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은총은 강물처럼

 199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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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년 증언

   1999 년 증언

   2000 년 증언

   2001 년 증언

   2002 년 증언

   2003 년 증언

   2004 년 증언

   2005 년 증언

   2006 년 증언

   2007 년 증언

   200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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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천주교가 너무 부끄럽다고 하신 신부님 

cross2.gif  기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신 신부님과 수녀님

cross2.gif  율리아 자매님 대속고통으로 난소암 치유돼

cross2.gif  자신이 변화되니 가정일도 풀려

cross2.gif  낙태하려는 조카를 설득해 순산케 하다

cross2.gif  열심히 기도하니 물질 축복도 주셨다

cross2.gif  별명이 박나주, 박철인, 박길동

cross2.gif  피디수첩 방영으로 오히려 은총을 받다

cross2.gif  고갈 되었던 영혼까지 치유해 주시다

cross2.gif  폐렴으로 죽게 된 몸 나주 와서 살아나

cross2.gif  딸이 미혼모로 낳은 손녀 부끄럽지 않다

cross2.gif  딸의 귓병, 가슴 통증 깨끗이 치유 받아

cross2.gif  진심으로 기도하니 남편이 바뀌었다

cross2.gif  51년 동안 고름이 나오던 중이염이 깨끗이 나아

cross2.gif  다리 못 쓰는 아내를 예수님 돌보듯 사랑합니다

cross2.gif  알코올 향기가 코에 스치자 울화병이 치유돼

cross2.gif  가예언까지 망토로 막아주신 나주 성모님

cross2.gif  변을 못 보던 아기가 율리아님 기도로 나아

cross2.gif  아내의 암세포가 기적수로 다 죽어

cross2.gif  뇌출혈로 말 못한 남편의 말문이 열렸다

cross2.gif  욕창도 당뇨병도 기적수로 살아나다열렸다

cross2.gif  나주에 살아계신 예수님, 성모님께로 오라다

cross2.gif  제가 변화되니 남편도 변화됩니다.

cross2.gif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cross2.gif  제 2의 수도공동체의 주춧돌이 되겠어요

cross2.gif  오리알만한 혹이 사라졌어요

cross2.gif  희망이 있는 고통은 바오로 사도 말씀의 완성

cross2.gif  악성 종양이 치유됐습니다

cross2.gif  식도 막힌 아기 기적수 마시고 수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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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가 너무 부끄럽다고 하신 신부님

저는 광주 양 아녜스입니다.

3년 전에 수녀님에게 불려가 나주 다니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지만 “수녀님 진짜예요. 저는 거기 가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제가 살아있는 이유가 나주성모님 때문에 살아있어요.” 라고 증언을 하곤 나왔어요. 수녀님과 달리 신부님은 묵인을 해 주셨는데 피디수첩이 방영된 뒤로 신부님께 불려가 “저는 나주에 다녀도 기적 받으러 가는 거 아닙니다.

성모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정말 첫 토요일 지키고 싶고 성모님 사랑 안에 살고 싶어서 다녔습니다. 신부님 제가 많은 사람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분들도 많은 은혜 받았어요.” 그랬더니 “우리 사제들이 잘못 살고 있고 수도자들이 잘못 살고 있기 때문에 천주교가 너무 부끄럽다. 각 본당으로 개인 명단이 다 내려와서 자매님 활동하고 계신 거 다 그만 둬야 된다.”고 그랬어요.

저는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나왔어요. 제가 봉헌을 하면서도 처음엔 너무 갈등도 심했는데 이제는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모님이 은총을 많이 주셨기에 너무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 돌려 드리고 성모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박해를 하면 할수록 영적으로 더 성장 할 것이고 성덕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양아녜스

 

기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신 신부님과 수녀님

인천교구 이 실비아입니다.

제가 3년 전에 나주 순례 와 십자가의 길을 한 후 기적수를 마시면서 아주 강한 피 비린내를 맡고는 기관지천식을 치유 받고 여태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순례를 왔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서 구역미사를 하는데 신부님 2분 수녀님 3분 오셨는데 원장 수녀님이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시더니 “저 사진이 나주성모님 사진 아니예요?” 그래서 “예 맞아요.” 그랬더니 “자매님 기도 열심히 하세요.” 하셨습니다.

지금은 신부님들도 “자매님 기도 열심히 하세요” 그러셔요. 저는 끌려갈 준비를 하고 ‘십자가의 길’, ‘님 향한 사랑의 길’,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  등 나주 책을 구입해서 수녀님을 드렸는데도 별 말씀을 안 하셔요. 또 우리 사위가 술을 먹고 예수님상과 성모님상을 다 때려 부숴서 나주의 성모님상과 예수님상을 모셔다 주었어요.  

두 달쯤 후에 또 부부싸움이 나서 성모님을 내려치려고 하는데 성모님이 악마를 보여주셔서 무서워 깨뜨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집 가정이 변화가 되어 금슬이 좋아지고 있어요. 여러분 박해가 심하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치유 받았던 것을 다 이야기하면 아무 소리도 못해요. 이 모든 것 주님과 성모님께서 영광 받으소서.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인천교구 이 실비아
 

 

율리아 자매님 대속고통으로 난소암 치유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 지가 12년 된 인천교구 윤 카타리나입니다. 저는 난소암을 99년도에 율리아 자매님의 대속고통을 통해서 치유 받았고, 가정도 성화되었어요. 2006년 10월 진행자께서 “머리가 많이 아픈 사람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율리아 자매님의 대속고통을 통해서 치유 받을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정신지체장애 2급의 제 남동생이 만남의 시간 때 율리아 자매님 품에서 펑펑 울고 나서 치유 받았어요.

동생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못 받고 가정에서 구박을 받다 보니까 항상 불안해하며 손을 물어뜯고 가족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었는데 나주를 순례하여 지금은 일반 직장에 취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할 정도로 치유 되었어요. 신경정신과에 가서 검사를 해본결과 거의 정상이 되었어요. 가능성 없던 장애아를 정상으로 돌려놓으시고 한 영혼을 통해서 가족들을 성화시켜 주셨습니다. 혹시 저희 가정과 같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숨겨 놓을게 아니라 정말 주님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여기 데려와서 같이 치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부천 윤정아 카타리나

 

 

자신이 변화되니 가정일도 풀려

저는 대구에 있는 이 막달레나입니다.
저희 가정사는 얘기를 안 하려고 했지만 하느님 영광을 위해 하겠습니다. 저희 가정도 너무너무 삶이 고단하여 애를 세 명이나 낳고도 산다 안 산다 했어요. 어느 날은 남편이 뭘 던져 눈이 굉장히 많이 다쳐가지고 병원에 가려고 앉아있는데 송현동 자매님이 와서 기적수를 주기에 눈에 넣고 기도했더니 나았습니다. 딸도 보고 정말 신기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주기도회 모임에 가곤 하는데 갈 때마다 메시지 말씀이 와 닿아 남편과 안 살려던 제 자신이 먼저 변화가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돈만 좀 벌어놓으면 다 까먹어 버려 살 수가 없었는데 재작년 7월부터 돈을 모아 1년 만에 그 돈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맨발로 하는데 발에 돌이 박히고 아플 때 ‘예수님 정말 너무 아프시겠다.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 계시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며 앞으로 제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대구 이 막달레나


 

낙태하려는 조카를 설득해 순산케 하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온 이 스테파니아입니다.
작년에 큰 수술을 앞두고 여기에 와 많은 치유를 받았어요. 제 밑에 여동생은 3살 때 홍역을 걸려 정신이 좀 똑똑하지 못하고 언어 장애인데 그 조카딸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방황을 하다 대학교 1학년 때 임신을 한 거예요. 저희 친정과 남자 쪽에선 기형아를 낳을 거라며 낙태를 기정사실화 했는데 제가 쫓아다니면서 “나주 성모님, 기형아가 되더라도 소중한 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하고 기도했어요.
저도 낙태한 경험이 있는데 나주에 와서 그것이 큰 죄 인줄 알고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요. 그런데 여러 가지 난관이 있어 그때마다 계속 성모님께 봉헌을 하곤 인천 피정 때 율리아 자매님이 오셔서 조카딸을 데리고 가서 기도를 받았어요.
조카딸은 어린데다 영양실조에 신장염과 바이러스 때문에 열이 심해서 입원을 해야 됐지만 병원비가 없어 기적수를 주면서 “기적수로 씻고 계속 발라라.” 그랬는데 조카 루시아가 “이모! 정말 신기해. 감쪽같이 나았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 와중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수가 미리 터져 난산하게 돼서 애가 고통이 너무너무 심한데 유도분만을 해야 된데요. 그래서 그 방에다 기적성수 뿌리고 조카에게 “넌 피눈물 성모님사진 꼭 붙들고 있어! 나주 엄마만 붙들고 있으면 산다.” 하고는 피눈물 성모님 사진 놓고 기적수를 배에다 발라줬어요.
새벽이 돼야만 낳는다더니 바로 몇 시간 안 있다가 순산을 했어요. 예쁜 딸을 낳아가지고 결국 시댁에 들어가 올 1월 23일 날 결혼하기로 날짜를 잡았어요. 제가 여기 와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한 낙태보속고통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제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새 생명이 태어났겠어요. 생판 모르는 우리를 위해 고통을 봉헌하시는 율리아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영광 주님 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인천 이 스테파니아

 

 

열심히 기도하니 물질 축복도 주셨다

서울 녹번동 성당 김 수산나입니다.

저희 집에서 나주 성모님 기도회를 하고 있고 남편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만날 수 없어 식구들이 모여 같이 살 집을 구하면서 계속 편지 봉헌과  가정 봉헌 꽃다발을 바쳐드렸어요.

그리고 사는 집이 안 팔린 상태이기 때문에 “집 살 돈도 성모님께서 마련해주세요.” 그런 지향으로 기도 했는데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비싼 지역이라서 엄두를 못 내던 곳에 좋은 조건으로 집이 나와 돈이 없어도 성모님을 믿고 10월 첫째 토요일 날 아침에 가서 계약하고 나주에 왔어요,

그리고 성모님 도움으로 모든 일이 잘 풀려 어저께 12월 31일 날 취득세 내고 원하던 집을 완전히 사고는 남편 허락을 받아 처음으로 송년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저희 기도회원 12명 중에서 올해 3명이나 집을 마련하여 모두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있어요.

또 언니는 불교신자고, 형부는 무신론자인데 그 형부가 봄에 큰 수술을 했는데 설상가상 식도암이 걸렸다고 3개월 전 쯤 연락이 온 거예요. 식도암은 동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못하고 방사선 치료밖에 못한대요. 저는 형부가 불쌍한 거예요. 그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다 두고 먹지도 못하고 서서히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래서 기적수하고 ‘님 향한 사랑의 길’을 형부에게 전해줬어요. 그런데 형부가 ‘님 향한 사랑의 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스스로 성당을 찾아갈 정도가 됐어요.

