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은총은 강물처럼

 1998 년 증언

title_left.gif

title_left2.gif

   1998 년 증언

   1999 년 증언

   2000 년 증언

   2001 년 증언

   2002 년 증언

   2003 년 증언

   2004 년 증언

   2005 년 증언

   2006 년 증언

   2007 년 증언

   2008 년 증언

title_left3.gif

 

 

  

   2000.gif

cross2.gif 평생동안 낫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 이 오틸리아

cross2.gif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가?' 했는데 ...- 채 비비안나

cross2.gif '님 향한 사랑의 길'을 통한 놀라운 변화 - 강 안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께서는 자폐아도 낫게 해 주셨습니다. - 이 모니카

cross2.gif 나도 모르게 그냥 손이 싹 펴지면서 - 강 유리안나

cross2.gif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던 저에게 평화를 주신 나주 성모님 - 이 마리오

cross2.gif 네가 믿는 하느님은 참 좋구나 - 양 아녜스

cross2.gif 광적이라고 비웃던 남편이 성모님의 향기로 변화되다. - 심계자 수산나

cross2.gif 40년만에 완전히 물러간 음란마귀 - 이종이마리아

cross2.gif 의처증까지 고쳐주신 희망의 나주 성모님 - 율리안나

cross2.gif 썩어 뼈가 들어나 잘라내야만 되었던 다리에 새 살이… - 안용운 수산나

cross2.gif 죽었던 소뇌가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소생하다 - 이설경 루시아

cross2.gif 3cm 이상 짧았던 다리가 길어졌어요. - 김한길 안드레아

cross2.gif 제 가슴을 "쾅" 치는 것 같았어요.- 구영애 베로니카

cross2.gif 율리아 자매님의 삶을 통하여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 고향란

cross2.gif 죽음 직전의 간암환자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 박선이 세라피나

cross2.gif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안아픈데가 없었는데… - 지연순 노엘라

cross2.gif 무서울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젬마

cross2.gif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보호해 줄께 - 안젤라  

cross2.gif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이 성모님 기적수로 - 가브리엘라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나서야 깨달은 진리 - 김 안나

cross2.gif 죽음의 위험에서 살려 주신 나주 성모님 - 안 베로니카

cross2.gif "이판사판이다" 하고 물을 마셨는데… - 조 루피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계속 전하겠습니다. - 제갈 베드로

cross2.gif 매 처마다 진하게 풍기는 장미향기 - 안나

cross2.gif 천사를 시켜 잡아주시는 멋쟁이 성모님 -  최 비비안나

cross2.gif 박사님 마음까지 돌려주신 나주 성모님 - 소 병철

cross2.gif 한강 물 이나 도랑물 보다 더럽다고? - 고요아킴

cross2.gif 빨갛게 선 핏발이 싹 사라졌습니다. - 임 세레나

cross2.gif 그렇게 심하게 하던 하혈이 딱 멈췄어요. - 유 요안나

cross2.gif 만병통치약! - 모니카

cross2.gif 성령의 열매 - 배 바오로

cross2.gif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 마르타

cross2.gif 우리 둘 사이 당신께서 해결해주세요. - 문루시아

cross2.gif 삐뚤어진 마음이 좋아지니 몸도 좋아졌습니다. - 최 까리따스

cross2.gif 걸을 수 없던 남편이 걷게 되었습니다. - 엘리사벳

cross2.gif 뼈가 썩어 녹아내리는 고통 - 이 마리아

cross2.gif 죽은 신경이 살아났습니다. - 로마나

cross2.gif 이제야 제 친 엄마를 찾았습니다. - 테오도로

cross2.gif “밥줘! 국줘!” 하며 움직이지 않으시던 어머니. - 마리아

 

line_b1.GIF

      

 

평생동안 낫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서 순례 온 이 오틸리아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제 자랑이 아니고 주님과 성모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좀 겸손하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이끌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물도 못 났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저에게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아주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나주에는 2001년도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께서는 초창기부터 다니셨는데 처음에 저는 엄마가 미치셨다고 까지 생각했어요. "왜 성당 놔두고 거기까지 가느냐?" 고 반대했었는데 제 친구를 통해서 계속 순례를 오게 되면서 과거에는 차갑던 제 신앙이 열성적으로 뜨거워지게 되었고 참 많은 축복을 함께 받았습니다.

저는 처녀 때부터 치질이 있었는데 아기를 둘 낳고 보니까 걸음을 못 걸었어요.
병원에 가니까 못 낫는다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늘 힘들게 살면서도 죽을 병은 아니기 때문에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낫게 해주시라고 했지 제 병을 낫게 해 주시라는 기도는 안 해봤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우시니까 저를 위해 기도를 하시더라구요.

견디다 못한 저는 8년 전에 수술을 해서 걸음은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작년에 병원에 가니까 군데군데 여러 번 잘라내서 세 번 정도 수술을 더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작년 8월에 나주를 다니면서도 '수술을 한번 더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수술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3년 12월 31일 송년 피정을 받을 때 율리아 자매님이 항문 쪽에 굉장히 고통을 받으시며 걷기가 힘드실 정도였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굉장히 가뿐한 느낌이 들면서 제가 앓고 있는 치질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생동안 못 낫는다고 생각을 하고 낫게 해 달라는 기도도 안 드렸는데도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통해 저같이 못난 사람도 낫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날 같이 피정을 받았던 대구에서 오신 안젤라 형님한테 "형님, 저 치질 나았어요."했더니 그분도 치질이 나았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까지 낫게 해주시려고 율리아 자매님이 그 만큼 고통을 받으셨다니, 저는 너무 송구스럽고 미안하고 또한 감사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찬미 영광드립니다.


대구시 북구 관음동 1275-6
이 오틸리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가?' 했는데 ...

안녕하세요. 저는 경남 거창에서 온 최비비안나입니다.

나주에 순례 온 것은 이번이 4번째입니다.
제 아들이 머리를 다쳐서 날뛰고 다닐 정도로 완전히 폐인이 되었었는데 그 동안 우리 아들도 아주 많이 치유가 되었고 하느님께서는 제게 또 다른 은총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심한 현기증이 있었기에 눕거나 일어날 때 심지어는 어디 나가려고 움직일 때도 너무 어지러워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므로 아주 말할 수 없이 힘들어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가?' '아! 이러다가 데려가시는 건가?' 라고 생각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나주에 순례를 왔다가 기적수를 가지고 가서 아들을 위해서 계속 성수를 뿌리며 기도를 했고 제 자신을 위해서는 제 현기증을 낫게 해달라는 것보다도 내가 언제 주님 대전에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제 이 영혼을 깨끗이 고쳐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는데 한 열흘 전쯤부터 신기하게도 그 심하던 현기증 증세가 싹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은 젊을 때부터 등뼈가 아파서 늘 등뼈를 눌러주고 두드려 달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그 통증이 더 심해져서 몸통전체가 아프다고 호소를 하고 허리까지 아파서 누울 수도 일어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평소에 싫어했으므로 제가 속으로 '성수를 발라줄까? 말까?' 하며 망설이던 차에 성수를 꺼내서 애한테 발라주니까 '그게 뭐냐?' 고 묻길래
기회다 싶어 "여보 당신 많이 아프죠? 기적수 발라 드릴게요. 하느님은 자비하시니까 당신 믿음을 주시기 위해 낫게 해 주실지 몰라요."

그런데 제 남편은 싫으면 막 찡그리고 싫다고 그러는데 그러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기적수를 남편의 아픈 부위에 몇 번 발라주고 이마에 서너 번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발라주고 입을 벌리게 하여 성수를 먹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방금 전까지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누워도 아프고 일어나도 아프다고 '계속 두드리라'고 하던 남편이 나주 성수를 발라주고 먹여준 그 순간부터 아주 편안하게 누울 수가 있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3일째 된 오늘까지 아무말 없는거 보니까 나았어요.

틀림없이 제 남편도 치유가 되었고 저도 치유가 되었습니다.

내 주님 내 엄마 너무너무 멋쟁이, 사랑해요.

여러분 우리함께 정말 뜨겁게 뜨겁게 사랑해 드립시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치유받는 것을 좋다고만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 율리아 자매님 그 고통받으시는데 그분만이 고통받으셔야 된다고 생각 안해요.

그분만이 희생 보속해야 된다고 생각 안해요.  우리 함께 그분만큼은 못하더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우리도 좀더 희생하고 보속하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이렇게 주시는 은혜 받으면서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부담이지만은 감사한 부담이죠. 사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내어놓아야 한다잖아요.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88-75
채 비비안나

 


'님 향한 사랑의 길'을 통한 놀라운 변화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중국 하얼빈에서 온 강 안나 입니다.
한국에 와서 이번에 네 번째로 나주를 방문하였습니다.
중국에 있는 제 집에는 나주 성모님에 관한 책들이 아주 많이 있는데 한국에서 오신 어떤 분들은 그런 책들을 못 보게 하고 어떤 신부님들은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읽어보면 '우리에게 꼭 알맞고 아주 좋은데 한국에서는왜 반대를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중국의 교우들이 제게 "한국에 가면 나주에 꼭 들리라" 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오늘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님 향한 사랑의 길'을 통하여 중국 교우들 간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작년  9월 8일에 성모성당의 교우들과 각 공소의 조선 교우들 2백여명이 성모산에 모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 자매님이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가지고 왔어요.
그 동안 성당의 형제 자매님들과 각 공소의 교우들 사이에 갈등과 불목이 있어 왔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서로 화목을 이루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많이 가지고 오라는 부탁을 받아 이번에 한 50권을 구입하고 생활의 기도책도 70권을 구입하였습니다.
저 또한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고 무슨 욕을 들으면 참지 못했었는데 그 책을 보고서는 용서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꼭 구입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네 탓'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다 '내탓'이지요.
우리는 기도드릴 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모두 '네 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부부간에 "당신이 어떻고 저떻고" 그러는데 율리아 자매님의 책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보고 나면 아마 가정도 화목하고 교회 내에서도 일치가 되고 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국에 가면 나주가 인준되도록 삼종기도 후에 영광송을 꼭 바치도록 중국 교우들에게 전달하며 전교하겠습니다.


중국 하얼빈
강 안나
0451-84502111

 


나주 성모님께서는 자폐아도 낫게 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광주에서 온 이 모니카입니다.

제 아이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입니다.
저는 이 아이 때문에 밤이면 잠을 못 자고 1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이가 밤이면 항상 설쳐대고 온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 정도로 어질러 놓았기 때문에  처음엔 아이가 밤에 잠을 잘 자는 게 너무나 소원이었습니다

낮에도 역시 잠을 자지 않고 그렇게 살았는데
나주 성모님의 집에 다니면서 지난 8월에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는 지금까지 계속 오줌을 싸고 다녔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나오다가 또 소변을 보러 들어갈 정도였기 때문에 학교에 보낼 때도 항상 오줌에 저려있었고 여름에는 사타구니가 다 헐어서 집으로 돌아왔으며 겨울에도 내의가 항상 젖어 있어서 이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이고 14세인데 작년 2003년 1월부터 오줌을 한 번도 안 싸고 학교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가 자폐아이다 보니까 지금까지 '엄마'라는 소리를 못 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으로는 저를 '엄마'라고 한번만이라도 불러 주는 게 소원' 이었지요.
원래 자폐아는 대화가 안되거든요.

그러던 아이가 요즘은 저와 눈을 맞추면서 자주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고
"사랑한다" 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다 나은 것 아닙니까?

아이가 저를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제 마음은 너무나 기쁩니다.
그래서 저도 앞으로 성모님을 '엄마'라고 많이 불러드리고 싶어요.



광주시 광산구 우신동 1602-2 시영 1단지 107/1107
이 모니카

 


나도 모르게 그냥 손이 싹 펴지면서 


염주동에서 온 강율리안나입니다.
저는 마치 풍이 오면 못 움직이는 것처럼 왼쪽 손가락이 뻣뻣해져서 물건을 집으려고 해도 집어지지가 않고 오른쪽 엄지손가락도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의 집에 순례 와서 성시간에 기도하면서 손가락을 계속 바로 펴면 또 오그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기도하기를 '성모님, 이(왼쪽)손은 묵주 드리는 손이고 이쪽(오른쪽) 손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손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계속 봉헌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그냥 손이 싹 펴지면서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무릎 관절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은총을 많이 주셔서 얼마나 많이 치유가 되었는지
처음엔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 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오기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은 문제없이 잘 올라가게 되었고 천천히 걸어서도 잘 내려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차로 치유를 해주고 계시는데 언젠가는 완전히 치유해주리라 믿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광주시 북구 용두동 양산타운APT 113동 903호
강 유리안나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던 저에게 평화를 주신 나주 성모님  


수원에서 온 이 마리오입니다.
저는 그 동안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이 아팠었고 그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아팠었는데 약으로 4, 5년정도 투병했어요.

정신 병원에도 들어갔었어요.
우울증, 조울증 등이 있었고 꿈을 꾸면 악몽만 꾸고 괴롭고 귀에서 환청까지
들렸었습니다.

