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은총은 강물처럼

 199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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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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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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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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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말레이시아 폴치 몬시뇰 증언 -  폴 치 몬시뇰  

cross2.gif  필리핀의 준 엠 바나악 형제님의 증언 -  준 엠 바나악

cross2.gif  진짜 피였습니다. -  헬렌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통한 고해성사의 은총 (5년만에 본 고해성사) -  다니엘 코

cross2.gif  저 뿐만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치유시켜 주신 나주 성모님 -  쥰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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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율리아 자매님과의 만남 -  박루비노

cross2.gif  인도네시아 윌리 마링카 형제님의 증언 -  윌리 마링카

cross2.gif  황루시아 자매님의 증언 -  황 루시아

cross2.gif  인도네시아 미라 자매님의 증언 -  미라

cross2.gif  이 율리안나 자매님의 치유 증언 소식 - 이 율리안나

cross2.gif  이것은 직접 내려오신 성혈입니다. -  룰루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순례한 10년 그 뒤 가장 중요한 사실 몇 가지. -  이 마틸다

cross2.gif  6-700kg의 석탑에 깔려 휘어지고 부러진 손가락이 정상으로 되었어요. -  요세피나 와킨스

cross2.gif  나주 기적수로 인한 치유증언 -  토마스왓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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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엄청난 골초이며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젓는 술고래였었는데 -  최 요한

cross2.gif  지팡이가 필요 없게 되었어요 - 배재철 베드로

 cross2.gif  성금요일 율리아 자매님의 십자가 고통을 목격하시고 - 도날드 라샵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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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19주년에 폴치 몬시뇰의 증언
<나주의 성모님 동산 위에서 축하하고 있던 중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개인 증언입니다.>

서적들을 통해서 많이 읽어보았던 파티마의 “춤추는 태양”의 기적을 나주의 성모님 동산 위에서 저의 두 눈으로 직접 두 번 째 본 것은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기 시작하신 2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던 2005년 6월 30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잔뜩 흐렸던 하늘이 갑자기 개였던 오후 3시 15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우리 순례단에 속한 폴 로 형제와 요셉 송 형제는 “춤추는 태양”을 비디오로 촬영했습니다.  저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 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시부에 돌아와서 두 개의 필름이 현상된 것을 보니 흰 빛과 붉은 빛, 즉 하느님의 자비의 빛줄기가 눈부신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주에서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저의 믿음이 다시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저는 또 다시 피터 팅 형제와 펠리시아 림 자매가 인솔하는 순례단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2005년 10월 19일에 있을 성모님의 피눈물 19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날 밤 미사성제가 거행된 후 니콜라스 대주교님, 보스만스 신부님, 팜 신부님, 티토 신부님, 율리아 자매님, 그리고 제가 많은 신자들과 함께 성모님 동산에 올라갔는데 시간은 밤 11시 조금 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무용들이 있은 후 12시 10분경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올라가면서 묵주신공을 바쳤습니다. 

셋 째 단을 바칠 때 우리는 갈바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자세히 쳐다보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모습이셨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바로 뒤에 있었고, 니콜라스 대주교님은 자매님의 오른 쪽에, 그리고 보스만스 신부님은 제 곁에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앞에 서 있던 율리아 자매님이 마치 힘차게 당겨지듯이 뒤로 넘어지셨으며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놀랐으며, 땅에 쓰러져 있는 율리아 자매님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협력자들이 달려와서 율리아 자매님을 부축했으며, 몇 분 이내에 율리아 자매님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묵주신공을 계속하면서 비닐 성전 안 뒤쪽에 마련된 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율리아 자매님은 갈바리아 산 위의 예수님께서 당신의 옆구리로부터 피를 쏟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치마에는 온통 예수님의 선혈 자국들이 있었으며, 니콜라스 대주교님의 와이셔츠의 칼라 뒤에도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저와 다른 이들은 율리아 자매님과 대주교님의 사진을 찍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뒤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던 한 사람이 저의 방한복 등에 묻어있는 예수님의 성혈 자국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방한복을 벗으라고 요청했으며, 저는 그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방한복을 벗어서 펴놓았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여러 개의 큰 선혈자국들을 보았으며, 또 긴 자국들과 수많은 작은 자국들이 저의 모직 방한복의 등 전체에 묻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하여 두려운 느낌까지 들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저의 생애 안에서 일어난 이 “기적적인” 일의 의미에 대하여 더욱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제가 증언하는 이 일들은 우리 성모님께서 한국 나주에서 처음으로 피눈물 흘리신 19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던 2005년 10월 19일 밤에 제가 본 바에 의거하여 나주의 성모님 동산 위에서 참으로 일어난 일들임을 선언합니다.

폴 H. P. 치 몬씨뇰
말레이시아 시부 교구
2005년 10월 19일

 

덧붙이는 말: 

그 날 밤, 그 일들이 있은 후 싱가폴과 말레이시아 신자들로 구성된 저희 순례단 소속의 헬렌 자매와 제임스 형제가 저에게 와서 그들이 그 날 밤에 갈바리아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았으며 예수님의 상처들로부터 많은 양의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 순례가 끝날 때까지 저는 제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두 눈으로 본 사실들이 허상이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저는 이번 순례 바로 전에 안경을 새로 맞추었기 때문에 사물들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의 준 엠 바나악 형제님의 증언 

2005년 11월 2일

사랑하는 율리아 자매님,

우리 순례단이 나주에서 돌아온 지 2주일이 지났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는 제가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증언입니다.

2005년 10월 15일 오후 5시경,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순례자들과 함께 기도와 찬미를 바친 후, 태양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도는 현상을 목격하고 나서 자매님은 제게 선물로 나주 성모님 상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때 성모님 상 가슴 부분에서 향유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장미향기가 사방에 진동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포옹하는 것은 마치 제 어머니를 안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고 저는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10월 16일 새벽 3시에 저는 잠이 깨었는데 방에서 장미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더 자려고 했지만 장미향기가 가시질 않아서 일어나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죄에 대한 보속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10월 18일 필리핀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제 딸은 성모님 상 가슴 부위에서 향유가 다시 액화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성모님 동산에서 자매님께서 기도하실 때 흘렀던 향유는 마닐라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말라버린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현재11월 2일까지도 이 향유는 우리 가족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다시 액체상태로 변화되곤 합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필리핀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방송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밤 10시에서 12시까지 진행됩니다.

제가 방송에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에 관하여 말하고 있을 때, 나주에 함께 순례를 갔던 베르마라는 자매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베르마 자매님은 나주에서 받은 은총을 증언하였는데, 필리핀 마닐라에서 나주로 순례를 떠나기 전에 그녀는 이미 병원에서 난소낭종을 진단받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나주에서 돌아온 후 담당 의사에게 가서 예약된 검사를 받았는데, 오, 주님과 성모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난소낭종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나주에서 완전히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방송실 안에 장미향기가 가득했고, 이 향기는 마침 그날 밤 라디오 방송 방문객이었던 어떤 의사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체험한 후, 저는 온전히 제 자신을 바쳐 성모님을 통해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현재 여러 기관에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천상 어머니께서 저의 미션을 축복하시어 율리아 자매님께서 사랑의 메시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개란 단지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고 복음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자매님께서 제게 주신 자료들과 비디오, DVD를 사용해서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 메시지를 전파하는 저의 미션이 잘 될 수 있도록 협력자들을 교육할 것입니다.

미천한 이 죄인, 주님 포도밭의 보잘것없는 이 종이 하는 일들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바쳐질 만한 가치가 있으면 합니다.

아멘.

 

필리핀의 준 엠 바나악

 

진짜 피였습니다. (싱가폴 헬렌 자매님의 증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께 영광이 되기를 바라며 이 증언을 씁니다. 또한, 이 증언이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친구 빅터에게서 한국 나주에서의 기적과 놀라운 징표들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나주 순례에 관하여 펠리시아 자매님에게 연락을 하여 순례단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2005년 10월 16일, 저는 23명의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싱가포르를 떠나, 10월 18일 저녁 나주 성모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성모님 상 앞으로 나아가 울면서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뵙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하였고, 장미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모님 상에서 향유가 흘러 턱에 고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0월 19일, 우리는 오후 4시 30분경에 성모님 동산으로 갔는데,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고 인도네시아 니콜라스 대주교, 말레이시아 폴치 몬시뇰, 그리고 그 외 두 분의 신부님이 더 계셨고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저녁에 십자가의 길을 돌며 묵주기도를 하는 도중, 저희는 몬시뇰 폴치를 만났고 그는 우리에게 율리아 자매님이 바로 우리 앞에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매님 뒤에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따라갔고 장미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갈바리아 언덕 십자가 밑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율리아 자매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저는 놀라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는데 자매님 옷 위에 핏방울을 볼 수 있었고 누군가가 자매님께서 성흔을 받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자매님보다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 후 십자가 상 예수님을 바라보았는데, 충격적이게도 십자가 상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섯 상처, 특히 창에 찔린 늑방과 손바닥 상처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피들은 팔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진짜 피였습니다. 저는 울면서 옆에 있는 친구 테레사에게 지금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도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는데, 그녀 또한 예수님께서 실제로 살아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묵주기도가 끝난 후, 한국인 사회자께서 다섯 방울의 성혈이 니콜라스 대주교님 옷 위에 내려왔고, 율리아 자매님 옷에도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조금 후에 폴치 몬시뇰의 옷에도 성혈이 내려오셨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서야 저는 아까 봤던 현시가 참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안젤라 자매님도 십자가 상 예수님의 몸에서 성혈을 목격했다고 말하였고, 옆에 있던 어느 순례자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주를 떠나는 날, 우리는 성모님께 갔는데, 성모님 얼굴과 양손바닥에서 향유가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친히 택하시어 이번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안배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증언에서 다루지 못한 많은 축복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헬렌 림 (싱가폴)  

