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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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년 증언

   1999 년 증언

   2000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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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와! 우리나라 사람들 외제 무지하게도 좋아하는구나 - 오현석 야고보

cross2.gif 부천 소사본당에서 순례온 박성미 골롬바 자매님의 증언

cross2.gif 은총은 강물처럼 책을 통하여 신앙이 불타 올랐습니다 - 손희순 블라타

cross2.gif 마치 제 몸은 솜털처럼 가벼워 졌어요 - Prudention Aban

cross2.gif 주님 앞에 내 생명 완전히 내어 놓고 - 허소피아

cross2.gif 물 한모금 먹지 못하던 손녀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다.- 김봉재

cross2.gif 장미 향기 대신에 병원 냄새만 맡았는데 그것이 바로 치유의 은총이었음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박옥자 마리아

cross2.gif 성체조배실 문을 열어주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었어라. -배낙준 가브리엘

cross2.gif 일본 순례자 吉田 昌古 씨의 치유 증언 - 吉田 昌古

cross2.gif 윤봉섭 바오로 형제님의 증언 - 윤봉섭 바오로

cross2.gif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새 가정을!-  김상순 글라라

cross2.gif 작은 정성과 희생일지라도 백배로 갚아준다.-  고정애 요셉피나

cross2.gif 너무 너무 놀라운 기적이 저에게도-  김옥련 효임 골롬바

cross2.gif 인천 신수산나 자매님의 증언 - 신 수산나

cross2.gif 공덕동에 김 세레나 자매님의 증언 - 김 세레나

cross2.gif 사진촬영하다가 피빛 향유를 보았습니다 - 이 광

cross2.gif 피부병에는 성모님 물이 제일이지요.- 김복자 마리아

cross2.gif 속도 위반 환자 -  김지혜 미카엘라

cross2.gif 병원에서도 포기했던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서 새 생명을 -  허수복 미카엘

cross2.gif "미친소리 그만해" 하던 남편이 변화되었습니다. -  오옥자 말가리다

cross2.gif 나주 성모님 물이 소독약으로 또 술로도 변화되었습니다. -  전귀님 마리나

cross2.gif 그렇게도 밉던 남편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졌어요.-  정인숙 이사로라

cross2.gif 나주 성모님 물 몇 방울로 의식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전미숙 엘리사벳

cross2.gif 생활의 기도화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의 지름길 -  박순자 마리아

cross2.gif 투병 중에 나를 도와주신 나주 성모님 -  elfi  vogel( 엘피 포젤)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협력자로! -   김미정 데레사

cross2.gif Judy Navarrete 자매님의 증언 -  쥬디 나바레떼

cross2.gif 스리랑카의 주교님께로부터 온 편지 -  마리우스 페이리스 주교

cross2.gif 나주 성모님은 의사이십니다. -  Mrs. Thomas Warkins

cross2.gif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여! -  현상학 프란치스코

cross2.gif 불구의 몸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를 받다니! -  이연숙 로사

cross2.gif 위암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바꾸어주신 나주 성모님 -  오형임 빅토리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께서 살아 움직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 Mr. Steve Lee & Rosa

cross2.gif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은총이 많은 곳입니다. - 토마스

cross2.gif 실망하거나 낙담할 때가 아닙니다. - 이현익 마태오

cross2.gif 굽어지고 다친 허리를 펴주신 나주 성모님 - 박성미 골롬바

cross2.gif 영혼 육신과 병든 정을 치유해주신 나주 성모님 - 문 헤드비 제스

cross2.gif 이태리 산 죠반니 로톤도 성당에서의 나주 기적 소개 -  Mary's Touch By Mail

cross2.gif 세계 어디를 가나 함께 해주시는 기적의 나주 성모님 -  Mr. Rock Paul

cross2.gif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은총이 많은 곳입니다 -  Mr. Thomas S. T. Lui & Family

cross2.gif 직접가서 보고 듣고 느끼십시오. -  Rev. Lawrence Yeo

cross2.gif "나주 성모님 집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  Agnes Goh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강박증으로 인한 우울증이 치유되었습니다.-  장 율리안나

cross2.gif 얘야! 그 물이 참 좋기는 좋은가 보다.  -김금례 데레사

cross2.gif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  이일선 요안나

cross2.gif 세찬 바람앞에 춧불과도 같은 생명이- 오형님 빅토리나

cross2.gif 유명한 의사들도 고치지 못했던 눈이 성모님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 정호선

cross2.gif 온몸 곳곳에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자비의 물줄기였습니다 - 구영애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물로 악의 세력도 물리쳤습니다. -  류순지 엘리사벳

cross2.gif 딸의 고통을 통하여 죽었던 영혼을 되살려주신 나주 성모님 -  홍경희 미카엘

cross2.gif 등어리의 아픈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  조기남 마리아

cross2.gif 제가 평생을 기다리던 「고도」는 바로 나주 성모님을 찾은 행복 -  노 신티아

cross2.gif 지금 순례오시는 분들이야말로 진짜입니다.-  이현익 마태오

cross2.gif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나주 성모님의 말씀을 듣고 - 고향란 아나스타시아

cross2.gif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어요. - 川本和子,新井京子

cross2.gif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의 태양의 기적 - 홍콩의 순례자들

cross2.gif 간난이의 치루도, 나의 하혈과 자궁의 혹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 이현숙 데레사

cross2.gif 차는 부서졌지만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어라.-  김영욱

cross2.gif 나주에 오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은총을 거져 주십니다.-  이양숙 히야친따

cross2.gif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현존이야!-  홍경희 미카엘

cross2.gif 나주 성모님 물 한말을 마시고 온 몸에 퍼진 암이 치유되었습니다.-  이춘희 아가다

cross2.gif 제 평생 이런 기적은 처음입니다.-  이규현 마리아

cross2.gif 5개월 정도 없던 생리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정혜경 로사리아

cross2.gif 이게 왠일입니까? 마치 하늘로 날으는 기분이었습니다.-  정주희 베로니카

cross2.gif17년간이나 알콜 중독이던 동생이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박영화

cross2.gif 뼈속까지 전이가 된 암세포까지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 TERESA OEI

cross2.gif 필리핀 안토니 까바혹 주교님의 증언-  안토니 까바혹 주교

cross2.gif 어떤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던 아이의 병이 은총의 물로 완전히 치유 -  우순옥

cross2.gif 어머나 세상에! 서울에서 맡았던 그 향기와 똑같네 - 박정현 데레사

cross2.gif 아!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  백정순 엘리야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냉담을 풀고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김행자 로사

cross2.gif 전에 없었던 평화를 만끽하고 살고 있습니다. - 서문영 안나

cross2.gif 눈썹과 머리카락 다 빠진 후두암 환자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이연호

cross2.gif "후두둑…" 소리까지 내면서 자비의 물줄기가 내렸습니다.-  윤정아 카타리나

cross2.gif "이것은 기적이야.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  Mr. Rock Paul

cross2.gif 세계 어느 성지에서도 받지 못했던 감동을 나주에 와서 아주 특별한 감동과 현존을
   느꼈습니다.-  DIANA NGNYEN

cross2.gif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믿게 되었습니다.- 서경원

cross2.gif 나주 스카풀라를 착용하면 가위에 눌리지도 않고 마귀의 공격은 당하지 않는다 - 이명희

cross2.gif 이태리에서 나주성모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Judy Navarette

cross2.gif 백배로 되갚아 주시는 주님과 나주 성모님 -  안미자 데레사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정말 기적수입니다.-  서관식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기적수이자 약입니다 - 권경숙 루시아

cross2.gif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급성 간염도 치유받고 신자가되었습니다 - 이계숙  

cross2.gif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던 내가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 박영화 수산나

cross2.gif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크게 다친 척추가 치유되었습니다. -  전미숙 엘리사벳

cross2.gif 심한 허리 디스크가 병원치료 한번도 받지 않고 치유되다니요! -  이정숙 데레사

cross2.gif 죽음 직전의 딸을 나주 성모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  김복림 바울라

cross2.gif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 정선아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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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리나라 사람들 외제 무지하게도 좋아하는구나

인천에서 순례 온 오현석 아고보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알게 된 것은 1986년도부터 였는데 저는 그때 나주성모님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오히려 메주고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내왔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나주 성모님에 대한 사이트를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관심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주 성모님에 대한 관심이 저에게 일어났고 그때부터  저는 눈이 빠질 정도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와 증언들을 읽으면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우리나라 사람들 외제는 무지하게도 좋아하는구나, 메주고리는 몇백만원씩이나 들여서 가야하지만 나주는 단돈 몇만원이면 올수 있는 곳인데' 하면서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오기 전에도 밤을 새워 가면서 약 5시간 정도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읽고 잠깐 눈을 부친 뒤 나주로 출발했습니다.

원래 저는 성격이 굉장히 급한대다가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며 혹시라도 남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라치면 강하게 반발하는 불같은 면이 있는데 나주에 오려던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사도 바오로가 떠오르면서 말씀처럼 참 사랑이란 오래 참아야하고 인내해야 하며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오늘까지 인내하면서 화를 내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하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도회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통회의 눈물이 복받쳤는데 옆에 있던 자매님이 하도 심하게 울어서 오히려 제 눈물은 쏙 들어가고 분심마져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하면 분심이 안들까?' 하고 고민했는데 '아! 이 자매님이 나보다 고통이 더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자매님의 손을 따듯하게 꼭잡아 주었더니 오히려 제 마음이 더 따듯해지면서 저도 더불어 치유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2월 4일
오현석 야고보
인천시 남동구 만수 6동 1078-4번지

 

 

부천 소사본당에서 순례온 박성미 골롬바 자매님의 증언


작은 아들이 중학교 1학년때부터 병원에서도 그 원인을 알수 없는 병으로 머리가 심하게 아파서 학교 수업 일수만 겨우 채울 정도로 근근히 다니면서 학교에서는 양호실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공부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던 1998년 9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진동하는 약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그 순간 아들이 치유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그 날 나주를 다녀온 이후로 아들이 아프지도 않았으며 결석이나 조퇴를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어서 지금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공부를 잘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이었다.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월 6일
부천시 소사구 소사 3동 197-12 부성맨션 503호

박성미 골롬바

 

 

은총은 강물처럼 책을 통하여 신앙이 불타 올랐습니다.

저는 현재 숙명여대 의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나주에 한 번 온 적은 있지만 신부님과 주위 분들이 막았기에 당연히 나주에 오면 안되는 줄로만 알고 있다가 우연히 만난 최모니카 수녀님의 소개로 작년 11월 24일 처음으로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군이 목사인 저의 학교 기획처장이신 조 선생님과 그의 제자와 함께 순례를 왔습니다.

저는 2년 전에 파리 공항에서 떨어진 짐짝에 머리를 다쳐 몸이 좋지는 않았지만 기체조를 하면서 그런데로 일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말로만 신자이던 저는 우연히 성당에 나갔다가 최 모니카 수녀님을 마나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성당을 다니지 않았기에 그분이 본당 수녀님 인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녀님과 이런 저런 대화 끝에 식어진 신앙을 이야기하면서 메주고리에 가겠다고 했더니 수녀님은 "무슨 소리야, 웬 메주고리냐, 나주를 한 번 가보라." 고 권유를 하기에 11월 24일 나주에 올 수 있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우연이 아니라 수녀님을 통해 나주로 이끄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이었음 알게 되었습니다.

영세 받은 이후로 거의 15년 동안 신앙의 열정적인 참 맛을 느끼지 못했기에 성당을 거의 안나가다시피 했고 때로는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듣거나 영적 서적을 읽어 도뜨거운 감동은 잠시일 뿐 다시금 사그라지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는 도중에 레오나 자매님이 권한 '은총은 강물처럼' 을 읽는 순간 가슴 저 깊이에서 뜨거운 열정이 불타올랐고 다 읽는 순간까지 차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신앙에 불타올랐고 '은총은 강물처럼' 을 더 구입해서 저의 학교 교수님들과 총장님에게도 권하였습니다.

은총은 강물처럼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게 되었고 성서도 읽게 되었는데 12월 5일 학교의 중요한 행사로 북경에서 총장님을 비롯하여 교수님들이 오시게 되어서 제가 그분들을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쇠약해진 탓인지 연신 콧물이 줄줄 흐르면서 심하게 재채기를 하여 '아이구 큰일났구나, 감기가 심하게 왔구나.' 고 했지만 약부작용 때문에 약도 먹을 수가 없고 내일 있을 중요한 행사를 생각하니 그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몸마저도 퉁퉁 붓는 것이 정말로 보통 큰일이 아니다 싶었는데 그때 마침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갔을 때 레오나 자매님으로부터 얻어온 성수가 눈에 띄였습니다.

얼른 성수를 눈에 넣으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기도로 무작정 성모님께 매달렸습니다. "성모님 저는 믿습니다. 내일 일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중국에 가서 학생 선교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저를 당신의 작은 도구로 써주실 양이면 저를 낫게 해주십시오." 하고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올린 뒤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새벽 3시였습니다.

그런데 노란코가 말도 못하게 나오면서 몸에 열도 심해 '아이구 내일 그분들을 안내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금 성수를 꺼내서 마시면서 "성모님 당신 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기도도 안하고 신앙안에서 잘살지 못했지만 낫게만 해주신다면 저의 온 힘을 다하여 나주 성모님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니 꼭 낫게 해주세요." 하고 또다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이게 웬일 입니까?

그 다음날 일어났는데 씻은 듯이 몸이 나아서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드린 은총은 강물처럼 책을 읽고 감명받은 교수님이 오늘 함께 오게 되어서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영광 찬미 받으소서        

  

손희순 블라타
서울 용산구 청파동 2가 53-12 숙명여대 의류학과
전화)553-3134

 

 

마치 제 몸은 솜털처럼 가벼워 졌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그? 센시오 아방입니다. 

저는 1999년 7월 달부터 목뒤가 너무 아파서 목을 들지 못하는 고통을 받아왔으나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가족들은 물론이고 의사들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해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던 중 나주에 관한 말을 듣게 되었고 마침 나주에 갔다가 온다는 분이 있어서 나주에 어떻게 가며 나주는 어떤 곳인지를 알고 싶다고 편지를 썼더니 그분이 나주의 성모님 물을 조금 보내 주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나주의 성모님의 물을 받고 보니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 물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방울씩만 물에 타서 먹었는데 성모님 물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나주 성모님 상을 저의 집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상을 받아 보는 순간 완전히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이번에 나주에까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도착하여 성모님께 기도드리고 성모님 동산에 갔는데 마침 율리아 자매님께서도 순례자의 자격으로 와 계셨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 분의 품에 달려들어서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다가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는데 너무나 강한 빛이 저를 감싸고 도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순간적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때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저에게 성모님 물을 부어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더욱더 강한 빛이 저를 감싸고 돌았고 저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어떤 일이 저에게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정신을 잃을 때 경사진 비탈 밑으로 머리를 뒤로한 채 곧바로 넘어지면서 넘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제가 다친 줄 알고 굉장히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고 어떠한 통증도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막 정신을 차린 뒤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뜻대로 말을 듣지를 않았고 다리가 너무나 떨려서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는 저에게 율리아 자매님께서 “두려워하지 말아요.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세요” 하고 말 하시더군요  

혼자서는 전혀 일어나지를 못하던 저는 곧바로 벌떡 일어섰고 마치 솜털 같이 가벼워진 제 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넘어질 때 주위에 계시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에 마치 성령의 불길과도 같은 강한 빛이 찍혀있었기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막연한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은총으로 함께하여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Prudention Aban 

8129 Arroyo Vista Drive 

Sacramento, Ca. 95823-5935 

Tel. (916) 688-9473 

 

 

주님 앞에 내 생명 완전히 내어 놓고

바람앞에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생명을 붙들고 있던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나주 성모님의 비디오 테잎과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증언을 쓴 "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우리 부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나주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그곳 나주로 달려가서 나주 성모님을 한번이라도 뵙옵고져 하는 열렬한 갈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성 C형간염과 다른 합병증들로 인하여 유동식으로 겨우 연명하면서 5년간이나 자리에 누워있던 중환자인 내가 감히 17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사활이 걸린 대모험이 아닐 수 없었기에 단호한 결심으로 60평생을 살아온 내 삶의 애착들과 초개와 같은 생명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기로 결정한 저와 남편 알로이시오는 7개월이란 긴 시간동안 매일 매일 눈물의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면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기로 결정한 저는 나주 성모님집에 사연과 함께 기도를 부탁드려 1999년 10월 19일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13일 기념일에 맞추어 가기로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몸으로 한국으로 간다고. . .?" "오래 앓더니 정신이 좀 어떻게 된게 아니냐?"며 수근거리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극력으로 만류하기도 하였다. 믿음이 강한 남편이었지만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송장을 안고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죽음을 앞당기는 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인하여 날마다 눈물로 기도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꺼져가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일깨우며 "주님, 저는 반드시 나주로 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갑니다."  "성모님, 당신께서 피눈물 흘리신 그 현장으로 제가 갑니다.  반드시 갑니다."하고 하루에도 수없이 다짐하며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떠나기 바로 일주일을 전인 일요일 아침 언제나처럼 예수 수난 15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나도 아파서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마치 수돗물을 쎄게 틀어놓은 것과 같이 심한 설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당황해진 저는 순간 믿음이 흔들리면서 깊은 염려가 파도처럼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몸마저도 마치 배춧잎처럼 흐느적거렸고 눈까지 떨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몸을 추스리며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어.  미사에 가서 성체를 모시면 좋아질거야,"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힘을 다 내어 남편에게는 크나큰 걱정과 좌절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하여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함께 아침 미사에 갔습니다.

성당에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몸으로라도 미사에 참석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에 사무쳐 눈시울이 젖어왔습니다. 신부님께서 정성껏 거양성체를 올리실 때 나도 열의를 다해 흠숭을 드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때 놀랍게도  거양성체 뒤로 주님께서 흰 옷을 입으신 모습으로 십자로 팔을 벌리신 채 크나큰 형상으로 나타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 오! 주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주님, 주님께서 저를 찾아 주시다니요.  주님께서 저의 이 고통을 아시고 나타나셨군요.  오! 주님, 감사합니다."하며 감격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줄줄 쏟으면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잠시 후 주님 모습은 사라지고 내 마음엔 기쁨과 희망이 용솟음치듯 했으며, 주님 현시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도 주님께서 함께 해주고 계신다는 싸인일 것이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또 다시 어제와 같은 심한 설사를 쏟았고 3일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채소 쥬스나 미음 이외는 거의 먹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심한 설사까지 하고 있으니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기에 깊은 늪에서 허우적대는 듯한 낭패감이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이런 몸으로는 도저히 4일 후에 비행기를 타기는커녕 비행장까지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서 비행기 예약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선교를 열심히 하고 있는 미국의 바울리나 자매님으로부터 마귀의 방해일지 모르니 성수를 뿌려 보라는 충고를 받고 성수를 뿌린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설사가 멎었고 몸상태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KAL 항공기 본사 사정으로 우리 예약이 4일간이나 더 연기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면서 걱정을 하기에 나는 반대로 몸을 더 추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4일간이나 더 생겼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올렸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안배하고 계신다며 감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먼곳에 살고 있던 딸까지도 실습 관계로 인하여 우리집에 와서 10월 한 달을 출퇴근하게 되었는데 집을 도봐줄 사람이 생긴 셈이니 이 또한 주님의 섬세한 계획이 아니신가.

드디어 10월 7일 아침 한국까지 직행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 뱅쿠버에서 하루밤을 쉬고 가기로 하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2시간 정도는 잠을 잘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차가워지면서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아픈 부위가 점점 위로 올라오면서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남편은 계속해서 저의 다리를 주무르며 온갖 애를 다 써 보았지만 너무나 심한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았기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저는 남편이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려 눈물만 줄줄이 쏟았습니다.

5시간 후 간신히 뱅쿠버에 도착하여 우리는 급히 약방으로 달려갔는데 약사는 "간장이 나쁜 사람은 진통제는 물론 타이네놀도 쓸 수 없으니 응급실에나 가보라"며 권하였지만 그 짧은 시간에 쉬어야지 응급실로 가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며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 할 수가 없었습니다.  '5시간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내일 12시간을 어떻게 비행기로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돌아온 저와 남편은 나는 부둥켜 안고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어쩜 그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절벽에 매달린 인간이 마지막 절규하는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저는 진한 땀과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으며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가 순간 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에 급하면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딸이 의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른 곳에서 도움을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딸은 병약자나 노약자가 고도에 올라가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엄마는 나주에 꼭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내세요"라고 격려해 주며 응급조치를 알려 주었기에 딸이 알려준 방법대로 응급조치를 하면서 드디어 서울까지 과히 힘들지 않게 올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다시 붙들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의 한국 방문의 두 번째 목적은 가족들 때문에 너무나 얽매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여행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는데 30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첫 날부터 가엾은 남편은  저 때문에 너무나 몸과 마음의 고통이 컸던 탓인지 바로 그 날 밤부터 고열이 나면서 심한 몸살 감기를 앓았는데 '내 고통을 저렇게 함께 나누는구나'하고 생각이 들면서 안스럽고 죄스런 마음에 목이 메어 울었지만 어떻게 간호를 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며칠 휴식을 취한 뒤 10월 17일 아침 동생의 차로 쉬어가면서 5시간만에 대망의 나주에 도착했습니다.  나주 성모님이 모셔져 계신 경당에로 들어가자마자 저는 피눈물을 흘리신 그 성모님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성모님, 제가 나주에 왔습니다.  제가 나주에 왔어요."  "제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당신은 아시지요.  성모님, 감사합니다."하고 말씀드리고 있자니 한없는 감격의 눈물만 쏟아지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아뢰야 하고 감사를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다만 봇물을 터놓은 듯한 뜨거운 눈물만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성모님을 뵙고 기도를 드리는 동안 경당안에 가득한 장미 향기로 좋으려니와 특히 성체가 내려오신 자리와 그 주위에서 풍기는 진한 백합향기는 너무나도 좋았고 기쁨과 희망이 솟아 올랐습니다.  점심 무렵에 어느 봉사자가 빨리 차에 타라고 하기에 우리 부부는 영문도 모른채 차에 올랐는데 차 안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순례오신 수 신부님, 다른 한 분의 외국인 신부님, 또 한국 신부님이 타고 계셨는데 지금 성모님 동산으로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은혜 앞에서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한 채 감사한 마음으로 성모님 동산에 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흘려내리는 기적수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강한 백합 향기가 나던지 그저 놀라고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세분 신부님들께서 기도와 강복을 해주신 성모님 물을 돌아가면서 마셨는데 저는 나주성모님께서 이 기적수로 나의 병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시고 또 마셨는데 다른 사람의 3배가 넘는 3 바가지 반 정도의 많은 양을 다 마셨습니다. 그날 외국 신부님들께 우연히 통역까지 해 주게 된 남편은 내일 저녁 철야 기도때에도 통역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되니 이 또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기쁘고 보람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경당으로 돌아 와서 성모님께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는데 저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제 몸에서 강한 장미 향기가 난다고 하였으며 심지어 제가 말을 할 때 입에서도 강한 향기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쌀쌀한 날씨에 한 시간을 밖에서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저는 기적수가 나오는 산에서 5시간 가량 보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10월 19일 오전 10시경 외국에서 약 6, 7개국에서 온 일행 100여명과 함께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13주년 기념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모님 동산으로 갔는데 페루에서 오셨다는 대주교님 한분과 다섯 분의 외국인 신부님께서 함께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신록을 울타리로 하고 바위를 제대로 꾸민 조촐한 미사였지만 박해시대의 초대교회를 상징하는듯해서 가슴이 뭉클하였고 성령께서 더욱더 강하게 역사하시고 계심에 틀림이 없는 이곳의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 하나에도 주님의 자비가 스며들고 있는 듯 했는데 미사내내 풍기는 강한 장미 향기는 나주 성모님의 현존 그 자체였습니다.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신 13주년 기념 철야 기도회는 8시부터 시작되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지 700여명이 들어간다는 경당 안에는 물샐틈도 없을 정도로 순례자들이 꽉 들어찼고 경당 밖에까지에도 천막을 치고 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어림잡아 1500 명은 될 듯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내려오셨다는 한국 수녀님 3분은 특히 돋보였습니다.

주님의 찬미로 시작된 기도회는 점점 성령의 열기로 뜨거워지면서 차츰 통회의 통곡소리와 치유받는 환호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남편은 페루에서 오신 대주교님과 또 다른 외국인 신부님들을 위해서 열심히 통역했는데 다섯 분의 신부님께서 강론을 끝내신 시각이 새벽 3시였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감기 때문에 그렇게 기침을 심하게 했던 남편이 밤새껏 통역을 하면서도 단 한 번의 기침도 하지를 않았습니다.

성령쇄신 묵상회 때처럼 순간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야만 치유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저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에 '치유가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단 한 시간도 마루 바닥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던 제가 밤새껏 견딜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야기도로 잠도 자지 못한 채 곧바로 동생들과 함께 5시간 거리의 경주까지 갔는데도 역시 큰 피로를 느끼지 못한 채 기쁘게 여행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은 채 무사히 순례를 마치고 10월 23일 편안한 마음으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올 때와는 달리 별다른 고통 없이 캐나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크신 능력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이었기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목이 메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님께 약속드린대로 크신 주님 영광 드러내기위하여 저는 피곤을 무릅쓰고 나주 성모님에 관한 기록이 담겨져 있는 여러 비데오 테잎들에서 중요한 장면들 만을 골라내서 하나의 테잎에 담는일에 착수하였는데 몸이 썩 좋지 않았던 저로서는 이 작업들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간장에 아픔이 오고 때로는 피곤했지만 단 한사람일지라도 나주 성모님을 증거 할 수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전했는데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도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해야 할 소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치유를 받은 10사람 중에서 나머지 9사람 속에 내가 끼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주님 곁에 간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치 젖먹이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의 자애로운 품속에 안겨 있듯이 지금 저는 저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늘 안고 계신다는 체험과 확신을 갖고 있기에 순간순간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성모님을 뵙고 온지 1년 반이 지난 요즘 저의 병세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체중도 제법 늘었을뿐만 아니라 더욱더 감사한 일은 매번 피검사 결과도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 홀로 흠숭 받으시고 인자하신 성모님 사랑 찬미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2001년 2월
허 소피아
1036 Lovingston Crescent, Mississauga, Ontario  L4W 3S8, Canada

 

물 한모금 먹지 못하던 손녀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다.

인천에서 순례 온 김봉재 프란치스카 입니다.

지난달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뒤에 4살짜리 손녀가 갑자기 심하게 아프기에 병원에 가 보았더니 장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열도 너무나 많았고 심하게 아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입원도 못시킨 채 차일피일 하다보니 아이가 축 늘어져서 맹물도 못 먹는 상태까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침 이번에 저희 온 집안 식구가 함께 나주 성모님께 다녀오면서 얻어온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한 성수가 4병 있었기에 맹물도 못 먹는 아이에게 먹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수마저도 떨어져서 그냥 성모님 물을 병에 담아서 아이 머리맡에다 두었더니 축 늘어진 채 손 한번도 까닥 못하던 아이가 "할머니 성모님 물을 휴지에 적셔서 머리와 배에 발라주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뜻대로 해주고는 내일은 당장 입원부터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 할머니 성모님 물을 진작 머리 맡에 두고 배에다가도 적셔주었으면 진작에 열이 내렸을 거예요." 하기에 "그래, 네 말이 맞다 진작 그럴 것을 쯧쯧쯧, 잘됐다, 잘됐어" 했습니다.

그리고 토하고 설사하는 아이에게 기적수를 적셔서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하고 밑을 닦아주었더니 아이가 온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 아빠가 며느리에게 "여보, 나 밖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우리 아이가 심하게 아파서 주사도 맞혀보고 약을 먹여보아도 소용이 없었는데 성모님 물만 먹고는 완전히 치유되었어, 분명히 성모님 물로 치유된 것이 확실해." 하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모두들 나보고 "너 좀 돈 거 아니야?" 하기에 "아니 내가 돈 것이 아니라 성모님 물로 치유된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야" 라고 말해주었다더군요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약을 먹여도 차도가 없던 아이가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기에 너무 감사한 마음에 이 은총을 모두에게 나누기 위하여 증언합니다.     


2001년 2월 4일
김봉재 프란치스카
인천시 항동 7가 27번지

 

 

 

장미 향기 대신에 병원 냄새만 맡았는데
그것이 바로 치유의 은총이었음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대전 대덕에서 순례온 박옥자 마리아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된 동기는 평소에 주위분으로부터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많은 말을 들어 왔기에 꼭 한 번 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성모님 물 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 채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가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성모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무엇보다도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의 상본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피 눈물이 목 언저리에 고여 있는 성모님 사진을 보면서 심한 갑상선으로 임신을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시집 간 딸이 떠올랐고 마치 목언저리에 고여 있는 피눈물이 피고름 같이 느껴지면서 갑상선으로 고생하고 있는 딸 생각에 저는 제자신의 아픈 곳도 잊은 채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픈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딸 생각이 간절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가 너무 성스러워 함부로 다루지 못한 채 일주일을 기다려 남편, 사위, 딸, 그리고 손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주 성모님 물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같이 열심히 기도를 한 뒤 우선 7. 8년 동안 발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나서 어떤 약으로 치료해도 치유되지 않아서 이중으로 고생하고 있는 딸에게 "이제 병원 치료는 끊고 성모님 물에 한 번 발을 담가보자." 하면서 대야에 성모님 물을 붓고 발을 딱 한 번 담갔는데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정성스럽게 성모님 물을 마신지 두달 뒤에는 병원에서 의사가 임신도 가능 할 정도로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임신을 해도 좋다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맨 처음 제가 경당에 들어섰을 때 '왜 남들은 다 맡는다는 장미 향기는 못 맡고  대신에 썩은 냄새와 병원 냄새가 심하게 났나?' 했는데 이제서야 저는 그것이 다름 아닌 치유를 위한 성모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딸이 성모님 물이 젖색깔로 변화되었다면서 전화가 왔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아이고!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성모님 물을 병에 담아 왔는데 물 색깔이 정말로 희게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2001년 2월 4일
박옥자 마리아
대전 대덕구 법동 삼익 소월 아파트 101동 1301호

 

 

성체조배실 문을 열어주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었어라.

대구시 대명동에서 순례 온 배낙준 가브리엘입니다.

저는 이미 14-5년전부터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알고 있었지만 실재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된 것은 1년 전부터였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주 성모님 집을 다니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박해하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1년전부터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나주 성모님 집을 찾게 되었는데 놀라운 체험과 함께 은총으로 성모님의 현존을 느끼는 체험까지 하였기에 그 중 몇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년 성모 성월인 5월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을 때 성모님 동산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사진으로 찍어서 늘 지니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10월 늦가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른 새벽인 1시 30분에 갑자기 성채조배를 하고 싶은 강한 열망에 가장 가까운 성당인 대구 대명동 성당을 찾았으나 성체조배실 문이 굳게 닫혀져 있었기에 성모님 상 앞에서 성모님 동산에서 찍은 나주 성모님 사진을 꺼내들고 "성모님 저는 지금 당장 예수님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면서 약40여분 동안 간절히 기도하다가 "성모님 이제는 집으로 돌아 가야겠어요." 하면서 막 일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성모님 상 뒤에서 수녀님 한분이 나오시더니 제 앞을 싹 스쳐 지나가기에 저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말한마디도 못한채 수녀님을 따라갔는데 수녀님께서 아무 말도 없이 성체조배실 문을 열어주고는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 저는 어떨결에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성체조배실로 들어왔는데 마침 기도하고 계시던 자매님 두분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들어 왔느냐?" 고 하여 "수녀님께서 열어주었어요." 하였더니 "어? 수녀님께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오실 리가 없는데....." 하고 말하기에 "그 수녀님은 아주 예쁜 수녀님이에요" 하고 생김새를 말해 주었더니 "아닌데 우리 성당에는 나이 많은 수녀님만 계시는데"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자매님들이 "어머! 장미 향기가 난다" 하면서 신기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일주일 후 저는 성체조배실 문을 열어주신 수녀님을 확인하기 위해 성당에 갔더니 그 자매님들이 말한대로 그 성당에는 나이 많으신 수녀님들 밖에는 계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회색 옷을 입은 예쁘게 생긴 수녀님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때 성체 조배실 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작년 5월에 찍은 나주 성모님 상 사진을 1000장을 인화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6월에 순례를 갔더니 마침 성모님 동산에 율리아 자매님이 순례를 와 계시기에 얼른 사진을 드리면서 "기도 좀 해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드렸더니 율리아 자매님이 사진을 보시면서 "아! 성모님 너무 예쁘시다." 하시더군요.

그 이후에 사람들에게 성모님 사진을 나누어 줄 때마다 장미 향기가 풍겼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위암에 걸려서 고생을 하시던 저희 아버님도 위암이 치유되었습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2001년 2월 4일
배낙준 가브리엘
대구시 대명 1동 780-3 동산정보 1308호

 

 

일본 순례자 吉田 昌古 씨의 치유 증언 

 

이번의 순례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저에게는 아주 뜻깊은 순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도 역시 뜻깊은 순례가 되었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본에 돌아온 다음날인 1월 3일에는 아침부터 신부님과 함께 병자를 방문했고 4일에는 나이 많으신 분을 친강에 데려다 주기도 하느라고 약속의 증언이 늦어졌습니다.  

그럼 제 생애 최고의 기쁨을 가지고 나에게 「성모 마리아께서 해 주신 일」의 증언을 시작하겠습니다.  

데오그라지아스! 아베 마리아! 2000년 6월 초 낮잠에서 깨어나 막 일어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왼쪽 허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심하게 아파 양손, 오른발, 엉덩이로 겨우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다행이 오른쪽 발이 움직여 차를 운전하여 건강을 위하여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는 정형의인 선생댁을 찾아가 크리닉을 받았습니다. 주 2회씩 돌봐 주셨지만 병상은 점점 더 나빠져 7월에는 오른쪽 허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도 아프게되어 6m 밖에 안되는 화장실에 가는 것은 어려운 상태가 되버렸습니다. 8월 7일에 입원, 의사의 진단으로는 요추의 뼈와 뼈 사이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있어 이 염증을 안전히 없애려면 년내 퇴원은 무리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이라고 할만큼 빠르게 9월 21일에 퇴원하여 보호대를 써가며 환경에 적응해 가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는 늘 아파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렸지만 그 이후에는 항상 건강하여 꾀병한번 부려 보지 못한 저였습니다. 10월 21일 친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나주에 가서 성모님 산에서 돌을 주어왔는데 내일 미사때 누군가에게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보통때라면 큰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왔을 것이지만 요즘은 건강이 좋지않아 무리해서 다녀왔기 때문에 무거운 물을 가지고 올 수는 없어 자잘한 돌을 주어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공지문 발표 후에 나주에 간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일본 교회가 까다로웠고 저도 또한 남의 눈에 띄는 일을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았기에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주 순례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나주 성모님의 향기를 늘 그리워하고 있던 저는 나주에서 가져온 향내나는 돌을 받았습니다. 서둘러 “마리아님 용서하십시오. 부탁입니다.” 하면서 허리의 아픈 곳에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따뜻한 느낌이 돌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그렇게도 아프던 허리의 통증이 조금은 나아진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치 계시와도 같이 (이것으로 낫겠구나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주에도 갈 수 있겠구나) 하고 느껴졌습니다. 비록 아픈 몸이었지만 나주 성모님 집 주소만 가지고 혼자라도 갈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간병해 주시는 분들에게 말했더니 같이들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나주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 또 다른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물을 가져 왔는데 첫토요일에 가져가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첫토요일이 11월 4일이었습니다. 돌과 물! ‘아! 그렇게 그리던 나주 성모님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되다니’ 하고 생각만 하여도 내 맘은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화가 온지 3일 후 10월 25일, 시청에서 특별 우편이 왔기에 열어 봤더니 입원비 할부금 통지였습니다.  

너무도 놀라고 기뻐서 “하느님은 놀라워!”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6월부터 일을 하지 못했기에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거기다가 돈이 많이 드는 입원생활 1개월 반, 그리고 또 그 뒤에 지속된 요양생활 그야말로 가난뱅이의 대명사와도 같은 화가인 내가 이런 일들을 어려움 속에서도 모두 지탱해 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별다른 일없이 주위 분들의 따뜻한 배려에 힘입어 싱글벙글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나주에 갈 수 있는 돈까지 마련되었다니! 이렇게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갖추어 지고 있는데 이제는 무엇이 두려워서 나주를 가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나주에 가기만 하면 저의 육신의 모든 병이 반듯이 낫는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志村(시무라) 신부님과 함께 두번째 성모님 산에 갔을 때 보여 주셨던 태양의 기적의 날인 새해 1월 1일을 순례의 날로 정했습니다.  

11월 4일, 오른 발은 어떻게든지 움직일 수가 있었기에 차로 5분 걸리는 곳에서 열리는 첫토요일 기도회에 갔습니다. 차에 타고 내리는 것을 지팡이에 의지하여야 했고 또 지팡이를 의지한 채 겨우 걸어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의자를 붙들고 겨우 몸을 지탱한 채 거의 같은 자세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같은 자세로 앉아있기가 고통스러워서 몸을 조금 움직였더니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견딜수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안쪽에 데려가 눕혀 달랠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양성체 때 고개를 들어 성체를 바라보는 순간 언제부턴가 양손을 모운 채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아! 내가 지금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있다니!”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미사에 참석한 분들에게 나주 성모님 물이 담긴 물병을 선물로 나누어주었는데 사람들은 받아서 마셨지만 나는 한 컵의 물을 그대로 머리에서부터 끼얹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이 머리에서부터 목을 적시며 내려갈 때 온몸의 통증이 사라지면서 무엇인가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현관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지팡이가 없이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기쁨과 놀라운 나머지 “봐라!, 봐라!” 하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마침 신부님과 네, 다섯 분이 현관쪽에 서 있었는데 모두들 “저봐라, 놀랍다” 저를 가리키면서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다시한번 현관까지 걸어와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저함 없이 “예” 하고 대답하면서 사뿐사뿐 걸으면서 혹시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착각마져 들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날인 주일날 다시 허리 통증으로 미사에 가는 것 마져도 포기해야만 했는데 다음날 월요일부터는 정말로 몸이 깃털처럼 가쁜하고 거뜬해졌고 돌봐주러 오신 분들과 문병온 분들이 “어! 그런 일까지도 혼자하게 됐어요.” 할 정도로 놀랄만큼 점점 더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진통약을 먹는 것조차도 잊을 만큼 약이 거의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12월 첫토요일 기도 모임에도 아주 좋은 상태로 참가할 수 있었고 11일에는 주문 받았던 그림의 손길까지도 모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12월 31일 나리따 공항을 출발하여 이곳 나주 성모님의 집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입원 당시 의사는 「년내 퇴원은 무리」라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꿈만 같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뒤부터는 마치 거짓말같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모두들 놀라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주님과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쁨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계획하신 모든 일속에 성모 성심의 인도하심으로 저를 꼭 끼워주시길 비오며 , 아멘. 

 

 

千葉縣 市川市 東官野 1-30-10 

吉田 昌古 樣 

tel 047-334-6319     

 

 

윤봉섭 바오로 형제님의 증언

군산시 나운동 아리랑 아파트에 사는 손주일(30대 중반)씨의 아들 손원국 군(7세. 남)이 96년 3월 29일 새벽 4시경에 갑자기 코피를 쏟기에 머리를 눕혀서 찬 물수건으로 1시간 이상 마사지를 하면서 지혈을 시켜 보았지만 피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군산 의료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응급실에는 관계 전문의 마져 없어서 할 수 없이 다시 개인 소아과로 옮겼습니다.(8시 30분) 

그러나 코피는 계속해서 심하게 흘렀고 핏 덩어리까지 쏟아져 아주 위험한 상태로까지 진행되었습니다.(이때까지 출혈 4시간 경과) 

소아과 전문의(전종율)는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소견서와 함께 원광대 병원으로 신속히 옮길 것을 권유하기에 다시 원광대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오전 10시 10분 원광대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다행히도 지혈은 되었고 소아과 병동으로 옮겨 다시 진찰해 본 결과 더욱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담당과장의 의견대로 혈액 검사를 해본 결과 혈소판 3,000개 백혈구 7,000개(정상인 혈소판30,000-150,000 백혈구 20,000-40,000)로 아주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혈을 시키면서 혈소판 증가약을 투입했지만 8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 가기에 다시 골수검사를 해본 결과 병명은 재생 불량성 빈혈로 판명(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으며 백혈병과 같은 불치병이라고 함)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3개월 뒤에는 사망한다고 하였으며 유일한 방법은 골수 이식수술을 받는 길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입원한 일주일후에야 저는(증언자) 이웃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10일동안 세차례 정도 건네주면서 성모님께서 꼭 낫게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 기적수를 전해 주었습니다. 