11월 첫째 토요일 날 율리아 자매님이 그날 목에 고통을 너무 많이 받고 계시니 그쪽에 관계된 모든 암이 치유된다고 그래서 얼른 ‘아멘’ 했는데 어저께 일요일 날 형부가 완전히 치유 받아 밥도 너무 잘 먹는다고 전화가 왔어요.

저도 여기 와서 8가지 정도 치유를 받았는데 전에는 신장이 나쁘다 보니까 늘 기진해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나주 순례를 다니면서 뼈에 쏙쏙 수액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끼면서 기운이 점점 올라와 완전히 치유 받아 활력이 넘치니까 식구들이 저보고 헤라클레스가 됐대요. 옛날에는 감정이 꼬여서 많이 체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너무나 마음이 평화롭고 사랑이 넘쳐요. 이 모든 것이 나주성모님의 영성 안에서 이루어진 열매라고 생각하며 성모님과 율리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서울 녹번동 김 수산나

 

 

별명이 박나주, 박철인, 박길동

저는 여기에 꼭 올라와 증언해야할 의무가 있는 군산 지곡 성당 박 미영 헬레나입니다. 저는 분당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동생 집에 가서 율리아 자매님 고통 받는 비디오테이프, 즉 십자가고통, 지옥 불 고통, 낙태보속고통 이걸 보고서 깜짝 놀라 2003년 여름부터 순례 오게 됐습니다. 제 노모께서는 다리에 난 상처가 썩어가려고 할 때 기적수 바르고 많이 나으셨는데 저는 순례 다니며 수없이 많은 지병을 다 치유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병을 앓았는데 머리가 30년 동안 너무 아프다 못해 구토까지 했고 항상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패듯이 패야만 간신히 잠을 잤고요. 눈은 뜰 수 없게 아팠고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얼굴하고 머리카락 있는 데만 빼고 파스를 다 붙이고 다녔으며 집에서는 팔도 딛고 일어설 수 없어 팔꿈치로 기어 다니다시피 해서 간신히 일어났고요 척추는 전방전이증으로 기둥이 무너지고 끊어져 신경을 끊기 직전이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리를 끌고 다니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20cm 넘는 대 수술을 해서 거기다가 쇠고리를 걸어놓고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혈압이 40~60으로 하도 낮아서 언제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간신히 기둥을 잡고 벽을 잡고 걸어 다녔고 간염도 있어서 항상 피곤했습니다. 퇴근하면 그냥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서 그냥 잠을 자구 전화가 오면 아이들이 전화를 받았다하면 저는 그 전화 받고 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아이들은 제가 누워 있을 때 전화 받으면 엄청 맞았어요.

“엄마가 전화 받다 일어나면 그다음에는 머리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거 잘 알면서 너희들이 전화 바꿨냐?” 하면서... 저는 무척 피곤하고 지쳐있는 몸이었고 심장병까지 왔습니다.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나주성모님께서 저를 불러주신 겁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동생 기도 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향기로운 향기가 나기에 “무슨 향수를 뿌렸기에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냐?”고 했더니 “기도를 열심히 하면 향기가 나. 나주 성모님 장미향기예요.” 그랬는데 여기 와서 맡으니까 그 향기였어요.

저는 그 모든 병들이 어떻게 나았냐면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예수님의 수난과 그 곁에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시는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끄억끄억 울었는데 몸이 가벼워지며 모두 다 치유 됐어요.

그리고 얼마 전인 11월 24일 날 율리아님께서 만남의 시간에 저를 안아주시면서 “자매님 이제는 다 나으셨지요?” 하고 제 가슴을 만져 주셨어요. 저는 그 말씀에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셨나?” 생각하곤 어리둥절했어요. 왜냐하면 “저 낫게 해주세요.” “저 아파요” 한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호우 주의보가 내리거나 대설주의보가 내리거나 목요 성시간까지 무조건 나주에 왔거든요.

퇴근하고 제가 사라지면 식구들은 ‘아, 나주 갔구나.’생각해요. 그래서 제 별명이 ‘박나주’예요. 나주 순례 전에는 항상 피곤해서 맨 날 시들시들하고 아팠던 사람이 이렇게 살아나서 새벽미사부터 하루 종일 아이들 가르치고 나주 가서 밤새 기도하고 와서 바로 또 출근을 해도 졸지 않아요. 너무 힘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철인이 되었다고 제 별명이 또 ‘박철인’이예요. 그리고 건강이 좋아져 하루에도 누가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면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기 위해 금방 서울에 있다 광주에 있다 조금 있으면 기도하기 위해 나주에 있으니 또 다른 별명이 ‘박길동’이예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인데 어린아이들의 변화를 위해서도 성모님이 저를 살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출근하면 성호 긋고 생활의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영성적으로 가르치니 맛을 들여서 ‘짱구는 못 말려’ 좋아했던 아이들이 시시해서 안보고 만날 기도만 하재요. “선생님 왜이렇게 시간이 잘가죠?” “그래. 그게 천국이란다. 천국이라서 천년도 하루 같단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마음 편안한 상태에서 시험을 보면요 너무 잘 봐서 다른 선생님한테 미안할 정도고, 또 모든 아픈 것이 나주 성모님 기적 성수로 다 치유가 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기적수를 가장 큰 선물로 알고 있어요. 아픈 아이에게 “보건실 가라.” 그러면 버텨요. 그래서 기적수를 주면 열난 것도 내려가고 별난 것도 다 치유돼요. 현재 4학년 맡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억커커” 소리가 나오는 아이가 있는데 전국 병원을 다 돌아다니고 별 치료를 다해도 낫지 않아서 집안에 부부싸움이 될 정도로  너무 골칫거리인 그 아이가 제가 늘 나주 성수를 먹이면서 속으로 기도를 했는데 나았어요. 완전히 나아 가정도 화평해졌어요.

나주 성모님 기적수로 비염도 낫고, 감기도 낫고, 피부병도 낫고, 상처도 낫고 아이들 모든 병이 다 낫는 거예요. 제가 “얘들아 우리 병자를 위한 기도하자.” 하면 다 같이 외워서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외우고 있는 기도도 많고요. 저만 성경읽기 너무 미안해서 성경을 사서 우리 아이들 41명에게 다 나눠줘서 아침 자습시간에 아이들이 독서도 않고 놀거나 잡담을 하고 있을 때면 “아이들아, 성경읽기 시작!”하면 “말씀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친히 내 안에 오시어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시어 제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를 줄줄 외우고는 성경을 다 같이 소리 맞춰서 읽어요. 끝나고 나면 제가 깜박 할 때도 “선생님, 읽고 난 후에 기도해야죠.”하고 저를 일깨워줘요.

그리고 시험 보고 나서 하나 틀린 거 때문에 상을 못 받게 생겼어도 “선생님 1자를 4자로 고쳐서 제가 이거 맞았다고 했는데 사실은 틀렸어요.” 하고 정직하게 자기 잘못을 고백해요. 제가 살그머니 알아듣게 말했더니 일기장에 “정답 하나에 눈이 멀어 하느님과 선생님을 속이고 자기가 지옥을 갈 뻔했다”고 썼어요. 그런데 또 한 아이는 끙끙 앓다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 이 문제는 선생님이 맞았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틀렸어요.” “너 그것 하나 틀리면 상을 못 받는데?” “그래도 선생님 괜찮아요. 저 천국을 얻었잖아요.”그래서 저희 아이들은 요 “애들아 우리가 뭐하고 있으면 누가 보고 계시지?”하면 “ 하느님요.”라고 대답해요.

저는 눈도 제대로 못 떠 성경을 보고 싶어도 못 봤는데 치유 받고 이렇게 나아지면서 성경을 보게 되었고 율리아님 입안에서 성체 변화된 사진을 보고서 그때부터 미사에 맛을 들여 새벽에 미사 가고, 화요일이나 목요일 같은 경우는 두 번을 가요. 저는 성체를 모실 때 어떤 마음으로 모시냐면 ‘예수님의 몸을 모시기 때문에 저는 33살의 청년이 돼서 피가 끓어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솟아오릅니다.’라고 믿고는 힘이 나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을 전합니다.  이사야 40장 29~31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는데 졸면서 시속 150km로 가다가 중앙 분리대를 받았어요. 그 순간에 폭발하는 소리가 나 정신을 차리고 차를 살살 빼 안전하게 길가에 세워놓고 뭐가 이상 있나 보니까 완전히 쇠도 갉아먹고 앞바퀴가 걸레가 돼있어요. 그랬는데도 무사한 것은 성모님께서 받아주신 거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니까 위치 그 숫자를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 위치에는 숫자가 있는 자리가 아닌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 위치가 보이게 해주시고 그 위치를 알려주셔서 제 차를 끌어갔고 다친 데가 전혀 없는 저는 출근했어요.

또 11월 11일 성모님 동산 와서 물을 받아 가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신호대기하고 있는데 음주 운전한 뺑소니차가 경찰이 쫓아오니까 너무 겁나 과속으로 몰다가 연쇄 충돌을 일으켜 차 3대가 그 자리에서 폐차를 하고 다 병원에 실려 가고 했는데 저만 멀쩡했어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저는 운전석에서 끄떡도 안하고 그 순간에 너무나도 편한 마음으로 성호를 긋고 “감사합니다.” 하고 아무 일 없이 앉아있는 거였어요.

그 뒤로도 보험회사에서 “선생님, 어디 몸 이상하면 빨리 병원가세요.” 하고 연락이 와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친 데가 하나도 없어요.” 하니까 “아이고! 나 여태까지 교통사고를 많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봤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병원 갔는데 왜 선생님만 안 가십니까?”하며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제 뒤에 차도 너무나도 험하게 폐차됐는데 성모님이 보호해 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온전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은 비용이 드는 것 주님과 성모님께서 다 채워 주셔가지고 저도 모르게 집값이 올라가고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땅값이 올라 나주만 자주 오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거예요. 또 우리 집에서 “오늘은 날씨가 어쩌니까 안가지?” 그러면 제가 슬그머니 몰래 가버리니까 나중에는 “어차피 갈 거 좋게 가라” 하고 아무 말도 안 해요. 못 가게 하면 더 사라지고 없으니까.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1일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대축일
전주 박미영 헬레나

 

 

피디수첩 방영으로 오히려 은총을 받다

부산교구 조 요한입니다. 저는 여기 6년 동안 나주 성모님 조사하러 다니면서 발현은 믿었으나 사실 율리아 자매님은 잘 못 믿었거든요. 그런데 4달 전에 젊은이 피정을 받으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가지신 분은 처음 봐 굉장히 충격을 받고 ‘아, 내가 뭔가를 해야 되겠다’ 싶어 ‘님 향한 사랑의 길’ 책 20권을 구입해 수도원, 수녀님, 우리 본당 수녀님, 사무장, 본당 청년들, 타 본당 청년들 그리고 본당의 아주머니들에게까지도 다 나누어 드렸거든요.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본 사람들이 너무 감명 깊었다고 본당 청년들 한 10명 이상이 나주에 순례 왔었고 12월 초에 본당 아주머니 여덟 분이 오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11월 달에 PD수첩을 한다고 해서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고 주위에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 다 해가지고 “야, PD수첩 꼭 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PD수첩을 보고 나서 그 충격으로 정말 가슴이 떨리고 손발이 다 떨리고 완전히 뒤통수 맞는 정도가 아니고 진짜 태어나서 이런 느낌 처음이더라고요.

