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은총은 강물처럼

 1998 년 증언

title_left.gif

title_left2.gif

   1998 년 증언

   1999 년 증언

   2000 년 증언

   2001 년 증언

   2002 년 증언

   2003 년 증언

   2004 년 증언

   2005 년 증언

   2006 년 증언

   2007 년 증언

   2008 년 증언

title_left3.gif

 

 

    
   2000.gif

cross2.gif 목요 성시간을 참석하고 아이가 깨끗해지다. - 최명임 베로니카

cross2.gif 뉴질랜드 서정수 젤마노 형제의 증언 - 서정수 젤마노

cross2.gif 중계동 채안나 자매의 증언 - 채영애 안나

cross2.gif 성모님 물로 두드러기가 치유된 노 도미니카 자매의 증언 - 노연순 도미니카

cross2.gif 정 소화데레사 자매님의 증언 - 정 소화데레사

cross2.gif 멕시코에서 온 Macedonio De Hoyos 형제의 증언 - Macedonio De Hoyos

cross2.gif Quang Ton 의 증언 - Quang Ton

cross2.gif 두 번씩이나 죽음에서 살려주시고 가정 성화의 은총까지 베풀어 주신 - 윤정아

cross2.gif 나주 성모님께 은혜받은 카타리나 자매 - 윤정아 카타리나

cross2.gif 구 세실리아 자매의 증언 - 구정숙 세실리아

cross2.gif 강 알비나 자매의 증언 - 강경희 알비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은 록 폴의 증언 - Mr. Rock Paul

cross2.gif 나주 성모님은 해결사 - 이연호 아가다

cross2.gif 성모님 젖으로 변한 물 한방울로…- 원동선 마리아

cross2.gif 성모님의 물로 응급실에도 갈 필요가 없었어요. - 한덕희 도로테아

cross2.gif 성모님의 물(젖)로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다. - 강진술 젬마

cross2.gif 이혼을 화해로 이끌어준 나주 성모님의 물 - 최 안나

cross2.gif 손이 안펴지고 떨려서 밥도 못먹었는데 이제는 손이 펴집니다. - 박 안나

cross2.gif 보잘 것 없는 저에게도 치유의 은총을 주시다니!- 조기학 아우구스티노

cross2.gif 현대의학으로도 불가능했던 불치의 병이 나주 성모님 물로  - Mrs. Omg Chan Sav

cross2.gif 도도 하지 않던 아들이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 Valti and Rostom

cross2.gif 일주일에 7일간을 나주 성모님을 위해 일하는 - DAVE Rodger Dave Rodger

cross2.gif 성모님 동산에서의 소주 내음은? - 김경순 데레사

cross2.gif 고정애 요셉피아 자매 증언 - 고정애 요셉피아

cross2.gif 조소까지 했던 나에게 장미향기로 다가오신 성모님 - 방 을생

cross2.gif 임 요안나 자매님의 증언 - 임재희 요안나

cross2.gif 사망했기에 포기해야만 될 내 아들이 나주 기적수로 살아났습니다. - 정경림

cross2.gif 나쁜 성격도 고쳐주시고 화해 시켜주신 나주 성모님 - 심귀달 막달레나

cross2.gif 내가 회개하므로 남편도 변화되고 가정도 변화되었습니다. - 이 미카엘라

cross2.gif 회개로 얻은 성모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총  - 김태분 엘리사벳

cross2.gif 성모님 물의 기적과 치암이 치유된 기적 - 유 마리아

cross2.gif 20년동안 불구였던 다리가 나주에서 치유 되었습니다. - 정순애 막달레나

cross2.gif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신 나주 성모님 - 신여화 수산나

cross2.gif 네바다 우바울리나 자매님의 편지 - Mrs. P. Peacock (우 바울리나)

cross2.gif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나주 성모님을 전할수 있도록 강해졌습니다 - 정해경

cross2.gif 조수희 레지나 자매의 은혜 증언 - 조수희 레지나

cross2.gif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 박준수

 

   line_b1.GIF

      

목요 성시간을 참석하고 아이가 깨끗해지다.

지난번 목요 성시간에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마치 바람결에 실려오듯 짙은 향기가 저에게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있던 잘못과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잘못들이 떠오르면서 엄청나게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회개의 은총으로 그 동안 제가 잊고 지냈던 저의 죄를 알게 되었고 회개할 수 있게 되었는데 성시간 기도 내내 제 영혼이 얼마나 더러운가, 그리고 얼마나 추악한지를 은총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특히 묵주기도를 드릴 때는 아주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성모님께서 정말로 살아 계신 모습으로 제대 위를 왔다 갔다 하셨고, 또 양쪽에는 천사들이 계시는 모습이 마치 안개처럼 뿌옇게 서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요 성시간에 우리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메시지 말씀처럼 정말로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희년 전대사를 받기 위하여 순례 성당에 미사에 가면 그때도 성모님께서 향기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대사를 받기 위하여 순례 성당에 미사를 가면서도 정작 목요 성시간을 잘 지키는 영혼들에게 주님께서 전대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지 말씀을 까마득히 망각하고 목요 성시간을 오히려 잘 준비하지 못한 채 참석할 때가 있었는데 이런 저에게 이상하게도 희년 미사만 가게 되면은 아이 얼굴이 온통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얼굴에 각질이 생기면서 갈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목요 성시간에 아이하고 함께 참석했는데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아이의 얼굴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깨끗해지면서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기도를 진행하는 봉사자 분이 목요성시간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시면서 목요 성시간을 잘 지키는 영혼들에게 예수님께서 전대사를 주시겠다고 하셨으며 성시간에 참석한 모든 영혼들에게는 성혈로 목욕시켜 주시겠다고 메시지 말씀을 통해서 약속해 주셨다고 설명해 주면서 성시간을 잘 준비할 것을 당부하였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목요 성시간은 잘 준비하지 못한 채 참석하면서 전대사를 얻겠다고 순례 성당에만 ?아 다니던 잘못을 깨닫게 되었으며 목요 성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고 성시간을 참여하기 전에 고백성사를 드린 뒤 미사와 영성체를 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잘 준비하고 성시간에 참석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기도하는데 굉장히 마음이 불안하면서 마치 아이에게 무슨 고통사고 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호천사께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를 드렸는데 정말로 아이에게 교통사고가 날뻔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지켜주시고 수호 천사님이 보호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00년 12월 21일
최명임 베로니카
광주시 서구 화정 2동 768-10

 

 

뉴질랜드 서정수 젤마노 형제의 증언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정수 젤마노입니다.

먼저 이 은총의 장소에 앉아있는 자체 만으로도 주님과 성모님께로 부터 크나큰 은총을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계신 모든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현재 머나먼 남쪽나라에 위치한 뉴질랜드에 살고 있으며 10년전에 이민한 이민 1세대입니다.  10년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하여 살게되었지만 사실은 이곳 나주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입니다.

저는 광주에 있는 사례지오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부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주의 성모님을 알게된 것은 불과 몇 개월전인 바로 10월 25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느날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허리를 다쳤는데 몹시 다쳐 이웃에 사는 분이 침을 잘 놓은 아주 유명한 분을 소개해 주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집은 조선 침으로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 아픈 침을 1일주일 정도 맞기 시작했는데 마침 원장이 아주 신심이 두터운 세실리아라는 본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는데 어느 날 저에게 나주 성모님의 대한 작은 소책자가 담겨져 있는 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나주 성모님이 무엇을 어쨋다는 얘기야' 하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첫장을 넘기는 순간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나주가 고향인 내가 나주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하면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밀려들었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겨서 나주에서 나오는 메시지들과 모든 것을 전부 요청했습니다. 그분은 나주에 대한 소식지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나주에도 두 번이상 다녀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건네준 소식지들을 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모두 다 읽어 보았습니다.  그중에 "은총은 강물처럼"을 읽으면서 '아! 나주를 반드시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저의 마음을 재촉질 했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묵주를 만져보지도 않고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을 살았던 제가 나주 성모님을 알게된 그순간부터 묵주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묵주의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계속 묵주만 들고 있다보니까 하루에 60단 70단 80단 100단 120단 이렇게 자꾸 늘어났고 기도를 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에 살아왔던 많은 일들이 부끄러움과 함께 죄스러움이 다가오면서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왔던 죄책감으로 괴로운 나머지 한없이 울다가 지쳐서 어느 날은 참 힘들었던 시간도 있지만 옆에 있던 저의 아내 유스티나도 저를 위로하면서 저와 함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인물에 6월 30일, 8월 15일, 10월 19일, 11월 24일, 12월 8일이 성모님의 큰 기념일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중 10월 19일이 가장 가까운 날이었고 또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는 기념일 이라고 하여 저의 집사람과 함께 10월 19일날에 한국 나주에 가기 위하여 묵주의 9일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묵주의 기도를 해나가다가 너무 놀난 것은 묵주의 9일 기도가 끝나는 날인 54일째 되는 날이 바로 10월 19일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날짜를 19일에 끝날 수 있도록 맞춘 것이 아니었기에 이것은 바로 성모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반드시 나주에 가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굳혀지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오기 일주일전 나주에 전화를 해서 "길을 안내해 주십시오" 했더니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어서 18일날 와서 미리 예약도하고 숙소도 정하여 성모님을 만날 준비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서 그동안 나주 성모님을 찾아 오게끔하기 위하여 준비를 시키셨는데 9일 기도뿐아니라 뉴질랜드에는 ME 교육이 거의 없는데 마침 한국 대표자로 파견되어 그 기간동안 ME 교육도 부인과 함께 할수있었으며 정말로 나주 성모님을 뵙고는 아내와 함께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너무나도 잘 못살아왔음을  성모님께서 매순간 깨닫게 해주셨기에 정말로 너무 많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사랑에 흠뻑빠진 저는 10월 19일날 나주에 와서 12월 8일 현재까지 뉴질랜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주를 맴돌고 있습니다.

성모님께 받은 은총이 너무도 많지만 일일이 다 자랑을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선 것 자체만으로도 저로서는 또한 엄청난 은총이기에 여러분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자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12월 8일
서정수 젤마노
5 BC Mondisere Apt. 173 Hurstmere Rd.
Ta KAP Uda Auckland Newzealand

 

 

중계동 채안나 자매의 증언(나주 성모님 기적수로 아이를 갖게됨)

두번째로 나온 중계동에서온 채안나 자매님은 불교 집안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시집 식구들과 남편과 끊임없는 가정 불화로 신자가된지 13년이나 되었지만 용서가 되지 않아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았는데 나주에 와서야 비로소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상처도 치유가 되었으며 이제는 며느리를 포함하여 온집안 식구들이 성화되는 은총을 받았다 한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 기념일에 율리아 자매님이 혀로 무수히 죄짓는 많은 사람들과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대신 하여 불의 고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와서 메시지를 읽다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할때마다 입에서 구더기가 ™“아져 나오며 이 구더기는 발로 짓밟거나 불로 태워도 없어지지 않으며 남까지 함께 죄짓게 만드는데 반면에 사랑의 말을 할 때 타지 않던 구더기들이 녹아버린다는 메시지를 읽고 그동안 남을 비판하고 판단해왔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되어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친구의 딸이 시집을 간지 3년이 되어도 아이를 못가져서 애를 태우기에 작년 11월과 12월 두번 걸쳐 기적수를 가져다 먹였는데 기적수를 가져다 준지 딱 두 번만인 12월에 아이를 가져 아들을 낳았다 한다.

그리고 그친구 아들도 역시 장가를 든지 3,4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어 그 집 엄마가 아이 들어서는데 좋다는 보약이란 보약을 다 먹여도 생기지 않아 성모님 물을 가져다 주면서 개신교에 다니는 그집 아들에게"성모님 물을 믿고 신뢰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지 만약에 의심을 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지 않는다면 성모님 물을 가져다 줄수 없다."고 하니 "가져다만 주면 믿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먹겠다"고 확답하여 10월달에 성모님 물 3병을 가져다 주면서 "성모님 이 가정에 자비를 베푸시어 가톨릭으로 개종도 하게 해주시고 아이도 갖도록 축복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면서 가져다 주었는데 성모님 물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하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옆집에 사는 데레사란 자매도 허구한날 부부간 불화로 가정 파탄 직전에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주었더니 얼마 안있어 완전히 성가정으로 변화되었다 한다.


2000년 12월 8일
채영애 안나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미로아파트 102동 1408호
전화 935-0247

 

 

성모님 물로 두드러기가 치유된 노 도미니카 자매의 증언

서울 갈현동 성당에 노 도미니카 자매님의 증언입니다.

애를 낳은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많이나 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몸이 너무 안좋아 병원에 갔더니 약 부작용이 심해 해독을 시키려 했지만 그것도 어렵게 되어 우선 약부터 당장 끊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성모님께 "저 인제 딱 죽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아요?" 하고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저희 남편도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기에 나주 성모님 물을 가져다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에 난 두드러기를 성모님 물로 씻으면서 바르고 먹고 하면서 기도를 하였는데 약 한달만에 두드러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시가서 검사를 했더니 모든 것이 정상치수로 돌와 왔다면서 의사가 "아줌마 도대체 어떻게 된 입니까?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라고 하면서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산부인과 계통에 질병에 걸려서 무척 고생을 했고 약으로도 고칠수 없다고 병원에서 말하던 병이 '나주 성모님께서 그렇게 힘든 두드러기도 치유시켜주셨는데…' 하는 믿음으로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마셨는데 이번에도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주님 성모님 찬미와 영광받으소서

 
2000년 12월 8일
노연순 도미니카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 171-3
전화. 352-6160

 

 

정 소화데레사 자매님의 증언

나주를 다닌지는 1년이 되었는데 남편이 7년째 투병중이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올해 1월 1일에도 식구들이 다같이 나주에 오기를 원했지만 차비가 없어서 올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올때는 아는 형님이 "이번엔 나주에 식구가 전체 다 가지?" 하기에 "아휴 저만 갈 것 같아요." 라고 했더니 그분이 "아니야 갈 수 있을거야" 하여 "아멘" 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복지 매장에서 물건살 때 받은 사은품 티켓 경품 추천을 한다고 하여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쌀을 샀더니 표를 4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40분 후에 추첨이 시작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상품을 다 탔지만 저희만 아무런 경품도 당첨이 안되어서 딸이 창피한지 "엄마! 그냥가요." 라고 하여 "그래" 하고 막 나오려다가 성모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현금 1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당첨되어 그 자리에서 현금 10만원을 받게 되어 그 돈으로 나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차비로 아이들과 함께 나주에 와서 성모님의 동산에 갔는데 아이들이 숨을 못쉴 정도로 향기가 많이 난다면서 "엄마 이 향기가 어디서 나는거야? " 하면서 너무나 신기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스카풀라를 구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스카풀라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면서 "아 그 향기다, 엄마 산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난다"고 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도 아픈데 제부도 갑자기 전신마비가 와서 병원에 갔더니 신경세포에 세균이 들어와서 그런 증상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도 자꾸만 쓰러졌지만 병원에서는 좀 더 두고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온다 했습니다. 동생네는 아무도 성당에 다니지를 않았지만 나주 성모님 물을 자주 가져다 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의 형제 자매들과 기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상체가 움직였고 7월 말부터 계속 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걷는 연습까지 할 정도로 거의 나았다고 합니다.