약 10여일후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본 결과 놀랍게도 혈소판과 백혈구가 정상적으로 증가 되었다는 말을 아이의 부모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는데 담당 의사도 기적임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퇴원하여 (5월 2일) 한달에 2-3회 정도 검사만하면서 경과를 확인중이라고 합니다.  

 

증언자 : 전북 군산시 나운 본당 윤봉섭(바오로)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새 가정을!

안녕하세요. 평택 본당에서 순례 온 글라라입니다.

저는 저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어제 저녁에 정말로 이혼할 뻔, 아니 이혼을 당할뻔 했는데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잘 해결이 되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순례를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성격이 괴팍하냐면 남편하고 부부 싸움을 한 날은 그날 새벽 3시까지 집안에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망치로 두들겨 깨부셔야만 화가 풀립니다.
그러니 남편이 저의 이런 성격 때문에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부부싸움을 할 때면 언제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습관적으로 참 많이 하는데 예를 들어서 "나 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 "나 너하고 안 살아"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막 욕을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남편은 저의 이런 성격을 잘 알기에 일단 싸움을 피할양으로 밖으로 나가 버려요. 어제도 정말 심하게 싸우면서 "난 너하고 살기도 싫고 꼴도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하고 욕을 해댔더니 남편도 이제는 더 이상 저하고는 살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는데 다른 날과는 달리 조금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나, 정말로 저이가 홧김에라도 이혼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덜컥 겁이나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왔기에 "정말로 나하고 안 살려고 작정했어?"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도 탁아소에 임시로 맡겨 놓기로 했으니 이제는 너도 살길 찾아서 너 갈데로 가." 하면서 전화를 딱 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이구, 그냥 습관적으로 한 소리들인데 정말로 큰일 났구나, 어쩌지? 하며 걱정을 하고 있다가 저를 신앙적으로 인도해주시는 자매님에게 전화를 해서 "자매님! 남편이 정말로 이혼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어떡하면 좋아요. 네?" 하고 상의 했더니 "지금 빨리 촛불 키고 기도 하세요. 그리고 남편이 들어오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요" 라고 하기에 "자매님도 저를 위해서 기도 해주세요." 하면서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한시간 후에 도착할테니 아이들 옷보따리 싸가지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고 이놈의 성질 머리,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면서 마음만 너무 조급해져서 "아이고 라파엘 대천사님 , 미카엘 대천사님 천사님들이 계시다는데 지금 저를 도와주세요. 큰일 났어요 남편이 지금 이혼할려고 하니 도와주세요." 하면서 한시간 내내 다른 기도는 생각도 나지를 않아서 무조건 천사님들만 부르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있는데 얘기 아빠가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강한 성격 때문에 잘 못했다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도저히 나오지를 않았고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사과도 하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대뜸 "애들은 정말 데리고 갈 거냐?" 고 했더니 데리고 간다고 하기에 "그럼 데리고 가" 하고 맘에도 없는 말이 불쑥 튀어 나왔습니다. 한시간 내내 기도하면서 '남편이 들어오면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구 남편이 먼저 빌어주면 내가 잘못했다고 할텐데...' 하면서 남편이 먼저 화해를 청하기만 기다리면서 잘못했다는 말이 도저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신경전 끝에 이윽고 남편이 주섬주섬 옷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기에 이제는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에 앞 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빌었습니다.  정말로 부들부들 떨면서 무릎 끓고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다시는 안그럴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달라" 고 하면서 용서를 청하여 겨우 가정 파탄을 막을 수 있었기에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나주에도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나주에 처음 올때만해도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단지 호기심으로 오게 되었는데 한 6, 7개월간은 나주에 오려고만 하면 이상하게도 집안에 힘든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아이를 잃어버려서 30분이나 혹은 3시간까지 찾아다니는 소동이 일어나곤 하여 많은 방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에 다닌 지 얼마 안되어서 사실 율리아 자매님이 어떤 분인지 잘모르는 상태에서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집채만큼 커다란 악마가 율리아 자매님이라는 분을 한손에 올려 놓고 "만약에 네가 기도를 멈추면 고통을 그만 주겠다." 하면서 으름짱을 놓고 있는데 율리아 자매님은 의자에 앉혀진 채 두팔을 고문 당하듯 뒤로 묶여 있었는데 기력이 다 빠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율리아 자매님은 기도를 멈출 수 없다고 하면서 "주여! 이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한 번 기도할 때마다 마치 도깨비 방방이 같이 생긴 몽둥이로 얼굴에 고통이 가해졌습니다. 그럴때마다 율리아 자매님의 눈과 얼굴에 피 멍이 들면서 눈에서는 피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보기만해도 너무나 끔찍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율리아 자매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주의 봉사자들도 마귀의 집채만한 발 밑에 깔려서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꿈을 꾼 이후부터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자매님 그리고 봉사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나주에도 열심히 다니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신앙 생활도 더욱더 열심히 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제가 나주에 다니면서 받은 신앙 체험들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상순 글라라
경기도 평택시 세교동 185-15
 

 

작은 정성과 희생일지라도 백배로 갚아준다.

안녕하세요.  말주변도 없지만 자꾸 마음에서부터 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나주에 순례를 다닌지 만 1년이 됐는데 1년 동안 정말로 열심히 나주에 다니면서 성화 액자 공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봉급을 타올 때마다 11조를 꼭 나주 성모님께 드렸습니다. 그렇게 11조를 바친 뒤 1년 정도 됐는데 지난 2월에 일하던 아들이 사고로 손가락 세 개가 거의 잘라질 정도로 다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로 많이 속상했고 한편으로는 나름데로 원망의 생각도 들었지만  아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나주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렇게 봉헌하면서 기도하던 중에 '백배로 갚아 준다' 하는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오늘 말씀 봉사하시는 분도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작은 정성과 희생일지라도 백배로 갚아주신다." 고 말하여 너무 놀랐습니다. 정말 그 말씀데로 나주 성모님께 1년동안 드린 작은 물질을 통해서 자칫 불구가 될 수도 있었던 아들의 손이 완전하게 회복되었고 전에 사용하던 기술을 하나도 잃지 않도록 보존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작은 정성으로 인하여 손가락이 잘라져서 장애자가 될뻔한 아들의 불행을 막아주셨을뿐만 아니라 이것이 바로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에게도 자신 있게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뿌린대로 거두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백배로 갚아주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2001년 3월 4일
고정애 요셉피나           
경기도 성남시 태평 1동 5806번지

 

 

너무 너무 놀라운 기적이 저에게도

찬미 예수님! 저는 인천에서 순례온 김옥련 효임 골롬바입니다.
사실 여기에 설 만한 자격은 없지만 용기를 내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96년 10월에 나주를 처음 오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채 단지 나주에만 오면 은총을 많이 받는다고 말하기에 무조건 쫓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종의 호기심으로 나주를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를 못했으나 주일만 겨우 지키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자였던 제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때부터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묵주의 기도 5단도 하기도 힘들었었는데 서서히 5단이 10단 되고 10단이 15단으로 늘면서 점차 기도에 맛을 들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던 저는 꽃동네도 알게되어 다니게 되었지만 아무 느낌이 없었기에 나주 성모님께 막 떼를 쓰면서 작정 기도를 하던중 하느님께서 정말로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과 성령의 강한 체험도 하게 되어 다시 나주를 오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나주를 열심히 다니면서 그당시 특별한 체험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다음에 뭔가 또 주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다녔는데 너무나도 큰 체험을 하게되었습니다.
공지문이 나오기 전 율리아 자매님이 함께 기도하실 수 있었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율리아 자매님을 서로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던 때였는데  율리아 자매님이 어떤분인지도 잘모르던 저도 율리아 자매님을 보고는 싶었지만 그날 낙태보속 고통으로 경당에 못나오신다고 하기에 경당 중간쯤에 앉아서 남들이 일러준데로 열심히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경당에 나오신다고 하기에 저는 그 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윽고 율리아 자매님이 인도하시는 자비의 기도 시간이 되자 저는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이 떠오르면서 '내가 만일 성모님의 발등에 떨어지는 피눈물을 한 방울만이라도 닦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에 너무너무 놀라운 영적인 기적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어떤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성모님께서 천국 문에 서 계시면서 손을 내 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처들었는데 3명의 아기 천사가 날개짓을 하면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입고 계신 옷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아름다웠는데 연두색도 아니고 하늘색도 아니고 중간 옥색인데 하옇튼 제가 이 세상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색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엄청난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번 낙태를 한적이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회개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되었기에 그때 얼마나 눈물로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천사들에게도 앞으로는 잘살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참으로 저에게 베풀어주신 회개의 은총을 감사를 드리면서 진작 증언했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제서야 하게되었습니다.
혹시 오늘 나주에 처음오신 분들이 계시면 나주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항구한 믿음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성모님께서 많은 은총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락방 기도 모임을 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주에 올수 있도록 불러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2001년 3월 4일
김 옥련(효임 골롬바)
인천시 계양구 작전2동 420번지 미도아파트 2동 105호       

 

 

인천 신수산나 자매님의 증언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온 신수산나입니다.

저는 남편의 술 주사와 도박때문에 지난 12년을 동안 말할 수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늘 술을 과하게 마셨는데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어김없이 술이 다 깰때까지 주사를 부리면서 집안 식구들을 괴롭혔습니다.

남편의 술주사가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한 번은 출산일이 가까워 오던 때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날도 과음 상태에서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술 주사 끝에 만삭이 되어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가지고 있던 저를 심하게 구타한적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남편의 도박과 과음으로 인한 구타로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살아오던 저는 '차라리 이렇게 살바에야 죽는 것이 낫지' 하면서 죽을 생각도 여러번 했는데 제가 영세교리를 받을 때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 앞에서 가정성소를 이루겠다고 맹세하고 맺어진 부부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기에 그 말씀 하나 때문에 죽고 싶을 때 에는 '죽을 힘이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 보자' 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던 제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작년부터 나주를 다니면서부터 저의 삶에는 한가닥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성모님 물을 떠 가지고 가서 남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주었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힘들게 떠다가 남 줄량이면 뭐하러 떠와?" 하면서 물을 다 쏟아 버리기에 같이 순례를 다니던 수산나 자매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 남편한테 성모님 물이 꼭 필요한 것 같으니 다른 사람 주지 말아요."라고 하여 그 자매님이 시킨데로 성모님 물을 떠다가 그냥 집에다 두었더니 아 글쎄 한말들이 물 한통을 남편 혼자서만 다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라운 변화가 남편에게 일어났습니다.

제가 떠다준 성모님 물을 늘 혼자서만 마시면서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도박하러 나가서 월요일 날 아침에야 들어오고는 하던 남편이 작년 8월 어느날인가부터 갑자기 도박을 딱 끊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변화는 도박만 끊은 것이 아니라 술을 과하게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술이 깰때까지 구타는 물론이고 별의 별짓을 다 하면서 저를 괴롭히다가 어느 정도 술이 깨거나 지치면 그제서야 잠을 자던 남편이 하루가 점점 다르게 술주사의 강도가 약해지더니 지금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들어와도 얌전히 잠이들 정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대우 자동차에 다디던 남편이 불경기로 인하여 지금은 비록 실직 상태에 있지만 은총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제가 나주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 조금 열심하지 못한 동료를 볼라치면 "여보! 그사람도 나주에 좀 데리고 가지" 하고 말할 정도로 변회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며 또한 나주 성모님 물로 인한 은총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제 주위에도 남편의 술로 도박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정이 참 많았는데 그런 가정에 나주 성모님 물을 가져다 주기만 하면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영광받으소서.

 

2001년 3월 4일
신여화 수산나
인천시 연수구 동춘 1동 대림 아파트 301동 406호.
Tel.032-813-4626

 

 

공덕동에 김 세레나 자매님의 증언

저는 공덕동에 김 세레나입니다.

지금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친정 어머니로 인하여 제가 변화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저는 10여년 전에 율리아 자매님이 받으시는 보속고통 테잎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울면서 많은 회개를 하였고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회개의 은총을 받고도 나주 성모님께 오지 못한채 차일 피일하다가 결국은 지금까지 나주 성모님을 잊고 살아오다가 얼마전에 저의 친정 어머니가 가져다 준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보고서야 비로서 '옛날에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 테잎을 보면서 그렇게 울며 통회하던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지금까지 나주 성모님을 잊고 살아왔구나' 하는 죄책감과 함께 회개의 은총을 그냥 흘려버린채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왔던 저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는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관리하지 못하면 곧바로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나주 성모님의 메세지를 열심히 읽으면서 나주 성모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순례를다니고 있는데 특히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율리아 자매님으로부터 배운 생활의 기도화를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그만 스넥 코너를 운영하기 때문에 라면을 끓일 때가 많습니다.

그전에는 무심코 라면을 끓여서 손님에게 내 놓았지만 지금은 "주님 라면발 숫자만큼 굶주린 영혼들을 채워주시고 저는 육적인 음식을 만들지만 주님께서는 영적인 음식을 만들어 주시어 회개의 은총을 얻게 하여 주소서. 아멘." 하고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면서 끓여주니 손님들마다 비록 라면이지만 "아주 맛있다." 고 하기에 '그럼, 기도가 들어간 특별한 음식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몸을 씻을 때나 설것이 할 때나 늘 영혼을 닦아주시라고 하면서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했고 미운 사람도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면서 사랑으로 대해주니 미운 마음도 사라짐은 물론이고 상대방도 변화가 되었습니다.

생활의 기도화를 알고 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마웠고 전에 같으면 친정 어머니와 마찰이 있을때마다 이해하기 보다는 '왜 저러시나' 하면서 고통 스러워 했는데 지금은 "엄마는 나한테 너무 보화야. 정말로 엄마가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보화야, 그리고 너무 감사해요." 라고 하면서 매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 할 때 더 많은 은총으로 함께 하심을 절실히 깨닫게 하여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3월 4일
김점숙 세레나
서울시 마포구 공덕 1동 109번지 9통 3반. 전화. 707-1995

 

 

피빛 향유를 보여주신 나주 성모님

안녕하세요.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방문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2001년 2월 28일에 사진 촬영을 위한 단순한 목적으로 나주 성모님 집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으며 3월 12일에도 같은 목적으로 또 한 차례 나주 성모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날 사진 촬영을 하면서 너무나도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기에 실제로 제가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증언하고자 합니다.

먼저 증언의 신빙성을 위하여 저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33년간을 공직에서 근무하다가 99년말에 퇴직하였으며 아직 영세는 받지는 못했지만 2년전부터 예비자로써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나주 성모님 집에 오기 위한 준비 된 시간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소 꽃 사진을 좋아하여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야생화를 전문으로 찍고 있습니다.

2월 28일에도 단순히 사진 촬영을 위한 목적으로 나주 성모님 집에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날 이태리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으나 저는 조용하게 성모님상을 촬영하고 경당 뒤에 진열되어 있는 자료들을 찍고 있었는데 한편에서 캄보디아에서 보트 피플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는 자매 두 분이 순례 와서 그런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기에 그분들을 배경으로 한 컷트를 찍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한 현상이 발견 되었습니다.

성모님 상 양손에 빛이 똑같이 비추고 있었는데 제가 오랫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습득한 경험으로 각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편이었기에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 상 손바닥의 방향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보면서 '이런  빛의 현상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이다.' 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 상 손바닥의 방향 각도가 분명히 달랐기에 만일 그것이 일반 빛이 였더라면 빛의 크기 역시 달라야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빛의 크기가 동일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현상은 집에서 그날 촬영한 필름들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그때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 빛이 (성모님의 양손에서 비추던 같은 크기의 빛) 작은 성체의 모습과 흡사한 형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2001년 3월 12일날 나주 성모님 집에 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 사진을 찍기 전에 혹시 그날 성모님상 앞에 유리 문에 의한 빛의 반사에 의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봉사하시는 자매님에게 "제가 먼저 찍은 사진이  혹시 잘 못 된 것인지도 모르니 이번에는 보다 정확한 촬영을 위하여 유리문을 좀 열어 줄 수 없겠습니까?" 하면서 부탁을 드렸더니 그 봉사자분께서 "지금 율리아 자매님이 집에 계시지 않으니 전화로 문의해서 알려주겠다" 고 하더군요. 잠시후 봉사자 분이 율리아 자매님에게 전화로 허락을 얻었다고 하면서 성모님 상 앞에 설치된 유리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지고 온 조명 장비를 양쪽에 설치한 뒤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성모님 상 콧날 왼쪽에서 반짝 반짝한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 스포트 라이트 방향이 잘못됐었나?' 하는 생각에 다시 스포트 라이트 방향을 수정한 뒤에 카메라를 드려다 보는 순간 성모님께서는 이마에서 부터 향유를 흘리고 계셨습니다. 짙게 풍기는 향기에 미루어 짐작컨데 '혹시 말로만 듣던 그 향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저의 눈가에서는 어느샌가 눈물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예비 신자이기에 기도 드리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우선 성호경을 긋고 조용히 내려 와서 안내하시는 분에게 확인해 주십사 했더니 그 분이 오히려 더 놀라면서 성모님께서 지금 향유를 흘리고 계신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계속해서 향유를 흘리고 계셨고 코 밑에서도 마치 코피를 흘리듯 붉은 방울까지 맺혀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날 흘리신 향유는 바로 피 빛 향유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모님의 이마에서부터 향유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습들을 여러 컷트를 찍었고 그날 찍은 사진들을 현상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보기 위하여 사진첩을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이것을 보시면 성모님 상에서 향유가 흘러내리는 순간 순간들의 모습을 확인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아무런 주저함 없이 곧 영세를 받으려고 하오니 여러분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2001년 5월,  이 광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137동 506호
전화. 473-1616

 

 

피부병에는 성모님 물이 제일이지요.

서울 양재동에서 순례온 김 마리아입니다.

저의 장부가 다리에 마른 버짐과 부스러기가 심하게 생겼다며 약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장부의 다리를 보았더니 정말로 피부병으로 각질이 벗겨지고 얼룩덜룩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부병에는 성모님 물이 제일인데 무슨 약이야?"하면서 장부의 다리에 성모님 물을 한두번 발라주고는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달 정도 있다가 생각이 났기에 "여보! 당신 다리에 난 피부병 어떻게 되었어?" 하고 물어보면서 남편의 다리를 보았더니 피부가 정말로 반질 반질 할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모든 영광 나주 성모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작년 6월 30일과 7월 1일에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철야 기도회에 참석을 했었는데 6월 30일은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기념일이기에 외국에서도 많은 순례자들이 왔습니다. 외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성모님 동산에서 묵주의 기도를 드릴 때에는 정말로 천국에 와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침 말레이시아 수 신부님과 율리아 자매님도 계셨는데 순례자들은 신부님께는 성모님 물을 축성하여 주시기를 청하였고 또 율리아 자매님에게도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때 성모님 물에서 어떻게 장미 향기가 진동을 하는지 저는 ' 이 물을 가지고 가서 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에게 먹이면 병이 꼭 낫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해 주신 성모님 물을 어떻게 하든지 가지고 가려고 하였지만 물통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핏트병 하나도 가지고 오지를 않았기에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마침 옆에 한 자매님이 조그마한 핏트병을 들고 있기에 "자매님, 그 병을 나에게 좀 줄 수 없겠수?" 하고 부탁했더니 그 자매는 아주 기쁘게 선뜻 내어주어서 율리아 자매님께서 기도해 주신 물을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 안은 채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저의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암 수술을 받았는데 7년만에 다시 재발하여 99년도에 또 한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받은지 4개월만에 또다시 암이 재발했으며 항암 치료만해도 무려 16차례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아들의 암은 재발할 때마다 악성으로 발전되어 치료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치료를 한다고해도 낫는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의 병이 의사도 장담 못하는 병이라면 나주 성모님께서는 반드시 치유시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꼭 그 물을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기도받은 성모님 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병 뚜껑을 여는 순간 장미 향기가 진동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때가 안되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성모님의 청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이 물로 아들의 병이 치유되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물을 아들이 약 먹을때에만 한 모금씩 따라서 " 나주 성모님, 저는 이 물로 아들이 치유되리라 확실히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면서 먹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 병원에 가서 시티 검사를 해 보았더니 "항암 치료를 한다고 하여도 재발하는데 오히려 너무 좋아졌고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의사도 신기해 하면서도 혹시 재발할 지 모르니 당분간은 계속해서 치료를 하자고 하더군요.

저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아들의 병이 완치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늘 "살아도 주님의 것이요,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하고 율리아 자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의탁하고 지금은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데 아들의 병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으며 꼭 완치되리라 확신합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2001년 4월 8일
김복자 마리아
서울 강남구 도곡동 950 광익연립 C동 101호   Tel. 3462-2724
 

 

속도 위반 환자

안녕하세요 대전 대흥동 성당에서 순례온 김 미카엘라 입니다.

제가 14살(중학교 1학년)되던 해에 저의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하여 저는 그때부터 편두통, 환청, 불면증, 불안, 초조 등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기 시작하여 결국은 정신과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한 뒤에도 5개월을 채 견디지 못하고 또 다시 입원을 해야했는데 이렇게 입원과 퇴원을 무려 9년 동안 19번이나 반복하는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늘 약에 취해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살만 있는데로 찌고 또 독한 약을 사용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겨서 거의 실명위기까지 와서 돋수 높은 안경을 쓰지 않고는 부모님 조차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약을 먹지 않으면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 흰 자위만 보일 정도로 악화 되었기에 정말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충남대 병원에 20번째 입원을 하게 되었으나 주위 분들의 도움이 없으면 손발이 떨려서 밥도 먹지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당에서 나온 자매님들이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기 위해서 방문하였는데 그때 그분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보였기에 저도 성당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4개월 보름만에 병원을 퇴원하여 그 당시 기도해 주시던 자매님(지금의 대모님)의 인도로 성당에 다니기 위하여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갔는데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리를 받을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이끌어주셨기에 미카엘라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세를 받은 후 대모님의 인도로 2001년 1월 1일 처음으로 나주에 오게 되었는데 성모님 동산에서 진한 장미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을 열심히 마시면서 "제 눈을 뜨게 해주세요. 병든 영혼 고쳐 주세요." 하면서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다니면서 성모님 물을 열심히 마시기 시작한 뒤부터는 약도 거의 끊게 되었으며 그동안 저를 괴롭히던 편두통, 환청, 불면증, 불안, 초조 등의 증세도 사라졌기에 5개월을 못넘기고 입원을 해야했던 저는 병원을 퇴원한지 약 2년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정신과 병원에는 단 한 번도 입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입원한 충남대 병원을 끝으로 완전히 저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가끔 경과를 알아보기 위하여 충남대 병원에 들르면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전에 김지혜씨가 아니고 정말로 새사람이 됐어" 하면서 "새로 개발된 약을 먹은 환자가 500명 정도 되지만 김지혜씨 같이 치유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어, 그러니 김지혜씨가 이 약을 먹고 치유된 경과를 환자들에게 이야기좀 해줘요." 라고 하기에 저는 "선생님, 저는 약으로 치유된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된 거예요. 만약에 성모님 물로 치유된 체험을 이야기 하라면 모를까 약으로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이 또하나 있는데 저는 원래 선천적으로 이가 썩어 들어가는 아주 특이한 체질로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앞니 다섯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이를 모두 빼내야만 했기에 틀니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틀니가 어긋나서 병원에를 갔더니 아주 특이한 병이라고 하면서 잇몸뼈가 모두 녹아버려서 잇몸 이식 수술을 해야만 하는데 입 천장을 반이나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난 뒤에도 2번까지 재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15일 동안 오직 죽만 먹어야 하며 절대로 뜨거운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기에 의사의 말대로 죽만을 먹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가 고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먹고 싶은 충동에 "이렇게 하다가 굶어 죽느니 차라리 먹다가나 죽자." 하고 배가 부를 때까지 밥이며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배는 불러서 좋았지만 입안이 아프고 실밥도 다 떨어졌기에 덜컥 겁이난 저는 의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꿰메놓은 곳이 다 터졌나보네 재 수술 해야 될 것 같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라고 말하여 부랴부랴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저의 입안을 들여다 보시더니 "입 천장을 반이나 도려 냈는데 거의 아물었네" 하면서 깜작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2, 3개월이나 지나야만 수술한 곳이 아무는데 저는 6일 만에 아물었기 때문에 의사는 "나는 김지혜씨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고 하면서 신기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만 보면 "속도 위반 환자 오셨습니까?" 하면서 놀리기까지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정말로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혼했던 저의 부모님들도 다시 합치기로 결정하셨으며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술도 끊고 성당에도 다니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명위기에까지 이르렀을 만큼 좋지 않았던 저의 눈은 성모님 손(성모님 상)의 손금까지 보일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나주 성모님 진짜, 진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지혜 미카엘라
충북 옥천군 근북면 대정리 754-5번지  Tel. 731-0916

 

 

병원에서도 포기했던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서 새 생명을

 찬미 예수님 저는 허수복 미카엘입니다.

이곳 나주에 오기 전까지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정말로 죽음만을 기다리면서 절망적인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나주에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건강이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에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또 제가 받은 은총을 오늘 순례 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제가 제일 먼저 증언하게 해 달라고 봉사자 분에게 부탁까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저는 20여년 당뇨로 인하여 오른쪽 간을 반이나 잘라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유증으로 2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고 몇 달전에는 인천 인하대 병원에서 신부전증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되었으며 콩팥이 말라 들어가는데 현재로서는 치료할 약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 지다보니 집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기가 일쑤였고 아내에게 자꾸 짜증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순 노부모를 두고 자식이 먼저 죽을 일과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세 자식을 두고 죽을 일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죽더라도 부모보다 한발 늦게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에게 어떤 자매님이 나주에 가서 기도하라고 권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마지막으로 나주에 가서 기도나 한 번 해보고 죽자' 하는 심정으로 나주를 찾게 되었는데 제가 나주에 오는날 저의 집안 식구 6명이 저를 나주에 데려다 주고는 모두 돌아갔습니다.  하숙집을 얻어서 생활하면서 매일 매일 엎드려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성모님 한 번만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주님과 성모님을 위한 봉사도 하겠고 저보다 더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고 울면서 나주 성모님께 애원을 했습니다.

어느날 밥을 먹어도 토하고 거동조차 힘들어서 거의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있던 저에게 호주에서 유학 중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온 김정연 도밍고 형제가 "성모님 동산에 걸어서 한 번 가봅시다." 고 하기에 '2년동안 방에만 누워 있던 사람이 어떻게 성모님 동산까지 걸어서 갈 수 있겠느냐" 고 하면서 저는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용기를 내어서 성모님 동산까지 걸어서 순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저는 8시간이 걸려서 성모님 동산에 도착했지만 3일간 계속해서 걸어서 성모님 동산까지 순례를 했습니다.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도 드리고 성모님 물도 마시면서 순례를 했는데 마침 성모님 동산에서 봉사자들이 꽃나무를 심기에 걷기도 힘든 저였지만 잔 심부름이라도 하면서 도와드렸는데 맨 처음에는 그나마도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성모님 동산에 가서 봉사를 하다보니 점점 잃었던 밥맛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일을 하고 난 뒤에 성모님 동산에서 먹는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 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이 어느샌가 회복되었는지 모르게 좋아져서 2년간을 누워서만 지내던 사람이 걷고, 뛰고, 일을 해도 지칠줄을 모를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3월 12일 성모님께서 피빛 향유를 흘리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은총까지 받았습니다. 부모 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저에게 이렇듯 건강을 다시 회복 시켜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새 삶을 허락해주신 나주 성모님을 위해서 앞으로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멘.


2001년 4월 8일
허수복 미카엘
경기도 시흥시 정왕 1동 무진 아파트 104동 202호

 

 

"미친소리 그만해" 하던 남편이 변화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공주에서 순례 온 말가리다 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녔었는데 본당 신부님께서 나주에 가는 것을 반대 하시는 바람에 나주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나주 성모님을 거의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전에 루르드에 순례를 다녀오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루르드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루르드에 가기 위해서는 몇 백 만원의 경비가 필요했기에 '돈이 모이면 꼭 가야지' 하고 루르드 성모님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남편과 함께 진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진도를 가는 길에 그렇게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나주 성모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나 좀 잠깐 내려줘요. 이곳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 있어요." 라고 했더니 저의 남편은 "미친 소리 그만해" 라고 거절하기에 어쨌거나 잠깐만 내려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나주 성모님 집을 잠깐이나마 들릴 수 있게 되었는데 장부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기에 저만 혼자 경당에 잠깐 들렸다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루르드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뿐만 아니라 파티마 성모님도 루르드 성모님도 모두 이곳 나주에 계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와 함께 기도 모임을 하고 있던 분들도 저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주에 가자고 하여 차를 대절해서 나주에 오게 되었는데 안내하시는 분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아름답게 꾸며진 성모님 동산에서는 짙은 장미향기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목욕도 하게 되었는데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모님께서 이렇듯 은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형제 자매들이 신부님들의 반대 때문에 순례를 오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주위 사람들과 본당 수녀님들에게도 나주 성모님의 향기를 맡으면서 성모님의 물로 목욕을 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더니 뜻밖에도 수녀님들께서 "4월 5일에 우리들도 나주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안내 좀 해주실 수 있어요." 라고 하기에 당연히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고는 저의 장부에게 "수녀님들 모시고 나주에 가려고 하는데 당신이 차로 안내 좀 해주세요." 하고 부탁을 했더니 "아이구! 우리 마누라한테 잘하지도 못하는데 그 정도야 해 줘야지" 라고 하며 선뜻 응해 주어서 장부의 안내로 수녀님들과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수녀님, 그리고 기도회원 다섯분과 함께 나주 성모님 동산에 들렸다가 경당으로 가기 위하여 저의 차를 타는데 수녀님들이 차안에서 장미 향기가 진동한다고 하면서 "어휴, 말가리다 차안에다가 성령을 쏟아 부으셨나 봐." 하면서 너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도 짙은 장미 향기가 계속적으로 났을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간 뒤에도 한 열흘간은 그렇게 계속해서 짙은 장미 향기가 풍겼습니다.

그날도 남편은 경당에 들어오지를 않았기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지만 나주 성모님께 장부를 봉헌하는 편지를 써서 봉헌하고 왔습니다.
순례를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축업을 하던 장부가 공사 현장에서 머리를 크게 다쳐서 거의 죽다시피 했는데 한 일주일 정도 머리만 아프다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뜻밖에도 장부가 "우리 아내가 좋아하는 나주에 좀 다녀올까?" 하며 나주를 다녀 온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주를 갔다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부하고 둘이서 나주 성모님께 다시 오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장부는 쑥스러운지 미적미적하면서 경당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만큼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수녀님들과 함께 성모님 동산에 왔을 때도 올라오지 않고 밑에서 있겠다고 하기에 우리끼리만 목욕을 하면서도 가만히 눈치를 살펴 보았더니 장부가 성모님 물을 떠가지고 성모님 상 앞에서 뭐라고 중얼 중얼 하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는 장부 스스로 나주에 오겠다고 하여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전에는 장부에게 "당신도 이제 정신 좀 차리고 성당에 나갑시다." 하고 말하면 "이 여편네가 배부르니까 별소리를 다하네" 하고 막무가네 였던 장부가 주님과 성모님의 돌보심으로 암도 조기 발견되어 3개월만에 완전히 치유되었기에 "당신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 하고 말했더니 "왜 당신은 꼭 겉으로 내색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라고 하기에 저는 '아! 이 양반이 속으로는 주님을 의지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되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도회원 12명하고 함께 철야 기도회에 오게 되었으며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성모님 찬미 찬양 받으소서. 아멘.         

 
2001년 5월 6일
오옥자 말가리다
공주시 중학동 246-13

 

 

나주 성모님 물이 소독약으로 또 술로도 변화되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영광에서 순례온 전 마리나 입니다.

올해 1월 달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을 때 어떤 자매님이 "성모님 물이 소독약으로 변화 되었다" 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얼마 전에 그 자매님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냥 무심결에 흘려듣고 곧바로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상하게도 기도하던 중에 자꾸 성모님 물이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기도하면서 눈을 감은 채로 그냥 손만 뻗어서 성모님 물을 가져다가 입에다 넣는 순간 이건 물이 아니라 완전히 소독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왜 헛갈리게 성모님 물병에다 소독약을 담아 놓았냐?" 하며 누군가 그 병에다 소독약을 담아 놓았으려니 하고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 물병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는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월달에 순례를 왔을때도 또 어떤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 물이 소독약으로 변화 되었어요." 하고 이야기하기에 그제서야 '어! 그럼 얼마전에 내가 기도하던 중에 마신 물도 소독약이 아니라 혹시 성모님 물이 소독약으로 변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철야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서 전에 소독약인줄로만 알고 한쪽에 밀어 놓았던 그 물병을 가져다가 코에다 들이대고 '킁킁' 거리면서 맡아 보았더니 어머나! 이게 웬일 입니까? 소독약은 간데없고 이번에는 완전히 술로 변화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계속 순례를 다니면서도 '이제까지 기적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주님께서 나에게 기적을 보여주셨구나' 하고 생각되니 기쁘기도 하였지만 '나 같이 부족한 죄인에게도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하며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똑같은 기적을 몇번이나 저에게 보여주셨지만 알아보지 못했기에 예수님께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술로 변화된 성모님 물을 먹고 치유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늘 나약하기만 해서 마음먹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저도 나주 성모님께 "성모님 생활의 기도화가 되도록 변화시켜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더니 생활의 기도화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으며 생활의 기도화를 통해서 저 자신이 변화되었고 따라서 마음에 먹은 일들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그런 은총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주님, 성모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전귀님 마리나
전남 영광군 홍능읍 상하리 한전아파트 1동 205호     
2001년 5월 6일

 

 

그렇게도 밉던 남편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졌어요.

안녕하세요. 광주에 살고 있는 정 이사로라 입니다.

장부와의 갈등으로 아주 괴로운 상태에 있던 저는 1999년 3월 20일 목요일 날 어느 자매님의 안내로 처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순례를 올 당시 저는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아둥바둥하면서 고생하는 저의 심정을 조금도 몰라주는 남편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아주 많이 미워했고 급기야는 '살고 싶지 않다.' 는 마음까지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인도한 자매님을 따라서 나주 성모님 집에 도착하여 경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가를 불러도 눈물이 나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나는데 그냥 눈물만 나는 것이 아니라 이혼하고 싶은 정도로 그렇게 미웠던 남편에게 오히려 제가 상처를 준 일들이 아주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 뒤 철야 기도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저는 철야 기도회까지 마치고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대문을 열어주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너무 사랑한다" 고 하면서 장부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장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장부와 함께 철야기도회를 다니게까지  되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으로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한 자매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하기에 저와 장부는 주일날 성모님 물을 떠다가 그분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월요일 날 성모님 물을 떠가지고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입원한 대학 병원을 찾아 갔더니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성모님 물을 들고 왔지만 중환자실에 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물은 놔둔채 맨몸으로 중환자실을 잠깐 들어가 보게 되었는데 그분에게 의사만 서너 분이나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아주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분은 근육염과 설암을 앓고 있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병원에서 엑스 레이를 찍어보니 폐까지 합병증이 와서 의사들의 말로는 24시간 이내에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나주 성모님 물을 먹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성모님 물을 그냥 가져갈 수도 없어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마침 자매님의 장부가 나오시기에 "용기를 잃지 마시고 이 나주 성모님 물을 지금 마시게 할 수는 없더라도 자매님 몸에 발라드리고 뿌려주면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에 나와 있는 성모님 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자매님의 아픈 부위에 대 주세요." 하고 부탁하면서 제가 걸고 있던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걸어드리고 돌아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분이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불안해서 잠이 잘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혹시나 해서 성당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보니 연도 나온 것이 없다고 하기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드리고는 매 주일마다 나주 성모님 물을 떠다 드렸는데 24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던 그 자매님은 제가 갈 때마다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일주일 후에 갔을 때는 일반 병실로 옮겼고 그 다음 주일에는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고 그 다음주일에는 아예 퇴원을 해서 지금은 집에서 계십니다.

또 한 번은 저의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쳤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엄마는 수술 중이었습니다. 5-6시간이 걸려서야 수술이 끝난 뒤에도 엄마를 볼 수도 없었고 3일 동안  세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아야만 했는데 시간상으로 보면 무려 이틀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장례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그나마 살아난다고 하여도 단 며칠간을 식물인간 상태로 살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동생 세 명과 함께 하늘이 무너지는 이 엄청난 충격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 채 통곡으로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는 자매님들에게 기도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더니 "야! 이 바보야 울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 성모님 물은 가지고 갔어? " 하기에 "맞어, 성모님 물"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어떻게 성모님 물을 중환자실에 가지고 들어가지" 하고 걱정했더니 성수병에 담아 가지고 들어가는 방법을 일러주어서 그날부터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마다 성모님 물을 뿌리고 엄마의 아픈 부위에 발라드렸습니다.

뇌 수술로 얼굴을 알아볼 수조차도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는 말씀은 못하시지만 마치 '나, 너무 고통스럽다.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이느냐?' 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에 엄마를 바라보기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모든 것을 그만두고 이만 보내드리자' 하는 마음 간절했지만 성모님께 "성모님 도와주세요. 성모님 도와주세요." 하고 울면서 간절히 매달리면서 매일 매일 나주 성모님 물을 뿌리면서 엄마에게 발라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엄마의 병세는 호전이 되어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죽을 것이라고 했고 살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했던 엄마는 말은 못하시지만 점점 우리들의 말을알아 들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엄마가 무의식중에 끄덕이는지도 몰라" 하면 답답해지신 엄마는 가슴을 치시기까지 할 정도로 좋아지셨으며 가제로 겨우 목이나 축여 드리면서 갈증이나 면하게 해드렸는데 나주 성모님 물만 보면 물을 한끼당 두세 그릇씩이나 드셨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 물로 의사조차도 가망이 없다고 했던 엄마는 퇴원해서 통원 치료를 해도 좋을 정도로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마비될 것이라고 했던 한쪽 뇌도 마비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신자도 아니신 저의 엄마는 어떻게 성모님 물에 대한 믿음이 좋으신지 성모님 물을 드시다가도 눈이 아프시면 먹는 물에 손을 담그고는 신자도 아닌 분이 "성모님, 제 눈이 아픈데 낫게 좀 해주세요. 성모님은 다 하실 수 있잖아요." 하시고 기도합니다.

지금은 저희 집에 와 계시는데 오늘은 혹시라도 힘들어 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안 모시고 왔지만 다음 번에는 꼭 모시고 올 생각입니다.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인숙 이사로라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 주공아파트 408동 1301호

 

 

나주 성모님 물 몇 방울로 의식도 회복했을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 상도동에서 순례온 전 엘리사벳 입니다.