아버지도 PD수첩을 보시고 나서 “이거 뭐냐? 이 썩은 물을 갖다가...” 하시면서 성모님상도 치우고 물도 다 갖다 버리라며 막 소리 지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전에 나주 성모님 동산 올 때 차 안에서 맡은 진한 장미향기도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 차 안에 나타나가지고 향유천 던지고 날아갔겠네요.” 한마디 딱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성모상하고 다 치울까요?” 하니까 “뭐 할라고 치우노. 그냥 놔둬라.” 하시더라고요.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여기저기서 “어떻게 된 거냐?”고 난리가 났어요. 저는 피디수첩의 약점이 보여 일단 “조금만 있어보세요.” 했지만 진실이 왜곡되는 현실에 가슴이 얼마나 아프던지 자리에 누워 일도 잘 못했어요.

“님 향한 사랑의 길”에 보면 율리아 자매님께서 사람들한테 모욕당하는 그 고통을 제가 조금이나마 체험을 했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도 캄캄했는데 곰곰히 생각하니 ‘아, 내가 이렇게 가슴 아플 때 율리아 자매님 가슴은 얼마나 더 아프실까?’ 그 생각이 퍼뜩 일어나 인터넷에 들어가 욕설 올린 사람들의 글에 댓글 다 달고 믿음을 잃고 떠나려는 청년들 모아가지고 “조금만 있어봐라.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고 격려를 해 줬어요.

저는 사실 1년에 한 번씩 순례 오는 사람이었는데 11월, 12월 2달 동안 7번 왔어요. 저는 키가 커서 버스 탈 때 엄청 불편한데도 피디 수첩하는 거 보니까 무조건 와야겠더라고요. 제가 안 오면 진짜 성모님 위로를 누가 해드리나. 무조건 그 생각으로 왔어요. 그렇게 자주 오면서 제 자신이 또 많이 변화가 되었어요. 기도도 굉장히 열심히 하게 되고 마음도 굉장히 충만해져 피디수첩을 통해서 저는 오히려 더 은총을 받은 것 같아요.

“하느님께선 악도 선으로 바꾼다.”는 나주 성모님 말씀이 저한테 딱 이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님 향한 사랑의 길” 15번에 보니까 이런 내용이 나오데요. 하느님께서 지팡이로 쓰시려면 가장 단단하고 가장 곧은 나무를 골라서 그 가지를 치고 껍질을 까고 페퍼로 문질러 가장 가치 있는 지팡이를 만드실 때 각 단계마다 고통이 따른다고 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저나 지금 고통을 당하시는 여러분들을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구나’ 하고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러분들 되게 많이 힘드실 텐데. 사실 저희가 힘들어 봤자 율리아 자매님 만큼 힘들겠습니까? 힘을 내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는 그런 성모님한테 의탁해서 좀 더 기도 열심히 하고 좀 더 신앙생활 열심히 해서 다같이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타고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2008년 1월 5일
부산교구 조요한

 

고갈 되었던 영혼까지 치유해 주시다
 

찬미 예수님, 저는 부산의 김 세례자 요한입니다.

우리 젊은이들 요즘 많이들 오시는데 2008년 새해를 맞이해서 제가 겪은 예전의 삶들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증언대에 올라왔습니다. 2001년도에 인터넷을 하다가 성모님이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교구에서 금지한 곳이란 말에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2003년도 4월 달에 갑자기 오른쪽 머리가 너무 아파 3일 동안 잠을 못 자고 입안이 다 부르트고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신경과를 가라하고 신경과는 내과를, 내과에선 바이러스가 신경을 갉아 먹고 있어 사망할 수 도 있으니까 큰 병원을 가라고 해 큰 병원에 입원을 해서 항생제를 맞아 바이러스는 잡았으나 몇일이 지나 오른쪽으로 안면 마비가 와서 한방 병원에 다시 갔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없어서 퇴원하려는데 2년 전에 본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모습이 갑자기 제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거예요. 퇴원하고 마리아의 구원방주 인터넷으로 들어와서 징표들과 사랑의 메시지를 읽으니까 “아,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게 너무 잘못 살았구나.”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생 때 젊은이들의 욕정 때문에 혼전 임신을 했는데 주위에선 낙태하라고 했지만 성모님께서 제 부모님을 통해서 지켜주셔서 애를 낳고 24살에 일찍 결혼했습니다.

나주성모님 메시지를 읽고 십계명을 보니까 살인하지 말라. 그거 빼고 다 어겼더라고요. 그런데 생활의 기도를 보니까 정말 가슴에 와 닿아서 그 기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2003년도 6월 달에 처음 아내와 나주에 왔습니다. 그 뒤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내가 변화가 되고 있고, 나주성모님한테 가면 나는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꾸준하게 순례를 다녀 육신의 치유뿐만 아니라 고갈 되었던 영혼도 치유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 토요일을 지키기 위해 직장도 첫 토요일 쉬는 곳을 택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순례를 온 것은 내가 나주 성모님 통해서 변화되었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메시지 말씀을 통해서 첫 토요일에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기 때문에 작은 희생이나마 바쳐드리고자 한 일이지만 죄송한 것은 성모님께 해드린 것이 너무 없어서 나주 성모님께서 가르쳐주신 생활의 기도를 더 열심히 봉헌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봉헌의 의미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봉헌이라면 헌금이나 안 그러면 내가 아픈 것을 그냥 성모님께 드려서 “아, 성모님 이거 낫게 해주십시오.” 그런 것으로만 알았었는데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다보니까 힘든 것을 내가 기쁘게 잘 이겨 내면서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께 드리는 정성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나주까지 오면 왕복 한 600km 되는데요.

그 길이 힘들면 힘들다고 할 수 있지만 차 운전하면서 차 핸들을 잡고 주님 오늘 내가 나주 성모님께 향하는 이 km 수만큼 아니 cm만큼 또 바퀴가 회전하는 수만큼 버려질 영혼을 구해주시고 나주 성모님 인준의 날을 앞당겨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운전을 하면서 평화 방송을 자주 듣는데 3~4시까지는 신앙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 번씩 나주에 관한 질문이 올라오는데 하루는 신부님께서 답변하시기를 “그곳은 광주대교구에서 공지문을 통해서 금지를 했고 그리고 다른 교구에서 주교님들이 형제적인 사랑에 의해서 동의를 하고 있다.”고 하셔서 제가 인터넷으로 글을 남겼습니다.

“신부님, 제가 알기로는 교황님께서도 성체기적을 직접 목격하셨고 교황청에서는 긍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광주대교구와 교황청과의 입장이 다릅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디를 따라야 됩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더니 신부님께서 “자세한 것을 나는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곳은 교황청이다.” 고 하셨습니다.

그 방송이 전국 방송이다 보니까 방송을 통해서 나주를 알리고 싶어 “교회 역사상 성체 기적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날 바로 이탈리아의 오르비에또를 예를 들어주시면서 “예, 있습니다.”며 이탈리아에서 유학 하실 때 많이 갔었다고 하셨어요. 그 다음날 전화를 해 “신부님 어제 성체기적에 대해서 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예, 말씀 하십시오.” “제가 알기로는 나주에서도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12번이나 입에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었고 선종하신 교황님께서 목격하셨고 하는데...”하며 “진리와 교도권의 수호를 위하여”란 글의 성체성사부분을 읽고 있는데 마이크를 꺼버린 거예요. 제가 다시 인터넷으로 “다시 질문을 올립니다. 광주 대교구에서는 공지문에 분명 성체는 살과 피로 변화될 수 없다고 했는데 어제 신부님 답변에서도 세계 여러 곳에서도 성체 기적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답변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평화 방송 담당PD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왜 제 질문에 답변을 안 해주십니까?” 하니까 “어떤 질문이었죠?” 그래서 “김지성 세례자 요한인데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된 것에 관한 질문이요.” 하니까 “아, 그 질문이요? 신부님들이 다 답변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PD님도 공지문이 잘못된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하니까 “그래도 우리는 주교님의 말씀을 따라야죠.” 그래서 “아니, 공지문이 잘 못됐는데 어떻게 따릅니까? 잘못된 것을 따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럼 주교님도 잘못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그럼요. 주교님도 신부님도 다 인간인데 왜 잘못을 할 수 없습니까? 피디님이 지금 방송에서는 못하더라도 다른 방송을 만약 하시게 되면 광주대교구 공지문이 뭐가 잘못 됐는지 한번 파헤쳐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부탁드리니까 대답은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번에 PD수첩에도 전화를 해 오상광PD에게도 공정하게 보도를 해달라고 항의를 했어요. 앞으로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정말 많은 영혼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성모님을 전하겠습니다. 저도 정말 나주 성모님 아니었으면 지옥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정말 성모님 따라서 죽을 때까지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5일
부산교구 김지성 세례자 요한

 

 

폐렴으로 죽게 된 몸 나주 와서 살아나

찬미 예수님, 안산에서 온 88세의 김 프란치스코입니다. 저는 1992년 폐결핵으로 죽을 뻔 했기에 폐가 약한데 작년에 폐렴으로 죽게 되어서 1주일 이상을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다 퇴원 후에도 몇 달간을 병원을 다니면서 그렇게 죽을 고생을 했는데 12월 8일 날 여기 와서 예수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몸속이 뜨근뜨근하고 가슴 답답한 것이 없어져 다니던 병원에 가서 그 얘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재진을 해봤더니 검은 것이 많이 없어져 버리고 하얀 것으로 변화되어 많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나주 성모님 인준과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또 주교님, 신부님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바꾸어 달라고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20단씩 해오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5일
안산 김 프란치스코

 

 

딸이 미혼모로 낳은 손녀 부끄럽지 않다

안양에서 온 김선봉 안토니오입니다. 작년 12월 8일 제 딸이 미혼모라고 말씀드렸죠? 이 아이가 제 큰 딸아이의 딸입니다. 부모로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터질 이야기지만 제가 나주 순례를 안 다녔으면 이 아이는 아마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성모님께서 또 예수님께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도 나를 그렇게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들을 용서했다.” 그 말씀을 실생활에서 실천한다는 게 참 어렵지만 나주 순례를 다니면서 조금씩 실천하게 됐는데 지금은 그런 용서와 사랑을 진정 어떻게 행동으로 해야 되는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 아빠와 그 집안하고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지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태어나게 된 이 아이를 통해서 그 집안도 저희 가정과 같이 성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8남매라 인척이 엄청 많은데 제 딸이 결혼 전에 이 아이를 낳았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왜냐하면 그런 체면과 허례허식보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허락하신 한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나주 순례 다니면서 과거에 죄인지도 몰랐던 것을 죄로 느끼기 시작한 게 있습니다. 저도 신혼 초에 아이를 지운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게 죄인지도 몰랐지만 순례 후 그것이 정말 큰 죄였음을 느끼고 회개했습니다.