 

나주 성모님을 통한 고해성사의 은총 (5년만에 본 고해성사)


2005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께,

제 아내 준 막달레나 위가 저를 나주 성모님 피눈물 19주년 행사에 데리고 가서 많은 축복을 받았기에 여러분과 함께 받은 은총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9월에 제 아내는 나주 순례단에 최종 등록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제 마음에서 거의 관심 밖이었고 제 삶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나 아내는 이미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례여행 전 아내는 나주에 관한 책과 비디오를 보여주었으나 저는 보지도, 읽지도, 그리고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기적에 관해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여행 비용을 아내가 지불해 버렸기 때문에 그저 나주에는 쉬러 가는 것이라고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나주에 있는 동안, 영적 지도자이셨던 폴 치 몬시뇰께서 매일 미사를 드려주었습니다. 2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미사를 위해 몬시뇰께서 머무시는 작은 방에 모였고 저는 바로 그분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6년 전 세례를 받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성체거양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갑자기 독서와 복음 말씀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와서, 주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기 시작했고 순례그룹의 형제, 자매님들의 많은 증언들을 들으면서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나주에 온지 3일째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형제, 자매님들은 성모님 상에서 흐르는 향유와 경당을 둘러싸고 있는 장미향기와 같은 징표들을 경험했습니다.
 
며칠 후 저를 완전히 변화시킨 몇 가지 "기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나주에서 4일 째 되는 날, 폴 치 몬시뇰께서는 경당에서 고해성사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점심식사 후 경당에 가서 묵주기도와 자비심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몇 몇 자매님들께서 고해성사를 준비하고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제 심장은 쾅쾅 뛰기 시작했는데, 고해성사를 본 지가 5년이 넘었고 기껏 제가 받은 것은 미사 전 신부님께서 전 신자들에게 공동으로 주시는 조건부 관면이 전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사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속에서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징표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등 뒤에 마찬가지로 성사를 볼 것인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 자매님이 성사를 보러 가면 저도 가서 보겠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으이크, 그녀가 고해성사를 보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포기하고 고해성사를 보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몬시뇰께 제 삶은 항상 순조롭고 평탄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만나는 어려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몬시뇰께서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 고난이나 병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만일 그때는 이미 때가 늦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당신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분께 마음을 여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잠시 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기쁨과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힘있게 사용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제게 새로운 삶의 방향과 목적을 주실 수 있도록 도구로 사용하신 몬시뇰처럼, 당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나주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3시에 미사를 드리고 모텔 2층과 3층에서 짐들을 1층으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짐 나르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저를 포함해 남자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무거운 짐을 나를 힘이 없는 나이 드신 자매님들이었습니다.

저는 큰 짐들을 바라보았는데 대부분 성모님 물을 담고 있는 짐들이었습니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주님께 저 짐들을 아래로 운반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하나씩 짐을 나르는데 가볍게 느껴져서, 우리 둘이서 하나씩 하나씩 짐들을 다 1층으로 날랐습니다.

나주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도중, 차에서 우리 모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서 장미 향기가 나기 시작해서 잠을 깼습니다. 저는 눈을 뜨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주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데도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차 안에서 저는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평화로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내에게 향기가 난다고 말하자 그녀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공항에서 짐들을 체킹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짐들이 30kg이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완전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짐을 나를 때 순전히 제 힘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은 주님임이 틀림없습니다. 마침내, 저는 제 순례의 목적이 제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고 그러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리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나주에서 돌아왔을 때, 복음선교를 해야 한다는 강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 믿음을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주 순례 동안, 저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을 경험했노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문제나 병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5년 11월 20일
싱가포르
다니엘 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치유시켜 주신 나주 성모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우리가 10월 19일 나주 성모님 피눈물 19주년 기도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가 나주에서 겪은 경험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주에 가기 몇 달 전, 저는 바쁜 직장 업무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우리는 피정을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속해 있는 기도 그룹의 어떤 자매님이 저에게 나주에 가고 싶어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즉각적으로 “나주는 어디에 있는 곳입니까? 나주에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자매님으로부터 받은 책과 비디오를 통해서 나주에 관해 점차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주에 관해 들은 얘기나 비디오와 책을 통해 알게 된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이 어디에 가기를 원하시는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10월16일, 우리 가족은 나주 순례단과 함께 나주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주로 떠나기 전, 저는 이번 순례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 가족을 당신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시고, 주님께서 제 오빠가 어렸을 때부터 앓아오신 우울증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비록 나주가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갔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나주에 가는 것은 하느님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것이지, 기적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라고 제 자신에게 되뇌었습니다.

나주에 갔을 때 우리 그룹은 몬시뇰 폴 치의 주재로 매일 미사를 드렸고, 성모님 피눈물 19주년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기도회가 한국어로 진행되어서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저는 마음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정 행복감을 느꼈고 우리 가족도 무척 행복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회가 끝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율리아 자매님과 포옹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그룹 사람들로부터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사용하셔서 다른 사람들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병을 치유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 망설였고 어찌할 바를 몰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모든 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하느님과 ‘타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부디 우울증으로 인하여 수년 동안 약을 먹어온 제 오빠를 치유해 주십시오.”

저는 우리 오빠와 엄마를 율리아 자매님께 가까이 데려갔지만, 정작 제 자신은 자매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순간 저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다시 기도 드리기 시작했고, 다음과 같은 말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너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을 생각하면서 저는 율리아 자매님과 포옹하기로 결심하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분은 팔을 벌려 저를 안아주셨고, 저는 그분의 기도를 받으며 그분의 품에 안겼습니다. 포옹을 하고 난 후 저는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제 가슴에서 입으로 솟구쳐 올라왔고 한줌의 공기를 토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무언가가 제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그 때 제 약한 폐가 치유 받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래 직장일로 인해서 추운 나라에 갈 때마다, 폐가 약하기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나왔었습니다. 의사는 제 폐가 추운 날씨 변화에 너무 민감하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주를 다녀온 후 저는 직장일로 추운 나라를 다녀도 기침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 동료들이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주에서 폐를 치유 받았다고 말하였고 그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주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저는 또한 나주를 다녀온 지, 수 주일에 걸쳐서 제 가족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제게 와서 오빠가 거의 일주일 동안 우울증 약 복용을 중단했고, 그래도 좋아 보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서 그가 정말 괜찮은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때 그는 약을 먹지 않으면 매우 쉽사리 좌절하곤 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에게 자기는 아주 좋다고 얘기하면서 자신은 나주에서 율리아 자매님과 폴 치 몬시뇰로부터 기도를 받았을 때 치유를 받았다고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제 오빠는 과거에 여러 치유 기도회에 참석했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 오빠 외에도 제 남편과 엄마가 나주에 다녀온 후 기도에 더 열심해졌음을 발견했으며 교회 활동과 복음 선교에도 더 열정적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을 나주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족을 치유시켜 주셨고 우리는 나주에 다녀온 후 성령의 열매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쥰 막달레나 위
2005년 11월 20일

 

 

율리아 자매님과의 만남
2006년 3월 첫토요일 루비노 회장님의 말씀요약


찬미 예수님!

아무 준비도 없이 여기 섰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위해 오랜 세월을 율리아 자매님 곁에서 보고 듣고 배우면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율리아 자매님을 안지가 벌써 24년이나 되었어요.

나이 40대에 나주에 와서 지금 60대가 되었습니다. 준비도 없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 제가 24년 동안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하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  특히 그중에서는 주님과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받은 많은 은총가운데서 율리아 자매님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루비노! 너는 율리아 자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렇게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주님과 성모님의 고통에 동참하시는 율리아 자매님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렇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에게 성심을 열어서 찢겨진 성심을 여러 번 보여 주시며 “죄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내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고 아프다”고 호소하시면서 “나를 아는 너희들만이라도 이 찢어진 내 가슴을 기워 달라”고 부탁 하셨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천하디 천한 이 몸은 끊임없는 병고에 신음 할지라도 주님의 구원사업을 위해서 티끌만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고통이겠습니까.” 하고 응답하십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응답은 말로만이 아니고 24년이란 긴 세월을 변함없이 행동과 실천으로 주님과 성모님의 찢긴 성심을 기워주셨습니다.

매 순간 끊임없이 다가오는 그 수많은 고통들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주님의 영광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더 큰 고통들을 청하여 아름답게 성모님을 통해서 주님께 온전히 봉헌함으로써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시어 세상 어디에서도 보여주시지 않은 놀라운 은총들을 24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계속 우리에게 내려주셨습니다.<박수>

여러분의 우렁찬 박수가 바로 그것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을 증거하고 율리아 자매님을 신뢰하는 그 박수는 공로가 되어 마땅히 하늘나라의 천사들에 의해 다 기록되고 보존되리라고 믿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 많은 만남 중 상처와 고통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희망을 안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에게 있어 율리아 자매님은 어떤 분이며 과연 성모님으로부터 여러분에게 무엇을 얻어 주신 분입니까? 만약 ‘오늘 처음 나왔기 때문에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신다면 24년간 곁에서 지켜본 제 말을 잘 들으시고 오늘 맛 들이십시오.

