슬픔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율리아는 그의 다락방에서 메시지들을 쓰고 있는데, 사탄이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꽃병을 머리에 던졌다는 말도 우리에게 했다. 꽃병에 있는 물이 율리아가 쓰고 있는 글 위에 쏟아졌다고 했으며 율리아는 물로 광택을 잃은 그 종잇장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사탄은 단단한 두가지 물건도 율리아의 머리에 던졌는데, 그중 하나는 금속으로 만든 촛대였다. 율리아는 웃으면서 사탄이 때려서 아직 아픈 머리 뒤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사탄은 이렇게 율리아를 악착같이 못살게 구는 것이다.
 여기에다 그리스도인이 된지 몇 해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뜻하지 않게 희생하는 영혼으로 선택된 이 작은 영혼에게 인자와 아버지다운 감정과 격려와 빛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의 냉혹과 거부가 덧붙여 진다...

  
주의 : 율리아가 받은 "작은 성체"와 "1994년 11월 24일의 둘째 메시지"와 관련해서 교황대사님은 1995년 2월 25일 파신부가 찾아 뵈었을 때 그에게 다음과 같은 세부사항을 지적하였다. "율리아는 오른손으로 신부님의 왼손을 잡고 있었고, 왼손으로는 내 오른손을 잡고 있었지요. 율리아의 얼굴은 십자가 쪽으로 돌려져서 움직이지 않고 십자가를 쳐다보고 있었지요. 어느 순간엔가 율리아는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내 손과 신부님의 손을 잡아 당겼지요. 조금 후에 율리아는 입을 반쯤 벌렸고, 또 조금 후에는 입을 크게 벌렸지요. 우리는 작은 성체가 혀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지요." 조금후에 율리아는 교황 대사님과 파신부와 거기 있던 몇몇 사람에게 그의 혀에 놓여 있던 성체를 보였는데, 그 두께가 이제는 여러 밀리미터로 부풀었고, 게다가 빵의 물질적인 외양은 잃고 "살"으로 변해있었다.

1994년 12월 6일
한국, 안양, 파레몬도 신부
T.(0343)83-0804

 

 

     교회품을 떠난 많은 이들이 성교회로 돌아오다.

저는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저의 사제직을 강복해 주시고 또 특히 한국 나주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말레이지아 사라와크의 시부교구 소속의 두 도시(사리케이와 빈탄호트) 를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방문하셨을때 자매님의 방문사실을 말레이지아는 회교도국이기에 홍보하지 못하였는데도 율리아 자매님께서 메시지 전달하는 곳에 3,000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고, 그동안 교회의 품을 떠나있던 아주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았으며 평상시에는 노인들이 주축이었으나 그날은 젊은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은 젊은 남자들이 많이 참석한 점이었습니다. 집회 참석자중에는 10년이상 심지어는 40년 동안이나 고해성사를 보지않던 상당수의 냉담자들도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시부를 다녀가신 후로 고해성사를 더욱 열심히 보고 미사성제에 진지하게 참례하기 시작하여 더욱 열심해졌습니다.
주일미사뿐이 아니라 평일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의 수도 많아졌습니다. 자매님을 통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전달로써 평신도들 사이에 이처럼 많은 회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997년 6월 7일
예수성심대성당 지바오로 신부
시부, 사라와크, 말레이시아

 

 

     나주 눈물의 성모상과 교회의 인준

지난 12월 8일 성모 무염시태축일에 80이 넘은 사제인 나와 일행 25명은 관광버스로 오후 늦게 나주 성모님의 집에 도착했다. 성모님의 집에는 부산, 대구, 인천, 서울 등 먼곳에서 온 교우들로 인하여 발들여 놓을 틈도 없이 대만원이었다.
싱가폴, 필리핀, 미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약 20여명이 참례하였는데 그들의 열성에 놀랐다. 싱가폴에서 온 10세 가량의 한 어린이는 다리 장애자인데 성모님의 특은으로 성한 다리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철야기도가 시작되어 1차기도가 끝난 후 나는 밖에 나와 있다가 한참 후 다시 들어갔는데 벌써 성모님 한테서 기적적으로 은혜받은 산체험을 발표하는 중이었다.
그날밤 발표자들은 10여명 정도였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대단했다. 10여명 발표자들은 대개 성모님 은혜로 암과 같은 불치병이 완쾌된 이야기, 어떤 분은 아기를 낳지 못해 고민중 성모님의 은혜로 임신, 그러나 난산으로 의사까지 크게 염려하던 중 신기하게도 순산했다는 이야기, 어떤 가정에서는 집안 식구들이 늘 불목으로 싸우며 살아오다가 화목하여 이제는 단란하게 살고있다는 이야기, 어떤이는 너무 노름에만 빠져 살다가 이제는 그 나쁜 버릇을 완전히 고쳤다는 이야기 등등이었다. 나는 우리 신자들의 열렬한 기도모습을 보고 감격하여 마이크 앞에서 나의 사제생활 50여년 동안 이런 열심한 기도회를 처음 보았다고 칭찬해주고 감사하다고 했더니 박수가 나왔다. 체험 발표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회자가 시간관계로 제지를 요청할 정도였다.
 매월 첫 토요일 전국에서 모이는 신자들이 천명이 넘어 도저히 경당에 다 수용할 수 없어 다른 방으로 보내어 비디오를 보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였다. 나의 삼가 소망으로는 하루빨리 교회의 정식인준이 되어 성모님의 메시지에 따라 마리아 구원방주 대성전을 전국 14개 교구 협력으로 빨리 지어 신자들의 지극히 정당하고 권장해야 할 기도의 욕구를 채워줄 책임이 교회에 있다고 단언하고 싶다. 대성전이 완공되면 현재 나주 눈물의 성모상 사건을 전세계가 벌써 알고있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만, 수십만이 운집하여 회개, 보속, 희생의 기도회를 열게되면 세계 수많은 냉담자들이 회개하고 비신자들도 이런 세계적인 행사를 보고 전능한 초자연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 과학만능주의에서 반성하여 하느님을 찾을 것이 아니겠는가? 나주 눈물의 성모상 사건의 길고 긴 9년간(내년이 10주년) 의 계획이 이런데에 있다는 것을 나는 삼가 확신하는 바이다.
교회 인준이란 사후 사인일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성모상이 단 한번만 눈물, 피눈물을 흘렸다 해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 3인이상 수십명, 수백명이 있을 때는 충분히 인준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석고상에서 눈물, 피눈물이 흐른 것은 도저히 자연법칙으로 불가능하며 오직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상 다 잘 아는 저 이태리의 실라노 시라쿠사섬, 불란서 더 라 살렛드, 일본의 아끼다 성모상의 눈물은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교회의 정식 인준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나주의 성모상에서는 7년동안이나 눈물, 피눈물까지 흘려주시고 2년전부터는 향유(기름) 까지 흘려 주시어 교회 2천년 역사상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성모상의 눈물은 1985년 6월 30일에 시작 7년간에 거쳐 700일간 눈물, 피눈물을 흘려주시고 지금까지 향기름을 흘려주신 것을 수만명이 보았고 1987년 12월 8일에는 유명한 마리아 영성 신학박사인 르네 로랑땡 신부님이 나주에 방문했을 때 성모상에서 흘린 눈물을 그날 모인 5백여명의 신자들과 함께 보고 감격했다한다. 그동안 수천매의 사진이 전국에 배포되었고 비디오테이프까지 나와 보는 신자들마다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 메시지를 받는 윤율리아 자매의 지도신부로 계시는 파레몬도 신부님은 벨기에 루벤대학 출신으로 일본에 계시다가 한국에 오신 분이다.
성모님 메시지는 외국어로도 번역되었는데 무려 10여개 국어가 넘게 번역 출판되어 전세계적으로 나주의 성모님의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다 한다. 1992년 율리아 자매와 일행 20여명이 필리핀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1주일간 머무는 동안 교회의 공식적인 환영을 받았다.
어떤 성당에서는 5, 6천명 신자들이 모인 가운에 신부님 12명이 합동 미사를 올렸고 또 한번은 마닐라에서 제일 큰 체육관에서 미사를 거행했는데 수만명의 신자들이 운집하고 마닐라 교구장 신추기경님께서 내 관할 구역에서는 어디서나 메시지를 전하라고 허락하시고 율리아자매와 그의 일행을 자신의 관저에까지 초대하시고 율리아자매로부터 기도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아끼노 대통령은 자매님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하여 기도를 청했다 한다.
또 마닐라 그린벨트 성당에서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할 때 하늘에서 장미꽃 잎사귀들이 떨어져 모인이들 중 많은 이들이 보았으며 장미꽃잎을 주운 청년은 그것을 목에 걸고 한국 나주에까지 와서 증언한 바 있었다. 오제리 신부님의 인솔로 율리아 자매님은 필리핀 신자들과 함께 로마를 방문하고 교황 바오로2세를 알현할 때 나주 눈물 흘리신 성모상과 비슷한 성모상과 메시지책자 그리고 피눈물 사진을 선물로 드렸다.
로마에서 좀 떨어진 성체기적 성당으로 유명한 란치아노 성당을 방문, 오제리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중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놀라운 광경을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모두 보고 크게 감격했다고 한다. 똑같은 성체기적 사건이 한국에서도 네번이나 있었다한다. 참으로 교회 역사상 과거에 일찌기 없었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율리아자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신부님들 100여명, 수녀님들 200여명, 7,000여 신자들이 메시지를 들으려고 모였고 메시지 전달도중 기립박수를 10번 이상 받았다고 한다.(1990. 3. 25. 성모님 영보축일 피츠버그에서)
이밖에도 외국의 여러 곳에서 율리아자매를 초청하여 얼마나 많은 회개와 영적, 육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가?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 피눈물을 흘리신지 10주년이 가깝도록 아직도 정식 인준에 대한 준비도 없고 지방 어떤 본당에서는 나주 성모님께 참배 가는 것을 금하기까지 한다고 하니 무슨 권리로 그런일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성모님께 효성을 드리고 은혜를 간청하기 위해 부산, 서울, 인천, 대구 등지에서 천리길을 멀다않고 가는데 장려는 고사하고 금지가 웬말인가!
성모님의 메시지의 주요 요지는 회개, 보속, 희생, 기도인데 현 시대보다 회개가 더 요구된 때가 있었던가? 성모님의 메시지의 내용을 나는 모두 읽었다. 교리나 교회 전통에 위배되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40대의 율리아자매는 태중교우도 아니고 이른바 신문교우로서 교리학교를 나온분도 아니고 성서를 특별히 공부한 일도 없는, 학력으로는 시골 중학교를 나왔을 뿐이다. 메시지 합본을 보면 누가 꾸며낸 문장이 절대로 아니고 메시지 주시는 분의 말씀 그대로 받아쓴 것이 분명하다. 어떤 메시지에는 예를 들어 '촉범'같은 어려운 말이 가끔 나오는데 이럴 때는 율리아자매는 그 참뜻을 몰라 사전을 찾고 또 남에게 묻기도 했다고 한다. 신비신학 박사의 논문이라고 할만한 이 긴 메시지를 절대로 교리도 잘 모르는 중학정도 학력밖에 없는 율리아자매가 혼자 자기힘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필학상으로 분명하다.
또 한가지 첨가하여 이야기를 할 것은 율리아자매가 몸져 누워 심한 고통을 받는데 예수님의 오상 고통을 받으면서 실제로 다섯상처에서 붉은피가 흐르는 현장, 순교자들이 겪는 고통, 배가 북통같이 불러 오르는 낙태 보속고통, 온방을 뒹굴면서 고통받는 현장을 비디오 촬영으로 찍은 테이프까지 나와있는데 이런 율리아자매의 고통은 죄인들의 죄를 대신 보속하는 의미를 갖는다. 대속은 우리 가톨릭의 교리이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돌아 가셨고 무수한 순교자들과 많은 고통을 당하고 세상을 떠나 천국에 계시는 성인성녀들의 세상에서의 고통도 다 대속의 뜻과 목적에서였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이상 말한대로 몸져 누워 심한 고통을 겪다가도 자리에서 일어나면 외국까지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가정주부가 된다. 몇달전만해도 전화도 못받을 정도로 몸져 누워 고통받고 있었는데 지난 11월 24일, 12월 8일 나주에 갔을 때 완전히 건강한 사람처럼 기도를 인도하고 성모님 찬양 노래를 부를 때 아름답고 너무나 고운 율리아자매의 목소리에 놀랐다. 눈물의 성모상 사진을 찍었을 때 성체와 성작사진이 같이 찍혀 나왔는데 어떤때는 성체에 오상을 뜻하는 다섯군데의 피흔적이 있고 또 다른 때는 성체에
A,W 희랍어 문자 두글자가 선명하게 나와 있는 사진도 있고 성모상 손에 성체모양이 사진에 찍혀 나온것도 여러번 있었다. 이런 현상도 과거역사에 없었던 신기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신기한 기적과 특히 1994. 11. 24일 교황대사님께서 나주 성모님의 방문날 보여주신 성체기적은 다 교회의 인준을 독촉하는 징표가 아닌가 삼가 생각해 본다.
눈물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기적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지만 1-19호까지 나오고 누구의 금지령?으로 정간이 되었던 '성모님의 소식'이란 각 본당 주보같은 소책자를 내가 읽은적이 있는데 기적같은 은혜를 받은 체험담 기록이 많이 적혀 있다. 부산에서 내가 직접 본 일로서는 이경희 마리아씨(32세) 가 골수암과 심장을 7번이나 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다가 나주를 방문하여 성모상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바치며 회개하므로 완쾌되어 매월 첫토요일 감사기도를 바치려고 나주를 방문하고 있으며, 또 임안젤라(53세) 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18년간이나 원수처럼 지냈으나 회개하여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만나 화해한 결과로 재결합하여 현재는 남편이 성요셉 성인같이 보인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상 두자매는 우리집에 가끔 오는 자매들로서 순박한 가정주부들이며 현재는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경하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상 몇자 적은 것은 절대로 누구를 비난하거나 불평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85세 은퇴 원로 사제로서 교회를 위하고 사랑하는 취지에서임을 밝히고 펜을 놓는다.
 