제가 성모님 물을 떠간 것은 남편을 위해서 였지만 제부가 낳은 것을 보고 사랑을 서로 나눌 때 성모님의 사랑이 더 멀리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2000년 12월 2일
정 소화데레사
인천시 서구 신현주공 아파트 25동 401호
전화) 032-581-4515

 

 

멕시코에서 온 Macedonio De Hoyos 형제의 증언

저는 멕시코에서 순례왔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와서 많은 은총을 받았으며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제가 나주에 오게된 동기는 성모님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하여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던중 키워드로 our lady를 쳤는데 우연히 나주 성모님 사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설명이 전부 한국말로 되어 있었기에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신부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신부님께서는 "성모님께서 지금 당신에게 오신 것이 중요한 것이지 말뜻을 알고 모름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저에게는 아주 특별하고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으로 기도하면서 말뜻을 찾기위하여 필리핀, 하와이 등 성모님의 발현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여기저기 콘택을 해보았지만 나주 성모님에 관한 정보를 얻을수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시도끝에 미국의 분도 형제님과 어렵게 연결이 되었으며 나주 성모님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듣을수 있게 되었기에 저는 주저하지 않고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집에 도착한 그 다음날인 어제 성모님 산에 갔었을 때 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할때마다 성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싱싱한 장미꽃을 봉헌해 왔기에 오늘도 성모님 동산에 가서 장미꽃 바구니를 성모님 상앞에 봉헌을 한뒤 성모님 상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있었는데 해가 거의 진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성모님 상에서 강한 빛이 발산되어 나오고 있었으며 마치 성모님 상은 살아있는 모습처럼 생동감 있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 빛은 초록색 빛으로 굉장히 아름답웠으며 정말로 살아계신 듯한 성모님의 망토 자락에서 빛이 발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때 성모님 상의 손에서 빛이 퍼져 나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실제로 양손에서 빛이 나오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경이로운 현상 앞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나를 찾아주어 고맙다. 여기에 참 잘왔다." 하고 환영해 주시는 징표임을 확신할수 있었으며 저에게 이렇듯 사랑으로 환대해주신 나주 성모님의 사랑에 너무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도 성모님께서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은총을 모든 형제자매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2000년 11월 24일
Macedonio De Hoyos,
52-8-3031218 Versalles 112 col. Valle San Angel
San Pedro Garza Garcia N.L.  Mexico
  

 

 

Quang Ton 의 증언

안녕하십니까. 다시 만나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미국에서 순례온 저는 작년에 나주에 올 때 라옹신부님과 조카와 함께 왔는데 함께온 조카 요셉은 마귀가 들려서 무척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나주를 떠날때 쯤해서 치유를 받게되어 좋아지더니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영혼 육신이 많이 변화되어 묵주의 기도도 열심히 하게 되었으며 저 역시도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많은 변화가 되었기에 이번에 나주에 올때는 가족과 아는 친척 전부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두분의 신부님을 모시고 10여명의 가족이 전부 나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5년이나 되었지만 아이가 없었던 저에게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작년에 부인과 함께 나주를 다녀갔고 이번에도 함께 나주를 왔는데 도착한 다음 날인 어제 아내가 임신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일은 저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기적 그 자체입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0년 11월 24일
(Quang Ton,   quangton@cvtv.net)
 

 

 

두 번씩이나 죽음에서 살려주시고
가정 성화의 은총까지 베풀어 주신 나주 성모님

 + 찬미 예수님

비천하기 이를데 없는 이 죄녀에게 한없이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신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늘 희생과 보속으로 임종의 고통까지 바치시면서 기도하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직접 만나 뵙고 마음 전하지 못함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렇게 서면으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성모님께 받은 은총과 특별한 체험들을 다 이야기하자면 노트로 한권을 쓴다해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도 많고 많지만 그 중에 몇 가지만을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년 5월 27일날 암을 치유 받게 되었는데(음식은 물론 물도 삼키지 못하는 중증 환자로 고통중에 미이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중 나주에 가서 회개의 은총은 물론 영혼까지 치유 받았는데 그 뒤 나주를 멀리하게 되었다. 1999년 2월 산부인과 조직 검사에서 악성 종양이 크게 자라 온 집안이 초상집이 되었지만 그때야 나주를 다시 찾고 난소암이 치유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주위에 많은 분들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믿게 되었습니다.

먼저 저희 고모님이 신자이신데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강하게 부인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치유를 받는 것을 보고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물을 드시고 특별한 체험을 하신 뒤 급기야는 2000년 1월 1일 성모님 집을 순례오게 되었는데 회개의 은총을 얻어 깊은 회개를 하게 되었으며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나주성모님께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던 저희 친정 어머님도 1월 1일 성모님 산에 가시어 기도하시던 중 한약 다리는 냄새와 짙은 장미향을 맡게 되었는데  회개의 은총으로 그 동안 잘못 살아왔던 일들을 깨닫게 되어 회개하게 되셨으며 남동생과 함께 매달 첫 토요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저희 친정 엄마, 남동생이 함께 첫토요일을 지키게 되면서 참으로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저희 시어머님께서도 1월초에 마리아란 이름으로 대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영세한지 10년이나 되었지만 10년 동안 거의 냉담 상태였기에 한마디로 잠을 자고 있는 영혼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막무가내이던 남편이 결정적으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냉담을 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5월부터 낚시에 빠져 주일날이면 낚시터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벌은 돈으로 낚시도구를 마구 사들였고 허구한날 룸사롱을 다니면서 하루 저녁에도 한달 월급에 해당되는 돈을 만취상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으며 인사불성 상태에서 사람들과 싸우고 들어오는 등 거의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는 그런 방탕의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8월, 첫토요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하고 돌아간 뒤 어느 날 제가 도저히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만취상태에서 많은 일을 저지른 채 남편은 혼자 집에 있다가 나주에서 모셔와 기도하던 성모님 상이 아름답게 보여 왼쪽 가슴에 성모상을 안고 오른쪽 가슴에 예수님 상을 안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저는 너무나 죄인입니다. 죄송합니다. 성모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절 지켜 주십시오" 하면서 생전 하지도 않던 기도를 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자려고 눕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나게 짙은 장미 향기가 나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와 함께 어디에 다녀온 뒤에 먼저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던 남편이 큰 소리로 저를 부르면서 "선미엄마, 빨리 들어와 봐!" 또 "장미 향기가 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남편과는 달리 향기를 전혀 맡지를 못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부터 남편은 만나는 교우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래도 성모님이 나를 이끄시는 것 같으니 성당에 가야겠어" 하면서 마침내 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끝없이 이어졌으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도 끝이 없었는데 급기야는 제가 정신병자로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속된 고통 속에서 저는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9월 24일 마침 성당에서 1박 2일로 설악산을 가게 되었는데 저는 무작정 등산복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제가 등산을 가는 줄 알았고 그 동안에 일이 미안했는지 남편도 갔다오라고 하면서 권하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악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혼자 나주 성모님께 왔습니다. 성모님 집에서 성모님 물을 주신 산까지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걸었는데 그때 저의 마음은 밖에서 놀다가 다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뛰어들어가듯이 그런 심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머니 상처로 짓 이겨진 제 마음을 한없는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제 영육을 씻어주세요' 하고 성모님께 사랑과 위로를 구하면서 성모님 동산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12시 40분경이었는데 갑자기 태양이 성체 모양으로 바뀌면서 태양 주위가 분홍빛으로 둥글게 비추어지기 시작하면서 성모님이 모셔진 자리 위에서 비추더니 성모상이 모셔진 그 주위 모두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지면서 성모님 옷 색깔까지도 노란 빛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넋이 나간 상태로 앉아서 바라보고 있다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예수 성심 상이 모셔진 곳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손을 붙들었을 때는 정말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지고 있는 것과 똑같이 느껴지면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오열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메시지 말씀과도 같이 실제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복합적인 사랑이 내려지는 곳, 도대체  어떻게 그 은총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

그렇게 혼자서 순례를 다녀온 후에 남편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10월 첫 주일날 10년 만에 견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첫 토요일날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지 못하고 친정 엄마와 남동생이 갔었는데 그날 율리아 자매님께서 여러 가지 고통과 함께 밑이 빠지는 고통도 심하게 받으셨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심한 치질을 몇 십년 동안 앓고 계시던 저희 친정 어머니께서 그 날 완전히 치유를 받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 저희들은 참으로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11월 첫 토요일 날은 유난히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서 차안에서부터 기도를 드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구역에서 같이 가기로 했던 자매님 한 분이 부천에서 차를 놓쳐서 1학년 딸 아이를 데리고 고속버스로 가겠다는 연락을 해왔고 우리 모두는 안타까워했습니다.  차 안에서 많은 분들이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의 체험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문득 저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도 성모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이기적인 제 자신과 저의 부족함 모두를 성모님께 아뢰면서 '이 비천한 죄인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고 어머님 모습, 어머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을 주세요.' 하면서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어떤 자매님이 "자신은 나주 성모님 집에 오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다 성모님께 함께 하는 마음으로 봉헌한다."고 하였는데 차안에서는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성모님 산에서 기도하던 그 시간에 부천에서 차를 못 탄 그 자매는 고속 버스로 오는 시간이었는데 산에서 기도하던 도중 저희 엄마가 우리들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그 자매를 보았다고 하시면서 "물을 뜨러 먼저 내려오면서 어떻게 왔냐는 인사를 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지금 나주에 오고있는 도중이었기에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모두가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 자매가 차를 타지 못해 못내 안타까워하시던 저희 엄마의 기도속에 영적으로 그 자매는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 저희 엄마는 노환의 일종으로 목소리가 점점 변해가는 중이셨지만 성가도 잘 안나오고 답답하였기에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병원에서는 목에 성대가 늘어져서 그런다며 목을 많이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11월 첫토요일 날 성모님 주신 물을 드시고 치유를 받으셨습니다. 그 날 저희 어머니께서 성모님 물을 받아서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너무나 진한 장미향 나면서 물맛도 변해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연거푸 두번을 그렇게 떠서 드셨는데 두 번 다 목이 닉닉할 정도로 마치 원액과도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을 드시고 목소리를 치유 받으셨습니다. 참으로 성모님께서는 갖가지로 사람에 맞추어 치유도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율리아 자매님! 저는 또 성모님께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술 버릇이 고약한 남편은 술만 마시면 운전을 합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쯤 음주 단속에 걸러 100일 정지에 벌금까지 물고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늘 저는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늘 불안과 조바심을 내면서 남편을 기다리곤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11월 8일날 밤 10시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남편이 사고를 냈으니 어서 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사고 현장에 가 보았더니 완전히 인사불성 상태에서 운전을 하고 오던 남편이 서있는 차를 그냥 들이받은 거예요. 다행히도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고 2백만원 개인 합의를 본 뒤 차는 보험처리 하기로 하고 일을 마무리지었지만 저는 사고난 밤부터 합의를 보는 시간까지 한 100년은 걸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고생고생하며 벌어 놓은 돈을 고스란히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통장에는 돈 한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지만 저는 오히려 주님과 성모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런 사고가 없었다면 제 불안은 계속 되었을 것이고 남편 버릇도 못 고치고 말았을거예요. 그런데 이번 일로 남편은 울면서 깊이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차가 많이 부셔졌는데도 사람들이 다치지 않은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모두가 주님과 성모님께서 지켜 주신 것 같아요.

또 정말 감사할 일은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첫 토요일을 지키면서 제 남편을 용서하게 된 일입니다. 전 같았으면 이런 남편이랑 사네, 안사네 하고 원망했을텐데 이상하게도 전혀 남편이 밉지 않아요. 오히려 눈물 흘리는 남편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 주었습니다. 왜냐구요?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 성모님께서 이런 저희 남편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를 힘들게 한 남편 때문에 오히려 제가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신앙 생활을 더욱더 열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욱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해 주고 싶어요.

율리아 자매님! 오늘 저희 10주년 결혼 기념일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저희 부부와 저희 가정을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 새로히 봉헌합니다. 또한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세상에 모든 가정들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일치안에서 서로 사랑하여 주님께서 그리고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성가정이 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나주 성모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비천한 제가 이런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끝없는 고통과 기도, 희생, 봉헌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자매님을 본받아서 성모님 메시지 말씀따라 작은 희생이나마 기쁘게 봉헌하면서 더욱 낮은 자되어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시는 사랑의 메시지 말씀 실천하면서 성모님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생활의 기도화로 늘 기도하는 삶 속에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11월 11일
윤정아 카타리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44번지 25/6 성산연립 1동 106호
032-683-9558

 

 

나주 성모님께 은혜받은 카타리나 자매

나는 "고통을 당할때만 구명대에 매달리듯 나에게 매달려야만 하는 가련한 수많은 자녀들...  애원하던 은총을 받고나면 또다시 비참한 생활로 돌아가 나의 사랑을 잊은채 가증 스럽게도 배은망덕하지만 그러나 딸아 나의 자비는 또다시 그들을 부른다."하시며 1990년 5월 8일에 주신 성모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저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살아온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져 들었는지 그 높이와 깊이도 헤아릴 수 없고 온통 어둠에 뒤덮혀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으며 죄와 죽음의 문턱에서 처절한 절망속에 빠져 신음할 때 성모님은 자비의 빛으로 저에게 구원의 빛을 주시고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너무나 크고 감사하여 저의 비천함을 부끄럼 없이 고백하며 받은 은총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성모님 집을 처음 찾은 것은 1996년 5월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기암 상태에서 자궁 절제 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거식증(음식을 거부하는 상태)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인 병이 깊어 병원에 입원하여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때였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음식 자체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탈수증으로 하루 저녁 내내 닝겔을 세병씩 맞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식구들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것보다 어디가서 휴양을 하고 마음의 정리를 하고 오라고하여 8가지 약을 가방에 싸서 넣고 나주 성모님 집을 찾아왔습니다. 목요 성시간이 끝나고 성모님과의 만남 시간에 외국에서 순례오신 신부님들과 율리아 자매님께 기도를 받고 깊은 안식으로 누었다 깨어나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물만 먹어도 토하던 제 병이 치유를 받고 우울증도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쁨과 평화, 육적 영적인 치유와 함께 저의 악습이던 담배도 끊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가져갔던 약을 모두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바로 그해 추석을 앞두고 있을 때 저는 또 오른쪽 난소에 혹이 생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율리아 자매님이 부천 원미동 성당에서 메시지 전달을 위한 피정이 있었는데 그날 그 자리에 참석하여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저는 난소를 치유 받았습니다. 나주에서 두 번의 성체 기적을 직접 목격했고 여러번의 태양의 기적을 보았으며 장미 향내음, 성모님 물에 대한 특별한 치유 체험 등...  그렇게 많은 은총을 받고도 저는 은총을 관리하지 못하여 마귀에게 빼앗겨 버리고 번번히 비참한 생활로 다시 돌아가 성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습니다. 실망과 좌절, 비판과 원망, 세속에 젖어 생활을 한 결과 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시작했는데 저의 의지로서는 끊기가 어려워 지더군요.

 저는 1996년 나주 성모님 집에서 치유 받았지만 잊어버리고 교만하여 성모님을 잊고 세속과 타협하며 살아온 결과 또 다시 재발하여 1997년 12월 왼쪽 난소 낭종으로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93년도부터 거듭 받아온 수술은 이미 5번이나 되었습니다. 해마다 한 번 꼴로 수술을 받다보니 제 몸은 여기저기 손댈수 없이 약해지고 면역성이 떨어지면서 감기에 걸려도 한달이 갈 정도였습니다. 심장 허혈증과 협심증, 지방간 수치도 높고 신장, 방광 뿐만 아니라 디스크에 발바닥은 수술할 수 없을 만큼 큰 티눈이 세 개나 있었습니다. 97년도 수술을 받을 때는 수술도중 벌어질지도 모르는 불상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어렵게 수술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몸에 칼을 대는 것은 불가능할만큼 제 몸은 너무나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더군다나 치유를 받았던 우울증은 은총 생활에서 벗어나니 다시 찾아와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런 힘든 생활을 이겨 내려고 나름대로는 신앙에 열심하며 봉헌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그런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봉헌의 참 의미도 알지 못했고 다만 제 자신을 위해 참아온 것에 불과 했습니다.