자매님을 통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육적치유와 전대미문의 기적도 아주 중요하지만 자매님은 사랑에 찬 희생보속고통과 간절한 기도로 자비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 영혼에 가장 좋은 선물인 회개와 용서를 얻어주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가 성모님의 손을 꼭 붙잡고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겸손한 작은 영혼입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의 순결한 마음과 정성된 마음을 통해서  천상의 은총을 넘치도록 쏟아주고 계십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성심을 열어 놀라운 성혈의 기적을 주고 계십니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 더러운 모든 죄를 예수님의 성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기 위해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2001년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에 예수님의 핏자국이 낭자하게 쏟아졌던 것을 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자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율리아 자매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 있었다면 이 시간을 통해 모두 떨쳐버리시기 바랍니다.“속인들이 어찌 너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세상 사람들이 다 너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 성모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 하여 율리아 자매님이 전하는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 합 시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을 사랑하고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뭔가 같이 이 어려운 시기에 모성 지극한 성모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성모 성심의 승리를 위해서 주님 영광을 위해서 협력하시는 여러분들은 율리아 자매님 곁에 서게 될 것이니 먼 훗날 반드시 성모님 곁에 서게 될 것이라고 성모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헛된 망상에 사로 잡혀 자매님을 두고 판단하며 헛 소리하는 사람들, 또한 거짓된 악성 유언비어들로 율리아 자매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주님께 엄중한 문책을 받을 것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이런 태도는 바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세상 모든 자녀들을 천국으로 이끄시려는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결과적으로 판단하고 단죄하며 하느님을 촉범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에는 저도 자매님을 힘들게 한 적이 있는 죄인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덕에 이르렀는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을 편견 없이 품어주시는 그분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분이 얼마나 진실하고 솔직하며 거짓이 없는 영혼인가를 깨닫게 된 것은 주님의 은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항간에 떠도는 터무니없는 악성유언비어처럼 율리아 자매님이 섬김 받기를 원하며 교만하다면 제가 24년 전에 나주에 와서 율리아 자매님을 만나게 되고 지금 이렇게 오랫동안 이곳에 서 있겠습니까?

자매님은 섬김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남을 성모님 섬기듯 섬기는 분입니다. 저나 아주 가까이에 있는 협력자들이 잘못하여 본인은 가슴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더라도 잘못한 사람들을 내치기보다는 엄마와 같은 사랑으로 늘 감싸주고 품어주며 항상 “분열의 마귀로부터 승리하고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매님이 24년간 사람을 내치신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마음과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하는 저는 하느님 대전에 신앙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심을 보여 주시고 위탁하셨습니다. 또한 그 성심을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저는 자매님을 통해 그 성심의 뜨거운 사랑을 맛들인 영혼이고 그래서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은 인간적인 마음만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마음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분의 깊은 그 마음의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어떤 불의와도 결코 타협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제가 24년 긴 세월동안 만나 함께 일하며 본 율리아 자매님의 삶의 모습은 거짓이 없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오로지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일이 우선인 분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우리는 무엇이든 이해타산을 하면서, 계산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저울질하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님은 주님의 일이 먼저고 성모님의 일이 먼저입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서 디모테오서를 보면 바오로 사도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순수한 믿음과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에서는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합니까. 율리아 자매님은 마음이 깨끗한 영혼입니다. 마음이 깨끗하신 분입니다.

저는 24년간 지켜보았던 사실을 증언 하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의에 타협하고 거짓말 하고 더러운 그런 추한 마음에 과연 주님과 성모님께서 기쁘게 그 마음을 사용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악하면서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데 하물며 하느님께서야 오직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마귀들은 악한 영혼들을 꼬드겨 다른 영혼들까지 죄를 짓게 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선한 도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세월이 흘렀다 해서 당신께서 택한 도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을 통해서 내 사랑의 승리가 온 세상에 퍼져나가게 하리라.”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시작한일 내가 끝맺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들을 받으신 분이 바로 율리아 자매님이세요.

율리아 자매님이 받으셔서 온 세상 모든 자녀들에게 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말씀은 그 받은 사명은 이루지 않고는 절대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지 않는 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비가 땅을 흠뻑 적시고 모든 곡식들을 자라게 하듯이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사랑의 말씀은 반드시 그 사명을 이루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이 빵의 형상으로 당신을 감추시고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나주에 오셨으며 저는 그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 저는 함께 율리아 자매님의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서 율리아 자매님의 혀에 내려온 기적을 함께 목격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이며 영광입니까.

여기 함께 계신 형제자매님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나주에서 크고 작은 은총을 받으셨습니다. 나주에는 사랑이 있으며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고 은총이 있습니다. 그 놀라운 은총과 사랑이 바로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을 통해서 흘러넘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이며 축복임을 믿습니다. 

눈물을 흘리신지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올해는 피눈물 흘리시는 20주년이 됩니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놀라운 사랑의 메시지를 주님과 성모님이 주시고 계시며 또 성모님은 놀라운 징표를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성체의 기적을 율리아 자매님의 혀에서 12번이나 변화를 보여주셨는가 하면 직접 성체가 내려오시는 놀라운 기적, 거기에 성혈까지 내려주시는 놀라운 전대 미문의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율리아 자매님의 그 간절한 기도와 희생과 보속과 아름다운 봉헌을 통해서 은총을 내려주셨으며 앞으로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들은 그 놀라운 은총의 그 현장에서 각자 각자 받은 체험은 다르지만 그 놀라운 은총을 입고 또 입었습니다. 나주에 오기 전에 율리아 자매님의 가정을 방문한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 안에서 율리아 자매님의 삶의 모습에서 놀라운 사랑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사랑은 인간성을 지닌 우리로써 인간적인 사랑을 초월한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을 맛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고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어느 날 또 율리아 자매님의 가정을 방문하고 나서입니다. 성모님이 눈물을 흘리실 때였는데 그 당시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한 맹인 할아버지를 돌보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이 우시고 계셨지만 봉사해줄 분이 없으니까  낮에는 미장원을 하면서도 성모님 찾아오는 순례자가 있으면 맞이해서 대화를 나누고 증언하고 밤새 기도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무도 모르게 맹인 할아버지를 돌봐주는 놀라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뜰 수 있는 가능성은 0.00.1%의 확률도 없다고 했으나 율리아 자매님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과 기도로 눈을 뜰수있게 되었음) 

어느 날  율리아 자매님이 저에게 말했어요. “제가 사랑 실천 하러 가는데 같이 가시지 않을래요? 하고 물었어요. 그래서 “좋죠 가겠습니다.” 응답하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맹인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 그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율리아 자매님의 발걸음이 멈추어 서는 거예요. 움직이지 않아요.

지금도 아름다우시지만 그 당시 율리아 자매님은 미모가 너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와 같이 걸어가다가 길가에 서 있으니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 바라보잖아요. 하도 답답해서 “택시를 부를까요?” 하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율리아 자매님이 맹인 할아버지께 사랑을 실천하러 갈 때 고통을 받은 것인데 저는 자꾸 재촉하고 율리아 자매님은 발을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때의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나는 율리아 자매님 곁에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 몰라 인간적으로 계산하며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 것이죠. 잠시 후 율리아 자매님의 발이 조금씩 떼어지는 것입니다. 한걸음 또 좀 있다가 한걸음, 조금씩 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길 가던 그 주변으로 성체처럼 보이는 둥글고 하얀 딱지들이 많이 흩어져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그것은 막걸리 뚜껑 속에 하얀 것이 들어 있는 데 꼭 면병 같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땅에 떨어져 사람들이 발로 밟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자 율리아 자매님은 고통 중에 있는 몸으로 세상 자녀들이 모령성체하면서 범하는 성체 모독을 배상해 드리기 위해 그 성체모습으로 보이는 병뚜껑을 하나하나 손으로 줍기 시작했어요.

제 마음은 답답했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시장에서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런 막걸리 뚜껑 조각을 하나하나 주워 모으면서 겨우 겨우 조금씩 걸어가니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반 동안 걸어갔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도 믿지 못했을 겁니다. 모령성체 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주워 모은 성체모양의 종이들을 하나하나 태우면서 그 영혼들을 봉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서도 생각이 이렇게 다르고 그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 율리아 자매님은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때 잘 모르니까 자꾸만 재촉했고 율리아 자매님은 주님의 고통을 봉헌하면서 한걸음 한 걸음 가신 것이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맹인 할아버지에게 가는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봉헌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율리아 자매님이 영가를 불렀는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요. 여러분,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그때를 기억하면서 조금만 불러보겠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그 길은 바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과 같았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몰랐어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기 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그때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지금도 계속해서 걷고 계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작년 성금요일 율리아 자매님의 편태 자국을 보셨죠? 주님이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걸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알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증거자가 있기에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은총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맙시다. 율리아 자매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안에 계신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이 찢어지기에 그것을 아시는 율리아 자매님도 마음이 아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교만하고 자만심으로 높아지려고 할 때 율리아 자매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오로지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며 겸손할 때 율리아 자매님은 기뻐합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사랑을 먹고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아요. 누군가가 회개하면 율리아 자매님은 기뻐집니다. 누군가가 사랑을 하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입니다. 진리를 보고 기뻐지는 영혼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기뻐할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그런 분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어디서나 율리아 자매님의 그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통하여 주시는 은총을 깊이깊이 깨닫고 체험하시고 그 은총을 나누어서 바위같이 굳어진 마음도 녹여내겠다고 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은총의 도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전부를 지켜봤던 사람이에요. 나주 성모님께 많은 분들이 오셨고 정말 여러 가지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은총을 입고 가셨습니다. 그중에 많은 분들이 봉사도 하고 협력도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는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뭔가 변질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리를 이탈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 가는 거예요.