답답하고 힘들었는데 여기 성모님의 집에 순례 다니게 되면서부터
성모님께서 은총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마음이 따뜻하고 기쁘며 평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매신로 2가 대우아파트 107동 1001호
이 마리오

 

네가 믿는 하느님은 참 좋구나 

저는 북동에서 순례 온 양 아녜스입니다.
1986년도부터 성모님의 집에 다녔어요.
우리 아이들이 조그만 했을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잘 데리고 다녔었는데,
그 당시 교구에서 반대가 있었을 때도 나주에 계셨던 신부님이 저희 본당에 몇년 계시면서 가만가만 조심해서 다니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한동안 나주에 안올 때 저희 시댁과 친정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너무 많이 힘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자동차 면허증을 따기 위해 처음으로 연수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냈고 성모님께서 지켜주셔서 18년간 무사고였던 장부가 그 뒤로 계속 3번이나 연속으로 사고를 냈습니다.

이렇게 차 사고가 나서 정신적인 고통과 물질적인 고통이 많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제가 아들처럼 키운 막내 시동생이 카드로 4천만원을 빚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카드빚 4천만원을 갚아야 했고 동서는 동서대로 저한테 막내 시동생하고 못산다고 해서 제가 그 딸을 또 9개월 간 맡아 키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 사람들은 저한테 자식을 맡겨두고도 싸움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성모님 저는 인간적으로 도저히 더 이상은 할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제가 할렵니다' 하고 말씀드리며 참아냈습니다.

그러던 중, 장부가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쇼크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전대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는데 혈압이 70/40 이상은 더 올라가지 않아서
신부님을 모셔다가 종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8월 첫토요일과 성시간에 성모님집에 왔지요.
와서 '성모님 저 괴로워서 못살겠어요. 왜 성모님은 제 생애 이렇게도 많은 십자가를 주십니까' 하고 기도하면서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성모님 집에 오기 전날 저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미칠 것 같아 못살겠다 싶었고 막 몰아치는 파도 속에 배가 뒤집어질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다음날 나주 성모님의 집에 오니 미칠 것 같고 이상한 기분이 완전히 잠잠해 지면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 왔고 성모님의 현존을 그때 깊이 느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메시지는 수없이 읽었지만 생활의 기도는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그때부터는 생활의 기도를 한가지씩 실천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성모님께서는 생활의 기도를 통해 제가 매일 순간 순간 지을 수 있는 죄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셨고 또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총이라도 있으면 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시아버지가 미워 용서할 수가 없었는데 지난 8월에 나주 성모님께 용서의 은총을 받아 시아버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이제는 다 접어두고 과거는 다 잊고 지금부터 제가 아버지를 다 용서하고 사랑하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했더니 시아버님이 예수님상을 돌아보시고 성모님상을 돌아보시더니 "네가 믿는 하느님은 참 좋다!" 그러시더군요.

저희 시집식구들, 친정식구들 다 구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시집에 와서도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 보지 않았고 친정에서도 받아보지 않았고 큰딸로 자라서 희생만 할 줄 알고 주는 것만 알고 살았는데요 어머니의 품이 너무 그립고 뼈에 사무치도록 보고싶구요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이 너무 좋아요.

나주 성모님 사랑합니다.


광주시 북구 북동 91-23
양 아녜스


 

광적이라고 비웃던 남편이 성모님의 향기로 변화되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주의 수산나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저의 남편이 변화된 모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91년도에 영세를 해서 92년도에 율리아 자매님의 음성으로된 나주 성모님 메시지 녹음 테잎을 듣고 많이 회개를 했기 때문에 여기 꼭 한번 오고 싶었는데 자꾸 미루다가 96년도에 처음 왔습니다. 나주에 와서 저는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도 남편은 제가 나주에 다니는 것에 대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많이 반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2002년도에 처음으로 나주에 오게 됐어요.
그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었는데 순순히 오게 된 것이 참 신기하죠.
제가 나주에서 비디오테이프 두 개를 구입해 갔는데 하루는 아들한테 나주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조용히 물어보니까 나주가 뭐하는 곳이냐고 그래요.
그래서 그 테이프 두 개를 주면서 한번보고 마음이 내키면 엄마한테 얘기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는지 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아들이 아빠하고 함께 가겠다고 하는데 저는 아빠는 아마 안 가실 것 같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큰아들이 남편 직장에 전화를 했는데 가겠다고 했대요.

그때가 10월 19일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신 기념일이었습니다.
성모님 동산에 일찍 도착해서 기도를 드리고 오후 3시에 합동으로 드리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장미 향기를 맡는데 남편은 향기가 안 난다면서 자기는 죄가 많아서 못 맡는가 보다고 하더라구요.
십자가의 길 기도가 끝나고 남편에게 성모님 기적수로 샤워하라고 했는데 안 하겠다고 하는걸 제가 억지로 등 떠밀어서 샤워장에 들여보냈어요.
그런데 샤워중에 남편이 장미 향기를 맡은 거예요.  

그날 철야기도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성모님께서 남편 마음을 돌려주셔서 그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10년 됐는데 10년동안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려고 겨우 주일만 지키고 기도생활이라고는 거의 안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나주에 다녀오고나서 레지오에도 입단하고 매일미사도 일년 내내 계속 참례했습니다.
또 레지오 단원들하고 모임이 있으면 단원들한테 나주에 한번 다녀오라고 권하기도하구요.
하루는 남편과 같은 레지오 단원이 저에게 남편이 묵주기도를 많이 봉헌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예전의 남편은 제가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너무 광적이라고 했고 성모님물 떠가지고 가서 좋은 물이라면서 드려도 절대 안마셨어요.
그런데 남편이 나주에 순례 온 날 마침 외국에서 나주 성모님물을 검사하셨다는 외국 신부님이 오셨어요.
그 날 물을 검사하신 신부님 말씀을 다 듣고 나서야 성모님 물이 얼마나 귀한 물인지를 깨닫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신발장 위에다 조그만 성수병을 올려놓고 매일 아침 집에서 나갈 때마다 성모님물을 한모금씩 마시고 나가시는 거예요.
1년 동안 계속 그렇게 했는데 성모님께서는 제 남편을 치유해 주시고 완고했던 마음도 부드럽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처음으로 남편하고 묵주기도를 했어요.
둘이서 묵주기도 5단을 끝내고 마지막에 성호를 그으려고 십자가에 친구를 하는데 남편이 묵주를 제 코에 갔다 대는 거예요. 그런데 묵주에서 장미 향기가 정말 짙게 나더라구요.

아침에 상을 차려주면서 남편 옆에 앉아서 “진짜로 주님 성모님이 당신 옆에 계시는 거 알죠? 믿죠?” 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라구요.

그렇게 출근을 하고 저녁에 남편이 갑자기 현관문을 확 열고 들어오면서 “여보! 여보! 내 몸에서 무슨 냄새(향기)나!
냄새나!”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까이 가서 맡아보니까 세상에 남편 온 몸에서 장미 향기가 나는 거예요.
아침에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나서 향기가 짙게 났던 그 묵주로 운전하면서 가는 중간 중간에 계속 묵주기도를 했대요.
그런데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에 차안에 장미 향기가 얼마나 짙게 나는지 묵주를 손에 놓고 한참을 울었대요. 그렇게 차안에서 묵주기도를 하다가 그 장미 향기가 온 몸에 밴 거예요.

그 후 부터 남편은 매일 아침 저녁기도를 꼬박 꼬박 하고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원했던 게 남편하고 가족들하고 같이 기도하는 거였거든요. 그 전에 남편한테 함께 기도하자고 몇 번씩 얘기를 했는데도 제 말에 전혀 귀를 안 기울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도 다음날 아침에는 서로 계, 응하면서 묵주기도를 하는데 너무 너무 행복하답니다.



2004년 2월 7일
심계자 수산나
청주시 우암동 덕일 한마음아파트 102동 1105호

 


40년만에 완전히 물러간 음란마귀  

저는 서울  마장동에서 온 이 마리아입니다.
95년도쯤에 어떤분이 피눈물 흘리신 나주 성모님 책을 권해주셔서 한권 구입했습니다.
그당시 저는 그 사진을 보고 ‘성모님께서 우리들의 죄 때문에 오죽 가슴이 아프셨으면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시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굉장히 마음이 아파 많이 울면서 꼭 한번 나주에 가서 성모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제가 20대 초반 미혼일 때 직장에 가다 한 남자가 길가에서 옷을 다 벗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60살이 다된 지금까지 항시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그 영상이 자꾸 떠올라 항상 물리쳐 달라고 울면서 기도를 하고 영성체를 하러 나가려고 하면 또 그 생각이 나고 남자만 봐도 그때 그 음란한 장면이 떠오르는 거예요.
영성체 하러 나가는데도 자꾸 음란한 생각이 나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음란한 생각이 40년 만에 물러갔어요.

기도회 때 이 앞에서 사회를 보는 형제님이 오늘 율리아 자매님께서 음란보속 고통을 받고 계신다고 하시면서 음란한 생각이 많이 드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손을 잘 안들었지만 저는 사람들이 옆에 많이 있는데도 “예!” 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어요.  

그때 음란한 생각이 40년만이 완전히 물러갔어요.

※ 자매님의 남편이 악취가 심하게 나고 발이 문드러질 정도로 심했던 무좀이 나주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에서 기도하고 나서 치유되었는데 그 증언은 빠뜨렸다고 사회자인 레오나 자매님이 보충설명 해줌


2004년 2월 7일
이종이 마리아
서울 성동구 사근동 175

 

 

의처증까지 고쳐주신 희망의 나주 성모님  

율리안나 입니다.
제 남편은 의처증이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치유 받은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안 당해 보신 분들은 잘 모르실테지만 당해보신 분들은 의처증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지금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철야기도 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합니다.

슈퍼도 못 가게 할 정도였으며 아이들 영세시키면 죽이겠다고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편이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이용한 마귀의 장난이었다는 걸 항상 그 사람 눈빛을 보면 알 수가 있었어요.
영상을 볼 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혀로 죄를 짓고 상대방 영혼을 죽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셨는데 남편은 결혼 초부터 16년 동안 살면서 혀로 수도 없이 저를 박해를 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희 성령기도회 회장님이 저희 부부의 힘든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주에  한번 가보라고 하셨지만 남편이 허락을 안해 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저를 나주로 불러 주실 때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때가 되니까 애들 아빠가 직접 나주 성모님 집에 데려다 주더라구요.
재작년 12월 13일과 작년 3월달 첫토요일날 오고 나서 그 후로도 이상하게 월 초만 되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8월달에는 가족들과 함께 왔어요.

그 뒤로도 몇 번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철야기도회에 참석 했는데 지금은 저 혼자라도 아무소리 안하고 보내줍니다.

전에는 희망이 없었기에 제 옆에 극약이 있었으면 먹고 죽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점점 삶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희망 없는 신앙생활이 정말 힘들었어요.

16년동안 주님께서 보이지 않게 저를 잡아주고 계셨지만 너무 많이 힘들어가지고 많이 울었는데 이제 희망이 생겼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만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다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간직하고 주님과 성모님을 믿고 의지하며 이렇게 계속 나주 성모님 집에 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2월 7일
율리안나

 

 

썩어 뼈가 들어나 잘라내야만 되었던 다리에 새 살이…

저는 인천에서 순례 온 작전동 본당 안 수산나입니다.
우리 집 할아버지가 2001년도부터 다리가 자꾸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인네가 되면 원래 다리가 다 아픈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너무 많이 아픈지  막 신경질을 내더라구요.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야지 여기서는 못 고친다고 그래요.
다리혈관에 피가 잘 돌지 않아서 그렇다면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일러주기에  거기 가서 검사를 해보니 허벅지 위에서부터 핏줄이 다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큰 핏줄이 다 끊어져서 발가락까지 피가 흘러 들어가지 않아 발가락이 점
점 썩어 들어가고 있으니까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원을 해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발가락이 더 썩어 들어가는 거예요.
아니 병원에 왔는데 왜 발이 더 썩어들어가냐고 그러니까 의사가 이것은 지금 어떻게 할 수 없고 핏줄을 잇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할아버지 핏줄이 너무 약해서 천상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사선생님, 다리위로 더 썩어 올라오기 전에 발목을 잘라주세요.
지금 자르면 다리까지 다 안 썩어 올라오는 거 아니에요?” 하니까 벌써 이미 다리위에까지 다 썩어 올라갔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정강이 밑에를 잘라야 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정말 기가 막히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한시가 급하다고 수술 날짜를 잡아줬습니다. 밤새도록 잠을 못 주무시고 근심걱정을 하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아는 자매님 두 분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성모님 기적수를 가져 와 가지고 솜에다가 발라서 할아버지 다리에다가 붙여주면서 자매님의 오빠도 성모님 기적수로 나았다고 하면서 믿고 바르라고 주는데 얼마나 마음이 좋던지요.