몇 년전에 저희 안 사돈 양반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횡성으로 요양을 갔는데 그만 그 곳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원주 기독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병자성사도 보고 모든 식구들을 다 불러 모았지만 저의 딸만은 유달리 미워했기에 보고 싶지 않으니 부르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 악화되어서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옮기게 되었는데 14일 동안 의식을 잃은채 사경을 헤메고 있었지만 저의 딸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기에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병원에 찾아가서 잠깐동안 시어머니에게 기도해 주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몇 방울 먹여 주었더니 시어머니가 아주 편안하게 6시간 동안 잠을 자더랍니다. 그때 바깥 사돈이 "만약에 집사람이 살아나기만 한다면 영세를 받겠다" 고 말하더랍니다. 그런데 14일 동안 의식도 없던 사람이 나주 성모님 물을 몇 방울 먹은 후에 의식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몸도 좋아져서 지금은 외국 여행을 다닐 정도로 아주 건강해 졌고 바깥 사돈도 작년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올 1월 18일날 성당에서 봉사 활동을 마치고 나오면서 노인분들에게 "할머니, 눈이 많이 왔으니 조심하세요. 늙어서 다치면 아주 천덕꾸러기 되니까 조심하세요" 하고 당부했는데 대녀집을 다녀오던 제가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몸이 공중으로 떳다가 나동그라지면서 허리를 어떻게 심하게 다쳤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간던 교우가 저를 발견하고는 택시로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요추 1번에 금이 쫙 갔답니다. 병원에서는 주사를 맞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다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나주에 다녀간 외국 사람도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퉁퉁 부었으나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가 되었다고 했는데 "왜 내가 성모님 물을 나두고 치료를 받냐." 고 하면서 모든 치료를 다 거절한 채 오직 성모님 물만 마시고 바르고 했더니 보시다시피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이번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올 때는 저의 집 양반이 "나주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무리인데 어떻게 철야기도를 할려고 하느냐?" 고 하면서 걱정을 하더군요. "여러분들 어때요? 여러분들 보시기에도 제가 아주 싱싱해 보이지요?" 성모님께서 다 고쳐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2001년 5월 6일
서울시 동작구 상도 2동 414 건영아파트 102동 1714호
전미숙 엘리사벳

 

 

생활의 기도화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의 지름길

 찬미 예수님

저는 경북 경산에서 순례온 박 마리아 입니다.
1994년부터 첫 토요일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녔는데  올 6개월 동안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첫 토요일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지 못하였기에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순례를 못 오게 된 이유는 근래 들어서 성당에서 많은 직책을 맡다보니 도저히 시간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특히 교리 교사까지 맡고 있었기에 토요일에 나주를 오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구 이러다가는 올해 나주를 한 번도 못가겠다' 싶어서 '5월 첫토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야지' 하고 단단히 마음 먹고 있었는데 본당 수녀님께서 "이번 주일에는 예비자 환영식이 있으니 꼭 참석해 달라" 고 하면서 세 번씩이나 부탁하여 겨우겨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수 있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집에 성체가 일곱 번 내려오신 중에 세 번씩이나 목격했으며 특히 1997년 6월 12일 김창렬 주교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성체도 목격했던 저는 이렇듯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생각할 때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많은 기적을 보고 또 많은 은총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 저는 율리아 자매님으로부터 배운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많은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면서 주님과 성모님께서 늘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죄를 짓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들게되었는데 특히 남을 판단하는 일과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우리가 볼 때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사랑과 정성을 가지고 아름답게 생활의 기도를 통하여 봉헌할 때 하느님과의 일치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특별히 임종자를 돌보는 일을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분들을 찾아 갈 때마다 언제나 나주 성모님 물을 꼭 가지고 가는데 그때마다 많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제 친구의 남편이 폐암으로 죽게 되었는데 워낙 고집이 센 사람인지라 대세를 주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거절하기에 나주 성모님 물을 주면서 먹이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강하게 고집을 피우던 그 분이 기적수를 마신 뒤 조금씩 마음이 바뀌었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신부님과 수녀님도 다녀가셨지만 세례를 받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적수를 또 가지고 갔을 때는 그분의 모습이 마치 천사같이 아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대세를 받겠다고 하여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대세를 주고 "형제님의 영혼을 성모님게서 받아주시라고 묵주의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데 그분이 눈물을 주루루 흘리면서 내 손을 잡아 당겨 손바닥에다 "내가 너무" 라고 쓰기에 "아! 너무 했다는 말이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니요,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 드려요. 그리고 형제님 대세를 받아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주었더니 그분은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얼굴도 마치 건강한 사람처럼 붉으스레하게 상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다음날 아주 평화스럽게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분이 안치 되어있는 영안실에 가서 연도를 바치는데 양쪽에 켜 놓았던 초 중에  유달리 한쪽 초만 3/2가량이나 타버렸기에 너무 이상해서 자세히 초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바로 그 옆에서 성모님께서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성모님께서 이 영혼을 무척 사랑하셨구나. 성모님 물을 먹고 죽은 이 영혼의 나쁜 것들을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태워서 없애주고 계심을 증표로 보여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을 임종자에게 전할 때마다 그 들이 평화로운 상태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살아 있을 때 육적인 치유도 중요하지만 죽음을 맞을 때 마음의 평화를 얻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며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임종자들에게 더욱더 중요하기에 여러분들도 곁에 임종자들이 계시면 나주 성모님 물을 꼭 전해 주시기를 부탁하면서 아울러 몇 가지 더 부탁 말씀 드립니다.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시면서 주위 분들에게도 전해주세요.

저도 과거에는 고집 세고 자존심이 강해서 절대로 남에게 먼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도 강했던 저의 자아가 많이 수그러들었고 성격도 많이 부드럽게 변화되었는데 저의 자녀들이나 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주위 분들도 너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면서 좋아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본 많은 기적들과 또 치유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의 사례를 많이 전하고 있고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받은 은총을 혼자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실 때 받은 은총을 잘 관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주 성모님께 순례올 수 있는 지름길도 되기에 다른 분들에게도 꼭 전하여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영광 찬미 받으소서. 아멘.     


2001년 5월 6일
경북 경산시 옥산동 청구타운 102동 807호
박순자 마리아

 

 

투병 중에 나를 도와주신 나주 성모님

1992년 6월 병원에서 담낭 패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맹장 수술과 상처가 유착된 부분들도 제거하는 수술들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술 뒤에도 나는 통증으로 시달리게 되었으며 그 통증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검진을 받아 본 결과 장이 유착되었던 부분을 수술하면서 의사의 부주의로 제거되지 않은 이물질이 발견되었기에 다시 이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또 한차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걷거나 앉는 것조차도 못할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1993년 다시 검진해 본 결과 이번에는 소장과 대장이 서로 유착되었다는 진단이 나왔기에 또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 뒤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약 두 달간이나 지속되면서 갈수록 그 증상이 더욱더 심해기에 병원을 찾았더니 또 다시 장이 유착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그럼 또 다시 수술을 해야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 저는 완전히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가까운 친척으로부터 나주 성모님의 눈물이 묻어있는 아주 작은 천 조각 하나를 우편으로 받게 되었는데 그 봉투를 개봉하는 순간 너무나도 아름다운 향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즉시 저는 그 천조각을 아픈 부위에 대고 "천주의 모친이시여 이 천 조각으로 저를 좀 치유해 주세요." 하고 아주 간곡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아름다운 향기가 저의 온 몸에 펴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아픈 부위의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온 몸과 옷에서도 향기가 나기 시작했고 나의 옷을 만진 아들의 손에서도 향기가 났는데 향기는 며칠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있고난 후인 5월13일부터 상태가 점점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 지금은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저를 치유시켜주신 천상 엄마께 베풀어주신 크신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5월                    
elfi  vogel( 엘피 포젤)        
Chrishiau Heesen Str. 1 51491 Overrath  Tel. 02204-72752          

 

 

나주 성모님의 협력자로!

찬미 예수님!

저는 광주 금호동 본당 김미정 데레사 입니다.
이곳 나주 성모님 집은 3년 전 목요 성시간에 처음으로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아주 짙게 풍기는 백합향기를 맡으면서 너무나도 신비로웠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그날 이후 집에서 묵주의 기도를 드리던 중 잠들어 있던 아이의 옷에서 장미 향기가 아주 짙게 배여 풍겨 나오고 있었으며 천식을 앓던 막내 아이가 치유 되는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목요 성시간을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제가 얼마나 크나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회개의 눈물로써 어머님께(성모님) 용서를 청했고 저의 모든 악습들도 끊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기도와 희생과 보속으로써 봉헌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 자신보다도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저의 모든 행위들을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하려 노력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껌 종이를 줍거나 빨래를 널면서도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기도로 봉헌할 때 장미향기를 풍겨 주셨는데 저는 이모든 것을 작은 일도 소홀히 흘려버리지 않기를 원하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 번은 거실을 닦으면서 교황님과 사제들을 위하여 봉헌했는데 그날밤 꿈에 성모님과 천사들이 함께 거실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기에 우리의 모든 생활을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할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함께 해주실 뿐만 아니라 아주 기뻐하신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첫토요 철야 기도회에 참가하고 있던 중 제 양 옆에 앉아 있던 형제님들의 발에서 발 냄새가 너무나도 심하게 풍기기에 저는 나주 성모님께 '이 고약한 냄새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저의 악습 뿐만아니라 이 형제분들의 악습까지도 끊게 해주시기를 청하며 봉헌 합니다.' 하고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했는데 어머나! 이것이 웬일입니까? 너무나 신비롭게도 그렇게 심한 악취를 풍기던 발 냄새가 그순간 아름다운 꽃 향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올캐가 임신중인 아이를 위하여 고백성사를 드리고 미사를 드린 뒤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열달 동안 기도를 드리면서 봉헌했는데 올캐가 아이를 낳기 하루전날 저희 집안에 장미 향기를 가득히 채워 주시기에 올캐에게 고백성사를 드리고 미사를 드릴 것을 권했더니 저의 말을 순순히 다 받아 들였고 그 다음날 새벽에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올캐는 진통이 시작되자 '이 고통을 죄인들의 회개를 이하여 봉헌합니다.' 하고 기도했더니 그 순간 진통이 많이 줄었다며 그날 이후로 저희 올캐는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일이든지 믿음과 신뢰로써 온전히 의탁하면서 꾸준히 기도할 때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장부가 나주 성모님 집에서 차량 봉사를 하기로 저와 약속한 날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다가 단속 경찰에게 걸리게 되었는데 술 냄새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음주 측정이 나오지를 않게 되자 정밀 검사를 하겠다며 장부를 데리고 갔습니다.

너무나도 걱정이 된 저는 차안에서 나주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때 차안에서 갑자기 장미 향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 하기에 '아, 성모님께서 도와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확신으로 어느 정도 안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시후 장부가 웃으면서 오더니 "술 냄새는 심하게 풍기는데도 음주 측정은 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라." 고 했다면서 "성모님 고맙습니다." 고 외치며 "이제는 기도해야겠어" 라고 하기에 악을 선으로 바꾸어주시는 나주 성모님께서 이런 방법을 통하여 저희 장부를 회개시켜 주신 것이었습니다.

삼년 전 어느 날 수족관에 있던 물고기가 눈까지 튀어나온 채 죽어서 둥둥 떠있기에 물고기가 이미 죽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주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몇방울 떨어 뜨렸습니다. 그후 잠시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다시 수족관을 들여다 보았더니 어머나, 세상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까지 튀어 나온 채 죽어서 둥둥 떠있던 그 물고기가 아주 쌩쌩하게 살아서 여봐란 듯이 수족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로 이런 기적을 체험해 보지 않고서야 어찌 말로다 표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에게 삼종기도와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를 할 때마다 장미 향기를 풍겨 주시어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를 깨닫게 해주셨는데 한 번은 기도 중에 수호천사께서 함께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비 시간에 잠깐 졸은 적이 있었는데 수호천사께서 저의 오른쪽 귀에 은으로 된 두 개의 열쇠를 흔들어서 저를 깨워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호천사께서도 늘 저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기에 지금까지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를 하루도 빼지 않고 드리고 있습니다.

2001년 3월 15일에는 목요 성시간을 준비하기 위하여 모령성체로 주님을 모독하는 모든 자매님들의 회개를 청하면서 고백성사를 드린 뒤 미사를 드렸는데 그때 나주 성모님께서 짙은 장미 향기를 풍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받았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물통에 담는 순간 포도주 향이 진동하기에 깜짝 놀라 성모님 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하얀 물체가 떠있었을 뿐만 아니라 물마저도 뿌연(젖과 같은 색)색으로 변하여 있었기에 저와 올캐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에게 주신 이 은총은 바로 전적으로 율리아 자매님의 희생 고통과 더불어 나주 성모님 집에서 봉사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와 희생과 보속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에게 향기를 통하여 현존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회개하며 기도할 때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고백성사를 드릴 때 고백소 안에서까지 장미 향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언제나 성체를 모시기 전에 '티없이 깨끗하신 어머님께서 저의 마음에 오시어서 예수님을 모셔주세요.' 하고 청하면서 성체를 모신 뒤에는 다시 성모님께 '제가 지금 모신 성체를 어머님께 선물로 바쳐드립니다.'하며 기도할 때 성모님께서는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성체를 어머님께 봉한할 때 너무너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장미 향기를 통하여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박해를 받는 중에도 수녀님께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책과 비디오 테잎을 전하였는데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진실 된 사실들이기에 저를 박해하던 분들의 굳어진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풀렸으며 언젠가는 어떤 수녀님과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짙은 장미 향기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의 보잘 것 없는 노력을 보시고 신부님과 수녀님들께서 미사 전례 중에 간간이 생활의 기도화의 중요성과 고백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변화된 삶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았을 때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단지 그분들을 위하여 삼년 동안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드리면서 봉헌을 했을 뿐인데 성모님께서는 저의 보잘 것 없는 정성을 보시고 이렇게 크나큰 은총으로 이루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매일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어머님의 메시지 말씀따라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악을 물리치는 막강한 힘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젼이나 비디오, 영화, 컴퓨터 게임 등을 가까이 할 때 우리 영혼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시간을 빼앗기에 저희 가족은 이 모든 것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지옥을 향하여 치닫고 있던 이 죄인을 불러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일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죄인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 영광과 흠숭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세세히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2001년 5월
광주광역시 농성 2동 633-33번지,  김미정 데레사
 

 

Judy Navarrete 자매님의 증언

(번역문)

5월 중순에 저는 몇몇 순례자들과 함께 이태리를 다녀왔으며, 이에 대해 보고 드리게 된 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복자 비오 신부님의 성지인 산 죠반니 로톤도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 있는 자비의 성모님 성당 입구에 교회 역사 상 이미 공식 인정을 받은 성체기적들을 소개하는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곳에서 1995년 10월 율리아 자매님이 바티칸에 오셨을 때 일어났던 성체기적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대단히 놀라고 또 기뻤습니다.  교황님께서 율리아 자매의 혀 위에서 살과 피의 모양으로 변한 성체를 보시는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율리아 자매에게 강복을 주시는 사진 등이 있었는데, 안내자가 이태리어로 된 설명서를 번역하여 주었습니다.  (그 설명의 번역문은 아래에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5월 19일에는 이태리 전역에서 나주에 관한 TV 프로가 1시간 반 동안 방영되었습니다.  그 프로에는 교황청 소속의 한 주교님께서 인터뷰에 응하셨는데 주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 교회에서는 이런 일에 관하여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나주의 경우에 있어서는 교황님께서 이미 스스로 증인이 되셨고, 또한 메시지와 고통을 받는 율리아 자매의 단순하고도 겸손한 삶을 볼 때 나주는 이제 인정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주에 현존하심을 믿으며, 또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일어난 여러 기적들의 진실됨을 믿습니다.  저는 "나주는 인정되지 않았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저의 믿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사랑의 선물들에 대하여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에 대하여 저는 슬픔을 느낍니다.  이제 이태리 전역의 많은 이들이 나주의 성체기적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감동되었으리라고 생각하며, 또 더 많은 이들이 성체성사 안에 주님께서 참으로 계심을 믿게 되도록 기도드립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셨고, 승리하실 당신 곁에 굳세게 서 있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이태리에서의 TV 방영은 이미 성모님의 승리가 성취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승리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우리들의 도움과 기도를 필요로 하십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누차에 걸쳐서 메시지 전파의 긴급성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나주에 대하여 알고 있다가 식어버린 이들이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서 주님의 진정한 사도가 되며 사랑의 메시지를 계속 전파할 수 있게 되도록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는 순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가장 먼저 순명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 성하는 지상에 있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대리자이십니다.  우리들 모두, 즉 주교님들, 신부님들, 그리고 평신도들은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교황님께 순명해야 합니다.  교황청에서는 산 죠반니 로톤도에서의 전시와 이태리 전역에서의 TV 방영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더욱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교회의 분열을 야기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성령 강림절을 지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나주에서의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믿기를 거부하고 있는 차겁고 굳어진 모든 마음들에 성령께서 임하여 주시기를 함께 기도드리십시다.

   
쥬디 나바레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2001년 5월 31일

 

 

스리랑카의 주교님께로부터 온 편지

 (다음은 스리랑카의 주교님께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Mary's Touch By Mail 귀하

구세주의 모친께서 한국 나주에서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 영문판이 이곳의 언어인 신할라(Sinhala)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에 의해서 만족스럽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언어인 신할라어로 이 메시지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안에 판권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스리랑카 콜롬보
+마리우스 페이리스 주교
2001년 6월 12일

 


 

 나주 성모님은 의사이십니다.

찬미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국에서 순례온 토마스 와킨스 부부입니다.
저희는 지금 여기에서 일일이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았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년마다 나주 성모님께 정기적으로 순례를 옵니다.

한 번 올 때마다 보통 15일에서 30일간 정도를 이곳 나주에서 머물면서 나주 성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하고 돌아가는데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저희 부부가 미국에서 살면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과 체험을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통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전 저희 시아버님께서는 골수암이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으시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독한 약 성분에 의한 부작용으로 인하여 당뇨 합병증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입원한지 나흘만에 체중이 무려 30kg이나 빠지셨기에 신자가 아니셨던 시아버님께서는 신부님을 청하여 대세를 받으신 뒤 당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이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사실임을 인정하시고는 편안하게 임종을 준비하시면서 계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 장부에게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갔을 때 가져온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하여 만든 성수와 오래 전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갔을 때 얻어온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셨을 때 눈물을 닦은 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수를 잡숫게 해드리고 나주 성모님의 눈물이 묻어 있는 솜을 아버님의 옷에 달아드린 뒤 곧바로 나주 성모님 집에 전화를 해서 봉사자님들에게 저희 아버님의 상태를 설명해 주면서 "기도 좀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는데 그 시간부터 시아버님께서는 병이 회복되기 시작 하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건강도 서서히 좋아지시더니 지금은 저희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를 도와주실 정도로까지 완전히 회복 되셔서 오늘 이 시간도 저희 가게를 봐주고 계시기에 저희 부부가 이렇게 마음놓고 나주 성모님께 함께 순례를 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저희 손님 중에 젊은 형제님이 있었는데 하루밤 사이에 갑자기 몸이 나빠져 밤중에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당뇨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 그 젊은 형제는 눈물만 나오더랍니다. 왜냐하면 당뇨병은 지속적으로 주사를 맞아야하고 약도 계속해서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회복되리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암담해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남편이 가지고 있던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한 성수를 주면서 "나주 성모님께 믿음과 신뢰로써 맡겨드리고 이 성수로 가장 아픈 부위에 바르고 마시기도 하라" 고 하면서 주었더니 남편의 말대로 그렇게 한 뒤 에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 본 결과 혈당 수치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답니다.

또 남편이 아주 어릴적부터 잘 알고 지내오던 분이 있는데 연세는 비록 남편보다는 많지만 한평생 친구처럼 지내오고 계시는 분으로 성당에도 아주 열심히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건강이 아주 나빠졌는데 어느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으셨냐면 코에다 호수 꽂은 채 산소 탱크를 들고 외출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시기에 저희 남편이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준 뒤에 나주에서 가져온 성수를 한병 드렸습니다. 그분은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한 성수를 아주 귀중하게 다루면서 물을 드실때나 커피를 드실때마다 한두방울만 떨어뜨려서 드셨는데 그렇게 병원 문이 닳도록 다니시던 분이 그 이후로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으셔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집 앞마당에 난 풀들을 뽑으실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셨습니다. 모두들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걱정들을 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분이 그렇게 회복된 모습을 보고는 성당에서 저희를 만나는 모든 사람마다 너무너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이미 돌아 가셨어야 했을 분이 이렇듯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그분도 또한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으로 연장된 생명을 누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2년 전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서 이미 증언한바 있지만 그 당시 저희 남편이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실로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생생하게 저희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기에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증언하고자 합니다.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은 가구 중에서도 주로 큰 가구만 취급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2년 전에 아주 커다란 장롱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짝으로 된 장롱을 한짝으로 연결된 장롱으로 착각한 저희 남편은 그것을 운반해 주기 위하여 드는 순간 위 부분의 장롱이 그만 남편의 발등으로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뼈가 세 개나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가보니 그때 저희 남편은 가게 앞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하면서 어쩔줄을 모르는 채 막 뒹굴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데리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더니 발 등의 뼈 세개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부스를 해야 했지만 병원으로 가는 동안에 이미 다친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에 기부스를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기부스를 하기 위해서는 부기가 빠져야 하므로 6일 후에나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우리는 기도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그런 신앙인 이었지만 마침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한 성수가 있었기에 6일 내내 성수를 바르면서 간단하게 성호경과 주모경만 바쳤습니다. 그렇게 6일이 지난 후에 병원에 가서 또 다시 수십장의 엑스레이를 찍게 되었는데 순간 '잘못 들었나' 하고 제 귀를 의심해 볼 정도로 너무나도 미끼지 않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완전히 부서진 다리 뼈가 부러졌던 자국은 남아 있는데 마치 몇 개월의 치료를 거쳐서 원상 복귀된 것처럼 부러진 뼈들이 완전히 붙어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도 놀라면서 "이 정도 중상이면 적어도 6개월 정도는 기브스를 한 채 치료를 해야만 뼈가 도로 제자리에 붙는데 지금 이 상태는 마치 10년 전에 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던 것처럼 부러진 뼈들이 원래대로 붙어 있고 흔적만 남아있으니 기부스를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하면서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희 남편은 스스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총을 직접 체험하게 된 남편은 가게에 손님이 올 때마다 물건에 대한 설명보다도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때부터 저희 부부에게는 물건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 손님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가?  하는 그런 관심보다도 늘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보답하기 위한 일념으로 '어떻게 하면 나주 성모님을 전할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1999년 5월 22일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 왔을 때 성모님 동산에서 체험했던 증언입니다.
그날 저희 두사람 뿐만 아니라 카나다에서 오신 루이 보스만 신부님과 유럽에서 오신 분 이렇게 네 분이 함께 성모님 동산에 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아마 그때 시간이 한 오후 2시쯤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양이 예쁜 황금색 태와 보라색 태로 둘러싸인 성체 모양으로 변하더니 마치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저희들을 향하여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움직이는데 그렇게 신기한 기적을 저희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게되었습니다. 저희에게는 생전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그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에 도취되어 마치 넋 나간 사람들처럼 쳐다만 보고 있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일은 그날 찍은 두장의 사진 중에 한 장은 예수님 옆모습이 굉장히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는데 옆으로 눕혀서 보면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는 모습도 들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필림 번호가 바로 33번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아주 뚜렷하게 십자가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비둘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는데 사진 속의 하늘은 까맣게 나와 있었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런 사진이었습니다.

이 두장의 사진은 성모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확신했기에 사진들을 복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주 성모님에 대한 소식과 함께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신부님들과 수도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중에 그 누구도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때 한국이 미국보다는 인쇄 비용이 저렴하기에 인쇄를 하고자 찾아간 어떤 인쇄소에서 나주 성모님과 사진 속의 기적에 관하여 설명해주면서 인쇄하고 싶다고 했더니 젊은 분이었는데 "저희는 이런 일은 안해봤지만 이 작업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하고 난감해 하면서도 사진을 들고 놓지를 않더니 "이런 작업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저도 천주교인인데 욕심이 나네요" 하면서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고는 그 자리에서 인쇄비만 받고 모든 과정은 공짜로 해주겠다고 하여 생각보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4000장을 만들게 되어 주님과 성모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오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만해도 저희 부부는 세 속의 것들에 매달려서 정신없이 살 때였는데 장사가 잘 될 때에는 시간이 없어서 점심도 못 먹고 또 장사가 잘 안될 때에는 속이 상해서 점심을 안먹고 이렇게 하다보니 결국 저는 심한 위장병이 생겨서 오랜 기간을 위장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뒤에 나주 성모님께서 새벽 2시에 저희 방에 오시어서 저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가셨는데 그 이후로 그렇게 고생하던 위장병이 다 낳았습니다. 이렇게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은총을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체험을 했기에 저희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오직 나주 성모님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일념으로 살게 되었는데 저희로서는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나주 성모님께 자주 다녀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자주 올 수가 없기에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첫 토요일에 철야 기도회가 열리는 날이면 미국 시간으로 계산해서 한국의 나주에서 기도회가 열리는 시간과 같은 시간이 되면 '지금쯤 기도회가 시작됐겠지, 비록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나마 함께 해야지' 하며 이곳 기도회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할량이면 가슴이 막 떨리고 설레이면서 사무칠 정도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얼마나 눈물을 흘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희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정작 한국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은 이곳 나주를 적은 경비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주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저희와는 달리 여러분들은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분들입니까? 정말 한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은총 속에 살고 있는지 깨닭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우리 어머니 외롭게 혼자 계시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만이라도 매일 매일 오셔서 고통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위로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나주 성모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희들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6월 21일
Mrs. Thomas Warkins
4905 W77th Sx. Preirie Village, KS 66208, USA,
Tel. 913-381-8910, Fax. 913-381-8919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여!

먼저 나주 성모님의 고통과 함께 하시면서 티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산고의 고통을 봉헌하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지금 파퓨아뉴기니아에서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 저희는 그렇게도 간절하게 모시기를 원했던 나주 성모님 상을 제가 있는 파퓨아뉴기니아에 신학교에서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던지 나주 성모님 상이 들어 있는 포장을 여는 순간 '오! 머나먼 이곳까지 나주 성모님께서 찾아주셨군요.' 라고 하면서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분의 나주 성모님 상은 저희 신학교 총장 신부님 방에 모셔 드렸는데 총장님께서도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또 한 분의 나주 성모님 상은 이곳 파퓨아뉴기니아 사람인 안젤리카 자매님의 집에 고정적으로 모셔 놓은 뒤 일주일씩 집집마다 모시고 순례를 다니면서 기도를 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안젤리카 자매님 집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가던 날 안젤리카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을 환대하게 모시기 위하여 대문은 물론이고 계단까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였고 모든 식구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렬한 환호 속에 나주 성모님 상을 안젤리카 자매님 집에 모신 그날부터 저희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마리아의 구원 방주회'를 만들고 매일같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에 관한 비디오 테잎도 보고 있는데 비디오 테잎을 본 뒤에는 각자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묵상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야기도도 하고 있는데 안젤리카 자매님의 남편이 개신교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불평하기는커녕 아주 세세하게 배려해주기까지 하였기에 이 모든 것 역시 나주 성모님께서 안배해 주신 일임을 알고 있는 저희 모두는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시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비록 조금씩밖에 마시지는 못하지만 어머님의 젖을 나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주신 나주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 번은 데레사 자매님 집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성모님 상을 모시고 데레사 자매님 집을 들어서는 순간 어찌나 장미 향기가 강하게 풍겼던지 저희 모두는 나주 성모님께서 언제나 저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일주일 동안 자녀들이 문밖 출입도 못할 정도로 엄하게 단속하면서 기도회에 참석시켰는데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그 자매님의 단호한 모습에서 나주 성모님께 향한 사랑이 얼마나 열렬한가를 짐작해 볼 수 있었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비록 한국 나주와는 천리만리 떨어진 먼 곳에 위치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치 못한 살림들이라 나주를 방문할 수는 없지만 나주 성모님께 향한 사랑은 너무나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작 나주 성모님의 발현지인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나주 성모님께서 인준받지 못한채 고통을 겪고 계신 현실이 가슴 아픈 일이었는데 며칠 전 나주를 관할하고 있는 광주교구 최창무 주교님의 서한을 가톨릭 신문에서 접한 저는 너무나도 답답하고 허탈한 나머지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광주교구 주교님의 서한을 본 이후 일시적으로 방향감각을 잃었던 저는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하고 주님과 성모님께 간절하게 청하면서 나주 성모님에 관한 비디오 상영을 하기 위하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비디오를 상영할 때 장미 향기가 얼마나 짙게 풍겼는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가는 곳마다 짙은 장미 향기가 풍기기에 저는 다시금 더욱더 지혜롭게 나주 성모님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저는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성삼위께 봉헌한 몸인데 이런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광주 교구 최 주교님의 서한은 오히려 저에게 순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채찍이 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일주일 중에 5일 저녁을 나주 성모님에 관한 비디오를 상영해 주기 위하여 여러 곳을 다니면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셀바올 수녀회, 갈멜 수녀회, 사랑의 선교회, 등 여러 곳의 수녀원에서 나주 성모님을 환영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한 것은 이곳에 파견된 한국 까리따스 수녀원에서만은 유달리 나주 성모님을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기에 그 답답한 심정이란 이루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현지인들은 나주 성모님을 어찌나 잘 받아 들이는지 6개월마다 본당에서 추천 받은 자매님들이 이곳 간호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나주 성모님의 비디오를 보면서 메시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는데 그들 모두가 모든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원하고 있지만 저의 형편상 그들 모두에게 줄 수가 없기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 번은 마린벌 여자 고등학교에서 율리아 자매님의 십자가 고통 비디오 테잎을 상영하였는데 비디오 상영이 끝날 때까지 모두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들 역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원했지만 줄 수 가 없었습니다. 경찰 대학에서도 약 200여명이 나주 성모님 비디오를 관람할 예정인데 역시 그때에도 그들에게 줄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마련하지 못하였기에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곳 현지인들의 사정이 하루 한끼의 식사밖에 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기에 개인적으로 사서 보라고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니 그 안타까움이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발전기가 없는 마을에서는 나주 성모님에 관한 비디오를 상영하고자 하여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정치적 여건도 아주 좋지 않은 편인데 부족과 부족간의 심화된 갈등으로 서로에게 총을 쏘면서 분쟁을 일삼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 발포하는 사고로 인하여 4명이 죽고 16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이렇듯 내부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에 얼마 전에는 나주 성모님 비디오를 상영하기 위하여 어떤 마을로 향하던 중 경찰의 통제로 인하여 결국 상영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모든 역경들을 나주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나주 성모님을 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듯 현실적인 여건은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많은 신학생들과 수녀회, 그리고 많은 현지인들이 나주 성모님을 너무나도 잘 받아들이고 있기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을 너무나도 잘 받아들이고 있는 이곳 신학생들은 방학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그곳 본당에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복사해간 나주 성모님에 관한 테잎을 상영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교황 대사님이 주선하신 파티에서 솔로몬 대사 부인과 필리핀 대사 부인에게도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와 비디오 테잎을 전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파퓨아뉴기나아어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테잎을 만들 계획이며 전국 본당에서 방문하는 모든 수녀님들과 각 마을의 여성지도자들에게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데 이는 바로 그들 모두에게 좋은 씨앗이 뿌려진다면 나주 성모님의 구원방주 선원들이 되어서 나주 성모님을 보다 체계적으로 전하는 확실한 도구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이곳으로 인도해주시어 이렇듯 작은 도구로 써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을 돕고 있는 전세계 모든 협력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곳에서 나주 성모님을 전하면서 때로는 힘들고 지친 나머지 몸이 아프고 쑤실때로 있지만 아주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일치하여 성삼위의 마음에 드는 자녀들이 될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머님의 효자 효녀들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로 인도 해주시는 나주 성모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저의 영혼이시며 저의 생명이신 성삼위께 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워서 온전히 바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을 따르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속히 나주 성모님의 품안에 모이기를 기도합시다.

 

파퓨아 뉴기니아에서  현상학 프란치스코
2001. 6. 27
Fax. 675-328-1325

 

 

불구의 몸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를 받다니!

 찬미 예수님! 인천에서 순례 온 이 로사 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주님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기에 그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큰 아들이 성당을 한 1년간이나 다니지 않기에 "성당을 나가지 않으면 큰일난다. 바쁘더라도 제발 주일만이라도 지켜라" 고 애원하다시피 사정했더니 아들은 대뜸 "성당에 나가면 누가 밥을 줘요 돈을 줘요. 일을 해야 밥을 먹지" 하더니 끝내 성당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 채 성당을 나가지 않던 아들이 어느 날 일을 하던 현장 2층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이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1년간이나 병원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결국은 고생만한 채 다친 허리는 낫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담당 의사가 "자칫 불구의 몸이 될 수도 있겠어. 그렇지만 수술이나 한 번 받아보자." 고 하기에 의사의 권유에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수술 받기로 한 전날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오셔서 아들에게 영성체를 해주시고 가셨다고 하기에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렇게 해 줄 분이 없는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분은 바로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이상할 정도로 수술 날짜를 자꾸만 미루던 아들이 다짜고짜로 "어머니 나주 좀 같이 갔다 옵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아들이 나주를 가자고 하여 저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들하고 함께 3일만 있다 갈 예정으로 나주를 오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하였고 첫날에는 성모님 물로 머리와 발만 씻다가 나중에는 성모님 물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씻었습니다. 3일 예정으로 왔지만 일주일을 더 머물게 되었는데 순례 온지 6일째 되던 날 "어머나! 세상에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벌벌 기어다니다시피 하던 아들이 부산에서 순례온 자매님과 함께 밥상을 거뜬이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동산에서 목욕을 하고 난 뒤에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부산에서 왔다는 자매님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저기 태양 좀 보세요." 하며 소리를 지르기에 모두들 해를 쳐다보았는데 해가 성체 모양으로 변하면서 성체 모양을 비껴서 해가 나올라고 하면 성체 모양이 곧바로 해를 가렸고 또다시 해가 나오려고 하면서 바라보는 눈이 부실라치면 또 다시 성체 모양이 해를 가리는 그런 기적이었는데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기도를 하는 동안 세 번이나 십자가가 보였으며 그 십자가 안에는 성체가 들어있는 그런 기적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친 허리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던 아들이 수술도 받지 않은채 나주를 찾아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나주 성모님의 물로 아픈 허리가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손주 아이의 엉덩이가 습진으로 물러서 매우 아파하기에 나주 성모님 물로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아메엔 아아아아멘." 하고 노래하면서 발라줬더니 나주 성모님 물인 줄 모르는 아들이 깜작 놀라면서 "의사가 물을 묻히면 더 번져서 안좋다고 했는데..." 하면서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나주 성모님 물이라고 말해주었고 이틀만에 짓무르던 습진도 다 나았습니다.

정말로 저는 제 자신이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주 성모님 물이 이렇게 좋은 약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주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는 마침 우리 집에 레지오 단장들이 기도하러 왔기에 나주에 간다고 했더니 "아휴, 거기가면 안돼, 가톨릭 신문에 났는데 교회에서 반대하기 때문에 거기에 가면 큰일난데" 라고 하면서 저를 만류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속이 바짝바짝 타면서 너무나도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이게 웬 말이에요? 그래,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더니 이제는 성모님까지 그렇게 박해를 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리고 우리 아들은 그렇게 고통받으며 치료를 했어도 낫지 않던 허리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 가서야 치유가 되었는데 세상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박해하듯이 성모님을 그런 식으로 박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다시는 말도 안되는 그런 소리를 내 앞에서 하지도 마세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토록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는데 나는 내 눈으로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의 허리도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는데 어떻게 어머니께 저렇게들 심하게 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1년 이상 병원 생활만 하던 아들의 허리가 완전히 치유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고 싶었는데 지금 현장 소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오지를 못해서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비록 함께 오지는 못했지만 저의 아들은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하여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2001년 6월 3일
이연숙 로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 덕유마을 201동 1304호 전화. 326-8103

 

위암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바꾸어주신 나주 성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나주 본당 신자인 오 빅토리나 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된 10여 전부터 지금까지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말로다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은총을 받아왔습니다.

부족하고 비천한 죄인인 저를 사랑 자체이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내적 외적 치유의 은총과 더불어 수 많은 체험을 통하여 영적인 지름길로 인도해 주셨는데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 향유, 성체강림, 그리고 성체가 심장 모양의 살과 피로 변화되어 움직이기까지 한 실로 엄청난 기적 등, 이렇게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목격한 기적과 징표들 만해도 정말로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도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중 최근에 있었던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으신 저의 시아버님께서 치유의 은총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몇자 적어봅니다.

저의 장부가 종가의 장손이였기에 저는 명절 전날부터 바쁘게 여러가지 준비를 하여 시골에 살고 계시는 시댁에 내려갔더니 시 아버님께서는 약 2주전부터 고열과 몸살로 인하여 병원을 다니고 계시는데도 별차도가 없다고 하시면서 많이 편찮아 하셨습니다.

'심한 감기 몸살이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한 저희는 명절을 지내고 저녁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시아버님께서 너무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부랴부랴 달려가서 시아버님을 모시고 나주 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시키게 되었는데 응급실에 실려 오시는 동안에도 시아버님은 계속해서 오열과 오한이 들고 설사를 하시어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셨습니다.

담당 의사는 시아버님의 증세를 살펴 본 뒤에 여러 가지 검사와 CT촬영을 해보더니 백혈구 수치가 정상인의 1/2 정도로 떨어졌고 쓸개에도 주먹만큼이나 되는 커다란 염증이 아주 심하게 급성으로 번져가고 있으니 지체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너무너무 위험하다며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돌아 가실 수도 있겠다고 하면서 급하게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아버님께서는 수술만은 광주 조대병원에서 받고 싶다고 하시어 마침 가지고 온 나주 성모님 물을 드시게 해드리면서 나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그렇게 높던 고열이 떨어지면서 설사도 멈추고 통증들이 사라졌습니다. 하루밤을 무사히 지내고 그 이튿날 의사들이 빨리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여 곧바로 119 구급차로 시아버님을 모시고 조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담당 의사에게 아버님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더니 나주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기록을 살펴 보면서 재검사를 한 뒤에 역시 수술을 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담당 의사의 권유대로 재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를 본 저희들이나 의사 모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담당 의사는 나주 병원에서 검사된 기록에 의하면 위험한 증세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며 역시 확인을 위한 재검사 후에 수술을 해야겠다고 결정했기에 지금의 상황들을 도저히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장에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던 증상들이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시아버님을 나주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달리 그 어떤 특별한 치료도 받지 않았고 단지 나주 성모님 물만 드시게 한뒤에 아버님의 원대로 조대병원으로 모시고 왔기에 의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희는 여러번의 체험이 있었기에 이 모든 기적이 다름아닌 바로 나주 성모님의 물로 인한 치유의 은총 이었음을 곧바로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시아버님께서는 몇 달 전부터 속이 불편하고 소화가 잘 안되신다고 하시기에 의사에게 말씀드리니 위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하여 일주일간을 입원해 있으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뒤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며칠뒤에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위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병원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면서 수술을 권하였지만 시아버님께서는 이번에도 한사코 수술을 거부하시면서 "당장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에도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가 되었는데 내가 나주 성모님 물을 놔두고 무슨 죽을 연금을 볼라고 수술을 받을 것이냐?" 하시면서 한사코 나주 성모님 물만을 원하셨습니다.

결국 의사의 권고를 물리치신 시아버님은 수술은커녕 일체의 약도 사용하지 않으신 채 오직 나주 성모님 물만을 계속해서 드셨는데 위암으로 진단을 받은신 지 꼭 1달 뒤에 다시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아 본 결과 위암세포는 완전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가 아주 깨끗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아버님께서는 "봐라, 내가 뭐라고 하드냐? 암이 아니라 암 할아버지가 걸렸더라도 나주 성모님 물로 반드시 낫는다고 하지 않드냐? 어째 젊은 것들이 늙은 나만큼도 그렇게 믿음이 강하지 못하냐?" 하시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당신의 나주 성모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로 신심이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단순하고도 어린아이와도 같이 나주 성모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시아버님 앞에서 저희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반성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나주 성모님 물로 여러가지 고질병과 만성 장염, 요실금, 그리고 위암까지 치유를 받으신 시 아버님께서는 지금 모든 음식을 아무런 장애도 없이 전보다 너무나도 맛있게 잘 드실 뿐만 아니라 건강도 완전히 회복되시어 76세나 되신 노인의 몸으로 농사일도 거뜬히 해내시면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데 보다 중요한 사실은 시아버님께서 나주 성모님 물을 드시기 전까지만 해도 급하시고 강한 성격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온갖 폭언으로 구박하고 때로는 폭력까지 휘둘러서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았기에 자녀들인 우리들까지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맬때가 많았는데 시아버님께서 나주 성모님 물을 드신 후부터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육적인 치유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치유까지 받으셔서 지금은 욕설은 물론이고 큰소리 한 번 내지않으실 정도로 온화한 성품으로 변화 되셨기에 저희 시어머님께서는 "내가 너희 시아버지하고 70평생을 살아왔지만 지금 같이 마음이 편안한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 하시면서 너무나도 좋아하십니다. 이제 두 분은 얼마 남지 않는 초로의 여생이나마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보내고 계십니다.

주님 영광과 흠숭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 찬양 받으소서. 아멘.    