이 아이는 예정일보다 빠른 9개월 때 낳았는데 기형아가 나올 것이란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성모님 은총으로 30분 만에 쉽게 낳았고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 12월 8일 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날 낳았으니까 이 아이가 마리아입니다. 지금 저는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함으로써 주님과 성모님을 내 안에 받아드리고 그것을 통해서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나주 성모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5일
안양 김선봉 안토니오

 

딸의 귓병, 가슴 통증 깨끗이 치유 받아 

반갑습니다. 부산에서 온 정 이사벨라입니다. 저는 작년 4월 달에 처음 순례를 왔는데 너무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우리 큰 딸애가 선천성 진주종으로 왼쪽 귀 고막이랑 이소골이 완전히 파괴 돼 의사들도 굉장히 마음 아파했는데 4월 달에 순례하고 고막이 살아나서 의사들도 완전히 기적이라고 했어요.

6월에 CT촬영을 신중하게 4~5번 해보더니 진주종이 재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고막 세우는 수술을 했는데 4시간이 걸린다던 수술이 의사들이 들어간 지 2시간도 안 돼 웃음을 가득 짓고 나오면서 고막이 너무 깨끗하다고 해요. 보통 한 일주일 입원하는데 빨리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얼른 퇴원하고 나서는 처방해준 약 일체 다 버리고 나주 성모님 물만 먹이고 항생제도 안 먹였습니다.

평소에 가슴 통증도 많이 호소하는데 가슴 통증도 없이 깨끗하게 치유 받았어요. 아이와 남편이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한테 나주 성모님을 많이 알리고 있었는데 피디수첩으로 인해서 그분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제가 바르게 생활하고 진실을 알리게 되면 언젠가는 그분들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2008년 1월 5일
부산교구 정 이사벨라

 

 

진심으로 기도하니 남편이 바뀌었다.

대구 상동성당 이 막달레나라고 합니다. 저는 2005년도 8월 달부터 나주에 오게 되었는데 제 남편은 매번 “나주 갔다 올게요. 여보!” 하면 팩 돌아가곤 합니다. 그 큰 물통에 물을 들고 와도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 없었지만 물 따라서 부을 때 마다 기쁘게 봉헌했고 지금까지 성모님께 인도한 사람이 한 18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피디수첩에서 나주를 방영하는 날 남편이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 방송을 보다가 눈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겁을 주기에 “여보 정말 저것은 잘못 된 거예요.” 하니까 “뭐야?” 하고는 순식간에 뭐가 퍽 날아오는데 물이 담긴 커다란 머그잔이 직통으로 날아와 갈비뼈가 부러졌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는데 성모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죽었을지 몰라요.

저는 그 순간 “주님, 성모님 저희 부부간에 이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어떻게든 주님 성모님의 넒은 사랑으로 저희 부부가 화합할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봉헌을 했습니다. 봉헌을 하니까 남편은 PD수첩을 다 못보고 잠들었습니다. 그 이튿날 “여보 일어나. 이야기 좀 하자.” 하니까 “뭔 이야긴데? 귀에 다 들린다.”

“그래, 내가 나주에 가는 것이 무엇이 나빠? 이렇게 때려서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내가 나주에 다니면서 잘못된 게 뭐가 있느냐? 돈을 갖다가 바치기를 하느냐? 살림을 소홀히 하기를 하느냐? 나주 다니고부터 모든 모임 다 끊어버리고 가족 위해 더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더 가정생활 충실하고 성체 조배실에 가는 거 평일미사에 가는 것 외에 내가 더 하는 게 뭐가 있느냐?”고 하니까 “그것은 맞지. 그래, 나주 물 좋은 거 그것은 내가 입이 까다로워 그것도 인정한다. 맞어.” 그러면서 “갈려면 가.”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잠이 들어있을 때 기적수를 손에 찍어서 머리를 만지는 척 하면서 ‘주님 봉헌해요. 저희 남편을 축복해 주십시오.’ 하고 남편이 깨는 것 같다 싶으면 머리를 살포시 만지는 척 하고 또 남편이 “여보, 나 다리가 아파. 주물러줘.” 하면 “잠깐만 기다려요.” 하고는 나와 가지고 기적수를 얼른 손에 발라서 가 가지고 주무르면서 ‘주님, 성모님! 도저히 제 힘으로는 안 되니까 주님, 성모님 힘으로 해주십시오. 주님, 성모님 남편의 마음까지 치유해 주세요.’ 하고 하루에 손수건 하나씩 젖을 정도로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어젯밤에 사랑의 메아리가 들려왔어요. 남편이 “여보, 내일 당신 나주 가는 날이지?”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여보, 당신이 맨날 물 떠다 챙기는 내 고종사촌 있잖아. 거기 교리반에 입교했다 하더라.” 또 “여보, 오늘 아침에는 몇 시에 가나? 당신 늦으면 그냥 가. 라면 끓여서 밥 말아 먹으면 돼.” 그러더라고요. 앞으로 주님, 성모님께서 모든 뜻을 다 이루어 주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월 5일
대구 상동 이 막달레나

 

 

51년 동안 고름이 나오던 중이염이 깨끗이 나아

목포에서 온 김 재클린입니다. 2004년 3월 셋째 목요일 날 성모님 집에 처음 왔는데 은총 나눔의 시간에 기적수에 대해서 좋은 증언들을 듣고 기적수를 받아가지고 제가 귀 청소를 몇 번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8살)부터 중이염으로 항상 고름이 흘러 이비인후과에 가도 그때 뿐이라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2004년 4월에 기적수로 닦아 내면서 양이 안 차 아예 기적수를 귀에다가 부어버렸어요.

그 다음날 보니까 완전히 중이염이 치유되어 버린 거예요. 또 한 번은 미사 가는 중에 나도 모르게 무릎이 아파서 주저앉아 ‘저는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데 무릎이 고장나 걸음을 멈추면 어떻게 되나?’하고 예수님께 하소연하곤 나주 첫 토요일에 왔는데 그날 “율리아 자매님께서 지금 무릎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신 분들은 치유되실 것입니다.”고 하여 “아멘”하고는 기적수를 발랐는데 어느 순간에 제 다리가 치유 받은 거예요.

저는 전에는 우리 엄마를 욕하고 나를 잘 못 키워줬다고 항상 미워하고 했는데 여기 다니면서 보니까 제가 가지고 있던 장애가 엄마 탓이 아님을 깨닫고 엄마한테 너무너무 잘못했다고 용서 청하며 이제 다시는 엄마 탓 안하고 예수님 성모님 믿고 더 밝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김 재클린 자매님은 지금 1946년생 62세인데 3살 때 어른들의 부주의로 2층에서 굴러 떨어져 다쳐 허리와 등 쪽에 장애를 가졌기에 10세 때까지 걷지도 못했고 19세 때까지 허리도 너무 많이 아팠으며 설상 가상으로 8세 때부터는 중이염으로 나주에 순례오기 전 51년 동안 계속 고름이 계속 나왔으나 병원 치료도 못한 체 수많은 날들을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목포에서 어느 분이 “나주에 한번 가보자”고 제의하니 “나주는 가면 안 되잖아요” 했더니 “한번만 가 봅시다.” 하여 나주에 왔는데 장미 향기며 백합향기가 진동 했으며 기도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 지금까지 계속 빠짐없이 순례를 다니며 모든 것을 “네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받아들이는 나주의 영성으로 받아들여 기쁘게 살아가고 계신 분입니다.)

2008년 1월 5일
목포 김 재클린

 

 

다리 못 쓰는 아내를 예수님 돌보듯 사랑합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나주 순례한지 3년 된 서울의 이 사도요한입니다. 나주를 순례하기 전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아내를 돌보고 어린아이들을 돌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가출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아들을 미워하고 구타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을 순례하며 회개의 은총을 받고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생활의 기도를 배워 실천에 옮기자 저의 고통과 슬픔들이 기쁨과 사랑과 평화로 바뀌어졌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실천적 삶을 통해 “내 탓이오“를 실천하니 가족과 이웃 안에 평화가 왔으며 메시지 말씀 따라 자주 고해성사를 하고 성체를 경건한 마음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기도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아내를 돌보는 일이 힘들고 지겨웠으나 회개의 은총을 받고서는 다리를 못 쓰는 아내를 예수님 돌보듯 아끼고 사랑한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믿음이 생겼으며 나주를 순례한 이후부터는 아들을 미워하고

 때리는 악습이 고쳐져서 아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메시지는 참이며 징표와 기적도 진실입니다. 하루 속히 나주 성모님이 인준 받으셔서 모든 사람이 병든 영혼육신 치유 받고 회개하여 구원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2008년 2월 2일
서울 이주환 사도요한

 


알코올 향기가 코에 스치자 울화병이 치유돼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서울 불광동 본당 요한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에 나오게 된 것은 제가 나주를 순례하며 사이비종교에 빠졌던 집사람이 가정으로 돌아오고 알코올 향기로 저의 울화병이 치유된 것을 증언하려고 나왔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 교주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이비인데 교주가 죽자 다른 여자가 나타나서 자기는 여자 하느님이다. 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사이비인데도 굉장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집사람은 그걸 끝까지 믿어 부부싸움이 잦았고 불화가 깊어졌습니다.