그런데 의사가 와 가지고 “이게 뭐야? 무슨 물을 척척 발랐어?” 하면서 다 뜯어내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조금 있다가 할아버지 한다는 소리가 “나 다리 안 잘라!”
아파도 그냥 앓다가 죽을 거라고 하시면서 집에 가서 기도에나 힘써 보겠다고  의사가 아침에 회진 돌 때 퇴원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일주일만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고 다시 오세요. 했는데 퇴원하고 그 이 후로 지금까지 병원에 안 갔어요.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나주 성모님 성수만 약으로 생각하고 계속 발랐어요.
솜도 한 뭉치씩 해서 성모님 성수에 적셔가지고 썩어 가는 다리에 계속 발랐어요.

성수병이 작으니까 몇 번 쓰면 금방 성수가 떨어져요.
그런데 성수가 떨어질 만 하면 글로리아 자매님이 한 병, 두병씩 갖다 주는데 그것만큼 반가운 게 없더라구요. 나주 성모님 성수가 우리 할아버지 유일한 약이니까요.

병원에 가서 겉에 썩어서 딱딱한 피부만 살짝 도려내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지금은 많이 나았는데 나주성모님 성수가 얼마나 귀하고 그리운지요.
병원에서 다리를 잘라야만 된다고 했는데 다리도 안 자르고 엄지발가락에 뼈가 조금 보이는데 거기에서 새살이 조금씩 차 올라오고 있습니다.



2004년 2월 7일
안용운 수산나
인천시 작전동 한국아파트 102동 205호

 


죽었던 소뇌가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소생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순례온 이 루시아입니다.

저는 98년 11월 3일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옮겨졌는데 병원에서 소뇌가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했는데 그 후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고생을 했어요.

소뇌가 죽으면 몸의 평형을 못 잡기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에 계속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퇴원을 하고 나서는 난간을 붙잡고 다녔으며 운전하는 것도 후진하거나 주차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2001년 12월 8일에 성모님 무염시태 축일 날 어떤 분의 소개로 나주에 처음 왔는데 향기를 많이 맡고 갔습니다.

1월달에 너무 눈이 많이 내려가지고 집에서 많이 반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너무 오고 싶었기 때문에 올케하고 둘이서 왔는데 눈을 맞으면서도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추우면 뇌졸중으로 다시 쓰러진다고 했는데도 아무 이상 없이 무사히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정말로 믿고 성모님 눈물과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보고 저 때문에  저렇게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셨다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많이 뉘우치고 회개의 은총을 많이 입었습니다.

2002년 2월 2일 첫토요일에 차를 타고 오는데 차안에서 어떤 자매님께서 머리가 굉장히 많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저 또한 소뇌가 죽었기 때문에 평소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어요.
머리사방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맑은 상태가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 자매님의 사정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됐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해줄 수가 없더라구요.

그 자매님은 너무 머리가 아파서 좀 나아볼까 하고 기도하러 간다고 그래서 그 날 저는   출발하는 시간부터 그 자매님를 위해서 기도해드렸습니다.

‘주님, 성모님 이 자매님 좀 낫게 해주세요’ 하고 진심으로 그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렸는데 천안쯤 오는 길에 갑자기 바깥경치가 너무 맑고 깨끗하게 보이면서 제 머릿속도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깨끗해지더니 아무렇지도 않아졌어요.

그리고 그날 나주에 도착해서 철야 기도회를 하는 동안 내내 코끝에서 약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누가 약을 먹나 싶어서 막 살펴보고 물어봤죠.
“할머니, 혹시 약드세요?” 하고 여쭤봤더니 안 드신데요.
여기에 아프신 분들도 많이 오시니까 혹시나 해서 앞 뒤 양옆으로 다 물어보고 살펴봐도 아무도 약을 먹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저 혼자 기도회 내내 약 냄새를 맡은 거예요.

기도회가 끝나고 새벽 4시쯤 성물 판매소에서 스카풀라 몇 십개를 구입했는데 장미 향기가 많이 나니까 너무 기분도 좋고 신기해하면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옆에 앉은 자매님한테 장미 향기가 많이 나는 스카풀라를 구입했다고 막 자랑하면서 향기한번 맡아보시라고 꺼내서 내가 먼저 향기를 맡는데 스카풀라에서 약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 내 코가 좀 잘못됐는가보다 생각하고 옆에 계시는 자매님께 한번 맡아보라고 했더니 자매님은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이상하다 생각하고 집에 와서 다시 한번 스카풀라 냄새를 맡았더니 장미 향기가 다시 또 확 풍기는 거예요.

향기를 맡고 집안일을 하려고 거실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집어넣고 하는데 저는 소뇌가 죽었기 때문에 평형감각이 없으므로 구부렸다가 일어나면 바로 서지 못하고 어찔해서 몸이 흔들렸는데요 그게 없어진 거예요.

저는 원래 구부렸다가 일어나려고 하면 평형감각이 없으니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뭔가를 잡을 생각을 먼저해요.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너무 이상해서 다시 한번 물건을 집어서 똑바로 섰는데 괜찮은 거예요.
다시 또 구부려서 물건을 집고 일어섰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는 고개를 미친 듯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흔들흔들 해봤는데도 아무렇지 않는거예요.
그 이후부터는 두통도 완전히 없어졌어요.

어지럼증도 거의 없어져서 의사가 이제 다 나은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는 나주에 와서 완전히 치유된거예요.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약만 조금 먹고 다른 약은 아무것도 안 먹어요.
나주오고나서 부터는 평일 미사도 가게 됐거든요. 많이 사람됐죠.

그전에는 나이롱 신자고 발바닥신자였는데 지금은 매일 미사도 드리고 묵주기도도 15단씩  드리고 이건 정말 저한테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또 한가지가 있는데요. 하루는 제가 지방에 갔다오는데 넘어져서 왼쪽 발이 겹질렸는데 인대가 늘어나가지고 시커멓고 달걀 반만하게 발등이 부어 오른거예요.

직장에서 하루종일 다리를 디딜수가 없이 아파서 계속 절뚝거리고 다녔거든요. 사람들이 인대 늘어난 것은 오래가니까 치료를 해도 회복되는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해서 정형외과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날 너무 바빠서 병원에 갈 새가 없더라구요.

아침에 성모님 물을 부어오른 발등에 바르고 점심때 바르고 저녁때 또 한번 발랐어요.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에 가려고 보니까 발등이 납작해졌어요. 같은 사무실 직원도 저처럼 인대가 늘어나서 고생하고 있는데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안 나았거든요.

그런데 성모님 물만 세 번 바른 것 밖에 없는데 달걀 반 만하게 부어오르고 핏줄이 터져서 시커멓던 것이 하루 만에 다 나은 거예요.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4년 2월 7일
이설경 루시아
서울 노원구 공릉3동 725

 


3cm 이상 짧았던 다리가 길어졌어요.

안녕하세요. 광주 진월동성당에 다니는 김한길 대건안드레아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통해 받은 은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데 5살 때 오른쪽 다리 정강이 뼈 3군데가 부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왼쪽다리보다 사고난 오른쪽다리가 더 빨리 성장을 했는데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별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신체의 성장이 빨라져 중학교 1학년 말에는 키가 173cm 넘게 되자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길이 또한 차이가 많이 나서 왼쪽이 오른쪽보다 약 3cm 정도 더 짧게 되었어요.

이쯤되니까 학교 다니고 생활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똑바로 서면 오른쪽 다리가 3cm 더 기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왼쪽으로 약간 구부정하게 되고 그 결과 왼쪽 어깨도 삐뚤어졌으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척추까지 잘못되었는지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불량해 보인다고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리고 여름에 제가 반바지를 입으면 눈에 띄게 티가 났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야 너 다리가 좀 이상한데?' 하면 제가 '응. 어렸을 때 사고가 나서 그래'   하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학생이다 보니까 의자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하는데 조금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픈거예요.
아빠 엄마께 말씀드리니까 "어린놈이 무슨 허리가 아프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자고 나도 개운하지 않고 어깨하고 허리가 계속 아픈거예요.

또 어떤 불편함이 있었느냐면 키 잴때에도 그렇고 걸음걸을 때도 절뚝거리면서 걸으니까  친구들이 '야, 이상하다. 오버하지 마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런 말을 해도 부모님은 제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제 마음은 더욱 아파 조그만 일에도 섭섭해하고 슬퍼져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곤 했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제 키가 179cm가 넘었고 키와 비례해서 발의 길이도 그만큼 차이가 더 나니 2학년 때보다도 생활하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몸이 삐뚤어지니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삐뚤어져 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올해 2월 12일 나주 성모님 집에서 있는 목요성시간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왼쪽 무릎에서 맥박이 뛰는 것처럼 툭툭 두두둑 하면서 튀었어요.

그래서 '아! 성모님께서 뭔가 치유기적을 주시려는가보다!' 싶어서 속으로 '주님 뜻대로 해주소서' 하고는 옆에 계셨던 아빠에게 "아빠, 여기(왼쪽무릎) 한번 만져보세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왼쪽 무릎을 오른손으로 만져보신 아빠는 깜짝 놀라시며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과 희생 보속을 통해 제 아들 대건안드레아를 치유시켜주시는군요."하시고는 아빠께서 엄마에게 만져보라고 하셨어요. 엄마 또한 제 무릎을 만져보시고는 눈이 동그래지며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치유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만지는 손을 튕겨낼 듯이 힘차게 뛰던 왼쪽 무릎에서 잠시후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상태가 십여분간 지속된 후에 우두둑 하는 소리와 맥박이 뛰는듯한 신비스런 일이 점차 사라졌구요  그리고는 완전히 치유를 받게 되었어요. 짧았던 한쪽 다리가 길어난 것 뿐만아니라 삐뚤어졌던 등판과 아팠던 척추까지도 깨끗하게 치유되었고 조금씩 삐뚤어져가던 마음도 치유가 되었어요.

저는 앉았다가 일어서면 눈에 뜨일 정도로 제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거든요. 그런데 목요성시간 기도회가 끝나고 딱 일어서는데 편한거예요. 느낌이 너무 좋아 걸어봤는데 왼쪽으로 안기울고 제가 똑바로 걷는거예요.

3월 1일날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까 X-Ray 상 다리뼈 길이는 똑같은데 겉으로 보는 무릎높이가 조금 달랐어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나주성모님께서 치유해주셨을 때 양쪽다리가 겉으로 볼때도 똑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아 원래부터 그럴수도 있다"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이렇게 흔적을 남겨 주신 것 같아요.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좌우 다리 길이가 2.5cm 이상 차이가 나면 다리 저는 것이 티가 나고 골반과 척추가 틀어지기 시작해 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3cm이상 차이가 났으니까 엄청난거죠.
학교에 가면 제 키가 좀 큰 것 같다며 알아보는 친구들도 있어요. 사실 치유받고 나서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니까 키가 1.5cm 정도 더 커졌거든요.
저는 교통 사고를 당한 그 시기에 망막염으로 왼쪽 눈이 완전히 실명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 눈 한쪽이 안보이는 것을 마음아파 하시며 나주 성모님께 많이 간구하셨지만 저는 눈 한쪽이 안보이는 것보다 다리 한쪽이 짧아서 받는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무슨일이 있으면 생각도 불안하게 하고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한적이 많았는데 치유를 받은 지금은 어떤 상황에도 마냥 좋아요.

그리고 그전에는 묵주기도 15단 한다하면 1단하고는 내일은 뭐하지 하고 다른 생각들, 잡념들이 막 생겼는데 지금은 묵주기도를 해도 다른 생각 없이 너무 기도가 잘돼요.

실명한 제 왼쪽 눈도 언젠가는 나주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치유해 주시리라고 굳게 믿으며, 왼쪽 다리 치유를 통해 영혼까지 치유해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 참고 : 1992년 10월 첫토요일날 처음 순례를 온 이후 부모님을 따라서 계속 첫토요일 철야 기도회와 목요성시간 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하였음

2004년 3월 7일
김한길 안드레아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삼익세라믹아파트 104동 1201호

 

 

제 가슴을 "쾅" 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서울 금호동천주교회 구영애 베로니카입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예전의 제 모습하고 지금의 모습하고 많이 달라졌다고 하실 거예요.
저는 밥만 먹으면 살이 굉장히 잘 찌는 타입이예요.
먹었다하면 찌고 항상 몸이 통통했는데요 한번은 어떤 분이 그러시는데 율리아 자매님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드시는데 자매님은 한 그릇 다 잡수시고 함께 갔던 사람들이 밥을 먹고 조금씩 남기니까 그 밥을 다 가져오라고 해서 그걸 다 드시더래요.

그래서 옆에 계시는 분들이 "안됩니다. 안됩니다. 잡수시면 안됩니다" 하니까 다 잡수시고나서 "버려질 영혼을 위하여 먹었으며 또한 그 영양가는 먹지못해 배가 고픈 영혼들에게 가도록 먹었습니다." 하시더래요.

그런데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제 가슴을 "쾅" 치는 것 같았어요.

사실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 한번도 기도해 주지 않았어요.