전남 나주시 금교동 수강아파트 301호
오 형임 빅토리나

 

 


 나주 성모님께서 살아 움직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미국에서 순례 온 이 로사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신 4주년 기념일에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습니다.
1988년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을 때 눈물 흘리시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바라보는 순간 '성모님의 눈물은 지금까지 죄중에 빠져서 살고 있으면서도 죄인인 줄 모르고 있는 나로 인하여 흘리시는 눈물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저의 지난 삶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통곡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님! 이젠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 앞으로는 어머님께서 주신 메시지 말씀 따라서 정말로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니 우시지 마세요." 하면서 어머니의 눈물을 나의 생활로 닦아드리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회개의 은총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기념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순례를 오고 있는데 올해로 꼭 13년째가 됩니다.          

제가 이렇게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회개의 은총을 얻기 전까지만해도 저의 신앙 생활은 일년에 고작해야 두 번 보는 고해성사마저도 스스로 생각할 때 대죄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대충 대충 보았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모고해와 모령성체로 인하여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모독으로 되 돌려드렸겠습니까?

이런 저를 나주 성모님께서는 불러주시어 회개의 은총과 함께 잠든 저의 영혼을 깨워주시고 새 삶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지금도 어머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만이 앞섭니다.

그리고 낙태를 하고서도 낙태가 죄인줄을 모르고 살었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으로 인하여 비로서 낙태가 얼마나 커다란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기에 고백성사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저 가슴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또 다른 깊은 상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기도를 드리던 중에 아주 강한 유황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그 순간 낙태가 얼마나 커다란 죄인가를 완전히 인식 하게 되었고 "어머님, 용서 해주세요. 제가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 하면서 정말로 진실한 통회의 눈물이 통곡으로 터져 나왔으며, 또 낙태로 인하여 제가 받았던 깊은 상처까지도 그때 치유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40의 늦은 나이에 덜컥 임신을 하게 되어 고민 중에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을 몰랐다면 남처럼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낙태를 했겠지만 그러나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낙태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았기에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기쁘게 세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제가 순례를 왔을 때 나주 성모님께서 정말로 살아서 움직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셨었는데 그때 저는 나주 성모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주 성모님 상 전체가 빛에 휩싸이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시더니 지금 모셔져 계신 집에서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양손을 벌리시더니 양손에서 강한 빛을 저에게 비추어 주셨는데 그 강한 빛이 곧바로 저의 가슴 속 깊이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비추어 주신 그 강렬한 빛이 저의 몸을 뚫고 지나갈 때 마치 전기가 저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조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숨조차도 쉴수 없었기에 '아, 나는 오늘 이렇게 행복하게 죽는구나.' 하면서 정말로 그날 그 자리에서 꼭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같이 저의 마음이 너무나도 평온해지면서 정말로 흘러 넘치는 강물과도 같은 평화가 그 순간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원래 저는 아주 깔끔해서 더러운 것을 못 참는 일종의 결벽증에 걸린 것 같은 그런 성격이었는데 그때 정말로 저의 마음 속에는 기쁨과 평화가 용솟움쳐 오르면서 그 순간 거지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일지라도 안아주고 뽀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께서 비추어 주신 자비의 빛으로 인하여 기쁨과 사랑과 평화가 충만해진 저는 '죄인인 저에게 이토록 사랑을 베풀어 주시니 어머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은 주님과 성모님께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부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하루도 기도를 거르는 일없이 아주 열심히 바치고 있으며 성당에도 잘 나가고 있으니 바로 저희 가정이 천국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주일날 미사를 가던 도중에 치과 의사인 남편의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다는 연락을 경비회사로부터 받게 된 남편이 성당으로 가던 차를 돌려서 사무실로 가려고 하기에 "여보, 오늘 무슨 날이죠?" 라고 했더니 장부가 "오늘? 주일이지" "그럼, 주일날에는 무엇을 먼저 해야지요?" 하고 물었더니 "아, 주일날에는 당연히 성당을 나가야지" 라고 대답하기에 "그러면 우선 하느님께 바치는 의무를 다한 후에 사무실로 가세요. 지금 사무실로 달려 간다고 하더라도 도둑이 이미 떠난 뒤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하면서 장부를 설득하여 미사를 마친뒤에 사무실로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날 벌레가 경보 장치 안으로 들어와서 경보가 울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하여 순간 순간 시험 하실 때 그 마지막 순간을 참지 못하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참으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부에게 "만약에 내 도움이 아니였다면 당신은 하느님의 시험을 통과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이지만 저는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저희 모두는 지금 이 시험의 마지막 단계를 믿음의 무기와 신뢰의 방패를 들고 한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굳건히 나아 가도록 힘써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봉헌해 줄 때 그들도 언젠가는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여서 나주 성모님의 도움으로 회개의 은총과 함께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영원한 행복의 문 안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Mr. Steve Lee & Rosa Lee
2835 Skyview Ln, West Covina, CA 91791 U.S.A.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은총이 많은 곳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사랑안에 함께 모인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순례온 토마스 라고 하는데 지금 통역하고 있는 안젤라(싱가폴 거주 한국인)가 바로 저의 며느리 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의사로부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마지막으로 성모님께 거룩한 곳에서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크신 은총과 전구의 힘으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저는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해마다 순례를 오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습니다.

저는 성모님의 은총으로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 주위에서 "미쳤다."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가산을 정리하여 성지만을 순례하는 여행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순례자들과 함께 다녀보지 않은 성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순례 했지만 특히 이곳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하고는 비교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은총이 많은 곳일 뿐만 아니라 이곳 나주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은총과 함께 현존하고 계시는 곳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란치아노 성당에 순례를 갔을 때 그곳에서 세계 최초로 일어났던 성체 변화의 기적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이 거룩한 장소에서 실제로 율리아 자매님이 란치아노 성당에 순례를 오셔서 미사를 드리시던 도중에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기적이 또 일어 났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님께서도 율리아 자매님이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성체 변화의 기적을 똑똑히 목격하신 산 증인 이시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이곳 나주는 루르드나 파티마, 또는 그외에 수많은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확실하게 주님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현장 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곳에 순례를 가서는 철야로 밤샘 기도를 못하는데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만 오면 철야 기도회를 하면서 밤샘을 해도 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비록 지금은 나주가 핍박을 받으며 광주 교구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전 세계의 많은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나주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징표, 그리고 메시지 말씀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많으면 많을수록 은총은 더욱더 크기에 하느님께서 이 시험을 통과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주실 은총은 감히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클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희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순례단을 모집하여 이곳 나주를 일년에 두 세차례 방문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보다 큰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섭니다.

앞으로는 가족, 친척, 또는 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을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에 살고 계시는 여러분들을 저희들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순례를 오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지금 고통 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함께 위로해 드립시다.

머지않은 장래에 나주 성모님은 반드시 인준 되어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가 이룩 되리라 믿으며, 또한 이곳 나주를 통하여 온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의 빛이 비추어지게 될 것이니 결단코 희망을 잃지 맙시다.

이미 교황님께서도 나주 성모님을 인정하고 계시는데 누가 감히 교황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순례한 수많은 성지 가운데 물론 루르드나 파티마도 거룩한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 한국 나주 성모님이 최고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이 시련의 시기를 기도안에서 잘 봉헌하도록 노력합시다.

         

Mr. Thomas S.T.Lui & Family
(cc: Ivan Lui)
Faith Tours & Travel PTE Ltd
50 East Cost Road Roxy Square
Singapore    

 

 

실망하거나 낙담할 때가 아닙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제가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적절할런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영광스럽고 기쁨이 충만해야 할 이 은총의 기도 모임 시간에 참담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슬픔과 함께하고 계실 성모님께서도 지금 이 광경을 바라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하니 한마디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광주 대교구에서 회람이 나왔다는데 그 내용이 나주 성모님께 대한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내용으로 윤공희 대주교께서 발표한 공지문을 최창무 대주교님께서도 그대로 승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는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여러분 앞에 커다란 성모님 상본이 양쪽으로 걸려있습니다.(경당 제대 위 벽면 양편에 걸려 있는 나주 성모님 눈물, 피눈물 상본)  두 상본 속에 성모님은 같은 나주 성모님의 모습인데 제가 다시 한번 여러분께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우선 보세요. 눈의 촛점을 보십시요. 이쪽 피눈물 흘리신 상본 속에 들어 있는 성모님의 눈은 수평선에서 밑으로 내려와 있는데 저쪽 눈물을 흘리신 상본 속의 성모님 눈은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이곳 나주에 많이 오셨을 뿐만 아니라 눈물도 보시고 피눈물도 보셨겠지만 아마 벽면에 걸려 있는 성모님 상본 속에 아주 특이한 차이점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혹시 소홀하게 흘려버리지는 않으셨을지요? 뿐만 아니라 제가 모든 성모님 상본을 쭉 놓고 본적이 있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든 동일한 성모님상을 찍은 것인데 모든 사진 속의 성모님 모습이 일괄적으로 동일하지 않아요. 다 틀립니다.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일입니까?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신 기적, 성체가 내려오는 기적, 그리고 향유, 성모 동산의 기적수 등 이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써 결론지어 말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사탄에게서 왔다고 단정적으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자 그럼 생각해 봅시다.

맨 처음 발표된 공지문에 초능력에 의한 현상이란 주장이 나왔는데 초능력 그건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여기계신 여러분은 율리아 자매가 초능력을 부리는 그런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아니죠. 예 그렇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아니 율리아 자매님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그분이 초능력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마도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혹시 교구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모든 것이 사탄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분명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들일 것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예를 들어봅시다. 첫째 성체가 율리아 자매님 입에서 살과 피로 변화되었는데 이 기적을 사제가 미사 중에 축성한 성체의 그 외형은 면병 그대로야 한다는 논리로써 부정했습니다.  자 그럼 보세요. 교황님과 함께 드린 미사에서 교황님께서 친히 영해 준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 되는 기적이 일어났었는데 만약에 이것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면 교황님께서 직접 드리신 미사에서 감히 사탄이 관여해서 그것도 성체를 주물렀다는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몸을, 아니 성체를 살과 피로 만들지 못하시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의 영역에 대한 명백한 도전입니다. 정확한 조사도 거치지 않은 채 부정하며 시비를 하니 안타깝기가 그지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딱딱한 플라스틱 성모님 상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듯 진 붉은 피가 나올 수가 있으며 눈물이 나올 수가 있고, 기름이 번져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도 향유 향기를 맡고 계시는데 도대체 언제 흘리신 향유입니까?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교구장이시니까 예의상 말을 아껴서 그렇죠. 막말로 이야기하다면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적으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님을 증명해가면서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막연한 소리로 말도 안되는 초능력을 운운하면서 종래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이게 뭡니까?

지금 우리가 이 은총의 시간들을 이렇게 지새워야 되겠습니까?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저는 속으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성모님, 도대체 어떻게 하실려고 이러십니까? 성모님께서 만약에 능력이 없으시다면 하느님께 애걸복걸 하셔서라도 이런 무지는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좀 막아 주실 수는 없으셨습니까?' 하고 성모님께 애원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교구 당국에서 어떻게 나오실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성모님께 향한 사랑의 마음과 성모님을 따르려는 우리들의 신심 생활, 그리고 특히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면서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기도가 생활화 됩시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생활의 기도화하고는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달라요. 생활의 기도화는 진짜예요.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도 숨 한번 쉬는 것조차도 예수님을 위해서 했듯이 성모님 말씀따라 우리도 사소하고 하찮게 생각되는 것 하나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온전히 봉헌한다면 죄 짓는 것은 고사하고 예수님과 성모님 안에 온전히 용해되어 일치하는 생활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 선행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으며 봉사를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생활로 변화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이자 바로 가톨릭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독교의 근본적인 사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을 주신 나주 성모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탓하다니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주님과 성모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동시다발적으로 주신 곳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겁니다.
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 등도 역시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던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 나주하고는 좀 달라요.  그리고 이곳 나주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입체적이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곳 나주에서는 기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메시지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총은 강물처럼'을 한 번 보세요. 그런 은총을 세상 그 어디에 가서  찾아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가톨릭 역사만 보더라도 특히 후대에 올수록 인간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지시면서 발현하셔서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는 분은 바로 성모님이 아닙니까?

그리고 특히 이곳 나주에서 전해주신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대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전통 신앙을 계승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이야기인지 그저 통탄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실망하거나 낙담할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용기와 신뢰심을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 성모님께서 전해주신 메시지 말씀을 정말로 고이고이 간직하고 실천하면서 나주 성모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성모님의 일꾼으로서 용감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 아마도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고 계실텐데 그 고통을 우리는 상상도 못 할겁니다. 우리모두 고통 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나주 성모님께 지속적으로 찾아와 위로를 드립시다. 그리고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간에 상관없이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시대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은 바로 성모님이심을 확신하기에 이러한 성모님을 모신 우리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2001년 6월 3일 
이현익 마태오
인천시 남동구 간석 3동 224-759 청양빌라 102동 101호
전화. 032-432-4690
  

 

굽어지고 다친 허리를 펴주신 나주 성모님

소사 3동 본당의 박성미 골롬바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나주 성모님께 대한 이러한 슬픈 소식은 저의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합니다. 그러니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성모님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가 받은 은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팔순 노모를 모시고 있는데 한 번은 길에서 넘어지시면서 허리를 심하게 다치신 뒤로 거동도 잘 하지를 못하실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나주를 한 번 다녀 오시자고 말씀 드렸더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몸으로 어떻게 나주를 갔다 올 수 있겠는가?" 하며 나주에 갈 엄두를 못내시기에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렵게 모시고 나주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허리가 너무나도 아프셨기 때문에 철야 기도회를 아주 힘들게 하시고 가셨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어머니의 꿈에 성모님께서 아주 큰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나셔서 어머니의 아픈 허리에 대고 문질러 주시더랍니다.

어머니는 그런 꿈을 꾸시고는 기분에 허리가 다 나으신 것 같더랍니다. 그런 꿈을 꾸신 날 아침, 평소에는 다친 허리 때문에 구부리고 힘들게 세수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주 편안하게 세수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어머니께서는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하신 탓으로 평소에도 허리가 많이 굽으셨는데 다친 뒤로는 허리가 더 많이 굽어지게 되셨으나 아침에 저와 함께 거울 앞에 서 있는데 거울 속에 비친 엄마의 키가 다른 때보다 조금 커 보이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저보다도 제가 나주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장부가 먼저 발견하고는 "아니, 장모님, 허리가 펴졌네요."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80먹은 노인의 허리가 펴진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힘, 성모님의 힘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어떻게 펴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저희 어머니가 저쪽 끝 벽쪽에 앉아 계시는데 이미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정말로 엄청나게 굽으셨던 허리가 지금은 펴지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은총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진작에 증언했어야 했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 증언하지 못했기에 그 동안 늘 성모님께 죄송스러웠는데 오늘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에 저는 결핵을 세 번 앓은 적이 있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결핵이 걸리게 된 이유는 저희 아들이 아주 심한 우울증으로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학교에 가더라도 무섭다면서 심지어는 책상 밑으로 숨는 그런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아들 때문에 신경을 너무나도 많이 쓰다보니 밥을 거의 먹을 수 조차도 없게 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저는 또 다시 결핵이 재발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결핵이 찾아 왔을 때는 늑막 쪽으로 왔는데 늑막 있는 쪽에 결핵균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뼈와 뼈사이의 물집이 마르게 되는데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수술로 결핵이 완치는 되었지만 의사의 말대로 옆구리의 통증이 심할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괴로울 정도로 아팠는데 그렇게 심하게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먹는 것 외에는 의학적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주 성모님 집 철야 기도회에 오는데 그날따라 옆구리의 통증이 너무나도 심했기에 아픈 옆구리에 한쪽 손을 대고 의자에 기댄 채 그런데로 참고 봉헌하면서 오는 도중에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허리를 치유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굽었던 허리도 펴지셨다는 어머님의 증언을 하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는 순간 그렇게도 아프던 허리의 통증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옆구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들도 우울증이 심할 때는 죽고 싶다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부엌 칼이나 큰 칼을 들고 나에게 들이대면서 "엄마랑 나랑 죽자" 하며 고통스러워했고 어쩔 때는 "기도하면 내 병이 낫느냐?" 고 하면서 촛불을 내동댕이치고 십자가를 집어던지고 해서 저희 집 장롱에 구멍이란 구멍은 다 났어요.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고 그 병에 좋다는 것도 다 해 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학교만 가면 두렵고 무섭다고 하니 너무나도 답답한 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애를 위해서 성모님께 절절하게 기도를 했는데 그때 마침 제 코에 한약 냄새가 아주 강하게 진동하기에 '아, 성모님께서 내 아들을 치유 시켜 주시는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때가 3년 전 9월 달이었는데 그 향을 맡고 난 뒤부터 정말로 거짓말 같이 아들의 병이 치유가 되었을 뿐만 아리라 학교에 다니면서 결석은 물론이고 조퇴나 단 한 번의 지각조차도 하지 않고 학교를 잘다녔습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하여 아침마다 너무나도 많은 실랑이를 벌여야 했고 때로는 너무 속상한 나머니 아들의 팔뚝까지 물어 뜯으면서 억지로 학교를 보내고 나면 저는 정말로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고등학교는 고사하고 중학교 3년이나마 제대로만 마쳤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중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도 무사히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대학교에까지 다니고 있는데 친구들도 많을 정도로 아주 활달해 졌으며 집안에 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일들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 아니였던들 어찌 가능한 일일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왜 나주 성모님께서 이런 고통을 받으셔야만 되는지 알 수가 없기에 정말로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성모님께서 왜 피눈물을 흘리시는지를 부족한 우리들도 아는데 더 많이 배우고 아시는 분들이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실 수밖에 없는 그 아픈 마음을 왜 깨닫지 못할까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픔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실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니 이럴 때 일수록 더욱더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성모님께 찾아와서 위로를 드리며 좌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설령 그분들이 이곳 나주 성모님 집을 포크레인으로 밀어 버린다고 할지라도 나주 성모님께 향한 우리들의 사랑과 그 정신이나 생각, 그 마음은 결코 죽이지는 못할겁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나주 성모님께 향한 그 열정만큼은 그분들의 어떠한 방법으로도 능히 없애지 못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주 성모님을 정말 더 열열히 사랑하고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을 더욱더 열심히 전하도록 노력합시다.

 

2001년 6월 3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소사 3동 197-12호  Tel. 016-637-4648
박성미 골롬바

 

 

영혼 육신과 병든 가정을 치유해주신 나주 성모님

저는 경기도 부천에서 순례 온 문 헤드비 제스 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 지 1년이 좀 넘었지만 그 동안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실로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주 성모님께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었어요. '당신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피눈물 흘리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다 보여 주셨고 은총으로 주신 기적수로 수많은 병들을 다 고쳐 주셨는데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박해라니요?' 하면서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서 눈물로 범벅이 된 저의 얼굴 때문에 '혹시라도 남에게 분심을 주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화장실에 가서 씻기도 했지만 나주 성모님을 생각하면 또다시 너무나도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평소에 이런 자리에 익숙치 않기에 쑥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 동안 증언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치유의 은총을 받았는데 그 중에 제가 젊었을 때 신경을 너무 많이 쓰면서 살다 보니 치질이 걸리게 되었는데 아무리 약을 써보아도 치료가 되지를 않았기에 한 10여년을 너무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뒤에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몸이 자꾸 처지면서 설거지도 못할 정도로 늘어지기에 '이상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러나' 하면서 쏟아지는 잠 때문에 한 3, 4일간은 그냥 아무 것도 못하고 잠만 잤습니다.

그렇게 3, 4일이 지나도 마치 여자들이 임신하면 몸이 누그러지면서 그냥 잠만 쏟아지는 것 같은 증상이 들기에 '이상하다! 내가 죽을병에 걸렸나 이거 왜 이러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는데 한 4, 5일 정도를 자고 나니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 왔습니다. 몸이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순간 그렇게 오래도록 고생하던 치질이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뭐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나이가 들면서부터 갑자기 목소리가 괄괄 하게 변했는데 성가를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말소리 마저도 "응응응" 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말하는 것조차도 창피할 정도였기에 '혹시 암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비인후과에 찾아가서 목 검사를 했더니 의사가 웃으면서 "아줌마, 집으로 돌아가세요. 나이가 들면서 성대가 약간 휘어졌을 뿐 목은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하기에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생활하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철야기도를 마치고 돌아 오던 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성가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너무너무 잘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영감보고 "여보 여보, 나 성가 어때?" 하고 물으니 "어, 아주 좋은데" 하기에 이번에 순례 갔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주 성모님께서  목소리까지 좋게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저는 치유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희 남편은 본래 마음은 참 착한데 술만 먹으면 집안 식구들을 밥도 못 먹게 할 정도로 주사를 부리는 좋지 않은 술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고 성모님, 저 양반 마음 좀 변화 시켜주세요. 그래서 저 좀 평화롭게 살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안 들어 주시기에 그냥 입버릇 처럼 '중얼중얼' 하면서 '저 양반 변화 시켜주셔서 나 좀 평화롭게 살게 해 달라고 그렇게 청하는데도 도대체 왜 안 들어 주시는 거야.' 하면서 지냈는데 나주성모님 집 철야 기도회때 어떤 자매님의 남편도 술이 아주 고주망태인데 여기 와서 치유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멘"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남편이 점점 변화 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성격도 또한 변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잘못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고 꼭 따지고 드는 저의 고집이 센 습관 때문에 남편과 자주 싸움을 하는데 싸움이 끝나도 저는 그때 그 일들을 마음 속에 담아 놓고 있다가 조금 화가 풀어지면 또 다시 그 문제를 가지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가만히 있겠어요. "웬 여자가 이렇게 고집이 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 "당신이 뭘 잘했다고 삿대질이야" 하고 대드니 또 싸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 나주 성모님께 다녀온 이후로 언제 싸움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가끔 저의 옛날 버릇이 되살아나서 남편에게 또 다시 따지고 들고 싶다가도 '아차, 성모님! 제가 또 다시 따지고 들면 성모님 마음 아프시지요? 저 지금 화난 이 마음을 희생으로 봉헌할께요' 하면서 생활의 기도화로 봉헌 하니 싸울 일이 없어졌습니다. 간혹가다가 저도 모르게 옛날 버릇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남편을 꾹꾹 찌르면서 "여보! 방금한 말 취소, 내가 잘못 말했어요." 하면 남편도 곧바로 피식하고 웃으면서 화를 안낸 답니다. 어쩔 때는 할 일을 많이 두고도 일부러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보려고 "여보, 나 오늘 나주 가도 돼?" 하면 "응, 가지 왜 못 가" "알았어, 고마워요" 하고 웃으면서 말하고 또 웃으면서 대답하니 싸울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의 오랜 병뿐만 아니라 병든 저의 가정을 치유시켜 주셨는데 도대체 성모님께서 왜 이런 박해를 받으셔야만 되냐구요?

말로 다 표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받은 저는 그저 '어머니, 감사해요. 감사해요.' 하면서 속으로만 감사를 드리면서 살았는데 오늘은 비참할 정도로 고통 받고 계시는 성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증언을 하면서 부탁합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을 진정한 엄마로 여기며 위로를 드립시다.      

 

2001년 6월 3일
문필녀 헤드비제스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7-1호 우남 아파트 1차 나동 109호   032) 674-2120

 

 

이태리 산 죠반니 로톤도 성당에서의 나주 기적 소개

(아래는 이태리 산 죠반니 로톤도에 있는 자비의 성모님 성당 입구에 전시된 교회의 공식 인정을 받은 성체기적들 중에서 1995년 10월 31일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바티칸에서 일어났던 성체기적을 소개하는 글의 번역문입니다.)

교황청에서의 성체 기적 - 로마, 1995년
내용:  성체가 혀 위에서 살과 피로 변하다


주님께서는 이 놀라운 성체 기적을 요한 바오로 2세의 눈 앞에서 보여 주셨다. 아니, 교황님께서 이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주요 참여자 중의 한 분이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95년 10월 31일,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개인용 소성당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미사를 바치셨다. 그 미사에는 초대된 순례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한국에서 온 한국주교단 사무총장인 백 몬시뇰, 신학생 송 라파엘, 윤 율리아와 그녀의 남편, 그녀의 자녀가 있었다.

율리아는 나주에서 신비적 현상을 경험하는 분인데 그 곳의 경당에서 그녀는 동정녀 마리아께로부터 메시지들을 받는다.  이에 대하여 교황님께서 관심을 가져 오셨다.  다른 참석자는 월남 출신이며 교황 성하의 개인 비서인 몬시뇰 투 이였다.  영성체 때에 율리아는 교황님의 손으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셨는데, 성체를 삼킬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성체가 부풀어 올랐으며 피맛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율리아는 몬씨뇰 백에게 입을 벌려 보여 주었으며, 몬씨뇰은 성체가 살아있는 살과 피로 변하였음을 알아차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놀라지는 않았으나, 그 현상을 경이롭게 관찰하였으며, 그리고는 그 신비가를 사랑스럽게 강복하여 주셨다.

이 성체 현상은 그 날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졌으나, 호기심으로 떠들썩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약 2년 간 비밀로 지켜졌다.


    이태리 자비의 성모님 성당의 성화

위의 증언을 보내준 쥬디 나바레떼 자매님에 의하면, 산 죠반니 로톤도에 있는 자비의 성모님 성당 안의 앞쪽 벽에 큰 성화가 그려져 있는데, 아기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젖을 약간 꺼내 보이시며 은총을 의미하는 성모님의 젖을 우리에게 먹여 주시려는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이 성화는 복자 비오 신부님께서 매우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 성화에 담긴 깊고도 아름다운 진리의 가르침 ‹š문일 것입니다.  즉 많은 성인들과 신학자들에 의하면 성모님께서는 모든 은총의 중개자가 되시며, 나주에서도 성모님께서 당신이 은총의 중개자이심을 여러 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율리아 자매님은 지금의 성모님 산에서 성모님께서 자녀들에게 당신의 젖을 콸콸 소리가 날 정도로 먹여 주시는 환시를 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성모님의 샘물을 주셔서 지금도 수많은 신자들이 그 물을 마시면서 성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으며, 또 적지 않은 이들이 병의 치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서 그 물이 실제 모유로 변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태리의 비오 신부님 성지에 있는 자비의 성모님 성당의 그 성화와 나주에서의 일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비오 신부님 역시 오상을 받으셨으며, 오랜 기간의 오해와 박해 끝에 결국 인정 받으시고 또 사후에는 복자위에 올려지셨습니다.  


    특별계시를 경시해도 무방한가?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특별계시(또는 소위 사적계시)는 새로운 진리를 알려주는 계시 즉 공적계시가 아니므로 믿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즉 과달루페, 루르드, 파띠마 등에서의 계시는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시는 목적은 새로운 진리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계시해 놓으신 진리에 우리들이 더 충실할 수 있도록 깨우치고 도와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특별계시에는 특별계시로서의 중요한 의미와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계시가 새로운 진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여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날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자동차로서의 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진리의 계시(啓示)는 예수님과 사도들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서 거듭 개입하시어 (특별)계시를 받는 당사자들의 성화만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정화와 신앙의 활성화를 촉구하십니다.  특히 많은 신자들의 신앙이 식어지고 도덕적인 이완이 심해진 시대, 이단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에 성인들을 통하여 또는 성모님을 직접 보내시어 경고와 깨우침과 위로와 지도와 도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이가 하느님의 특별계시를 무시하기로 작정하였다면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기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그 뜻을 실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누가 보낸 선물이나 메시지를 거절한다면, 그 선물이나 메시지 자체를 거절한다기보다도 이를 보낸 분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예전에 노아를 통한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웃었던 많은 이들이 대홍수에 휩쓸려 갔으며, 반면 요나를 통한 하느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던 니느웨 성의 왕과 백성은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어떤 메시지와 징표들이 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메시지와 징표들이 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들 각자에게는 이를 지극한 존중심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겨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여러 징표들이 이미 교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  1995년 10월 31일 바티칸의 소성당에서 일어났던 성체기적에 대하여 교황님께서는 그 진실성을 받아들이시고 이를 증언하셨습니다. 이에 의거하여 이태리 전역에서 TV 방영도 있었고, 복자 비오 신부님 성지에는 이미 인정된 성체기적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2.  1990년 1월 20일, 원주 교구의 지 학순 다니엘 주교님께서는 나주의 성모님 상에서 피눈물이 흐름을 직접 목격하시고 이를 확실히 믿는다라는 말씀을 방명록에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윤 대주교님을 방문하시어 광주교구의 인정을 촉구하셨습니다.   

3.  1994년 11월 24일, 당시의 교황 대사님이셨던 죠반니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나주의 경당을 방문하시어 짙은 장미 향기를 경험하셨으며, 두 번에 걸친 성체의 기적적인 강림을 목격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과 교황청의 여러 성성 장관님들께 나주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드리셨습니다.

4.  1995년 9월 22일, 캐나다에서 오신 로만 다닐랙 주교님께서는 나주 근교의 산에서 야외 미사 중에 일어난 성체 기적을 목격하시고 이에 대한 증언을 주교로서의 엄숙한 서약 하에 기록으로 남기셨으며, 그 후에도 세계 각국의 집회들에서 이에 대한 증언을 해오고 계십니다.

5.  1996년 9월 17일, 말레이지아 시부 교구의 수 도미니끄 주교님께서는 그 곳 주교좌 성당에서 일어난 성체기적을 목격하시고 한국의 교황대사님께 보내신 서한에서 이를 기적으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을 시부 교구의 교구장 자격으로 하셨습니다.  

6.  1997년 6월 12일, 제주 교구의 김 창렬 바오로 주교님께서는 나주 경당에서의 기적적인 성체 강림을 목격하시고 이를 진실 된 징표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또한 2001년 3월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께서 교황청을 방문하셨을 때 교황님과 라칭어 추기경님께 나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보고를 드리셨고 조속한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7.  1997년 7월 13일, 교황청에서 오신 한 주교님께서도 나주 경당에서 기도드리시던 중 성체가 내려 오심을 목격하셨으며, 곧 그 성체를 영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주교님께서는 로마에 계신 많은 분들께 나주 성모님의 진실성을 증언해 오고 계십니다.

위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현대주의에 물든 신부님들께서는 계속하여 정통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사상을 퍼뜨리며, 교황님께 불순명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주의 일들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막는데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나주의 일들이 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인가 아닌가를 공정하고도 철저한 방법으로 밝히는 일은 그 분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인 듯이 보입니다.  그 분들은 그들의 끈질기고도 부당한 방해로 인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구원의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들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있다는 이 통탄할 현실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이는 성모님과 마귀 사이의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이 전투를 싸우고 계시는 성모님 편에 서서 열심한 기도와 희생으로 성모님을 도와드리도록 불리워져 있습니다.

주님 성모님의 축복을 빕니다.

 
Mary's Touch By Mail
Gresham, Oregon, U. S. A.
2001년 6월 30일

 

 

세계 어디를 가나 함께 해주시는 기적의 나주 성모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저는 인도계 프랑스인으로 본명은 폴(바오로)이라고 하며 여러분들이 보시는 바와는 달리 저는 지금 70을 바라보는 노인입니다. (50대 중반정도 보임)

제가 작년 10월 19일 나주 성모님 피 눈물 흘리신 14주년 기념 철야 기도회 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공산국가에 전파하러 갈 예정이니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만약에 제가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하거든 죽은 것으로 아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순간 순간 어렵고 위험한 적도 많았었지만 매순간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돌보심으로 인하여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여러분을 또 다시 만나 뵐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특히 한국말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러시아어와 포루투칼어를 비롯하여 그밖에 여러나라 말로 번역해서 전하였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이 매우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지만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함께 해주셨고, 또 여러분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제가 가는 곳마다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과 함께 해주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귀중한 시간을 저 혼자서 독차지 할 수는 없기에 그 중에 인도와 베트남에서 나주 성모님을 전할 때 있었던 일들만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했을 때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뿐만 아니라 대 주교님까지도 나주 성모님에 관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셨으며 나주 성모님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인도에서는 인도 북쪽 끝에서부터 인도 전역에 이르기까지 나주 성모님이 전파되고 있는데 제가 가는 곳마다 그곳 신부님들과 수녀님들께서는 나주 성모님 상을 성당과 수녀원에서 모시고 싶다면서 될 수 있는데로 많이 좀 모셔와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번에 제가 갈때에는 될 수 있는데로 나주 성모님 상을 많이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얼마전에 그곳 신부님의 요청으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다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신부님은 나주 성모님 상을 성당에 모시고 계시다가 지난 8월 15일부터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각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순례를 하고 있는데 모든 분들이 다 모시고 싶어하기에 신부님께서는 순서를 정해서 순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엄격하게 정하시고 적용하셔서 모실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순례를 거절하신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느 가정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순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집 가장이 너무나도 술을 많이 마시기에 "당신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만약에 술을 끊으면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다 드리겠다." 라고 하시면서 거절하였더니 그 가장은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를 하기 위하여 지금 술 끊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어떤 어린아이가 가슴이 많이 부어 오르면서 굉장히 아파하기에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고 하면서 서둘러서 수술 할 것을 권하였답니다.

그러나 그곳 병원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 대부분의 현실이 어디가 아프다고 하여 당장에 병원을 찾거나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넉넉하지를 못하기에 아이의 엄마는 아픈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매일 저녁마다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하는 집에 찾아가서 아픈 아이를 나주 성모님 상 앞에 뉘어 놓고 하루 종일 나주 성모님께 매달리면서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저녁무렵이 되자 기도를 하고자 모여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나주 성모님 상 앞에 뉘어 놓았던 아이의 부어 오른 가슴이 금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통증도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의사의 말로는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던 아이가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수술을 받지 않고도 완전히 치유되어 지금은 아주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한 번은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놓은 집에서 약 한시간 가량 떨어진 가정에서 사내 아이와 계집아이를 잃어 버렸다면서 나주 성모님께 찾아와서 아이를 찾아 달라고 울면서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정을 위하여 함께 모여서 기도했는데 아이를 잃어 버린지 이틀만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아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서 아이를 무사히 찾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파티마 성모님, 루르드 성모님, 그 밖에 다른 곳에서 발현하신 성모님 상들을 모시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과 그 체험이 너무나도 풍성하여 그곳 대부분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주교님과 신부님들, 그리고 수녀님 모두가 나주 성모님을 가장 으뜸으로 여기며 모시고 싶어합니다.

다음은 공산 베트남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일고 있는 나주 성모님께 대한 사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년전 제가 그곳의 어느 성당에 나주 성모님 상 한분을 모셔다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성당에서는 성체가 모셔져 계신 감실과 마주 보이는 곳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 놓았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오는 그 순간 부터 나주 성모님을 바라보게 된답니다.

나주 성모님을 모르고 있던 신자들이 처음에는 "와! 성모님 너무 이쁘시다. 어디서 모셔오신 성모님이에요?" 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나주 성모님에 대한 기적과 징표, 그리고 메시지 말씀에 대하여 많이 듣고 알게 된 뒤로부터는 모든 신자들이 비록 나주에 갈수는 없지만 나주 성모님께 대한 사랑이 그 어느 곳 못지 않게 불타 오르고 있습니다. 그후 모든 신자들은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하고 싶어했으며 이러한 간절한 소망을 신부님께 말씀드려서 그때부터 신자들간에 순서를 정하여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공에 있는 어떤 성당에서는 나주 성모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신부님 세분이 계시는데 매일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놓고 나주 성모님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계십니다. 그곳뿐만 아니라 베트남 곳곳의 많은 신부님들이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기를 원했고, 주교님께서도 당신이 계신 성당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곳곳에도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실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에 그 곳에 갈 때에 나주 성모님 상을 많이 모셔다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사실 베트남이 공산 국가이기 때문에 나주 성모님을 전파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 상을 원하는 곳으로 매번마다 직접 모시고 갈수가 없기 때문에 우편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특히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공산국가에 종교적인 어떤 성물을 보내게 되면 십중팔구는 잘 전달이 되지를 않거나 혹은 파손이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낸 나주 성모님 상은 공산 베트남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단 한 번도 파손되지 않은 채 잘 전달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모든 일이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함께 하시면서 보호해 주신다고 확신하기에 그 어떤 위험한 곳에 가게 되더라도 저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늘 제 몸에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이 담긴 책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각 나라 말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씀드린바 있지만 이제 저는 70을 바라보는 노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제가 살 날들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저는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저의 남은 생을 다 바쳐서 일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주님 영광과 흠숭 받으시며 나주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6월 30일 (성모님 눈물 흘리신 16주년 기념일)
Mr. Rock Paul
8 rue Gracieuse, 75005 Paris, FRANCE, TEL. (33-1) 45-35-43-35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은총이 많은 곳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사랑안에 함께 모인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순례온 토마스 라고 하는데 지금 통역하고 있는 안젤라(싱가폴 거주 한국인)가 바로 저의 며느리 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의사로부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마지막으로 성모님께 거룩한 곳에서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크신 은총과 전구의 힘으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저는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해마다 순례를 오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습니다. 저는 성모님의 은총으로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 주위에서 "미쳤다."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가산을 정리하여 성지만을 순례하는 여행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순례자들과 함께 다녀보지 않은 성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순례 했지만 특히 이곳 나주는 그 어떤 성지들하고는 비교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은총이 많은 곳일 뿐만 아니라 이곳 나주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은총과 함께 현존하고 계시는 곳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란치아노 성당에 순례를 갔을 때 그곳에서 세계 최초로 일어났던 성체 변화의 기적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이 거룩한 장소에서 실제로 율리아 자매님이 란치아노 성당에 순례를 오셔서 미사를 드리시던 도중에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기적이 또 일어 났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님께서도 율리아 자매님이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성체 변화의 기적을 똑똑히 목격하신 산 증인 이시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이곳 나주는 루르드나 파티마, 또는 그 외에 수많은 그 어떤 성지들보다도 확실하게 주님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현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곳에 순례를 가서는 철야로 밤샘 기도를 못하는데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만 오면 철야 기도회를 하면서 밤샘을 해도 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비록 지금은 나주가 핍박을 받으며 광주 교구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전 세계의 많은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나주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징표, 그리고 메시지 말씀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히려 지금이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많으면 많을수록 은총은 더욱더 크기에 하느님께서 이 시험을 통과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주실 은총은 감히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클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희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순례단을 모집하여 이곳 나주를 일년에 두 세차례 방문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보다 큰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섭니다.

앞으로는 가족, 친척, 또는 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을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에 살고 계시는 여러분들을 저희들보다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순례를 오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지금 고통 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함께 위로해 드립시다. 머지않은 장래에 나주 성모님은 반드시 인준 되어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가 이룩되리라 믿으며, 또한 이곳 나주를 통하여 온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의 빛이 비추어지게 될 것이니 결단코 희망을 잃지 맙시다.

이미 교황님께서도 나주 성모님을 인정하고 계시는데 누가 감히 교황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순례한 수많은 성지 가운데 물론 루르드나 파티마도 거룩한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 한국 나주 성모님이 최고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이 시련의 시기를 기도 안에서 잘 봉헌하도록 노력합시다.


Mr. Thomas S. T. Lui & Family
Faith Tours & Travel PTE Ltd
50 East Cost Road Roxy Square, Singapore    

 

 

직접가서 보고 듣고 느끼십시오.

찬미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싱가폴에서 순례온 로렌스 요 신부입니다.
제가 맨처음 나주 성모님께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제가 알고 지내는 신자들 중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주 성모님께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계속해서 순례를 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경제적인 여건과 현실적인 여건들을 감안해 볼 때 매번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열심히 순례를 다니고 있는데에는 반드시 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나주 성모님께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직접 나주에 가서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지 않는 한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며 이러한 의문들이 완전하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되었기에 제가 직접 이곳에 와서 실제로 보고 들으면서 나주 성모님을 체험해 보고자 순례를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곳에 순례 와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의 확실한 체험과 더불어서 여러 나라에서 순례 온 많은 순례자들과 이곳 한국에서 살고 계시는 순례자들이 성모님께 향한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이 외적으로 들뜨지 않는 내적인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열렬히 불타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확신을 갖게 되었기에 여러분들에게 저 자신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도 용기를 가지라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까지 섰습니다.