성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함부로 이부자리를 걷어 올리면 죄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질서라는 것이 있어요. 하지 말아라 한 것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그 법령, 하느님이 주신 그 계명, 하느님이 주신 질서를 존중할 때 그 사람은 성덕으로 성화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리라고 믿습니다. 질서를 존중합시다.

주님이 택하신 율리아 자매님을 깔아뭉개서는 안되죠. 주님이 택하신 율리아 자매님을 함부로 비방하면 더욱 안 되죠.

율리아 자매님을 회개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 앞에 고개를 숙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율리아 자매님 앞에서 내 죄 때문에 고통을 보속하고 있는 분 앞에서 회개하라고 하니 도대체 잘못 되도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아요.

주님은 자비하시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또한 정의로우신 분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부드러우신 분이시지만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이시지만 자비로우시지만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놀라운 업적을,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펼치는 그 놀라운 일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되지 맙시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방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그가 어떤 분이더라도 주님이 하신 일들을 훼사하고 훼언한다면 먼 훗날에 유황불의 뜨거운 불의 고통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자는 말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으로 피어오르는 그 영혼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오르며 아름다운 미소로써 온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영혼들을, 이곳에 순례 오시는 영혼들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잃은 영혼에게 길을 찾아주실 수 있도록, 메시지 전달을 잘 할 수 있도록, 메시지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우리 모두가 협력자가 됩시다. (큰 박수)

이 박수는 수없는 고통들을 아름답게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 봉헌하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율리아 자매님은 그 박수를 즉시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드릴 것입니다. 우리의 박수는 그냥 흘러가는 박수가 아니라 생활의 기도로써 이미 봉헌되었음을 믿습니다. 한 가지도 놓치지 맙시다. 우리는 나주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실천에 옮기면서 한걸음 한걸음 성덕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길 바랍니다.

바로 나주는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과 성모님이 현존하시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은 용기와 힘을 얻었으며 용기백배하여 일할 수 있는 은총을 입고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나주는 반드시 승리하여 인준될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남을 비방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우리 입에서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거나, 자기는 더러운 죄인이면서 깨끗한 영혼 보고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우리는 입을 지혜롭게 놀리는 아름다운 영혼이 되도록 이 사순시기에 우리 삶을 반성하면서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죄짓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합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옷만 찢는 사순절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은혜로운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 각자 각자 마음 안에 여러분 안에서 지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맘에 불신을 없애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안에 신뢰 가득 찬 마음으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율리아 자매님의 사랑에 찬 마음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성모님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 되었더라구요.

율리아 자매님에 대해서 한 말씀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분이 받는 그 수많은 고통들, 그 모든 고통들을 성모님은 요청하는 겁니다. 너의 눈물과 너의 한숨과 너의 속으로 흘리는 아픔까지도 피 한 방울까지도 모든 것을 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나에게 바쳐달라고 성모님은 부르십니다. 그것은 이미 율리아 자매님이 예수님께 드린 약속이며 성모님은 도와주신 것이죠. 그 사명을 이루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율리아 자매님은 성체의 사도이며 예수 성심의 사도이며 성모 성심의 사도이며 또한 성혈의 신비를 전하는 성혈의 사도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율리아 자매님이 있는 곳에서는 회개가 있고 율리아 자매님이 머문 곳에, 기도한 곳에는 주님의 은총이 쏟아지며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은총이 함께 하고 있음을 저희는 체험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율리아 자매님이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든 기도에 함께 하시는 성모님과 예수님은 영원히 찬미 받으시옵소서.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며 열매임을 믿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여있지 않으면 말라버리는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많은 열매를 맺고 또 맺어서 탐스런 열매로 그 가꾼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가꾸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고 우리 모두는 가지입니다.

나주에서 20년 동안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 많았어요. 그런데 그 똑똑하다는 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더라구요. 자만심에 찬 사람들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더라구요. 또한 지식인들 신학을 배웠다 뭘 배웠다 하는 사람들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신앙의 유산은 믿음으로 사랑으로 지키는 것이지 이론과 논리로써 지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성모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신앙으로 살고, 사랑으로 서로 서로 모든 것을 감싸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나주의 시련의 시기를 우리는 용감하게 용맹하게 모두 힘을 모아서 우리 모두 나주 성모님의 승리를 위하여, 인준을 위하여 함께 일합시다.

율리아 자매님의 목숨이 연장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메시지에 내 딸을 데려갈 수도 있다는 말씀이 있잖습니까? 그러나 작은 영혼들의 기도소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때 뱀을 짓밟는 나의 능력으로 너희를 도울 것이다 하시며 반드시 성모님께서 승리하리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 율리아 자매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우리 마음을 모아서 율리아 자매님과 일치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 오셔서 나주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온 세상에 사랑의 승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 주님께서 마치시겠다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며 우리는 그 말씀을 이루어지도록 힘써 노력합시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며 율리아 자매님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수많은 고통을 받으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율리아 자매님을 도구삼아 이루신 주님과 성모님의 놀라운 사랑의 업적을 찬미합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께서 이루신 사랑의 기적을 찬미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주님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박 루비노
2006년 3월 4일

 

인도네시아 윌리 마링카 형제님의 증언

 

이번 발리 대회에 참석했던 윌리 마링카 형제님의 증언입니다.

윌리 마링카 형제님은 1996년 4월 가슴에 수십 톤의 무게가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과 통증을 느껴서 병원에 가서 심장내과 전문의 여러 명으로부터 진찰과 검사를 받은 결과 관상동맥의 많은 부위가 막혀 있었는데, 특히 관상동맥의 굴곡 부분에서는 95%가 지방으로 덮혀 있었고 겨우 5%만 뚫려 있었다고 합니다. 담당 의사들은 이는 매우 심각하고 복잡한 경우에 해당하며 치료로는 오직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 있는 정맥을 떼어다가 이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면서 이 수술도 가능한 한 빨리 시행되어야 한다고 하였답니다.

윌리 마랑카 형제님은 같은 해 11월 나주에 순례를 오시게 되었는데, 그날 기도회 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특별히 심장질환과 암환자를 위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율리아 자매님께 자신이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기도를 받은 후 형제님은 성령안식에 들어가셨는데, 눈을 떠보니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그때까지도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이후로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형제님은 다시 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받았는데, 심장기능이 50%까지 정상으로 돌아와서 그 의사가 이는 의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오직 신앙으로만 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 놀라워하였답니다. 윌리 형제님은 나주에 다녀간 이후로 병원 약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현재 윌리 형제님은 2006년 3월 현재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인도네시아 윌리 마링카
2006년 3월 10일


 

황루치아 자매님의 치유 증언소식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우선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청주에서 온 황 루치아 입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저는 사실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려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이혼하셔서 새어머니 밑에서 컸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갈등 속에서 유년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처녀시절 모두 ‘나는 부모님에게 짐만 되고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하며 너무너무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불교신자이시면서 굿을 아주 좋아하시며 만신행위를 많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께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간 후에 교회에 나가라” 하셨기에 그나마 다니던 교회도 못 나가고 시어머니를 따라 무속을 ?는 만신행위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것들이 싫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저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시어머니를 ?아 만신행위를 같이 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20년간을 시어머니를 따라서 그 행위를 했습니다.

그동안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무당이나 만신을 불러 열심히 복을 빌었지만 정작 복은 하나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제 남편이 사업을 2번이나 크게 실패하여 집마저도 날아가고 한 동안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에 열심히 나갔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재물과의 갈등, 시댁과의 갈등, 여러 가지 계속되는 갈등 속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증오와 미움이 커졌고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도 미움이 너무 컸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2005년도에 가슴에 뭔가 멍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 본 결과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대학병원에가 검사 한 결과 유방암 진단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오신 분 중 아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암이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고 ‘이제는 죽었구나!’ 이 생각만 난다고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교만해서 가슴에 2.5㎝짜리 큰 멍울이 2개가 있었지만 ‘유방암 정도는 수술하면 낫겠지, 현대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이것 하나 못 고치겠냐? 이것은 수술만하면 바로 고칠 수 있겠지’ 하는 자만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바로 수술을 하지 않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진을 찍는 PET-CT라는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온 몸에 있는 암이 어느 정도까지 전이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검사입니다. 저는 5월 5일 암 진단을 받은 후 그 사진을 찍고 작년 5월 12일 어디까지 전이 되었나?하는 최종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멍울이 유방에만 있으니까‘이까짓 유방암 수술만하면 되는데 내가 어디에 전이 되었겠어?’하는 교만에 찬 생각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PET-CT 촬영에는 목에서부터 가슴 흉골 까지 수 만개의 암이 꽉 차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해 지며 제가 그동안 유방암 진단을 받고서 너무 오만했던 생각이 나면서 ‘정말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끝이고, 이것은 사형선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수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손도 못 댄다. 이런 상태로는 항암치료밖에 할 수 없고 뼈에 전이된 부분은 방사선 치료 외에는 치료방법이 없다. 이것은 너무 심각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바로 그날 항암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항암 주사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아마 여러분들은 아프지 않으셔서 모르실 것입니다. 그 주사를 맞으면 너무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고열에 토하고 위장까지 온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거든요.

서두에서 말씀 못 드렸지만 제가 결혼해서 시어머니의 만신행위가 너무 싫어서 10년 전에 천주교에 가서 세례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만 받고 나가지 못하고 계속 냉담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만신행위를 많이 했습니다.