저는 항상 배가 고프면 배가 꽉 차서 불러야 만이 만족했거든요.
그렇게 저는 저를 위해서만 항상 배가 부르게 먹고 그렇게 통통하게 살면서 단 한번도 배가 고픈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의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저는 '그래 나도 이제 배가 고픈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줘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저는 밥을 갖다가 먹기 전에 '예수님, 제 몸에 필요한 만큼만 제게 먹여주시고 나머지는 배가 고픈 영혼에게 먹여주세요.' 하고 기도합니다.

매일 그렇게 했는데 그때부터 제 살이 점점 빠지는 거예요.
지금도 밥을 먹을 때 항상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까 아무리 먹어도 더 이상은 살이 안찌고 더 빠지지도 않고 이렇게 보통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7일
구영애 베로니카
서울 성동구 금호 4가 62번지

 

 

율리아 자매님의 삶을 통하여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천에서온 고향란 아나스타시아입니다.
저는 애기들이 많아요.  제가 나주성모님 알고 난 뒤부터 세아이를 더 낳았거든요. 그래서 도합 7남매입니다. 그전부터 저는 율리아 자매님이 살아오신 그 삶에 제일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율리아 자매님의 삶 자체를 굉장히 사랑 하셨더라구요.
율리아 자매님 같은 영혼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주 성모님의 발현이 시작된 것 같은데 그것을 보고 저도 굉장히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이를 가질 때마다 율리아 자매님의 삶을 통하여 굉장히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임신해서 낳을 때까지 생활의 기도를 나름대로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했어요.
요즘통계에 보면 젊은 부부가 결혼 후 출산율이 1.5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7남매를 낳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도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8남매를 낳으셨는데 한참 산아제한을 할 때도 이것은 큰 죄악이다 하시면서 그냥 낳으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거든요.
아마도 저희 8남매 중에서도 제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불러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세 아이를 낳으면서 제 주위분들은 저에게 자꾸만 두려움을 주시더라구요. 앞으로는 그만 낳고 인공 피임으로 빨리 막아야되지 않겠느냐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분들이 저를 걱정해서 해주시는 말씀인줄은 알지만 사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막는 길인데 그 막는길을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얘기할까 생각하면서 생활의 기도로 많이 봉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지금 식구가 열명인데 또 그 가족수에 맞게끔 살수 있도록 다 마련 해주시더라구요.
부천에서도 제일 비싼 땅에  3층짜리 집을 지어서 살수 있게 해주셨어요.
하지만 지금보다 덜 주셔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고 제 자신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우리가 굳은 믿음으로 살면 궁색한 삶이 아닌 정말 이런 여유있는 삶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이렇게 주셨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일곱째를 낳고나서 사실 몸조리를 잘 못했어요. 저도 맞벌이를 하고 있거든요.
배가 만삭이 돼서 낳기 직전까지 나가서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름도 못돼서부터 제가 직접 차를 운전하고 일을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로 제 몸에 굉장히 무리가 왔었나봐요.

지난달 첫 토요일 기도회에 오기 전까지 침대에서 내려와 서있으면 뒤꿈치하고 장딴지하고 허리 엉덩이까지 땡겨 가지고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가 그게 풀어지면 움직이고 그럴  정도로 심했었거든요.

그때마다 '주님 성모님, 이렇게 몸에 이상이 오고 산후 몸조리해야되고 하는 과정을 다 거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기 갖기를 싫어하고 그러는데 정말 이 아픔을 저는 온전히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드리면서 그런 영혼들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봉헌합니다' 하고 기도 드렸습니다.

생활의 기도책을 항상 가지고 다니고 보면서 그 기도를 참고로 내 나름대로 그렇게 생활의 기도를 봉헌드렸어요.

지난달 첫토요일날 캄캄해서 어둑어둑할 때 성모님 동산에 도착했는데 눈이 많이 와서 십자가의 길이 굉장히 미끄러워서 올라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는데도 십자가의 길을 했어요.

그때 너무 미끄러워가지고 십자가를 맬 생각은 못했는데 8처에서부터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게됐어요.

8처에서 12처까지 십자가를 매고 갔는데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십자가를 매는 순간 굉장히 가볍다는 느낌이 드는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이상하다 여름같은 때에도 십자가를 매고 가면 굉장히 무겁고 힘이 들었는데 이상하다 왜이렇게 가볍지?' 하면서 12처까지 올라갔는데 그때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듯 제 영혼에 느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어요. 제가 여태까지 살아온 길이 제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께서 함께 하셨다는 거예요.

그 순간 '그래 바로 이거였는데…' 하면서 저는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주위 사람들과 얘기 몇 마디를 하다보면 "저는 아이가 일곱이예요" 하고 말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 반응이 처음에는 다 놀라며 거짓말 아니냐고 하면서 정말 대단하다 대단하다 존경스럽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거북스럽고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마다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면서 그분들께 '나는 믿음이 있고 정말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시대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정말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씀드려요. 또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성모님께서도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또 98년도부터 나주성모님 집에 순례를 다니면서 성모님 물을 계속 먹고 있는데 정말 엄청나게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알레르기 비염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눈, 귀, 목구멍 어디 할 것 없이 다 가렵고 콧물, 재채기 나오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코를 하도 풀어서 얼굴도 심했었는데 그것도 치유를 해주셨습니다. 그것도 사실 제가 지금까지 증언을 못 했었거든요.

지금부터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 하나하나 앞으로 증언하면서 그 모든 것을 주님 성모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더욱 가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7일
고향란 아나스타시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55-11

 


죽음 직전의 간암환자가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신선동성당에 박 세라피나입니다.
저는 성모님집을 다닌지 13개월이 됩니다.

제가 나주성모님을 통해 은혜 받은 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또 성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또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를 좀 부탁드리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제가 순례다닌지 한달만에 은총을 받아 가지고 작년 이맘때쯤에 나와서 증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번에 더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저의 아들이 마흔이 넘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해 가지고 집에서 무위도식하면서 컴퓨터를 끼고 살면서 맨날 고스톱이나 카드놀이를 하면서 햇빛을 안보고 방안에서만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작년부터 나주에 다니면서 아들한테 '한번 가볼래?' 하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안 오더라구요.
그런데 한 넉달째 쯤 돼서 아들을 나주에 데리고 오기 위해 "엄마가 나주에 가서 성모님 물을 떠오려고 하는데 너무 힘이 없어서 혼자서 못 들겠다" 하고 핑계를 대니까 그제야 아들이 오게 됐습니다.  혼자서 그냥 성모님 동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라구요.
저는 처음부터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 맨발로 했어요.
지난달 2월에 날씨가 많이 추웠고 눈이 왔는데도 저는 신발을 벗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렸어요.
1처에서부터 3처까지 십자가의 길을 하면 미끄러져서 뒤로 떨어지고 또 올라가면 미끄러져서 떨어지고 이랬어요.
그때 제가 느낀 게 '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 우리가 보통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할 때 드리는 그런 마음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정말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저에게 깨우쳐 주셨어요.
그리고 경당에 와서 기도를 하는데 또 아들이 나가고 없는 거예요.
기도회가 다 끝나고 나가려고 하니까 내 신발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내 신발을 누가 신고 갔나 하고 찾으니까 아들이 엄마 발이 시려울까봐 신발을 난로에 데우고 품에 품고 있다가 저보고 신으라고 주는거예요.
그 순간 저는 고마움을 못 느꼈는데 오늘 여기 앉아서 기도 드리다가 성모님을 쳐다보니까 그 생각이 문득 나면서 너무 눈물이 나고 우리 아들이 비록 사업에 실패하고 못되게 굴어도 엄마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지극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주에 어떤 분한테서 일하러 오라고 연락이 와서 지금 일을 다니고 있거든요.
한 18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이 직장을 갖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저희 아들을 꼭 좀 기억해 주시고 직장에 잘 다닐 수 있도록 기도 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성모님 기적수를 가지고 가면은 항상 가방에 몇 병씩 넣어서 가지고 다녀요.  
그렇게 가지고 다니다보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지난달에 가져간 기적수를 어떤 자매님을 통해서 서울대학병원에 간암으로 오늘내일하는  사람한테 전해드렸어요.
그런데 그저께 연락이 왔는데 완치가 되어서 퇴원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가 나주성모님께 받은 은총을 감추고 있어서는 안되겠고 우리가 받은 은총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해서 주님과 나주성모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도 한번 가져보시라고 제가 이렇게 나와서 증언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7일
박선이 세라피나
서울 송파구 신천동 7-17 삼성 웰리스 2104호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안아픈데가 없었는데…

안녕하세요. 수원에서온 이름은 지연순 노엘라 라고합니다.
제가 여기 오게된 동기는 제 몸이 너무 아파서였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안아픈데가 없었습니다.
중풍에다가 심장병에다가 그렇게 몸이 너무 아팠거든요.
그러다 한 자매님을 통해서 여기 와 가지고 성모님동산에서 물을 떠갔어요.
집에 가져가서 물을 부어서 먹으려고 하니까 성모님 물에서 향기가 많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물을 부어서 먹고 조금 있으니까 내 몸에서 큰 짐승같은 것 두 마리가 탁 튀어나가더라구요. 그 뒤부터 치유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면허증을 따 가지고 운전을 하면서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배달하는 도중에 신호등 있는 곳이 아닌 데에서 교통순경이 갑자기 튀어들더랍니다. 차가 크게 울릴 정도로 사람이 튕겨나갔는데 하나도 다친데가 없더래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다 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벌금 10만원만 내고 말았습니다. 그 앞전에 제가 나주성모님상을 사서 집에 모시고 성당에 갔다가 나주 성모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감사미사를 봉헌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의 큰 사고까지도 막아 주셨더라구요.
예수님과 성모님께 받은 이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2004년 3월 7일
지연순 노엘라
경기도 수원시 성북동 조원동 성당

 

 

무서울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받은 은총 입니다.)

찬미 예수님
대구 평리본당 김젬마입니다.

저는 95년 6월 30일부터 지금까지 순례를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회개하여 울고 하는데 저는 참 못되서 그런지 회개가 잘 안되더라고요.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께서는 성혈을 흘려주시고 "내 심장을 기워줄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애절하게 말씀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여기에 와서 십자가의 길이라도 맨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전부터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비로소 마음에 회개가 되고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지난달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신발을 안 벗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2004년 3월 달에는 천하에 없는 일이 있어도 십자가의 길을 할때는 신발을 꼭 벗고 하리라 작정을 하고 왔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십자가의 길을 하는데 눈도 오고 땅이 조금 질퍽했습니다.

한 3처쯤 올라가는 데 정말 너무 너무 발이 시려워 나중에는 머리끝이 다 서는 것 같고 머리가 아픈거예요.
그래서 그 고통을 주님을 생각하면서 온전히 봉헌하며 이 자갈의 수만큼 즉, 나와 우리 가족들과 세상 모든 죄인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게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연옥불에 떨어졌다면 지금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은 거예요.
우리 손가락이 불에 조금만 데어도 무척 아프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연옥에 간다면 온 몸이 타고 너무 너무 뜨겁고 견디지 못할 것인데 '나는 죄도 너무 많아 내가 지금 이것도 못 참는다면 만약 연옥에 갔을 때 그 감당을 어떻게 하겠나?' 싶어서 그걸 참고 봉헌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발이 너무 시려워서 감각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렇게 12처까지 갔는데 12처에서 꿇어앉아 묵상을 하고 일어나 한 발을 디디는 그 순간에 그렇게 시리고 아프던 발이 싹 나았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통회가 참 많이 되었어요.

그렇게 통회를 하고 싶어 간절히 기도해도 영혼 깊은 곳까지는 잘 안됐었는데 내 작은 희생을 성모님 동산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사랑으로 봉헌했을 때 어느 한순간 잘못 살아온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제가 제 자신이 무서울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제가 노력을 하고 고치려고 해도 잘 안 고쳐졌는데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은총을 참 많이 입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나주 성모님께 받은 큰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보호해 줄께


부산교구 서 안젤라입니다.
저는 17년전에 나주에 처음 왔는데 그때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신지 5일쯤 되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많이 흘리고 계셨는데 그 당시에 세상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낙태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저렇게 우신다고 하더군요.

율리아 자매님도 낙태 보속 고통을 받으면서 울고 계셨고 율리아 자매님이 받는 고통 테이프에 한 여자가 낙태수술을 하는데 의사가 수술기구로 태아를 막 뜯어내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두배로 부어가지고  갔었어요. 저도 영세를 받기 전에는 낙태를 두 번이나 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말도 못하게 많이 울고 은혜를 받고 갔는데 그 해 12월달에 남편이 엄청난 부도가 나게 되었고 그 다음해 1월 달에 제가 임신이 됐습니다.
그 위에 아들하고 딸이 있었는데 임신이 된거예요.