여러분! 성모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더욱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메시지 말씀을 실천하면서 여러분들의 전 생애를 성모님께서 사셨던 것과 같이 살면서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모든 고통과 슬픔들을 성모님의 고통과 합하여 지금도 고통받고 계시는 성모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십시오. 그러면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대로 꼭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도 한 점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모님께서 당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고통받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자기 자신들의 십자가를 잘 지고 성모님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함께 걸으면서 모든 고통들을 아름답게 봉헌 할 때 어둠 속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이는 곧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주님과 성모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제가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면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때마다 "여러분들이 직접가서 보고 듣고 느끼시오. 그러면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순례를 올 때에는 꼭 저의 학교 신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순례를 올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에 다시 만날때까지 지금보다도 더욱더 예수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성모님께 의탁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통역자: 로랜스 요 신부님은 싱가폴 신학 대학교의 교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신 분이시며 이번에 싱가폴 대주교님이 바뀔 때 후보로 추천된 세 사람 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건강상의 이유와 보다 젊고 패기 있는 분이 싱가폴 교회를 이끌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2001년 7월 1일
Rev. Lawrence Yeo
199 Ponggol 17th Avenue, Singapore 829645

 

 

"나주 성모님 집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안녕하세요.
저는 싱가폴에서 순례 온 아녜스 입니다.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전인 작년까지만 해도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고 일본의 아끼다 성모님에 대하여 평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준비 끝에 일본의 아끼다 성모님께 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어떤분이 "자매님이 일본의 아끼다 성모님께 순례를 하셨다면 나주 성모님께는 반드시 순례를 가야 합니다." 고 권유하면서 전에는 제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나주 성모님의 발현과 기적, 그리고 징표 등에 관한 설명과 함께 나주 성모님에 대한 여러 가지 아주 상세한 설명들을 해주었습니다.

그분의 상세한 설명만으로도 나주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에 작년 처음으로 이곳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순례를 왔다가 돌아 갈 때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가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내자에게 느닷없이 저도 모르게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가기를 원한다는 말이 나오는 바람에 나주 성모님 상 한 분을 모시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싱가폴에 도착하여 성모님 상 포장을 여는 순간 짙은 장미 향기가 강하게 풍겨 나오기에 저희 부부는 "어머나, 나주 성모님 집에서 맡았던 바로 그 장미 향기야" 하면서 깜짝 놀랐고, 또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희 남편은 나무 상자로 된 집을 아주 정성껏 만들어서 그 안에 나주 성모님 상을 소중하게 모셨는데 그 나무 상자 집에서마저도 장미 향기가 났을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묵주신공을 드릴 때에는 저의 묵주에서도 장미 향기가 났으며 심지어는 저의 손가락에서도 장미 향기가 났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때부터 저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깨워 주셨고 기도하기를 원하셨는데 그 시간이면 특히 더욱더 짙은 장미 향기가 강하게 풍겼습니다. 그 시간에 매일 일어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였기에 어느 날 "성모님 저 이젠 새벽 3시에 깨우지 마세요. 저 이제는 그 시간에 기도하지 않을래요." 하고 말씀 드렸더니 그 이후부터 장미 향기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맨 처음에는 너무 속상했고 야속한 마음에 화가 났지만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성모님, 정말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씀 드리면서 용서를 청했지만 장미 향기가 전혀 풍겨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 앞에서 무릎을 끓고 앉아서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묵주의 기도를 30단을 바치고 있는데 서서히 장미 향기가 풍기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간지 2년째가 되는 오늘날까지 향기를 계속해서 주시고 계시는데 지금은 장미 향기가 아닌 백합 향기로 바꾸어서 풍겨주고 계십니다.


2001년 7월 1일
Agnes Goh
38 Siglap Plain, Singapore 456027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강박증으로 인한 우울증이 치유되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올해 6월 2일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된 부산에서 순례온 장 율리안나 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아주 건강하지만 사실은 아까 어떤 자매님이 증언했던 것과 같이 저도 심하게 정신적인 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습니다.

올해로 29살인 저는 대학을 다니던 23살 무렵부터 최근까지 심한 우울증으로 아주 고통스럽게 지내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제가 앓고 있던 병인 강박증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으로 인하여 너무나도 괴로웠기에 부모님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었지만 어린 나이였던 저는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하여 결국은 약을 먹고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가까스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성당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심한 우울증 증세가 다시 시작되었고 결국 그로 인하여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작은 유치원에 나가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만족하지 못했던 저는 '내가 지금 이까짓 일이나 할려고 대학을 나왔나.' 하고 생각되었기에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병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좌절 속에 벼랑 끝에 선 저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하느님께 2개월 여간을 진실한 통회의 눈물로 간절히 기도 드린 끝에 가까스로 병세가 호전 되게 되었는데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한 저는 대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작년 12월달부터 강박증으로 인한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고,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맨 처음 이 병에 걸렸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약도 의사도 믿을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심하게 아플때에는 그 어떤 약도 듣지를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 나름대로 전문의에게 상담도 받아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옥에 내려와 있는 것 같이 끝없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숨김없이 그대로 말씀 드렸더니 정신병원에 입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지만 어머니의 애타는 권고를 뿌리칠 수 없었던 저는 결국 부산 메리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느님은 내가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왜 돌봐 주시지를 않는단 말인가?, 그리고 수호천사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으로 하느님과 수호천사를 원망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기도도 하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며 원망으로 얼룩진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병원에 입원하지 15일 동안 면회도 되지 않았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에 입원 할 때 할머니께서 "기도를 많이 하거라." 하시면서 손에 쥐어 주시던 묵주를 들고 다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리고 제가 모르고 지은 죄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세요." 라고 청하면서 정말로 묵주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정신적인 질병은 육체적인 질병과는 너무나도 다르기에 제가 많이 아파하며 괴로워 할 때는 부모님들마저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기에 무척 속상해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부모님들에게 너무나도 죄송스러웠지만 저 또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입원하지 한 40여일이 지나자 의사의 권고대로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저는 전혀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가족들을 붙들고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 상태로 퇴원해서 사회에 잘 적응 할 수 있을런지 너무나도 겁나요." 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안은 채 병원 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한달 뒤에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는 언니로부터 나주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만 퇴원 후에도 역시 우울증으로 늘 불안하고 두려웠기에 문밖 출입도 일체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감히 나주에 갈 엄두를 못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6월 2일 저는 용기를 내어서 반신반의 하는 심정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온 날 개인기도를 하기로 하였다고 하기에 그냥 앉아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마음이 편했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있는 내내 전혀 잡생각이 들지를 않았기에 너무나도 편하게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의 아들이 중학교 때 심한 우울증으로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 두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고 난 뒤에 심한 우울증이 완전히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학교만이라도 마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던 그 아들이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증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희망이 막 솟구쳐 오르면서 '아, 나도 나을 수 있겠다.'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간 지난 한달 동안 저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매일 성서를 읽게 되었는데 전에 같으면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눈으로만 읽혀지던 말씀이 저에게 모두 위로의 말씀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약의 부작용과 제때에 식사를 하지 않은 탓으로 인하여 저의 피부는 거칠대로 거칠어져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을 매일 마시고 바르면서 "저의 머리 속에 있는 모든 나쁜 생각들을 다 없애 주실 뿐만 아니라 거칠어진 저의 피부도 아름답게 꾸며주세요. 아멘." 하고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했더니 보는 사람들마다 "어머, 피부가 몰라보게 깨끗해 졌네요." 라고 하면서 놀라워 했습니다.

특히 생활의 기도화는 그 어떤 기도보다도 저의 마음속에 강하게 와 닿았기에 어느샌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의 기도화가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의 기도화 복사본을 저희 가족들에게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더니 모두들 너무 좋은 기도라고 하시면서 좋아들 하시기에 몇장씩 복사해서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성당에도 잘 나가시지 않고, 또 성당을 나가시더라도 본의 아니게 잘 조시던 어머님께서 뜻밖에도 오늘 아침 나주 성모님께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오늘 저희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성모님께서 그 동안 저로 인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 고생을 무척이나 많이 하셨을 부모님들께 "그 동안 너무나도 수고가 많았다." 고 하시며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오늘 이 자리에 불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7월 8일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2가 135번지 13/1
장 율리안나
 

 

얘야! 그 물이 참 좋기는 좋은가 보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전부터 이미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혼자서 어떻게 가야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에  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나주 성모님께 정기적으로 순례를 다니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기에 그때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온날 성모님 동산에서 기도를 드리는 중에 갑자기 불이 난 것처럼 벌겋게 타오르는 것이 보이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던 저의 모든 삶이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면서 특히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들, 그리고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들까지도 전부 떠 올랐는데 그 순간 너무나도  강한 장미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원망의 마음이 변하여 스쳐 지나간 과거의 모든 일들이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지 알수 없는 강한 힘이 저에게 실리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잘 지고 가야지' 하는 각오가 다져졌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함께 하면서 기도를 마치고 성모님 동산을 내려 올 때 저는 너무나도 큰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총이 나주 성모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시기 위한 은총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충만해진 기쁨으로 집에 돌아 왔지만 한편으로는 '시어머니께서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는 것을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아주 오래 전부터 앓아 오셨기에 거동 조차도 불편하신 시어머니께 나주 성모님 물을 잡숫게 해드리면서 모든 것을 나주 성모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을 드신 그 다음날 시어머니께서는 "얘야,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 물이 참 좋기는 좋은가 보다." 라고 하시기에 "어머니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더니 "나는 지금 이날까지 밥을 먹은 뒤에는 약을 꼭 먹어야만 하는데 그 물 먹고 나서는 약을 먹지 않아도 소화도 잘 될뿐아니라 속이 아주 편하단다." 라고 하시기에  저는 순간적으로 '아, 성모님께서 나를 나주에 보내주시겠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뒤부터 저의 생활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 뒤부터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진 저는 매일 미사와 매일 성체조배를 하게 되었는데 특히 기도의 맛과 기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기에 매일 드리는 모든 기도속에서 너무나도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면서, 그리고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미운 감정이 들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미워하는 감정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주님, 저분을 축복해 주세요.' 라고 생활의 기도화를 통하여 봉헌하면서 제 마음은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미워했던 남편을 바라 볼 때마다 정말로 전혀 밉지가 않았고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제 안에 있던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면서부터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았으며 하루 하루가 너무나도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살아 숨쉬고 움직이며 기도를 할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죄인중에 죄인이었던 저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시고 기도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신 나주 성모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을 생각할 때마다 목이 메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나주 성모님께서 얼마나 진실한 분인데... 나를 지금 이 만큼이나 변화시켜 주신 분이 나주 성모님 이신데...' 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계시지만 나중에 알게 되시더라도 열심한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주 성모님의 발현이 참된 발현임을 받아드리실 수 있도록 매일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를 이렇게 변화 시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 내적인 치유까지 해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7월 8일
김금례 데레사
부산광역시 연제구 양산동 연산 3동 1829-11번지 17통 2반
연산창림아파트 208동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태산과도 같은 나주 성모님의 사랑)

대전에서 순례온 이 요안나 잔다크 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한 기도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때에는 늘 물통을 4개씩 가지고 다니는데 하나는 제것이고 3개는 바로 성모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 물 네 통을 혼자서는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언제나 아들이 들어주는데 오늘 물통을 차에 실어주던 아들이 "제가 볼때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기쁨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일꾼이고 성모님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기쁜 것입니다. 만약에 저에게 시간만 허락 된다면 몇날 몇일을 걸려서라도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실로 태산같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비록 짧기는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몇 가지만 여러분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올때만해도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베풀어주신 물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또한 성모님께서 온몸을 다 짜내어 우리 위해 흘려주신 향유에 대한 얘기도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단지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다는 말만 듣고 호기심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멋모르고 순례를 왔다가 성모님 물을 핏트병으로 한 병을 떠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물을 떠가면서도 이 물이 어떤 물인지도 전혀 몰랐고 단지 남들이 다 떠가기에 저도 그냥 따라서 성모님 물 한병을 떠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당시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딸이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서 새벽에 잠을 자고 있는 저를 막 깨우기에 일어 나서 보았더니 딸 아이의 머리와 몸에서 열이 펄펄 끓고 있기에 딸을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기 위하여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갔다가 성모님 물을 떠 올 때 어떤 자매님들이 제 옆을 스치듯이 지나치면서 "이 물은 특히 열이 나면서 아픈 사람에게 먹이면 특효래요." 하기에 무심결에 흘려들었는데 그 말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성모님 물을 딸에게 주고는 철야 기도회를 하고 온 날에도 집안 일을 하다보니 쉬지를 못했기에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딸이 저를 막 부르면서 "엄마, 그 물 좀 가져와 보세요." 라고 하여 성모님 물을 가져다 주었더니 뚜껑을 열면서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기에 냄새를 맡는데 순간 물에서 진동하는 백합 향기에 너무나도 놀랬습니다. 그때 저의 딸이 "엄마, 어제 같이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향기에 취해서 그냥 잠들었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딸을 통해서 나주 성모님 물의 은총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된 저는 마침 자매님 한분이 눈병 때문에 안과를 가야 한다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 물을 그 자매님의 눈에 넣어드렸는데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눈병이 나았습니다. 이렇게 성모님 물의 은총을 연거푸 두 번씩이나 체험하게 된 저는 그때부터 나주 성모님 물을 조금씩 담아서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알리기 위하여 제 가방 속에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물, 나주 성모님 상본, 그리고 나주 성모님 메시지 이 세가지 입니다.

그리고 특히 "성체 성사의 신비 안에 현존해 있는 나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자유의지로 과오를 범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때는 늦지 않았다. 어서 나의 사랑의 품으로 오너라." 라고 하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아름답고도 확실한 구원의 말씀을 코팅해서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성체사진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은 늘 품에 안고 다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구원의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떤 자매님이 자기 여동생이 암으로 죽어 가는데 도저히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그 자매님을 찾아가서 성모님 물과 함께 나주 성모님을 전했는데 암으로 인하여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오던 그 자매님이 그때부터 닫았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암 치료를 받고 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 자매님을 데리고 나주 성모님 동산에 가서 눈이 쌓여 있는 그 추운 겨울에 나주 성모님 상 앞에 그 자매님을 앉혀 놓고 성모님 물로 목욕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때 성모님 물에서 장미향과 소독 냄새가 진동을 했고 항함 치료로 인하여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그 자매님은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았으며 "나 너무 행복해요." 라고 하면서 마냥 기쁘고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뒤에 2, 3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그 자매님은 6개월을 더 살다가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는데 장부 되시는 분은 정작 임종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병원에서 그 자매님의 장부에게 이르기를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2,3개월을 사시는 동안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에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고 말했는데 2, 3개월이 아닌 6개월을 더 사는 동안 고통은커녕 통증한번도 느끼지 않은채 마냥 즐겁고 기뻐하면서 행복하게 지냈기에 죽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주 성모님 물로 육적인 치유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자매님을 통하여 평화로운 임종을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희망을 잃은채 절망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던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기쁘고 행복한 가운데 평화로운 임종을 맞았기에 지금 그 자매님은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확신 합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폐암으로 고통중에 있다는 어떤 형제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성모찬가도 불러 드린 뒤에 성모님 물을 드리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도 다니게 했습니다.

그렇게 한 일년쯤 되었을 무렵에 하루는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왔다가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형제님의 아내되는 분이 "자매님 저희 남편의 암 덩어리가 없어졌어요. 완전히 치유 되었대요. 그런데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증언을 못하니 자매님이 대신 좀 해주세요." 라고 하기에 집으로 돌아가서 그 형제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형제님, 어떠십니까?" 라고 했더니 "나주 성모님 덕분에 저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기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한 번은 제가 사는 아파트에 천주교 문패가 붙어 있는 집이 있기에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집을 무조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에 있던 자매님은 냉담 중인 신자였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결혼한지 1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없어서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매님에게 "자매님, 아기 갖고 싶으세요?" 라고 했더니 "어머,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라고 하기에 "자매님 아기를 갖고 싶으면 제가 하라는 대로 해 보세요." 라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시는 상본과 기적수, 그리고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을 내 놓고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매님이 아이를 갖고 싶으시다면 제가 설명해드린 나주 성모님을 그대로 믿으십시요. 그리고 이 나주 성모님 상본을 끌어안고 열심히 매달려 보십시오." 라고 말해주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차례씩 꼭 마시면서 마실때마다 나주 성모님 인준을 위해서 주모경 3번씩만 바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자매님이 "자매님 제가 가지고 있는 나주 성모님 상본이 너무너무 이뻐요." 라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 상도 모시고 싶다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 상을 한분 모셔다 드렸더니 "자매님, 성모님 상에서 장미향기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계속 나요." 라고 전화로 알려준 뒤에도 한 달간을 계속해서 장미 향기가 났는데 남편하고 같이 매일 그 장미향기를 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뒤에 "저하고 점심 같이 해요." 라는 전화가 왔기에 "왜?" 라고 했더니 "글쎄 제가 점심 사드리고 싶어서요." 라고 하기에 "그래 자매가 사든지 내가 사든지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라고 하면서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그 자매님이 "저 애기 가졌어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정말로 저의 일 같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결혼 13년만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나주 성모님 물로 아이를 갖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 입니까?
지금 그 자매님은 아이를 낳은지 한달 20일 정도 됐는데 너무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아파트에 딸만 둘 낳고 아들 낳기를 소원하면서 기도하고 있던 자매가 "왜 누구는 기도해 주고 그런 것도 주고 하면서 왜 나만 안 주느냐?" 고 하면서 원망의 말을 늘어 놓기에 "나주 성모님이 얼마나 귀하신 분인줄 알아? 귀하게 얻어야 귀하게 여기지" 하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나중에 조금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희 레지오 조회시간에 그 자매님이 오셔서는 "나 자매님이 주신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고 지금 아이 가졌어요." 라고 하기에 "아이구 깜짝이야, 어머나 세상에..." 하면서 모두들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자매님 배가 만삭인데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아들이든 딸이든 주님 뜻대로, 그리고 성모님 뜻대로 이루어 질 것이니까요.

그리고 11년 동안 19차례나 정신 병원을 들락거리던 젊은 자매(제가 데리고 왔던 자매)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된 사실을 본인이 직접 이 자리에서 증언을 했기에 제가 또다시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다른 자매에 관하여 증언을 해 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인데 어떤 상처로 인하여 매일같이 머리가 심하게 아픈데  가슴에 구멍까지 나서 아주 고통 스러워했습니다. 아이는 밤마다 환청이 들려서 잠을 못 잤고 결국은 학교도 못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 엄마에게 "자매님, 따님을 나주 성모님께 한 번 맡겨 보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라고 했더니 "오늘 병원에 입원시키러 가요." 라고 하기에 "입원시키기 전에 나주 성모님께 한 번만 맡겨 드립시다." 라고 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권했더니 "알았어요." 하고 대답을 하고 간뒤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아이를 입원시키러 가니까 기도 해 주려면 병원에 와서 기도해 주세요." 라고 하기에 '아,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지만 잊어버리고 그냥 제 볼 일을 보기 위하여 딴 곳을 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 오자마자 그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하여 병실에 딱 들어서는 순간 부부가 똑 같이 어지러워지고 캄캄해지더랍니다.

그래서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의사 선생님께는 아이 밥 좀 먹여서 데려 고 오겠다고 말한뒤에 그 길로 병원을 나왔다고 하면서 "자매님 지금 저희들 집으로 가니까 기도 좀 해 주세요." 라고 하기에 밤 10시쯤에 그 집에 찾아 갔습니다. 역시 나주 성모님 물,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 그리고 상본을 가지고 가서 기도를 해 준뒤에 성모님 물을 전해 주었고 그 다음 첫 토요일 날 그 가족을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함께 다니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신 그 자매님의 아이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앓아오던 정신질환이 완전히 치유되어 지금은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잘다니고 있습니다.

또 심한 환청으로 시달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한 아가씨가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기 시작한 뒤부터 환청이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약을 먹지 않으면 못견딜 정도로 힘들어 했는데 지금은 저녁에 한차례만 약을 먹고 있으며 곧 모든 약을 끊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께서 완전히 치유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자리에는 개신교 신자인 가족이 와 있는데 지난달부터 순례를 오기 시작습니다. 저는 이 분들은 정말로 축복 받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분들은 성모님 동산에서 진동하는 장미 향기를 맡으면서 그 어떤 곳에서도 체험할수 없었던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는데 지금 너무너무 기뻐들 합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이분들의 영적 육적으로 아주 깨끗하게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순례오신 모든 분들이 이곳 나주 성모님께 찾아 올때는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순례를 오셨겠지만 사실은 육적인 치유를 위해서이던지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가 있던지 아니면 어떤 갈등, 혹은 상처, 아픔 하옇튼 뭔가 한 짐씩은 짊어지고 왔고 또 이 모든 것을 나주 성모님께 드리려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고통을 받고 계시는 어머님께서는 오늘 저희들의 이 모든 짐을 다 받아 주실뿐 만 아니라 두 팔 벌려서 안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지금도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께서 오늘은 우리 눈으로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향유를 흘려주고 계시는데 누구를 위해서 흘려주시는 향유이겠습니까.
바로 저희들을 위해서 흘려주시는 향유이십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서는 바로 구원의 물이요 은총의 물인 생명수까지 저희에게 주셨는데 여러분은 나주 성모님께 무엇으로 보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헤아릴수 조차도 없을 만큼 수없는 희생과 고통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이 겪으시는 그 고통을 우리가 감히 어떻게 짐작이나 할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해 줄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마시고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저희들이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올때마다 돈주고 물 가져갑니까? 돈주고 은총 받아 갑니까.?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같이 다 거저 얻어 갑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다 공짜로 가져 가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성모님께 뭔가는 해 드려야 되는데 여러분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모든 은총을 무엇으로 보답하시렵니까.?  우리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하여 보답하는 길은 바로 여러분이 받은 은총을 전하는 것입니다.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여러분이 받으신 모든 은총을 집으로 돌아가서 모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순례올 때마다 가져가는 성모님 물을 혼자서만 들지 마시고 조그마한 병에 나누어 담아서 늘 가방속에 넣고 다니다가 교인이든 외인이든 가리지 말고 육적, 영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만나거든 나주 성모님과 함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늘 이 물을 전 할때에는 십자가 표시를 하여 전할 때 그 물을 받으시는 분들이 함부로 대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단순하게 나주 성모님 물을 전하지만 그 물을 받은 사람들은 육적 영적으로 치유될 뿐만 아니라 상처가 치유되어 그동안 용서하지 못한채 미움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도 용서하게 되어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 힘이며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해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된 형제 자매님들이 나주 성모님에 관하여 더 알고자 하거든 두말하지 말고 이곳 나주 성모님께로 데리고 오십시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고, 또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향기를 맡으면서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하여 보답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우리는 말로다 할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은총을 받았는데 정작 우리는 자기 욕심만 채우고 간다면 성모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이 똑같은 죄인이고 여러분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주 성모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으로 전할 때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했기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나주 성모님을 전하시면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나주 성모님을 잘 모르기에 핍박하는 분들을 만나거든 오히려 더 잘해주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전해 주실 때 그분들이 성모님께로 돌아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것은 저의 확신이기도 합니다. "아멘."

한 번은 저희 옆집에 냉담하면서 아주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님이 있었는데 어느날 밤에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가기에 그 자매님을 불렀습니다.

아주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그 자매에게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을 꺼내 놓으면서 "자매님 혹시 이 책 본적이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면서 "아니요." 라고 대답하기에 잠깐 이야기나 하자면서 저희 집으로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저희 집에는 사방 벽이 거의 나주 성모님 상본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 놓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어떤 방향으로 앉아 있던지 아니면 누워 있던지간에 성모님과 마주 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그 자매에게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설명해 주면서 지금 나주 성모님께서 고통받고 계시는 이유와 함께 왜, 무엇 때문에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시는가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준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과 나주 성모님 상본만 바라보면서 묵묵히 저의 말을 듣고 있던 그 자매님이 갑자기 두 무릎을 꿇더니 "성모님 상본과 성모님 메시지에서 장미 향기가 진동한다" 고 하면서 눈물을 줄줄 쏟으면서 우는 것이 었습니다.

그 날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회개를 하게된 그 자매님은 지금 제 후임 으로 구역장까지 맡아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며 구역회의 때 증언도 했으며 나주 성모님께도 순례를 다녀 갔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체험이 정말로 이루 헤아릴수 조차도 없이 무궁무진 하기에 몇날 며칠밤을 새워가면서 이야기 해도 다할수는 없지만 여러분에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제가 받은 은총에 대하여 아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01년 7월 8일
이일선 요안나
대전시 서구 탐방동 한우리아파트 105-601 Tel. 042-484-1948

 

세찬 바람앞에 춧불과도 같은 생명이!

"민수 애미냐?

네 외숙모가 외숙하고 싸우다가 제초제 먹고 다 죽어가는 것을 내가 데리고 보훈병원 응급실에 왔다. 어서 와봐라."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 부부는 나주 성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기적 성수를 들고 광주에 있는 보훈 병원으로 급히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시외숙모는 제초제가 거의 퍼져 온몸은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고 외숙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들고간 성수를 이미 죽음에 이르러 혼수 상태에 있던 외숙모의 입을 벌리고 조금씩 적시듯이 흘려넣자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물을 조금씩 삼키더니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경과 하는 동안에 10ml 정도의 물을 삼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 기적 성수를 계속해서 1컵 정도를 마시게 하자 혈압과 급성폐렴, 의식 혼미, 구토와 모든 증세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급한 불은 끄고나서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76세 되신 시아버님은 나주 성모님 물을 드시고 위암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고질병과 성품까지 온화하게 변화 되셨으므로 조금만 어디가 불편하시더라도 오직 나주 성모님 물만을 드시면서 그 어떤 약도 일체 잡숫지 않고 계시는데 옆동네에 살고계신 외숙으로부터 혀꼬부라진 숨가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매형, 죄송하네요. 저 먼저 갑니다" 하여 "무슨 소리야?" "우리 누나 위해 주세요"하며 횡설수설하더니 "매형! 우리 부부 싸우고 나서 세상 하직하려고 제초제 사다가 술에 타서 먹었으닝께 먼저가요. 누나랑 잘 사시오" 시아버님은 이 전화를 받자마자 택시로 시외숙집을 가서보니 평소에 부부 싸움이 잦았던 두분이 술을 드시며 싸우다가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있었고 시외숙모님을 쓰러져 있어 두분을 광주 보훈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데 가는 도중 이미 빳빳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합니다.

병원 의사는 외숙모 상태를 살피더니 20-30분 뒤에 운명할 것이니 서둘러 장례 준비나 하라고 하면서 일언지하에 입원은 커녕 치료를 해보려고 시도도 해보지도 않고 내 보내려고 하기에 겨우겨우 사정하여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지만 그 독한 제초제가 폐와 가슴에 이미 다 퍼져 버려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소생시킬 가망이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두분이 드신 것은 농약도 아니고 제초제였을뿐만 아니라 치사량을 훨씬 넘었기에 살아날 가망은 천만분의 일의 확률도 없다고 하면서 모두들 "포기하고 서둘러서 장례준비나 하라"고 했다합니다.

그러던 외숙 부부는 나주 성모님의 기적 성수를 잡수시고 나서 그 이튿날은 협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른 모든 증세도 거의 정상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20-30분 뒤에는 죽을 것이라며 서둘러 장례 준비나 하라고 하면서 입원조차 거절했던 병원측 의사들은 이 불가사의한 사실을 겪고나서는 "이건 기적이야"하며 놀라워 했습니다.

그런 이이 있고난 후 2주정도 지나서 건강이 어떠하신지 궁금하여 전화를 했더니 글쎄 두 분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신혼여행 가는 마음으로 부산까지 여행을 떠났답니다. 시외숙 부부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저는 너무 기뻐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시외숙 부부는 목숨만 소생한 것이 아니라 잦았던 싸움을 "굳-바이"하고 사소한 말다툼 한번도 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서로 사랑을 약속하고 이젠 힘든 농사일도 무리없이 하시면서 신혼처럼 아주 기쁘고 즐겁게 제 2의 삶을 살고 계신다며 감사해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느님의 축복이며 예수님의 사랑이고 성모님의 은총입니까.

하느님의 크신 섭리의 이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글쓰는 이 시간에도 제 눈은 촉촉하게 젖어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 집안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까지도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디 주님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2001년 7월 21일
나주시 금계동 수강맨션 301호
오형님 빅토리나


pg

 

 

 

유명한 의사들도 고치지 못했던 눈이 성모님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호선(전 국회의원) 아브라함입니다.

증언에 앞서서 잠깐 저의 이력을 소개해드리고자 하는데 이것은 저의 말에 신뢰성을 드리기 위해서 일뿐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인하대 공대 전기과를 졸업한 후 동양 방송국에서 6년간 근무를 한 뒤 서울대 대학원과 프랑스 유학을 거쳐서 전자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과학도인 저이지만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저는 이에 개의치 않고 제가 받은 은총에 대하여 분명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1999년 제가 여의도 성당에서 한참 성경 공부를 할 때 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왼쪽 눈이 심하게 아팠기에 여의도에 있는 안과 병원과 영등포에 소재한 7,8군데의 안과 병원을 다 다녀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남대 병원 안과 과장으로 있는 친구에게도 찾아가서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병원을 다 찾아 다녀 보았지만 왼쪽 눈이 치유되지 않았기에 아주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때 나주 성모님 동산에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 동산에서 성모님 물로 저의 눈을 씻으면서 거의 농담으로 "성모님, 성모님 물로 저의 눈을 낫게 해주신다면 성경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기도 했는데 정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저에게 일어 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명하다는 안과 병원을 다 찾아 다녀 보았지만 전혀 치료가 되지 않았던 눈이 성모님 물로 씻으면서 그것도 정성껏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기도를 드렸는데 나주 성모님께서 완전히 치유를 시켜주신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면 "미친 놈" 이라고 말하며 믿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의 눈을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의 물로 치유시켜 주셨다는 것만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미친 놈" 이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저는 그 누구한테도 꺼리낌 없이 증언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1999년 10월 제가 광주에서 컴퓨터 그래픽 전시회를 열었었는데 그때 팔만 대장경 전부를 전산화 하였던 아주 유명한 스님이 불교 신자 두분과 함께 저의 전시회를 관람하고자 왔었습니다.

그날 전시회가 끝난 시간인 밤 10시쯤에 그 스님에게 나주 성모님과 성모님 은총의 물에 관하여 이야기 해 주었더니 "지금 당장 성모님 동산에 가보자"고 하여 그분들과 함께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성모님 동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히 구름이 많이 끼어서 앞을 제대로 분간도 못할 정도로 칠흑같이 깜깜하고 어두운 밤이었기에 심봉사가 지팡이 짚고 더듬거리듯이 더듬거리면서 겨우 올라가서 성모님 물을 한잔씩 마시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그렇게도 칠흑 같이 검게 드리워져 있던 구름이 걷히면서 마치 보름달과도 같은 밝고 둥근 달이 환하게 빛을 발하면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스님과 함께 온 불교 신자들 모두가 "이것은 참으로 기적입니다." 하면서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좀 있으니까 비행물체가 짝 가면서 하얀 띄가 생겼는데 그 띠가 쭉쭉 뻗어 나갔는데 구름과 같이 잠시후에 걷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뻗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이것은 바로 기적이다." 하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스님은 "왜 이런 성지에 전기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까?" 하고 묻기에 아직 전기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말 해 주었더니 스님이 선뜻 그 자리에서 "제가 전기 시설 설치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확인서까지 써주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불교 스님이 이렇듯 나주 성모님 동산을 위해서 선뜻 기부금을 내 놓겠다고 함은 바로 종교는 다를지라도 세 속의 때를 입지 않은 순수한 마음의 눈이 있었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을 알아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체험이 있는데 오늘은 다음 분들을 위해서 이만 마치기로 하고 다음 기회에 증언해 드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8월 첫토요일
정호선 아브라함
서울 강서구 염창동 대림아파트 102동 1103호

 

 

온몸 곳곳에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자비의 물줄기였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서울 금호동에서 순례 온 구 베로니카 입니다.
제가 지난 6월달에 순례를 왔을 때 함께 온 동생을 위하여 인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다시 이곳 나주 성모님 집으로 돌아 왔을때에는 경당안은 물론이려니와 경당밖에까지 순례자들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하여튼 발 디딜틈 조차도 없이 순례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날 미사를 가지전에 저는 저의 가방을 경당 밖에 두고 갔었기에 가방을 놓아 둔 곳으로 가보니 가방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아주 흥건하게 젖어 있기에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물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이 벌써 앉았을 거예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가방이 놓여 있던 자리에까지도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지만 달리 앉을 자리도 없었기에 박스 두 개를 구해다가 그 자리에 깔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후에 순례자들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에 저도 '얼른 다른 곳으로 옮겨야지' 하는 생각으로 물에 흥건하게 젖어있던 박스를 들었는데 어머나! 이게 웬일입니까?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던 자리에 물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깔고 앉아 있던 박스로 물이 다 스며들었나?' 하고 얼른 박스를 속속들이 다 살펴 보았지만 역시 박스에도 전혀 물기가 없었으며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흥건하게 젖어있던 저의 가방에서도 물기를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있었던 일은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달에는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면서 저를 고통스럽게 했던 자매님들을 정말로 어렵게 이곳 나주 성모님께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가 주고 받았던 상처로 인하여 가슴에 쌓인 응어리들을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치유를 받아서 서로가 서로를 용서함으로써 우리도 주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경당 안에 모셔져 계신 나주 성모님 상을 바라보는 순간 성모님의 눈밑에 동그랗게 조그마한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정도의 물방울이라면 금방이라도 주루루루 흘러내렸을텐데 그냥 맺혀만 있으니 너무나도 희안하다.'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고 하기에 그날 나주 성모님께서는 어머님의 눈물을 저에게만 특별하게 보여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 순례를 왔을 때 자비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기도를 인도해 주던 봉사자가 "특히 자비의 시간에는 주님의 성심에서 자비의 빛과 성모님의 성심에서 자비의 물줄기를 흡족하게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열고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과 성모님께 달아듭시다." 라고 말하자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제 머리 위에서부터 온몸 전체로 소낙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기에 얼른 저의 몸을 살펴 보았더니 마치 금방 비를 맞은 것과 같이 저의 온 몸 곳곳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자매님의 몸에도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매 기도회 시간마다 '나주 성모님께서 자비의 물줄기를 우리 모두에게 내려 주신다' 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그날 저는 성모님께서 자비의 시간에 저희들에게 정말로 자비의 물줄기를 내려주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8월 4일 첫토요일
구영애 베로니카
서울 성동구 금호 4가 243-13 6통 3반

 

 

나주 성모님의 물로 악의 세력도 물리쳤습니다.

안녕하세요. 평택에서 순례 온 류순지 엘리사벳 입니다.

저는 원래 떨려서 남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증언 시간에는 늘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가슴을 두방망이로 두드리듯이 쿵쾅거리면서 제가 얼마전에 체험한 사실들을 증언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기에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수원교구에서 하는 기도회 마지막 날에 신부님의 안수식이 있었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날 어떤 형제님에게 나주 성모님 물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조그마한 병에 담아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안수식이 시작되자 공교롭게도 맨 앞쪽에 앉아 있던 사람이 굉장히 강한 마귀에 들린 사람이었기에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안수식이 제대로 진행되지를 못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마귀 들린 그 사람의 난동을 그 누구도 제압할 수 가 없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묵주의 기도를 바치거나 심령기도를 바쳐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부님조차도 쩔쩔매시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계신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 순간 마침 제가 가지고 온 나주 성모님 물이 생각나면서 나주 성모님 물로 나주 성모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손을 번쩍 들면서 "신부님, 여기 나주 성모님 기적수가 있는데 드릴까요?" 라고 외쳤더니 "빨리 가져 오세요." 라고 하시면서 신부님께서 다급하게 손짓하시기에 저는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나주 성모님 물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을 조그마한 컵에 따라서 신부님께 드리자 갑자기 마귀들린 사람이 도끼 같은 눈을 뜨고 무섭게 쳐다보면서 "그 물을 내 입에 넣기만 해 봐." "만약에 그 물을 내 입에 넣기만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라고 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하기에 그 순간 저는 '어머나, 나주 성모님 물의 위력을 악의 세력이 알아보는구나' 하면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결국 그 누구도 제압하지 못했던 기도회를 나주 성모님의 물로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뱀을 짓밟는 나의 능력으로 너희를 도우리라" 고 하신 나주 성모님의 말씀처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육적, 내적 치유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악도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기에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8월 4일 첫토요일
류순지 엘리사벳
경기도 평택시 평택동 69번지  모아방

 

 

딸의 고통을 통하여 죽었던 영혼을 되살려주신 나주 성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에서 순례 온 홍경희 미카엘 입니다.

저는 작년까지 약 10여간을 냉담 중에 살아왔었는데 이런 저를 나주 성모님께서는 은총으로 불러주시어 다시 신앙을 되찾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죽었던 저의 영혼을 되살려 주셨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올 1월에 노래방을 찾았던 저희 누님이 계단에서 구르면서 뇌진탕을 일으키는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누님의 장례식을 다녀온 뒤부터 저의 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2월 28일 병원에 입원시킨 뒤 자세히 검진해 본 결과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는데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보면서도 부모 된 입장으로 어떻게 손 쓸 방법도 없었기에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주님, 아이를 데려가시려거든 고통 없이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하면서 예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아내가 성당 반장이었기에 구역에서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 기도하여 주었지만 특히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 형제 자매님들이 저의 집을 방문해주셔서 함께 기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된 저희 부부는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보면서 45해가 넘도록 깨닫지 못했던 부모님의 애타는 심정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함께 모여서 기도를 드리던 중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던 자매님이 "타는 내가 심하게 나는데 혹시 부엌에 타는 음식이 있는지 빨리 가보라."고 하기에 집사람이 둘러보았더니 부엌은 물론이고 집 주위에서 무엇을 태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집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시체를 태우는 냄새와도 같이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그 자매님의 말로는 마귀를 태우는 냄새 같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타는 냄새가 기도 중에 두 번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저희 부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 자매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나주 성모님 상본에서 아주 강한 장미 향기를 맡게 되었으며 성모님상 손을 만졌을 때에는 실제로 성모님 손이 상하좌우로 움직이기까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희 딸은 하얀 비둘기(성령)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체험들로 인하여 저는 저희 딸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곧 치유 받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딸로 인하여 약 6개월 동안 약 2000여만원이라는 액수의 돈이 들어갔는데 그 돈도 작년 9월에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보상 받은 돈 2000만원으로 지불할 수 있었으며 정작 저는 아무런 후유증도 없었기에 이 모든 것은 바로 주님께서 미리 안배하심이라고 믿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잘 모르고 있었던 저희 부부에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딸의 고통을 통하여 죽어가고 있던 저희 영혼을 일깨워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딸의 고통을 통하여 신앙을 되 찾게된 저희 부부는 기도만 하는 그런 신앙인이 아니라 먼저 가정 안에서의 성화를 실천하면서 이웃에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는 신앙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전에 증언 하셨던 자매님의 말씀처럼 수원 교구 기도회에서 마귀들린 사람에 관한 증언은 실제로 저도 목격한 일이며 모 성지에서 미사를 드릴 때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나주 성모님을 아주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저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8월 첫 토요일에
홍경희 미카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율암 1리 565

 

 

등어리의 아픈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서울에서 순례 온 조기남 마리아 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쪽 등어리가 심하게 쑤시면서 매우 아팠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달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와서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간 뒤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아프던 등어리의 통증이 사라졌는데 이는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순례 오기 전날 밤 꿈에 나주 성모님께서 방광을 치유시켜 주시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왔는데 기도 시간 내내 방광이 심하게 아팠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모두 끝난 지금은 방광이 전혀 아프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꿈에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나주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나주 성모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실제로 이날 율리아 자매님은 아침부터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방광에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2001년 8월 첫토요일에
조기남 마리아
서울 금천구 독산 4동 929-4호 현대빌라 101호

 

 

제가 평생을 기다리던 「고도」는 바로 나주 성모님을 찾은 행복이었습니다.

2001년 8월 19일 일요일!

제 생애에 있어서 둘도 없는 아주 특별한 일요일입니다.
10년만의 아니 사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미사를 처음 드려본 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뜻깊은 의미가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1980년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 받은 동기도 참 특이한데 잠깐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교만과 허영의 극치 속에서 그야말로 '호사난상하고 주궁패궐'의 영적 장애자로 살아오던 때였습니다. '교회, 성당 갈 시간 있으면 낮잠이나 자라'고 되지도 않은 알량한 지식과 주워들은 몇 신앙인들의 비리를 들춰내며 내 나름의 '고도를 기다리며' 한마디로 끝없이 건방진 미성숙 된 유치한 인간이었지요.