암이 흉골 안에까지 꽉 차 절망적인 그 때 천주교 신자인 친정 언니가 나주 성모님 얘기를 들었다고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이 마리아 자매님(갈비뼈가 썩어 녹아내리는 결핵성 골수암을 나주에서 치유 받으신 분)이 “나주에 가면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이 계시는데 나주의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께 기도드리면 꼭 나을 수 있을 것이다.”하며 저희 언니와 그 분이 저를 나주 성모님께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사를 맞은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지만 작년 5월 16일 나중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언니에 이끌려서 여기에 왔습니다. 그 때 이 자리에서 비디오를 보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막 기도를 하실 때 저는 너무 아파 정신이 없어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고 저희 언니가 피를 토하듯 눈물을 흘리면서 굉장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 동안 살면서 가정에 헌신적으로 잘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파서 항암주사 맞고 집에 누워 있는 동안 제일 먼저 들은 소리가 저희 아이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이 소리였습니다. 제가 날마다 돈 번다고 직장생활을 했기에 20년간 아이들 셋 기르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다가 아파 누워 있으면서 그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항암치료를 한 번 더하고 6월 30일, 바로 1년 전 오늘이죠! 20주년 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작년에도 왔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다 자랐지만 그 당시는 항암 치료를 세 번밖에 안 했는데도 머리가 다 빠져 모자를 쓰고 아픈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암 환자라고 하겠지?’ 이렇게 가슴이 너무 아픈 마음으로 작년 6월 30일에 왔습니다. 그 때 기도회는 저쪽 잔디밭에서 했는데 그 때 오신 분은 아마 아실 것입니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오래전에 가출했다가 돌아온 아이를 어머니가 반겨주시는 듯한 그런 마음이 들며 그렇게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그날 기도하면서, 저는 사실 기도하는 법도 잘 모르지만 그냥 살려 달라는 그런 기도는 안나오고“제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하루를 살든, 열흘을 살든, 한 달을 살든 사는 날까지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저희 부모를 위해서 최선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남편을 위해서 그동안 사랑스럽게 대해 주지 못한 것을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상처를 많이 준 친정아버지, 다시는 보지 않겠다던 아버지에게 화해를 청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 동안 잘못했습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남편은 “어디를 갔다 왔는데 이렇게 달라졌느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얼굴이 너무 평화로우니까 가족들이 너무 사랑해 주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은 “항암치료를 열두 번 받아도 이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어요. 대개 치료를 받다가 죽는다고 하거든요. 이 항암 주사 때문에 사실 죽는 거예요. 사람이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항암주사 때문에 백혈구가 다 없어져서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의사 선생님이 “항암치료 결과를 보고 그 다음에 대책을 세우자”해서 그 전에 사진을 한 번 찍었었는데 최종 결과가 7월 4일 날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요즘은 모든 진료를 다 컴퓨터로 하죠? 저희 가족이 다 모인 상태에서 그 사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이 황 선희인데 컴퓨터 모니터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이름이 바뀐 줄 아시고 자꾸 다른 이름을 찾더라고요. “이름이 바뀐 게 아니야?”하시며 간호사도 부르시고 무척 당황하는 거예요.

계속 컴퓨터를 검색하시기에 저도 제 눈으로 확인을 했는데, 가슴에 큰 몽우리 2개와 목에서부터 흉골(가슴뼈)까지 전이되어 꽉 찼던 수 만개의 암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저는 남들이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해도 사실 제가 믿지를 않았어요. 현대 의학이 너무 발달되었기에 의학은 믿었지만 성모님이나 예수님은 전혀 믿지를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은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냉담하고 죄 짓고 그렇게 가족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만신행위까지 했어도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또 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그동안 잘못한 것 6월 30일 날 모두 회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통해 치유 받은데 대하여 너무 감사해서 율리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저를 기쁘게 맞이해 주셨는데 저는 너무 놀라운 일을 또다시 접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리아님께서 저 대신에 대속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배가 남산만큼 불러 오신 거예요. 낙태의 보속을 저 대신 받고 계신 거였어요.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사실 저는 낙태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그 고통을 율리아님께서 대신 보속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그게 죄라는 생각도 잊어버렸는데 그 죄가 얼마나 큰가를 그날 다시 회개하도록 나주 성모님께서 보여 주시더라고요.

사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지막이라는 얘기인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은총으로 살아나 딱 1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나와서 제가 증언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일입니다. 제가 아픈 사람 같습니까? 저 아주 너무너무 건강합니다.

예전에 제가 암에 걸렸을 때는 ‘내가 왜 암에 걸려야 하나?’하고 한탄하고 원망했지만 이제 저는 암에 걸린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큰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여기 나주에 절대 오지 않습니다. 절대 안 오고 집에서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아등바등하며 미워하고 증오하고 또 미워하고 또 용서하지 않는 그런 비참한 삶을 계속 살았을 텐데 죽을병에 딱 걸리니까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까? 은총의 자리 나주 성모님 품에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은  1년 전의 삶과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서 했는데 요즘은 반대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일,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일, 나주 성모님이 좋아 하시는 일만 골라서 합니다.

저를 끝까지 지켜 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고 치유를 해 주신 나주 성모님을 끝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며 나주 성모님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새 생명을 일깨워 주시고 저 대신 고통을 받아주신 율리아자매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를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이 마리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울러 오늘 오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 꼭 믿으세요. 그리고 울부짖으시면서 간구해 보셔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잘 모르지만 작년에 그렇게 했거든요. 간구하면서 정말 피를 토하듯이 기도하시고 회개하시고 눈물로 잘못을 용서청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는 게 회개라지요? 그죠? 회개하시면 모두 치유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성모님께서 꼭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황 루시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2006년 6월 30일

 

인도네시아 미라 자매님의 증언소식
 

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 살고 있는 미라 귀조트입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순례단을 모집하여 계속 나주에 왔습니다. 제가 순례단을 모집하여 같은 성지를 지속적으로 순례한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13년간이나 냉담상태에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을 감히 바로 바라볼 자격도 없다고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2004년 순례자로서 나주에 처음 왔을 때, 성모님 동산에서의 미사 때 제리 오르보스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 "당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라고 몇 번을 말씀 하셨는데 저는 ‘어떻게 사제가 저런 질문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놀랐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몇 번을 더 물어 보셨는데 그때마다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누가 오자고 하지 않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주님과 나주성모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충격을 받아 "주님! 성모님! 저는 기도도 전혀 하지 않고 죄만 많이 지었는데, 왜 저를 그토록 사랑하십니까? 하면서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울었습니다.

제리 신부님께서 저에게 2독서를 하라고 하시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독서는 ‘용서’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 주님, 지난날 당신의 마음을 너무나도 많이 아프게 하였으나 전혀 회개하지도 않은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하며 통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성모님과의 만남의 시간 때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절을 올리고 율리아 자매님과 포옹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감히 자매님을 포옹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나를 안아주지 않으실까봐 많이 걱정되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자매님은 저를 보고 미소 지으시며 안아주셨습니다.

그때 제 어깨에 놓여있던 모든 무거운 짐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깊은 기쁨과 평화 느꼈습니다. 제 영혼이 무척 더럽고 죄를 많이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매님이 저를 안아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매님은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시며 저를 포근히 안아 주셨을 때 다시 울음을 터트렸고 다음과 같이 되뇌었습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주님 당신을 수년 동안 아프게 한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소서." 이때가 지금까지 제 인생에 있어서 나주에서 가장 많이 회개하며 울던 때였습니다.

발리로 돌아와서 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주와 나주에서 느꼈던 것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가 오랫동안 냉담상태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성모님께서는 나주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잡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습니다.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2005년도에 나주 순례단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성모님께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작년 6월 첫 번 째 나주 순례단을 모집할 때 어느 자매님이 아들과 함께 나주 순례를 가고자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순례단을 모집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픈 사람들, 특히 저의 첫 순례단에 그들을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무척 아픈 상태였고 많은 합병증을 앓고 있었으며 몸 전체는 오그라들어 있었고 정상적인 소년으로 발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다섯 살이었지만 몸무게는 겨우 10kg이었습니다. 저는 첫 순례단에 아픈 사람들을 넣고 싶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이러한 제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첫날 나주성모님의 집에 도착하여 경당에 들어갔을 때 진한 장미향기를 맡게 되었으며 또한 놀랍게도 경당바닥에 성모님 젖이 내려온 것을 보면서 우리 순례단은 “성모님께서 이 어린 아이를 기다리고 계셨구나.” 생각하고 모두 울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엄마에게 성모님 기적수를 받게 했습니다. 제가 먼저 병에 채운 후 아이의 엄마가 기적수를 병에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병에 물을 다 채웠을 때, 맑은 물이 아니라 희뿌연 물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물이 나왔나?’ 생각했는데, 저는 곧 엄마의 젖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너무 놀라 몸이 마구 떨렸습니다. 저는 떨면서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아이에게 먹이세요. 성모님께서 당신 아이에게 젖을 주십니다. 아이는 치유될 것입니다." 그런 후 율리아 자매님께서 이 어린아이를 안고서 머리를 어루만지고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말을 못하던 그 아이는 성호를 그었고 “알렐루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에서는 침이 계속 나오며 말도 못하고 있던 상태였던 아이가 성호를 긋고 알렐루야를 외치니 아이 엄마는 너무 감격하여 내내 울고 있었습니다.