남편이 사기를 당해가지고 부도가 났는데 아침만 되면 나가서 술을 먹고 한 밤중에 들어와서 저를 구타를 하고 "우리가 야반도주를 하자. 여기서 더 이상은 못산다" 하고 집에는 법원에서 는 집달리가 압류 딱지까지 다 붙였고 책임을 이중 삼중 묻겠다고 하면서 채권단들이 계속 집에 오고 그런 와중에 제가 임신이 된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제가 임신한 걸 알고는 저더러 미쳤다면서 지금 너무나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애를 임신한다는건 말도 안된다고 병원에가서 지우고 오라고 하면서 저를 굉장히 구타를 했어요.
저녁만 되면 술을 먹고 들어와서 저를 때리고 너무너무 힘들게 했어요.

저는 나주에 와서 하느님의 법을 알고 갔는데 임신이 된이상 절대로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날 술이 만취가 된 상태에서 '네가 병원에 안가면 내가 죽여주마' 병원에 안가면 죽인다고 하면서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져와서 제 배에다가 갔다대는거있죠.

그 당시에 중소기업을 했었는데 부도가 5∼6억 가까이 되니 모든게 다 넘어간 상태고 그렇게 되니까 남편의 정신까지 이상해진 상태였어요.

하지만 저는 나주에 가서 '낙태는 살인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순간 순간을 모면하면서 혼자 제 배를 쓰다듬으며 태교를 했어요.
"아가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보호해 줄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잘 자라서 태어나다오." 했어요.

법원에서는 우리 집에 와서 집에 있는 물건마다 다 붙였죠, 채권단들이 책임을 이중 삼중 묻겠다고 하면서 자꾸 오죠. 그런 와중에서도 시댁과 친정에다가는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저 혼자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기도만 했어요.

'예수님,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다 가져가도 되지만 내 자신이 당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이렇게 매일 같이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걸 동네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거든요. '너무 열심히 한다.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집안이다' 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남편을 따라서 야반도주를 하고 채권단들이 와서 빚을 청산한다고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꺼내가고 하는 모습을 동네사람들이 보고 알게 된다면  누구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거죠.
그게 제 자신이 용서가 안되는 거 있죠.

채권단이 와서 벨을 누르면 무서워서 잔뜩 웅크리고 "네. 들어오세요. 사흘 안에 갚겠습니다."
하고 남편은 밤에만 들어와서 저를 구타하죠. 막내를 거의 사십이 다 돼서 낳았기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우리 집앞에는 경찰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할 수 없이 도망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실망치 않고 계속 기도를 했는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어요.

6개월쯤 지나니까 법원에서 '너희 집에 붙인 모든 물건에 대해서 압류를 해제한다' 하는 통지가 날라왔습니다.

그래서 그 집은 완전히 회복이 되어서 저희는 아들을 낳고 10년을 살면서 지금은 성당 가까운 쪽으로 이사를 갔고 2남 1녀의 자녀들을 두고 물질 축복도 많이 받고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이 성모님 기적수로

대전 대연동 본당 가브리엘라입니다.
성모님 기적수로 제 모든 병들이 치유가 되어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제 발에 혹 같은 게 생겼었어요.
병원엘 가니까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래요.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갔더니 그 날 마침 정전이 되어 진료를 안 하더라고요.
집에 와서 성모님 기적수를 페트병에 반병을 넣어 가지고 혹이 난 발에다가 부으면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제 발에 있던 혹이 온데간데없이 깨끗해진 거예요.  

또 제가 일을 다니다 보니까 너무 힘이 들었기에 발을 디딜 수가 없을 정도로 발등이 시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 남은 기적수를 발등에 발랐더니 감쪽같이 나았고 오른쪽 무릎이 튀어나왔었는데 성모님 집 다니면서 저절로 없어졌어요.

여기까지는 제 체험담이었고요, 이제는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가지고 제가 아는 분들이 치유 받은 것을 말씀드릴게요.

제가 아는 언니가 15년 전에 죽기 위해 제초제를 먹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뱃속이 엉망이 돼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하도 딱해서 성모님 기적수 한 병을 담아 주면서 소주잔에 한잔씩 따라 먹으면서  무조건 치유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조금 남겨서 아픈 곳에다가도 바르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조금 의심스러워 잔에다가  기적수를 따라서 손으로 찍어서 만져보니까 물엿처럼 끈적끈적 하더래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먹었는데 가슴(식도와 뱃속)이 쓰리고 아프던 게 싹 나았다고 했어요.

또 그 언니의 남동생이 암으로 고생한다고 해서 2002년도 12월 달에 제가 성모님 집에 처음 와서 떠갔던 물 두 병을 갔다가 줄려고 했더니 그 동생은 나주하고 가까운 목포에 산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분더러 여기 와서 순례하고 성모님 물을 직접 떠가라고 했더니 그 동생은 나주에 왔대요.

그 동생은 앉지도 눕지도 못한, 정말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이었는데 성모님 기적수를 먹고  치유를 받고 영세도 받았다고 합니다.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나서야 깨달은 진리 

찬미 예수님
대구교구 불로본당 김 안나입니다.
저는 3년전 집에 불이 나서 온 몸의 피부 중 60%에 화상을 입고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한참 냉담할 때였는데 그때 저는 정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시내에서 장사를 하면서 사치와 유흥과 세속에 묻혀 살면서 빚도 많이 지고 성모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너무 나쁘고 악습을 많이 가진 철없는 한 아가씨에 불과했습니다.

화상입은 후 1년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다가 제가 우연찮게 나주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2년전일입니다.

그 당시에 저는 회개라는 것은 잘 몰랐지만 올 때부터 차안에서 눈물이 아주 많이 나고 나주에  와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보긴 처음이었는데 너무 잘못했다고,  용서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나 이제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되냐고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악습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오니까 악습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제 마음속에 '악습이 뭘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가 가진 악습이 너무너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열 가지가 넘었는데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왔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것들을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살면서 한달 있다가 또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성령쪽으로 연결이 되어서 그 뒤로 나주를 조금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교만한 생각으로 '여기에도 성령님이 치유해주시고 성모님이 계시는데 굳이 뭐하러 나주까지 가야되나?' 그런 마음속에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 마음속에서 '나주 가봐야 되는데…' '나주에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주에 오려고 한달 전부터 마음을 먹고 있다가 나주에 왔습니다.
성모님께서 부르신다는 느낌이 저는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화상을 입고 나서 항생제와 약을 너무 투여했기 때문에 위장이 아주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그래서 밀가루, 커피 같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항상 위장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을 하는데 제 몸에서 장미 향기가 너무나 많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등도 많이 다쳤지만 왼손도 아주 많이 다쳤습니다.
수술을 한 일곱, 여덟 번 정도 하였는데 성모님께서 저를 지켜주셨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장미향기를 많이 맡았고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하는데 제 마음에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모님 동산을 내려왔습니다.
예전에 성모님 집에 올 때에는 밥을 가져와서 먹었는데 제가 성모님 집에 너무 오랜만에 왔기 때문에 밥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할수 없이 라면을 먹었습니다.
'성모님, 저 성모님만 믿고 먹습니다.' 기도하고 라면을 먹었는데 집에서 먹었더라면 위가 아주 많이 아팠을 텐데 생각보다 위가 많이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자비의 시간에 사회자분께서 "오늘 위장병이 있으신 분들 치유 받으실 것입니다" 하고 말씀 하셨을 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트림이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위장이 요동을 얼마나 치던지 옆에 있는 자매님께 너무나 미안할 정도로 트림을 많이 했는데 지금 제 위가 아주 편안하고 너무너무 깔끔한 기분이 들어서 위장병이 다 나은 것 같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다치고 몇몇 분들은 저를 동정의 시선으로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너무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제가 가질 수 없었고 제가 정말 내적으로 누릴 수 없었던 진정한 주님과 성모님의 뜻과 참 기쁨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처음의 그 상태로 계속 살았더라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제 남은 여생을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님께 영광과 성모님께 찬미를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의 위험에서 살려 주신 나주 성모님 

찬미 예수님
대구 대교구 반야월 본당 안 베로니카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집에 온지 13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제가 나주 성모님께 받은 은총이 너무 많아서 증언을 해야지 하고 나오려하면 제 가슴이 너무 너무 뛰면서 견디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다음에 와서 해야지' 하고 그냥 집에 돌아가 집에 모셔놓은 나주 성모님 상을 보면은   성모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 후회하곤 했어요.
왜냐하면 나주 성모님께서 제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 주셨거든요.

저는 금방 돌아가실 것처럼 새카맣고 피를 토하던 한 할머니에게 성모님 기적수를 가져다가 드렸는데 그 기적수를 드시고 한 3년 더 사셨어요.

또 대구 대교구에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제가 보기에 너무 예쁘고 너무 잘 사시는 자매님 한분이  함께 자원봉사를 했었어요. 제가 1기 였고 그 자매님은 2기 였어요.
그래서 제가 자매님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저와 같은 반야월에서 사신다고 하면서 자기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번 놀러가 한 10분쯤 앉아 있는데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상본을 주는거예요.
제가 그 상본을 보는 순간 '어머, 성모님께서 나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셨네.' 하면서 그 상본을  받아 보는 순간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나주에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나주에 갈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주소를   가르쳐주더라구요. 광주까지 가서 나주에 가는차를 타면된다구요.
저는 그 다음날 당장 나주에 왔어요. 혼자 물어 물어서 주먹밥 세 개정도 만들어 그냥 무작정 광주에 가는 차를 탔어요. 나주에 와서 또 길을 물으며 성모님집 앞에까지 찾아왔는데 그 앞에서 이상한 향기가 났어요.

그때 '베로니카야 여기다. 어서오너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딱 들어오는 순간 예수님 상이 보이고 성모님 상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날이 마침 기념일이었어요.
저는 처음 온 그 날 경당 구석에 앉아 굉장히 많이 회개를 하고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부터 첫토요일 기도회 때마다 계속 와서 은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정말 놀랍고도 고마운 성모님이예요.
지금도 어떤 사람이 나주 성모님집에 "왜 가느냐?" 고 가지 말라고 하면 "나는 나주 성모님집에가서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얼마나 생명을 많이 연장 받았는지 그리고 내가 감사할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 얘기해요.

제가 한번은 눈길에 차를 몰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제 차를 들이받아서 차는 다 부수어졌는데도 저는 멀쩡하게 살아났죠.

또 한번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큰 버스가 제 차를 들이받았어요.
그래가지고 차는 V자로 완전히 부서졌는데도 제 몸은 말짱했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술을 먹고 음주 운전한 기사가 제 차를 또 들이받아 그 자리에서 죽을 뻔했는데 또 살아났죠.

나주 성모님집에 다니는 동안 그렇게 여러 번 차 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으나 나주 성모님께서  몇 번이나 구해주셔서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또 어느 날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곳에 와서 맡은 장미향기를 우리 집에서 까지도 너무나 진하게 주셨기에 이불을 덮어썼는데도 이불 안에서까지 장미향기가 많이 난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몰랐더라면 그 많은 위기에서 어떻게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하마터면 길거리로 나앉게 될 뻔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잘 살게 해주셨고요

지금 저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어떤 자매님 집에 가서 한 20일 전부터 식이요법을 해드리거든요.
그런데 그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적' 책을 1주일만에 다 읽고 기적수를 가져다가 달라고 하여 그 자매님께 계속 드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너무 너무 기분도 좋아지고 너무 좋아졌어요.

1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나서 기운도 없고 기분도 안 좋아서 항상 축 처져 있었는데 계속  기도 드리면서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드렸더니 지금 건강이 아주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에는 잘 몰라서 나주 성모님 물을 많이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나눠 드리고 했는데 지금은   성모님 물 한방울로도 치유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번은 2002년 첫토요일에 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 전날에 공중에서 큰 화분두개가 바로 제 등뒤로 떨어졌으나 저는 다치지 않았어요.
만약에 제가 그 화분을 맞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겠죠.
그렇게 성모님께서는 죽음의 위험에서 저를 몇 번이고 살려주셨습니다.


 


"이판사판이다" 하고 물을 마셨는데…

저는 광주 염주동본당 조 루피나입니다.
저희 남편은 얼마나 완고하고 고집이 센지 함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도 "하느님이 밥먹여주냐?" 하고 항상 옆길로 나갔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한 8년전쯤에 뇌 경색증으로 일을 못하게 됐었어요.
그래서 산으로 운동을 다니고 그랬는데 제가 어느 날 저도 함께 등산가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가면 좋지" 그래서 제가 "나는 무등산은 안따라갈거예요. 제가 가는 좋은 산이 있거든요? 그쪽으로 갑시다." 그러고선 나주 성모님께 봉헌드렸어요.
그런데 길을 잘못 찾아서 한참 헤맸는데 성모님께 계속 기도로 봉헌 드리면서 갔더니 성격이   급한 사람이 종일 배를 굶었는데도 전혀 화를 안 내는 거예요.

그날 성모님 동산에 왔다가 갔는데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그 다음에 영세를 하게 됐어요.

3년 전에는 뇌 경색증이 1차, 2차로 왔는데 딸꾹질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방병원에 갔더니 거기에 대한 약물치료는 없대요.
남편은 찬물도 마시지 못하고 나중에는 더 심해져서 숨 한번 쉬는 사이에 딸꾹질을 여러 번 해버려요.