추언 : 아직도 어떤 계시나 기적에 있어 소속 주교님의 인준없이는 언론게재나 아무런 행사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절대로 현행 교리법으로 그렇지 않다. 교회에는 독재가 있을 수 없다. 계시문제나 기적에 있어 증거가 확실하면 언론게재도 할 수 있고 다른 행사나 기도행사도 가능하다. 언론은 여론을 환기시키고 여론은 "민심이 곧 천심"이요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느님의 소리"(Vox populi Vox Dei) 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소속주교의 인준 전에 한 모든 행사는 교황청의 마지막 판단에 복종할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1994년 12월 15일
부산 박동준 신부

 

 

     나주의 성모님...

1992년 11월 24일(향기로운 기름)
나주의 성모님이 성모상을 통해서 숱한 눈물과 피눈물을 보여주시면서 우리 모두에게 모성의 징표를 주신 것이 네번째이다. 사람들은 가끔 성모상에서 나오는 기름과 향기가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를 내게 물어왔다.
1993년 4월 8일 성 목요일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이에 관한 뜻을 간단히 말씀해 주셨다. 다음은 성모님께서 율리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 뜻이다. "내가 모두를 위해서 주는 향기와 기름은 하느님의 선물인데, 그것은 바로 나의 현존이며 사랑이자 우정이기도 하다."
나는 이 주제에 관해서 과거에 두 개의 설명문을 기록하였다. 그 하나는 기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향기에 관한 것인데, 얼마전에 구입했던 서적 "성서 신학용어" (사비에-레옹-듀흐르, 세르프- Xavier-Leon-Dufour, Ed. du Cerf-출판사, 1975년) 를 참작하였다. 나는 이 뜻을 알고 싶어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도 시켰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현존과 사랑과 우정의 징표를 주셨을 때 무슨일이 생겼는가?
1992년 11월 24일은 광주 대주교 윤빅토리노 주교님과 만날 예정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광주에 가게 되었다. 물론 모든 대화는 나주 성모님 쪽으로 기울어졌다. 오전 중에 있었던 만남이 끝나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나주 성모님상 곁에 갔다. 성모상에서는 끊임없이 향기가 계속 풍겼다. 율리아와 그녀의 남편 율리오 그리고 정규 보조자인 박루비노가 성모님 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성모님 발 아래서 함께 묵주의 기도를 열렬히 그리고 천천히 읊었다. 묵주의 기도를 끝내고 우리는 성모상 바로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성모상 오른편에, 율리아와 루비노와 율리오는 왼편에 서 있었다.
우리는 성모상을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뜻하지 않게 율리아와 루비노가 내게 말하기를 "신부님, 신부님의 팔로 성모님 상을 안아 드리세요. 성모님께서 아마 사랑의 징표를 주실지도 모르지요!"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정답고 단순하고 성실하고 즐거운 아이들처럼 이 말을 명랑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역시 유쾌한 어조로 "그야 물론이지요.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징표를 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성모상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두손으로 성모상을 안아 내렸다. 성모상을 손으로 잡고 채 돌아서기도 전에 기쁨으로 벅찬 한 목소리-놀람과 기쁨과 감동으로-(꽤!) 떠들썩하게 세 사람이 나에게 "신부님, 기름이 솟아 나옵니다."라고 소리질렀다. 우리는 넷이 다 감동하여 성모님의 현존과 사랑과 우정의 징표를 바라보며 머물러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침투할 수 없는 벽"은 이미 진정 없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름은 하루, 이틀, 그리고 여러 날이 경과하는 동안 흘렀고, 한국의 어린이 날인 5월 5일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또한 흐르고 있다.
성모님께서 두번째로 향기로운 기름을 주셨던 것은 역시 1992년 5월 5일 화요일이었다. 기름과 향기에 대한 두번째 기사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이미 상기(上記) 한 바와 같이 향기로운 기름은 계속 방울져 흐른다. 율리아는 성모상 밑에 작은 헝겊 조각들을 끊임없이 갖다 댄다...
풍겨 나오는 향기는 매우 상쾌하고 여러가지 농도로 풍긴다. 내가 이 헝겊 조각들을 보낸 사람들은 이 헝겊을 동봉한 나의 편지를 받자마자 그 헝겊이 있는 방이나 혹은 홀이 향기로 가득찬다는 편지를 써 보냈다. 기름이 더욱 풍성하게 흐른 것은 올해 특별히 1월달부터 였고, 그 중에도 3월 4일이었다. 이틀전 5월 3일에 나주(루비노) 에서 기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몇 사람이나 그 사랑에, 그 사랑 앞에 그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열어 놓을까? 몇 사람이나 성모님께 작으나마 사랑과 감사와 연민의 정을 표시하려고 성모상 곁에 기도하러 가는 시간(?)을 찾고 집을 떠나는 수고를 할까?
오늘, 한국에서는 공휴일인 어린이 날에 언제나 '무시무시하게' 꽉 찬 차도와 가로에 자동차들이 한산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멀리 또는 근교로 기분전환을 하려고 떠났을까... !
모든 것은 자기 자신, 자아에게로 돌리고 집중시키는 반면에, 자녀적이고, 정답고, 자기를 망각하고, 자녀적인 마음을 표시하려고 사랑이신 분께로 가서, 현존하시고 친절하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이신 분 곁에 있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거나 아니면 거의 없고, 있다해도 너무 소량뿐이다.
 매일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즐거운 놀이, 농담, 온정속에서 팔을 내미시고 우리에게 눈물과 피눈물로 고통스러우신 사랑을 보여 주시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열렬하고도 자녀적인 애정, 참되고 깊고 항구하고 견고하고 지속적인 애정이 있을까? ?