 1999년 2월 25일 몸에 이상을 느끼고 산부인과를 찾아 진찰을 받고 초음파 사진 촬영을 해본결과 오른쪽 난소에 커다란 혹이 있었습니다. 혹의 형태로 보아 악성종양 같다고 했습니다. 작은 혹이 여러개 모여 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아도 단순한 물혹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큰 병원 가서 조직 검사를 받아 보라는 소견서를 받아가지고 나오면서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오진 일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보았지만 결과는 빗나가 같은 결과였습니다. 수술을 하다 죽느니 고생하지 않고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어 버릴까? 어떻게 해야하나? 하며 저는 그날 이후로는 병원에 가질 않았습니다. 갈등속에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채 여러날을 울며 지새웠습니다. 가족들이 받은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저희집 분위기는 초상집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날 고민 끝에 본당 신부님의 권고로 저는 산을 걸으면서 병을 고친 분의 소개로 최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택했습니다.  5일 동안은 집에서 산을 타고 5박 6일은 산에서 합숙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걸으며 3개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제가 1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을 오를때마다 찾아오는 두려움과 공포와 싸워 이겨야 했고 여러번 수술을 하였기 때문에 하체에 힘이 없는데다가 발바닥의 티눈 때문에 걷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바른 자세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살도 많이 빠지고 몸에 균형도 잡히고 다리에 힘도 생기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은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병을 이길 수 없으며 최소한 6개월 이상 계속해서 운동을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살림하는 것을 포기하고 6살 7살 어린 딸들을 친정 어머니께 맡겨두고 산으로 갈 때 가슴속에서는 죄스러운 어미의 모정이 솟아오르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남아 지내야만 하는 남편한테는 미안했고 병든 자식을 둔 죄로 두집 살림을 돌보며 안타까워하시는 친정어머님께는 죄송했으며 저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더욱 저를 못견디게 했습니다. 산으로 가기 전 괴로워 울면서 밤을 꼬박 새운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의지와 처절하게 싸우면서 끝없이 걸어야하는 고독한 고행의 길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아 이미 3백만원이 거의 들어간 상태였는데 힘들고 고통스럽던 나에게 이미 임파선 암까지 찾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병마와 싸우는 동안 굳을대로 굳어져 신앙의 빛도 잃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성모님께 배은망덕을 하면서 지옥같은 날들을 보내며 산을 타는 동안 매일 울면서 보내니 보다못한 일행들이 카타리나는 마음의 병부터 다스려야 육체의 병이 낫지 걷기만 한다고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는 충고를 했고 간접적으로는 저는 고치기 힘들거라는 소리와 산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 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죽도록 노력하나 효과는 점점 떨어지고 희망이 줄어들자 제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마음을 돌리기가 왜 그렇게 힘이든지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는 세상을 등지고 걷는 사람 같았습니다. 누가 어떠냐고 물어보는 말도 듣기싫어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전화조차 받기싫어 전화코드도 뽑아놓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4월 중순 부천 원미동 기도회 회장님으로 계시는 권 세바스티아노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권회장님은 여러 가지 성모님 메시지 말씀과 함께 나주 성모님 집에가서 기도해 볼것과 성모님께서 물을 주신 산을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아 망설이다 4월 마지막 주에 성모님 집을 찾았습니다.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도 하고 성모님께서 물을 주신 산을 걸으면서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지못하고 확신을 얻지 못한채 돌아와 산에서 걸으면서 치료하는 것이 저의 길인줄 알고 내 고집대로 산으로 갔습니다. 병마로 죽어가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저는 제 자신안에 더욱 갇혀 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5월 성모성월이 가면서 나주 성모님께 그동안 받았던 은총이 떠오르며 성모님께 가야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5월 27일 성모님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목요 성시간을 하는 동안 성모님은 정말 잘못 살아온 저의 추함을 낱낱이 보게 하여 주시고 주체 할 수 없이 미워하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모두가 남의 탓이 아니라 제 탓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남보다 많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신이 가족에게나 이웃에게나 언제나 큰 십자가가 된다는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없는 통한의 눈물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께 용서를 빌며 또한 저를 치유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부모님, 가족 모두의 얼굴이 떠오를때 더욱 살고 싶어졌습니다.  바로 그날 그 시간 나주의 봉사자님이 오셔서 율리아 자매님이 아주 큰 고통을 받고 계신다며 누군가 치유를 받고 있는 것 같다며 당신이 받으시는 고통은 희망있는 고통이라고 기쁘게 받는다고 말씀을 하셨다는 말을 전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아프시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그것은 저의 고통과 똑같았습니다. 왼쪽 전체가 피가 없는 것 같은 통증과 왼쪽 팔이 저리고 떨어져 나가는 것 같으며 가슴은 손댈수 없이 아프고 임파에 통증이 심하며 왼쪽 아랫배 부분이 부어 오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아프다고 이야기 한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 통증이 사라지고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와짐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지문 이후에 율리아 자매님을 만난적도 없고 그분께 직접 기도를 받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성모님 집을 찾아온 저를 위해 그 분이 대신 고통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갖가지 비난과 초능력을 쓰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말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런 저같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봉헌하시는 그분의 고통과 희생을 보면서 성모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치유를 받으리라는 확신을 얻었고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6월 2일 처음 진단을 받았던 병원을 다시 찾아 갔습니다. 진찰을 받고 초음파 사진 촬영을 해보니 혹은 사라지고 난소는 정상이며 이상 소견이 없으니 6개월 후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죽음에서 저를 살려 주셨습니다.  정말 성모님의 눈물은 보이지 않지만 끝없이 흘러 저같은 죄인의 때를 씻어 주시는 것을 이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저같은 죄인도 용서를 받고 이처럼 큰 은총을 받는다면 성모님 메시지 말씀따라 기도하고 봉헌하는 삶을 사는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을 주실까요? 저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희망과 은총과 자비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 영혼에 남아있는 그림자를 거두어주시길 기원하면서 저의 부끄러움을 다시 고백합니다. 저는 담배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성모님은 1996년 6월 27일 메시지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슬픔과 고뇌와 갈등, 고통과 시련, 육체적 고통과 영혼에 숱한 상처들 너희를 괴롭히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쳐라. 너희의 내면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새로운 광명의 빛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지리라」

저는 이 메시지 말씀을 믿고 담배피우던 악습마져 온전히 봉헌했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부인하던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놀라며 이 체험을 통해 믿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들과 고모님도 믿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을 떠난 자녀라도 회개하고 돌아올땐 죄인의 과거를 묻지않고 영혼을 목욕시켜 주시며 많은 은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미천한 탕자같은 저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저같이 먼길에서 실망하며 주님 성모님 배반하고 죄책감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많은 자녀들에게도 넘치는 성모님 자비와 사랑이 흘러가 그들 모두도 희망을 안고 다시 돌아와 회개하고 은총을 받으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성모성심을 통하여 주님께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44번지 25/6
성산연립 1동 106호   Tel. 032-683-9558
윤정아 카타리나

 

 

구 세실리아 자매의 증언

대구 성요셉 본당에서 순례온 구 세실리아 자매님입니다.

저는 임신이 되지 않아 대구카톨릭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의사로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않고 시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인공수정도 시도하여 보았으나  자궁외 임신이 되어 결국은 유산하게 되었고 심한 하혈까지 하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이던 저에게 어떤 자매님이 차비까지 주면서 나주에 가보라고 권하여 나주를 오게 되었고 나주에 오는 차안에서 안내하시는 분이 나주 성모님께 믿음과 신뢰로써 온전히 의탁하고 계속해서 다니라고 권고하여 첫토요일 뿐만아니라 기념일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나주에 다녔습니다.

공지문 발표 전이었기에 성모님과의 만남의 시간에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도 받게되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거짓말같이 하혈병이 나았으며 임신까지 하게되었습니다.

임신후에는 배가 많이 불러올 때까지 나주를 다니다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되어 나주를 못 오게 되었지만 계속적으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도 원하던 아이를 무사히 낳게 되어 31개월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은총으로 함께 해주신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00년 11월 4일
구 정숙 세실리아
대구시 달서구 송현 2동 본동 주공 아파트 102동 503호 전화. 635-9647

 

 


강 알비나 자매의 증언

안녕하세요. 서울 금호동 성당에서온 강 알비나입니다.
저의 아들은 외국에서 학위를 두 개나 따가지고 왔기에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고 직장에서 직급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너무나도 일이 많아서 새벽 2시에나 겨우 집에 들어올수 있었는데 그나마 집에 들어온 뒤에도 못다한 일을 해야했기에 결국은 과로로 인하여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희대 의대를 찾아갔더니 의사가 말하길 다른 사람들처럼 적은 혈관이 터진게 아니라 정맥 중간이 아에 막혀서 보름 안에 죽게 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되어 수술을 할 수 없냐고 했더니 아주 위험한 수술이기에 수술중에 잘못되어 죽더라도 항의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주면 수술을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아무런 장담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외국에까지 나가서 학위를 두 개나 따오고 직장도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곳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보니 하느님이 원망되어 "하느님 저는 당신을 20년 동안이나 믿었고 그동안 우리가 잘살게 해달라는 기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며 오직 나라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무주기도를 하루에도 70단에서 100단씩 바쳤는데 어떻게 이러실수가 있습니까?" 하고 울면서 기도했더니 정말 기적적으로 3일만에 아들이 깨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매일같이 병원을 다녀야만 했고 얼굴 색깔이 새까만 것이 몸 상태도 너무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이 나주에 성모님 기적수가 나오니 가보라고 권하여 "내가 옛날에 갔었을 때는 기적수가 나오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였더니 지금은 기적수가 나오고 나주 성모님 물로 많은 치유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랴부랴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 기적수를 떠다가 아들에게 먹였는데 3일만에 얼굴색도 오히려 저보다도 더 얼굴색이 좋았졌을 뿐만아니라 잘 걷게 되었으며 몸도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병원에 가 보았더니 의사가 말하길 "이제는 다 낳았으니 정상 생활로 돌아가도 좋다" 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너무나도 크신 은총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0년 11월 4일
서울 금호동 4가 233-4호
강경희 알비나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은 록 폴의 증언

(나주 성모님집을 순례차 다섯 번이나 방문한 록폴은 인도계 프랑스인으로서 공산 국가인 베트남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나주성모님상과 메시지, 그리고 관련자료 등을 가지고 들어가서 나주 성모님을 전한바 있는 형제입니다. 그는 회교(ISLAM) 국가인 파키스탄에 가기 전 나주에 와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주 성모님을 전하기 위하여 파키스탄에 갈려고 하는데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 죽지 않으면 다시 나주에 오게 될 것입니다." 하고 나주를 떠났는데 이번 10월 19일 피눈물 14주년 기념일에 와서 파키스탄에 나주 성모님을 전하면서 겪은 체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록 폴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여기에 왔을 때 파키스탄에 나주 성모님을 전하려 하는데 어쩌면 그곳에서 총살당할지도 모르니 많은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무사히 돌아와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 성모님을 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성모님을 전하다가 적발되면 총살형을 당하거나 아니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주교님 한 분이 잡히게 되면 스스로 권총 자살을 해야만 했기에 자수하였지만 많은 고초와 고문을 당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번에도 베트남에 들어갈 때 나주 성모님 상과 함께 메시지와 관련 자료를 많이 가지고 갔지만 나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무사히 통과되어 전할 수 있었기에 이번에도 나주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고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히 싱가폴에서 오신 형제 자매님들이 많은 물적 지원을 해 주어 더욱더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있었으며 성모님께서도 저에게 '네가 나의 메시지와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지고 파키스탄에 들어갈 때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기 위하여 공항에 도착하니 티켓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난감해 하고 있는데 마침 예약 손님이 오지를 않아서 제가 대신 그 표를 구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Gulf Air 항공이었습니다.

이윽고 파키스탄에 도착하여 저의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짐을 다 찾아간 후에도 유독 제 짐만 나오지를 않아서 초조함으로 한정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또 다른 비행기가 도착하여 메카 관광객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저의 짐이 나왔습니다. 세관을 통과하는데 매우 혼잡했기에 세관에서는 저도 그 관광객의 일원으로 알고 짐 검사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여권만 보이고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막상 파키스탄에는 도착은 했지만 세관을 어떻게 무사히 통과하나? 하고 무척 걱정했으며 만약에 짐 속에 있는 성모님 상이나 메시지 책 등이 발견될 경우 저는 총살형이나 혹은 종신형을 각오해야 했는데 짐이 늦게 도착하였고 또 때맞추어 도착한 관광객으로 인해 오히려 빨리 나가라며 등을 떠밀리다시피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세관을 나오게 되었으니 이모든 것을 성모님의 도우심이며 계획이셨음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렇듯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세관을 빠져나와서 나주 성모님 상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성당으로 곧바로 가서 성모님 상이 든 박스를 열자마자 기다리고 계시던 신부님께서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하시며 성모님 상을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며 성모님 상에 강복을 하신 뒤 성모님 상을 모시고 행사를 하기 위하여 많은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성당 안으로 안고 들어가셨습니다.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많은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를 하였고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는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셨으며 미사가 끝난뒤에는. "성모님 상은 절대로 만지지는 마십시오, 그냥 앞에서 기도만 하고 쳐다보기만 하십시오." 라고 각별히 당부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각 성당마다 성모님 상을 모시고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여 주었으며 성당 순례가 끝나면 가정에서도 2 ~ 3일 정도 모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많은 가정들이 집에서도 성모님을 모시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동네에 있는 파티마 라는 성당에서는 매주 약 1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저녁 9시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미사를 드린 뒤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하였는데 성모님의 메시지를 듣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나주 성모님께 많은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성직자들이 나주 성모님 상을 뵙기 위하여 찾아오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어지게 되어 기도도 열심히 드리게 되었답니다.

다음은 베트남에서 나주 성모님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베트남에는 많은 분들이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여 나주에 대한 소식과 메시지를 듣기를 열렬히 원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베트남에 나주 성모님상을 모시고 저번에와 마찬가지로 나주 성모님 상과 메시지, 그리고 테잎 등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세관에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맨 처음 모시고 간 나주 성모님 상은 안전하게 성당에 모셔져 계셨고 두번째 모시고 간 성모님 상은 사이공에 있는 살레시오 성심성당에서 신부님이 모시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갔을 때 갈멜 수녀원에서는 성모님을 모시고 기도했는데 수녀님들이 나주 성모님 상을 안고 수녀원을 돌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각 수녀원에 돌아가면서 9일동안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하고 있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300여명의 수녀님들이 꽃 한송이씩 봉헌을 하면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성모님 상을 바라보면서 우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녀님들께 다음에 올 때는 큰 나주 성모님 상은 아니지만 작은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기에 싱가폴에서 베트남으로 성모님 상을 부치면서 아주 오랜 시간 약 몇 달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6일 만에 성모님 상이 도착했다는 상상 할 수도 없는 사실을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베트남의 주교님께 베트남어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해드렸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성모님 메시지를 전한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주교님께서는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읽고 묵상하면서 항상 기도를 했는데 그렇게도 완강하던 베트남 정부에서 주교님의 믿음과 신앙을 인정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의 나주 성모님에 대한 믿음은 남달리 강해서 정부에서 뭐라고하던지 아니면 주교님이 뭐라하던 아니면 주위에서 그 누가 뭐라고 하던지 상관치 않고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써 나주 성모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광주 대주교님과 신부님들이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곳에서 많은 기도를 하고 계시니 여러분들도 정말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안 뒤로부터는 직장까지도 그만두고 세계 곳곳에 나주를 전하는데 지금은 거의 안가 본 나라가 없어서 공산 국가나 혹은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일지라도 나주 성모님 메시지와 테잎이 안들어간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다음에는 지금도 전쟁을 하고있는 수단이라는 나라에 나주 성모님을 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과 메시지와 테잎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이상하게도 신부님을 만나게 되는데 저는 그럴때마다 신부님께 축성울 청하면 신부님은 무엇이냐고 묻게되어 저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아울러서 나주 성모님을 설명하게 됩니다.

한 번은 아주 위험한 곳에 가게되었는데 그 때 그곳에서 한 수사님을 만나게 되어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해 드렸데니 너무나 놀라워하며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성모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여자 형제가 세명 있었는데도 이미 둘은 죽었고 한명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일종의 눈 암으로 한쪽 눈은 이미 실명되었고 남은 한쪽 눈마저도 실명될 위기에 있었지만 병원에서 조차도 수술은 물론이고 어떻게 손을 써볼 방법이 없다면서 포기한 상태였기에 "네가 진심으로 나주 성모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열심히 기도한다면 성모님께서 너의 병을 낳게 해주실 것이다."라고 하면서 작은 나주 성모님상과 함께 성모님 기적수를 전해주었는데 이 여동생 눈이 씻은 듯이 치유되었습니다

아직도 이야기 할 것은 너무나도 많지만 다른분을 위해서 이만 저의 체험담을 끝내려합니다.

제가 영어로 된 책을 소련어로 번역하려고 합니다. 소련까지 들어가서 소련의 많은 분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은총을 받기 위해 성모님의 도움이 필요하니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00년 10월 19일
Mr. Rock Paul
8 rue Gracieuse, 75005 Paris, FRANCE

 

 

나주 성모님은 해결사

서울에서 온 이아가다 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 집을 다니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눈물과 피눈물과 향유 흘리심 그리고 일곱 성체가 내려 오시는 징표까지 수많은 기적을 목격한 서울의 이 아가다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너무나 많아 일일이 다 말 할 수가 없어 간략하게 증언하고자 합니다. 특히 그전에 율리아 자매님으로 부터 들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제가슴에 남아있는데 그것은 성모님의 수많은 기적과 은총, 그리고 성체의 기적 등을 가짜라며 함부로 판단하고 죄 짓는 사람들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지만 단순한 믿음과 신뢰로써 나주 성모님께로 오는 모든 자녀들을 성모님의 망토 안에 감싸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기에 그동안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따라 살면서 찢긴 성심을 기워드리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이곳 나주에 와서 성모님께 봉헌된 아이들이 주님과 성모님의 크나큰  은총과 함께하면서 영적으로 자라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세 아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나주에 데리고 왔는데 그때 그 아이가 처음 나주 경당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수많은 천사와 성인 성녀가 있다고 하면서 대 천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고 성수통에까지 두분의 천사가 손을 합장한 채 지키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첫토요일은 제단위에 103위의 성인과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기도를 하시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여기모인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시면서 우리의 기도와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성모님의 메시지를 한동안 읽지 않다가 보기 위하여 책을 펼쳐서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메시지 책이 마치 사람의 심장에 손을 얹어 놓은것같이 쿵닥쿵닥하고 맥박이 뛰어서 정말 성모님께서는 어머니가 주신 메시지 말씀안에도 실제로 현존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때 새벽3시 자비의 시간은 은총의 시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말 새벽3시는 가장 은총이 많이 내리고 수많은 천사들이 한사람마다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세 아이가 똑같이 같은 말을 하기 때문에 잘못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말하기를 "아줌마, 사람들이 너무 웃겨요." "왜?" "사람들이 몸은 장미꽃과 장미꽃 잎파리에 다 덮혀있는데 얼굴만 나와 있어요" 하면서 그 모습들이 너무너무 우습고 재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아들도 철야 기도중에 졸린다고 하여 부엌방에서 자라고 했더니 급하게 와서는 "엄마, 엄마, 나 예수님 만났다." 하면서 "엄마, 예수님이 프란치스코야! 너 나주에 왔구나? 참 잘왔다." 하시면서 손을 만져 주셨답니다. 그런 일이 있는 후부터 아이가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볼수 있는 영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에 열심히 다닌 뒤로 저희 집안 온가족이 성화가되었고 많은 은총 속에 살 수 있게되었습니다. 저도 늘 "제 눈을 뜨게 하소서" 라는 성가를 자주 부르면서 성체조배도 열심히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였는데 정말로 저에게도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셔서 한 번은 기도중에 정말 놀라운 것을 보게 되었는데 진노의 잔을 들고 계신 하느님의 발밑에서 율리아 자매님이 그 진노의 잔을 더 받들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질 하느님의 진노의 불이 율리아 자매님의 그 고통과 희생공로 인하여 멈추어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새벽 미사 때마다 그러한 율리아 자매님의 모습을 봅니다.