아내가 사이비에 빠진 것을 안 것은 제가 냉담 중이던 2001년 이었고 그 후 2002년에 나주를 알게 되어 2년 동안 계속 나주를 다니면서 그 힘든 마음을 봉헌을 했는데 머리로는 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상처가 깊이 쌓여 울화병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사이비에 더 빠져 성경이 틀릴 수도 있다는 그곳 목사의 말에 동조하며 그곳의 모든 예배에 다 참석을 해야겠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딱 듣는 순간에 화가 나고 너무나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는 도저히 이 사람하고는 못 살겠다. 또 앞으로 어떤 단계까지 나갈지 모르니 차라리 그냥 나 혼자 사는 게 낫겠다.’ 그런 마음까지 먹었다가 ‘내가 나주를 다니는데 그래도 성모님께 여쭤봐야 되겠다’ 하고는 2004년 7월 첫 토요일 철야 기도회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그 날은 계속 졸아 옆에 있는 자매님들이 이 좋은데 와서 왜 졸고 있냐고 꼬집고 쥐어뜯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때는 율리아 자매님이 대주교님께 순명하신다고 안 나오시고 예전 강론 테이프를 틀어놓는 시간이었습니다.

한참 조는데 귀에 한마디가 와서 꽂힙니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내려놓지 마라.” 또 한마디“온전히 나에게 의탁하여라.” 그리고 쉬는 시간에 잠이 깼는데  소주나 술 냄새가 아니고 병원 알콜 냄새도 아닌데 상큼한 알콜 향기가 코에 스치듯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제 마음에 있는 상처와 울화병들이 쫙 가라앉고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성모님께서는 사이비에 빠졌던 집사람도 조치를 취해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직장을 잡아주셨는데 일요일 날 쉬는 직장이라 토요일 예배를 보는 그 사이비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제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앞서 이 요한 형제님이 증언했듯이 저도 그렇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모님께 감사드릴 일이 있는데 제가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일용직 노동자 생활도 몇 달 했었는데 최근에 대학교의 재단법인 경리과장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 다 성모님이 주관하여 주셔서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 영광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2일
서울 불광동 고요한

  

 

가예언까지 망토로 막아주신 나주 성모님
  

부산의 조 요한입니다.

이틀 전 저에게 전화가 와 “지금 서울 S산 성령기도회 말씀 봉사자가 왔으니 빨리 와서 은혜를 받아라.”고 해서 그런 곳에 처음으로 갔는데 저더러 루치펠이라고 하면서 어둠의 영에서 벗어나라고 고함을 지르는데 너무 상처 받았어요. 처음에는 저도 잘못할 수 있으니까 그런 줄 알고 너무 미안했어요. ‘말씀 봉사까지 하신분이 거짓말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율리오 회장님 조상대가 무당이 있어가지고 조상 대대로 그런 것을 받게 돼있기 때문에 글로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만 루치펠이라고 했으면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율리아 자매님을 루치펠이라고 해서 “아차! 가예언자에게 속았다.”라고 생각하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나주 다니는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거였어요. 그 가예언자가 “너한테는 성모님의 망토가 쳐져 있어서 내 말이 안 들어간다.”고 자기도 모르게 마귀의 짓임을 실토하고 말았어요. 나주 성모님께서는 나쁜 가예언까지 망토로 막아주셔서 은총 까먹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3월 1일
부산 조 요한

 

변을 못 보던 아기가 율리아님 기도로 나아

 

안녕하세요. 미국에 뉴저지에 사는 최 영수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고 제 잘난 맛에 살던 사람으로 한 7~8년 전 한국에 출장을 왔을 때 처음 나주에 왔는데 와서 보니까 과연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곳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집사람이 대장암을 치유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7~8년 동안 철야기도를 다니면서 먼발치에서만 율리아님을 봤지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결혼한 딸이 애를 조산을 해서 한 달 반 정도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그 외손녀가 낳자마자 장이 이상해서 일반분유는 못 먹고 특수 분유를 먹이는데도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변을 짜내는데 변이 새까맣게 아스팔트 같았어요. 그래서 장 수술을 했는데도 낫지 않았는데 태어난 지 8개월째인 3주 전에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평일 날이었는데 갑자기 율리아님하고 신부님 두 분과 수녀님이 올라오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지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기는 처음이거든요.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 아기 보더니 예쁘다고 안아주시고 뽀뽀도 해주셔서 “사실 우리 아기가 이런 병을 얻어가지고 그렇게 앓고 있습니다.” 하니까 “꼭 나아라.” 고 하시며 기적수를 떠 가지고 기도를 하셨는데 물 위에 향유가 뜨고 진한 장미향기도 나서 애기한테 주니까 그 어린 것이 벌컥벌컥 쭉쭉 마셔요.

그 다음 날부터 아기가 노란 황금색 변을 보는데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후 미국 가서도 계속 황금색 변을 봅니다. 율리아님은 제가 7,8년 동안 뒤에서 가만히 봐온 바에 의하면 진짜 겸손하신 분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나오는 모세처럼 아주 겸손하신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5일
미국 뉴저지 최영수 토마스 아퀴나스

 

 

아내의 암세포가 기적수로 다 죽어

대구교구 산하에 있는 경산의 서 엠마누엘입니다.

저는 2006년 12월 달에 당뇨병이 참 심해가지고 오른쪽 발가락에 상처가 깊이 패고 피가 나 걷기도 거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왔는데 두 달, 석 달 됐을 때 까지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냄새가 고약하게 난다고 했는데 기적수를 먹고 바르니까 5월 달부터는 걸어 다니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대구 순례자들이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일반직에서 교사로 전직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제 나이가 55세이고 시험과목이 굉장히 많은데 시험 준비 기간은 3개월 밖에 안돼 수험표를 여기 율리아 자매님한테 봉헌하고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상당히 은총을 주셔서 시험을 상당히 잘 쳤습니다.

제 처는 5~6년 전부터 대장계통에 병을 앓아왔는데 방치하다가 올 2월 모든 의사들이 암이라 그랬는데 기적수를 먹이고 다시 병원에서 갔더니 암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의사들 이야기가 “이것은 분명히 전형적인 말기 암 환자의 형태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최근에 가장 많이 열렬하게 기도했습니다. 의사들 이야기로는 암 세포가 없다는 것이 첫째 기적이고 수혈을 열다섯 통 이상 하면 다른 사람 피끼리 이상 반응을 일으켜 사람이 죽는데 집사람은 53개를 맞았는데도 살아있는 것이 두 번째 기적이랍니다. 우리 집사람은 이제 밥맛도 당긴다고 하는데 여러분들께 꼭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08년 4월 5일
대구 경산 서 엠마누엘

 

 

뇌출혈로 말 못한 남편의 말문이 열렸다

 

수원교구 윤 벨라뎃다입니다. 저는 작년 6월 첫 순례를 왔는데 남편이 뇌출혈이라 말도 못했고, 기억력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고 손에 피가 돌지 않아 시체같이 싸늘했어요. 그러던 사람이 이번 성삼일을 나주에서 보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율리아 자매님과의 만남을 하고나서는 막혔던 혈관이 뚫어졌는지 손이 따뜻한 게 지금까지도 손에 피가 돌고 의식까지 돌아와 말을 하고 나주 성모님을 알아요.

남편은 우리 본당 신부님이 막 반대하니까 “우리 신부님 거짓말 하시네. 나주가 진짜인데...”하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 남편을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은총으로다가 조그만 집을 장만해 3월 1일 날 나주 성모님과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 상을 구입해 새로 이사한 집에 모셨는데 남편이 그 이후로 한 달이 넘었는데도 한 번도 집을 나간 적이 없어요.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집을 나가 찾아다니느라 애를 태웠거든요. 분명 나주성모님과 예수님께서 지켜주신 거예요. 주님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5일
수원 교구 윤재순 벨라뎃다

 

욕창도 당뇨병도 기적수로 살아나다

저는 부산지부의 이 수산나이며 직업은 간병인입니다. 저는 2003년부터 나주기적수를 가지고 와서 환자들에게 먹였는데 기적수를 마신 환자들이 거의 다 치유 되었습니다. 혈압이 높아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던 사람들, 항암 치료로 구토를 심하게 하는 사람들, 고단위 항생제 처방받은 사람들도 구토도 안하고 낫는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빨리 낫는 거예요.

한 남자 분은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엉덩이 안에 뼈가 훤하게 다 보이고 치료를 해도 살이 없으니 덜커덕 덜커덕 소리가 날 정도로 심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 기적성수를 발라주고 기적수를 먹이고 그랬어요. 한 3일 지나니까 거짓말같이 뼈 위에 빨간 석류 알같이 살이 딱딱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지나니까 살이 차서 올라오면서 위에 겉 살결도 같이 살아 나오더니 한 석 달 만에 거의 다 차올라 치유 받았어요. 또 당수치가 650까지 올라간 할머니에게 기적수를 줬더니 당뇨수치가 탁 내려가면서 정상으로 되신 거예요. 이렇게 치유 받으신 분들이 나중에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28일
부산 이 수산나

 

 

나주에 살아계신 예수님, 성모님께로 오라

부산지부의 우 엘리사벳입니다.

저는 영적 육적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기에 치유를 받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다녔습니다만 나주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은 자매님들이 “이제 다른데 그만 다니고 나주에 살아계신 예수님, 성모님께로 오라.”고 이야기를 해주어 실천에 옮겼는데 나주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남편 김 요셉은 처음 나주에 오는 날은 저한테 화를 내고 눈을 흘겼는데 두 차례 정도 더 나주에 순례오고 나서는 은혜를 받아 희생을 봉헌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 직업은 노동인데 일하던 도중에 쇠파이프가 발등에 떨어져 많이 붓고 아팠는데도 일을 하고 오기에 병원으로 가지 않고 일하러 다녀 오냐고 하니 “나주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 고통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봉헌하면서 기적 성수를 바르고 치유를 받아 지금은 새벽기도와 매일 미사 그리고 묵주기도와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바쳐 너무 감사합니다.

또 제 딸은 몸이 안 좋아 결혼하고도 7년간 아이를 갖지 못하다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2번이나 자연 유산이 되어 딸을 나주에 오게 하였습니다. 나주에 온 첫 달 임신이 되어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28일
부산지부 우 엘리사벳

 

제가 변화되니 남편도 변화됩니다.

부산지부의 이 율리안나입니다. 시누이 여섯에 종갓집 7대 외아들에게 시집 간 저는 결혼 생활 30년이 너무나 많이 힘들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성품이 너무 강하고 또 급하고 악습들이 많아 그 속에서 제가 버텨낸다는 게 너무나 힘이 들었어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로부터 “개 같은 년, 쌍년”이란 소리는 수도 없이 들었어요. 살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있어서 참고 살면서 ‘어떡하면 남편하고 떨어져 사나.’ 하는 궁리만 했어요. 그런데 장사할 기회가 생겨서 아이 둘 데리고 나와 내 손으로 돈 만지고 아이들 키우고 사니까 정말 살 것 같더라고요.