1993년 5월
파레몬도(현우) 신부

 

 

     나주의 성모상

여러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나주에서 성모상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때가 많았습니다. 나는 자주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나주의 성모상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교회당국의 판단에 맡겨야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교회당국의 판단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교회당국에 순명해야 합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율리아를 알고 있습니다. 푸른 군대 피정 때 마다 참여하였고 푸른 군대 출판물 보급에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습니다. 여성다운 그리고 엄마다운 열심한 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에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르는 일이 생겨났고 마침내 그러한 분야에 충분한 지식과 더불어 깊은 성모 신심을 갖춘 파 레몬도 신부가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나주 본당에서 주일 미사 강론을 하게 되었는데 광주대교구장이셨던 헨리 대주교님이 한국에서 처음 부임하신 곳이 나주 본당이라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헨리 대주교의 모토는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로(Ad Christum Per Mariam) "였습니다. 왜 이런 모토를 택하였는지 물어보자, 헨리 대주교님은 뉴욕에 있는 친구 주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런 모토를 정해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헨리 대주교를 통해 이 모토를 따라 생긴 레지오 마리애가 한국에 도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모토 역시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의 가르침대로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로"(Ad Jesum Per Mariam) 입니다. 헨리 대주교는 한국의 큰 은인이 되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헨리 대주교님이 나주 본당을 맡고 계실 때 틀림없이 성모님께 그 본당을 봉헌하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이 본당의 한 신자를 통해 특별한 은총을 주시고자 하신 것 같습니다.
루비노도 오래 전부터 알게 되었는데 공소 회장으로서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의 신심을 찾았다는 것에 내가 놀랐다는 기억이 납니다.
로랑땡(Laurentin)  신부의 말에 의하면 유럽의 여러 나라,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본 등 전 세계 200여 곳 이상에서 성모 발현이나 성모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라찡거 추기경이 메주고리에 성모 발현에 대해 이야기 하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 "샘을 잘 잡아야 합니다." 어떤 우물을 팔 때 솟아나는 샘물의 원천을 잘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 나주 성모상의 눈물을 통해서 성모님이 한국교회에 은총을 많이 얻어주시고 교회가 쇄신되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자들이 기도하고 희생하며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당국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1991년 50호 마리아지에서
하안또니오 신부

 

 

     눈에서 흐르던 눈물은...

우리본당에서 성모신심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둘째 주 강의는 서울 성령 봉사회 스미트 엘레나 수녀님(서울 성산 기도의 집) 이었는데 강의 후 사제관에서 차 한잔 하시면서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수녀님은 나주에 가서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직접 체험을 하셨기에 누가 뭐라해도 그 징표의 진실성을 믿는다고 하셨다.
언젠가 휴가 때 나주 성모님의 집에 와서 성모님의 손을 잡았을 때 맥박을 느꼈으며 기도하기를 "성모님은 왜 우시나요? 성모님은 왜 슬퍼하시나요? 저도 눈물을 흘리게 해 주세요." 하시었다 한다.(그때는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수녀님의 눈 한쪽에서 눈물이 계속 나왔으며 휴가동안 계속 눈물이 그치지 않아 하도 이상해서 서울 성모병원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별 이상이 없으니 안약을 바르라고 안약을 주더란다.
집에와서 안약을 눈에 넣으니 눈이 더 아파 그 약을 버렸단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성모님! 죄송합니다. 나주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이 진실한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잘못된 저의 믿음을 용서해 주세요."하는 순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즉시 그치더란다.
이러한 체험 때문에 나주 성모님의 징표에 대해서 확실히 믿고 증언한다고 하였다.

1992년 11월 2일
염주동 본당 장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증언

 

 

     다른 어떤 순례지도 나주보다 더한 것이 아닌 것을 느꼈어요

윤율리아 자매님!
찬미 예수, 마리아, 요셉. 안녕 하세요.
나주 성모님 우신지 두 주가 모자라는 10년이 됩니다.
저는 1954년 성모님 성년 백주년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가 된지도 35년인데 너무 게으릅니다.
루르드에서 가까운 곳에 5년동안 살면서도 한번도 성지순례를 가보지 않았어요.(성모님 신심이 약해서?)
나주 소식 듣고도 5년만에 갔는데 피눈물 흘리시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윤 대주교님께도 그 사실을 아뢰었더니 곧 조사하셔야 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후 향기름이 흐르고 사진에 제병과 성작이 나타나고 교황대사님이 나주에 방문하신다고 하시어 기대 했지요.
나주 성모님 집을 방문한 후 저는 세계 여러 곳에(벨기에, 바뇌, 브라질, 멕시코, 호주, 미국, 유고 등)  성모님이 메시지 주시는 곳이라면 많은 곳을 가보았지만 나주보다 더한 것이 아닌 것을 느꼈습니다.
작년 대사님 방문시 특별한 일을 파 신부님과 율리아자매님으로 부터 직접 듣고 무엇인가 빨리 우리가 해야 된다고 다시 느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무력함을 새삼 생각합니다.
한국을 그리고 아시아를 걱정하시는 성모님께 함께 빌겠습니다.
가까운 시일안에 함께 하길 바라며...
안녕히 계십시요.

1995년 6월 16일
서울 김택구 신부

 

 

     말레이지아 시부에서의 성체 기적

이번에는 제가 살고 있는 고장인 시부 지역에서 성체 기적을 주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이번의 성체 기적은 시부에 있는 성심 대성당에서 1996년 9월 17일 오후 7시 30분 미사 중에 일어났습니다. 미사 집전을 주례하신 분은 우리들의 사랑하는 도미니꼬 수 주교님이셨고, 시부교구의 신부님들께서 공동 집전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부 총대리이신 윌리암 보스 신부님, 토마스 코너스 신부님, 제이콥 옹 신부님, 폴 치 신부님 그리고 주님의 부덕한 종, 프란시스 수신부였습니다. 그 외에도 안토니 람 신부님과 데이빗 빙햄 신부님께서도 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성당 안은 약 3,000명의 신자들로 꽉 찼습니다.
저의 형님이시기도 한 도미니꼬 수 주교님은 성체 성사에서의 예수님의 능력과 현존에 대하여 열렬하고도 감동적인 강론을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성체 안에 계시는 왕이신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능력에 대해 신뢰심을 가지도록 우리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사제들의 영성체 후 나는 율리아자매에게 성체를 모셔가서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여 주고 있었는데, 율리아자매 가까이 앉아 있던 이들이 율리아자매의 입속에 피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조금전에 율리아자매에게 준 바로 그 성체가 볼 수 있는 살과 피로 변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 6장 51절과 55-56절 참조)
저는 율리아자매에게로 가서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피비린내를 맡았으며, 율리아자매의 혀위에 있는 성체가 움직이면서 심장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으며 어떤 사진들에는 성체에 "삐에타"형상이 나왔습니다.("삐에따"은 십자가로부터 내려진 예수님의 죽으신 몸을 성모님께서 안고 계시는 형상을 뜻합니다.)
저는 이번에 있는 일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그날 모인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징표요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또 성체 성사에서의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우리 주교님의 강론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의 기적은 제가 1995년 5월 나주에 처음으로 순례 갔던 이후로 다섯번째로 목격한 성체 기적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확실히 저를 성체의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크리스챤으로서의 삶의 중심인 성체 성사를 사람들이 사랑하도록 이끄는 사명이 얼마나 긴박한가 하는데 대한 인식을 저의 마음속에 가득히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1995년 10월 31일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미사의 중요성과 고해성사의 중요성 그리고 성체 성사의 신비를 세상 자녀들에게 어서 알려 최후 만찬의 빠스카와 부활의 빠스카 신비의 선물을 영속시켜라"