언젠가는 첫토요일날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서 나주에 못간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안타까워서 새벽미사때 "예수님 오늘 나주에 꼭 가야되는데 집안 결혼식 때문에 못가게 되어서 너무 안타까워요." 하고 말씀 드리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율리아 자매님이 감실 앞에서 걸어나오더니 저를보고 빙그레 웃으시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한번은 제가 설거지도 안하고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중에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 집으로 들어 가시는게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는 율리아 자매님이 팔을 걷어부치고는 저희 집안 청소며 설거지며 하다못해 세탁기까지 돌려 놓고 빨레를 하면서 계속해서 집안 곳곳을 청소 하시더군요. 사실 이증언은 창피해서 안할려고 했는데 기도 한답시고 집안 청소도 제대로 안하고 다니던 저에게 많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는 꿈에 율리아 자매님이 황금마차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시다가 저에게 꽃 한송이를 주었는데 그날 제가 원하던 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율리아 자매님을 보면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가족은 어떤 문제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구동성으로 "나주 성모님께 가봐야 될 것 같아."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디가 아프거나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주에 왔다가 가면 다 치유받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주 성모님을 "해결사"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 번은 제가 어느 본당에서 말씀 봉사를 하기로 약속해 놓았는데 그만 허리를 삐끗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든 상태였습니다. 약속 시간은 다 되어가고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저희 집에 모셔져 계신 나주 성모님께 "성모님 큰일났어요. 오늘 공동체에 약속도 있고 볼일도 너무나 많은데 어떻하면 좋아요." 하면서 기적수를 아픈 제 허리에 바르면서 십자가를 긋고 나주 성모님 손을 잡고 기도한 뒤 기적수를 한 모금 마셨더니 허리가 시원해지면서 언제 아팠느냐는 식으로 허리가 말끔하게 치유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장부앞에서 덩실 덩실 춤까지 춘 적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요즘 저희 딸이 직장에 다니지 않고 놀고있기에 지난달에 성모님께 와서  "성모님, 우리 소피아가 직장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하고 성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직장을 마련해 주시어 이번 달 첫 토요일부터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와서 기도 드릴때마다 안 들어 주신 것이 정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나주 성모님께 다니던 세 아들 모두 신학교에 가겠다고 하는데 그때 국민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이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받은 은총을 나눌 때 덤으로 또 다른 은총으로 축복해 주신다고 말씀 하셨기에 그동안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나주에 올 때마다 증언하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 양보하다보니 자주 증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번은 미사 때 저희 본당 신부님이 "나주에 다니는 사람 손들어 보시오" 라고 하시기에 마침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저는 '아, 나를 혼내시려고 저러시는구나'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내가 나주를 다니다가 순교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나주를 증언하리라' 하는 생각으로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저를 야단치실 줄 알았던 신부님께서 오히려 "아가다 나는 나주를 믿어 나주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해. 나주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인준 될거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신부님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 순간 제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감히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나주 성모님 집이 볼품 없고 초라해 보이지만 이곳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여기에만 오면 영혼이 구원되기에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방해하고 박해 하지만 여러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나주를 지키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나주는 반드시 인준 받습니다. 나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주의 인준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주 성모님과 함께 승리합시다.

그리고 끝으로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은 주님과 성모님께서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이 세상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이 필요 하기에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지금 희생과 보속의 도구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 많이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9월 2일
이연호 아가다
서울 강서구 화곡 2동 873-35, 전화) 260-2076

 

 

성모님 젖으로 변한 물 한방울로…

저는 대구 본리 본당 원 마리아 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물이 실제로 성모님의 젖, 즉 엄마 젖으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기에 그 은총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매월 첫 토요일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인하여 성모님께 조용히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저희는 목요 성시간을 택하여 7월 20일에 순례를 오게되었는데 이날 우리는 조금 일찍 와서 성모님 산에 가서 기도도 하고 목욕도 하였으며 물도 떠오게 되었습니다.
함께온 순례자중 60세가 넘은 김 데레사라는 자매님이 있는데 이분은 늘 물을 떠다가 특히 냉담자 가정에 가져다가 주기 때문에 이날도 물을 떠다가 나누어 준다며 1.5리터 짜리 병으로 세병인가 네병인가를 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을 통해 8월 10일 경 저희 집으로 급히 전화를 하면서 "마리아씨, 마리아씨 20일날 떠 온 물을 냉담자 가정에 전해 주었는데 엄마 젖으로 변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성모님 물을 전해 받은 자매는 연탄 가스 중독으로 4년동안 식물인간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지금은 냉담 상태에 있던 젬마 자매였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오늘 그 물을 가져 오게되었는데 정말로 물 색깔이 엄마 젖빛으로 변해 있었으며 실제로 맞을 보았더니 그야말로 엄마 젖, 진짜 엄마 젖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물을 함부로 남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부전증 환자인 남편 요셉씨에게도 맞만 보라고 병 뚜껑으로 조금 주었더니 남편은 모유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젖 비린내가 나면서 그 뒷맛이 참 고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실을 첫토요일에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그 은총을 함께 나누고 싶어 저희 집 냉장고에 보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물을 8월 15일에 보여드린 후 또다시 엄마 젖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8월 15일 기도회가 끝난 뒤에 성모님 물이 아직도 젬마 자매님 집에 젖으로 변한 조금 남아 있다기에 제가 떠온 물을 주고 그물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그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마리아씨, 마리아씨의 음성이 들려요."
"그물을 네 머리맡에 떠 놓아라" 하면서 제 음성으로 하는 말이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남편 요셉과 함께 전화로 그 자매님의 집 위치를 물어서 찾아갔더니 그 자매님은 정말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데 쥐가 방으로 들락 날락 거리는 것을 보고 정말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가져간 네병의 물을 놓고 기도하면서 "예수님, 성모님께서는 가장 위대하시고 높으신데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누추한 곳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 주시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예수님, 성모님, 이 물을 나주 성모님의 집에 가서 모두에게 보이며 증거할 때 주님 영광 드러내시어 정말로 하루속히 고통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이 인준되는데 쓰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면서 저희 남편 요셉, 그리고 젬마 자매님과 함께 셋이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데 2단쯤에서 놀랍게도 제가 가져간 성모님의 물 네병 모두가 약간 뽀얗게 변하면서 이튿날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저희는 이 기적을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에 연신 감사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7월 20일 가져온 물과 8월15일 가져온 물이 모두 성모님젖, 엄마젖으로 변하는 기적과 은총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계속적으로 일어난 이 놀라운 기적을 또다시 돌아오는 9월 첫토요일에 증언하기 위하여 저희 집에는 환자가 많아서 먹이고 싶었지만 모두에게 보이고 증언하므로써 주님과 성모님 영광 찬미 받으시도록 안먹고 잘 보관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나주에 오는 차안에서는 저희가 성모님의 물을 사용할 때 이 물이 성모님의 젖임을 알고 마시며, 또한 무심코 흘려버리는 한방울의 물일지라도 이는 성모님의 젖을 버리는 것임을 모두가 알도록 저희 차에 탄 44명 모두에게 한방울씩 맞보았고 내내 기도하고 찬미하며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나주 성모님 집에 올 때는 23세된 제 둘째 아이가 눈가가 다 헐고 눈알이 벌겋게 다 충혈된 상태에서 너무 눈이 아프다고 하길래 7월 20일날 젖으로 변한 성모님의 젖을 딱 한방울 넣어주면서 "나주 성모님, 우리 엘리야 눈 좀 엄마 젖으로 씻어주세요" 하면서 기도하고 두어 시간 잠을 재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나주에 오기 위하여 준비하는데 저희 아들이 "엄마 내 눈좀 봐, 눈이 안떠져요." 하기에 보았더니 노란 고름이 눈가에 빽빽하게 나와있어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나주에 가는 시간 때문에  서둘러 나오면서 눈에 넣으라고 맑은 성수를 주고 왔는데 이튿날 기도회가 끝나고 아침에 가서보니 아들 눈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 간 후로 또 넣었냐?"고 물었더니 "아니요, 엄마가 그때 한방울 넣어준 걸로도 족하다고 생각해서 안넣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 받으세요

 2000년 9월 2일
원동선 마리아
대구광역시 본리동 644-1 대아아파트 나동 402호, Tel. 522-5321 

 

 

성모님의 물로 응급실에도 갈 필요가 없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서 왔습니다.
8월 15일날 저는 나주 성모님께 왔을 때 기적수를 떠가지고 갔는데 마침 저희 집에 결혼한 큰애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13살 된 큰 아이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하기에 저는 귀찮아서 "지금 이시간에 응급실을 연 곳이 어디 있겠느냐, 그냥 네가 데리고 자거라" 하면서 그냥 자려고 했더니 아이가 계속 보채면서 울더군요. 그때 저는'아참! 성모님 물 떠다놓은 것이 있지' 하는 생각에 얼른 성모님 물을 가져다가 아이의 입에 떠 넣고는 "성모님 이 정도로 병원에 가다니요, 성모님께서 낫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한 뒤 그날 밤 그냥 잤습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이 아이가 잠을 푹잤음은 물론이고 아침밥도 거뜬하게 한 그릇을 다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은 둘째 아이가 계속 코가 나와서 젖을 제대로 빨지 못하고 젖 한 모금 빨고 숨을 쉬고, 그러기를 계속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성모님 물을 아기의 입에 넣어주면서 "아휴, 성모님 저희 미카엘도 낳게 해주셨으니 우리 노로도 낳게 해주세요" 하며 기도하고 아이를 푹 재웠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기가 정상으로 되었습니다. 저희 며느리는 "어머니 정말 나주에서 가져온 물이 신비한 효험이 있네요." 하면서 오늘도 나주에 간다고 하였더니 "어머니 물 많이 떠오세요." 하더군요.

정말 성모님 물로 저희 두 아이는 거짓말 같이 다 나았습니다.

 2000년 9월 2일
한덕희 도로테아
대전시 대아동 202 -17, 전화: 284-0847 

 

 

성모님의 물(젖)로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다. 

저는 대구 삼덕 본당에서 온 강 젬마 입니다.
저는 원래 나주가 어떤 곳인지를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자매님이 7월달에 나주에서 가져왔다고 하시면서 물을 한병 주길래 받아서 아픈곳에 바르고 커피잔으로 한잔 정도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물 색깔이 이상하게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에 받아놓아서 색깔이 변했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자매님 집에 쫓아가서 '이왕 물을 줄려거든 좋은 물을 주지' 하는 생각으로 "자매님 나에게 물 색깔이 어떤 것을 주었지요?" 하고 물었더니 그 자매님은 "뭘? 맑은 물을 주었지" 하더군요. 그래서 "아니에요, 물이 맑지 않고 뿌연 빛깔이 나요." 그랬더니 그 자매님이 같이 가보자고 하여 저희 집에 와서 물을 보여주었더니 "어머나 성모님 젖이네, 엄마 젖이야. 성모님 물이 엄마 젖으로 변했어" 하며 놀라워 하더군요.

저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물을 다시 잘 보았더니 색깔도 비슷하고 냄새는 영락없이 아기들 젖 줄때 나는 젖 비린내, 아니 정말 엄마들 젖내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놀라워 하면서 조금 달라고 하여 나누어주고 반병 남았는데 그 이튿날 보니 그 물이 더욱 짙은 젖 빛깔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영세한지 오래 되었지만 성당도 잘 안나가고 냉담까지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물을 마리아 자매님에게도 조금 나누어 드렸는데 며칠후 잘려고 하는순간 어디선가 '그 물을 다시 머리맡에 두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자매님에게 전화를 해서 물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여 가져온 물을 두고 기도 했는데 마치 안약 색 비슷하게 변하더니 그 이튿날은 물이 완전히 엄마의 젖 빛깔같이 뿌옇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것을 보면서 저는 '아! 성모님께서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죄인인 나에게 이렇듯 은총으로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지금은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 절을 하는데 어디선가 '젬마 자매님, 아주 잘오셨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진한 향기가 났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나주에 왔기에 아직 율리아 자매님을 본적은 없지만 정말 너무 잘왔다고 생각합니다. 향긋하게 풍기는 향기도 너무 좋고요. 진짜 나주에 성모님께서 계신다는 확신과 함께 은총을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2000년 9월 2일
강진술 젬마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147-5번지

 

 

이혼을 화해로 이끌어준 나주 성모님의 물

서울 중계동 본당에서 온 최안나입니다.  

8월 첫토요일이 되기 전부터 제가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장부는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관심을 두지 않아 저는 너무 서운하고 속상한 나머지 성모님께 "성모님! 이제는 저 남자를 미워하고 상대도 안할거에요" 하고 말씀드리고 그날부터' 어떻게 하면 저 남자하고 안사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쳐다보지도 안고 그렇게 한 열흘을 지냈습니다.

첫 토요일이 돌아오자 저의 남편은 물통이며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 거예요. 전에는 나주에 갈 때 한 번도 그래본적이 없는 남편에게 저는 "당신이 그런다고 내가 나주에 갈줄 알아? 당신 혼자서 가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세요. 나는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고 쏘아 붙였는데 마침 연령회 회장님으로부터 나주에 가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연령회 회장님은 그전부터 나주에 갈 때 꼭 자기를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첫 토요일만 되면 본당에 장례식이 있어서 못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며 새벽 6시반부터 전화가 왔길래 저는 "지금 몸이 너무 아파서 못가니 우리 남편 따라서 갔다오라"고 했더니 그 분이 펄쩍 뛰면서 "처음인데 어떻게 남자하고 가, 형님이 꼭 가야돼" 하면서 막 야단을 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없이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9시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오는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남편에 대한 저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부에게 김밥을 권하면서 얼굴을 쳐다보는데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못되게 굴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미어지게 후회가 되어 "어서 김밥 잡수세요" 하면서 '여자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으면서 무슨 은총을 받겠다고'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모든 감정이 풀렸는데 그것은 바로 나주에 가는 차에 오르는 그 순간 성모님께서는 이미 저에게 은총을 주셨습니다.

저는 매월 첫토요일에 참여하면서 성모님 물을 떠다가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성모님의 은총이 흘러 들어가도록 기도하고 주는데 8월 첫토요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보니 옆집 부부가 결국은 이혼 법정에 서기로 결정했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들 부부는 제가 어떻게하든 갈라서는 것만은 막아보려고 솜씨 없는 음식이지만 나누어 먹으며 성당을 다녀보자고 권하기도 하고 부부를 서로 따로 만나 이야기 해보기도 하였고 자나깨나 하다 못해 설거지하면서도 "예수님! 저 집 부부는 아이들도 둘씩이나 있는데 이혼이라니요 안됩니다. 막아주세요." 하면서 그렇게도 노력했지만 결국은 이혼한다 하길레 마지막으로 성모님 물 두병을 가슴에 안고 "예수님 영광 드러내셔야 합니다. 모든 마귀, 사탄을 물리쳐주시고 성모님의 젖으로 기적을 주십시오. 증표를 주세요."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자매에게 물을 주면서 성모님 동산에서 남자분들이 "오늘은 물이 왜 이렇게 뿌여면서 끈끈하지? 이건 기적이다. 이것은 물이 아니라 성모님 젖이야" 라고 했던 이야기까지 들려주면서 남편에게 꼭 먹이되 실컷 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부부 싸움을 하면서도 그 큰병의 성모님 물 한병을 다 마시더랍니다. 그리고는 "옷이며 양말 한쪽도 버리지 말고 다 싸놔." 하면서 나가더랍니다.