작년 10월에 대주교님 한 분과 꽤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왔었는데 대주교님은 처음에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시다가 성모님상의 양손을 만져보시며 맥박을 느끼시고서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동산을 돌며 묵주의 기도하실 때 와이셔츠와 양복 상의 여러곳에 예수님의 성혈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대주교님은 확실하게 나주를 지지하고 계시며 작년 자카르타에서 있었던 주교회의에서 자신이 나주에서 체험한 기적과 하느님의 권능을 모두 증언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적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또 하나 최근의 사건은 금년 5월에 있었습니다. 나이 드신 신부님을모시고 왔는데 그분은 모든 것에 대해 투덜거리고 불평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참을 수 없어서 성모님께 말했습니다. "“왜 당신은 제게 이런 사제를 보내셨습니까? 왜 좀 더 좋은 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하고요

그런데 5월 첫 토요일 미사강론 때 "하느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다."라는 그날 복음말씀대신 "가나의 혼인잔치"를 읽으셨습니다. 나중에 왜 그러셨는지 우리가 여쭈었을 때 신부님도 왜 그 부분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은 제게 "율리아 자매님의 치유기도시간과 만남의 시간을 하지 말고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신부님은 성모님상에서 흐르는 기름은 율리아 자매님의 협력자가 뿌린 것이며 동산에 내려오신 성혈 역시 협력자가 뿌린 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룹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모두 신부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원래는 신부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셔야 되는데… 우리들은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성모님께 용서를 청했습니다. 심지어 경당에서도 신부님은 기도도 하지 않으시고 뒤에 앉아서 경당이 좋지 않다는 등 불평을 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성모님께서 사제를 잘못 보내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모님 동산에서의 마지막 날,  미사 준비를 도와주던 서 베드로 형제님은 포도주를 병에 꽉 채웠고 다른 한 병은 신부님께서 하시리라 생각하고 빈 채로 나뒀습니다. 그리고 나서 미사는 여느 때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성찬의 예식때 신부님은 그 포도주병에 담겨있던 포도주를 다 성작에 부으신 후 물 몇 방울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그 물병에 담긴 물로 손을 씻으셨습니다.

성체분배가 끝난 후 신부님은 물로 성작을 씻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성찬의 예식 때와 손을 씻을 때 사용하신 작은 물병을 집어 들어 성작에 부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물이 아닌 포도주로 변화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기절할 만큼 놀라셨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 그 병에다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신부님은 약간 공황상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부님은 순례자로부터 기적수를 건네받아 성작에 넣고 마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은 깊이 기도하셨고 우리 그룹의 얼굴은 모두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신부님에게 나주의 모든 징표들이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더 놀라게 했던 사실은 미사 후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병에 물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사 동안 병은 비어 있었고 성찬례 때와 손가락을 씻을 때 물이 저절로 채워졌으며 다시 그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그룹이 경당에 다시 갔을 때 신부님이 제단 위로 올라가 성모님상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모님. 당신께서는 우리들 중 단 한 사람도 당신을 외면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항상 사람들을 나주성모님께로 데려오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주 성모님을 의심하는 신부님으로 하여금 가나의 혼인잔치 복음을 읽도록 인도하셨고 그와 똑 같은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신부님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요즈음 광주대주교님의 공지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앞으로도, 아니 영원히 오류에 따르지 않고 하느님과 성모님의 말씀에 더 순명 할 것입니다. 저의 교구장님은 너무 좋고 겸손하시며 나주의 모든 일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확실히 체험하시고 믿으시기 때문에 뒤에서 저를 밀어주시고 제가 지금 나주 성모님을 위하여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왜 그분들이 우리가 여기에서 기도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저희들이 나주에 순례 와서 기도하면서 회개하므로 영적 육적으로 치유 되고, 병든 가정이 서로 용서하여 화합하고, 영적으로 성화되는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지키고 전파할 신자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항상 제가 나주에 오는 것을 도와주시고 또 사람들을 나주로 데리고 오는 것을 도와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순례자들을 모시고 나주에 오지 못했을 것이며 발리 나주 성모님 대회도 개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율리아 자매님께서 발리에 오셨던 것처럼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을 발리대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하였으나 여러 주교님들과 50여분의 신부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발리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많은 사람들이 영적 육적으로 치유를 받고 감동되어 냉담자와 무신론자가 다시 교회에 나오고 또 불목한 가족들이 화해하여 나주에 순례를 오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저의 그룹이 나주에 순례 와 있는 동안 많은 기적과 징표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기적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의 징표를 주심으로써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히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Mira Guizot
Jl. Jepun Pipil No.19
Gatot Subroto Timur
Denpasar - Bali, Indonesia

2006년 6월 30일

 

 

이 율리안나 자매님의 치유 증언 소식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3명의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 이 율리안나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남편의 사업실패로 3억이나 되는 엄청난 빚 때문에 절망과 실의 속에 있을 때 남편은 이 절박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기는커녕 급기야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던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엄청난 빚과 아이들을 남긴 채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머리는 노랗게 염색을 하고 진한 화장과 주먹만 한 귀고리 등으로 화려하게 멋을 내고 돌아다니던 때였습니다. 사회생활 경험도 없고 어떠한 대책도 없었던 저는 이 모든 시련들을 혼자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한탄과 원망 속에 늘 죽으려 했지만 아이들만 놔두고 죽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 생각 했기에 죽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8월, 악성 종양이 가로 결장과 소장간막에 침투하여 직경 3Cm짜리 악성종양 2개와 직경 2Cm짜리 악성종양 1개가 자라고 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 받기로 했습니다.

수술받기까지 20일이라는 기간이 있기에 광주에 내려와 신부님께 총 고백성사와 병자성사를 보고 임종 준비를 하였고, 통증이 올 때마다 진통제로 연명해 가다가 소문으로만 듣던 나주 성모님 집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살려 달라는 기도보다는 회개하여 구원받게 해주시라고 기도 한지 15일쯤 되었을 때 잘못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들이 마치 필름처럼 지나가며 자살을 하고자 했던 대죄와 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교만을 깨닫게 되어 주님과 성모님께 용서를 청하며 한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옆에서는 수녀님 다섯 분이 함께 기도하고 계셨는데 그 때 갑자기 수녀님들께서 "어머, 자매님! 자매님 몸에서 장미향기가 진동하네요."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성모님께서 지금 나를 치유시켜 주신다."고 확신을 갖고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때 그렇게도 심하게 아팠던 제 몸의  모든 통증이 말끔히 사라져 이날 이후로 진통제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 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 결과 악성종양 3개가 말끔히 사라져 의사들이 놀라워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 의사들은 “신기한 일이다”라며 실험대상으로 한달 간격으로 5번 이상의 재검사를 했습니다. 대장 내시경과 모든 검사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검사였지만 나주 성모님 메시지 말씀대로 이 고통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봉헌하였습니다. 의사들은 그 후에야 믿고 놀라워했습니다.

그 후 병원에서는 매년 한두 차례정도 전화를 하여 이상유무를 확인하곤 했는데 올 봄에도 ‘암이 괜찮은가?’하고 확인 전화가 왔었습니다.

얼마 전에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 이상 없이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영혼육신이 건강하게 되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노력한 결과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세 자녀들도 아주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여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이 또한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 도와주신 은총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죄인들의 회개와 병든 가정을 위해 보속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시어머니까지 돌보면서 남편을 용서하고 진심으로 축복의 기도까지 해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남편도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회개의 은총을 입으리라 굳게 믿으며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치유 받고 난 뒤로 지금까지 첫 토요일이나 목요성시간 기도회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의 영혼과 육신을 치유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배은망덕하지 않기 위함이고 저의 영적인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리아 자매님께서도 항상“받은 은총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총을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나주 성모님 아니었으면 평생 한숨과 원망 속에 남편을 미워하며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기에 이렇게 기쁨과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저는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까지 은총을 얻어주기 위해 항상 고통 받으시는 율리아 자매님께도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인간적 욕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원하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나주 성모님께서 인준 받으셔서 길 잃고 헤매며 세속과 죄악에서 허덕이면서 단비에 목말라 하는 많은 영혼들이 저처럼 구원 받기 바랄 뿐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양님 율리안나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모아 102동 612호

 

 

이것은 직접 내려오신 성혈입니다.

 

저는 빌냐꼬르떼 루루이고 저희가 여기 한국에 부임한 것은 2003년입니다. 저는 물론 한국에 오기 전에도 이곳 나주에 대해서는 신문이든지 여러 사람들, 특히 오제리 신부님이 전하는 것을 통해 이곳에 굉장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여러 번 오셨던 율리아 자매님이 필리핀의 현 대통령인 아로요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 코라손으로부터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 궁에 초청받아 환대 받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기적을 경험했는데 특별히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작년 6월 30일에 나주에 와서 받은 은총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여기 처음 올 때 혼자서 왔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온 오제리 신부님 일행과 같이 합류를 하여 그 버스에 탔습니다. 그중에는 눈이 거의 실명된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비가 갠 후 태양을 쳐다보았는데 태양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거의 장님에 가까운 그 분의 말을 듣고 태양을 쳐다보았는데 태양이 돌고 있었으며 태양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태양의 기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태양 주위에는 은색선이 돌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성체와 같은 동그란 게 계속 돌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은 분명히 성체라고 얘기했습니다.