말레이지아 사라와크 성안토니오 성당
프란시스 수효호 신부

 

 

     聖敎會와 최근의 계시들

인류의 구원 역사 전반에 걸쳐서 창조주이신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천국을 향한 좁은 길을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 길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에는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시기 위하여 개입해오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언자들을 특별히 부르시어 당신의 진리를 드러내어 주시고 또 그러한 계시가 참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시기 위하여 기적의 증표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거짓 예언자들이 나와서 하느님의 使者들의 활동을 방해해왔습니다. 참된 계시와 거짓 계시, 진정한 증표들과 진정하지 못한 증표들, 그리고 예언자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 및 신약 시대의 당신의 선택된 자녀들이 참되고 거짓된 것을 바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항상 도와주고 계십니다.
1966년 10월 14일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법령을 발표하시어 새로운 계시들, 발현들 및 기적들에 대해서 이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 한 교회의 인가를 받기 전에도 전파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어떠한 계시든지 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는 데 대하여는 전혀 변경된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허락이 있은 후 근년에 와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는 소식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들은 신중하게 고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결실들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새로운 정보들로부터 영신적인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의 메시지와 증표에 대한 소식에 접함으로써 우리들은 하느님께의 믿음을 깊게 할 수 있고 우리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신선한 자극과 강력한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니느웨 성 주민들은 요나 예언자의 설교를 듣고서 자기들의 죄를 뉘우침으로써 하느님의 징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도 당신의 구속 사업과 복음 메시지들을 확인해 주는 많은 초자연적인 증표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계시들과 증표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했습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도 가브리엘 대천사가 전한 천주 성자의 강생에 관한 계시를 믿었으므로 구세주의 모친이 됨으로서 짊어져야 할 모든 책임과 고통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성 요셉께서도 아기 예수님께서 성령에 의해 잉태되셨음과 에집트로 피난가라고 하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목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천사들로부터의 계시를 믿었습니다. 동방 박사들도 초자연적인 증표를 받아들여서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을 보고서 신앙이 더 굳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사명에 대한 질문을 하는 요한 세자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기적들을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계시들과 기적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1531년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는 주민들이 기적적으로 나타난 성모님의 상(그림) 을 보고 받아들였으므로 그들의 우상 숭배 풍습을 버리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가 많은 성인들의 전기를 읽을 때, 그들 중의 많은 분들에게 주님과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적도 있고, 기적적인 병의 치유가 일어난 일들도 있고, 오상을 받은 분들도 있고, 기타 여러 가지의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인들의 생애 중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 분들께서 지니셨던 하느님과 이웃들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자아 포기의 정신을 알게 됨으로써 많은 이들이 감명받아 죄를 뉘우치게 되고 생활 개선과 성화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주의해야 할 사항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소식들을 계기로 혼동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어떤 이들은 현대에 있어서의 계시의 가능성조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을 아직 받지 않은 계시는 무조건 거부합니다. 교회를 따르려는 정신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는 한 새로운 계시들을 개인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단 교회가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신자들이 이를 따라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교회에서는 새로이 보도되는 계시들에 대해서 보통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합니다.
 왜냐 하면, 이미 성교회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 즉 신덕 도리들과 미사 성제와 7성사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2)또 다른 편으로는 계시나 발현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무조건 쉽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한 경우에는 본의 아니게 교회의 교도권을 무시하여 사적 계시들을 이미 교회가 지니고 있는 공적 계시들보다 더 위에 놓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1966년 교황 성하께서 허락을 주실 때, 교회의 교도권을 약화시키시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계시들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교회만이 가진 권한이며 이러한 권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것입니다. 성 바오로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사도들과 교회에 주신 복음과 다른 어떤 복음이나 계시를 누군가 전한다면, 우리는 이를 거부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침(指針) 들
새로운 계시들과 발현들과 기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심사하는데 있어서 교회는 여러 가지의 원칙들과 기준들을 적용합니다. 신자들도 새로운 계시들을 접할 때 이러한 교회의 지침들을 유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초자연적인 현상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개인 또는 개인들의 영신생활, 심리 및 정신상태, 도덕성 등에 있어서 문제시되는 점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개인이 정상적이고 건전한 마음상태와 판단력을 지닌 사람인가? 혹시 정신병이나 기타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증상을 앓은 일은 없는가? 혹시 자신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자신이 남달리 특별하다는 것을 돋보이려고 하지는 않는가? 금전적이거나 기타 다른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개인이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하여 영신적으로 진보하고 있는가? 즉, 더욱 겸손해지고 신심이 깊어지고 있는가?

(2)메시지와 기타 관련된 초자연적이라고 하는 현상들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당신의 교회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따라서 성령을 보내시어 진리로써 신자들을 교도할 수 있도록 교회를 이끌어 주시며 지켜주고 계십니다. 한가지 유의할 사항은,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남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떤 계시가 참된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메시지와 증표들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확인시켜 주고 우리가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모님께서 1830년 프랑스 빠리의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를 통해서 그리고 1858년 역시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벨라뎃다 소녀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셨을 때 그 메시지의 내용들은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셨다라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또 폴튜갈의 파티마에서 주신 메시지들은 역시 이미 교회에서 가르쳐온 내용, 즉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자신과 남들의 죄악에 대한 보속을 바쳐야 된다고 하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계시들은 이미 교회의 인정을 받은 과거의 계시들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계시들이 참되다면 이들은 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의 일관된 목적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계시들은 대개의 경우 확인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증표들이 수반됩니다. 이러한 증표들은 기적적인 병의 치유일 수도 있고 오상일 수도 있으며, 탈혼과 관련된 사항일 수도 있고, 성체 기적 및 다른 증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표들은 교회의 책임자들에 의하여 자격있는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증표들이 자연적인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악마의 개입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도 아니고, 인간들에 의해 조작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4)발현이나 계시의 직접적인 결과로 하느님께로부터의 영적인 결실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결실들은 죄에 대한 뉘우침, 생활개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증가, 더욱 굳은 신앙, 겸손, 교회 장상에 대한 순명, 인내심, 천주님의 섭리에 대한 전적인 의탁, 성사들, 특히 고해 성사와 성체 성사를 자주 그리고 정성되이 받는 것, 그리고 미사 성제에 더욱 정성껏 참례 하는 것 등입니다.
 반면, 사람들을 영적으로 탈선하게 하는 결실들이 있다면, 이러한 계시의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만해진다거나, 남을 미워하고 경멸하는 것, 교회 장상에 대한 불복종,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내용을 전파하는 행위, 성사를 소홀히 하는 것, 분열의 조장, 그리고 계시나 계시를 받는 이들을 교회와 대항하거나 대등되는 위치에 놓는 등의 행위들입니다.