그 다음날 아침 그 자매가 와서는 "아줌마, 할 수 없이 갈라서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제 마음은 참 편안해요."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이고 주님! 아버지 뜻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도 이제는 기운도 없고 하니 당신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그 자매를 꼭 끌어 안아 주는데 그 자매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낮은 소리로 "친정에 가는게 급하지 않으니가 저녁에 나 좀 만나고 가" 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 자매의 남편이 운전을 하고 가는 데 누가 뒷통수를 딱! 하고 쳤는데 "야!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뭐하고 있는거야.?" 하는 말을 자기 입으로 마치 미친 듯이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 정말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거야!' 하면서 마치 자기가 암흑 속에 갇혀 있다가 깨어서 빠져 나오는 것 같더랍니다. 그러면서 '집집마다 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서로 맞춰서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악을 쓰면서 살아야되나,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하면서 회개가 되었고 급기야는 저녁에 집으로 들어와서는 그 자매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두시간 동안이나 무릎끊고 앉아서 "지난날의 모든 것은 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여자 관계를 다 정리하고 오로지 너만 보면서 살고 이제는 처가에도 잘할테니 용서해줘" 하면서 빌더랍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너무나 믿어지지가 않아서 날만 새면 '그 집에 혹시 뭔일은 없나' 하고 눈치를 살피고는 했는데 그렇게 상처를 주면서 할소리 못할 소리 다하던 시어머니까지도 얼마 안 있으면 영세를 받게 되었고 이제는 아주 단란하고 행복한 축복 받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주에 올 때 같이 올수는 없지만 성모님께 대신 감사를 드려달라고 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주님 성모님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2000년 9월 2일
최 안나
서울 노원구 상계동 미도 아파트 102동 1408호, 전화) 935-0547

 

 

손이 안펴지고 떨려서 밥도 못먹었는데 이제는 손이 펴집니다.

저는 성모님의 크나큰 소식을 전하여 함께 은총을 나누고자 하는 임동 박 안나입니다.

전에 팔에 인대가 늘어나 손을 못 움직이지 못했었는데 잘 낫지 않아서 성모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후 곧바로 팔이 치유가 되어 직장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던 직장의 건물 주인 딸이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제가 그냥 만지기만해도 아프다고 하여 뼈가 약하거나 단순히 좀 안좋다라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 말을 들어보니 딸이 중학교 3학년에 올라오면서부터 항상 피곤하다고 하였으며 학교만 갔다오면 곧바로 잠을 자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 딸이 갑자기 울면서 "내 다리가 아프다"고 하여 부랴부랴 전대병원에서 입원시키고 진찰해 보았더니 뼈 자체가 피를 생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백혈병과 골수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서울 삼성병원에 가서 골수 검사를 했더니 살 가망이 30%정도밖에 안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수혈을 해야만하며 만약에 3일만 수혈을 안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아이가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하여 할 수없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며 그 집 할머니가 울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6월 30일날 성모님 눈물 흘리신지 15주년되는 기념철야기도회 내내 그 아이가 떠오르면서 그 아이를 위한 기도가 되었는데 계속해서 여러 가지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물 흘리신 12주년 기념 때 나주 성모님 집에서 굉장히 큰 은혜도 받았고 그때부터 기적도 많이 체험하였기에 항상 집에 갈 때면 성모님 물을 가져다가 메고 다니면서 나누어주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물을 아무에게도 나누어주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 집 아이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싶은 생각과 함께 성모님 물을 먹으면 그 아이가 반드시 치유되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그 집은 오래된 불교신자이기에 망설여지더군요.

그래서 성모님께 기도하고 그 아이집에 가서 성모님 물 3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이야기 해 주면서 "성당에 나가자"는 말은 하지 않을테니 아이에게 이 물을 좀 먹여보면 어떻겠느냐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더니 의외로 아이 엄마가 굉장히 고마워하며 성모님 물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성모님 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원에서 그 아이에게 처방하기를 밥을 먹지 말고 대신 생식하게 하여 시간마다 먹었었는데 계속 토하기만 했답니다. 그런데 성모님 물과 약을 2대 8 비율로 섞어서 먹였더니 약을 토하지도 않음은 물론이고 아이가 약을 먹으면서 "엄마 이 약에서 향기가 나"하더랍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성모님 물을 먹은 후부터는 성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면서 나주도 가보고 싶다고 자주 얘기하더랍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개신교 성경책을 아이에게 사다주면서 "너라도 교회다녀라"고 하였다기에 제가 이왕 읽으려면 가톨릭성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성서책을 바꿔주었어요. 아이가 기적수를 마신지 불과 5일도 채 안되어 아이가 아픈 기색을 안보여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5일전 만해도 살 가망성이 30%밖에 안되고 또 수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가망성이 50%에다가 뼈속에서 피를 생산해내고 있어서 수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으며 한마디로 성모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후 아이가 자꾸만 성모님 집에만 오고 싶어해 7월달에 6번이나 나주 성모님께 데리고 왔는데 아이가 성모님 집에만 다녀오면 달라지더니 거의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맨처음에는 그 아이 부모와 함께 나주에 왔는데 지금은 그집 가족 14명이 모두 함께 나주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만나고부터는 저도 잘 모르는 성서 구절이 떠오르고 그 말씀이 입으로 나와 오히려 이 아이 덕분에 저도 덤으로 은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치유가 되니까 운동을 하고 싶어서 줄넘기를 하다가 혈관이 터져 손발이 붓고 걸음도 못걷게 되었는데 성모님 산에 데리고 가서 아이 엄마와 아빠가 손발을 기적수로 씻어주었더니 즉시 부기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경당에 들어설 때만해도 손가락 마디와 팔이 구부러지지 않아 성호경도 제대로 못그었는데 기도를 마치고 경당을 나올 때쯤 아이가 "아줌마, 손이 안펴지고 떨려서 밥도 못먹었는데 이제는 손이 펴져요 하면서 울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의 소원이 '언제쯤이면 밥을 먹을 수 있을까?'였는데 그날 성모님 집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성모님집에서 얻어온 조그만 프라스틱 병에 담긴 성수를 아픈 부위에 바를 때마다 병원 냄새가 나기도하고 알콜 냄새가 나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는 과일 냄새가 나기도 하였고 수시로 향기가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제 저녁 시어머니 제사 때 생선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지만 나주를 오고 싶어서 성모님께 기도하고 경당에 왔는데 정말 성모님 덕분에 경당에 올 수 있었고 깊이 박혀 있던 큰 가시가 목에서 움직이며 나오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2000년 8월 6일
박 안나
광주 광역시 북구 임동 187-22

 

 

보잘 것 없는 저에게도 치유의 은총을 주시다니!

찬미 예수님!

저는 광주 쌍촌동 본당에 다니는 조 아우구스티노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던 저였기에 주위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장, 간, 혈압(고지혈증, 동맥경화) 신장낭종, 신장결석, 십이지장궤양, 식도정맥류, 성기능장애, 등 여러 가지 질병들을 안고 고통 속에 살고 있던 중 진료차 전대병원에 갔을 때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시는 최시라 자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0년 2월 3일(목요일),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아들(중3)도 췌장염, 십이지장혈종 수술 후 그 후유증으로 비장이 비대되어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오던 중이였기에 성모님의 은총으로 간암이 치유되셨다는 최시라 자매님의 말씀은 성모님집 방문을 한시라도 늦출 수 없게 한 반가움과 기쁨의 초대였습니다.

처와 함께 방문한 첫 기도회 때 저는 짙은 장미 향기를 맡았으며, 말할 수 없는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되었고 14년동안 성당에 다니면서 왜 이제서야 성모님 집을 찾게 되었는지 후회가 되었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광주에 돌아 올 때 저의 차에 함께 동승하시게 된 봉선동 성당의 율리아나 자매님과 유스티나 자매님의 자세한 설명과 안내로 궁금했던 의문들이 이해가 되었고 그 동안의 여러 가지 기적들의 역사를 듣는 동안 제 처는 놀라움을 금치못했으며 저의 신심이 이제서야 잠에서 깨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집에 모셔 놓은 성모님이 달라 보였고 첫 토요일이 기다려지면서 이제껏 얼마나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한꺼번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도 진심으로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믿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마음, 흠숭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습관이 생활화되고 기도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의 모든 고통을 성모님께 봉헌하기로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기로 마음먹은 저는 병원에서 평생 먹어야만 한다고 했던 혈압약과 심장병약을 3월초부터 완전히 끊어 버렸습니다.

매일 매일 죽음을 생각 할 정도로 가슴압박과 호흡곤란이 계속되었으며, 끝까지 저를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고통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도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저의 약해진 믿음과 신뢰심을 반성하면서 온전히 의탁하는 생활을 하던중 다음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6월 3일, 첫 토요일 방문 때는 성모님의 현존을 드러내시는 증표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철야기도를 드리고 경당을 나와 밖에 계시는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2층 다락방에서 율리아 자매님이 손을 흔들고 계셔서 답례를 하고 성모님께 인사를 하기위해 돌아서니 이게 웬일입니까? 성모님발 밑, 꽃꽂이 해놓은 꽃중 가운데 두 송이가 좌우 45도 각도로 흔들어 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걸 목격한 저와 옆에 계신 자매님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티없이 맑고 깨끗하신 성모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성모님께 매일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성모님의 증표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런 기쁨을 보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6월 30일,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 행사 때의 일입니다. 기적수 산에 모셔진 성모님께 장미 다섯 송이를 봉헌하고 있을 때 저의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면서 땀으로 목욕을 하는 듯 했고, 성모님이 주신 물을 마시고 있을 때는 사회를 보시던 한 형제님이 "지금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치유해 주시고 계신다"고 외쳤습니다.

그 때  저도 그걸 느꼈으며,  촛불봉헌과 십자가의 길을 끝내고 주위에 계시는 자매님들과 외국에서 오신 형제님들을 태우고 경당에 내려 왔는데 저녁 철야 기도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런 기회에 ‘산에서 미처 못 내려온 형제 자매님들을 위해 차량봉사나 한번 더 해야지’생각하며 다시 산에 올라 가 순례자들을 태우고 산을 오르내리기를 몇번하고는 철야기도에 참여하기 위해 경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철야 기도 때 평상시 제일 고통이 심했던 고혈압과 심장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온몸을 압박하며 호흡까지 곤란했던 가슴이 얼음물을 쏟아 놓은 것처럼 시원하고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을 주셨으며, 가슴 위까지 밀고 올라와 압박하던 고통을 마치 사람의 손으로 하복부까지 꾹 눌러 못 올라오게 하는 것처럼 하더니 그 다음 날 첫 토요일 철야 기도 때도, 또 다음 날 일요일에도, 계속 3일 동안 이렇게 똑같은 현상과 함께 기쁨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4일째 되던 날부터는 통증이 없어지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으며 성모니의 은총으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모든 병들이 치유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보잘것 없는 저에게 이렇게 많은 은총을 주실 줄은 정말 몰랐으며 그야말로 기쁨의 연속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께 찬미와 감사, 찬양과 영광, 흠숭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소서.

그리고, 저를 나주 성모님께 불러주신 티없이 맑고 깨끗하신 성모성심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리며,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이 죄인, 이제 남은 생애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신 : 8월 4일 전대병원에서 진찰결과 심장병과 고혈압 등 극히 정상으로 나왔슴.

2000년 7월 20일
광주시 서구 내방동 385-1번지
해태 아파트 103동 702호
조기학(아우구스티노)

 

 

현대의학으로도 불가능했던 불치의 병이 소량의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저는 2년 전 한국 나주 성모님을 방문하여 매우 특별한 은총을 받고 돌아갔는데 성모님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일에 또다시 저를 나주로 불러주시어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맨 처음 나주 성모님을 찾아 뵙고 돌아갈 때 많은 양은 아니지만 기적수를 정말 소중하게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저의 친구가 병원에서도 더 이상 가망이 없는 매우 위급한 상태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매우 적은 양이었으나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에게 그 기적수를 보내면서 물의 양이 적으니 묵주기도 하면서 한 숟가락씩만 먹도록 하였습니다. 저의 친구는 제가 시킨데로 묵주기도 하기 전에 성모님 물을 한 숟가락씩 먹으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매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더니 놀랍게도 한달 만에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저희는 너무너무 기뻣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진찰을 받아본 결과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뿐만 아니라 완치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저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으며 특히 저는 나주 성모님 물은 영적인 치유는 물론 현대의학으로 불가능한 병도 치유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구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성모님께 온전한 믿음과 신뢰로서 의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나주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안에 평화가 가득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2000년  7월 1일
Mrs. Omg Chan Sav
Ha Rm A3409 On, Wah House Lok
Waaestate, Kowloon, Hong Kong

 

 

기도도 하지 않던 아들이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제가 아들과 함께 나주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주에 오려고 결심했을 때에는 이미 비행기 자리도 예약이  끝났으며 여권도 발급 받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하여 여권을 급히 발급 받고 나주순례를 주선하던 욜란다씨께 다시 부탁하였더니 마침 2명이 나주방문을 취소 하였기에 이번 순례에 함께 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 로스탐은 성당에도 잘 나가지 않았고 기도를 전혀 하지않는 상태였기에 나주를 가지 않겠다고 떼를 ›㎟藪?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언제 죽을지모르며 만약 나혼자 이번 여행에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것은 너한테 되돌리수 없는 크나큰 죄책감을 남겨 줄 수도 있으니 제발 이번 여행에 동참하자고 설득한 결과 한국행 비행기에 아들과 함께 몸을 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증언을 하면서 어머님의 아들에 대한 감정과 그동안의 어려움을 상기하면서  울음을 터트려 경당안의 갑자기 숙연해 졌으며 경당안의 많은 사람들도울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야기는 계속 되었읍니다.)

나주에 오긴 왔으나 아들녀석은 3 일동안이나 일행들은 물론 저와도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아 무척 속이 상했지만 참고 희생으로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던중 기적수산에서 율리아 자매를 만날수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율리아 자매님에게 아들을 소개시키면서 가까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자매님의 손을 아들의 가슴에 대어 주시며 잠깐 기도를 하는 순간 아들은 뒤로 넘어졌으며 엉엉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한국 나주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으며 온가족이 화목한 가운데 건강한 웃음이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기도도 하지않고 고집부리던 아들 로스탐이 기도를 너무 많이 하고 이제는 오히려 어머니인 저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의 변화와 가정의 화목 및 크나큰 은총을 베풀어 주신 나주성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성모님의 행사때에는 빠지지 않고 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마도 아들녀석 때문에 오지 않고는 않된다는 것을 저는 잘알고 있습니다. 그후 나주 방문이 오늘로써 세 번째인데 이 자리에서 이렇게 신앙체험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쁨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7월 1일
Valti and Rostom
San Francisco, U. S. A

 

 

일주일에 7일간을 나주 성모님을 위해 일하는 DAVE Rodger

안녕하세요! 저는 3년전 나주 성모님을 처음 방문한 데이브 로드걸입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저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성당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고 혹시라도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 할라치면 아들 부부는 사생활에 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곤 하였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런 제 아들에게 아주 놀라운 일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나주에 오기 전에 불현 듯 아들을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들을 만나 내일 나주에 간다는 이야기와 함께 성모상을 모셔올 계획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뜻밖에도 아들은 "저에게도 성모상을 모셔다 주세요" 하면서 굉장히 많은 돈도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아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아이구 성모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연신 성모님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더 이상 다른 말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왜냐면 제 아들은 냉담한지가 이미 10년이 넘었고 아들의 부인은 마귀 종류의 신을 섬기고 있었기에 성모님을 모시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나주에 다녀와서 나주 성모님 상을 아들의 집에 모셔놓고 돌아 왔는데 그 다음날 아들에게 전화가 왔는데 "저의 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밤중에 화장실에 갈려고 일어났는데 온 집안 전체가 장미 향기가 가득하고 지금도 집안 곳곳이 장미향기로 진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뜩 며느리도 장미향기를 맡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물어보니 함께 향기를 맡았다고 하여 그 다음은 어떻게 하였는지를 물어보니 놀랍게도 아들 부부가 함께 나주 성모님 상을 식탁 위에 모셔놓고 묵주 신공을 드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일이 있고 난 이후 아들은 성당에 다시 나가게 되었고 며느리도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11월 달에 순례자들을 모아서 나주에 올 때는 저의 아들도 함께 왔습니다.

이번 나주 방문이 다섯 번째인데 맨 처음 왔을 때는 여러 곳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서로 하나가되어 기도하고 노래하고 함께 율동하는 모습이 너무 너무 아름답고 좋게 보였는데 지금은 성모님이 너무 좋아 직장까지 그만두고 오로지 나주 성모님 일만 하고 있습니다. 맨처음 나주를 방문한 이후로 매년 한번씩 나주를 오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있습니다. 즉 매일 매일 제가 하는 일은 나주 성모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세계를 다니면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와 함께 나주 성모님에 대한 책자, 비디오 테입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를 이러한 은총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나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2000년 7월 1일
Dave Rodger
7816 WENTWORTH  ST
SUNLAND, CA 91040, U. S. A

 

 

성모님 동산에서의 소주 내음은?