장사가 되니까 욕심이 생겨서 넓히고 확장을 하다 수억의 빚을 졌어요. 시집식구들이 밤낮으로 전화로 “너 같은 년이 들어와서 집구석 조졌다.”고 욕을 하지요 남편은 만날 술 먹고 들어와서 밥상 엎고 그런 생활을 했어요. 저녁에 누웠을 때는 그대로 영원히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어요. 빚을 갚기 위해 남편의 퇴직금과 집을 팔아서 빚 청산을 다 해서 저는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허 데레사 자매님이 저를 나주로 인도했어요.

경당 입구에 딱 들어서는데 너무나 장미향기가 진하게 나서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한 번 갔더니 또 가고 싶고, 갔다 오면 그 다음날 또 가고 싶어요. 저는 나주에 갔다 와서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는데도 ‘아, 예수님 왜 이리 행복합니까! 이상하게 행복하네요.’ 또 다음날 아침에 ‘성모님 오늘 너무나 행복하네요!’ 그렇게 기도를 하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나주에 갈 차비도 없지만 제가 나주에 갔다 오면 즐거워하고 성당에 열심히 가니까 남편이 보내주는데 제가 변화되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조금이라도 안 들면 뭐가 날아가도 날아갔던 남편도 저 때문에 경제적으로 쪼들려 불편한 것이 많은데도 남편이 신경질을 안 내고 변화 되는 거예요.

3년 동안 이력서를 100여 군데를 여기저기 냈는데 나이가 58세인데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사무실 근무만 했던 남편이 노가다를 나가 손가락 관절이 와서 퉁퉁 부을 정도로 밤낮으로 일을 해서 다만 얼마라도 벌어왔어요. 그런데 남편이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더니 “여보, 우리 이 고통을 영광으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내가 “아멘!”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문광고에 나온 간부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면접 보러 가는 날 나주 성모님 스카풀라를 목에 걸어주며 “여보 이거 율리아 자매님이 뽀뽀해 준 스카풀란데 꼭 차고 있어요.” 또 손에는 나주 묵주를 쥐어주면서 “여보 차에 가면서 그냥 가지 말고 묵주기도 하면서 가세요. 혹시 성모님께서 예쁘다고 봐주실지….”

오후 늦은 시간에 “김영석씨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라.”며 부사장이 직접 저한테 전화를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집에 돌아오다가 한 군데 더 면접을 봤는데 그곳에서는 부사장 자리를 준다고 했대요. 남들은 퇴직할 나이에 성모님께서 도와주셔서 서로 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나주 성모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나주 다니고 부터는 아침에 눈뜨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율리아나 자매님의 증언 : 이 밖에도 은총을 엄청나게 많이 받으셨는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빠져 보충하겠습니다. 제가 나주 순례를 차를 타고 가면서 떡도 먹고 김밥도 먹었는데 급체로 다 토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숨도 쉬지 못하였는데 나주에 도착해도 어지러워서 걷지를 못하겠다고 해서 부축을 하고 동산에 올라갔는데 도저히 앉아있을 수도 없다며 바닥에 누웠는데 점점 의식을 잃어 가니까 옆에서는 빨리 119 불러서 응급실을 가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큰일이다.’ 싶었지만 119 응급실보다 일단 율리아 자매님께 빨리 뛰어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루땡 갔었을 때 이보다 더 위급한 상황에서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하시니까 그대로 치유 받는 것을 목격했거든요. 베드로 회장님이 먼저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한 기적성수를 가져왔는데 그걸 넘기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 되었어요.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율리아 자매님이 급히 오셔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입에 숨을 불어 넣으시면서 기도하시자 얼굴과 입술에 생기가 돌아오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삼일동안 숨을 쉬면 코에서 장미향이 술술 나 죽다 살아났지만 이렇게 장미향기가 코와 입에서 풀풀 나니까 너무 좋아 율리아 자매님과 성모님께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2008년 4월 28일
부산지부 이 율리안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안녕하세요?

제가 오랫동안 미국에 살아서 한국말이 좀 서투르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진짜 오늘 여러분들 보고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생활의 기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작은 아픔도 봉헌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성모님께서 회개시켜 주셨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보았던 많은 은총들을 실제로 보게 되어 많은 참회를 하고 용기를 얻고 나주 성모님을 열심히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4월 달에 로마 순례 갔을 때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4월 독일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 참에 로마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피디수첩에 대해 반박하는 멋있는 비디오가 제작되어 그걸 영어로 통역하고 제작하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 맡겨졌습니다.

마지막 날 비디오 동영상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컴퓨터가 중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비디오를 완성을 못시킬 상황이었는데 나주 성모님 기적성수 작은 병 하나가 컴퓨터 옆에 있어 급하게 뚜껑을 열고 컴퓨터에 몇 방울 뿌렸습니다. 그리고 버튼을 다시 한 번 눌렀더니 컴퓨터가 작동되어 끝까지 아주 잘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주의 진실 영어판 DVD를 가지고가 우여곡절 끝에 인류 복음화성성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의 비서이신 핀또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 진실 DVD와 기적수를 3병을 들고 나주 성모님에 대한 정보를 추기경님께 드리러 미국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니까 신부님께서 기억하시더라고요. “무슨 DVD인가?” 해서 “나주 관련 DVD와 나주 성모님 기적수입니다.”

“이것을 추기경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핀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 또 믿고 순례하시는 분 바로 여러분을 뜻하시는 겁니다. “형제자매님들이 하시는 이런 모든 일이 물방울 같은 것인데 그 물방울들이 다 합해지면 큰 바다가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주 성모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뜻하면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악의 세력과의 전투에서 성모님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라며 다시 한 번 또 물방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먼저 힘을 주시는 긍정적인 말씀을 하시니까 저는 감동을 하고 감사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주의 진실 DVD와 성모님 기적수가 추기경님의 손에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인류 복음화 성성 장관이신 이반 디아스 추기경님께서는 나주 성모님을 아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있을 전투를 위해 추기경님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또 저는 교황님을 알현하기 위해 베드로 광장에 갔다가 그곳에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은 거의 이태리어나 라틴어로 되어 있었는데 한 부분은 성모님에 대한 책이 판매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있을까 생각했는데 시라쿠사의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사진이 있는 책이 바로 제 눈앞에 보였습니다. 성모님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니 아주 반가워서 책을 열어봤습니다.

뜻밖에 그 책 중간 부분에 ‘나주 코리아’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10페이지 넘게(14페이지) 쓰여 있었습니다. 그 책이 출판된 날짜가 2008년 2월인데 내용이 뭐였냐면 1985년 성모님께서 처음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을 흘리시고 온 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주시고 성체기적, 성모님 동산에 내려주신 성혈과 향유, 모든 이야기가 그 책에 설명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광주 대교구의 태도도 확실하게 설명하면서 ‘나주에는 이외에도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또 많은 신자들이 목격하고 평신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많은 신부님들, 성직자 한국과 외국의 주교님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목격하신 기적인데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발표한 광주 대교구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성혈 DNA 검사결과와 최근 이야기까지 다 나와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놀랐습니다. 바티칸의 핵심적인 공식 서점에서 나주의 소식을 전파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만 왜 나주 성모님을 못 받아들이고 계시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많은 박해를 뚫고 성모님을 찾아뵈었으니 여러분들이 성모님의 친자녀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번에 나주에 온 것이 5년 전이거든요. 저는 지금 여러분들을 보면서 교황청 핀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순례 올 때는 한분 한분이시지만 다 모이니까 제 앞에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더 나주에 순례 오실 수 있도록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전파하고 비닐 성전이 꽉 차고 넘치게 은총의 바다가 되는 그 모습을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 드리겠습니다. 저도 곧 여러분들 다시 뵙고 더 많은 은총을 받으러 성모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오레곤
이 크리스

 

   제 2의 수도공동체의 주춧돌이 되겠어요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타고가게 된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입니다. 제가 수도자로서 제 2의 성소를 받게 된 것은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정말 크신 은총이고 거역할 수 없는 섭리입니다. 오늘은 제 2 성소의 삶을 선택한 이 후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며 축복해 주신 은총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나주성모님을 안지는 얼마 안됐지만 받은 은총이 너무나 엄청나고 컸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 수도공동체 수녀님들과 이 은총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우리 수도공동체가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일 할 수 있으면 나는 비록 부족하고 보잘것없지만 어느 귀퉁이에서라도 성모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참 좋겠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주님께서는 제 기도를 다른 방법으로 들어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바친 기도를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원'의 초석이 되도록 저를 제2의 성소의 길로 부르셨는데 제가 확신할 수 있도록 성혈을 내려주셨습니다. 첫 번 성혈 받았던 때가 2005년 6월 30일 바로 오늘이며 그 이후에 6차례나 더 성혈로 확인을 시켜주셨고 내적으로 그것을 강화시켜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모님 경당에 도착한 지난 달 5월 29일 처음으로 성모님 손을 만질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성모님의 강한 맥박을 느끼면서 어떻게 주체 할 수가 없었어요. 살아계신 성모님을 눈앞에서 뵙고 있다는 벅찬 감격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5월 31일이었습니다. 우리 수녀님과 제가 제2의 성소를 받고 나서 함께 사는 분들이랑 성무일도를 공동으로 바치는 방법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율리아님 너무나 큰 성혈이 팔에 뚝 떨어진 게 보였어요. 주님께서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회 창립을 위한 기도생활을 정말 기뻐하고 계심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6월 6일 금요일 밤에 성모님 앞에서 저와 류 마리아 수녀님이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나주 성모님을 위해 모든 것을 봉헌하는 예식을 하면서 지금 입은 수도복, 예수님이 입혀주신 이 옷을 입는 예식을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가 나주 성모님의 사도로 새롭게 태어나는 이 날 당신의 성혈을 류 마리아 수녀님과 제게 똑같은 자리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복 허리 부분과 베일을 관통하여 등 뒤에 내려주시며 십자가에도 향유를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또 율리아님이 입은 한복에는 엄청난 성혈을 순식간에 내려주셔서 온통 성혈로 물들었어요. 자매님은 그 한복은 나중에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회에서 징표로 보존해야 된다며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6월 첫 토요일 마치고 주일 저녁 때 성모님 옆에 성체를 모셔놓은 성광의 방향이 눈으로 봐도 너무나 선명하게 왼쪽으로 확 돌려진 모습을 보고 ‘첫 토요일 마치고 다시 성모님을 경당에 모시면서 뒤편에 있는 성광을 건드렸나?’ 하는 의문을 잠시 가졌지만 잊어버렸습니다. 그다음 6월 9일 월요일 날 아침 신부님들과 모든 분들이 경당 성모님께 나아가 확인을 하였는데 받침보도 틀어져있었고 성광이 스스로 움직여 돌아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성체는 1994년 11월 24일, 교황대사님이 성모님 경당을 방문하셨을 때 십자가에서 빛이 내려오며 두 번째 내려주신 성체입니다.