결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일들을 판독하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진리를 바로 알아보고 당신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데에 휩쓸려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바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를 세워주셨으니, 우리는 교회에 의지하여 진리를 추구하며, 예수님과 모든 성인들이 그러하셨듯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함 안에서, 진리에 바탕을 둔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로버트 빌렐 神父
미국, 캘리포니아 州, 로스 엔젤레스 市

 

 

     성모님께서 예고하신 징표란

성모님께서는 율리아에게 성모님을 따르라고 하신 초대에 응답한 사제들에게 특별한 징표를 주시겠다고 알려 주시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알림은 메시지의 첫번째 복사, 더 정확하게는 율리아가 안양, 나의 사무실에서 지난 4월 14일에 기록한 원본에 기록되어 있다.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기적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성모님께서 율리아에게 특별한 징표를 예고하셨을 당시 율리아는 남편 율리오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율리아는 이런 기계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몇장 찍었다. 그리고 나서 휴대용 비디오 다루는 방법도 설명을 받았다. 비디오를 찍어본 경험이 없는 율리아는 10분 내지 15분 동안 성모상 앞에서 그 기계를 끌고 다녔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 때 율리아는 상기(上記)한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미 10여일 전부터 율리아는 4월 14일 수요일에 나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급히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의 필름을 현상시켰다.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웠다.
성모님의 사진 몇 장에서 오른손 위에 큰 성체를 볼 수 있었고, 그 성체 위에는 오므린 손 모양의 윤곽이 나타나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에는 어떤 두루마리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시력이 약해서 이 윤곽을 직접 식별할 수는 없었다. 나는 율리아가 4월 14일 오후에 나를 방문하여 이 사진을 보여 주었기에 보게 되었다. 이 작은 징표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고 다소 냉랭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의 협력자가 그 모습을 분명히 식별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확증하였다.
어떤 사진에는 성체가 오른쪽 손에 나타나 보였고, 왼쪽에는 없었는데, 어떤 사진에는 작은 성체가 왼쪽손 위에 있었고 오른쪽 손 위에는 없었다.
율리아는 향유(香油) 를 계속적으로 흘리고 있는 성모상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 사본을 아침에 준비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비디오를 보면서 너무나도 감격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율리아에게 받은 비디오를 몇 시간 전에 나의 TV 수상기로 보았다. 율리아가 비디오 촬영기를 다루게 된 것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따르게 된 것이었다.
율리아는 특히,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 향유 방울이 방울져 내리는 곳을 샅샅이 찾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일을 마치 사냥하듯이 추적하고 있었다. 나는 비디오에 비추어진 영상을 보며 그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촬영은 상상을 초월한 그녀의 미숙함과 착한 마음이 가장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주님의 징표, 너무도 등한시되고 헐뜯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시기 위한 성모님, 주님의 보다 경탄스러운 은총중의 하나로 장식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신 성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은총이다." 율리아는 영사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다니고 또 되풀이 지나가고 오르내렸지만, 그녀에게 보여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보지도 상상도 못했었다. 율리아가 찍은 비디오를 나중에 본 사람들의 눈 앞에 누가 나타나 보였는가?
내가 상기(上記) 한 사진에서와 같은 징표이다. 율리아는 꽃이 핀 작은 목장 여기저기서 꽃을 꺾으며 아주 즐겁게 깡총깡총 뛰는 아이처럼 그의 촬영기를 사방으로 끌고 다녔다. 이렇게 비디오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성모상을 찍고 있는데, 나는 뜻하지 않게 오른쪽 손 위에서 큰 성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율리아는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채 빨리빨리 지나가 버리고 있었다. 나는 성체가 놓여 있던 손을 다시 보고자 했지만, 율리아가 '기름방울"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성체가 놓여 있는 그 오른손 앞에 아주 드물게라도 다시 오는 일은 우연을 기대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이와같이 나는 여러번 성체를 보았는데, 율리아가 마지막으로 촬영이 끝나기 전에 그곳을 지나갔을 때는 오른손에는 성체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
이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징표, 우리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당신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있는 사제들에게 보이시고자 하신 무한하시고도 항상 현존하시는 사랑의 위대한 징표가 아니랴!...

1993년 4월 27일 화요일
안양에서 파레몬드 신부

 

 

     성모님 눈물을 보고서야 변화된 사제생활

어느 수녀님의 권유로 내가 맨 처음 나주 성모님의 집을 방문한 것은 1987년 8월 1일로 기억되는데 아파트에 눈물 흘리신 성모상을 모셨던 때였다.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교우들의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여 기도하기에 참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였다.
그후 열심한 평신도의 인도로 1990년 7월 30일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성모님의 집을 짓고 있었고 임시로 식당에 성모님 상을 모셨는데 꽤 많은 순례자들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도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후 나는 1991년 4월 미국에 잠깐 다녀오게 됐는데 뉴욕의 한인 교우인 임베로니카 집에 묵게 되었고 거기에서 비디오를 보여 주었는데 '20세기 성모님의 발현"이었고 거기에 한국 나주도 잘 소개되어 있었다.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이역만리 이곳에서도 나주 성모님에 대해 관심이 많아 기도하고 있는데 지척에 두고 사는 나는 가보지 못하고 관심이 없어 성모님께 죄송스럽고 부끄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귀국하면 한번 꼭 가야지 하였으나 막상 귀국하고서도 나주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열심한 교우가 나주에 안 가시겠느냐는 질문에 바빠서 '며칠 후에 보자.'고 했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나주 생각에 일손이 잡히질 않았다. 나는 즉시 내일 가자고 그 형제에게 전화를 했는데 성모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1991년 5월 23일 그 교우의 인도로 성모님의 집에 도착하자 속으로 기도하기를 "성모님! 제 믿음이 부족하오니 더욱 성모님께 사랑과 존경을 드릴 수 있도록 완고한 제 마음을 열어주시어 저를 인도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하였다. 눈물 흘리신 성모상 앞으로 다가가 기도중 성모님상을 바라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성모님상에서 눈물 방울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하얀 비늘 같은 것이 생기더니 점차 눈물 방울이 맺혀 있었기에 꿈인가 생시인가 몰라 확인하려고 묵주의 십자가로 살짝댔더니 눈물 방울이 주르르 밑으로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나의 어리석고 미약한 믿음과 잘못 살아오면서도 잘못 산줄도 모르며 살아 왔던 나 때문에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려주신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때 과거 20년의 사제 생활이 필름처럼 펼쳐지면서 잘못 살아 온 과거의 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었다. 내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주체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회개의 눈물이었으리라.
그때 율리아 자매가 와서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탈혼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30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 것을 본 협력자들은 "아마 자매님이 지금 메시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하며 안집으로 옮기자고 하여 몇 사람이 들어 옮기는 과정에서 또 한번 다시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양팔, 두 다리 그리고 목에 누군가에 의해 할퀴어진 자국이 선명하였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탄의 공격을 받아 그렇게 됐다고 한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한 사제가 오니까 그 사제와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고 사탄이 치고 박고 할퀴고 하였다 하는데 성인전에 있는 사탄의 공격을 받은 성 요한 보스꼬, 성 비안네와 같은 이야기들이 이제 좀 이해가 간다.
나는 그 이후 나주에 와서 성모님상에서 몇 차례에 걸쳐 성모상에서 흐르는 눈물과 향기름을 목격하였으며 지금까지의 내 삶을 다시 되돌아 볼 기회가 되었다. 성모님께서 왜 눈물 뿐 아니라 피눈물과 코피까지 쏟으시며 우시는가? 성모님께서 왜 사제들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실까? 나는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안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특히 1985년 8월 11일 메시지에서 "지금 사제들이 바람 앞에 등불이다. 유혹을 받고 있구나. 사제관 창문이 열려 있어 마귀 셋(교만, 탐욕, 음란) 이서 들여다보고 있다. 사제관 창문을 닫아라."을 읽고서 크게 느낀 바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크게 잘못한 것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 왔었는데 성모님께서 나를 일깨워 주신 것이다. 예수님처럼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라고...
이 때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봉헌하기 시작했다. 하루 두 갑 피웠던 담배, 일주일에 1-2회 나갔던 골프 그리고 술과 텔레비젼을 봉헌했다. 술은 사목상 이유(?)로 한두잔으로 봉헌하고 T.V는 뉴스만 보기로 했다. 이러한 외적인 봉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봉헌으로써 생활이 기도화 되는 것이고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사는 작은자의 길인 것이다.
즉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마태오 18:4)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이 시대는 불신과 불경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불신하니 하느님의 말씀도 불신하게 되고 하느님을 거부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초자연의 세계인 신비함을 무시하게 되어 결국 성체성사를 형식적으로 하고 그 신비를 불경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즉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고 교우들은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형식적으로 성체를 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내 자신부터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성무일도, 습관적인 미사 봉헌및 영성체등으로 살아온 나의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삶이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나의 모습에 감사하고 있다.
1993년 4월 1일 인천 나 굴리엘모 주교님은 어느 본당 피정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재 여러곳에서 성모님께서 발현과 눈물로써 우리가 회두하도록 호소하고 계시며 특히 한국 나주에서 성모님께서는 윤 율리아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계신다. 메시지는 아직 교회에서 인준 받지 않았지만 교회의 가르침에 그르침이 없기에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의 자유이다. 그러나 교회의 장상에 순종해야 한다."라고 촉구하신 후 이어 말씀하셨다. "윤율리아 자매와 그의 남편 김율리오 형제는 나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로 두분 다 착한 부부요, 부모이며 열심한 평신도로서 신심이 뛰어난 분이시다. 율리아 남편은 국가 공무원이고 나주 본당 사목회장으로서 사회와 교회에 성실히 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미래의 교회는 이런 훌륭한 부부와 부모인 평신도들의 봉헌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나주 성모님 집에서 일어난 일들과 여러 사건들을 주의 깊게 보고 듣고 관찰한 바 교회의 가르침과 진실성에 문제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율리아 자매가 받는 낙태보속 고통, 늑방 고통, 오상 고통등 수많은 고통을 기쁘게 봉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제님들도 똑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우리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받으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 고통을 달라고 했던 율리아 자매가 받는 고통을 과연 우리도 "주여 찬미 받으소서." 또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하고 사제인 우리들도 받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본다.
끝으로 내가 보고 들었던 열매 몇 가지를 소개하며 끝내겠다.
낙태한 많은 자매들이 회개하고 냉담자들이 교회로 돌아오며 불화한 가정이 다시 화합하고 타 종교 및 교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등등.
이렇게 많고 좋은 열매들이 있었음은 성모님의 큰 은혜라고 생각한다. 사제 생활 22년을 회고할 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 살아왔던가! 이제부터라도 밖에서 맴도는 삶이 아니라 안에서의 기쁨과 사랑 평화가 넘치는 역동의 삶이 되어야겠다.
수많은 양떼들이 지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멸망의 길로 향해가고 있으니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사제로서 고해성사를 잘 주어 깨끗한 영혼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매 순간 우리 모두에게 사랑으로 오시는 주님!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고 늘 감사하게 하소서.
매일 매일 체험한 삶과 죽음의 신비 속에서
주님의 빠스카를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기도하고 희생하며 보속하는 삶이 되어
십자가 아래서 눈물 흘리신 성모님을 위로하게
하소서." 아멘.