서울 복우동 성당에서 온 김경순 데레사 입니다.
제가 집안에 어려운 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제 동생이 "언니! 나주에 한 번 가봐. 나주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긴데" 하면서 나주에 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집안일과 제 남편의 일로 너무 괴로운 상태였는데, 특히 저희 남편은 7년째 냉담중이었으며 더군다나 술을 너무 많이 먹어 저와 자주 다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주에 오고나서 부터 제마음이 조금씩 변화되면서 오히려 그런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번 첫 토요일에는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함께 나주 성모님 동산에 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성모님 동산에 도착하니 이상하게도 소주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성모님 여기에 오면 모두들 장미 향기가 난다는데 왜 저는 소주 냄새가 나나요?' 하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1처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면서 회개가 되더니 나중에는 기도를 못할 정도로 눈물이 나더군요.

그렇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통회를 하고 성모님 상 앞에 앉아 있는데 알콜 냄새, 소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이상하다, 누가 소주를 부었나?' 하면서 의아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술에 찌들려 사는 남편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 우리 장부 술좀 그만 마시게 해주세요, 이 술 때문에 집안에 평화가 없습니다. 맨날 술먹고 저와 아이들과 싸우고, 정말 너무 힘들어요"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주 성수를 꺼내어 남편에게 주면서 "이거 눈에 넣어도 좋다는데 눈에 넣어요. 눈도 침침 하다며?" 하면서 주는데 갑자기 성수에서 장미 향기가 진하게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여보! 성모님산에서도 맡지 못한 장미 향기가 이 성수에서 말도 못하게 나요, 당신도 좀 맡아 보세요" 하면서 남편에게 내밀었더니 "아휴, 진짜나네, 진짜나…" 하고 신기해 하면서 눈에도 넣어 보고 하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휴, 정말 희안하네" 하길래 제가 "나는 성모님 산에서 술냄새를 맡고는 당신 술좀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했더니 남편이 "그러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더군요. 그런데 그날부터 남편은 술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날 성사까지 보았습니다. 전에는 남편이 성모님 메시지를 의심하면서 거짓말 이라고까지 하면서 내던지는등 그야말로 아주 의심 꾸러기 였는데 나주에 다녀온 이후 부터는 성모님 메시지를 열심히 읽는 것은 물론, 나주 성모님의 물을 마실때도 "예수님의 성혈로..." 하고 기도까지 하면서 마실 정도로 정말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첫토요일은 성모님께 감사드리려고 나주에 왔는데 기도회 내내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만 끊임없이 흐르더군요. 그래서 눈물을 닦으려고 베낭에서 손수건을 꺼냈는데 사용하지도 않은 그 손수건에서 장미 향기가 났고 그 향기가 몇일을 가더군요. 이 모든 은총을 베풀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2000년 6월 3일
서울 당산동 5가 성원아파트 101동 1205호
김경순 데레사        
전화) 677-1946

 

 

고정애 요셉피아 자매 증언

작년에 아치에스 행사 때 일본에 아끼다에 갔고 이번에도 이스라엘 수태고지에 중국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성모님이 이스라엘에 갔다와서도 이곳을 잊어버렸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이해가 안 갔는데 꿈에 나주 모습이 보여 이곳에 왔는데 그때 생각나는 것이 아무리 세계를 다녀도 한국의 어머니가 제일 크구나 그것을 알라고 나에게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곳곳에 세계 성모님이 계시는데 이스라엘 다녀와서 다시 나주에 온 것은 일본 이스라엘 세계 어떤 어머니보다 한국의 어머니가 가장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저는 다시 이곳에 인사하고 기도차 왔습니다.

5월에는 꼭 성모님을 자랑해야지 했는데 이렇게 성모님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5월 첫토요일
고정애 요셉피아
경기도 성남시 태평 1동 5806번지

 

 

조소까지 했던 나에게 장미향기로 다가오신 성모님

저는 미국에서 온 방 을생입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미국에서 천주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 인연으로 4학년 때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세를 받긴 했어도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영향으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조금도 없었으며 성모님을 흠숭하거나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권하면 오히려 반감을 느끼면서 왜 나와 같은 인간인 성모님을 경배해야 하느냐면서 조소하였습니다.
그러던 제에게 1997년 10월말 어느 날 오후에 이 분도씨가 소포를 보내왔는데 소포를 조금 여는 순간 아주 강한 장미향기 같은 향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소포를 여는데 포장을 뜯으면 뜯을수록 향기는 더욱 강해졌고 마침내 그 속에는 향기 가득한 성모님 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모님상을 내방 팩스 옆에 모셔 두었는데 방안이 온통 장미 향기로 가득해져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약간의 의심마저 들어 성모님상 이곳 저곳을 살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면서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님상 맞은 편 소파에 앉아 바라보면서 마치 제가 방안에 몇천 아니 몇만송이의 장미꽃 속에 둘러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미 향기는 마치 짙은 안개와도 같이 방안 구석구석까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장미 향기를 맡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향기가 강하면 머리가 아파서 공부를 못할텐데… 하고 걱정까지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성모님상이 생각나서 공부방으로 달려갔더니 어제와 같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장미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 저희 집 청소를 해주는 남미여자가 집으로 들어서면서 웬 장미 향기냐고 묻기에 제 공부방으로 데리고 가서 성모님상을 보여 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여자도 공부방 앞을 지날 때마다 짙은 장미향기를 맡았는데 청소해주던 그 여자는 꼭 금방 꺾은 장미에서 나는 장미향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며칠간을 계속해서 그렇게 장미향이 강하게 풍기다가 점차 성모님의 머리, 손, 가슴 등에서만 장미향기가 났고 한참 지난 후에는 성모님상의 가슴에서만 향기가 났습니다.

어느 날 자궁암에 걸린 제 친구가 왔길래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하게 했더니 마치 신선한 장미 향기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소록소록 새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깊은 기도를 할 때마다 성모님 상 가슴에서 장미 향기가 풍겨져 나옵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한 내가 어찌 성모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주 성모님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장미 향기를 통해서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해주신 나주 성모님께 찬미 드립니다.


2000년 5월 27일
방 을생
1250 S. Warhington St#421
Alexandria, UA 22314, U. S. A
Tel. 703-836-1056

 

 

임 요안나 자매님의 증언

 찬미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다섯 아이를 둔 광주 운남동 본당 임 요안나입니다.
제가 받은 모든 은총에 대하여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그중 한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얼마전 큰 아이가 시원한 물이 먹고 싶다고 하여 나주 성모님이 주신 물을 주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마침 넣어둔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으로 스텐 그릇에 나주 성모님 물을 담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는데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틀후에야 아무런 생각 없이 냉동실을 열었더니 그때 넣어둔 물이 꽁꽁 얼은 채로 있어 다시 녹으면 먹을 생각으로 냉장실로 옮겨 놓았습니다. 제가 건망증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만 또 잊어 버리고 있다가 이 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하고는 "아이구! 내 정신좀 봐라" 하면서 밀폐되지 않는 채로 오래 두었으니 냄새가 배어 먹기에는 좀 이상할 것 같아서 '화분에나 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꺼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성모님 물은 모유의 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나주 성모님 집에 가까이 살고 있기에 물을 손쉽게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할 줄 모르고 그냥 마셨고 또한 아이들이 먹다가 지저분하게 해서 남긴 물은 버리기가 아까워서 화분에 주곤 했었는데 이를 두고 마치 성모님께서는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이 물은 엄마의 젖이니 한방울이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 라고요. 그래서 장부와 아이들과 저는 "이 물이 바로 성모님 젖이었네!"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성모님의 젖이라고 확신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성혈로 바꾸어 주시기를 청하며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하고 노래하면서 서로 돌려가며 감사히 다 마셨습니다.

저는 모유가 부족해서 제 아이에게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먹이고 있었기에 저는 성모님 집에서 배운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기 위하여 모유나 분유를 먹일때마다 "주님, 저는 지금 아이에게 모유(또는 분유)를 먹이고 있지만 주님께서 성모님의 젖으로 바꿔주시어 이 아이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하면서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젖으로 변화된 성모님의 물을 보면서 얼른 모유를 컵에 받아 그 물과 비교해보니 정말 정확히 똑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감사할줄도 모르고 마시던 성모님의 물이 실제로 성모님의 젖이었음을 저희 모두에게 확실하게 알려주시고자 보여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알렐루야.


2000년 5월 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 771-1 주공아파트 403동 104호
임재희 요안나
전화. 062) 956-8284

 

 

사망했기에 포기해야만 될 내 아들이 나주 기적수를 먹고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남 1녀를 둔 인천교구 석남동 본당 정경림(율리안나)입니다.

오늘 저는 제 아들이 학교에서 2교시에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마시다 그 우유에 기도가 막혀 오랜 시간 호흡을 하지 못해 사망하여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나 나주 성모님 성수와 기적수로 되살아나게 된 경위를 사실그대로 증언하고자 합니다.

1999년 12월 14일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아들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당황하여 넋을 잃고 있을 때 교감선생님이 가좌 성모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시는데도 어떻게 가야할지 아무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는데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차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오전 10시 30분경 가좌 성모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담임 선생님에게 "세현이는?" 하고 다급하게 묻자 "저-기"하며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제 아이가 119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뛰어 들어가 보니 입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혀 있었고 두 눈을 뜬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잃을수도 있다는 조급한 생각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장난이라도 그런 장난은 하지 말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세현이를 태운 119 구급차는 인천에서 제일 큰 종합 병원인 중앙 길 병원에 도착하였고, 가좌 성모 병원 의사와 간호사가 길병원 의료진에게 인수 인계하면서 "가좌 성모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마치 지옥의 길을 걷는 느낌이었죠. 응급실 집중치료 3실에서 계속 전기충격을 가하며 치료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며 컴퓨터 그래프 자체도 전혀 움직이지도 않아 의학적으로 완전히 사망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담임 선생님, 양호 선생님, 남편과 함께 마음을 졸이며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학수고대 하였지만 오후 5시-6시경에 담당의사 선생님은 "이 아이 말고 또 다른 아이가 있습니까?"하며 포기하라는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한마디에 저는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사랑하는 내 아들! 소중한 내 아들은 이제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생각하니 애간장이 다 녹아 내리는 듯한 저는 실성한 사람마냥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을 이렇듯 쉽게, 허망하게 떠나 보낼 수 없었기에 저는 담당의사와 의료진을 붙잡고 울부짖으며 애원했습니다. "제발 살려달라"고요… 그 종합병원의 의료진은 이미 체념한 상태였지만 아이 엄마인 저의 울부짖는 간청에 못이겨 제 아들에게 인위적 생명유지장치를 총동원하여(무슨 장치인지는 모르지만 호스를 코에 2개 입에 3개 꽂아놓았음) 오후 7시경 영안실 바로 위의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로의 이송은 생명유지장치를 가동하여 장기를 강제로 움직이게하는 인위적인 노력일따름이었지 실제로는 죽은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 일반 입원실로 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중환자실은 죽어서 영안실에 가기 직전의 회복 불능의 환자들과 우리 아이처럼 사실상 사망하여 포기한 환자들만 수용하는 곳으로써 그곳에서 나오는 시체를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고 영안실로 옮겨가기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대기소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아들의 죽음 외에 또 다른 죽음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바로 옆에서는 죽음을 부르는 듯한 기분 나쁜 가래 끓는 소리,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시체들(그곳에서 지냈던 시간들처럼 죽음을 많이 본적이 없었는데 우리 아들을 빼고 살아나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을 계속 보면서도 아이를 살리려는 일념 하나로 버텨 내면서 무서운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는 경황 중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모성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다는 슬픔으로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었지만 그러나 저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흘간을 밥한 숟가락도 먹지 아니한 채 처절하게 죽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2월 16일 오전 중에 매달 나주에 다니시던 쁘레시디움 부단장님이 나주에서 가져왔다는 성수와 1.8ℓ짜리 병에 기적수를 가져와서 뿌리기도하고 의식도 없는 아이 입에 넣어주었는데 그 기적수라는 물은 입밖으로 흘러내리지도 않고 빨려 들어가듯이 그대로 삼켜졌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아이가 신기하게도 그것을 흘리지 않고 먹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딸 아이 때문에 잠깐 집에 와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세현이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아들의 손을 잡고 "아빠인줄 알면 손에 힘을 줘봐"했더니 약간의 힘을 주었다가 놓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오! 내 아들이 이제 살아났구나" 그러나 난 믿겨지지가 않아 "정말이야?"하며 반문했지만 그날 오전 중에 제 아들의 입에 넣어준 기적수가 메마른 땅에 단비가 스며들 듯 한방울도 흘려지지않고 흡수되는 것을 목격한 터라 그 기적수가 제 아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었음을 깨닫고 나주 성모님께 그리고 우리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이튿날 남편과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어제보다 더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고하여 나는 기적 성수를 수시로 먹이고 침대 주위에 뿌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두 번밖에 안되는 면회였지만 아이의 정신이 돌아오자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아이 옆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낮이 되자 다시 살아난 세현이가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꿈만 같아 뛸 듯이 기뻤습니다. 간호사가 준 미음을 아들에게 떠 먹이는 엄마의 행복한 마음을 과연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요! 죽었다가 살아난 것 뿐만 아니라 시간 시간 빠른 회복에 의사 선생님도 의학적으로 뭐라고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기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만 사흘만에 우리 세현이는 죽음에서 탈출해 나와 12월 20일 일반 입원실로 옮겨져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식사도 변해갔습니다. 약은 물론이고 다른 무엇을 먹일 때도 언제든지 기적수를 사용했습니다. 부단장님께서 물 한방울도 흘리지 말라고 당부 하셨기에 그대로 했었는데 마침 물이 떨어진 다음날인 12월 25일 가퇴원할 수 있었는데 그후 별다른 장애가 없어 그것이 실질적인 퇴원이 되었습니다. 퇴원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곧바로 성당에 갔습니다. '어린이 성탄 발표회'로 큰아이는 바이올린 연주와 합창을 했는데 우리 세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며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다시 살아난 우리 세현이를 본 본당의 많은 신자들이 축하한다며 모두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본당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사흘동안 죽었다가 크리스마스에 퇴원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가좌 성모 병원 의사와 간호사도 세현이가 살아난 것에 대해서 믿기지가 않는 듯 "정말이냐?"고 반문하며 기쁘게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후 저는 나주 기적수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겼고, 아이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알레르기성 체질로 바뀌어 밤에 긁적이느라고 짜증낼 때도 있어 그것마져도 치유 받고자 4월 첫 토요일에는 학교를 조퇴하고 세현이와 함께 나주에 가게 되었습니다.

나주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도중 세현이는 자기가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으며, 생각하는 모든 것이 더 예뻐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주에 가는 것은 자기 마음을 수술 받으러 간다"고 했으며 그리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착한 마음이 되게 수술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번 4월 1일 성모님 집에서 세현이가 살아난 은총에 대해 증언하고 난뒤 피부병도 많이 좋아졌고 밤에 잠도 잘 자게 되었답니다.

아들이 살아난 지금 제가 변화된 것은, 성당에서 어떤 직책을 맡으라고 하면 항상 싫다고 거절했는데 지금은 '주님의 뜻이라면 제게 건강과 능력을 주셔서 도구로 사용하십사'하고 받아들일줄 아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졌으며 남편도 바쁠 때는 주일마져 걸렀으나 지금은 주일은 물론이고 새벽미사에도 나가려고 하며, 운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할 줄 아는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  "나주 성모님! 우리 세현이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


2000년 4월 10일
인천 광역시 서구 가좌 1동 155-26 1/2 가좌빌라 A동 201호
정경림 율리안나

 

 

나쁜 성격도 고쳐주시고 화해 시켜주신 나주 성모님

부산에 사는 심귀달 막달레나 입니다.

99년 6월 30일날 나주에 왔었는데 나주에 다니면서부터 예수님과 성모님 사랑이 마음에서 막 솟아 오르더니 나빴던 성격도 좋아져서 가족들과 며느리에게 사랑으로 대하게 되니 며느리도 변화되어 서로 화해하고 잘 지낸답니다. 기도 생활도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되어 성체조배도 하고 묵주의 기도도 하루에 150단씩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항상 머리가 아프고 위장이 좋지 않아 날마다 약을 많이 먹으면서 살아야만 했는데 나주에서 가져온 기적수를 마신후 부터는 머리와 위장이 치유가 되어 지금은 약도 먹지 않게 되었으며 갑상선에 걸린 며느리에게도 기적수를 마시라고 주었더니 치유가 되었습니다.