오제리 신부님께서 말씀하셔서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태양을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태양의 색깔이 계속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연두색으로 계속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현상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서, 즉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세상에서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이 아름다운 태양의 기적을 같이 와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 와서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나주 성모님 동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데 자비의 예수님 상본에서 마냥 희고 파란 빛이 이 성모님 동산 전체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빛의 기적을 보고 행사가 시작 되었는데 성모님께서 향유를 굉장히 많이 흘리고 계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나주 성모님 동산에 있으니 정말 천국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늦게 율리아 자매님을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떨어진 친구처럼 서로가 안고 율리아 자매님은 항상 만나시면 하시는 것처럼 God bless you!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I love you!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반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율리아 자매님께서 저의 칼라에 뭐가 묻었다며 제 머리와 손이나 혹시 어디 상처 난 데가 있는지 살펴보셨습니다. 그 때 한국말을 할줄 아시는 오제리 신부님께서 방안으로 들어오셔서 “이것은 직접 내려오신 성혈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이렇게 큰 은총을 왜 나에게 주셨는지 자문 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님께서 주신 성혈은 저뿐만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다 성혈을 이미 내려 주셨는데 나에게는 예수님의 발현을 보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특별히 내려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주에 와서 주님께 성혈을 받는 것도 주님 친히 저희에게 오시는 것이고 우리가 미사 때 성체를 모시는 것도 우리가 보기엔 단순한  밀떡과 와인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봉헌을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어 저희 마음 안에 주님이 항상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특별히 의심하고 질문할 사항이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특별한 은총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임무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그런 뜻이라는 것을 깊이 아시길 바랍니다. 성모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더 특별한 은총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006년 7월 1일
Lulu T. Villacorte
Unit 5, Moaliza Townhomes
No. 3, 12th Street
New Manila, Quezon City
Philippines


 

나주 성모님을 순례한 10년, 그 뒤. 가장 중요한 사실 몇 가지 
 

나주성모님 순례를 다니며, 제게 내려주신 은총을 증언합니다.

지난 97년 9월 첫 토요일에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98년 2월 첫 토요일에 가니까 공지문이 났다구해서, “아, 그럼 이제부터 사람들이 순례를 안 하겠구나” 했지요.  근데 몇 달 동안 너무나 나주에 가고 싶은 거여요.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6월 30일에 순례를 갔습니다.

사람들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갔는데, 많은 거여요. 그전같이 밤새 기도를 한다는 거여요. 저는 안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후부턴 첫 토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순례를 갔지요.

제가 처음 나주성모님 순례를 갈 땐 그저 한번만 가보자 하였는데, 그 다음 달에도 또 그 다음 달에도 저도 모르게 자꾸 가는 거여요. 이제야 저는 성모님께서 저의 죄를 씻어 주시려고 자주자주 순례를 다니라고 죄인을 부르셨다는 걸 알아요.

아무것도 모른 채, 특히 가톨릭에서 말하는 모든 교리들은 그저 영세나 견진을 받는 수준에 불과하였지만, 꾸준히 매일미사를 다니니깐 성모님께서 죄인 중에 죄인이어도 불러 주셨나 봐요. 제 특기가 “한번하면 꾸준히 한다.” 거든요.

이제 제가 성모님께 받은 은총을 말할게요.

나주성모님께 기도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집안경제사정이 어렵다든가, 아이들이 문제가 있지만  견디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 자신의 질병이나 큰 고통 속에 지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저의 말을 들으면 속으로 “잘난척하네!!” 할까봐.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으나 은총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셔서 은총을 나눕니다.

1.처음 나주성모님 순례를 간 97년 9월부터 저의 아들 돈보스꼬가 공부에 정진하였습니다!! 사실 그전에는 매일매일 독서실도 다니고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하였지만, 성적은 중간을 헤매고 있어 저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정신 차렸다고 본인도 말하고 있어요. 결국 서울에 있는 건국 대에 입학시켜주셔서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 저의 친정어머니 마리아에게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모님께 드리는 편지에 쓴 대로 육신의 어머니를 불러 가시는 그날까지 영육간의 건강을 허락하시어 주님 성모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허락하여주시길 간청하였는데, 지금 85세(1922년생입니다)의 연세에 여주에서 서울 집에 혼자 오실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시고 아직 정신이 저보다 더 또렷하십니다. 그리고 미사 갈 때 미사마치고 나올 때 꼭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시고, 매일 밥도 하시고 청소도 하신답니다. 생활의 기도를 매순간 하면서 지내시길 권하면 잘 들으시고 실천하려고 애쓰신 답니다.

3.저의 남편 바오로, 살아생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영세를 받을 것 같지 않았던 저희 남편이 영세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4.딸  로사리아 역시 공부를 못하고 그저 수도권에 있는 수원 대에 다니는 수준입니다만 졸업 직전에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하여 영어도 공부하고 또 좀 더 공부하여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로사리아에게도 주님과 성모님의 뜻에 맞는 앞길을 열어주시길 간청하였는데, 이도 역시 들어주셨습니다.

5. 저에게 주신 은총은 저는 원래 몸이 약했기에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잔병치레가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00대학교 0000대학장으로 지난 3년간 지내도록 허락하여주셨습니다.

제가 생활 과학 대에서 제일 먼저 있었거든요. 저보다 먼저 오신 분들이 있지만 제가 83년부터 근무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된 사람이지요. 생활 과학 대에서는 연세와 기여도가 많으신 분이 거의 15년을 학장하시다가 그만두시면서 다른 분이 학장을 먼저 하실 수도 있었지만. 제가 먼저 학장을 함으로서 저의 위치를 올려주신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6.부족한 죄인인 제가 나주성모님께 조그마한 봉헌을 한 것에 대하여서도 열배 백배 은총을 허락하심을 증언합니다. 나주성모님집이 많은 봉사자들 하구 어떻게 사나 싶어서 조그마한 금액을 보내드린 점을 크게 보시어, 저에게 어디 작은 섬에 땅이 있었는데, 그 섬에 연육교가 놓이고 주 5일제 근무하면서 위치 좋은 위락장소가 되었나 봐요. 비싸게 팔리도록 하시고 그 땅을 판 금액으로 조그만 집을 샀는데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7. 제가 자주 감기몸살을 앓는 편이었어요. 알레르기성 비염을 꼭 무슨 계절병인양 가지고 다녔는데, 순례 다녀오면 없어지는 거였어요. 밤샘기도로 다음 날 견딜 수 있을까? 하였지만 언제나 건강을 주셨습니다!! 학장 하는 동안 힘들어서 신우염이 자주 걸렸어요. 신우염도 제가 20대중반부터 자주 걸리는 질병이었죠. 그런데 힘들면 더 자주 걸려서 일년에 두 번을 앓을 때도 있어 이 핑계로 학장업무를 벗어나게 해 주셨고, 지금은 걸리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하여 증언하는 사실이구요.

가장 중요한 사실!!! 몇 가지.

1. 제 성격을 고쳐주셨어요

엄청나게 화도 잘 내고 무엇보다 잘난 척이 심했죠. (이는 제 친정어머니로부터 들어서 아는 일이지만, 저의 친정이 대대로 교만하였다고 하더군요). 남들이 모두 저보다 못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지금은 고쳐졌어요!!!

그러나 아직 너무나 부족하죠. 속으로 잘난 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죠. 화를 내는 빈도가 대폭 줄었고 이런 변화가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주님 성모님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2. 저와 가족 모두에게 평화를 주셨어요. 나주성모님 순례는 바로 평화를 찾는 길이었고, 그 방법으로서 생활의 기도를 알게 하여 주시었으며, 생활이 변화되어 평화를 얻었다고 봅니다.

3. 생활의 기도로 “깨어있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바로 생활자체를 기도로 봉헌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4. 성령의 지혜를 함께 하도록 해 주신 것 같아요. 이는 스스로 느끼는 점이라서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무슨 일을 결정할 때나 일을 처리하는 동안, 쫓기면서 작업해야 하는 일들, 등등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계심을 느낍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잘 처리되는 것을 보면 함께 해주심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나주에서 발현하여 영적 육적으로 치유 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마틸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6~700kg의 석탑에 깔려
휘어지고 부러진 손가락이 정상으로 되었어요.


그립고 사랑하는 쥴리아 자매님 쥴리오 형제님께!
저희들은 두 분께서 염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덕으로 잘 있습니다. 다름 아니고 오늘 저희가게에 한국에서 몇 년 전에 수입해온 무거운 화강암 석탑을 옮기는 과정에서 창고에 일하는 직원 한 사람이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기적수로 아무 일 없이 나은 일이 있어서 이 기쁜 소식을 자매님과 형제님 한국에 계시는 모든 분들께 알리고 싶어 급히 연락드립니다.

이 석탑은 키가 160~170cm 정도이고 받침대는 50cm 사각 정도의 세 부류(3parts)로 된 것인데 무게는 600~700kg 가량 되는 제품이었습니다. 장부인 토마스(Thomas)형제를 포함해서 장정들 6명이 함께 옮기던 중에 석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모두들 그냥 바닥으로 석탑의 중간 부분을 놓으면서 손들을 빼내었는데 이 청년만 석탑의 한 부분에 눌려서 손을 다쳤습니다.

왼손의 중간 손가락이었는데 Thomas형제가 저더러 빨리 응급실로 데려가라고 해서 앰뷸런스보다 빠를 것 같아 급히 데리고 저희 가게에서 차로 7분정도 걸리는 병원을 갔습니다. 이 직원은 차안에서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분명히 뼈들이 부러졌다면서 무척 아프다고 하는데 살갗이 벗겨져서 피도 나와서 뭉쳐 있었습니다. 저는 응급실로 데리고 가면서 속으로 큰 걱정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졌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치료가 될 것이고 우리에게 배상을 요구했을 경우 등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차에 태우고 가면서 신호등에 걸려서 잠깐 쉴 때에 제 백(bag)에서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꺼내서 직원의 손에다 발라주었습니다. 이 직원의 손가락이 2~3°정도 옆으로 휘어진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청년을 계속해서 뼈가 부러졌다고 하며 아프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수속을 한 뒤 잠시 기다리는 중에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한 번 더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의사가 올 때까지 간호사들이 와서 여러 가지 질문과 검사를 할 때까지 약 두 시간을 x-ray찍기 전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이 청년은 응급침대에 걸쳐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앞에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서너 차례 제가 일어나서 직원의 다친 손가락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아버지 하느님께 예수님께 나주 성모님의 도움으로 뼈가 부러져있지 않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하면서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한두 번 제가 일어서서 청년의 손가락을 볼 때는 분명히 옆으로 휘어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살펴보니 다치고 휘어졌던 손가락이 곧게 펴져있고 이 직원의 얼굴도 화색이 있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직 x-ray를 찍기 전이기에 그대로 기도를 하며 있었는데 간호사가 x-ray를 찍은 후에 다시 한 시간정도를 기다리니 연고와 작은 크기의 거즈를 들고 와서 이 직원의 손가락에 바르면서 그냥 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안 부러졌다.” “오늘은 거즈를 테이프로 붙여주니 그대로 가고 내일은 일회용 반창고를 발라라” 하며 몇 개를 주고 진통제를 사라고 처방전을 받아다 주고 갔습니다.