1993년 5월 30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염주동 성당 주임 장홍빈(알로이시오) 신부

 

 

     성모님의 피눈물은 사랑의 호소

찬미 예수 마리아!
저의 소감은 이렇습니다. 눈물과 피눈물 향내등 기적 현상은 발달된 오늘의 검증방법이 어렵쟎게 진위를 가려 줄 것이니 조사가 시작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메시지는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메시지 내용이 파티마의 성모님 메시지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특히 낙태 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있음은 우리나라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표출되어 있으며 성모님의 피눈물은 이 죄악의 불길을 끄시기 위해 자녀들의 동참을 애타게 갈망하시는 사랑의 호소이며 세상에 널리 부각된 영향은 성모님께서 낙태 때문에 피눈물 흘리신다는 소문이 전파 되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어떻든 많은 사람이 나주 성모님의 집을 와 보고는 회개하는 삶을 살고 또 내적치유뿐 아니라 병의 치유도 많이 되었으니 이런 사실들이 성모님의 개입 하심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윤율리아 자매에 대해서 저는, 참 순진하고 말재주도 별로 없으나 진실하고 열심한 신자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말해서 본인에게는 이로운 것이 하나도 없고 위로나 아래로나 신들린 환상가로 취급받으며 많은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고 그를 아껴주는 사람은 아직도 소수이나 변함없이 외길로 나가고 있으며 교회에 순명하고 있으니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윤광제 다윗 신부

 

     성모님이 사랑하시는 형제, 자매 여러분께

제가 적는 몇 줄의 글은 성모 어머님의 현존에 대한 증언입니다.
싱가폴에서 온 우리 단체(14명) 는 성모님의 향기를 체험했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짧은 나주 방문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기적들을 듣고 그리고 체험했는데 특별히 율리아 자매님의 향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매번 드릴 때도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비디오를 통해서 우리는 율리아 자매의 고통을 보았고 그녀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역설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체험한 모든 것들 즉 율리아 자매를 통한 낙태 보속 고통과 눈물 흘리신 성모상의 손에서 느낀 맥박, 그리고 율리아 자매를 통한 성모님의 눈물, 피눈물이 어린 긴급한 메시지를 우리 나라로 가지고 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게 하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보내시어 세상의 죄인인 우리들을 경고하시기 위하여 또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성모님께서 더욱 많은 영혼들을 구하시기 위해 성모님의 시급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고 느낍니다.

1995년 5월 15일
프란시스 수신부와 동료들

 

 

     어머니의 사랑

지금까지 저는 나주를 수없이 많이 다녀왔으며, 많은 순례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많은 기적들과 치유들을 경험하고 목격했는데,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성모님의 사랑을 항상 느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라는 분을 통하여 당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낌없이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주고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영혼으로 선택된 탓에 받는 심한 고통들과 피로에도 불구하고, 율리아 자매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시간을 내어주며 관심을 주고 있습니다. 저도 사목사업, 선교사업에 바쁘게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돌보면서 하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고통과 피로가 심할지라도 항상 순진하고, 부드럽고, 사랑에 찬 자매님을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순례자들도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오는 성모님의 무조건적이고 흘러넘치는 사랑을 보고 있고 느끼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주에 오는 것은 곧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성모님께서 계시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성체 성사에 대한 테스트를 받다.
저는 1991년 5월 16일 나주 성당에서의 미사 중에 율리아 자매에게 성체를 영해준 신부입니다. 그 때 저는 필리핀에서 온 30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성체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율리아 자매의 입속에서 성체가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하여 저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체께 대한 사랑이 증가되었으며, 저는 성체 안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께 저를 더욱 가까이 이끌어주신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서 주님께서는 저를 테스트하셨습니다. 저는 필리핀의 리빠 시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면병과 포도주의 축성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성작을 들어 포도주를 축성했을 때, 저는 축성된 포도주, 아니 예수님의 성혈 속에 세 마리의 파리가 떠있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될 지를 몰랐습니다. 만약 세 마리의 파리를 건져낸다면, 그리스도의 성혈도 묻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이것이 나의 성혈임을 너는 믿느냐?"라고 묻고 계셨습니다. 영성체 때가 되었을 때, 저는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것이 당신의 성혈임을 믿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세 마리의 파리가 들어있는 성혈을 마셨습니다. 그 때 짙은 장미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그 때까지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만 향기를 주시는 줄 알았는데 주님 뜻에 어린아이처럼 "아멘"으로 응답할 때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었으며, 성체 성사안에 주님께서 참으로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을 지금 회고해보면서, 저는 주님께서 그처럼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애기가 탄생하다!
1993년 6월 필리핀의 순례단을 이끌고 나주를 방문했을 때, 저는 율리아 자매에게 저의 동생 팀과 팀의 아내 디타스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5년 동안이나 애기가 없어서 기도해 오고 있었습니다. 율리아 자매가 그들을 위해 기도드린 지 한 달이 지나서, 디타스는 임신을 했으며, 드디어 건강하고 잘 생긴 남아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천주님을 찬양합니다.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은혜를 내려주신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팀과 디타스는 나중에 저에게 말하기를, 율리아 자매가 그들에게 손을 대고 기도해줄 때, 전신에 뜨거움과 평화로움을 느꼈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의 강력한 중재를 통하여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제리 오르보스 신부, 그리스도 왕 신학교 1375
T.(632)721-7457
F.(632)727-1160

 

 

     1992년 5월 4일, 
           월요일부터 나주 성모상에서 흐르는 기름


나는 이 기사를 5월 16일(토요일) 에 썼다.
바로 1년전 5월 16일, 율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성체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다. 율리아의 혀 위에서 피로 변화되고, 또 그 혀위에서 흡수되는 성체의 기적이었다.
1991년 10월 2일, 나는 벨기에인이며 살레시오 회원인 한 사제와 함께 나주에 갔다. 이 사제에게 성모상을 더 잘 보여주려고(이 신부는 P.Victor Miller)  나는 성모상을 내 팔에 안았다. 잠시후에 작은 기름방울을 머리 위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끔 아직도 기름을 볼 수 있는지 알고자 나주에 전화를 걸었다. 매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4월 중에는 전화하는 것을 전혀 잊어버렸다.
5월 4일 월요일, 나는 성모상 앞에 또 다시 갔는데, 파라과이 선교사인 쥬안 마누엘 말티네(P. Juan-Manuel Martinez)  신부님과 함께 갔다. 잠시 기도한 후 나는 성모상을 내 품에 안았는데, 같이 간 그 신부님과 함께 기름을 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했던 것이다.
성모상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오, 이제 기름은 없구나. 다만 기름 방울이 솟아났던 자리에 검은 흔적만 있구나!" 내 말마디가 끝나자마자 기름방울이 솟아나오고, 다른 기름방울이 뒤이어 흐르며 성모상 밑에까지 흐르고 있었다. 우시는 성모상 뒤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기름은 성모상 뒤 중앙과 오른쪽에 나타났다.
첫 기름방울은 왼쪽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 신부와 나는 성모상을 붙잡고 있었다. 기름은 우리들의 손을 축축하게 했다. 율리아는 우리와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침상에 그냥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다락방(고미다락) 에 갔다.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안수하고, 그리고 성모님께서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현존에 대하여 아주 독특한 표시를 우리에게 주신 성모상을 뵈러 오라고 청했다.
 잠시후 율리아는 다시 우리와 함께 만났다. 그녀도 성모상을 두 손으로 안았다. 우리는 계속 성모상의 뒤만을 주시했다. 여러 사람들이 기도하러 왔다. 율리아는 성모상을 제자리에 도로 놓았다. 그녀는 등 우측에서 나온 기름을 주목하였고 다음 좌측도 주목하였다. 우리는 묵주의 기도를 드렸다. 정오쯤에 나는 광주에 가기 위해 나주를 떠났다. 오후에 성모승천 봉헌자회에서 통역하는 일을 하였다. 다른 신부님은 종일 성모님 옆에서 지냈었고 저녁에 다시 만났다.
 5월 5일 화요일, 우리 두 사람은 다시 성모상 앞에 갔다. 성모님 옆에서 늘 율리아를 돕는 협조자 박루비노도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얼마나 기름이 흘렀는지, 또 아직도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은 헝겊을 성모상 밑에 깔아 놓았다. 율리아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순례자 몇 사람이 왔다. 우리는 함께 묵주의 기도를 드렸다.
다른 신부님과 나는 오후 1시경에 성모님을 떠나야했다. 출발 전에 율리아가 매우 상쾌한 향기가 나는 기름이 스며든 축축한 헝겊을 우리에게 주었다. 나는 율리아에게 성모상 밑에 계속 헝겊들을 놓도록 일러 주었고 그녀는 그대로 했었다.
5월 14일, 나는 우편으로 보내온 이 헝겊들을 받았다. 이 헝겊들을 작은 비닐 봉투속에 한꺼번에 넣어 두었는데, 그 비닐 봉투는 그보다 좀 더 큰 봉투에 넣어 두었다. 두개의 봉투를 뚫고 나오는 향기는 매우 강하고 상쾌하게 풍겼다. 나는 벌써 이 작은 헝겊들을 거의 다 나누어 주었다. 율리아는 5월 4일 월요일, 성모상 가까이에 놓았던 "세가지"을 또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이"세가지"은 향기나는 기름으로 온전히 젖어 있었다.
 