7월 중순경에는 이웃집에 사는 막달레나라는 자매님이 있는데 자궁에 혹이 생겨 매우 아파하고 하혈도 하여 수술을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자매에게 수술을 하려면 그 전에 남편과 화해하고 고백 성사를 보고나서 수술을 하라고 권하며 기적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틀후 그 자매는 부산에 있는 분도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혹이 작아져 거의 딱지가 되어 있었고 수술 할 때 통증이 없어서 의사선생님이 이상하다고 하였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런 수술을 하면 매우 아프다고 하는데 아무런 통증도 없었으니 의사선생님도 놀라워하더랍니다.

그후 그 자매님은 막달레나 자매님과 함께 다음 첫토요일에 나주에 왔는데 남편과 자주 싸우던 그 자매님도 나주에 다녀온 후부터 변화가 되어 지금은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으며 서로 사랑하면서 기쁘게 잘 지낸답니다. 감사합니다.


심귀달 막달레나
부산광역시 두암 2동 127-89 13통 3반

 

 

내가 회개하므로 남편도 변화되고 가정도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83년도에 영세를 한 대구 경산에 사는 이 미카엘라입니다.

남들은 저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저희는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97년 4월 첫토요일날 처음으로 나주에 오게 되었는데 성모님께서는 제게 엄청나게 많은 회개를 시켜주셨습니다. 그때 최루탄 가스처럼 나쁜 가스가 제 몸에서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는데 철야기도를 마치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내 몸에서 나쁜 가스가 계속해서 나가는 것을 느꼈으며 집에 있는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사진 앞에서 기도할 때에도 많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또한 나주에 계속 다니게되면서부터 제 악습을 고쳐달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히 들어 아픈 상태에서도 나주에 가려고 하니 남편이 "그 몸으로 가다가는 죽는다"고 했으나 나주에 가려고 차에 타면서부터 성모님이 회개를 시켜주셨고 나주를 다녀온 후부터 묵주기도를 하고 또 회개를 하니 남편이 "나주가 대단한 곳이구나" 라고 하였으며 나주에 가보지도 않은 남편이 어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저 사람도 나주를 가야돼"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평상시 남편은 제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는데 묵주의 기도를 하면서 회개를 많이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짜증과 성냄이 없어지자 자연히 남편이 변화되고 가정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은 가정부터 변화를 시켜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전에는 일주일 내내 세속 모임과 세상적인 것을 쫓아 다니며 살았지만 이제는 세상적인 것을 끊고 세속적인 모임도 많이 끊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텔레비젼이 응접실 중앙에 있었는데 지금은 텔레비젼 대신 응접실 중앙에 제대를 꾸며 성모님을 모시게 되었으며 사람들에게도 "나주에 다니면서 회개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후 남편에게 나주에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으나 97년 6월 30일에 나주에 따라오게 되었는데 나주에 다녀온뒤 저보다도 기도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으며 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주에 관한 증언을 합니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철야기도가 끝나고 눈물 흘리셨던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성모님 앞을 지나갈 때에 성령 안식을 취하여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남편 바지가랭이를 잡고 있기도 했습니다. 성모님이 살아계시기에 성령의 기운이 엄청나게 저에게 다가왔으며 성모님과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97년 7월 교황청에서 교황님의 비서인 몬시뇰이 오시는 날 딸과 함께 나주에 가서 제 딸과 함께 묵주 기도를 했는데 딸이 성령에 취하여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동안 낙태가 죄 인줄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나주에 다니면서부터 성모님께서 회개를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율리아 자매님은 낙태보속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그 동안 낙태에 관하여 회개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던 내가 갑자기 낙태 수술할 때 마취 주사를 맞으며 자식을 죽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생명은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면서 갈기갈기 찢겨 가며 애원을 하는데 이 엄마는 잠시의 아픈 그 고통도 느끼기 싫어 전신 마취를 하고 아이를 죽이려고 누워있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너무 아파 하염없이 눈물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 성모님이 바라보고 계셨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나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생명에게 정말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성모님께서 전구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정말 통곡하고 싶었지만 옆에 계신 분들이 분심이 들까봐 참는데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또다시 회개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0년 4월 2일
이 미카엘라
경북 경산시 옥산동 신화타운 201동 1006호

 

 

회개로 얻은 성모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총 

+ 찬미 예수

저는 92년 1월 첫토요일에 나주 성모님 집을 처음 방문하였던 부산에서 온 김태분 엘리사벳입니다. 그당시 저는 남편을 너무나 많이 미워하며 죄 속에 살면서 주일만 지키는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성모님 집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갑자기 제 과거가 영화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면서 "성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이 죄인 용서해 주시고 남편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때 짙은 장미 향기를 맡았는데 경당에서뿐만 아니라 성모님 집 화장실과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또 고속도로 휴게실과 그리고 집에와서도 너무나 짙은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후 저희 가정에서는 내적, 외적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너무나 가난했기에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도 걱정이 많았었는데 성모님 집을 다녀온 후 남편이 좀 더 나은 회사에 취직이 되어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동료가 남편에게 "목이 이상한 것 같으니 병원에 가보라"고하여 검사를 했더니 갑상선을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목뼈속까지 파고 들어가 뼈를 깎아내고 수술을 해야하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남편과 저는 짙은 장미 향기를 세 번 맡았습니다. 또 남편의 수술 중에도, 제가 묵주기도를 드릴 때에도 병원을 가득 채우는 짙은 장미 향기를 세 번이나 주셨고 성모님 은총으로 수술이 잘 되었습니다. 2주 동안 입원해야 되는데도 경과가 너무 좋아 6일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에 온 가족이 성모님 집을 찾게 되었고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남편과 두딸도 세례와 견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방살이로 고생하던 저희는 지금은 성모님의 은총으로 24평 아담한 아파트에 살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3년전 위암으로 위는 물론 식도까지도 제거하고 인공식도를 넣어야 하는 대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나주 성모님께서 도와주셔서 70세 노인인데도 수술이 잘 되어 방사선 치료를 한 번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좋았습니다. 천주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만 하시던 분이시라 수술 하실때는 기도만 드렸고 수술 후에는 설명은 안했지만 기적수를 드리니 시아버지께서 드셨습니다.

그런데 2000년 2월 중순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식사는 물론 물도 못 넘기셔서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약 20일을 물 한모금도 못 드신 채 링겔에 의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3월 첫토요일에 나주 성모님을 찾아 뵙고 "성모님, 저희 아버님 대세 받게 해 주시고 마음의 문좀 열어 주세요"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에 천주교를 반대하시던 시아버지였지만 성모님을 믿게 되셨고, 나주 성모님 기적수에 대해서 설명을 드린 뒤 드렸더니 거절하지 않고 다 드셨습니다. 그때 20일만에 처음으로 드신 것이 바로 나주 기적수였던 것입니다.

그후로 미음도 드시게 되었고 대세를 받으시겠느냐고 했더니 너무나도 잘 받아들이셔서 대세를 받게 되셨으며 죽도 잡수시고 지금은 기적수가 아니면 약이 넘어가질 않는다고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시부모님 두분 다 교리반에 꼭 나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도 싫어하시던 십자가를 머리맡에 모셔두고 묵주는 늘 손에 들고 계시며 스카풀라도 하시고 기적수를 갖다 드리면 너무나도 좋아하십니다. 또 성가와 성서 테이프도 들으시면서 "역시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되지"하시며 많이 변화되셨습니다.

저희 가정에 이렇게 큰 은총과 사랑주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 드리며 형편없는 글을 인내로이 읽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도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2000년 4월 2일
김태분 엘리사벳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 1동 부곡 상가맨션 311호
전화) 051) 518-2730

 

 

성모님 물의 기적과 치암이 치유된 기적

전주 덕진에서 온 유 마리아입니다.

저는 그동안 성모님 물을 계속 가져다 먹었는데 올해 1월 중순경 가족과 함께 아침 식사후 물을 먹기위하여 물통을 바라보았더니 물통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이상해서 뚜껑을 열어보니 성체 모양이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 눈에 잘못 보였는지도 몰라 며느리를 불러 물을 보라고 했더니 물을 보던 며느리가 깜짝 놀라며 '어머니! 참으로 성체가 떴어요!' 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2월달에는 저희 집에서 9명이 반모임을 했는데 저녁 식사 후 성모님 물을 마시려고 하니 성체 모양이 또 떠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던 9명 전부에게 보라고 했더니 물위에 떠있는 성체 같은 모습을 보고는 모두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정 수산나 라는 자매가 있는데 전북 대학 병원에서 치암으로 2개월밖에 못산다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치아에서 암이 펴저 코에서 골음이 나오고 머리까지 너무나 아픈 상태였습니다. 2월 중순경 바쁜와중에도 병원에 입원한 그 자매를 찾아가 성모님 물을 갖다 주었더니 성모님 물을 마시고는 그날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0년 3월 4일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1가 150-4 신북주택 202호
유 마리아

 

 

20년동안 불구였던 다리가 나주에서 치유 되었습니다.

저는 군산에서 온 정 막달레나입니다.

저희 본당에서 나주 다니시던 분들이 나주 자랑을 많이 하길래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자랑을 하는가? 생각하며 반신반의로 따라왔습니다.

저는 그 동안 하느님이 계신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나주에 와서 하느님이 확실히 계시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는 다리가 불구이며 20년 동안 방안에서만 살았습니다. 제 다리는 의사도 절단하자고 했으며 다리의 뼈를 잘라내서 3개의 못으로 연결시켰기에 서있어도 한쪽 다리가 짧습니다. 오직하면 본당신부님께서도 제 다리를 확인하시고 왠만하면 무리하지말고 집에 있으면 봉성체를 해주겠다고 하셨고 저는 항상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기에 다른 곳에는 전혀 가지를 못하고 집과 본당만 겨우 왔다갔다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나주를 가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그곳에 갈 생각도 못했기에 계획도 없었는데 나주에 가신다는 분들이 와서 몇시까지 가자고 하니 제 동생이 저를 바래다 주었습니다.
막상 나주에 왔지만 돌아 다닐 수가 없어 그냥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장미향기가 난다느니, 뭐가 떨어졌다느니 할 때 나는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어느 신심 깊은 자매님이 메시지 책을 주기에 읽어보니 너무 신기한 일들이 그 안에 있더라구요.
"성모님 산에도 가자"고 했지만 저는 '여기까지 온것만도 주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산에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매님들의 도움으로 성모님 산을 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하러 올라가자고 하는데 저는 올라갈 엄두가 나지않아 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예수님 성모님 손잡고 가자' 마음먹고 십자가의 길을 하고 내려오는데 짧았던 내 다리가 땅에 닿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갑자기 제가 갖고 있던 지팡이를 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제 지팡인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지팡이를 버렸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예수님 이제 지팡이 짚고 다니지 말라고 내 버리셨죠?" 하면서 "믿습니다. 주님" 했는데 다리가 아무렇지 않아 그 순간 저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경당에 앉아있으면 다리가 몹시 쑤시고 아플텐데 아프지도 않았고 신발을 신고 걸어보았는데도 전혀 걸은 것 같지 않게 편안했습니다. 또한 마음의 상처도 씻어주셨고 안정을 시켜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당 뒤의 사진들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 "어머니 울지 마세요. 이젠 우시지 마세요. 제가 기도 많이해 드릴께요. 어머니는 저의 친어머니예요. 이제 우시지 마세요." 하면서 속으로만 기도하였는데 오늘 철야 기도 중에 말씀하신 분이 "성모님께서 오늘 여러분 전부에게 친어머니가 되어주셨습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이것도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너무 확실하게 보여주셔서 저는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성모님께 '저는 보태지도 않고 빼지도 않겠다'고 말씀드리며 사실 그대로를 증언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0년 3월 4일 첫토요일에
정순애 막달레나
전북 군산시 장미동 14-6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신 나주 성모님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은총을 글로써 봉헌합니다.
친구의 소개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술주사"라는 특유의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너무나 심각했어요. 신혼여행 다녀온 첫날부터 난리였기에 실수려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어요. 저의 친정식구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너무나 많이 반대하는 결혼이었기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참고 잘 살아보자' 하고 결심은 했으나 술 먹고 오면 거의 밤을 새우면서 잠을 못자게 하고 머리카락을 한줌씩 뽑아놓고 온몸이 피 멍이 들도록 때릴 때 맞으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네가 예수냐?"고 하면서 "예수는 옷 홀랑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으니 너도 옷을 벗겨서 내쫓아야 한다"면서 밖으로 내쫓고, 심지어는 큰애를 가져서 만삭이었는데도 발로 차기까지 하여 시어머니가 병원 가서 검사해보라고 먼저 서둘 정도였습니다.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고등학교를 다녔으므로 거기서 세례를 받았는데 시댁이 불교라 성당에 못 다니게 하여 계속 냉담을 하고 있었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밤만 되면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먹고 자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분가해서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게 되었는데 믿음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자매의 권유로 자녀들을 데리고 나주 성모님 집에 가게 되었는데 별 느낌도 없었을 뿐더러 지루하고 따분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번 갔었으나 아무런 느낌도 없었답니다. 그러던 중 작년(99년 5월)에 어떤 봉사자의 권유로 성모님 산에 가서 샤워하고 기도한후 내려와 성모님 집에서 기도하고 집으로 왔는데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너무나 기분이 좋아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다녀온 후 몸에서 짙은 향기가 많이 나길래 나를 데리고 다니던 자매랑 다른 자매를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나를 데리고 다니던 자매는 장미향이 많이 난다고 했는데 다른 자매는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 집 두딸중에 작은딸만 향기가 좋다고 하며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는 남편이 술 마시고 와서 귀찮게 해도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정말로 기쁜 나날을 보냈어요. 눈만 뜨면 나주 성모님 집이 그리웠는데 그럴 때마다 잠깐씩 장미 향기가 났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술을 잔뜩 마시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다가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하여 저는 성모님 물을 컵에 하나가득 가지고 가면서 "성모님! 우리 남편 술주사 좀 고쳐 주세요. 남편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을 몰아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남편에게 주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면서 "왜 물에다 설탕 탔냐"며 "다른 물을 가져와!" 하면서 욕을 하고 난리를 치길래 또다시 기적수를 따라다 주면서 '성모님 이물을 마시게 도와주시고 제발 술주사를 고쳐 주세요.' 하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주었더니 다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물은 참 신기한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이웃에게도 조금씩 나누어주고 우리 남편이 수시로 먹을 수 있도록 그냥 두었습니다.

99년 6월 30일이 성모님 눈물 흘린 기념일이라고 해서 9명 정도가 나주에 가게 되었는데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꽃 세송이가 흔들린다고 난리를 쳤을 때 나는 '이러니까 다 반대하지…'하며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며 막 후회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한 번 가보자' 하고 성모상 옆으로 가서 '정말 성모님이 흔들어 주셨나?' 하는데 갑자기 백합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다' 고 생각하며 철야 기도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버스 안에서 함께 간 자매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어땠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냥 그랬어" 하여 나는 그 자매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혹시 알아요 항상 예쁘게 사니니까 성모님께서 이렇게 안아 주셨는지…," 하는데 밤새도록 땀을 엄청나게 흘렸던 그 자매 몸에서 장미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냄새 맡아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어휴! 내 몸에서 어떻게 향기가 나" 하며 그냥 앉아서 오다가 갑자기 향기가 난다기에 다른 자매에게 맡아보라고 했더니 땀 냄새만 난다고 했습니다. 원래 간이 좋지않아 수시로 응급차에 실려 다니던 그 자매는 그날도 미리 접수해 놓고 나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먼저 병원부터 들렸었는데 병원 의사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좋아졌느냐며 신기해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병원에 간 적이 없고 피곤하지도 않답니다.  성모님 영광 받으소서.