뜨거운 물을 데워가서 조금씩 드리는데 나중에는 그거로도 잘 안 멈춰지는 거예요.
이제는 아주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대로 죽는가 싶었는데 어떤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 동산에 가자고 왔더라구요.
남편도 함께 성모님 동산에 데리고 가자고 그러는데 그날이 12월 달이라 아주 추웠기 때문에   저는 날씨가 추우면 남편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도 그냥 데리고 가재요.

그래서 보온밥통에 뜨거운 물을 데워서 갔는데 그 물로도 딸꾹질이 안 멈춰지는 거예요.
그런데 오후 3시 30분쯤 아주 추운 시간이었는데 성모님 물을 한바가지 받아서 "이판사판이다"   하면서 그 물을 드렸어요.
그 때 딸꾹질이 치유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구정 전에 등산을 가다가 넘어져서 또 뇌출혈로 다치 셨거든요.
수술에 들어갔는데 저는 아마도 돌아가실 것 같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임종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 어떤 자매님께서 성모님 기적수를 가지고 오셔서 "이것은 기도를 받은 물이다" 라고 하면서 가지고 오셨어요.
그 물을 잡수시고 지금은 거동하시고 오른쪽으로 마비가 왔었는데 혼자서 식사도 잘 하십니다.

오늘은 성모님 동산에 함께 갔어요.
남편을 의자에 앉혀놓고 저는 3시에 십자가의 길을 하려고 갔었는데 지금 남편 혼자서는 소변을 잘 못보고 어느 때는 소변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옷을 젖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십자가의 길을 하고 남편 소변 때문에 부랴부랴 내려왔는데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한참 찾다가 '혹시 나를 찾으려고 십자가의 길로 올라간 것이 아닐까?' 하고 갔더니 그 아픈 다리를 끌고 혼자 십자가의 길을 하시더라구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데 주님의 기도하고 여러 기도문은 지금 반정도 밖에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오늘 나주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을 혼자서 한바퀴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 드립니다.

 


나주 성모님을 계속 전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서 사는 제갈 베드로입니다.

저는 90년도 4월달에 뉴질랜드로 이주를 했고요 나주에 대해서는 그곳에서도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살면서 자주 한국을 방문하는 형제 자매님들로부터 나주에서 가져온 묵주에서 장미 향기를 분명히 맡았습니다.

'그분들이 김포공항에서 오클랜드 시까지 12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성물에서 장미 향기가 난다니 대단한 일이 우리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밤 우리 고국의 나주 성모님 발현 성지에 참석하게 된 것을 대단히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지금 많은 성모님의 발현이 이어지고 있지만은 불행하게도 우리 고국에서는 성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자매님으로부터 나주에서 모셔온 성모님 상을 구입하게 되었는데요 집에 지금도 잘  모시고 있습니다.
성모님 상에서 특별한 징후가 있다기 보다도 저희 집사람하고 가정적인 문제가 있다거나 불화가 있다거나 저희 자녀들 사이에 미움이 있다거나 했을 때는 성모님의 얼굴 모습이 변화되는 것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웃고 계시는 모습이고 어떤 때는 슬퍼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이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반대하고 있는 현대 신학주자 신부님들은 우리 성서에서도 나와있듯이 성령 모독죄는 죽어서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신다면 성령 모독죄가 되는데 성령모독죄를 어떻게 감당하실 것인가 하는 글을 제가 4, 5년전에 나주 성모님 사이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주는 우리 고국의 대단한 성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지로써 인준을 못 받는 현실이 해외에 사는 신자로서 매우 가슴이 아프고요, 오늘도 이렇게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기도회에 뜨겁게 참석해주시고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제 눈으로 확인하게되니 대단히 기쁩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기도회에 참석하셔서 이렇게 끝까지 기도하시고 찬미드리시고 증언하시고 하시는 모습을 보니 대단히 기쁘고 돌아가서도 나주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성모님을 계속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 처마다 진하게 풍기는 장미향기 

저는 대구 만촌성당에서 온 안나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한 10여년전에 알게 되었지만 주위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약해  가지고 그 말을 듣고 제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4년전에 한번 왔다가 그 후로 또 나주 성모님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에 나주에 열심히 다니시는 형제님께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열심히 전하고 나주 성모님을 위한 기도모임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서 그 기도모임에 참석해 가지고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듣고 율리아 자매님의 녹음 테이프를 듣는데 10여년전에 제가 맡았던 장미향기를 진하게 맡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했고 기도하는 내내 제가 회개가 많이 되면서 그동안 제가 나주 성모님을 잊고 살았다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스러워 눈물이 많이 흘렀습니다.

오늘 첫토요일에 기도회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다려져 지난밤에는 마음까지 설레 가지고 빨리 나주 성모님을 만나러 갔으면 하고 왔는데 오늘 와 가지고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데 매 처마다 장미 향기를 진하게 맡았습니다.
특히 9처에서 많은 장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열심히 전할 수 있고 친척, 이웃, 모든 사람들에게 나주 성모님을 전할 수 있는 은총을 성모님께 청했습니다.

 

천사를 시켜 잡아주시는 멋쟁이 성모님

경남 거창에서 온 최 비비안나입니다.
작년 11월 첫 토요일에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왔는데 많은 분들이 저와 우리 아들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지금 우리 아들이 많이 치유가 되고 있습니다.

아들을 처음 여기에 데리고 왔을 때 얼마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지 정말 대단했어요.
저는 여기에 분명 예수님이 계시고 성모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믿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도저히 미안해서 더 이상은 머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도 같이 여기에서 통곡을 하며 엉엉 울었어요.
그러고는 보따리를 싸서 나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우리 멋쟁이 성모님께서 살짝 천사를 시켜서 잡아주시는 거예요.

경당 뒤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던 한 자매님께서 아들이 고함을 지르는데도 저에게 "아니, 왜 벌써 가세요? 여기서 기도 좀 더 해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용기를 얻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여기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에게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고함을 지르면 빨리 나가라고 등 떠밀어 버릴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때부터 성모님 동산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껏 고함 지르라고 데리고 다녔는데 그곳에서 역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걸어서 성모님 동산을 오고 가는 길에 목이 쉬어 말이 안나올 때까지 계속 고함을 질렀는데 저는 마음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어요. 주님과 성모님께서 치유하고 계시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오직 성모님의 사랑을 믿고 '성모님 도와주세요. 저는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하고 방을 얻었는데 방을 얻은 뒤로 아주 얌전한 애가 됐어요.

제가 나주에 온지가 120일이 되었는데 전에는 차를 타고 오고 가고 하면 주변에 전혀 관심 없이 뛰고 소리지르고 했는데 지금은 경당에 오면 고함도 지르지 않고 차 타고 가면 주변 경치구경도하고 오고가는 차도 구경하고 그래서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 정말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박사님 마음까지 돌려주신 나주 성모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천안 원성동본당의 소병철입니다.
그동안 저는 나주 성모님을 통해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현재 교리를 받고 있는 저는 심장 판막증이라는 병을 앓고있는데   작년 5월 달에 제 병명을 알고 지금까지 매월 첫토요일마다 철야 기도회를 하러 왔습니다.

작년 11월달에 저의 형님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담당 박사님께서 “당장 가슴을  열고 수술을 해야 살지 그렇지 않으면 힘들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12월에 종합검진을 받고 수술을 해야할지 안 해야 할지 경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해서 저는 교리를 한참 배우는 단계에서 기도도 잘 할줄 몰랐지만 12월 첫토요일에 나주에 와서 성모님께 수술하지 않게만 해주시라고 간절히 청하며 “성모님, 저 성모님만 믿습니다. 가슴만 열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12월말 병원에 가니까 담당 박사님께서 1월 달에 수술을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 달만 더 약을 먹고 경과를 보고 다시 1월 달에 와서 날짜를 잡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다시 올 1월 첫 토요일에 나주 성모님집에 순례를 왔다가 또 진료 받는 날짜가 돼서 ‘아, 이번에는 정말 수술날짜를 잡겠구나’ 생각을 하고 집사람과 함께 휴가를 내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진료 시간 한 30분쯤 남겨놓고 기다리고 있던 중 어디선가 성모님의 향기가 났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던 집사람한테 “당신 혹시 성모님 향기 못 맡았어?” 하니까 자기도 맡았다는 거예요.
저도 성모님 향기를 맡고 저의 집사람도 함께 성모님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아, 성모님께서 오늘도 나에게 치유를 조금이라도 해주셨는가 보다’ 생각하고는 진료 시간이 돼서 담당 박사님과 면담을 했는데 3개월 있다가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 박사님께서 1월 달에 와서 수술날짜를 잡자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모든 준비를 다해서 올라왔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는 절대로 그렇게 말 한적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 성모님께서 장미 향기를 저와 집사람에게 맡게 해주시더니 박사님의 마음까지 돌려주셨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5월 19일날 최종적으로 검사를 하자고 하셨어요.
앞으로 며칠 안 남았는데 가서 최종적으로 검사를 하기 전에 여러분 앞에 꼭 증언을 하고  가야 다시 재차 검사를 하고 6월 첫토요일에 와서 제가 또 증언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주변도 없지만 이렇게 증언을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충남 천안시 원선동 514-5호 복지빌라 1301호
소 병철

 

한강 물 이나 도랑물 보다 더럽다고?

저는 서울 금호동에서 순례 온 고 요아킴 입니다.
저는 지금 현재 군인인데요, 나주는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서 몇 번 왔었습니다.
그때는 율리아자매님께서 기도회에 나오셔서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기분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맛에 여러 번 엄마를 따라 왔었습니다.
엄마는 나주에 자주 오시니까 저와 대화 내용도 항상 나주 성모님 기적수나 나주 성모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어느 날 저희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그 병원은 산꼭대기에 있었어요.
제가 아버지 병 문안을 갈 때 자전거를 타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내려오는 길은 너무 가파로워 내려 올 때는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야 되는데 그렇게 하면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엄청 내리막길이라서 가속도가 붙어 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예요.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브레이크가 확 끊어져 버렸습니다.
앞에서는 차가 올라오고 있어서 깜짝 놀라 발을 땅에다 대니까 발도 질질 끌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순간 예수님, 나주 성모님, 요셉성인, 천사들 다 불렀어요.
다 부르고 나니까 뭐가 뒤에서 딱 잡는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발을 다시 땅에 대니까 자전거도 딱 멈추고 차도 제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제가 군인이기에 앞으로 또 언제 올지 몰라서 앞에 나와서 얘기하게 됐습니다.

또 한가지는 작년 5월에 제 방에서 향기가 확 나는 거예요.
너무 향기가 진해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았는데 밖에서는 아무 냄새도 안 나고 내 방에서만 향기가 진하게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말씀드렸더니 저희 어머니께서 그 시간에 이런 묵상을 하고 계셨대요.

다리가 썩어 들어가 절단할 수밖에 없는 어떤 분이 나주 성모님 물로 치유를 받아 그분의 부인이 성모님 집에 순례 와서 그 사실을 증언까지 했는데 본인한테 나주에 와서 증언하라고 하니까 나주 성모님 물이 한강 물 보다 더럽고 도랑물 보다 더럽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큰 은총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는 그분의 언행이 너무 슬퍼 가지고 묵상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때 성모님의 향기가 저에게까지 온 거예요.
제 방에 향수는 전혀 없고 향수같은 것도 뿌리지 않았는데 나주 성모님의 그 향기가 한 이틀정도 계속 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시 성동구 금호 4가 1532-11번지
고 영주 요아킴

 

빨갛게 선 핏발이 싹 사라졌습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임 세레나 입니다.
저는 15년 전에 나주 성모님집에 처음 왔었고 2000년도부터 다시 순례를 오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 첫토요일 마다 기도회에 거의 안 빠지고 매달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3월달에 눈이 갑자기 너무 많이 와서 차량 봉사를 하시는 레오나 자매님께 나주에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갔다가 다시 되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출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갈래요" 하고 한달 빠졌는데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되고 '아! 성모님, 제가  열심히 다닌다고 했는데도 제가 이렇게 믿음이 없습니다.' 하고 반성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허리디스크로 탈골이 되신지 한 50년이 되셨는데 작년 성탄 미사 때는   제대로 서 계시지 못하시니까 앉았다 섰다하시고 성당에 가실 때도 몇 번씩 쉬었다가 가시고 하셨는데 성모님 은총의 물을 떠다가 계속 잡수시더니 허리 통증이 없어져서 허리 아프다는 말씀을 안 하신지 몇 개월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당신 대신 꼭 증언해달라고 하셔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 눈은 혈관이 잘 터지는데 혈관이 터지면 피가 고인 것처럼 너무나 보기가 흉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넣고 먹어도 한 14∼15일이 지나야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또 눈에 혈관이 터졌을 때는 병원에 안가고 성모님 물을 눈에 계속 넣었더니 사흘만에 빨갛게 선 핏발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 집에 열심히 오시면 누구나 많은 은총을 받으실 줄로 믿고 나주 성모님 물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 2동 1545 성신빌라 201호
임 은정(세레나)

 

그렇게 심하게 하던 하혈이 딱 멈췄어요.