-첫째 것:성모님의 사진(눈물을 보여주는) :이 사진 옆에 나는 작은 사진 하나를 두었다. 이 작은 사진 상본은 하느님의 종 빈첸시오 치마티 주교님, 일본 살레시오 관구의 설립자의 것이었다. 이분이 1958년 내가 한국에 올때 내 이름을 제출하도록 권고를 해주셨선 분이다. 그분의 상본도 기름으로 젖어 있었다.
 
-둘째 것:슈파니에의 성모님의 큰 사진인데, 블란서에서 보내왔을 때 벌써 기름에 젖어 있었던 것을 나주 성모상 옆에 내가 놓자마자 기름이 더 많아졌다.
 
-셋째 것:영국에서 보내온 작은 앨범이었다. 2개의 성체의 빵의 기적을 보여주는 사진들, 이 성체의 빵은 나주 성모님 사진들의 앨범 속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이 작은 앨범이 향기나는 기름으로 온전히 젖어 있었다.

1992년 5월 16일
한국,안양 파레몬도(현우)

 

 

     잊을 수 없는 날

95년 5월 21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쁜 날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내게는 무척 기쁜 날이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어떤 사람들은 나를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테니스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나이도 잊고 강한 승부욕 때문에 무리한 운동으로 오른쪽 무릎에 문제가 생겼다. 운동은 고사하고 걷기조차 힘들었다. 춘천의 모정형외과에 가서 진찰하니까 다리를 너무 써서 노쇠현상이니 무릎을 꿇지도 말고 운동과 등산도 말라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났다. 벌써 노쇠현상이라니 의사가 뭘 모르는구나하며 강남 성모병원 정형외과를 찾아갔더니 결과는 같았다.
그 후로 나는 3년반 동안 테니스는 물론 동명동 본당에 있을 때 이층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렸고 가정 방문할 때에도 몇 집 못 다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 5층은 반장들이 먼저 올라가서 확인하고야 난간을 붙잡고 올라 다닐 정도였다. 자동차 운전도 2시간 정도 하면 무릎이 마비가 되기도 했었다. 침도 맞아 보았지만 굉장히 아팠다. 나는 이 고통을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바친다고 이를 악물고 예수님께 봉헌하였으나 도저히 힘이 들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95년 5월 21일 오전 11시경 옥천동 성당 감실 앞에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내가 초청한 율리아 자매에게 기도를 부탁하자 율리아 자매는 무릎을 꿇고 강복을 받은 후 나에게 손을 얹고 간단히 기도했다. 그 때 내 오른쪽 아픈 다리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참 마구 흔들리더니 멈추었다. 그 순간 나는 '아! 치유가 일어나는구나.'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 다음날 가정 방문을 하면서 일부러 3, 4층 계단을 올라 다니고 계속 걸어다녀 보기도 했으며 테니스도 쳐보고 4- 5시간 운동을 해도 멀쩡했다. 나의 무릎은 완전히 치유되어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테니스와 등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5월 9일
춘천교구 강원도 신남본당
주임오상철(토마스 아퀴나스)

 

 

     일곱개의 성체중 마지막 성체가 피로 변하다.

1995년 7월 2일 10:00
89명 정도 목격했음.
싱가폴/말레지아:45명 한국:38명  홍콩:6명

두명의 사제 즉:괌에서 오신 피트 마르시알 신부님과 말레이시아, 시부 교구에서 온 저 프란시수 수신부.
성체중의 첫번째는 내가 영했고 그 다음은 피트 신부님, 율리오, 루비노, 로렌죠, 안드레아, 율리아 순으로 영했습니다.
저는 1995년 7월 1일 AM 03:45에 일어났던 십자가로부터 나타났던 성체의 기적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성체 문양은 각기 달랐으며 마지막 성체가 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제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보았고 손가락에는 피가 묻어 나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 피를 손수건에 묻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진짜이며 진실임을 증언합니다.
이 일은 또한 마르시알 신부님도 증인이 되십니다.
그 성체는 오후 10:50에서 11시 10분까지 피를 흘렸습니다.
저는 율리아의 입안과 혀를 자세히 살폈으나 그곳에는 아무 이상이나 어떤 상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피가 성체로부터 나온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프란시스 수신부

 

 

     직장암이 치유되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평화가 있으시기를! 괌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4월 20일, 부활 첨례 다음 월요일에 성주간 동안 나주를 다녀온 5명의 부인들 중의 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그날 저녁에 성 안토니오 교구의 성체성사 소성당으로 오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소성당에 그 순례단의 대표격인 카마죠부인께서 쥬리아가 보내신 것이라면서 나주 성모님 상과 비슷하게 만든 아름다운 성모님 상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활절 선물을 자매님께서 보내주신데 대해 사랑하는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성주간 일본의 아키다를 방문하는 동안, 성 목요일에 성체의 여종회 수녀님들에게 강론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주님께 부활절 선물을 하나 주십사고 청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 사랑스런 나주로부터의 성모님 상을 부활절 선물로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주에서 온 이 성모상은 이제 여기 제가 미사 때 사용하는 제대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얼마동안 카마쵸 부인께서 성모상을 빌려간 일이 있었으나, 곧 돌려주었고, 지금은 제가 기거하는 사제관에 모셔져 공경받고 계십니다. 율리아 자매님,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또 우리가 만날 수 있겠지요? 아마 나주에서 그렇게 되도록 저는 기도합니다.
 현재 저의 대장은 정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기도로 저의 직장암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때 치유를 받은 후로 위장이 아픈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변을 보는 것도 정상이 되었습니다. 천주 성부와 그분의 독생 성자, 성모님, 그리고 자매님께 끝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따뜻한 사랑의 기도와 축복을 드립니다.

1992년 6월 15일
미국 괌도에서 피트 엠 마르시알 신부
T.(503)669-844

 

 

     참으로 성체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성모님의 승리!
율리아씨는 이 날 앞으로 다가올 징벌에 대한 환시를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른 성모님 발현지들에서 주신 메시지 내용들과 부합되나, 나주에서의 환시는 매우 희망적인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즉, 율리아씨는 파티마에서 예언된 내용 그대로의 성모님의 승리를 본 것이다.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를 예언하셨을 때 성모성심으로부터 강한 빛이 비추어 나왔으며, 이 빛을 받은 세명의 목동들은 하느님의 실존과 사랑 속에서 몰아적인 상태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으며, 동시에 성체 안에 참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도 누차 지적되었듯이, 앞으로 올 성모 성심의 승리란 인류가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이로써 성총과 사랑이 가득찬 새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날 율리아씨가 본 환시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즉, 그녀는 성모님께서 강한 빛에 싸여서 암흑에 뒤덮인 이 세상으로 오시는 것을 본 것이다. 성모님의 머리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는데 곧 성체로서 하느님의 의노의 징벌이 중지되고 평화와 기쁨의 새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날 나주에서 성모님께서 주신 메시지 중에 특히 인상적인 것은, 파티마의 루시아를 통해 발표된 성모성심의 승리에의 공식이 나주에서 정확하게 그대로 재확인된 것이다.
 즉, 스카풀라, 묵주신공,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의 성화이다.