그리고 저희 남편도 술만 마시면 그렇게도 사납고 무서웠으며 촛불도 절대로 못 켜놓게 했고 술과 도박과 외고집이었으며 술을 마시지 않아도 폭언을 많이 썼고 거칠었으며 가족과는 거의 얘기도 안했는데 지금은 표정이 많이 밝아져 가족이랑 이야기도 잘하고 자녀랑 가끔 장난도 치고 너무 많이 바뀌었답니다. 분명히 다 치유 받고 성모님 영광 받으실 날이 꼭 올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은총을 주신 나주 성모님!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3월 2일
신여화 수산나
인천시 연수구 동춘 1동 대림 3차 아파트 301동 406호,
전화 ) 032-813-4626

 

 

네바다 우바울리나 자매님의 편지

 + 찬미예수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성모님의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전파하니까 악의 세력들이 저를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도움, 성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도 형제님께서 매번 보내주시는 영·한글로 된 기사들을 어언 5천장을 넘게 복사했지만 더 많은 것을 복사하기위해 복사기계를 사다 놓고 집에서 많은 복사를 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율리아 자매님이 뫼시고 계신 성모상이 어디에서 샀는냐? 누구한테 선물을 받았는냐? 하는 질문도 있기에 박 루비노 형제님의 체험담도 복사해서 다 보내고 있습니다.  "은총을 강물처럼" 책이 없는 분들께 앞으로 좋은 체험담도 복사해서 보낼려고 합니다. 모든 기사들과 테이프를 현재 60명한테 전달했고 15부는 미국 신부님들한테 전달했습니다. 각처에 사는 (개신교)친구들한테 미국 천주교 주보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여 보내오면 전화를 해서 신부님의 이름을 알아내어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만약에 "광주 대주교님이 못하게 하는 짓을 왜 하느냐?" 하고 누가 저를 박해하고 영창에 저를 집어 넣는다해도 저는 계속 할 것입니다. 저는 성모님께 받은 은총을 어떻게 기워 갚아드려야될까 했는데 저에게 이러한 일을 주셔서 삶의 의미와 의욕을 느끼며 복사를 한 장 한 장 찍을적마다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비록 성모님의 피눈물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어머님의 피눈물을 조금씩 닦아드리는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마태오 5 : 18절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워질 것니다.'   
우리는 언제인가는 주님의 영광을 꼭 볼 날이 올것입니다.  
주님, 성모님 사랑속에서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Mrs. P. Peacock(우 바울리나)
HC 34 Box 34050
Eiy. NV 89301, U. S. A

 

 

이제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나주 성모님 말씀을 전할수 있도록
강해졌습니다.

 저는 99년 4월에 10여년 동안 집사 직분을 받고 열심히 다니던 개신교를 뒤로하고 천주교로 개종을하여 2000년 2월 26일 세례 받기로 된 예비신자입니다.

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둘째 아이는 뜨거운 뚝배기의 찌개가 다리 위에 엎질러져 화농까지 겹친 극심한 화상을 입었으나 성모님 물을 바르고 마시고 나서 치유가 된 모습을 본 친청 어머니는 29년 동안 믿어왔던 남묘호랑개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했고 아버지도 치매가 있었는데 너무나도 좋아진 상태에서 이번에 친정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같이 세례 받고 성당에 열심히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쁜 나머지 여러분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제가 세례 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교리 교사로부터도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닌다고 핍박을 많이 받게 되었고 옆에 자매님도 "예비신자인 주제에 그렇게 성모신심이 강하냐"며 눈에 눈물이 나올 정도로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반대를 많이 받게되니 이제는 어떤 말을 듣게되더라도 잘 봉헌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주 성모님을 절대 부인할 수 없으며 이제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나주 성모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강해져 자심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반대를 받을 때마다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상처가 많아서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고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은 "예비신자인 주제에 어떻게 성모 신심이 그리도 강할 수 있냐?" "… 없다"고 단정 지으며 비웃거나 광신자로 몰아 부칠 지라도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면서 나주 성모님을 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2월 24일
목포시 산정 3동 중앙하이츠 8/1408호
정해경 Tel. 273-2380

 

 


조수희 레지나 자매의 은혜 증언

안녕하세요. 저는 조수희 레지나 입니다.

저희 친정 언니가 부산에 살고 있는데 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신앙 생활을 했으면서도 나주 성모님 얘기를 하면 굉장히 거부했습니다. 언니네 본당 신부님이 심하게 반대를 하고 못가게 했기 때문에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었는데 제 생활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니에게 '은총은 강물처럼', '메시지 책', '테이프', '예수님 상'과 '성모님 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누워있다가 몇일이 지나도 보지 않고 있던 '은총은 강물처럼' 책을 보게 되었고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허리가 치유되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또 언젠가는 기도를 하는데 성모님 상 주위에서 장미향기를 그렇게 많이 맡았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면서 이번에 나주를 왔다 갔는데 시어머니에 대한 회개를 하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하고난후 성모님 물을 마시는데 처음에는 물이 차다며 조금만 먹더니 제가 물을 많이 먹는 것을 보고 물을 더 달라고 하여 한 바가지 떠주었더니 다 마신후 장미향기를 맡았답니다. 지금은 나주 성모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충주에 사는 저희 작은 언니도 불러주시어 아이들과 나주에 왔다가면서부터 저녁기도와 묵주기도를 자녀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셀기도를 하는데 그중 한분은 자녀들이 냉담중이고 어려운 사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다가 12월 첫토요일부터 나주에 오시게 되었는데 본인은 너무 독하게 살았기에 어느 피정을 가도 눈물이 안나왔지만 나주에 와서 눈물이 쏟아지고 회개를 하였다면서 며느리와 아들에게 잘못했다며 회개로써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 보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수를 마시면서 두 달만에 골다공증이 치유되었습니다.

또 한분은 아들 며느리를 잃고 손주 4명을 키우고 있었는데 자궁이 밑으로 빠져 광주에서 수술하려고 날짜까지 잡았지만 신장이 약해 수술을 못한다고하여 퇴원을 한후 저와 함께 나주에 계속다니며 물을 먹고 바르면서 석 달만에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상처가 이만저만 아니고 다 헐어 너무 심한 상태였기에 지금까지 똑바로 앉아 보거나 똑바로 걸어본적도 없이 항상 뒤뚱뒤뚱 비뚤게 걸었는데 지금은 똑바로 앉을 수도 있고 아주 편한 자세로 똑바로 걷게 되었습니다.

또 한분은 허리가 너무 아파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 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분이 첫토요일날 처음으로 나주에 와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평상시 밤을 지새운다면 허리가 너무 아파 견딜수가 없어 울텐데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집에 제사가 있어서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는데도 "허리가 안아프다"며 지금까지 허리 아프다는 소리를 한번도 안하시고 저희와 함께 양팔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2월 3일 목요일
조수희 레지나
목포시 산정 3동 중앙 하이츠 8동 804호

 

 

성모님의 부르심으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 찬미 예수님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향기로써 우리에게 현존을 보여주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자비와 사랑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그 거룩하신 사랑을 체험한 세 분의 기적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여 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저의 종교관, 인생관, 가치관이 확 바뀌어져 버린 사건은 목걸이처럼 생긴 스카풀라라는 작은 물체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불과 3개월 전만해도 저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교회는 작년 11월달부터 다녔습니다. 그 동안 몇 군데 다른 종교를 믿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늘 마음 속에는 허전하고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마음 속의 메아리가 들려왔습니다. 교회는 그리 오래 다니지는 않았지만 제가 다니던 교회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큰 교회가 되다보니 여느 교회처럼 신자들에게 부여하는 물질적인 부담감도 크게 없었고 모두 다 친절하였으며 무엇보다 해박한 지식과 믿음으로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꼭 교회에서 주는 세례를 받기 위하여 교리학습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의 운명이 바꿔어져 버린 사건이 생겼습니다. 평소 단골로 다니던 미장원에서 인상좋고 마음씨 좋으신 미용사분이 어느 날 스카풀라를 보여주시면서 혹시 무슨 향기가 나지 않는지 한 번 맡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확히 플라스틱 재질로된 십자가에서 아주 향긋한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미용사분이 다른 손님들에게도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자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유독 몇 번이나 확인할 때마다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자 그 미용사가 기적수라는 물을 반 잔 정도 주길래 마셔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목안에서 아까와 같은 향기가 계속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말을 전하자 그 미용사 분이 하는 말씀이 "당신은 개신교보다 천주교가 더 맞지싶다"고 하면서 개종을 권유하며 나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냥 웃고 말았지요. 왜냐 하면 하느님은 개신교도 천주교도 똑 같이 계시는 분이시고 가을에 있는 세례만 받고나면 저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테클라"라는 세례명을 가진 미용사가 꼭 나주를 한 번 찾아갈 것을 권유한 말과 8월 15일 성모 승천일이 머리에 남았습니다. 그저 건성으로 시간이 되면 언젠가 한 번 가보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날자가 다가올수록 무언가 설레이기도 하고 꼭 반드시 한 번은 갔다와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생겨 결국 저는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나주로 가는 차안에서 제일 먼저 경험한 것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성모찬가였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지금도 성모님을 위하여 많은 기도와 활동을 하고 계시는 이 데레사 자매님의 노래소리는 마치 천사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불안했습니다. 하느님 잘 믿고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자부하는 개신교 신자가 어쨌든 다른 종교를 기웃거린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차안에서 다른 자매님들이 모두 함께 나주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드리는 기도와 성모찬가는 왜 그리 슬프고도 아름다운지요!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샛별같은 성모님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성모님' 저는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나주는 오히려 오랜 객지생활을 하다가 그립고 보고픈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날 운이 좋았던지 생전 처음 간 나주에서 기적수가 나온다는 성모님 산에서 목욕도 하고 기적수도 마시며 여러 형제 자매님과 함께 모여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 날 샘물 앞에 모셔져 있던 작은 성모님 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우시던지요! 기도가 끝나고 곧바로 나주 경당에 도착하였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것은 그 미장원에서 맡았던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었습니다. 경당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특히 기적의 성모님상은 생각보다 너무 작은데 놀랐습니다. 특이한 것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몸도 무척 피곤하고 아직 가톨릭식 기도는 잘 모르는지라 다른 분이 하는데로 몇번 따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드리는 봉헌의 기도에 같이 참석하였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마당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던 저는 놀랄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그 자리에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 계시다는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순간 지루하던 마음도 다 달아나버리고 두려움 속에 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신기하게도 8월 15일 나주를 다녀온 후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하였던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아직 영세를 받지 않았지만 왠지 묵주기도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나주에 함께 가신 어느 자매님이 선물로 주신 묵주를 받아 들고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도신경 주기도문은 개신교식으로 성모송은 가톨릭식으로 그런 나만이 아는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나오고 (사실 저는 개신교에 다닐 때 기도하면서 울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 사진을 볼때는 통회와 회개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우리의 구원자를 낳아주신 저분이 저렇게 눈물과 피눈물로써 호소하고 계시구나"하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럴수록 마음 속은 자꾸 깨끗해지고 다시 한 번 나주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성모님 생각과 성모님에 관한 책들을 사다 읽으며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했던 9월 첫째 토요일은 이상한 일이 또 생겼습니다. 대구로 내려가는 차안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나주에서 맡았던 장미꽃 향기가 내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선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저는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나주에서 계속 향기를 맡았던 저는 혹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환기 구멍이나 파이프를 통하여 향기를 보내지는 않는지 그런 의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향기는 나주에서만 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제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두 분의 자매님에게 물어보았을 때 전혀 그런 향기를 맡을 수 없었고 너무 신비적인 체험에 기울인다고 핀잔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자매님께서는 저와 꼭같이 장미꽃 향기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의아했습니다. 누구는 전혀 맡을 수 없고 누구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맡고 있다는 사실에 혼돈이 왔습니다. 이내 대구 도착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솔해가신 자매님에게 차안에 방향제를 틀어놓았느냐고 물어보니까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순간 경산에 살고 계신다는 자매님이 "저분이 아까부터 계속 향기가 난다고하니 그옆에 가면 혹시 향기를 맡을 줄 모르니 가보라"는 말을 주위분들에게 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다른 몇 분의 자매님들이 제 옆으로 다가서시자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이 저를 껴안으시면서 "놀라지 말라 너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몸에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걸 알았습니다. 그 날 향기를 맡은 주위분들이 너무나 신기해하고 좋아들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너무나 놀랐었고 그때의 당혹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이상한 체험을 한 후에 저는 성모님과 더욱 밀착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말 함께 계시고 향기로써 그분의 사랑과 현존을 나타내시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자신의 신앙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찌 그리 많은 향기를 주시는지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시간과 장소와 상관없이 길을 가다가 버스 안에서 또는 여러 다른 분들과 함께 맡을때도 있었고 1시간 이상날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예수님과 성모님 생각만 해도 향기가 풍겨져 왔습니다. 정말 제 마음속 뼈속까지 다알고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은 그 동안 저와 함께 기적을 체험하신 대표적인 세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9월 첫째 토요일 정확히 두 번째 나주를 방문하고 온 며칠 후의 일입니다. 그날은 잘아는 어느 할머니 집에 들렸습니다. 오래 전부터 성당에 다니셨던 할머니는 냉담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왠지 그분을 만나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자신의 신앙체험을 이야기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갔습니다. 그날 그 집에 김씨 성을 가진 50대 중반의 불교 신자가 손님으로 한분 계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님과 성모님의 숨겨진 아름다운 계획도 모른채 성모님의 메시지와 저의 신앙체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씨 성을 가진 그 불교신자가 매우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마치 자신의 코에다가 꽃을 갖다대고 있는 것처럼 아주 강한 향기가 세 번씩 연달아 나면서 향기가 계속 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날 할머니와 저는 무척 의아했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전혀 그런 향기를 맡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좁은 거실에 세 명이 앉아있었는데 혼자서만 맡다니요? 어떻게 한 자리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래도 아주머니는 주님이 부르시는 것 같으니까 꼭 성당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마치 처음에 그 미용사가 나에게 한 말을 제가 그분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할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알아 집으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전화 내용은 아주 감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그 향기를 맡고 집에 가셔서 가족회의를 열었으며 자신의 체험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개종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저의 감동은 어떻게 표현할까요? 단 한 번 장미꽃 향기를 맡고 그분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 기적같은 사건입니다. 개인적으로 전해들은 그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혼자서 네 명의 자녀를 키우고 여자 몸으로 억척스럽게 세상을 살아오셨기에 누구보다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평소 남의 말을 잘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몇십년 믿어오시던 자신의 종교를 버리고 지금은 성당에 등록하여 교리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직접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일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라나요. 꼭 영세를 받으시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시기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 전혀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않는 일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보다 조금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는 어느 착한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28세된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남편과는 20살 가까이 나이차이가 나는데 40이 훨씬 넘은 나이에 늦장가를 가신 착한 그집 남편은 성당에 다니시고 얼마되지않아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너무나 착하신 분들이라 저는 성모님의 메시지와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빌려준 테이프와 책을 돌려 받으러 찾아갔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다섯 살 먹은 그 집 꼬마애는 방에서 놀고 있었고 저는 그 애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부엌겸 쓰고 있던 그집 탁자의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꼬마애가 불현 듯 방에서 튀어나오면서 "아저씨! 아저씨 저좀 안아주세요. 저좀 귀여워 해 주세요"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꼬마가 제 품에 안기는 순간 저는 아주 달콤한 캔디향 같은 것을 맡았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얘들이 과자를 먹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달콤한 향기가 점점 더 강하게 풍겨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전의 장미꽃 향기와는 달랐습니다. 그때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던 그 얘 엄마가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말이 "아저씨 향수 뿌리고 다니세요?" 하면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까부터 계속 달콤한 캔디향 같은 것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저만 맡고 있는 줄 알았고 그집에서 그런 향기를 뿌려놓은 줄 여겼는데 오히려 제가 오고부터 갑자기 그런 향기가 계속 난다는 상대방의 질문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날은 늦더위로 날씨가 더웠으며 특히 출입문 쪽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애의 엄마가 절더러 바깥에 한 번 나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바깥에 나가 서있는데도 그 향기는 계속 풍겨져 나오고 그 집을 가득 메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달콤한 캔디향을 맡으면서 어린애처럼 좋아서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꼬마의 엄마가 하는 말이 "이런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는 처음 맡아본다. 이걸 담아서 보관할 수 있다면 병에 담아 두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그 아주머니와 저는 무척이나 큰 감동으로 젖어들었습니다. 열심히 믿고 사시는 분들에게도 향기로운 향기로써 현존을 나타내시는 주님과 성모님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온집을 가득 메우던 달콤한 캔디향은 1시간 가량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때 그 애의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처음 제가 빌려준 책 '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장을 넘기면서 몇번 어떤 향기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이런 향기를 직접 다시 체험하고 나니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후에 그분은 저희 나주 성모님 메시지도 열심히 전하고 저를 도와 주었습니다. 아직까지 집안 여건이 어렵지만 조만간 꼭 나주에 저랑 함께 가기를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금세기들어 세계 곳곳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고 계시며 우리 나주의 율리아 자매님에게도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 메시지 말씀은 한결같이 우리가 더욱 사랑하고 더많은 묵주기도를 하느님에게 바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 틀림없이 "주님과 성모님이 우리 형제 자매님과 함께 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 성모님 영광 받으소서! 그리고 여러 형제 자매님들도 많은 축복과 은총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증언자 연락처 :

1. 두 번째 방문(9월 4일)후 제몸에서 장미꽃 향기를 맡으신분
    홍정자 헬레나 : 018-505-8617 직장 053-423-7977
2. 캔디향이 났었던 꼬마네집 : 박순희 053-817-5268
3. 천주교로 개종한 불교신자 : 김봉순 053-815-914
   그날 함께 있었던 할머니 053-817-2923


박 준수 : 경북 경산시 조영동 256-1  Tel. 011-529- 3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