그런 나날속에 하루는 직장에 늘 다니는 월부 책장수 아저씨가 오셨는데 (인상이 이상해 별로 사람들한테 호감을 못받음) 우연히 종교에 관해 말이 나와서 한참 토론이 벌어졌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얼마안가서 포기하고 '그냥 성당에나 한번 가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마는데 이 아저씨 그 긴긴 여름날 한 낮부터 (교내를 순시하던 수위 아저씨의 고함소리에 문득 보니 이미 해가 져서 컴컴해져 있었음) 어둠이 찾아 온줄도 모르고 해박한 천주교 지식을 저의 이 똑똑하고(?) 논리적인(?) 이론에 어떻게나 차근차근 쉽게 묻는쪽쪽 답을 잘 해주시는지 내심 마음속으로 놀라고 감동을 받았으나 시침을 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 '저런 배운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40여명이나 입교시키고 생업을 포기하고 하루를 몽땅 저렇게 허송세월(?) 다 버리다니 참 희한도 하네' 하고 예사로 생각은 했지만, 그 잔상은 남아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저의 그 해괴하고 부정적인 종교관의 우문(愚問)에 그렇게까지 열정적이고 해박하게 대답을 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마침내 그 동네 성당의 수녀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낮에 그 아저씨께서 제가 사는 동네의 성당에 전화를 하셨던가 봅니다. 호기심과 그분의 성의로 그냥 수녀님집 구경(?)이나 해 볼까 하고 갔는데 그 수녀님 역시 저의 분위기(?)를 파악하셨는지 참 친절하게도 그 동안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기적들, 사진과 액자를 곁들여 자세한 설명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갈파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 막 시작되었던 교리반에 들어가서 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제 특기(?)를 또 발휘하여 딴 사람들은 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데 유독 해괴한 질문을 많이 해대서 수시로 수녀님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나서 죄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기이한 동기의 신앙생활이 시작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세 받던 날 옷이 흥건이 젖고 주위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해 주신 하느님의 그 크나큰 은총도 모르고 얼마가 지나자 완전히 그냥 건성으로 겨우 일요일 미사나 간혹 참여하는 정도로 처음 영세 받을 그때의 그 감격은 바래져 갔습니다. 휴식과 향락에 취한 매일매일이었지요. 그렇긴해도 일요일에 가족끼리 손에 손을 잡고 소롯이 미사 오는 광경을 보면 '나도 지금은 이렇지만 언젠가 결혼하면 저런 성가정을 이루어 살거야'하고 미래의 저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하면서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은 죄가 많아서 일까요? 제가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의 시련은 그 소원을 산산 조각나게 해버렸고 아니 몇 번의 자살 결심까지하며 인생을 마감할려고 기회만 노리고, 밤이고 낮이고 그때부터 모든게 하느님의 탓인냥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하느님, 성모님이 계시다구? 웃기지 마라, 내가 뭘 잘못했는데? 거짓말 한번 안해보고 양심껏 살아온게 죄야? 그래 갚아주마, 반대로 한번 살아보자'며 정말 아무렇게 자신을 확대하며 산지 어언 10여년, 십자가 한번 쳐다보지 않고 성당앞을 걸어가도 지붕한번 쳐다보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지금의 이 상태마저 싫어지면 어디 조용한 산사 같은데 가서 그 동안 제 인생의 무대에 올랐던 여러 등장인물을 저주나 하며 마지막을 보낼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올 8월 13일, 평소 저의 냉담생활을 잘 아는 분이 무언가 가방에서 꺼내어 저에게 주었습니다. 나주의 성모님에 관한 조그만 간행물이었습니다. 그건, 저도 몇 년전 방송에 나왔을 때 눈한번 안때고 봤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호기심으로 '그냥 한번 가 봐야지' 하고 막연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때하고는 조금 다르게 저에게 와 닿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타고난 궁금증과 호기심은 많아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가보자고 몇번 권유를 했는데 사람마다 호기심은 있지만, 일소에 부치고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세월이 가고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분께서 새삼 저에게 보여주시니 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14일 아침, 불현듯 진도에 갈 날짜를 앞당겨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나서 (사실 진도에 관광을 다녀올 계획이 미리 짜여 있었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난생 처음으로 가슴 설레면서 혼자 떠나보는 전라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가는 김에 그냥 나주에 한번 잠깐 둘러보고 곧장 진도로 직행하자'하며 터미널에 갈때만 해도 부끄럽지만 100% 장난으로만 갔습니다. 그냥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오자고 말입니다. 한번도 안가본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 들뜬 마음으로 차창밖으로 비치는 여름 풍경만 감상하다보니 어느듯 성모님 집에 도착했는데 우선 주변의 고즈넉한 농촌같은 분위기와 깨끗한 한폭의 수채화같은 경당의 인상은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다니던 친한 이웃집같은, 봉사하는 자매님들의 미소어린 친절에 선뜻 주저없이 들어갔습니다. 단순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들어서는 저의 눈에 그때부터 들어오는 모든 상황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필설로 다하기 힘든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자 서너명이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미리 조금은 사진으로 본 적이 있지만, 경당 앞쪽의 성모님의 처절하신 모습들, 뒤쪽에 마련된 봐도봐도 끝없는 갖가지 기적의 증거들, 유리 상자 속의 성체 떨어졌던 장소의 향기... 등등 하나하나 보아가는 저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떨림과 벅참과 경외스러움으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올때의 장난끼는 다 어디로 가고 숙연해진 발걸음, 숨소리도 죽여가며, 거기있는 모든 것 하나라도 빠질세라 눈에 마음에 새겨갈려고 눈이 아프도록 보고 또 보고 방명록에 '성모님, 이 죄인 여기 감히 왔습니다. 여기 들어올 자격도 없는 이 인간, 이렇게 염치없이 왔습니다. 판단하시고 내치실려면 내치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두 분을 향한 제 영혼의 소리는 들어주십시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도다운 기도, 묵상다운 묵상을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저이고 보니 그런 형식을 떠나 그냥 앉아만 있어도 서 있기만해도 제 영육의 모든 것은 이때까지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온통 새까만 저의 더러운 영혼이 성모님의 애처로운 눈길속에 제 자리를 잡지못하고 이리비틀 저리비틀 갈지자를 긋고 있을 때 어느덧 밖은 어둑어둑해 졌습니다.

처음 만난 자매님의 안내로 뒤쪽 숙소에 묶게 되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거기에 비취되어있는 책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춰보는 순간 책장을 눈에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밤샘하다시피하고 나오니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성모님 동산에 가는 차를 타고 가는데 거의 다 왔을 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갑자기 입안에서 향내가 나길래 이상해서(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창밖을 내다보며 '이 근처 어디 꽃나무가 있나?'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살펴보는데 아무리 봐도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참 이상하다. 내가 너무 집착해 있나?' 하고 예사롭게 생각하고 드디어 깨끗하고 장엄하면서도 정말 천국같은 아름다운 동산에 도착했는데 여러 가지 기도를 차근차근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불가사의한 현상을 또 체험했습니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 자매님들과 샤워장에 들어갔는데 그때 진하게 풍겨오던 그 향기! 경당에서 맡았던 그 향기였습니다. 오! 정말 성모님이 계시구나! 저의 가슴은 그때부터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무시하고 부정했던 그 성모님이 정말 정말 계시다니! '세상 사람들아, 그 누가 뭐라해도 난 이 사실을 증거할 거다' 하며 물을 마시고 씻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 성모님 이 물로 저의 이때까지의 영혼의 때, 잡된 생각들을 눈처럼 희게 해 주십시오. 이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하고 잘못된 말을 하게 했던 이 머리와 입을 내 치십시오' 십자가의 길을 돌면서 제 인생 처음으로 그렇게 진지하게 기도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이때까지 많이 보아왔던 여느 예수님상, 성모님상을 대할 때하고는 확실히 달리하는 무언가의 소용돌이 속으로 제 자신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마침 15일 성모승천일을 맞이해서 일본에서 오신 자매님, 홍콩에서 오신 형제님들을 만났는데, 일본에서 오신 자매님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본이 어떤 나라입니까? 제가 알기론 온잦 잡다한 신의 나라로 기독교가 인구의 1%도 안된다는데 그런 나라에서 이렇게 먼 이국까지 오셨으니, 그것도 집안에 천주교 신자가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말씀에 저는 감격하고 그 자매님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홍콩에서 오신 분들은 나주 성모님의 절대 찬미론자였습니다.  물계통의 사업에 종사하시는 분인데 요즘 공해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물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면서 각종 암이나 질병이 모두 공해에서 오는거라며 물의 중요성에 대해 열과성을 다해 갈파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여기 성모님의 물이 최고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날처럼 제가 한국에 태어난 사실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적이 없었습니다. 지난밤, 한숨 못잤지만, 전혀 피곤하지를 않았고 기분만 상쾌했습니다. 시간이 되자 차츰차츰 모여드는 사람들로 어느새 경당안은 초만원이 되었습니다. 묵주의 기도, 성가, 율동성가, 통회의 기도, 박 유스토 회장님의 멕시코 소식, 그 동안의 성모님 증거들... 여러 절차가 있었는데 특히 회장님께서 들고 계시는 12년된 피흘리신 성모님상 받침보에서 아직도 진하게 풍겨나오는 장미향을 맡아보라고 하셨을 때 앞쪽에 앉아 직접 맡아볼 수 있는 행운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기에 오! 성모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어쩜 이럴수가!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제 쥐꼬리만한 알량한 지식, 난 보통 사람하고는 달라 하며 이때까지 똑똑하다고 자만하며 산 반평생이 또 한번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초저녁부터 쪼그리고 앉아서 밤샘을 했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등산하다가 다쳐 허리쪽이 좋지 못한 제가 그러나 잠시, 슬프도록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반주소리에 통회의 기도가 시작되었을 때 그 동안의 속죄의 눈물을 쏟아도 쏟아도 바다가 되어야 할 제가 눈물이 안나왔습니다. '아, 나는 틀렸구나!' 하고 그땐 제 자신이 좀 미웠습니다. 홍콩에서 온 열분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태양의 기적을 다 체험하고 나와서 저렇게들 기뻐 증거하는데... 부럽기도 하고 '나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하고 감히 저 자신도 과한 욕심이라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2박 3일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저의 마음은 새로운 활력과, 희망으로 가득찼습니다. 돌아오던 길로 신부님께 달려가 무려 10년만의 냉담을 풀고 면담 고백성사를 봤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첫 미사가 바로 8월 19일이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적이고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오! 하느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년 전 영세 받을 때의 그 설렘, 그 감격과 떨림으로 다시는 흔들리지 말자! 지금의 이 마음을 무덤까지 그대로! 주님, 성모님 이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하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성체를 모시고 사제님과 율리아 자매님, 그리고 그 가족을 위해 제일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저의 제 2 인생이 시작되는 날이 되었고, 차분히 앉아서 주변정리를 하는 중에 나주의 성모님 상에서는 지금까지 향내가 계속 풍기는 것은 물론 며칠을 나주의 여러 책자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정독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날 이때까지 그렇게 줄쳐가면서 책 읽은 적은 학창시절에도 없었습니다.) 그 책에서 간간이 나주에서 맡았던 장미향이 풍겨 나오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책 속에 누가 향수라고 뿌렸나요? 뿌렸으면 계속 나야하는데 띄엄띄엄 풍겨 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놀라움과 감격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풍겨오던 나주에서의 그 향기가 또 제 주위를 감돌았습니다.

처음엔 들며 나며 수시로 맡고 있었기에 나주의 성모님 상에서 나오는 걸로 생각하고 예사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방을 나갔다 들어오면 안나다가 또 나고 나중엔 너무 진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쓰고부터 계속 나고 있습니다. 정말 주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번 나주행을 권하시던 분께 선물을 하나 준비하여 마루에 두었는데 거기서도 향내가 났습니다. 분명히 사올 때는 나질 않았습니다. 저녁에 샤워를 할 때 나주 성모님을 생각했는데 그때 또 장미 향이 났습니다. 아! 이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거기다 제일 귀중한 기적수를 갖고 오질 못해서 못내 아쉬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뜻밖의 경로로 물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불가사의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을 무엇으로 표현하면 좋을까요? 죄 많은 저 같은 인간이 이런 은총을 받아도 되는 겁니까. 인제 저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평생을 기다리던 '고도'는 바로 이거라고... 이렇게까지 주님, 성모님이 그 현존을 보여주시기까지 제가 오늘까지 해 왔던 행실들을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2001년 여름은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이 만신창이가 된 이 불쌍한 영혼이 나주 성모님의 부르심 속에서 제 스스로가 중병을 앓는 환자란걸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제발 저의 남은 한평생, 일거수 일투족 나주 성모님을 생각케하는 매일매일이 되게 해 주십시오. 빌고 또 빕니다. 이 순간까지 지금도 끊임없이 풍겨주시는 그 향기의 진의(眞儀)를 제 목숨 다하는 날까지 증거하고 또 그렇게 살기를 맹세합니다. 오늘의 이 감격, 이 다짐 죽는 그날까지 더도말고 덜도말고 이대로 간직하고 가게 말입니다. 아멘


2001년 8월
노 신티아
경기도 의왕시 내손 2동 689-1 덕산 빌라 102호

 

지금 순례오시는 분들이야말로 진짜입니다.

찬미 예수님,  이현익 마태오입니다.

저희 부부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치유를 받은 이후로부터는 마치 나주 성모님과는 연인과도 같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 오신 모든 분들 역시 저희 부부가 느끼고 있는 생각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기를 쓰고 나주 성모님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더운 여름의 무더위에도 마다않고 끊임없이 이곳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철야기도회를 하면서 나주 성모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나주 성모님과는 끊어질 수 없는 단단한 쇠사슬로 묶여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쇠사슬은 바로 구속하는 쇠사슬이 아니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참 사랑의 쇠사슬로 묶인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행운 그 자체입니까?

우리 모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곳 나주가 지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지금은 비록 목청껏 소리 높여서 마음놓고 열정적으로 찬양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마음만으로는 더욱더 열정적으로 간절한 찬양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몇 년전에 조선일보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보면 그 동안 나주 성모님 집을 다녀간 외국인 순례자를 포함하여 50만명이 넘는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 지금까지 다녀간 순례자들을 모두 합친다면 아마도 한 칠십만명 이상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 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육적, 내적으로 수많은 은총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순례오시는 분들이야말로 진짜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자녀들을 알곡으로 거두어 들이는 은총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순례 오신 모든 분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나주 성모님의 손을 놓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001년 8월
이현익 마태오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3동 224-759 청양빌라 102동 101호
전화)032-432-4690

 

 

"낙태는 살인이다"라는 나주 성모님의 말씀을 듣고...

찬미 예수님! 저는 부천에서 순례 온 고향란 아나스타시아 입니다.

나주 성모님을 모르는 사람들중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대부분 결혼 후에 자신들이 계획한 자녀들을 낳고 난 뒤에는 인공 피임으로 조정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잘못해서 원치 않는 아이가 생길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낙태를 하게 됩니다.

저도 물론 천주교 신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배우고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낙태가 죄인 줄을 모르고 있던 제가 결혼 1년전에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성당에서 천주교가 권장하고 있는 자연 피임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둘 낳은 이후에 세 번째 아이가 덜컥 임신이 되자 저희 부부는 원치 않았던 아이였기에 매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완강하게 낙태 할 것을 원했으며 저는 단지 '엄마의 손으로 어떻게 아이를 지우나' 하는 망설임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율리아 자매님이 부천 성당에 오셔서 피정 강론을 하신다고 하기에 영세 받은 후에 처음으로 피정이란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율리아 자매님은 "낙태는 살인이다." 라고 하신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을 전해 주었는데 저는 그날 피정을 통해서 받은 은총으로 인하여 셋째 아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피정을 통해서 아주 강한 용기를 얻게 되었기에 남편에게 "이혼을 했으면 했지 낙태는 할 수가 없다."고 말한 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 테잎을 열심히 들으면서 셋째 아이를 무사히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저는 특히 젊은 엄마들에게 낙태에 관한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자주 들려주면서 낙태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들 중에는 초기 출산시 찾아오는 두려움(혹시 임신된 아이가 기형은 아닐까? 하고)으로 인하여 기형아 검사를 많이들 하는데 실제로 임신 3,4개월 된 엄마가 검사 결과 무뇌아로 판정되어 낙태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 중인 엄마들에게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 테잎을 들려주면서 모든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고 아이를 출산하라고 장려해 주었습니다.

세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넷째를 가지게 된 저는 병원 간호사로부터 "미개인" 이란 소리까지 들으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때로는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가운 눈길과 질책의 말로 인하여 상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의지가 나약해 질 때도 있었지만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난뒤부터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열 아니라 스물이라도 낳겠다.' 하는 강한 다짐으로 저 자신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주위에서 "이제는 인공 피임을 해서라도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라." 고 하였지만 "무절제한 산아제한으로 나의 가슴은 몹시 아프다." 고 하신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생각하면서 인공 피임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특히 40대 주부들 중에는 임신하게 될 경우 무분별하게 낙태를 행하여 한 생명을 무참히 살해 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죄를 짓게 되는데 이미 나주 성모님을 알고 계신분들이라면 낙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을 알고 계시는 자매님들께 부탁합니다.

주위에 혹시라도 때 늦은 임신으로 인하여 낙태를 하려는 자매님들이 계시면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들려주면서 아이를 출산하도록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주 성모님께서 박해를 받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받은 은총마저도 감춘 채 전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모든 것을 나주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당당히, 그리고 용기있게 자신이 받은 은총만이라도 전하실 때 그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됩니다.

우리 모두 서로 기도해 주면서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용기 있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01년 8월 첫토요일에
고향란 아나스타시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282-6번지
부일주택 6동 102호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이제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어요.

찬미 예수님!

지난 6월 5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저희 일행들에게 지금 너무나도 놀라운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저희 모두는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지전까지만 해도 오랜 세월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채 살아야만 했던 아라이꼬꼬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뒤부터는 지팡이 없이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크신 은총인지,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사랑에 우리 모두는 감격할 따름입니다.

아라이꼬꼬는 나주에서 돌아 온 이후에 차로 다니던 곳까지 걸어서 갈 수가 있게 되었는데 한 번은 심장이 두근거림으로 인하여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면서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하고 노래하면서 걸었더니 집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 없이 걷게는 되었지만 심하게 안쪽으로 구부러진 다리로 걷자니 모양새가 아주 우스꽝스러웠었는데 지금은 걸음걸이마저도 아주 품위 있는 자세로 교정되었기에 이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 본 저희 일행들은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기적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께 감사에, 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중복 장애자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올해로 60세가 된 가즈꼬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건초염, 손저림, 요통이 심하여 여러 번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불과 1년이 채 못되어서 다시 아프고는 하였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오고 난 뒤부터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전에 겪었던  팔의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치유해주신 기적이라고 확신하기에 지금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총과 기적을 체험한 저희들이기에 지금 박해받고 계시는 나주 성모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미어지듯이 아픕니다.

그러나 모든 성지가 그랬듯이 금지와 박해를 당했지만 결국은 인준되었기에 나주 성모님께서도 반드시 인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희 모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광주 교구 주교님께서 하루 빨리 나주 성모님을 받아들이시어 나주가 세계의 순례지가 될 수 있도록 인준해 주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01년 8월
川本和子
전화)042-561-2135(일본)

新井京子
전화)042-391-1946(일본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의 태양의 기적
(장미 향기가 마치 안개와도 같이 퍼져 나와 우리를 감쌌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홍콩에서 순례 왔는데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희들은 이번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와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 여러분 모두에게 나누어 드리고자 저희가 받은 은총들에 대하여 저희 일행 모두가 돌아가면서 증언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순례 온 말가렛이라고 합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대한 소식을 이곳에 순례오기 전부터 이미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읽고난 후 비로소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1997년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일행이 나주 성모님께 함께 순례를 다녀오고 난 뒤부터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특히 작년 6월 30일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일에 순례를 왔을 때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 참으로 엄청난 태양의 기적을 체험한 뒤에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저희 모두는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저희들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모님 동산으로 가기 위하여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너무나도 짙은 장미 향기가 강하게 풍기기에 '아, 성모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성모님 동산에서도 끊임없이 풍기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장미 향기를 맡으면서 묵주의 기도를 드리던 중에 저희 일행은 너무나도 엄청난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루시아 자매님이 자세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루시아 자매: 저희들이 성모님 동산에 모셔져 계신 성모님 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아까 소개한 말가렛 자매님이 "첸자매, 성모님께서 우리를 보고 웃고 계셔요." 라고 말하기에 얼른 성모님을 바라 보았더니 정말로 아름다운 미소로 웃고 계셨는데 저는 제가 보고 있는 광경이 너무나도 놀라웠기에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서 제 눈을 의심했는데 그 순간 강한 장미 향기가 풍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미 향기가 성모님께로부터 마치 안개와도 같이 퍼져나와서 우리를 감싸고 돌았는데 그 순간 저의 온몸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저희 모두는 다시 성모님 상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성모님 상을 바라보면 볼수록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성모님 상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이 느껴졌는데 마치 부드러운 인상을 지니신 수녀님 같기도 했기에 저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제 눈을 비비면서 더욱더 주의 깊게 성모님 상을 바라보았더니 어머나, 세상에! 수녀님 같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살아계신 성모님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 상 안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서서히 남자의 형상으로 바뀌더니 순간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살아계신 성모님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엄청난 기적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총과 함께 저희 일행은 묵주의 기도를 끝낸 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가렛 자매 : 저희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시작할 무렵에는 구름도 많이 낀 흐린 날씨였기에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드리고 있던 중에 "태양이 돈다." 하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우리 모두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더니 정말로 태양이 아주 느리게 또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면서 돌고 있었습니다.

아네스 자매: 예, 저도 보았는데 태양이 그냥 돌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태양을 가리고 있는 성체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기적은 그 태양안에 예수님께서 성체를 들고 서 계셨는데 저희 일행을 향하여 손을 뻗치셨으며 예수님 옆에는 성모님께서도 함께 서 계셨습니다.

이렇게 상상도 못할 놀라운 기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는 정말로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지금 이 엄청난 기적을 바라보고 있는 저의 눈이 너무나도 복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희 일행 모두는 어린아이처럼 펄쩍 펄쩍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주님 을 찬양합시다." 하며 큰소리로 노래를 했습니다.

말가렛 자매 : 그 당시 일어났던 모든 상황을 죤 형제님께서 비디오로 촬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죤(미스터 황):저는 나주 성모님 동산의 모든 것을 비디오로 찍고 있었는데 일행중 한사람이 "태양이 돈다." 하고 외치는 소리에 얼른 비디오로 태양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태양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랐는데 태양이 뛰기도 하는가 하면 돌기도 하였고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가까이 있었고 작아졌다가 커지기도 하였으며 태양을 가리고 성체까지 나타났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제가 착각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태양이 나오도록 조정을 한 뒤 비디오로 들여다 보았더니 이것은 빛의 굴절이나 착시 현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초 자연적인 현상에서 오는 기적임을 확실하게 알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이었기에 구름이 지나가는 것도 보게 되었는데 지속적으로 빨리 움직이던 구름이 유독 태양 주위에서만은 5초, 또는 10여초를 멈춰 서 있다가 다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일행 모두는 이 엄청난 태양의 기적을 함께 목격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너무나도 행복해 했습니다.

진 형제: 그 당시 구름이 태양을 잠시 가렸을 때 구름 색깔이 보랏빛으로 변하더니 서서히 밝은 보랏빛으로 바뀌었는데 구름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태양의 색깔이 보라색에서 노란 색으로 바뀌었으며 저희들이 흔히 미사 때 볼 수 있는 성체와 똑같은 성체의 모습이 태양을 가리고 나타났는데 그 성체 주위로 붉은 빛이 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형제: 저희들은 성모님 동산에서 태양의 기적뿐만이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장미 향기를 맡았는데 저희가 성모님 물로 목욕할 때 뿐만이 아니라 저희가 목욕할 때 사용했던 수건에서까지 장미 향기가 강하게 났습니다.

말가렛 자매: 저희 모두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때 이렇게 엄청난 기적들을 체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정말로 기적들을 체험하게 되었기에 저희 모두는 오늘 또 한번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확실하게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은총은 저희가 돌아가서 더욱더 열심히 나주 성모님을 전하라는 성모님의 뜻으로 알고 앞으로도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데 영웅적으로 일할 것이며 저희가 돌아가면 제일 먼저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중국어로 번역할 예정 입니다.

예수님,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8월 15월 성모승천 대축일에

Miss Margaret Chang
26F Po Yang Mansion, Fai Koo Shing, Quarry Bay, Hong Kong
Tel. 28753982

Anit Chan
5/F Orchid Hse
169, Sai Yeung Choi St. North, Mong Kok, Hong Kong

Lucia NG
70 2/F Chuen Long Village
Route Twisk Tsuen Wan N.T.   Tel. 91505573

Agnes Lai
Room 3507, Block 'D'
Ching Wah Court, Tsing Yi, Hong Kong, Tel. 24950403

Mr. Wang Ka Kui
1/F Block D 28 Peak Road, Cheung Chau, Hong Kong
Tel. (852) 2981-1137, 852-9360-9261

Mr. James Law Chung Ting
34 Relcher's Street 6th Floor, Block 5
West Districk, Hong kong,

Cheung Yun Fat(Peter)
Hoi Tao, Mansion 15/FL C
Reivier Garden, Tsuen Wan N. T, Hong Kong

 

 

간난이의 치루도, 나의 하혈과 자궁의 혹도
나주 성모님이 치유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순례 온 이 데레사 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지 올해로 꼭 6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주에서 주님과 성모님께로부터 많은 치유의 은총을 받았는데 그 중에 올해 저와 저의 아들이 받은 치유의 은총을 오늘 순례 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 둘째 아이가 태어 났는데 아이가 태어난지 5일만에 배에 가스가 차고 계속해서 심한 설사를 하기에 병원을 찾았더니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대장이 좋지를 않아서 그렇다며 특수 우유를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약 9개월 간을 특수 우유를 먹여 보았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는데 "우유에 성모님 물을 타서 먹여보라." 는 친정 어머님의 말씀대로 나주 성모님 물로 우유를 타서 먹인 뒤부터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치질보다도 더 심한 치루라는 병에 걸렸는데 그 치루 부분이 심하게 곪았기에 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여 태어난지 9개월밖에 안된 아이가 너무나도 고생이 심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내시경 검사를 해 본뒤에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15일에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 성모님 물을 마시는데 한약 내음이 계속해서 강하게 나기에 '이상하다. 왜 하필이면 장미향도 아니고 종로환(한약) 냄새만 계속해서 날까?' 하면서 언니에게 말했더니 "아야, 성모님께서 니 아이를 치유시켜 주시는 것 아이가?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언니의 말대로 8월 15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 온 뒤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 보았더니 8월 15일 이전 검사를 받았을 때 보이던 심한 증상들이 다 사라졌다고 하면서 의사가 "내시경 검사는 물론이고 수술도 할 필요도 없다." 고 하기에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아이를 치유시켜 주신 것임을 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올 7월 한달 동안 너무나도 심하게 하혈을 하였기에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자궁에 약 3 - 4센티 정도의 혹이 있으니 2달후에 수술을 하자." 고 하였습니다.

의사로부터 그런 진단을 받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철야 기도회를 참석하고 있는데 "율리아 자매님이 지금 저의 증상과 똑같은 고통(자궁과 배 부분에 심한 고통을 받고 계신다고 함)을 받고 계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지 3,4분도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저는 아이를 낳을 때 힘주는 것과 같이 힘이 들면서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심하게 했습니다.

너무나 힘들었던 저는 뒤에 기대어 앉아서 겨우 겨우 철야 기도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병원을 찾았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있던 3 - 4센티 크기의 혹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하기에 아! 저는 그날 나주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하혈을 전혀 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나주 성모님의 크신 은총을 저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크신 사랑이기에 오늘 순례 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2001년 9월 2일
이현숙 데레사
부산 사하구 다대동 4지구 도시개발공사 121-1703호

 

 

차는 부서졌지만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어라.

찬미 예수님! 저는 경북 문경에서 순례 온 김 가비노 입니다.

지난 7월달에 저의 공소회장님의 며느리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아이를  낳았는데 수술한 부분이 잘 아물지를 않아서 수술을 네 번씩이나 받게 되었지만 역시 수술한 부분이 잘 아물지를 않았습니다. 오토바이 사고 후유증으로 몸도 불편하신 공소 회장님이 며느리 병 수발까지 하면서 여간 고생이 아니였기에 제가 나주 성모님 물 2리터를 가져다 주면서 나주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하면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미사를 마친 뒤에 그 집에 들러서 알아보았더니 그 집 며느리가 나주 성모님 물 2리터를 혼자서 다 마신 뒤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는 아주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주 미사 참례를 하지는 못하지만 늘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목에 걸고 다녔었는데 어느 날 아주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차는 완전히 부셔졌는데도 저는 크게 다치지를 않았기에 이것은 바로 "나는 너희의 영혼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까지도 사랑한다." 고 하신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 그대로 나주 성모님께서 자칫 죽을 수도 있었던 저를 은총으로 살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크나큰 은총을 베풀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한달에 한 번 순례를 오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9월 2일
김영욱 가비노
경북 문경시 호계면 구산리 355번지

 

나주에 오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은총을 거져 주십니다.

저는 김포에서 온 이 히야친따입니다.

지난 8월 15일에 순례를 왔을 때 그날 율리아 자매님이 받고 있는 고통 중에 "허리에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도 마침 허리가 많이 아픈 상태였기에 '아, 내가 오늘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자비의 시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율리아는 그토록 극심한 고통을 매일 매순간 받고 있는데 너는 그 정도의 아픈 것조차도 희생으로 봉헌하지 못하느냐?'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순간 참으로 엄청난 통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통회의 기도를 바치고 있는 중에 피흘리신 성모님도 생각나고 성모님 동산에 모셔져 계신 못박히신 예수님의 피흘리시는 광경이 떠오르면서 저 자신을 도저히 어떻게 할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절절한 통회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온 몸이 마치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머리가 뒤로 젖혀지면서 순간 저의 입이 크게 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폭포수 같은 것이 저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너무나도 엄청났기에 받아 마시기에 벅찬 나머지 심하게 '꺽꺽' 소리를 내면서 받아 마셔야만 했습니다. 마침 옆에서 지켜보던 저의 장부가 너무 놀라서 "여보, 여보"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붙잡다가 남편도 감당할 수 없었던지 잡았던 손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저의 입안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저는 받아 마시면서도 '숨조차도 쉴 수가 없으니 이러다가 혹시 죽지나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순간 거스를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던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끝났고 그제서야 저는 비로소 숨을 쉴 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쉬자마자 또다시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저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를 여러차례 반복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강한 바람이 저에게 불어오면서 이빨이 서로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떨리기에 '어머, 설마하니 선풍기 바람 때문에 이렇게 이빨이 달달 떨릴 정도로 추운 것은 아닐텐데 더군다나 이 여름에?' 하고 생각하는 순간 계속해서 떨리던 입안으로 무엇인가가 들어왔고 저는 그것을 아주 강하게 씹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린 쌀 같은 것을 씹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저의 입안에 가득하게 쌓였습니다. 어찌나 씹는 소리가 강했던지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면서 씹고 있었는데 저는 이것은 바로 그 어떤 은총의 양식을 성령의 힘으로 먹은 것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무엇인가를 '쪽쪽' 소리를 내면서 빨아 먹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에는 마치 간난 아기가 입맛을 다시듯이 '쩝쩝' 거리면서 빨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저의 양볼이 오목하게 쏙 들어갈 정도로 무엇인가를 '쪽- 쪽' 거리면서 빨아 먹고 있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모든 광경을 함께 순례 온 저의 남편과 조카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지켜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완전히 정신이 들었을 때 저의 입안이 온통 헐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듯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 집에 성령님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나주에 오면은 저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은총을 거져 주시는구나' 하면서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그날 저는 엄청난 영적 치유를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로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할 때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함께 해 주시면서 아주 기뻐하신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집에 가서도 성모님의 현존의 향기가 강하게 팍팍 오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2001년 9월 2일
이양숙 히야친따
김포시 강정동 한국아파트 105동 1010호,
전화)031-986-7139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현존이야!

찬미 예수님! 저는 수원에서 순례 온 홍경희 미카엘 입니다

지난 8월 15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위하여 새벽미사를 함께 보기로  약속한 자매님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하기에 제가 떠다준 나주 성모님 물을 마셔보라고 했는데 그 자매님이 저의 말대로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자마자 그렇게 아프던 배가 언제 아팠냐는듯이 곧바로 나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달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올때마다 스카폴라 묵주를 구입해 가는데 그 구입해 간 스카폴라 묵주에서는 지속적으로 장미 향기가 풍깁니다.

그럴때마다 "장미 향수를 뿌려서 그런다." 며 일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지속적으로 풍기는 장미 향기를 맡을 때마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나주 성모님의 현존이야' 하며 장미 향기는 곧 나주 성모님의 현존임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 전에는 장미 향기가 며칠간 끊겼다가 다시 풍기기 시작했는데 이렇듯 확실한 체험을 해 보지도 않은채 "이러쿵 저러쿵" 하며 판단의 말들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성모님 동산에서 나주 성모님 물을 떠 갈때에도 성모님 물에서 장미 향기가 풍겼을 뿐만 아니라 한 번은 나주 성모님 물을 따르다가 잘못해서 조금 흘리게 되었기에 얼른 엎질러진 나주 성모님 물을 수건으로 닦아서 아이를 씻어 주었는데 그때 엎질러진 물을 닦은 수건에서 장미 향기가 아주 강하게 풍겼습니다.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거저 베풀어주신 은총의 물이지만 단 한방울이라도 흘려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며 사용할 때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나주 성모님 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영광 흠숭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9월 2일
홍경희 미카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율암 1리 565번지

 

 나주 성모님 물 한말을 마시고 온 몸에 퍼진 암이 치유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충청북도 진천에서 순례 온 이 아가다 입니다.

올 봄에 제가 자궁암에 걸리게 되었는데 차일 피일하며 치료를 미루고 있다가 결국은 암이 얼굴과 다리를 비롯하여 온몸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느님 저를 죽이시든지 살리시든지 당신 뜻대로 하세요.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몸 조금 빨리 갈 뿐이에요.' 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가면서 부었고, 손을 델 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럴때마다 나주 성모님만이 간절하게 생각나기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그때 나주 성모님 물 한말을 떠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떠 온 나주 성모님 물을 혼자서 열심히 마시면서 나주 성모님께 기도했는데 한말들이 물 한통을 다 먹고나자 딴딴하게 굳은채 그렇게 아프던 몸이 치유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물 한말을 마시고 암이 치유되었기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모 어머니 감사합니다. 죄 많은 인간을 이토록 사랑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면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나주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치유를 받게 된 뒤부터 나주 성모님께 자주 자주 순례를 오고 싶어졌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곳 나주에서 조금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더라면 매일같이 찾아뵈었을텐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매달 첫토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주 성모님께만은 꼭 순례를 오고 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9월 2일
이춘희 아가다
충청도 진천군 문백면 도화리 458번지
 

 

제 평생 이런 기적은 처음입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신림동에서 순례 온 이 마리아입니다.
저는 한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잘 다녔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본당에서 하도 못가게 막기에 다니면 안되는 줄로만 알고 하는 수 없이 한 3년간이나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주 성모님을 뵙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던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던 분들과 연결이 되었기에 그때부터 다시 순례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를 다시 불러주신 것만이 아니라 오늘 크나큰 치유의 은총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열흘전에 냉장고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하여 심하게 다치게 되었는데 병원을 다니면서 침을 동시에 맞아 보고 뜸도 떠보았지만 낫기는커녕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허리 통증이 심해 졌는데 어쩔때에는 한 번 앉았다가 일어 날려면 눈물이 날 정도로까지 고통스럽게 아팠습니다.

오늘 기도회를 참석하고 있는 동안에 또 다시 허리가 심하게 아팠기에 함께 온 자매님이 제 허리를 주물러 줘 가면서 기도회를 참석하고 있었는데 기도회 중간에 저도 모르게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전에 왔을 때는 기도회내내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던 저였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말 너무나도 이상할 정도로 눈물이 계속해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허리를 딱 움켜쥔 것 같이 굳어 있던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리는 느낌이 들면서 실제로 그 자리에 마치 부황을 뜬것과 같이 시뻘겋게 멍이 들어있었는데 그때 그렇게 아프던 허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제 평생 이런 기적은 처음으로 체험해 봅니다.

이토록 크나큰 은총을 베풀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9월 2일
이규현 마리아
서울 관악구 신림 8동 545-37번지 두산빌라 303호

 

 

5개월 정도 없던 생리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저는 부산 정 로사리아 입니다.

저는 한 5개월전서부터 전혀 생리가 없기에 주위 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면서 "자매님도 아마 가슴에 '화'(한의학적으로, 또는 가슴에 응어리)가 있어서 그럴거예요." 라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 기적수를 마시면서 "성모님 치유시켜 주세요." 하고 기도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픈 가슴을 겨우겨우 진정시킨 뒤 집으로 돌아왔는데 배에 빨간 발진 같은 것이 돋아났고 그 후에 정상적으로 생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9월 2일
정혜경 로사리아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1동 10번지 대승하이마트 101동 704호

 

 

이게 왠일입니까? 마치 하늘로 날으는 기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충남 당진에서 순례 온 정 베로니카 입니다.

저는 딸아이가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데 첫 아이를 낳은지 17년 동안이나  아이를 갖지 못했기에 병원에 찾아가서 나팔관 검사도 해보고, 또 아이를 갖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결국은 둘째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임신과 비슷한 증상이 여러 번 나타났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보면 임신이 아니였기에 더 이상의 아이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은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첫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나 되도록 아이가 없었던 저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거의 포기한 채 살아 왔지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부터 나주 성모님께 '그래도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하는 바람을 여러 번 아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이 피로해지면서 아프기에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임신이 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채 단지 '그냥 몸이 좀 좋지를 않아서 그렇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의사로부터 "임신 8주째 되었습니다." 라는 너무나도 뜻밖의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가 초음파로 임신중인 아이를 보여주었는데 이제 고작 8주밖에 안된 아이가 뱃속에서 손을 막 흔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너무나도 신기하고 기쁜 나머지 마치 하늘로 날아 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어머, 이게 마냥 기분 좋아할 일만은 아니네 아무리 간절하게 바랬던 아이였기는 하지만 이 때늦은 나이에 임신이라니 더군다나 첫째 아이와는 17살 터울이나 지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어머!  8주가 되어 저렇게 손을 흔드는데 저런 아이를 낙태시킨다면 내가 정말 한 생명을 죽이는구나' 생가하며 그전에는 그렇게 가슴속 깊이 실감하지 못했으나 초음파로 보니 실감이 갔습니다. 그때 나주 성모님의 낙태에 대한 메시지 말씀과 함께 뱃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래, 그렇게 살아 있는 아이를 낙태 한다는 것은 고귀한 한 생명을 죽이는 살인과 다들바 없어' 하는 생각과 함께 낙태를 당하는 아이들이 받는 고통이 가슴 깊이에서부터 느껴지면서 나주 성모님의 낙태에 관한 말씀이 뼈져리게 다가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래 이 아이는 바로 다름아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선물이야' 하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토록 크나큰 선물을 나에게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 속에서 뱃속에 아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7개월째 되던 달에 '이왕이면 아이의 이름을 신부님께서 지어 주셨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신부님께서 아이의 출산 예정일을 물으시더니 "아이가 아들이면 유스띠노, 아이가 딸이면 유스띠나 라고 지으시오." 라고 하시면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시기에 '어머나, 내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성모님께서는 이런 나의 생각까지도 들여다 보시고는 들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또 한번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를 낳기 3개월전부터 어쩔 수 없이 나주 성모님을 찾아뵙지 못했기에 너무나도 나주 성모님을 뵙고 싶었지만 이이를 위하여 아쉬운 마음을 봉헌해야만 했던 저는 아이를 낳기 전달에 꿈속에서 나주 성모님을 뵙는 크나큰 은총까지 받았습니다.