찬미 예수님!
저는 구로본동에서 온 요안나 라고 합니다.
2월 달부터 증언을 꼭 하고 싶었는데 지금에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오늘이 성모님 집에 순례 온지 만 4년째 되는 날입니다.  
거의 빠지지 않고 4년 동안 오게된 것을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가장 먼저 지향했던 것은 복음적인 성가정 이었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이 둘을 낳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일미사에만 겨우 참례하게 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 같았지만 뭔지 모르게 어두움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믿음도 서서히 없어져 갔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서부터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녔고, 아이들의 신앙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제가 주일학교 교사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갔는데 어느 순간 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어둠이 스며들면서 아이들의 신앙도 점점 없어져 갔기에 저도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와 결혼하기 위해서 억지로 영세를 했기 때문에 결혼 후에는 제가 기도회를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영적으로 갈증이 나고 답답했는데 3년   전에 갑자기 하혈을 하더니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니까 자궁 근종 이라고 하면서 아주 심하기 때문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 진단을 받는 순간 기뻤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핑계가 생겼구나!’ 하고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림을 그려가며 제 상황을 설명하면서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수술하기 전에 기도를 열심히 한번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진단을 받는 순간 기도하라는 부르심 같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크게 불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과 주위사람들이 저보다 더 불안해해서  제가 안심을 시키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어지럽고 눈도 못 뜰 정도로 많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누워있었는데 남편이 인터넷을 통해 나주와 꽃동네에 관한 자료를 뽑아 와 가지고 저에게 보여주면서 “기도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철야 기도회에 한번 가보자” 하고서는 나주를 먼저 왔는데 그 후로 매월마다 나주만 계속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3년을 계속 왔는데 그렇게 심하던 하혈이 멈추고 불에 데인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럽고 어지럽던 증상이 다 없어져서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면 제안에 스며들었던 어둠이 점점 사라지고 아이들은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일이나 공부에 관심이 많을 나이인데도 한번 두 번 세 번 나주에 오면서부터 굉장히 달라지더라고요.
확신 같은 것이 생기고, 저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고 그래서 참 감사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이 다니기 시작하니까 운전기사가 돼서 데려다 주고 하다보니 남편도 여러  번 오면서 많이 변화됐어요.
우선 저 자신도 많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전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사랑도 말과 머리로만 했는데 생활 속에서 정말 남편도 사랑하고 자식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작은 경험들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요, 집안도 많이 평화롭고 좋아지고 어둠들이 다 없어지면서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것보다 그것이 무척 행복이었고 고맙고 감사해서 더 열심히 나주를 오게 되었는데 작년 12월부터 갑자기 다시 하혈을 하기 시작했는데 두 달을 쉬지 않고 하는 거예요.
혈압을 쟀는데 신기하게도 혈압은 정상이었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넘어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2월 첫 토요일에 승용차로 오면서 묵주기도를 하고 오다가 영광송을 하고 십자성호를 긋는데 순간 차가 정신 없이 지그재그로 가는 거예요.
남편이 2차선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에 봉고차가 갑자기 끼어 들어서 봉고차를 피하려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는 정신 없이 지그재그로 간 거예요.
차가 정신 없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데 성모님께서 다치지 않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마음도 여유가 있고 평화로웠어요.

‘예수님, 성모님!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치지 않게 잡아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는데 정말 몇 번을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하던 차가 순간 딱 서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아무도 안 다치고 다른 차가 와서 박지도 않고 잘 피해서 갔더라고요.
그래서 그 순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날 다른 차를 얻어 타고 나주를 와서 철야기도회를 하고는 차에서 물통을 못 가지고 오는 바람에 물을 떠가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어떤 자매님이 율리아자매님께서 기도해 주신 물이라고 하시면서 나주 성모님 기적수 한 병을 저에게 주셔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성모님 옆에다가 그 기적수를 놓고 묵주기도를 드리는데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굉장히 심하더니 그 다음날 자고 일어났는데 그렇게 심하게 하던 하혈이 딱 멈췄어요.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서울시 구로구 구로 1동 주공 아파트 106동 1302호
유 은경 요안나

 

 

만병통치약!

안녕하세요. 저는 청주의 현 모니카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나주 성모님 물이 특효약입니다.
한번은 제가 등 부분에 담이 결렸는데 너무 심해서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그냥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만 했어요.

혼자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성모님 물을 발라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성혈로~” 찬미를 하면서 계속 발랐는데 하루도 안돼서 싹 나았고, 저희 열한 살짜리 아이가 운동회를 하고 난 날 밤에 잠을 자는데 갑자기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서 아이한테 “병원에 갈까? 아니면 성모님 물을 먹을까?” 하고 물어봤더니 “엄마, 성모님 물 먹을래.” 그래서 아이한테 성모님 물을 먹이고 발라주었더니 그 높던 열이 싹 내렸어요.

전에도 저는 아이들이 열이 날 때 성모님 물을 한번 발라서 안 나으면 계속 해서 발라주면 열이 싹 내렸습니다.

또 한번은 아이의 이가 아파서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하고 찬미노래를 부르고 “주님, 감사와 찬미와 영광과 흠숭 받으시고 그 크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하고 감사와 찬미기도도 함께 바치면서 성모님 물을 발랐더니 그 순간에 아픈 것이 싹 낳았어요.

저희 식구가 여덟인데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지금까지 병원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이 토목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오면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성모님 기적수를 다리와 허리에 발라주면 남편은 “발라서 시원하고 30분 안에 다 낫더라.” 고 해요.

여러분들도 운동하고 나서 팔과 다리에 발라보세요.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하면서요. 한번 발라서 안 나으면 계속 발라보세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성혈로…” 하면 그것이 바로 만병통치약인 것 같아요.


 

 

성령의 열매

마산에 살다가 나주로 이사 온 배 바오로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설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영광 돌려드리겠습니다.
나주 성모님 집은 2년 전부터 순례를 다녔는데 많은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망설이다가 6월 달에는 제 차례가 된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
전에 저는 마산에 살면서 백화점에 근무를 했습니다. 상당히 꽃 속에 사는 직업 속에서 10여 년간 근무를 하다가 백화점을 나오고 조그만 여관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돈벌이가 되긴 했지만 제가 하는 곳이 너무나 유흥지인 곳이다 보니까 저에게는 잘 안 맞았습니다.
그러다 다단계를 했는데 다 말아먹고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왔을 때만해도 자식이 둘이 있었고 아이를 더 가질 생각도 안했는데 2년 전 성모님 집을 다녀가고 난 뒤에 아이가 딱 들어선 거예요.
제 나이가 지금 마흔 둘인데 지금 이 나이에 또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지만 성모님의 피눈물을 보고 난 뒤에 낙태는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가 어려움에 처하다 보니까 마산에 살면서도 수시로 나주 성모님께 다녀왔습니다.
기도회도 참석하고 나주에 와서 성모님께 은총을 구했는데 막상 많은 어려움들이 더 심하게 오는 거예요.
그럴 때일수록 더욱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고 하다보니까 이렇게 나주까지 이사를 올수 있게 이끌어 주신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성모님 동산에서 울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도 많이 드렸습니다.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성모님이 제 뒤에서 향기로 힘을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나주에서 자장면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자장면 배달이 그냥 자장면 배달이 아니라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실은 자장면 배달이거든요. 그래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장면 배달 통을 들고 갈 때  먼저 엄지손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주님, 성모님 이 음식에 무한히 강복하시어 이 음식 먹는 모든 이들의 영혼 육신 깨끗이 치유하여 주소서. 아멘.”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나 현관문을 열 때에는 “주님! 무디어져 굳게 닫힌 저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어 진실한 회개로 천국 문이 열리게 하소서. 아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나 현관문을 닫을 때에는 “음란과 탐욕과 교만의 마귀가 넘보는 사제관 창문을 꼭꼭 닫아주시고 영혼육신에 성령의 갑옷을 입혀주시고 엄마의 망토로 감싸주시어 삼구전쟁에 승리하는 사제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하고 생활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니까 일어나면서부터 매 순간  정말 생활의 기도화가 입에 베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어떤 것을 깨달았는가하면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혀져야 한다는 말씀  이시더라고요.

전에는 대기업 백화점에서 근무도 했고 나름대로 여관도 운영해 보았고, 좀 잘나간다고   자부하면서 넥타이 매고 폼만 잡았던 저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저는 정말 음란하고 교만하고 탐욕에 빠져서 정말 죄라는 죄는 다 짓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쁜 여자만보면 내 여자 만들고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예쁜 여자들을 보면 “저 예쁜 사람처럼 제 영혼도 예쁘게 가꾸어주세요.” 하고 생활의 기도가 되더라고요.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온전히 나주 성모님께 맡기고 의탁하고 매달려보세요.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이 서서히 변화가 됩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축복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주어진 고통이 정녕 행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나가고 가진 것이 넉넉할 때에는 이곳에 와서 기도를 잘 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통해서 저희들을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우리가 더 죄악으로 물들어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통해서 너는 내 곁으로 와야 한다. 그 부르심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주시고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시기 위한 준비과정이니까 어려워 마시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저는 주머니에 항상 나주 성모님 팜플렛을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이 팜플렛을 천주교 교우의 집을 표시한 십자 표시가 있는 곳이면 항상 현관문틈 사이에  한 장씩 꽂아놓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이것이 나주 성모님께 피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제가 나주본당에 다니면서 그 분들이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려고 하다 보니까 정말 성모님 말씀대로 눈멀고 귀가 먹어서 믿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교황님 앞에서 성체 기적이 일어났고 교황청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배달 갔다가 교우들 가정의 현관문에 꽂아 놓고 옵니다.
우리들 각자 한사람이 세 사람에게만 전해도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교님 말씀한마디에 순명을 잘 하듯이 우리의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시며 호소하시는 그 메시지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전하시면서 팜플렛도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안녕하세요.
부산의 배
마르타입니다.
성모님 집에 순례 다닌 지는 1년 반 정도 됩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내적, 외적 치유의 은총을 많이 받았기에 함께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외적으로는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병이 너무 많았는데 당뇨는 기본이고요  심장병, 근 무력증, 갑상선 이런 병들이 있어서 길을 가는데도 5분 이상을 못 걸었어요.  
걷다가 쉬고 조금 걷다가 쉬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게으르다”는 말부터 온갖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 집에 와서 저의 상처와 그런 병들이 치유되었는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니까 하나씩 하나씩 치유가 되었습니다.
전에 제가 교통사고로 목과 허리를 다쳤는데 나주 성모님 집 다니면서 성모님께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나주에 다니기 전에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회 같은 곳에 많이 다녔어도 전혀 낫지 않던 것들이 나주에 다니면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또 제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잠시 간호하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어머니 머리맡에 두고 기도를 하는데 아주 크고 뚱뚱한 마귀가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내적으로 받은 은총은 전에 순례 오는 차 안아서 어떤 자매님이 자기는 나주에 다니면서 성체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대요.
그래서 영성체 할 때나 성체 예수님을 생각만하면 너무나 가슴이 뛴다는 그런 놀라운 말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어머나! 저런 신심은 유명한 성령 봉사자님들이나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평범한 우리 신자들에게도 그럴 수가 있구나!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마음에 두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이 나주에서 구입한 예수님의 성혈 상본을 갖고 계시 길래 그 당시 제가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상본을 잠시 빌려 ‘예수님, 너무나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더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성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전에는 그렇게 성체조배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됐는데 너무나 성체조배가 하고 싶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면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도 드리게 됐고요, ‘전 세계 성당에서 외롭게 예수님 홀로 계시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의 성혈 상본을 보고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게 성체조배를 하고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를 눈물과 피눈물로 부르시고 고쳐주셔서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시고  내적으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드립니다.


 

우리 둘 사이 당신께서 해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문 루시아입니다.
저는 2002년 8월 15일 예수님께서 성모님 동산에 성혈을 많이 쏟아주신 그 다음달에 왔다가 집에 돌아가서 아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현재 아들은 대학졸업 후에 직장에 한번 들어갔다가 마땅치 않아서 그만두고 집에서 계속 쉬고 있었는데 제가 아들에게 “나주에 한번 안 가볼래?” 하고 얘기를 했더니 10월 달에 혼자 다녀갔는데 그 뒤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성가대에서 함께 봉사하는 자매가 시댁식구들 때문에 신경을 너무 써서 머리에 탈모증이 생겼는데 그 자매가 저에게 “형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줘요.” 하기에 제가 기회가 왔다싶어서 성모님 물을 한통 떠다가 주면서 “이 물을 먹고 바르라” 고 주고 나서 그 뒤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자매를 만나 괜찮은지 물어보니까 제 말대로 성모님 물을 먹고 발랐더니 다 나았다고 하더라고요.