1993년 9월
워싱턴 모시락 피스오브센타에서
죤 엠 해퍼드 신부

 

 

     천명이 넘는 신자가 목격한 7개의 성체기적

저는 말레이지아 시부 교구의 한 로마 가톨릭 사제로 이름은 프란시스 수효호이며 최근 1995년 7월 1일 오전 3시 45분에 일어난 나주 성모님 집의 성체 기적에 대한 증언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전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온밤을 지새웠습니다. 저는 율리아 자매의 오른편 쪽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한 어린아이가 성모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녀는 십자가 상 앞으로 뛰어나가더니 무엇인가 손으로 떨어지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7개의 작은 성체가 성모님상이 모셔져 있는 제대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보았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일곱 성체 기적은 적어도 10개국 이상에서 온 천명이 넘는 숫자가 목격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우리를 성체 안에 계신 당신 아드님께로 돌아가게 하기위한 선물임을 믿습니다.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프란시스 수 신부
(싱가폴에서 온 45명 순례객과 함께)

 

 

     한국을 사랑하시는 성모님

20세기에 살고있는 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 성모님의 여러곳에서의 발현과 그 분이 주시는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흔히는 이러한 발현이나 메시지는 별로 관심없이 지나쳐 버리거나 아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성모님의 발현과 메시지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이미 교회에서 인정한 루르드의 성모님이나 파티마의 성모님에 관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발현과 메시지가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이 점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다. 우선 가까운 나주의 성모님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2년 전에 본인은 나의 이웃 본당 신부님과 함께 직접 나주에 갔었다. 남의 말만 들어서는 부족하다고 생각됐기에 직접 찾아간 것이다. 방명록에 싸인도 하고 비디오도 보고 마침 성모상에서 기름이 흐르는 것을 목격하고 직접 손으로 찍어 보기도 했다. 당시는 윤율리아를 못 봤으나 루비노 회장을 만나서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나주본당 주임신부를 만나러 갔다. 신부님께 몇가지를 물었다.
첫째, 율리아가 받았다는 메시지가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 있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없었다"고 하였다.
둘째, 율리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대답은 "그녀는 아주 열심이고 겸손하고 인정이 많은 모범 신자"라고 했다.
세째로 그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 때 신부님은 "그는 지금 본당 사목회장"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나는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런 하자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7- 8년 동안 교회의 가르침에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메시지일뿐 아니라 열심한 신자이며 행복한 모범적 가정을 이루고 있는 율리아를 생각할 때 참으로 성모님께서 하시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교회의 최종 판결이 있을 때까지 단언은 못하는 것이지만 아직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는 한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22일 강릉 옥천동 본당에 율리아 자매가 초청되어 3시간 동안 피정 강론을 하게 되었다. 나는 현장에서 꼬박 앉아서 잘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친절하게, 조리있게, 유익하게 잘 지도하는 강론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 날 오기 전에 3일 동안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 솟는 힘인지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율리아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특은(카리스마) 을 받을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특은은 그만큼 부담이 가는 은사이며 잘못하면 수렁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를 받았다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를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 분명히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특은을 주셨으면 그만큼 댓가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율리아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하루 속히 모든이들이 받아들여서 닥쳐오는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본인은 옥천동 피정을 계기로 율리아와 함께 잠깐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강한 향기로운 장미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성모님의 현존의 표시라고 한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짧은 시간이지만 성모님께서 율리아를 당신 도구로 쓰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율리아를 통해서 성모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85년 7월 18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상당한 분량이다. 본인은 이 메시지를 자주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유익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대의 징표를 잘 알도록 해준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어 있는데 교회는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성경에 공적 계시가 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에 상응하는 그때 그때의 메시지가 오랜 세월 동안의 공백을 메워주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주의 성모님 메시지가 하루속히 교회의 인정을 받고 널리 보급 실천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1995년 6월 19일
설악동 성당 주임신부 전세권(바오로)
T.(0392)34-7625

 

 

     회개의 눈물로 신부님의 직장암이 치유되다.

친애하는 나의 쥬리아!
예수님과 성모님의 평화안에서 안녕하십니까? 병실 침대에서 보내는 인사입니다. "... 병이 다 나으실 것입니다."라고 쥬리아는 왕이신 그리스도(크라이스트 더 킹)  성당에서 빛나는 눈과 깊고 사랑스런 눈으로 나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날 성당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 성당에서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율리아씨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셨는데 자매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자매님은 성가를 어떤 때는 아주 강하게, 어떤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부드럽게 불러 주었습니다. 자매님이 그렇게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저는 울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고, 그냥 엉엉 울었습니다. 메시지 말씀 시작부터 자매님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저는 울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이 저를 감싸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매님께서 성가를 부르실 때 저는 성모님께서 저를 위안해 주시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율리아씨의 목소리가 사랑하는 성모님의 모성애로 저를 안아 주시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성모님께서 언제나 저를 돌봐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같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 저는 바로 그 순간에 성모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심을 느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나의 몸 전체를 확 잡은 것 같았습니다. 그전에는 제가 이런 마음의 평화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일은 1992년 2월 9일(일요일)  크라이스트 더 킹(오르보스 신부님의 본당) 성당에서의 일이었습니다.(오전 11시반 미사)
그 다음날 1992년 2월 10일 저녁 포베스 공원에 있는 산 안토니오 성당에 저는 다시 갔었습니다. 저는 또한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신부님으로부터 한국 나주에서 가져온 성모상(우시는 성모상과 비슷하게 만든) 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 성모상을 먼저 제단위에 모셨습니다.
 미사가 끝난 다음에, 자매님은 성가로 우리를 위안해 주셨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자매에게 다가갔습니다. 자매님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때 제가 어떻게 느꼈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 순간에 성모님께서 제 배를 어루만져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안아주시고 친구(親口) 해 주신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행동에서 인자하신 성모님께서 저를 위안해 주시는 모성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쥬리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자매님은 성모님의 특별한 친구이십니다. 다정한 행동과 말씀 그리고 기도로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는 쥬리아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병이 나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자매님은 통역관을 통하여 이야기 했지만 저는 그대로 믿었습니다. 자매님의 아름답고 아껴주시는 미소가 저의 건강이 꼭 회복된다는 증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의 노래는 나의 영혼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틀림없이 건강할거라고 자매님은 정말 진정으로 저를 위해 기도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이렇게 쥬리아를 두번 만난후 하루지나서 제 주치의사에게 제가 느꼈던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제 의사중에 마취전문의가 말씀하시기를 "'병이 나을 것입니다.'라는 말이 미래의 것이지, 지금 낫는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2월 13일(1992년) 저는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대장을 10cm 잘라냈습니다. 그런데 다음의 사실을 발견하고서 모두 놀랐답니다.
첫째 : 수술하는데 수혈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둘째 : 병변부위의 절제술이 필요치 않아 결장조루술(대변이 배로 나오는 수술) 도 시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셋째 : 1992년 1월 7일 시술받았던 1차 수술부위를 10cm 다시 잘라내게 됐는데 암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실제로는 다시 절제할 필요가 없었는데 수술팀의 권유와 노파심으로 절제했다고 함)  저는 1월 7일 암수술을 했는데 암이 또 퍼져 있다고 해서 괌(Guam) 에서 이번에 다시 수술하러 왔던 것입니다.
넷째 : 전신마취한 후에도 기억력은 조금도 상실안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수술후에 내 기억력이 손상되었기에 이번에도 손상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습니다만 아무런 사고가 없었습니다. 수술후 7일째부터 저는 딱딱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화장실에 갈 수가 있었는데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대장수술후 현재까지 아무 탈이 없습니다. 밥 먹고나면 이젠 한 번 아니면 두 번도 대변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마 제 경우가 빠르다고 말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약 6개월 후면 저는 저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겠지요.
저는 그 날 처음 통역관을 통해서 들려온 "당신의 병은 나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저는 저의 병이 나아졌다고 믿습니다. 아마 저는 의사가 그 때 수술 안했어도 다 나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는 암이 더 퍼질까봐 두려워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원래가 당뇨병이 있었고 저혈당 증세에 쉽게 빠지며 수술할 때 많은 문제점이 있어, 제 주치의사와 병리학 전문의사, 대장전문 외과의사, 그리고 다른 병원의 외과의사들까지 합의하여 수술을 결정해서 2월 13일(1992년)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자비하신 주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전부 의사님들의 마지막 결정을 따라서 했습니다.
저는 쥬리아씨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괌에 한번 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제가 쥬리아씨를 괌으로 초대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한답니다. 나의 다정한 기도와 많은 안부를 쥬리아씨와 가족에게 보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모님의 사랑속에서 다시 당신을 보게 되기를 진정으로 빌며...

피트 마르시알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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