그래서 11월 24일 주신 메시지를 같이 함께 확인하면서 보고 있는데 진한 장미향기가 나기에 보니 아크릴 박스 위에 손바닥 반 정도보다 큰 넓이의 투명한 향유를 내려 주셨는데 향기가 진동을 하는 거예요. 오늘은 참젖을 내려 주셨는데 그때는 점점 희뿌옇게 젖으로 변화되 었어요. 율리아님께서 손으로 그 젖을 찍어 모두에게 먹여주셨고, 그 다음에는 이마에도 발라주셨는데 특히 저는 머리에 발라주시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입안에서 향긋하고 쓴 특유의 맛이 감돌았는데 그 때 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치유 받아 걷고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나 머리 통증은 남아 있었는데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통증이었어요. 지난 5월 말경부터 더 심해져 왼쪽머리에서부터 마치 밤송이 가시가 내려 누르듯이 아프고 부위가 옮겨 다녔어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제 손이 올라가고 경기가 날 정도로 깜짝깜짝 놀랐어요. 동시에 왼쪽 목 편도선 쪽에 침을 삼킬 때나 음식을 먹을 때도 통증이 왔습니다.

목에 걸린 것이 없는데도 무엇이 걸린 것처럼 느껴져 침을 뱉으면 핏빛 작은 덩어리들이 나왔어요. 매순간 순간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예수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나의 보속과 성직자 수도자들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생활의 기도로 아름답게 봉헌하였지만 그 고통은 너무나 극심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는 거예요.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님이 성모님 젖을 먹여주고 머리에 바르며 기도하시는 동시에 그 통증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괜찮으니 완전히 치유를 해 주신 거죠.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고통을 주셔도 생활의 기도를 봉헌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 성모님 젖으로 치유의 은총을 허락하신 것은 주님과 성모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니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성모님은 제 눈으로 성체기적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더라고요. 6월 10일 화요일 저녁기도 후 경당 성모님 왼쪽 앞에 모셔진 <전날은 뒤쪽에 계신 성체가 틀어져계셨고> 성광에 뭔가 그림자처럼 느껴져서 신부님이 모든 분들이 보는 앞에서 성광을 열어서 확인했는데 바로 그 성체 뒤에 또 다른 성체가 함께 모셔져 있었습니다.

왜 확인을 할 수 있었냐면 그 전날 뒤의 성광이 틀어져서 그것을 바로 잡으면서 신부님 두 분께서 앞의 성광을 들고 성체강복을 해주셨었거든요. 근데 성광 안의 성혈이 흘러나온 성체가 약간 삐뚤어져서 신부님이 성광을 흔들어 성체를 똑바로 해 놓은 다음 제자리에 모셨었거든요. 그리고 아무도 손을 댄 사람이 없는데 그 다음날 성광 안에 또 다른 한 분의 성체가 모셔져 있는 것을 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면서 제가 몸담고 있던 수녀원에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회가 저의 제 2의 성소입니다. 너무나 확실한 확신과 또 징표를 주셨기 때문에 저는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고 모든 경위를 밝히고 2008년 5월 23일자로 퇴회 사유 청원서 3부 (수도공동체 원장님께 1부, 또 로마의 총원의 총장님께 1부, 그리고 교황청에 1부)를 제출 하고, 교회와 수도공동체에 필요로 하는 모든 절차를 밟고 옮겨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해 유언비어가 많이 떠돌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신부님께서는 저를 두고 “그 수녀는 나주 성모님을 믿다가 수녀원에서 쫓겨났다.”고 신자들에게 공공연하게 말씀을 하셔서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그 신부님이 원망스럽거나 그런 것보다도 ‘참 기도가 많이 필요한 분이다.’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지만 주님과 성모님께 봉헌하며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언젠가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 와서 생활하면서 크게 느끼는 것은 율리아님의 보속고통입니다. 순례 다니면서 봤을 때는 막연히 ‘아, 굉장히 고통을 많이 받으시는구나’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함께 살면서 보니 거의 매일 극심한 고통을 정말 온전히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봉헌하고 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바로 주님 성모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박해를 모질게 하고 있지만 주님 성모님께서 시작하신 일 주님 성모님께서 마무리하시겠다고 메시지에서 말씀 하셨으니까 그날이 앞당겨져 더욱 많은 영혼들이 회개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저도 율리아님의 기도지향과 합하여 매일 봉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바치는 기도가 율리아님의 기도지향과 합해서 정말 주님 성모님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도록 합시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저의 머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징표를 끊임없이 보여주시며 나주 성모님의 영성이자 율리아님이 목이 터져라 외치시는 아멘, 내 탓이오, 셈치고, 생활의 기도를 우리가 늘 실천하기를 바라십니다. 아까 증언한 미리암 자매님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였을 때 예수님 성모님께서 그런 은총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아멘”, “내 탓이오”, “셈치고”살고 또 우리 눈뜨면서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생활 자체를 기도로 들어 올리는 “생활의 기도화”를 잘 실천하도록 합시다.

저는요 제가 너무나 그리워하던 나주 성모님 가까이서 하루하루 숨 쉬고 이렇게 눈뜨면 언제든지 뵐 수 있고 또 살아계신 예수님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기쁩니다. 이 기쁨은 세속에서 제가 살 때 누리던 그 기쁨하고는 다릅니다. 여러분들도 순례 때마다 체험하시죠?(네)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주님 성모님께서 율리아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과 영성을 바탕으로 창립하고자하는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회를 위해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사랑의 응원 부탁드리며 이 모든 것 주님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 생활의 기도 모임
이 막달레나 수녀

 

 

  오리알만한 혹이 사라졌어요.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대구 대교구 류미리암입니다. 부족한 저를 거룩한 은총의 자리에 불러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입니다. 장부가 나주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가 보자고 권했지만 저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혼자 가라고 했지만 장부는 꼭 같이 가 보자고 해서 속으로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하고 생각하면서 “가서 보고 ‘이건 아니다.’하는 마음이 들면 당신도 다시는 못 간다.”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은 부족하고 죄 많은 저에게 너무나 많은 은총을 퍼부어 주셨기에 그 후 기도회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2년 전 갑자기 찾아온 갑상선! 병원에서는 크기가 너무 크며 초음파 진단 결과 악성일 확률이 99퍼센트라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자 함께 간 아들은 계속 울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율리아 자매님께서 뽀뽀 해 주시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한 달 후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 결과, 악성이라고 판정되었던 혹의 모양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하얗게 나왔던 부분이 다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의사는 계속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99퍼센트 암으로 보셨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곧바로 장부에게 전화를 하니 ‘아멘!’하면서 ‘내가 나주 성모님이 다 치유해 주실 거라고 했지?’하면서 울먹였습니다.

그 후, 작년 3월 인도네시아 루뗑교구를 방문하게 되었고 율리아 자매님의 치유기도 시간에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보았는데 6월 12일 영광스럽게도 율리아 자매님을 따라 다시 루뗑을 순례할 수 있었습니다. 발리에서 루뗑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율리아 자매님께서 갑자기 큰소리로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간다. 빨리 와봐.’하고 외치시는 소리에 우리 일행이 급히 달려가 보니, 그 자리엔 어떤 남자가 얼굴에 피가 범벅이 된 너무나 처참하고 참혹한 몰골로 부르르 떨면서 싸늘하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기적 성수를 뿌리며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속으로 ‘아, 이 사람은 결코 살아날 수 없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하신 루뗑교구의 두 신부님도 “저 사람은 100퍼센트 죽었다.”하시며 병자성사 주실 생각도 못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어가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다음날 지난 3월 맹인과 농아들이 치유 받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장애아 고아원을 찾아갔는데 3월에 치유 받은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 어린이들은 완전히 치유 받아 집으로 돌아가고 몇몇은 잘 보고 잘 듣고 말을 하였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어린이들을 끌어안고 뽀뽀해 주시며 기도하시니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수녀님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몇 개냐고 묻자 하나, 둘, 셋, 모두 맞혔습니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다 손뼉을 치며 놀라워하였습니다. 수녀님이 글씨를 작게 써서 보여 줘도 다 읽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깔도 다 알아 맞혔습니다. 어떻게 한 번도 보지 못한 색깔을 알아맞히는지 하느님의 능력은 놀라웠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네 살 때부터 귀가 멀어 못 듣는 12살 된 아이의 귀에 기적 성수를 조금 넣고 기도를 하신 후 뽀뽀를 하시니 그 아이의 귀가 열렸습니다. 또렷한 발음으로 아멘! 알렐루야로 응답하는 그 어린이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는 직접 그 현장에서 목격한 바를 조금도 보태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는 증언이므로 이 증언은 참됩니다.

이 기적의 현장에 있던 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며 제가 전하는 증언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시는 여러분은 또 얼마나 복된 자녀들입니까? 매일 매순간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항상 웃으시며 봉헌하시는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어린이집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 제대로 씻지도 않고 고름과 악취가 나는 어린이들을 차례로 껴안으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은총을 체험하고, 또 보았으면서도 어느덧 교만에 사로잡혀서 제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며 악습에 빠져 버린 결과, 치유 받았던 목의 혹이 점점 커졌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니 저의 마음은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혹은 턱 밑까지 차올랐고, 심한 통증까지 왔으며 보는 이들마다 걱정을 했습니다. 병원 진단 결과, 갑상선 결절로 혹 속에는 끈적이는 기름이 가득 차서 주사기로 빼내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지부 기도회 일주일 전부터 최악의 상태가 되어   오리알 만해진 혹은 턱밑까지 차올라 통증 때문에 혼자서는 누운 채 고개를 돌리기조차도 힘이 들었고 아무도 몰래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지부기도회가 끝난 다음날 진료 후 수술날짜를 잡기로 예약을 해놓았는데 저를 보는 많은 형제자매들은 목의 혹을 보며 얼굴에 병색이 짙다고 걱정들을 하셨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만남의 시간에 율리아 자매님이 저를 꼭 껴안으시고 저의 목에 뽀뽀를 하며 기도해 주실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가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딱딱하던 목의 혹이 말랑말랑해져서 밑으로 축 처져 있었으며 통증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음날 예약된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여기서 수술을 하려면 8~9개월을 기다려야 된다”며 울고 있는 제게 교수님이 개인병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평소 혹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미용실에 가서도 고개를 뒤로 젖혀 머리를 못 감고 대학병원에서 검사할 때는 1,2분도 힘이 들었는데 이날은 고통이 별로 없었기에 30~40분 걸린 검사와 진료를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원장님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검사 결과 콩비지처럼 끈적끈적하고 딱딱했던 몽우리가 다 없어지고 물로 가득 찬 상태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간호사가 커다란 주사기로 3번이나 가득히 물을 뽑고 난 후 “언니 목이 훌쭉해졌어요.” 하기에 거울을 보니 정말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마음에 그냥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남편에게 알리고 아들에게도 말을 하니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수술을 하고도 평생 약을 먹어야 될 병을 주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치유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저에게 이렇게 크신 은총을 주시고 저희 가정을 끝까지 지켜주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언제나 저희를 위하여 대속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하시는 율리아 자매님, 저를 치유시켜 주시기 위하여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봉헌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자매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 성모님께 드립니다.