또 제 남편은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주벽도 상당히 심해 술을 먹고 나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서 나쁜 욕이란 욕은 다 하는 사람이예요.
제가 30년이 넘도록 그 사람과 함께 살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지난번에 나주에서 철야 기도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부터 남편이 아무리 나에게 뭐라 해도 내가 해야 할 도리는 해야 되겠다’ 하는 결심을 하고 남편 자고 있는 발밑에다가 절을 하면서 ‘정말 이제부터는 저도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로 살겠다.’ 고 결심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여보, 오늘 저하고 얘기 좀 해요.” 했더니 남편이 원래 눈을 잘 안쳐다 보는데 그 날은 함께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여보,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제가 다 잘못했어요.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났더라면 더 잘 살았을 텐데 나 같은 여자 만나서 당신 너무너무 고생 많이 하셨으니 당신 말씀 모든 것을 그대로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남은 생을 사랑으로 기쁘게 살아야 당신과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하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남편이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 말도 안하더라고요.


 

삐뚤어진 마음이 좋아지니 몸도 좋아졌습니다.

부산 구포의 최 까리따스입니다.
저는 커온 과정이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았는데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영적인 치유를 많이 받았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가난한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대차셨지만 욕을 너무 잘하시는 분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성장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전혀 없었고 엄마나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그런 마음이 없어지고 분노, 미움, 질투, 판단, 거짓말, 남을 불신하는 마음 등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또 나주 성모님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모님께서 제가 그동안 거짓말을 많이 하고 이중마음으로 살아온 모습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삐뚤어진 마음이 점점 바로 돌아오면서 몸도 좋아졌습니다.
이중마음을 가지니까 분노와 미움과 질투심이 있었는데 내 마음이 솔직해 지고 나니까 미움이 없어지고 분노도 없어지고 치유 되니 다른 사람이 저에게 나쁜 소리를 해도 내 자신이 인정이 되고 자나 깨나 인상도 밝아지고 좋아졌습니다.

육적인 질병은 나름대로 우리 마음을 잘못 써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인 치유보다는 먼저 영적인 치유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걸을 수 없던 남편이 걷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경험한 체험담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의
엘리사벳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나주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주의 성모님께서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나주에 왔을 때 소문대로 정말 성모님께서 많은 은총을 내려 주시고   성모님의 향기와 성모님의 현존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서 저희 남편한테 당신도 꼭 한번 한국 나주에 방문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내가 꼭 나주에 가야하는 이유가 무어냐?” 하고 묻더군요.  
남편은 이슬람교를 가진 분이기에 가톨릭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인데다가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해서 걸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한테 애원 하다시피해서 작년 8월 달에 나주 성모님 집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나주를 방문했을 때 성모님 동산에서 기적을 보았어요.
오색찬란한 태양이 도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남편을 막 찾아 헤맸어요.
왜냐하면 남편이 이것을 보아야만이 나주 성모님께서 왜 당신을 불러주셨고
우리가 나주에 왜 왔는지를 체험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남편의 걱정을 조금 했었어요. 그런데 남편도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태양이 돌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보고 있었습니다.

안과 의사인 남편은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고 걸음을 걸을 수가 없는데도 여기 저기 구경삼아 다니다가 성모님 물로 발을 씻고 담그고 마시고 하시더니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너무너무 침묵 속에 있었는데 남편의 다리 통증이 사라져 걸음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남편이 가톨릭으로 돌아온다는 가망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톨릭과는 정 반대이기에 그 종교가 예수님 성모님을 믿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이 나주 순례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남편에게 “누가 당신한테 그런 은총을 주셨나요?” 하고 물어보니 남편이 그냥 “야!야!야!”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제가 마음속으로 굉장히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성모님! 나주의 성모님! 제발 부탁이니 저의 남편한테 당신의 그 사랑을 마음속에 담아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위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주에서 모시고 온 성모님 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향기가 너무나 많이 났습니다.
저만 맡은 것이 아니라 남편도 너무나 진한 향기를 맡았기에 서로 바라보면서 “아! 정말 성모님의 은총이구나!” 하고 서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제가 나주에서 모시고 온 성모님 상 앞에서 9일기도를 시작했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의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에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9일 기도를 하는 도중에 남편이 아침 6시만 되면 일어나서 가톨릭 방송과 음악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걷지도 못하던 다리는 치유되었지만 다른 곳이 조금 안 좋아지셨어요.  
우리 남편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남편이 예수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픈 남편을 나주 성모님께 맡겨놓고 나주에 오게 되었는데요,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 성모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성모님, 제가 나주를 꼭 가야하는데 남편이 아프면 제가 갈수가 없으니 성모님 당신께서 이 곳에 계시니까 당신께 맡겨두고 가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더니 남편의 차도가 좋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성모님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한국에 사시니까 나주 성모님 집에 자주 올 수 있는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너무나 많은 은총과 사랑을 주시는 나주 성모님 잊지 마시고 항상 성모님께 의탁하고 기도 많이 하세요.


 

뼈가 썩어 녹아내리는 고통

반갑습니다.
저는 부산의 이
마리아입니다.

1990년 6월 24일에 나주 성모님 집에 처음으로 왔는데 제가 나주 성모님 집에 온 지는 만 14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제가 심장수술을 받고 난 이후에 오른쪽 갈비뼈가 썩어서 녹아내리면서 결핵성 골수암이라는 병명으로 대수술을 4번이나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메리놀 병원에서 1990년 4월 사형선고를 받고 퇴원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느님을 모르는 외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불교 신자였고 점도 보러 다녔고 전혀 하느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차피 죽을 몸, 부처님도 살리지 못하는데 이제 퇴원해서 나가면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 나가야 되겠다는 깊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는 도중에 제가 성당을 나가는데 어떤 한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시는 비디오테이프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뼈가 썩어 녹아내리는 고통으로 너무 너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는 잠을 자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밤에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시는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는데 테이프를 트는 순간부터 끝나는 그 순간까지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인인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성모님 피눈물 테이프를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성모님께서 저렇게 피눈물을 흘리고 계시는가?’ 하면서 가슴을 치고 땅을 뒹굴면서 울고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때 저의 가정은 제가 죽어가고 있었고 남편이 집을 나가서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정이 엉망이었으며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테이프를 보고나서 나주가 너무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어떻게 하면 나주를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하고 제 마음으로 간절히, ‘정말로 성모님께서 살아계시면 저를 나주에 한번만 불러주세요’ 라고 비디오를 보면서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6월 24일 어떤 자매님의 차를 타고 나주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왔는데, 그때는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회에 나오셨고 그 당시 자매님의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 있었습니다.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보고 너무 너무 회개를 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몰랐을 때 죄도 많이 지었고 낙태도 많이 했고 제 죄가 너무 커서 어떻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서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한이 가득 차서 남편을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던 그 마음을 도저히 씻을 길이 없었는데, 나주에 와서 남편을 미워한 것에 대해 너무 너무 회개가 되면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용서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성모님 집에 다녀 온 이후로 제가 계속 살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주에 올 때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녔습니다.
 
부산에서 나주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왔다 가고 난 그 다음 날부터 나주 성모님집이 너무 너무 오고 싶어 사, 나흘 만에  미친 듯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주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성모님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내 죄를 씻고 닦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성모님께 제가 숨쉬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저를 나주로 불러달라고 기도하면서 계속 나주에 왔습니다.
 
그때 저는 뼈에 구멍을 내서 고름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고 소변도 안 나오고 대변도 안 나오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물 한 방울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뼈와 가죽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오면 이상하게 입이 달면서 물을 먹어도 괜찮고 음식이 굉장히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주에 한 번 왔다 가면 소변이 나오고 또 한 번 왔다 가면 대변이 나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를 계속 다니면서 마음 안에 있던 미움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원수 같던 남편도 용서가 되고 나주에 올 때마다 자꾸 제 마음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는 것을 점점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람을 피우던 남편이 어느 날 새 사람이 되어서 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뒤 저는 지금 성모님 집에 14년 동안 다니면서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오로지 나주 성모님만 믿고 나주에 다니면서 성모님 기적의 샘물만을 먹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주에서 있는 첫 토요일 철야기도회에 단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에 “고통을 받을 때만 구명대에 매달리듯이 매달리지만 구하던 은총을 받고 나면 다시 비참한 생활로 되돌아간다.”고 하신 어머니 메시지 말씀과 어머니께서 저에게 주신 이 모든 은총에 배은망덕하지 않기 위하여, 또 어머니께 감사드리고자 다닙니다.

나주를 계속 순례 오면서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은총을 주셔서 저희 가정은  성가정을 이루고 저도 이렇게 보시다시피 너무나 건강하게 어머니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그 모든 은총에 대해 감사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끝으로 한 마디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는 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병과 잘못 사는 모든 것은 제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뀌니까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 또 이 죄인 때문에 고통 받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은 신경이 살아났습니다. 

광주에서 사는 로마나입니다.
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작년 이맘때 운동하러 나갔다가 동생하고 이가 부딪쳐서 잇몸에 피가 났습니다.
병원엘 갔는데 지금은 알 수 없으니까 2주 후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주후에 가보니까 치아는 살아있지만 신경이 죽은 것 같다고 하면서 색이 더 변하기 전에 치료를 해서 지금 치아 색깔만이라도 유지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서 치유를 해주실 거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서 계속 나주 성모님 기적 성수를 아이의 이와 잇몸에 발라주었습니다.

매주 목요 성시간에 아이와 함께 와서 성모님께 기도하고 성체 내려오신 자리에서도 함께 기도하고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면서 아이의 이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지향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2주 뒤에 다시 병원에 갔더니 신경이 약간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그 후 차츰차츰 색깔이 돌아오더니 1년이 다 된 지금 아무 이상 없이 원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제 친 엄마를 찾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김 테오도로입니다.
저는 2002년 8월 15일 성모님 동산에서 내려주신 예수님의 성혈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장미 향기는 말도 못하게 많이 체험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나주 성모님 집에서 페트병에 담아두었던 식혜가 사흘이나 지났기에 상했을 것 같아서 버리려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장미 향기가 확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식혜를 버려질 영혼들을 위해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며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아무 탈 없이 괜찮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장해온 과정이 평탄치 못했습니다. 친엄마가 어디에 계신지도 잘 모릅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할머니와 가족들만 남겨 두고 집을 나가셨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방황을 하시다가 새 엄마를 만나서 결혼 하셨고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알기 전에는 식구들과 잘 못 지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 나기 전까지는 행동도 빨랐고 가족들이 저에게 대한 기대도 컸는데 사고가 나고 2달 정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이후로 보통 사람들보다 행동도 느려지고 운동신경이나 모든 것들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사항들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많이 혼나고 부모님의 기대에도 못 미쳐 드려서 그런 부분이 저에게 많은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산만해서 집중을 잘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마음의 짐이 되었고 방황을 많이 했었는데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난 후부터 저의 마음과 성격이 완전히 180도 달라졌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많은 사고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산에서 일을 하다가 뱀이 나와서 무심코 그냥 잡았는데 뱀이 제 손가락을 물었습니다.
6월~7월 사이 뱀이 독이 오를 쯤 이었는데 그렇게 물리고 나서도 성모님 물만 바르고 1시간 정도 방치해 두었습니다.
오히려 주위 분들이 사색이 되어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고 병원까지 가는데도 1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 성모님께서 저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위험한 상황에서 항상 성모님은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안지 2년 밖에 안됐지만 성모님을 너무나 사랑하구요, 나주는 꼭 인준이 날것이며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성지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친엄마가 없었지만 이제야 진짜 친엄마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바로 나주 성모님!
우리 모두의 친엄마이신 나주 성모님을 사랑합시다.

 

“밥줘! 국줘!” 하며 움직이지 않으시던 어머니.

안녕하세요. 서울의 조 마리아입니다.
저는 96세이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요.
그런데 지난 11월에 다리가 부러지셔서 수술하셨습니다.
병원에서 1달간 입원하고 나오셨는데 다리 아프다고 절대 서지를 않으시는 거예요.
가만히 누워서 “밥줘! 국줘!” 하시지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으셨어요.
제 딸이 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오빠 댁에 한 두 달간 계시다가 오셨는데 다리가 터질 정도로 퉁퉁 부어가지고 오셨어요.
다리를 전혀 쓰질 않으니까 순환이 되지 않아서 다리가 얼음장 같이 차고 금방   썩어서 문드러질 정도가 되셨더라고요.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가지고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하면서 이 삼일동안 계속 발라드렸더니 금방 터질 것같이 퉁퉁 부어있던 다리가 정말 거짓말처럼 싹 가라앉은 거예요.

여동생이 지금 냉담중인데 제가 평소에 성모님 기적수가 좋다고 하면서 먹으라고 해도 안 먹고 생수 사다먹고 했는데 그걸 보고 신기하다고 하면서 그 다음부터   성모님 기적수를 마시고 있습니다.
지금 한 30년간 냉담중이예요. 너무 너무 고집도 센데다가 똑똑하고 잘나서 제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제 소망은 동생이 냉담을 푸는 건데요 지금 계속 기도 중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동생도 나주에 올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은혜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러 이렇게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