비록 나주 성모님을 3개월 동안 찾아 뵙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특별한 은총과 함께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때늦은 임신이었기에 첫째 아이와는 17살터울이나 나는 아이지만 그러나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우리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아이를 볼 때마다 느끼면서 깨닫게 되었기에 이 시간을 빌어서 다시 한 번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2001년 9월 2일
정주희 베로니카
충남 당진군 석문면 초락도 363-3번지  전화) 041-353-0095

 

 

17년간이나 알콜 중독이던 동생이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서울 상도동에서 순례 온 박 수산나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수도 없이 많지만 오늘은 동생이 받은 은총만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7년째 지속된 동생의 알콜 중독으로 인하여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동생이 술을 마신 날은 동생의 술주정으로 인하여 가정은 물론이고 온 동네가 쑥대 밭이 될 정도였으며 뿐만 아니라 동생이 속해 있는 본당 청년회까지도 동생의 술주정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런 동생을 위하여 저는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별의 별 짓을 다해보았습니다. 기도는 물론이고 동생을 위하여 사순절 기간 동안(40일) 동생을 위하여 하루 한끼씩을 단식으로 봉헌하면서 그것을 식비로 계산하여 생미사도 넣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올해 5월달에 동생을 위한 54일간의 묵주의 9일 기도를 드리던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성모님 동산에 모셔져 계신 나주 성모님 상앞에서 장궤를 한 채 감사 기도로 묵주의 기도 15단을 봉헌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주 냄새가 진동을 하기에 동생의 알콜중독으로 술 냄새만 맡아도 징그럽던 저는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이곳에까지 와서도 저렇게 술을 마실까?' 하면서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저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하면서도 그냥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는데 강한 소주 냄새가 계속해서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깨닫지 못했던 저는 영광의 신비를 바치던 중에 성모님께서 뱀머리를 밟고 서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 왔고 그 순간 저는 '아, 성모님께서 동생에게 붙어 있던 술마귀를 붙잡아서 당신 발아래 밟고 계시는 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동생을 괴롭히던 술마귀를 붙잡아서 어머님의 발아래 밟고 계시니 저의 동생이 술마귀에서 해방된 줄을 믿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17년간이나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던 동생이 그 이후로 기적적으로 술을 딱 끊었는데 이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해 주신 일임을 확신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와 감사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9월 2일
박영화 수산나
서울 동작구 상도 4동 211-444 전화) 02-815-3519

 

 

나주 성모님께서는 뼈속까지 전위가 된 암세포까지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수 신부님과 함께 순례 온 데레사 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께서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으로 기적적으로 암이 치유되셨기에 어머님 대신해서 증언 하고자 나왔습니다.

올해로 80세가 되신 저희 어머님께서 올해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곧바로 수술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지 두 달 후에 또다시 암이 재발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암세포가 어머니의 뼈속에까지 전이가 되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연세가 워낙 높으시기 때문에 재수술은 불가능하며 항암 치료만이 가능하나 결과는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날리 갈수록 어머님의 고통은 심해졌고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셨는데 어느정도로 심하셨냐하면 침대에 올라가실때에도 거의 기다시피 하시면서 올라가셨으며 때로는 몸을 굴려서 움직여야할 정도로 상태가 너무나도 안좋아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께서 "나주 성모님께 가야겠으니 비행기표 좀 예약해놔라." 고 하시기에 "연세도 높으실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그런 몸으로는 도저히 나주에까지 가실 수가 없습니다." 하며 집안 사람들은 물론이고 의사가 아주 강력하게 말렸습니다.

그러나 8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나주 성모님께 향한 믿음이 어찌나 강하신지 어머님께서는 주위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에 나주에 가지 못한다면 내 생애에 다시는 나주를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주를 가다가 어떠한 고통을 당할지라도 나주 성모님께 꼭 순례를 가야겠다." 고 하시며 고집을 부리시기에 어쩔수 없이 어머님을 모시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어머님을 모시고 성모님 동산에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하시고 난 뒤 성모님 동산에서 기도를 하시던 어머님은 나주 성모님께서 "너의 아픈 고통을 내가 다 가져가겠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더랍니다.

그 순간 정말로 그렇게 극심하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더랍니다.

그런일이 있고 난 후부터 저의 어머님께서는 완전히 치유되어 지금까지 아주 건강한 몸으로 살고 계시는데 이 모든 것은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임을 확신하기에 저희 장부는 "나주 성모님께서 어머님의 병을 고쳐주셨으니 감사를 드리러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야겠다." 고 하여 이번 에 함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자 합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TERESA OEI
12, LORONG  5/10F
46000   PETALING JAYA
SELANGOR S.E, MALAYSIA
TEL. 603-795-66149

 

 

필리핀 안토니 까바혹 주교님의 증언

필리핀 비사야스 교구의 평신도들과 함께 한 이번 순례는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입니다. 저는 원래 나주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매우 적었으나, 사람들이 나주 순례를 제의했을 때 저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는 저를 어릴 때 이미 성모님께 봉헌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매우 병약했습니다.  저는 현재의 제 건강함과 사제직에로의 성소가 동정 성모님의 사랑에 찬 중재하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주의 성모님의 메시지는 사목자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저의 결의를 더욱 확고하게 해줍니다. 당신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이 기회를 마련해 주신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 성모님집 순례를 더욱 기도화하게 해 주고, 의미 있게 해 주고, 영적으로 충만하게 해 주신 친절하고 다정한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구의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성모님의 모성적인 돌보심과 보호하심에 맡겨 드립니다.


필리핀 수리가오 교구  안토니 까바혹 주교(신학 박사)
A. CABAJOG, D. D.
Bishop of Surigao
2001년 9월 25일

 

 

그 어떤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던 아이의 병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청주에서 순례 온 우 말가리다 입니다.

나주 성모님께서 저와 저의 가정에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총을 여러분 모두에게 나누어 드리고자 떨리는 마음을 봉헌하면서 나왔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바로 얼마전부터 5살난 저의 아이가 갑자기 심한 경기를 앓기 시작했는데 경기를 심하게 앓는 아이가 평소에 이상하게도 밥을 어른들이 먹는 양보다도 더 많은 양을 먹고는 밤중에 자다가 먹은 밥을 다 토해내며 심할때는 고개와 얼굴이 돌아가고 손발이 뒤틀리면서 경기를 아주 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제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아이가 토하다가 기도가 막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고 있던 저의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뭐가 씌였나 보다."하시면서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와서 뭔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하나 차도가 있질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내가 살아서는 다니지 말고 죽으면 다니라고 하셨기에 성당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로써 아이를 병원에만 맡기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제 자신이 야속하여 하느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절 도와달라고 어떤 성당게시판에 간절히 호소하였지만 그 게시판은 이미 폐지가 되고 운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다음 다른 게시판을 찾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은총은 강물처럼"이라는 게시판이었고 그 곳에서 서울에 사시는 글라라라는 자매님께서 제 사연을 읽으시고 성모님의 물과 스카풀라와 자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과 스카폴라를 받아보는 순간 저는 '아! 이 물과 스카폴라로 내 아이의 병이 꼭 치유 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한 나머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나주 성모님을 모르고는 있었지만 믿음으로 아이에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열심히 먹이면서 기도를 했는데 저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아이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기에 속상한 마음과 실망감이 저의 믿음을 마구 흔들어 댔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만약에 그때 서울에서 어떤 자매님이 보내주신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아이가 치유되었다면 아마도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지 않았거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번정도 다녀 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저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던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아이의 고통을 통해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10월 19일에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고 순례를 지속적으로 다닌지 일년이 채 못되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그 어떤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던 아이의 병이 완전히 치유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극심하게 반대만 하시던 저의 시어머니께서도 아이가 치유되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셨기에 지금은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성당에 다니는 것을 예전에 비하면 그렇게 심한 반대를 하지 않으시기에 성당에도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죄가 많아서 영성체를 할 수가 없다" 하시며 30년이 넘도록 영성체를 모시지 않고 계시던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신부님과의 상담을 통하여 30년만에 성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아영세를 받은 이후 성당을 다니지 않고 있던 동생도 제가 가져다 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계속해서 마신 뒤 어느날 밤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 예수님께서 어둡고 밝은 두 개의 무덤을 보여 주시면서 "어느것이 네 것이냐?" 라고 물으시기에 밝은 무덤이 자기의 것이라고 대답했더니 "밝은 쪽으로 오기 위해서는 나를 믿어야 한다." 고 하시더 랍니다. 그래서 "예, 믿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예수님께서 "증거를 보이라" 고 하시기에 꿈속이었지만 증거를 보일수 없었던 동생을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애태우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치더 랍니다.

그 순간 동생의 몸안에 있던 썩은 음식물들이 다 쏟아져 나왔고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믿는구나." 고 하신 뒤 사라지시더랍니다.

그런 꿈을 꾸게된 이후 동생은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 같아" 라고 하면서 세 살, 다섯 살난 두 아이들까지 데리고 성당을 나가게 되었는데 성당을 다니면서 "왜 이제서야 성당을 다닐 생각을 했는지 너무나도 안타까워!" 하면서 저에게도 너무나도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동생의 꿈 속에서 동생의 몸안에 있던 썩은 것들이 다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영혼에 자리하고 있는 썩은 모든 것들을 다 빼내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듯 나주 성모님의 크신 은총으로 동생뿐만 아니라 동생의 어린 아이들도 영세를 받게 되었고 조당에 걸려 있던 친청쪽 가족도 조당을 풀게 해주시어서 여러 사람들이 영세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렇듯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지 고작해야 일년도 채 안된 제가 그동안 실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이루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나주 성모님께서 비신자인 저의 장부와 시어머니, 시댁 식구들도 곧 가톨릭으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으며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따라 가정성화를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10월 7일
우순옥 말가리다
충북 청원군 내수읍 덕암리 주성대학 보건소  

 


 

어머나 세상에! 서울에서 맡았던 그 향기와 똑같네

찬미 예수님! 저는 서초 성당에서 온 박 데레사 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연령을 위한 미사에 갔더니 어떤 분이 나주 성모님 상본을 보여주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지고 하기에 "요즘 교구에서 막고 있는데 왜 가" 라고 하며 거절 했습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 순간 어떤 향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향기가 강하게 풍겼기에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까지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성모님 동산에도 가게 되었는데 아주 좋은 향기가 강하게 풍겼습니다.

그런데 그 향기를 맡는 순간 어머나, 세상에! 서울에서 제가 맡았던 바로 그 향기와 똑 같은 향기였기에 저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이후로 성모님께서는 계속해서 저에게 장미 향기를 주시고 계시기에  '장미 향기처럼 아름답게 살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1년 10월 7일
박정현 데레사
서울 서초구 서초 1동 현대아파트 101동 1106호

 

 

아!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안녕하세요. 대구 윤일 본당의 엘리야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닌 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정말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도 용기가 없어서 증언을 하지 못했기에 나주 성모님께 너무나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용기를 내어서 그 동안 제가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여러분 모두와 나누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전에 체육관에서 철야기도 할 때 관절이 심하게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힘들었는데 휴식시간에 커피와 우유를 먹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무릎이 너무나 심하게 아팠기에 무릎을 거의 질질 끌다시피 나가서 커피 두 잔을 들고 제자리로 와 앉아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커피에서 너무나도 진한 장미 향기가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아,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 진한 장미 향기가 풍기는 커피를 마신 뒤에 그렇게도 심하던 무릎 관절이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커피에서 풍겼던 진한 장미 향기는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치유의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저의 집 정화조를 푸기 위하여 정화조 푸는 사람들이 왔었는데 그 분들이 "정화조 안이 물 한방울도 없이 완전히 말라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고 하면서 막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화조를 다 푸고 난 뒤에야 정화조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정화조를 고쳐 놓으라고 하면서 돌아갔고 그 후에 일년이 다 되도록 정화조를 고치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11월 14일 정화조 관리하시는 세분이 저의 집으로 왔는데 정화조를 푸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원을 내야 한다며 "왜 아직까지도 정화조를 고치지 않았느냐?" 고 하면서 "정화조를 조사해 보겠다." 며 세분이 정화조를 열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정화조 뚜껑을 열게 되었는데 세상에! 심하게 갈라져 있었기에 물이 다 새버렸던 정화조 안에 어머나! 물이 가득 차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장미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미 향기가 어찌나 진동했던지 재채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그순간 '아, 성모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왔을 때 깨져 있던 정화조를 확인하고 돌아간 아저씨들이 "이상하다." 하고 놀라면서 "정말로 정화조를 고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기에 "예, 정말로 고치지 않았어요." 라고 했더니 "이상하다. 이상해" 하면서 연신 고개를 까우뚱 하면서 정화조를 다시 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정화조 안에 들어가 본 아저씨들이 갈라져 있던 정화조 벽이 갈라진 흔적조차도 없이 멀쩡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정화조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정말로 정화조 벽이 멀쩡한 상태로 있었기에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지만 세상에, 이런 일까지도 다 해주시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를 가진 뒤부터 코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냥저냥 약으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는 약도 먹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기에 병원에 가 보았더니 일주일간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수술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지난 12월 달에는 너무 심해졌기에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증상이 너무 심해졌다며 수술을 세 번까지 받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증상이 얼마나 심했냐면 그때는 이미 코도 왼쪽으로 비뚤어져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을 마시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로 심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수술을 정작 받으려고 하니 이제는 병원 사정상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일년 정도를 기다려야만 한다고 하기에 그냥 약쓰다가 어느날 갑자기 약을 쓰지 않았는데도 코가 뚫렸고 전혀 맡지 못하던 냄새도 맡게 되었으며 코 안에 있던 혹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었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주 성모님께서 치유를 시켜주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0월 7일
백정순 엘리야  
대구시 서구 평리 3동 700-30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냉담을 풀고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대구 남산동에서 온 김 로사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레지오 모임에 갔을 때 약 130여명이 모인 가운데에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 "한국에서는 한국 주교님에게 순명해야 하고 외국에 나가서는 외국의 주교님께 순명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주를 외국에서는 인정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기기에 평소에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늘 안좋게만 말씀하시던 신부님의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저는 속으로 많이 놀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그자리에서 당당하게 나서서 나주 성모님을 증언하지 못했기에 지금도 나주 성모님께는 너무나도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날 레지오 모임의 주제가 바로 전교였는데 단원들과 그룹 나눔을 하는 가운데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전교도 어려웠거니와 외교인을 입교를 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고 하면서 실제로 외교인을 입교를 시킨 사례 발표도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나주 성모님 물로 외교인들을 입교시켰던 체험을 많이 하였는데 그중에 개신교 신자였던 미카엘 형제님도 제가 전해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에서 풍기는 신비로운 장미 향기를 맡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게 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저희 사람들만의 노력으로는 안되던 일들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던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었는데 130여명이 모인 가운데에서 이러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렸기에 지금도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여러분들만이라도 그런 자리가 있으면 나주 성모님께 은총을 청하면서 용기를 내셔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의 집안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성가정이 된 가정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가족과 친척에게 나누어 주게 되면서부터 저희 가정과 동생과 친척들이 냉담을 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 영세를 받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지난 20여년 간이나 좋지 않은 종교에 빠져서 돈을 가져다 바치던 저희 집안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다시 천주교로 돌아 오게 되었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저를 본받지 말고 용기 있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전하실 때 나주 성모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면서 단지 몇 마디 설명과 함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전하기만 하면 그 다음 일들은 나주 성모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전했을 때 외교인이 입교하고 냉담자들은 냉담을 풀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따라서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들기보다는 단순하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전하면서 모든 것을 나주 성모님께 맡겨 드릴 때 나주 성모님께서 그 다음 일들은 크신 은총으로 함께 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저와 같이 나중에 성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번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은 나주 성모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2001년 10월 첫토요일
김행자 로사
대구 남구 대명동, Tel.  053-623-

 

 

전에 없었던 평화를 만끽하고 살고 있습니다.

논산에서 온 서 안나입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냉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성당을 나가지 않고 냉담을 하게되자 정말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란 사람은 허구한날 밤 늦도록 술을 마시는가 하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자녀들마저도 결혼을 실패를 하는 등 집안에 좋지 않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녀들이 "엄마가 성당을 안 나가서 우리 집안에 나쁜일만 생긴다." 고 하기에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성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초창기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순례를 다니고 있는 저희 형님이 언젠가 나주를 가자고 하기에 "아유, 성당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내가 어떻게 그런데를 가" 하면서 그때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당을 다시 다니게 되면서부터 나주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그 형님을 따라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그 형님을 따라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동안 잘못되기만 했던 집안 일들이 하나하나 바로 잡아지면서 집안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술만 마시던 남편도 술을 끊게 되었고 아이들의 잘못된 일들도 바로 잡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며느리들도 저를 따라서 성당을 나가게 되었기에 저는 지금 전에 없었던 평화를 만끽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냉담 중이던 오빠를 모시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가톨릭 성가를 오빠에게 맡기고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오빠가 "가톨릭 기도서에서 장미 향기가 진동한다." 고 하면서 막 우시기에 저도 그 가톨릭 기도서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아보려 했지만 저는 아무런 향기도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오빠는 "하느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에게까지도 이렇듯 사랑을 베풀어 주시다니" 하면서 정말로 많이 우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오빠는 냉담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었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 가정과 오빠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0월 첫토요일
서문영 안나
충남 논산시 강산동 부영 아파트 A동 1203호

 

 

눈썹과 머리카락 다 빠진 후두암 환자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순례 온 아가다 입니다.

제가 그 동안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참으로 너무나도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딱 세 가지만 증언하고자 합니다.  

맨처음에는 두 가지만 증언 할 생각으로 묵상하면서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불연 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세 쌍둥이 낳은 이야기도 해야지' 하고 마치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에 세가지를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어떤 자매님이 성모님 동산에 모셔져 계신 예수 성심상이 움직이시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는데 저도 사실은 매번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친 뒤에 예수 성심상 앞에서 기도 할 때마다 예수 성심상이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두 팔을 움직이셨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를 움직이시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시기까지 하는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말을 주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 동안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함께 온 자매님과 예수 성심상 앞에서 기도할 때도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자매님도 역시 저의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저 혼자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어떤 자매님도 저와 똑같은 체험을 하시고 증언하시기에 저도 용기를 내어서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증언하려고 하는 내용 중에서 가장 큰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주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증언하겠습니다.
저의 장부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에 아주 열심한 불교 신자가 있었는데 그분을 볼 때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시고 성당에 나가세요." 하면서 여러 번 권유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불교 신자인데 제가 어떻게 성당을 나가겠습니까? 저는 안됩니다." 하면서 거절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꾸준히 나주 성모님의 눈물 피눈물 흘리신 상본을 그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성당에는 나가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성모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그냥 알고 계시면 좋잖아요."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주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 부인으로부터 "저 지금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어요." 라고 하는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친김에 남편 친구분에게 "아이고, 부인 따라서 영세를 받으세요." 라고 하며 권했더니 "저는 안됩니다. 만약에 제가 개종을 하면 친척들에게 야단 맞어요." 하면서 끝내 거부하더군요.

그렇게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한사코 마다하던 그 친구분이 후두암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날인가 그 집에 가보았더니 정말로 눈썹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다 빠진 채 빼빼 말라 가지고 55세 된 양반이 80세 노인 몰골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에 대하여 설명을 해준 뒤 "이 기적수를 먹고 많은 암 환자들이 치유를 받았는데 제가 이 기적수를 부지런히 가져다 드릴테니 마시세요. 그리고 치유를 받으면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세요." 고 하였더니 "만약에 병이 치유되면 약속대로 꼭 성당에 나가겠습니다." 라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핏트병으로 두 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매님에게는 "나주 성모님 상 앞에서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성모님께 남편이 치유되면 꼭 성당에 데리고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리세요."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정말로 놀라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의 장부가 "그 친구에게 한 번 가 보아야겠어." 라고 하기에 저는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을 그분을 생각하니 도저히 쳐다 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기에 "저는 다음에 갈테니 오늘은 당신 혼자 다녀오세요." 라고 하며  저의 장부 혼자서만 다녀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병 문안 가 있던 장부로부터 "여보, 아, 글쎄 그 친구 머리와 눈썹이 새까맣게 새로 났어, 그리고 살도 오동통하게 붙었더라구. 여보, 그 친구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치유 받아서 거의 다 나아가고 있어" 라고 하며 전화로 알려주기에 저는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세상에 뼈에다 가죽만 둘러 싸 놓은 것처럼 빼빼 말라가지고 머리에는 한 올의 머리털도 남기지 않은 채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다 못하여 기름 발라 놓은 것처럼 번들거려서 친구들이 "왕건에 나오는 궁예다, 영락없는 궁예야." 하면서 짓궂은 농담까지 들을 정도였는데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빠진 눈썹까지도 다시 새까맣게 자랐다니 정말로 꿈만 같았습니다.

여러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이 아니였다면 어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얼마 전 저의 본당에 최 데레사라는 자매님이 암은 아니였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하여 음식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몸이 빼빼 마른 상태에서 심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물조차도 삼키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며 전화로 "아가다, 나 죽기 전에 아가다 얼굴 한 번 보고 싶으니 우리 집에 좀 와 줘." 라고 하기에 어머나,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자매님의 병이 그렇게까지 심한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레지오 단원과 함께 그 자매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함께 온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가지고 왔다고 하기에 제가 "형님, 이 기적수를 마시면 나주 성모님께서 반드시 살려 주실거예요." 라고 하며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컵에 따라서 주면서 마시라고 하였더니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먹는다 해도 곧바로 다 토해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 라고 하며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님,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 기적수를 마셔요. 그러면 나주 성모님께서 꼭 살려 주실거예요." 라고 권하면서 속으로는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시게 했는데 저의 이런 걱정과는 달리 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한 컵을 그대로 다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뒤 세상에, "나 죽을 것 같아." 하면서 마치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것 같았던 그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신 날 오후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시장까지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신 뒤부터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토하는 일이 없이 소화를 잘 시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자매님이 성당에 왔는데 혈색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과 피부가 뽀얗다 못하여 마치 처녀 같더라구요.

그 자매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정말 고마워, 고마워" 라고 하기에 "아이고,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주 성모님께서 고쳐 주신 거예요. 그러니 형님, 나주 성모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가서 증언 좀 했으면 좋겠어." 라며 권했더니 "며느리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손주놈을 내가 보아야 하기에 나는 갈 수가 없으니 아가다가 내 대신에 증언 좀 해줘." 라고 부탁하기에 그 자매님을 대신하여 제가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세 쌍둥이에 대한 증언은 예정에도 없었는데 묵상 중에 '세 쌍둥이 이야기도 해야지' 하고 마치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에 '아, 증언할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세 쌍둥이의 기적이 바로 그냥 기적이 아니라 다름아닌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해 주신 일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큰댁 장손이 장가를 들었는데 세상에 새 새댁이 자궁암에 걸려서 임신을 할 수가 없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큰댁 형님이 저에게 전화로 "지금 며느리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응? 이혼을 시킬 수도 없고 도대체 이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라고 하시면서 대성통곡으로 목놓아 우시기에 "이혼은 절대로 안되요." 라고 하며 "아, 죽은 나자로도 살리신 주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으신데 우리가 나주 성모님께 열심히 기도를 드리면 나주 성모님께서 며느리도 치유시켜 주시고 아이도 갖게 해 주실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 열심히 기도합시다." 라며 형님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그리고 집에 있을 때에는 저의 집에 모셔 놓은 나주 성모님 상 앞에서 "성모님, 큰댁 며느리 좀 살려 주세요. 그리고 장손부가 아이를 갖지 못하면 대가 끊기게 생겼으니 아이도 갖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궁암으로 아이를 가질 수가 없다고 했던 큰집 며느리가 세 쌍둥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담당 의사들도 "기적" 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냥 단순한 기적인줄로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증언하려고 마음먹기 조금전까지도 계속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은 두 가지 은총에 대해서만 증언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마치 성모님께서 '세 쌍동이 이야기도 해야지'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서야 비로소 '아, 그 기적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기에 증언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오늘까지도 그 기적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해 주신 일임을 모른 채 감사도 드리지 않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뒤늦게나마 이 모든 영광을 나주 성모님께 바쳐 드립니다. 나주 성모님 정말로 감사 합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큰댁 며느리는 아이를 무사히 낳았는데 아기들이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까 어떤 자매님이 증언했듯이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서의 철야기도회를 할 때마다 특히 자비의 시간에 저희 모두에게 내려주시는 장미 비(자비의 물줄기)로 더러워진 저희 영혼의 때를 벗겨내 주시기에 저는 정말로 이곳 나주 성모님 집이 영혼의 목욕탕이라고 확신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이곳 나주 성모님 집이 바로 구원의 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11월 첫토요일
이연호 아가다
서울 강서구 화곡 2동 873-35   

 

 

"후두둑…" 소리까지 내면서 자비의 물줄기가 내렸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부천 삼전동에서 온 윤 카타리나입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과 같이 제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암을 치유 받기는 했지만 워낙 많은 수술을 받은 탓으로 인하여 몸에 저항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저는 지금도 육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낮에는 이럭저럭 그런데로 활동하면서 지내기는 하는 편이지만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기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늘 병원 약을 입에 달고 살아야만 했던 저는 고통이 너무 심할 때에는 약을 목으로 넘기지도 못한 채 약을 앞에 놓고 그저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울 때도 참 많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성모님께 봉헌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심한 우울증은 저를 너무나도 괴롭게 했습니다. 저는 자궁을 들어내고 왼쪽 난소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기에 지금은 오른쪽 난소 하나만 가지고 있는데 사실 오른쪽 난소마저도 수술을 해야 했지만 특이한 체질로 인하여 수술 후 홀몬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할 때 심한 부작용이 우려되었기에 수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상적인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하는 생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생리할 날짜만 되면 마치 정상적인 생리를 할 때와 똑같이 배가 아프면서 생리 현상을 느끼는데 특히 이때 심한 우울증까지 동반되기에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이렇게 심한 우울증이 한 열흘정도 지속되게 되면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괴롭고 고통스러웠기에 때로는 신경정신과 병원도 찾아다니면서 약을 써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를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던 저는 이 때문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올 때마다 엉엉 울면서 기도하며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0월 19일에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전에 '엄마, 육적으로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들은 봉헌 할 수 있지만 우울증만은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저의 우울증을 고쳐주세요.' 하며 애원하고 기도하면서 내내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면서 올라갔는데 제 10처에 이르자 갑자기 짙은 장미향기가 어찌나 진동하던지 코가 찡하였는데 장미 향기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강한 향기까지 진동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제 15처 예수 성심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어머나! 예수 성심상의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모습으로 강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보았거나 착각했겠지' 하고 제 눈을 의심했는데 제가 본 것은 착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실제로 살아서 움직이셨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신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오른쪽 손가락만 살짝 굽혔다가 펴시더니 손을 위 아래로 움직이시기도 하셨고 팔을 벌렸다가 모우신 뒤 위에서 아래로 각도를 그으면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강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오른쪽 손에서 강한 빛이 퍼져 나오기까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음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날 기도 시간에는 저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면서 어떤 감동이 찾아 들었는데 그때 경당 양편에 걸어 놓은 나주 성모님 상본에서 강한 황금빛 빛이 펴져 나왔는데 그 빛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기도 내내 경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시는 자비의 빛이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날 자비의 시간 때 봉사하시는 형제님이 "마음의 문을 열고 달아드는 우리 모두에게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대로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자비의 빛과 자비의 물줄기를 흡족하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기에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가 나기에 울면서 통회하다가 눈을 떠서 보았더니 실제로 자비의 물줄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천장에서 강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나기에 저는 그 순간 자비의 물줄기가 내리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봉사하시는 형제님이 "율리아 자매님이 지금 엄청나게 고통받고 계시는데 특히 산부인과 계통(자궁, 방광 등등)의 고통과 머리가 으깨지고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 그리고 허리와 좌골 신경통과 같은 고통으로 지금 눈도 뜨지 못한채 고통받고 계십니다." 하는 말을 전해 주었는데 어머나, 세상에! 율리아 자매님이 받고 계시는 고통 전부가 제가 육적으로 받는 고통들이었기에 저는 얼른 "아멘" 하고 큰소리로 응답했습니다.

저 역시 심한 좌골 신경통으로 인하여 조금만 삐뚤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튀어나오고 방광염이 심하고 신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장시간 타야하는 경우에는 조금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기저귀까지 준비해야만 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추석 때에는 서울을 가면서 차가 비좁은 관계로 인하여 아이들을 옆에 앉히고 저는 옆으로 삐딱하게 않아서 갔다 오다가 결국에는 허리가 심하게 아팠고 발바닥의 심줄이 땡길 정도로 심하게 아팠기에 발을 땅바닥에 디디고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는데 10월 19일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때에는 그렇게 아프던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월 19일 순례를 올 때만해도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고 심할 때는 배를 쥐어 짜는듯한 고통을 성모님께 봉헌해야만 했는데 그날 율리아 자매님이 받으셨던 고통을 통하여 방광염과 좌골 신경통이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왼쪽 심장을 포크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던 심한 증상들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은총 중에 특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심한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는 그날 자비의 시간 때 저의 우울증의 원인은 바로 제 안에 죽도록 미워했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제안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냥 잊혀졌을 뿐이지 결코 용서하지 않은 채 제 가슴 안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네 명의 사람이 자비의 시간 때 떠오르기에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의지적으로라도 용서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의지적으로나마 용서의 은총을 청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복받쳐 오르는 통곡과 함께 심한 구역질이 나기에 자비의 시간 내내 계속 구역질을 하면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제 영혼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죄들과 마음의 상처들을 주님과 성모님께서 다 뚫어주세요.' 하고 울면서 기도를 드렸는데 자비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저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아! 이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너무나도 마음이 편안해 졌을 뿐만 아니라 10월 19일 이후에 생리 날짜가 다가 왔지만 그전 같이 그렇게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지 않게 되었기에 그날 나주 성모님께서 저의 우울증을 치유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치유 된 것은 아니고 약 80%정도 치유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올 때마다 아직까지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용서할 때 나주 성모님께서 제안에 남아 있는 약간의 우울증마저도 치유 시켜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비록 지금 뵐 수는 없지만 제가 치유 받을 수 있도록  크나큰 희생의 치루신 율리아 자매님에게 이 시간을 빌어서 너무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비의 시간 때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달아 드는 자녀들에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놀라운 은총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기 위함과, 그리고  제가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여러분 모두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 증언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11월 4일
윤정아 카타리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44번지 25/6 성산연립 1동 106호, Tel. 032-683-9558

 

 

"이것은 기적이야.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찬미 예수님! 반갑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오게 된 것이 이번까지 벌써 8번째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저를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처음으로 순례 오신 분들을 위해서 잠깐 저에 대한 소개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저는 인디아 사람으로 현재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폴입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나라에서 일을 해왔는데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정년 퇴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년 퇴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비록 세속의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신에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 일이 바로 지금의 저의 직장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나주 성모님을 전하면서 해마다, 특히 나주 성모님 눈물, 피눈물 흘리신 기념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갔는데 이번에는 제가 나주 성모님 피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일 5주전에 굉장히 힘들고 위험한 대수술을 받게 되었기에 사실 대수술까지 받은 70세의 노인의 몸으로 아주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5시간씩이나 기다리며 먼거리를 여행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오는 일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올해는 나주 성모님 피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일이였기 때문에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 "나주 성모님 피 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순례를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하고 간절히 청했는데 성모님의 은총으로 이렇게 순례를 올 수 있게 되었기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는데 그때마다 나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출발할 때에도 비행기를 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기에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는데 나주 성모님께서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주관해 주셨기에 비행기를 탈 수가 있었으며 제가 비행기에 오른지 1분만에 비행기가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천 국제 공항에 내려서도 무거운 짐을 들 수 없었던 저를 위하여 한국 분들이 짐을 들어주었는데 이모든 것 역시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이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해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때면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비행기의 노선이 갑자기 바뀌는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저는 한 번도 마음이 급해지거나 당황한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주 성모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저는 세상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여러 성지들을 두루 다녀 보았지만 나주와 같이 은총이 충만하고 나주와 같이 성스러운 곳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확신을 자기고 지금 이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순례자들과 주교님, 그리고 신부님들께서도 저와 같은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지금도 끊임없이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프란시스 수 신부님께서는 이곳 나주가 세상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은총의 장소임을 체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비행기를 세 번씩이나 갈아 타야만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년에도 수 차례씩이나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성모님께 순례는 오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이곳 나주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참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곳이며 강물처럼 넘치는 은총이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나주에 순례 와서 치유의 은총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또 보았습니까? 따라서 여러분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이곳 나주를 그냥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곳쯤으로 여기는 분이 혹시라도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히 이곳 나주가 아무 것도 아닌 곳으로 착각해서는 더더욱 안될 것입니다.

한국 본당 신부님들 중에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 다니는 것은 막는 신부님들이 계신다고 들었는데 특히 한국에서 살고 계신 순례자들은 제 말을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외국인들이 이곳 나주 성모님께 한 번 순례 오기 위해서는 매우 힘들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외국에서 주교님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수많은 평신도들이 끊임없이 순례를 오겠습니까?
지금 외국에서는 나주 성모님을 모르는 나라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얼마나 잘 전파되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반대자들이 당치 않은 말들로 나주 성모님을 모함하거나 여러분을 핍박한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만은 절대로 흔들리거나 귀담아 들어서는 안됩니다. 나주는 바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곳인데 그 누가 감히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막을 수가 있으며 거역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주는 바로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자비가 내리는 장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따라서 한국에 살고 계신 분들은 언제라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곳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한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정말로 행복한 줄을 아셔야만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잘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특히 공산국가)다니면서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특히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성모님을 전할 때마다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기적을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저는 그 누구보다도 더욱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나주 성모님 상 두 분을 모시고 인도에 들어가서 한분은 갈멜 수녀원에 모셔드렸고, 또 한분은 인도에 있는 어느 성당(6000명의 신자와 두 분의 신부님이 계신 성당)에 모셔 드린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 성당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집집마다 순례를 다니면서 24시간 조배를 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비신자 가정의 7살짜리 아이가 암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지만 현지의 병원 사정과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울면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부모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주 성모님 상 앞에서 그곳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던 중에 아이의 암 덩어리가 완전히 부서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 가서 검진을 받아 보았더니 정말로 종양의 흔적조차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그 아이의 검진을 담당했던 그곳 의사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기적이야" 하면서 놀라워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완전히 치유가 된 그 아이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탈없이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콜 중독자를 가장(35세)으로 둔 어느 가정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하고자 했지만 신부님께서 "남편이 술을 끊지 않으면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실 수가 없다." 고 하시면서 거절했는데 그집 부인이 신부님께 하도 통사정으로 매달리기에 신부님께서는 "남편이 술을 끊지 않는 이상 나주 성모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남편이 절대로 집으로 들어 와서는 안된다." 는 조건으로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나주 성모님 상을 모시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약속한데로 남편은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줄곧 밖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을 모시고 기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술을 끊게 되었으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은 치유될 가망이 없는 폐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어느 형제님 집에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다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성모님 상 앞에서 매일같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아픈 부위에 나주 성모님 상을 자주 가져다 대곤 하였는데 그렇게 기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강이 회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 보았더니 아무런 이상도 발견이 되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 형제님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지금은 아주 정상적으로 일상 생활들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이기에 저희 모두는 감사를 드립니다.

할말은 너무나도 많지만 다음번 순례 때에 와서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칠까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저는 이번에 포르투칼어로 번역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자를 만들게 되었기에 성모님께 봉헌하기 위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곧 러시아어로 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자도 발간할 예정인데 완성이 되면 나주에 순례 올 때 가지고 와서 봉헌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나주 성모님을 열심히 전하고자 하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본인은 사비를 들어서 책자를 만들어 보급하고 사진도 많이 복사하여 돌리고 비디오 테잎도 6000개 이상 이미 보급했음)

 
2001년 10월 19일
Mr. Rock Paul
8 rue Gracieuse, 75005 Paris, FRANCE
TEL. (33-1) 45-35-43-35

 

 

세계 어느 성지에서도 받지 못했던 감동을 나주에 와서 아주 특별한 감동과
현존을 느꼈습니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온 다이엔입니다. 이번 순례가 저에게는 세 번째 입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전에 저는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파티마, 루르드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여러 성지들을 많이 순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성지를 다녀 보았지만 저는 별다른 느낌이나 감동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3년전 처음으로 저는 이곳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성모님 동산에서 기도하던 중 매우 짙게 풍기는 장미 향기를 맡게 되었으며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주님과 성모님의 현존에 대한 아주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주님과 성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 나주도 무척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후부터 저의 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특히 열심히 기도하는 주님과 성모님의 참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시간만 나면 놀러 다니려 했었기에 묵주기도를 거의 하지 않던 저였는데 지금은 시간만 나면 묵주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미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저의 모습을 보고 주위의 많은 분들이 저를 따라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매우 몸이 아픈 아이를 데리고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완전히 치유를 받게 되었기에 지금은 아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치유된 모습을 보고 주위의 많은 분들이 나주 성모님을 믿게 되었기에 이번에 순례를 올 때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부탁하려 합니다. 지금 전세계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되 특히 미국을 위해서 나주 성모님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10월 20일
DIANA NGNYEN
712 PORK ST
S.F. CA 94109, U. S. A,  Tel. 415 -931-8549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믿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경원 베드로 입니다.

저는 충청도 태생으로 1991년 10월에 필리핀 순례자들의 안내를 맡아서 나주 성모님께 올 때까지만 해도 저는 나주가 전라도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곳인지는 물론이고 나주가 뭐 하는 곳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신론자였던 저는 단순하게 순례자들의 안내를 맡아서 이곳 나주에 오게 되었기에 필리핀 순례자들을 경당 안으로 안내 해주고 저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곳 봉사자들이 비디오를 틀어주고 설명을 해 주면서 자꾸 저에게 들어오라고 하기에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주 성모님은 물론이고 가톨릭에 관하여 문외한이었던 저는 그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싫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순례자들을 데리고 나주에 오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1995년에는 미국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왔는데 그들 중 여러 자매님들이 영어로 된 묵주의 기도 책과 묵주를 저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을 만나서 악수를 하게 되었는데 악수한 저의 손에서는 진한 장미 향기가 풍겼고 그 짙은 장미 향기는 그 다음날 아침에까지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저는 가끔 사무실에서 나주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나 혹은 율리아 자매님, 그리고 장미 향기에 관하여 이따금씩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무신론자였으며 술과 유흥을 즐기던 저였기에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미쳤구나, 죽을 때가 다 되었구만" 하면서 저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1997년 1월에 율리아 자매님께서 괌과 홍콩에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하시는 그 자리에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여전히 신자가 아니였기에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저는 성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마치고 성당 밖을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탄 채 들어갔던 사람들이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를 받아서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걸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제가 신자는 아니였지만 그때의 그 경험들은 저에게 완전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율리아 자매님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는데 율리아 자매님에게 기도를 받을 때마다 이제까지 저의 생각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차츰 저의 마음속에는 영세를 받아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저는 예비자 교리에 입교하여 1997년 12월 14일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고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와 이번에 결혼할 마리아도 그 당시에는 신자가 아니였기에 사무실에서 제가 나주 성모님에 대한 말을 할 때면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미쳤다." 고 하면서 역시 나주 성모님에 관한 모든 일들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 11월에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마리아 대회에 율리아 자매님을 제가 모시고 가기로 했는데 그만 저의 미국 비자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마리아를 대신 보내기로 했습니다.