   대구교구  류미리암

 

희망이 있는 고통은 바오로 사도 말씀의 완성

서울 신천동에서 온 박 시몬입니다. 저는 영세 받은 지 40년 되었는데 30년 이상을 발바닥 신자로 지내다 나주 성모님을 알고 제대로 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주는 친분이 있는 수녀님께서 작은 기적성수 한 병을 주시며 권유를 해서 공지문 후부터 순례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주를 왔다 가면 그 다음날 집에 꼭 대소동이 일어났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집사람 꿈에 부활하신 나주 예수님께서 나타나 “여기까지 오느라고 대단히 힘이 들었겠구나. 내가 이제부터 새 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나흘 후에 마귀의 흔적이 우리 집에서 깨끗하게 없어지고 막연했던 하느님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여 나주에 열심히 안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느님의 모습에서 조금 나주에서는 다급해지신 것같아요. 하느님의 원래 본성에서 조금 요새 너무너무 다급해지신 우리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서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오지요? 나주에서는 마리아의 구원의 방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번 비교를 해 봅시다.

노아에게 하느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나주의 방주는 만들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방주에 타라. 그럼 누가 만드는 겁니까? 급하셨습니다. 방주는 이미 만들어 졌어요. 타기만 하라. 또 노아의 방주는 노아 가족만 탔지요? 근데 나주의 구원방주는 우주보다도 더 큰 배를 모두가 다 타라고 그랬습니다. 또 노아의 방주의 선장은 노아지요? 홍수가 져가지고 방주가 뜨면 어디 목표없이 떠있으면 되니까. 노아가 선장해도 너끈히 됩니다. 그러나 우리 나주의 방주는 하늘나라에 가야합니다.

탄 사람은 한번도 하늘나라에 가본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운전을 시킬 수가 없고 직접 성모님이 오셔가지고 선장이 되신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근데 방주의 크기. 아까 말씀드린대로 우주보다도 더 큰 방주라고 이야기드리지 않았습니까? 배가 크기가 문제입니까? 파도의 크기가 문제입니까? 조그만 배는 대양을 가서 횡단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58년도에 미국을 소위 국비로 유학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비행기가 없어요. 그래서 배를 타고 인천에서 시애틀까지 가는데 딱 2주가 걸렸어요. 태풍을 두 번을 만났는데 난 배가 부서지는줄 알았어요. 배가 너무 작아서 그래요. 그 파도보다도 배가 더 크면 절대 부서지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하늘나라에 가는 방주는 무지무지하게 큽니다. 정원수가 없어요.

다음으로 성모님이 주신 메시지를 검토해 봅시다. 지구에 있는 열여섯 군데 발현 성지에 메시지를 다 모아 인쇄를 하면 1, 2페이지면 16개 메시지가 다 수록될 정도로 간단합니다.

나주는 어떻습니까. 책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그거를 가지고 광주교구의 소위 조사위원이라고 하는 사람들 '왜 그렇게 성모님이 수다쟁이냐.' '왜 중언부언하느냐.'라고 말씀하셨지요? 성모님이 왜 잔소리를 해야하고 왜 중언부언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그 다음에 그런 말을 하시면 좀 이해가 되는데 비꼬기만 했습니다.

인생을 제 나름대로 말해보겠습니다. 인생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네가지 박자가 필요합니다. 희, 노, 애, 락.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서 화나는거 없앨 수 없고 서글픈거 없앨 수 없는 그야말로 인생은 네가지로 희노애락 연속입니다. 그런데 나주에와서 저는 새로운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율리아 자매님께서 미사를 마치고 떠나시는 신부님을 배웅하셨어요. 신부님께서 낙태보속의 고통으로 배가 불러 걷기에도 불편한 율리아 자매님을 보고 틀림없이 위로의 말씀을 건냈겠죠? 그때 제가 마침 율리아 자매님 옆에 있었는데 율리아 자매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희망이 있는 고통입니다.”

저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었는데 아무리 극심한 고통을 받더라도 “희망이 있는 고통”이라며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하는 율리아 자매님을 보면서 나주는 바오로 사도께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하신 말씀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서울 신천동 박 시몬

 

악성 종양이 치유됐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4월 첫째 주 저희 집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여러분들께 부탁을 했던 대구의 서 기준 엠마누엘입니다. 저희 집 사람은 장에 악성종양이 있어 창자를 전부다 꺼내서 다 씻어내는 수술 네 번 만에 인공 항문을 달아서 지난번에 다 끝났습니다.

제 처는 세 번째 수술 할 적에 체중이 35kg 나갔습니다. 수술시 수혈을 56통이나 했는데 다른 사람의 피를 11통 이상 수혈하면 거의 다 죽는답니다. 그런데 집사람은 나주 성모님의 기적수와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으로 56통을 맞고도 살았습니다.

그리고 35kg 나가던 몸무게가 불과 한 달 만에 46kg이 되어 급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어제 같이 오려고 했는데 마지막 실밥을 아직 덜 뽑고 현재 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좀 조심하느라고 저 혼자 왔습니다. 7월 셋째 목요일이나 8월 첫째 주 꼭 집사람을 데리고 와서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현하도록 인사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 서기준 엠마누엘

 

식도 막힌 아기 기적수 마시고 수술 성공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수원교구의 박 카타리나입니다. 저는 엄마가 나주에 가신다면 가지 말라고 한 사람인데 제가 애기를 임신하고서 6개월이 됐을 때 애기 콩팥이 기능을 못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기적수를 갖다 주셔서 마셨더니 임신으로 속이 쓰렸던 위장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또 아기가 신장이 안 좋으면 양수가 모자라다고 하는데 양수가 모자랐다가도 성모님 물을 마시고 체크를 하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아기는 예정보다 일찍 태어났지만 저는 ‘내일이면 애기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12시간 만에 아기가 호흡곤란이 와서 앰뷸런스에 태우고 다른 큰 병원에 갔어요. 근데 식도가 막혔다고 더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상태가 심각했어요. 식도하고 위하고 연결이 안 돼 있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콩팥이 안 좋아 수술을 못하면 하늘나라로 갈 수밖에 없데요.

수술 전이라 무엇이든 먹으면 안 되니까 부족한 믿음에 처음에는 ‘이러다 죽이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오는 길에 의사선생님을 만났어요. 선생님은 “식도는 폐쇄가 되어 있고 위는 폐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서 애기가 태어났을 때 먹인 것이 폐로 들어가 굉장히 위험합니다.”고 했는데 다행히 성모님 물을 먹고 8시간을 해도 성공 할수 있을지 모른다던 수술이 4시간 만에 끝났어요.

지금 수술한 지 11개월 정도 되었는데 우리 아기 비오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며 수술 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아물었어요. 주님께 더욱 가까이 불러주신 나주성모님께 감사 찬미 드립니다.

수원 박 카타리나

(비오의 외할머니 임 체칠리아 자매님의 증언)

비오의 외할머니 되는 수원의 임 체칠리아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외손자는 성모님 은총으로 새 생명을 얻어 건강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8월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유방암 판정을 받았어요. 10월에는 좀 더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마찬가지였어요. 앞이 캄캄했지만 ‘이건 오진이겠지.’ 하고 지나다가 올 4월 성모병원에서 MRI, CT촬영을 다 했는데 유방암인거예요.

가족들은 다 수술하라고 권유했지만 기도회 올 때마다 율리아 자매님한테 유방암인데 수술받기 싫다고 무섭다고 했더니 계속 “치유 받으십시오. 치유 될 겁니다.” 하시고 항상 저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어요. 그래서 지금 수술을 세 번을 미뤘는데 제가 회개하고 감사하고 더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리면 완전히 치유 될 거라고 믿고 우리 비오랑 같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광주대교구의 강 유리안나에요. 저는 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치유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이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았고 요 손가락은 펴지지를 않았는데 순례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 받았어요. 저는 체질상 상처가 있으면 안 되는데 상처뿐만이 아니라 화농까지 있어 아무리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고 점점 더 커졌는데 기적수를 3방울 떨어뜨리면서 치유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 다음날 딱지가 앉고 그대로 치유가 되었어요.

또 심장마비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성모님 피눈물 사진을 가슴에 안고 몸부림치면서 “성모님 제가 왜 이러죠? 제가 왜 이래요?” 그 말밖에 못했는데도 목숨을 살려주셨어요. 나중에 병원에 가서 심장 수술을 받고 그것이 심장마비였으며 그 당시 얼마나 위급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이제 율리아 자매님이 외치시는 생활의 기도와 자매님이 보여주시는 영성을 배워 남은 한 생애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의 여왕이시며 천상의 여왕이신 나주 성모님!

모든 것이 부족한 이 죄인을 천국 잔치에 초대해주시고 불러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천국잔치가 이곳 성모님 동산 성체 조배실 앞에서 거룩한 미사의 은총을 통하여 하늘 아빠께 나주 성모님께 올려지고 있습니다. 여기 나주성모님의 작은 영혼들의 사랑이 뜨겁게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나주성모님의 성심의 사랑의 불이 훨훨 타올라 작은 영혼들의 가슴에 성령의 빛으로 오십니다.

나주 성모님의 진리의 함성이, 나주 성모님의 진리의 메시지가 율리아 엄마와 작은 영혼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행복한 순간을 어찌합니까? 행복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의 꽃으로 봉헌합니다. 나주 성모님의 영성과 메시지 말씀 전하면서 한생을 살렵니다.

율리아  엄마의 아멘의 영성, 내 탓이오 영성, 셈치고 영성을 본받고 배우면서 봉헌하면서 닮아가렵니다. 생활의 기도로 무장하여 전진하면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렵니다.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의 월계관이 씌워질 때까지 승리의 깃발이 나주성모님의 동산에 펄럭일 때까지 용맹히 전진하렵니다.

받은 은총 관리 잘 하도록 도와주세요. 순간 순간마다 새로나고 거듭나게하시어 부활의 삶을 살도록 하여주시고 강복하여 주셔요. 나주 성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수녀님 사랑합니다. 율리아 자매님 사랑해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과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 위하여 용맹이 전진합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수원 박 카타리나, 임체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