나주 성모님에 대한 저의 말을 믿지 않았던 마리아는 저를 대신하여 율리아 자매님을 모시고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1997년 1월에 제가 목격했던 치유의 기적들을 마리아도 역시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체 기적을 목격하신 바 있는 로만 다닐랙 주교님께서 많은 사람들중에서 신자도 아니였던 마리아에게 다가가시어 십자 성호를 그어 주셨는데 그 순간 마리아는 깊은 감동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리는 아주 특별한 체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기에 개신교 신자였던 마리아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 온 뒤에 마리아 역시 12월 14일에 마리아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고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오늘 저희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이 아니였다면 어찌 가능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 두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무한한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저희 두 사람이 나주 성모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신명을 다 바쳐서 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15주년 기념일에 수 신부님과 미국에서 순례 오신 투루 신부님, 인도네시아에서 오신 아크바르 신부님, 그리고 많은 외국 순례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시간도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은총의 시간이지 모릅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 아니였던들 어떻게 우리가 외국에서 순례 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이곳 나주 성모님의 은총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불러주시고 주관하여 주신 이 복되고도 소중한 만남이 천국에 드는 그날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저희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로 합시다. "아멘"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10월 19일
서경원 베드로
서울 용산구 갈월동 8-3 한성빌딩 301호

 


 

나주 스카풀라를 착용하면 가위에 눌리지도 않고
마귀의 공격은 당하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동 이명희 로사인데요.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철야 기도할 때 가끔 와서 바이올린 봉사하는 아이가 바로 저의 아들입니다. 저의 아들도 바로 나주 성모님 집 철야 기도회에 와서 치유를 받았는데 치유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저의 아들은 코피를 자주 쏟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 코피를 흘리면 잘 멎지를 않았는데 병원 약으로도 잘 치료가 되지를 않았기에 나주 성모님 집 철야 기도회에 아들을 데리고 오게 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율리아 자매님께서 기도회에 나오 실 수 있었던 때입니다.

그때는 기도회가 다 끝난 뒤에 율리아 자매님께서 한사람 한사람 기도를 해 주셨었는데 마침 저의 아들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의 아들이 기도를 받기 전에 "엄마, 나 코 아픈 것 이야기 해주세요." 라고 하니까 아들의 말을 들은 율리아 자매님은 다른 사람들에 해주시던 것처럼 아들의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웃으시면서 마치 어린아이들 장난하듯이 아들의 코끝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뜅겨만 주시고 말았는데 바로 그날 저의 아들이 치유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랐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경희대 음대를 다니고 있는데 가끔씩이나마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음악 봉사까지 해 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 알레르기성 체질 때문에 스카폴라를 목에 걸기만 하면 간지러워서 오래 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레오나 자매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이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줄 때마다 목에 걸었다가도 금방 벗어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리고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매주 수요일마다 구치소에 있는 여자 죄수들에게 가서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몸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그냥 몸살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시간이 갈수록 구치소만 다녀오면 정확하게 꼭 3일정도 몸살을 앓는 일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기에 레오나 자매님에게 말했더니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주면서 "에이, 믿든지 말든지 오늘은 성모님 스카폴라를 한 번 걸고 갔다와 봐." 라고 하기에 레오나 자매님 말대로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목에 걸고 구치소 봉사를 다녀 왔는데 정말로 몸살기가 전혀 없기에 '아,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착용하는 것조차도 체험 없이는 안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저희 아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자는 날이면 가위에 눌리거나 마귀가 나타나는 체험을 자주하기에 맨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웠는데  그럴 때마다 "가, 나 철야 기도회에 갈꺼야" 하거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하면서 성모송을 외면 곧바로 사라지고는 한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요즘에는 '아, 요놈들이 오늘은 오겠구나' 하는 감이 온답니다.

그러면 그럴때마다 얼른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목에 걸고 잠을 자게 되면 그날은 가위에 눌리거나 마귀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는답니다.

사실 오늘 누군가 스카폴라에 관한 체험담을 증언하면 나오지 않을려고 했는데 아무도 하지 않기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꼭 착용하세요. 감사합니다.

     

2001년 11월 4일
이명희 로사
서울 삼성동 79번지 홍실아파트 5동 1106동

 

 

이태리에서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순례 온 쥬디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멕시코의 마세도니오 형제님과 함께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스페인어판으로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스페인어판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이 출판되어 나오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주 성모님 메시지 번역 작업을 하던 컴퓨터와 복사기가 다 타 버렸을 때에는 정말로 난감하기 이를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번역 작업을 하던 컴퓨터를 손덴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컴퓨터가 제멋대로 프린트를 뽑아 내는 사건이 벌어 졌기에 모두들 깜짝 놀라서 어떻게든 컴퓨터를 정지 시켜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 놓고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했더니 그제서야 그 누구도 제어 할 수 없었던 컴퓨터가 정지되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나주 성모님께서 함께 하여 주신다는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들을 온전히 봉헌하며 번역 작업을 추진한 끝에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스페인어로 무사히 번역하여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올 5월달에는 이태리에 성지 순례를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카엘 대성전을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미카엘 대성전은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성당 입구에는 그동안 일어난 모든 성체 기적에 관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성체 기적 사진들을 아주 감명 깊게 보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나! 글쎄 성당 박물관 중간 정도에 1995년 율리아 자매님이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된 성체 기적 사진이 떡하니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어머나, 한국 나주 율리아 자매님의 성체기적 사진에 이토록 거룩한 곳에 당당히 모셔져 있다니" 하면서 너무나도 기뻤고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이태리 로마에 머무는 동안 이태리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율리아 자매님과 나주 성모님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에게 "어떻게 율리아 자매님이 이태리 방송에서 끊임없이 나오는가?" 하고 물었더니 "지금 이태리에서는 율리아 자매님과 나주 성모님의 기적에 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기에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이태리에 머물고 있던 토요일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자매님에 관하여 약 한시간 30여분 정도의 내용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몬시뇰 한 분이 인터뷰에서 "교황님과 교황청에 계시는 분들은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나주 성모님을 좋아한다." 라고 하시기에 하루빨리 나주 성모님이 인준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욱더 힘을 합쳐서 더 많은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한국의 나주 성모님께서 하루빨리 인준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나주 성모님께서 "내 눈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메시지 말씀" 이라고 하셨기에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의 전파를 위하여 스페인어판으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1월 24일
Judy Navarette
1412 Golden Gate Ave, Los Angeles CA 90026,  U. S. A

 

 

백배로 되갚아 주시는 주님과 나주 성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안 데레사입니다.

저는 지난 10여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데 그 동안 저와 저의 가정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동안 증언하지 못했던 것은 제가 받은 은총들을 증언하는 자리에서 행여라도 제 자랑을 늘어놓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그 동안 증언을 하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나주 성모님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복받쳐 오르기에 부족하지만 이렇게 나왔습니다.

저의 집은 원래 돈을 많이 벌거나 저축을 많이 하는 그런 집이 아닌데 이번에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에게 너무나도 좋은 집을 사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를 아주 좋은 값으로 팔고 빌라를 사서 이사하게 되었는데 빌라를 살 때에는 나주 성모님께서 싼값으로 살 수 있도록 역사 해 주셨기에 저희 가족 모두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공기가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 앉아 있거나 나다니거나, 아니면 성당에 앉아 있어도 '공기 좋은 곳으로 다시 이사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기에 "주님, 욕심을 부리면 죄를 낳고 죄를 낳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주님, 저의 이런 마음을 바꿔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려 보았지만 공기가 좋은 곳으로 다시 이사해야겠다는 저의 생각이 도무지 바뀌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서울 변두리 공기 좋은 곳에 좋은 집이 하나 나왔다고 하기에 가 보았더니 집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에 앞 뒤 가려보지도 않은 채 덜컥 계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계약을 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차, 이거 내가 큰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살고 있던 집을 내 놓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급하게 내놓았기에 매매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사할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집은 도무지 팔릴 것 같지를 않았기에 저는 그날부터 앉으나 서나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아이구 내가 미쳤지 미쳤어, 도대체 집을 팔지도 않은 상태에서 덜컥 계약 먼저 해 버렸으니... 중도금 치를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도대체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면서 근심 걱정 때문에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중도금을 치룰 날짜가 돌아오자 답답했던 저는 성당에 가서 의자에다 머리를 기대고 앉은채 '예수님! 내가 미쳤어요, 도대체 이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면서 하염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그것은 네가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어머니 마리아께서 하신 일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그런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에이,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하면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주님, 나주 성모님! 10월 20일이 이사하기로 약속한 날인데 어떻게 해요? 그날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순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면서 화살기도만 열심히 드렸는데 놀랍게도 집을 내 놓은 지 23일만에 아주 좋은 값으로 집이 팔리게 되어 중도금과 잔금 모두를 무사히 치루고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으로 이사를 무사히 마쳤을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3천만원이 들어야 한다고 했던 집수리 비용도 2천만원 밖에 들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야말로 그림 같은 새 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들이 오는 사람들마다 "와, 집이 그림같이 이쁘네! 도대체 무슨 은총을 받았어요.?" 라며 모두들 부러워했습니다. '그래 정말로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어찌 이 같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모든 것은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임에 틀림이 없어 그래, 나주 성모님께서 해 주신 일이야.' 하는 확신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동안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한 묵주의 9일 기도를 바치거나 율리아 자매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미사를 드릴때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백배의 은총으로 갚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어려운 일을 당하여 고통 중에 있을 때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너무나도 놀라운 은총으로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동안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수도 없이 많은 은총들을 받아 왔지만 제가 드린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나주 성모님의 인준과 율리아 자매님을 위하여 묵주의 9일 기도를 바쳐드리면서 매달 율리아 자매님을 위한 생미사 2대를 넣어 드린 것밖에는 제가 나주 성모님을 위해서 해드린 일이 정말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 작은 공로를 백 배의 은총으로 축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한 9일 기도를 드리거나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생미사를 드려줄 때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백배로 되갚아 주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은총으로 함께 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저의 오랜 체험을 통하여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제가 한 일이라고는 기도와 미사 밖에 없는데 너무나도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1월 25일
안미자 데레사
서울 도봉구 방학동 730번지 극동아파트 101동 1103호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정말 기적수입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수원에서 순례 오는 형제 자매님들은 모시고 순례를 다니는 운전기사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3번째 순례를 왔을 때 있었던 일인데 자매님들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받아서 차에 싣는 것을 도와 드리려고 차에서 내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삐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아팠던지 남들이 "저 사람 간질병이 있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어떤 자매님이 저의 다리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부어주면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통스러운 다리를 이끌고 차안에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다리가 짜릿짜릿하면서 마치 마취 놓은 것처럼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리가 많이 부어있었기에 도저히 그 몸으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서 수원에 있는 아는 기사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철야기도회가 끝나고 나자 다리가 많이 부어 있기는 했지만 통증은 전혀 없었기에 운전을 하고 무사히 수원까지 올 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날 곧바로 단풍 관광객을 모시고 내장산까지 운행해야 했기에 많이 걱정을 했는데 다리에 통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운행하고 내장산 가기 전에 있는 백양사 휴게소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다리를 걷어 보았더니 다리 좌우로 피멍이 빨갛게 들어 있었습니다.
    함께 온 통장님이 피멍이 심하게 들어 있던 저의 다리를 보시더니 깜짝 놀라면서 "와야, 다리가 그 지경이 되었는데 운전을 어떻게 하겠노?" 라며 매우 걱정스러워 하기에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에 관하여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자매님이 아픈 다리에 바르라고 하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핏트병으로 세병을 주셨는데 그 중에 한 병만 발랐을 뿐인데 전혀 아프지를 않았기에 "오늘 함께 오신 통장님들 중에 몸이 아프신 분들이 있으면 나주 성모님께 한 번 가 보세요." 라고 했더니 "와, 그물 참 신기하다. 그런데 믿을 수 있겠나?" 라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정말 기적수 입니다. 제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 직접 와서 체험해 보세요." 라며 주님과 나주 성모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젯밤 참으로 신기한 꿈을 꾸게 되었기에 오늘 증언하게 되었는데 어젯밤 꿈에 불구덩이가 막 올라오자 다른 자매님들은 모두들 백마를 타고 피했는데 저만 못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자매님이 "형제님, 기도하세요." 라고 하기에 얼른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하자 주님께서 "은총을 받았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를 해서 믿음을 갖도록 해야지 너는 왜 네 욕심만 차리냐?" 라고 호통하시면서 백마를 주시기에 그 백마를 타고 저도 불구덩이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받은 은총을 모두에게 나누어 드리고자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11월 25일
서관식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534 대우아파트 105동 1104호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은 기적수이자 약입니다.

찬미 예수님! 대구에서 온 권 루시아 입니다.
저는 1986년도부터 어려울 때마다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증언하고자 합니다.
저는 원래 허리가 매우 좋지 않은데 괜찮아 졌다가도 날씨만 추워지면 자꾸 도지기에 허리 때문에 그 동안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올 10월에는 허리와 다리가 아니라 다리 밑으로 너무나도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성서 학교 3학년이 되었지만 결석 한 번도 하지 않고 다녔기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성서 학교를 가면서 "예수님, 제 다리가 너무나도 아픈데 어떤 병원을 가면 좋겠는지 가르쳐 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성서 학교에 갔더니 같이 공부하는 자매님이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한군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소개해 준 한의원을 찾아가는 도중에 다리가 너무나도 아팠기에 정말로 몸부림을 치다시피하면서 겨우 겨우 한의원에 도착했는데 가는 도중에 묵주의 기도 15단을 드리면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그 어떤 죄인일지라도 치유시켜 주시는 의사이시니 저의 이 고통을 치유시켜 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지금 찾아가는 의사의 손을 통해서라도 치유시켜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손님이 없기에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침을 맞게 되었는데 약간이나마 통증이 가라 앉았기에 '그래, 이나마도 다행이다.' 하고 위안을 삼으면서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전기 찜질을 했는데 2시간정도 지나자 왼쪽 종아리에서부터 허벅지까지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바늘로 팍팍 찌르는 것 같이 너무나도 심하게 아팠기에 견딜 수 없었던 저는 소리까지 지르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다녀온 한의원이 '혹시 돌팔이 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더니 "침 한방으로 어떻게 단번에 치료가 되겠느냐" 고 하기에 전화로 대판 싸운 뒤 안되겠다 싶어서 저의 동네 옆에 있는 신경외과에 물리 치료를 받기 위해서 집을 나섰는데 너무나도 아팠기에 100미터도 채 걷지 못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버스로 한 정거장도 안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야만 했습니다. 어렵게 병원에 도착하여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 왔지만 계속해서 통증이 가라 앉지를 않았기에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프다는 사실보다도 '아직 나이도 젊은데 남편에게나 아이들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성모님께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고 하소연하면서 울고 있었는데 그때 나주 성모님 집에 함께 순례를 다니던 베로니카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기 전에 "예수님의 성혈로써 이 모든 고통을 완전히 치유시켜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컵을 마신 뒤 또다시 "나주 성모님, 성모님께서 저희들에게 은총의 물을 주실 때 죄인들의 회개와 몸이 아픈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서 이 은총의 물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나주 성모님께서 이 은총의 물로 저의 병을 완전히 치유시켜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컵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지향을 드리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신 뒤 앉아 있기도 힘들었던 저는 누운 채로 묵주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는데 그때 너무나 신기하게도 제가 들고 있던 묵주가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맥박이 팍팍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묵주의 기도를 20단정도 드리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 정도에 눈이 딱 떠지면서 마치 저의 몸이 붕 떠 있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이상한 느낌이 들기에 저의 다리를 쳐들어 보았더니 세상에 겨우 35센티 정도도 들지 못하던 다리가 아무런 통증도 없이 쳐들려 지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다리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올렸다 내렸다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여 보았는데도 전혀 아프지를 않았기에 자고 있던 저의 장부를 흔들어 깨우면서 "여보, 여보 기적이 일어났어요." 하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 준 뒤에 저의 몸을 기적적으로 치유시켜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새벽 5시쯤 되어서 묵주의 기도를 10단 정도를 드린 뒤 다시 한의원을 찾았더니 한의사가 차트를 보여주면서 "당신이 여기 올 때 다리를 불과 35센티 정도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중한 상태였었는데 어떻게 금방 나을 생각을 하냐"며 전날 제가 드린 전화에 대하여 항의를 하기에 "저 지금은 아프지 않아요. 다 나았어요." 라고 했더니 의사가 그러면 어디 한 번 다리를 올려 보라고 하기에 저의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올렸다 내렸다 해 보였더니 "어, 이상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제 어떻게 했어요?" 하면서 아주 놀라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사에게 "종교가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불교라고 하기에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에 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면서 제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치유 받게 된 경위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더니 의사가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물은 성수입니까?" 라고 묻기에 성수는 아니고 그냥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한의사가 "나는 파티마 기적수는 알아도 나주 기적수는 모르지만 꼭 한 번 그곳에 가보고 싶네요" 라며 아주 신기해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6학년에 다니고 있는 저희 아들이 작년 11월 달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그만 친구들이 넘어뜨리는 바람에 뇌진탕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토하면서 어지러운 증상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뇌진탕 증상인 줄을 아무도 몰랐기에 선생님은 저의 아이가 그냥 아픈 줄로만 알고 계속 재웠답니다.

마침 저는 그날 성당에서 김장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와서는 "엄마, 호연이가 이상해요. 자꾸 토하고 계속 잠만 자요." 라고 하기에 "그래 금방 가볼게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라" 했더니 "아프지는 않는데 계속 구토증이 일어나고 잠만 온데요." 라고 하기에 집으로 들어 가 보았더니 아이의 눈동자가 풀려 있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아가, 일어나 앉아 보아라" 하면서 아이를 일으켜 앉혀 놓으면 병아리 졸 듯이 꾸벅꾸벅 졸면서 스르르르하고 넘어지면서 "엄마, 나 잠이 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아이의 증상을 보면서 덜컥 겁이 난 저는 레지오 단원 중에 의사가 있기에 전화로 물었더니 "빨리 신경외과에 가서 CT 촬영을 해 보라." 고 하기에 우선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아이에게 마시도록 하면서 "예수님, 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마시라고 한 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해 보았더니 뇌진탕을 일으키면서 아이의 뇌가 심하게 흔들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아이가 계속해서 구토를 일으키기에 약을 지어주면서 "만약에 아이가 이약을 먹고 자면서 또 토하면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 온 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아이에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먹이면서 "예수님, 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성모님 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한 뒤 "아가, 묵주기도도 드리고 자면 좋겠다. 그러나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했는데 아이가 잠들기 전에 "엄마, 나 양팔 기도로 묵주 기도 15단을 드렸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달 아침 아이를 깨우면서 "아가, 어때 괜찮아?" 하고 물으니 "엄마,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몸이 날아 갈 것 같아요." 라며 거뜬히 일어나서 학교에 갔을 뿐만 아니라 그날 이후로는 아프거나 토하지 않았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이 얼마나 귀하고, 또 놀라운 은총의 기적수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치유의 은총으로 인하여 저희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단순히 기적수가 아닌 약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동산 제15처에 흘려져 있는 혈흔을 보면서 저는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혈임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나주 성모님을 부정하는 사람은 곧 독성죄를 짓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1년 12월 1일
권경숙 루시아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 청마 아파트 231동 1503호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급성 간염도 치유받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온 이 글로리아라고 합니다.

'남 앞에 나서서 말한다는 것이 좀 쑥스럽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증언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함께 순례 오신 회장님이 "육적인 치유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치유가 더 중요하다"며 말씀하시기에 나왔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한지가 올해로 꼭 4년째 되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당시만 해도 저는 냉담 중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영혼을 불쌍하게 생각한 저의 언니가 저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나주 성모님께 순례 오는데 드는 일체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저를 이곳 나주 성모님께로 데리고 오고자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언니의 손길에 이끌려서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오게 되었지만 저는 "에이 전부다 가짜야" 라며 완강히 거부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오고 난 뒤부터는 이상하게도 성당을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에 결국 성당을 나가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의 냉담 끝에 다시 나간 성당이 제게는 너무나도 낮설었습니다. 이미 모든 기도문이 바뀐터라 제가 알고 있던 주의기도는 고사하고라도 모든 전례 양식이 다 바뀌어 있었기에 '아, 나는 이방인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제가 교회를 등진 세월은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님께 투덜거리면서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많은 망설임 끝에 그렇게 다시 성당에 첫발을 내딛게 되어 결국 고백성사도 드리게 보게 되었으며 다시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과 나주 성모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성당을 다시 다니게 되었지만 저의 시어머니는 이사를 하게되면 부정을 없애는 비방으로 방 구석마다 소금을 가져다 놓거나 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으실 때에는 머리맡에 칼을 놓고 주무실 정도로 무속 신앙을 철저하게 숭배하고 계셨기에 이런 시어머니와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하여 저는 너무나도 힘들었으며 때로는 미쳐 버릴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어렵게 다시 시작한 신앙 생활이였지만 제대로 봉헌하지 못하였기에 결국은 많은 내적 상처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부터 평화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께서도 잘 봉헌 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셨고 또한 치유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무속 신앙을 철저하게 숭배하였기에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셨던 시어머님은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아주 기묘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어서 영세를 받고 열심한 신자가 되는 놀라운 은총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말을 잘 듣지 않는 저의 장부는 시어머니와는 달리 급성간염이라는 병을 통해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그때 저의 언니가 급성 간염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저의 장부를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라고 하기에 병원으로부터 2일간의 외출 허락을 얻어서 장부를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장부의 몸 상태가 아주 좋지를 않았기에 장부를 데리고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이런 걱정과는 달리 저의 장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순순히 저를 따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와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치유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세를 받고 교회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건강은 되찾게 되었지만 그러나 경제사정이 아주 좋지 않았던 IMF 시절이였기에 건강한 사람들도 구조조정이다 뭐다해서 직장을 떠나는 마당에 장부는 병으로 인하여 직장일을 못하게 되자 결국 직장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경제적으로는 많이 힘들지라도 저의 가족은 매일 저녁이면 둘러 앉아서 성서를 읽고, 또 묵주의 기도 5단을 함께 바칠 정도로 성가정이 되었기에 마음만은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고 있던 저의 시동생은 "나한테는 성당 나가자는 말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하며 한사코 영세 받기를 거부했기에 권하지를 못했습니다.
    시동생은 저의 가족이 모여서 기도를 할라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했는데 어느 날 후배의 빛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1억 5천이라는 빛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빛더미에 앉게된 시동생은 월급에 차압이 들어가고 사귀던 애인과도 헤어지게 되자 "죽고만 싶다." 며 절망에 빠진 채 많이 괴로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동생에게 "도련님, 이제는 성당에 함께 나갑시다." 하며 권했더니 뜻밖에도 "그래요 저도 성당에 다니겠어요." 라며 선뜻 응하더니 라파엘이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았고 레지오 활동과 성서 공부까지도 열심히 하는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시동생은 비록 갚아야 할 빛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다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24일에는 나주 성모님 동산 예수 성심상 앞에서 기도를 드릴 때 놀랍게도 예수님의 입이 살아 움직이시면서 저희와 함께 기도를 해주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비록 우리들이 분심 중에 기도를 드릴지라도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12월 첫토요일)은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릴 때 제 1처에서부터 제15처에 이르기까지 짙게 풍기는 백합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기에 기도 내내 '그래,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런 것들까지도 온전히 봉헌했을 때 성모님께서는 함께 해주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기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2001년 12월 2일 
이계숙 글로리아
인천시 작전1동 현대1차아파트 105동 102호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던 내가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순례 온 박 수산나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이 너무나도 많은데 빠뜨리지 않고 증언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1997년도 6월 전까지만 해도 나주 성모님께 한두번씩 순례를 다니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순례를 다니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1997년 루르드 성지를 다녀온 뒤에 공지문이 발표되고 난 후부터 매달 첫토요일에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루르드 역시 주교님이 아닌 추기경님으로부터 세 번씩이나 폐쇄령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루르드 성모님께 대한 신뢰와 항구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순례를 왔기에 결국 인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하루에 수만명씩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순례자들이 아주 열렬한 사랑으로 성모님께 기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래, 나주 성모님께 한사람이라도 더 모여와서 기도를 드릴 때 인준이 앞당겨 지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첫 토요일이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본격적으로 다닐때만해도 저는 c형 간염으로 인하여 거의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몸이 나쁜 상태였지만 저는 단순히 치유 받기 위해서 순례를 다니지는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주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실 무렵에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을 받게 되었는데 그 메시지 책 내용 중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그 메시지 말씀을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형제 한사람을 굉장히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를 나주 성모님께서 깨우쳐 주셨기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사를 본 뒤 미움과 죄의 사슬에서 풀려 날 수 있었기에 비록 몸은 많이 아팠지만 회개의 은총으로 죽었던 저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신 나주 성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하여 대략 7가지의 병을 몸에 지닌채 살아오고 있었기에 사실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할 때마다 치유시켜 달라는 청원을 드리지는 않았고 오직 '성모님, 제 영혼의 때를 깨끗하게 씻어 주세요.' 라며 기도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육적인 병들은 나주 성모님께서 언젠가는 치유시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육적인 병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치유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올 7월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오기 전에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려 병원을 찾았더니 대장에 혹까지 생겼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 7월에는 성모님 동산에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하면서 '성모님, 아랫배가 너무 아파요. 그리고 의사가 대장에 혹도 생겼데요. 그리고 제가 위장이 너무 좋지를 않기 때문에 물만 마셔도 소화가 안되요. 그러니 성모님, 치유시켜 주세요.' 라며 저의 아픈 부위들을 나주 성모님께 다 말씀드리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목욕을 하면서 기도를 드린 뒤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검진을 받기 위하여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몸이 완쾌 되셨으니 이제는 정기 검진을 받으러 오지 않아도 됩니다." 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저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라고 다시 물었더니 "아, 글세 아주머니 간염도 깨끗하게 나았고 대장에 생긴 혹도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병이 다 나았으니 이제는 정기 검진 받으로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구요." 라고 말하기에 이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실 앞에서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병은 그렇다치더라도 c형 간염으로 4개월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삶과 죽음을 문턱을 드나들었던 제가 치유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c형 간염을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안된다는 그런 중한 병이였기에 저는 죽고 사는 모든 문제들을 오직 하느님께 맡겨드리면서 "주님, 저의 생명을 언제까지 연장 시켜주실지는 모르지만 제가 살아 숨쉬는 동안 회개할 수 있는 은총을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서 저의 병이 나으리라는 생각은 꿈조차도 꾸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 지속적으로 순례를 다니는 동안 나주 성모님께서는 제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던 죄들을 깨닫게 해 주셨으며 저의 영혼에 끼어 있던 때를 마치 양파 껍질 벗기듯이 손수 하나 하나 벗겨내 주시어 회개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완치 될 수 없다고 했던 c형 간염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들을 깨끗하게 치유 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저를 회개의 은총에서 육적인 치유의 은총으로 인도해 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2월 2일
박영화 수산나
서울 동작구 상도4동 211-4445, 동한빌라 307호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크게 다친 척추가 치유되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전 엘리사벳입니다.

저는 눈이 무척이나 많이 왔던 올 1월 18일 대녀 집에 다녀오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가 그만 눈길에 미끌어져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넘어졌던지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기에 땅바닥에서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던 교우가 택시를 잡아주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척추를 크게 다쳤기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서 지내다가 2월 10일에서야 겨우 몸을 추스리고 병원을 찾았더니 요추 1번이 금이 짝 갔다며 입원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입원치료는 물론이고 약도 받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왔을 때 미국에서 순례 오신 미국 분이 증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분이 무거운 장롱을 들다가 그만 다리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병원을 급히 찾게 되었는데 다리가 너무 부어서 기브스를 할 수가 없으니 일주일 후에나 다시 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왔을 때 가지고 온 성수를 바르면서 일주일 후에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치유되어 있으니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체험담을 증언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저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믿습니다. 성모님께서 고쳐주세요. 성모님 만이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모님의 자비의 손길로 만져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먹고 바르고 했는데 저 역시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병원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않고도 크게 다친 척추가 다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들어가 있는 저의 아들이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노래에 재능이 있었기에 MBC가요제나 KBS가요제를 나가게 되었는데 금상 수상까지 하는 등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면서 재능을 인정 받았기에 노래로써 성공을 거두며 세상을 살아보려는 계획으로 음악실도 차려 보았지만 자기의 생각과는 달리 잘되지를 않았기에 많이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엄마, 도무지 되는 일이 없어요." 하면서 세상을 탓했는데 어느 날 "엄마, 기도를 하면 화가 가라앉아요." 라고 하기에 성모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의탁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은 세상 것과 하느님 중 하나를 선택하고자 많은 시간들을 성체조배실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고통스럽게 번뇌한 끝에 성모님의 은총으로 세속을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하여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도원에 들어가 있던 아들이 올 8월에 글라라 수도원에서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너무 뜻밖에도 인솔자 신부님께서 "여기가 바로 나주지? 어머님 뵙고 가자" 라고 하시기에 모두들 나주 성모님께 들렸다 가게 되었답니다.

아들이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이미 나주 성모님께 봉헌했지만 그러나 오고 싶다고 마음대로 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늘 마음으로나마 봉헌을 하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께서는 아들뿐만 아니라 그 일행들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일행들 모두 나주 성모님 집에 도착하여 피빛 향유를 흘려주신 나주 성모님을 뵙고 묵주의 기도를 함께 봉헌한 뒤 돌아가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봉헌된 묵주를 하나씩 가지고 가게 되었답니다.

얼마 뒤 휴가를 얻어서 집에 오게 된 아들이 "엄마,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야! 내가 성모님께 올 수 없으니까 성모님께서 기묘한 방법으로 불러주셨어" 라고 기뻐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나주 성모님께 봉헌된 묵주를 주면서 "엄마, 선물이야" 라고 하며 묵주를 주기에 향기를 맡아보았더니 세상에, 묵주에서 장미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묵주를 받은 때가 8월 달인데 지금 12월이니까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습니까?" 그런데도 장미 향기가 진동하기에 저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만약에 장부가 속썩이거나 아들딸이 말썽부리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나주 성모님께 완전히 맡겨 드리세요. 저의 아들도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척척 잘되었다면 수도원을 갔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도 혹시 고통스럽거나 힘든 일을 당하여 괴로울지라도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신뢰로써 온전히 맡겨 드릴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12월 2일
전미숙 엘리사벳
서울시 동작구 상도 2동 414번지 건영 아파트 102동 1714호

 

 

심한 허리 디스크가 병원치료 한번도 받지 않고 치유되다니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서 온 이 데레사 입니다.

저는 1995년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저의 장부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저의 가정은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께 가자며 권유하여 그 자매님을 따라서 처음으로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매님을 따라서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와서 철야 기도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저의 몸과 마음이 마치 불타는 듯하면서 기쁨으로 충만해 졌을 뿐만 아니라 52년 만에야 비로소 주님과 성모님을 만났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은혜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기에 고통 중에 계신 나주 성모님께 배은망덕하지 않기 위하여 지금까지 이렇게 순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순례를 다니면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오늘은 몇 가지만 증언하고자 합니다.

저의 딸이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가정 형편상 많은 돈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약간의 비용을 마련하여 딸에 손에 들려서 보내게 되었는데 미국에 간지 석달도 채 못되어서 돌아오겠다고 하기에 저는 그때 얼마나 울면서 성모님께 간절히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딸아이를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하면서 기도했는데 그때부터 성모님께서는 저의 딸과 함께 해주셨기에 어려운 일들이 잘 풀렸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아프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에도 성모님의 손길로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공부를 해야만 했기에 아이를 제때에 가질 수가 없었던 딸이 뒤늦게나마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유산이 되어 "성모님 저의 딸에게 아이를 주세요." 하고 기도 드렸더니 얼마 후에 임신하게 되었는데 예쁜 딸 아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올 2월에도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할 때 함께 데리고 다니던 저의 아들도 아까 증언한 자매님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착하디 착했지만 역시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에 많이 힘들어했는데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입회하게 되었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건강이 회복된 저의 장부가 농장 일을 시작했기에 저도 돕게 되었는데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았던 제가 농장 일을 좀 무리하게 한 결과 몸을 움직일 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파 병원에 찾아가서 검진해 보았더니 심한 허리 디스크와 좌골 신경통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하고 있던 저는 순간 어떤 자매님이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하던 중 백혈병까지 나았다." 고 했던 증언이 퍼뜩 떠오르기에 '그래,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 백혈병도 치유되었다는데 나주 성모님께서 왜 나라고 고쳐주시지 않겠는가' 하고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움직일 수조차도 없었던 제가 율리아 자매님을 위하여 양팔기도로 묵주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기에 저는 그때 율리아 자매님을 위한 기도가 바로 나 자신를 위한 기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 "저의 병을 치유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고 나주 성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정말로 병원에서 심한 허리 디스크와 좌골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병원 치료 한 번 해 보지도 않았는데 치유되었기에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놀라운 은총을 나누어 드리기 위하여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2001년 12월 2일
이 정숙 데레사
대구시 대명 9동 459-9

 


죽음 직전의 딸을 나주 성모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목포 북교동 박 바울라 입니다.

저는 나이는 좀 많이 먹었습니다만 나주 성모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 봉사를 하고 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첫 토요일 날 오후 1시쯤 일어나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위하여 준비를 하다가 전날인 금요일 날 딸이 몸살 감기로 몹시 아팠기에 잠깐 들여다보고 가기 위하여 딸방에 들렸더니 딸이 방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메, 어디 갔을까 이, 혹시 목욕 갔는가' 하고 늘 딸이 목욕비를 넣어 두던 곳을 보았더니 돈이 없기에 목욕 간 것으로 짐작하고는 딸이 돌아오면 점심을 차려 먹일 양으로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거그 박명희씨 집이여요?" 하고 묻기에 "예, 그렇소만 누구요?" 하고 물었더니 "박명희씨가 지금 가톨릭 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있으니 빨리 오세요." 라며 전화를 끊기에 '워메, 이게 뭔일이다냐? 내가 잘못 들었는가? 뭣 때문에 그 애가 가톨릭 병원에 있단 말인고?' 하고 멍한 채 넋을 잃고 않아 있었는데 또 조금 있으니 동사무소에서 "지금 딸이 가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 라며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별일이야 있을라고' 하는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저의 생각과는 달리 딸 아이는 거의 죽은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딸아이가 목욕을 하다가 한기가 들은 몸으로 냉탕을 들어갔다가 냉탕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 중에 한사람도 물에 빠진 딸을 건져 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서운 마음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맨 처음에는 그냥 '수영을 하는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딸아이가 물밖으로 나오지를 않기에 부랴부랴 목욕탕 주인에게 "사람이 죽었다." 고 알려서 주인과 함께 딸을 건져냈는데 딸아이는 이미 시퍼렇게 죽어가고 있더랍니다.
그렇게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게 된 딸아이는 이틀이 지나도록 깨어나지를 않기에 12월 2일 차분한 마음으로 나주 성모님 피눈물 사진과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 그리고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한 성수를 가지고 병원에 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딸 아이의 몸에 나주 성모님 피눈물 사진을 붙여 놓으면서 간호사에게 "죄송하지만 나 이것 놓고 기도해야하니까 딸아이의 몸에 붙여 놓은 사진을 손대거나 떼지 마세요" 라며 부탁해 놓고는 나주 성모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보호자분들 빨리 들어오세요. 지금 딸이 매우 위급합니다" 라고 하기에 병실로 달려가 보았더니 혈압이 뚝 떨어지면서 상태가 아주 위급해 졌기에 "워메, 이제 죽을란갑다. 어쩨야 쓸까 잉" 하면서 울고 있는데 나주 성모님께 함께 다니던 자매님이 들어오기에 "아이, 우리 딸 곧 죽게 생겼어야, 어떻게 좀 해봐야" 하고 울면서 소리 쳤더니 이미 딸아이한테 들러서 장미 향기가 나는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딸아이 몸에 대고 기도를 해주고 왔다며 걱정하지 말고 한시간마다 나주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모든 것을 맡겨드리라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아이, 어떻게든 딸네미 살려야 한께 나 사정 잠 봐주시오. 한 시간마다 들어가서 딸 아이 몸에다 스카폴라를 대고 기도를 해야하니 응급실 문 좀 끌러주시오. 예?" 하고 부탁했더니 "환자한테 좋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지금 들어가서 기도하세요." 라고 하기에 간호사를 따라서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엄마가 왔는데 알아보겠어요.?" 하면서 소리치기에 보았더니 글쎄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딸아이가 눈을 말똥 말똥 뜨고 바라보기에 "엄마다." 하고 소리 쳤더니 순간 정신을 차리고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 "감사합니다. 가망이 없다고 했던 아이를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살려내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이튿날 딸아이가 "엄마, 내가 왜 병원에 와 있어?" 라며 묻기에 "아이고, 십년감수했어야, 너 목욕탕에서 거의 죽게 된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어야." 하며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더니 "엄마, 나 목욕탕에서 그런 일 없었는데" 라고 하기에 "네가 그 동안 죽어 있었으니 아무것도 모르지 나주 성모님의 피눈물 사진과 장미 향기 나는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로 기도해서 네가 살아 난 것이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병원에서도 "딸아이의 폐에 물이 들어갔는데 물이 머리로 올라오면 죽는다." 고 했는데 혈압까지 낮아져서 물이 빠져 나오지를 못하였기에 딸 아이는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죽음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망 없는 상태에 있던 딸아이를 나주 성모님의 피눈물 사진과 장미 향기가 나는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를 통하여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죽을 뻔했던 아이를 살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해 드린 것이라고는 그저 시간 날 때마다 보잘 것 없는 봉사를 해 드렸을 뿐인데 나주 성모님께서는 백배의 은총으로 되 갚아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딸아이가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늘같은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2월 8일
김복림 바울라
목포시 북교동 125-5, 3통 5반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찬미 예수님! 저는 광주 염주동에서 순례 온 정선아 스텔라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면서 「제가 받은 은총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12월8일 성모님의 큰 축일을 함께 지내고 있는 이 시간에 주님과 성모님의 놀라운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원래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그 동안 쭉 서울에서 살다가 작년 3월에 이곳 광주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1998년 몸이 갑자기 좋지를 않기에 병원을 찾았더니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병이 제 몸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모른 채 병을 키우면서 살아오다가 심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이미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몸이 나빠질대로 나빠진 상태였기에 몸무게도 많이 빠져 있었고 때로는 손발마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심한 상태였습니다.
한 2년 정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해 보았지만 겨우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뿐 근본적인 치료는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광주에 살고 계시는 저의 부모님께서 나주 성모님 집을 다니면서 봉사도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시면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부모님들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콧방귀를 뀌면서 귓등으로 흘려들었습니다. 계속적인 부모님의 권유에도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던 제가 작년(2000년) 4월에 부모님의 간절한 권유를 물리칠 수가 없었기에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으며 처음으로 이곳 나주 성모님께도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나주 성모님 집을 다니며 은총의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2000년 8월 말경에 나주 성모님 집에서 성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서 너무나도 심한 소독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체험이 없던 저는 소독 냄새를 맡았다느니, 술냄새, 또는 알코올 냄새를 맡았다고 증언하시는 분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그저 아득하게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제가 실제로 그분들과 똑같은 체험을 하면서도 실감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밤11시쯤에야 집에 도착했기에 '소독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 하면서 혹시라도 '다른 집에서 소독을 하나?'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 늦은 시간에 소독을 할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소독을 한다 할지라도 평소에 저의 집안까지 그렇게 심하게 소독냄새가 들어오지는 않았기에 매우 '이상하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달 병원에 들러서 정기 검진을 받고 약을 타와야 하기에 그런 일이 있고 난 한달뒤인 9월달에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하여 병원에 들려서 정기 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어머나, 세상에! 검진 결과 수치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다음달에 다시 한 번 검진을 해 보아야만 정상으로 돌아 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있으니 다음달에 다시 한 번 검사해 보자." 고 말하기에 의사의 말대로 한달 후인 10월 달에 다시 검진을 받아 보았더니 역시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는 기쁘고도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93년에 결혼했는데 갑상선 항진증이란 질병으로 인하여 결혼 7,8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었기에 마음으로도 많이 힘들었었는데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 죄인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다음달인 11월달에는 아이까지 갖게 해 주시는 참으로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갑상선이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갖게 되어 올(2001년) 8월에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를 무사히 낳아 병원에서 집으로 돌와왔는데 아이가 심하게 딸꾹질을 하기에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하다가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아이의 입에다 조금씩 떨어뜨려 주었더니 딸꾹질이 멈추기는 했지만 20여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이가 또 딸꾹질을 심하게 하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먹이고 아이를 재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아이가 또 딸꾹질을 심하게 하기에 어제 먹였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먹이려고 보았더니 세상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이 바로 젖으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이 젖으로 변화되었다는 남들의 증언을 들을 때마다 저는 '나도 저런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야,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저런 은총을 받을 수 없을거야'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서 은총의 물이 젖으로 변화되는 기적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젖으로 변화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을 마신 저의 아이의 심한 딸꾹질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와 같은 죄인에게도 이렇듯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시는데 여러분들에게는 더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무한하신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1년 12월 8일
정선아 스텔라
광주시 서구 쌍촌동 일신아파트 103동 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