이 직원은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실망스러운 모습인 듯싶었지만 저는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인지 병원에서 전화로 Thomas 형제에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로 인해 제 눈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치료되는 과정을 보게 해주신 것을 알렸더니 Thomas형제가 하는 말이 그 손가락이 부러졌던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일인데 나주 성모님 기적수로 인해 기적을 보게 하여 주셨다고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이곳에서 나주 성모님 기적수와 나주 성모님의 눈물, 피눈물, 향유 등의 사실은 미국인 일반인들에게 100%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저희가게를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 다른 주에서 전에 저희가게에 들렸을 때 Thomas형제로부터 나주 성모님 소식을 듣고 “기적수”를 가져갔던 분들 이분들이 다른 친구들과 다시 저희가게를 찾아와서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보관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가져가기를 원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수량을 보여주며 한 개씩 밖에 줄 수 없다고 설명을 하고 전달 할 때 한 개씩 받고서 기뻐서 환성을 울리는 모습들 참으로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외에도 일일이 다 글로써 말로써 표현하지 않았던 나주 성모님 기적수 치유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분들은 이 모두 진정이고 사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운 사랑하는 쥴리아 자매님과 쥴리오 형제님 다시 뵈올 때 까지 안녕히 계세요.


2006년 7월 20일
요세피나 와킨즈(Josephine Watkins) 드림

 

 

미국의 토마스 왓킨스 씨의 나주 기적수로 인한 치유 증언


미국의 토마스 와킨스입니다.
지난 7월 25일 시내에 2개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는 여성 고객에게
나주의 기적수 30cc가 든 병을 하나 주었답니다.

그녀는 축농증을 앓고 있는데 의사들은
아직까지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나주기적수를 받은 후 그녀는 한밤중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적수를 조금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왓킨스씨가 준 병에 작은 뚜껑 한 개와
큰 뚜껑 한 개가 있는 줄 모르고 그만 뚜껑을 열었는데
실수로 병의 기적수 대부분이 바닥에 쏟아져버렸습니다.

그녀는 너무 슬프고 후회스러워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아래층으로 가서 병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기적수가 다시 병에 다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고
현재 축농증에 기적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가게를 찾아오는 부인이 있는데 이름은 마싸즈 게이린 존스(Mrs. Gayle Jones) 이고 네브라스카 주(Nebrask State)에 오마하(Omaha City) 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분이 금년 여름에 저희 가게에 들렀었는데 그때 보니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었고 얼굴은 매우 야위어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그분에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작은 병의 나주성모님 기적수와 안내서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기쁘게 모든 자료를 받으며 - 현재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슴이 야구공 크기의 종양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아예 머리 전체를 면도를 해서 수건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분이 본인의 친 여동생과 함께 왔는데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상태에 삭발했던 머리가 숱도 많이, 기장은 적당히 보기 좋은 쇼트(short)머리를 하고 혈색과 모습이 건강한 상태로 왔기에 제가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니 그분의 첫 번째 대답이 "나주의 기적수"로 "거의 다 나은 상태"라고 얼굴이 빨갛게 긴장이 되며 눈물이 양 눈에 아주 가득히 고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알기 전에 방사선 치료로 인해 문제가 있던 부분 말고 다른 폐와 일부 장기가 망가져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바른 후 의사의 점검을 받아보니 깨끗한 상태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기쁜 마음을 전하며 이 사실은 나주에 알려도 좋겠느냐고 물으니 기꺼이 본인의 자필로 이름과 병명을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온 여동생의 시어머님이 치매 증세로 동생을 무척 힘들게 하셔서 오늘 가져가는 나주 기적수를 동생의 시어머님의 머리에 발라드려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시 살게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며 즐겁게 저희 가게를 떠났습니다.

 

나주 기적수로 인한 치유 증언

1.    
왓킨스 형제님께서 손님에게 나주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을 때, 한 자매님이 가게에 들어와 자기친구가 유방암 환자였는데 지금은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자매님은 그녀 친구의 집 안에다 나주 기적수를 뿌렸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2.    
젊은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가게로 들어와서 나주 기적수로 인하여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의 친구가 대개 남자들이 걸리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 친구에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주었는데 지금은 그 병이 정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가족이 가지고 있는 나주 기적수는 물을 사용해도 사용한 만큼 병에 다시 물이 채워지는(증가되는) 놀라운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는 이를 보고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였습니다.

3.    
어느 날 한 자매님이 가게에 들러서 88세 된 마르타라는 어머니가 매우 편찮으셨는데, 지금은 아주 건강해지셔서 무척 행복해 하신답니다. 그 자매님은 어머니 침대 맡에 나주 기적수와 나주성모님 사진을 놓아두었는데, 어머니의 치유가 나주 성모님 물과 성모님 사진 덕택이라고 하였습니다.

4.    
아드리안이라는 자매님은 매우 심한 열이 있어서 잠자리에 들 때 어머니가 나주 기적수를 얼굴에 발라주고 옷에다가 나주 성모님 핀을 꽂아 주었는데, 그녀는 심하게 몸을 떨 정도로 무척 아팠답니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일어났을 때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이날 직장에 간다고 어머니께 말하였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녀가 어제 몹시 아팠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였지만 그 자매님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께 나주 성모님 핀을 돌려주면서 괜찮다고 말하였답니다.
또한 그녀가 나주 기적수를 얼굴에 바른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웃음을 띠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손녀딸이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은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기뻐하신다는 표지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5.    
죠세핀 왓킨스 부인은 작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왓킨스 씨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아들부부가 나주를 믿고 있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표지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토마스 J. 와킨스
4905 West 77th Street, Prairie Village, kansas 66208 U. S. A 
2006년 7월 27일

 

 

엄청난 골초이며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젓는 술고래였었는데

 

저는 서울대교구 최 요한입니다. 올해 49세로 대기업의 임원인 저와 제 가정이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엄청난 골초이며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젓는 술고래였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다 일본에 유학 가서 동경 공업 대학에서 TFT를 전공하여 1995년 공학 박사학위를 받고는 귀국해서 잘 나갔습니다.

성당에는 주일도 빠지고 안가다보니까 안가도 되는 거 같아요. 이렇게 한두 번 빠지다보니 망가지기 시작 하여  5년 정도를 냉담 하게 되었어요.  IMF가 왔을 때 그 당시 제가 있던 부서는 회사에서 박사급들만 다 모아놓는 부서였기에 오히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벤처기업을 세워 디스플레이를 우리가 개발해서 그걸로 삼성전자와 같이 큰 회사를 만들어보자 하여 회사를  만들어서 잘 나갔어요.

그때 저는 뭐  교만이  막 하늘 끝까지 올라갔을 때라서 천주교 신자들이 잘하는 이야기처럼 뭐 나중에 잘하고 사업 잘되면 여기서 나온 돈 3분의 일은 하느님 사업하는데 쓰고 뭐 삼분의 일은 어디에 쓰고.. 그렇게 교만해 진거예요. 잘되니까. 이제 투자도 대기업에서 받기로 됐어요. 한 150억 에서 200억 정도 투자 받기로 약속되는 등 제 기술의 지적 재산권이 계산상으로 1000억 정도까지 됐어요. 그러다보니 교만해 지고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등 생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어느 순간 부도를 걱정하게 되었지요. 회사가 부도가 나면 저는 대표로서 당연히 구속이 되는 터라 친한 사람들 만나서 조언을 구하면 전부 “그냥 있으면 집이고 뭐고 재산을 다 날리니까 이혼을 해라.”고 하는데 영혼이 피폐해지고 너무 힘들어 나중에는 ‘회사구 뭐구 영혼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때 저희 일본에 있을 때  알던 한분이 나주 성모님 얘기를 해 주셔서 어느 날 제 아내가 마리아의 구원방주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시고 성혈이 돌 위에 낭자한 모습을 보고 왜 그런걸 보냐고 제가 소리를 막 질렀어요. 저는 그런걸 안 믿었거든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시는 모습이 너무 뇌리에 강하게 박혀 다음날 회사에서 사이트로 한번 들어가 봤어요.

“나주 성모님” 하고 치니까 뜨더라고요. 그 당시에 2002년 8월 15일 일어났던 예수님께서 성심을 열어 쏟아주신 성혈 흘리시는 동영상을 올려 띄워 놓았는데 그걸 딱 보는 순간에 감격스러웠어요.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게 헛것을 잡고자 쫓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랑 같이 있던 친구 중에 한분이 물리학 박사인데 성혈 내리시는 동영상을 보면서 “잠깐 와 봐라” 해서 같이 봤어요. “이거 거짓말 같냐?” 그랬더니 “허, 이거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 집사람하고 무작정 낮에 차를 몰고 나주 성모님 집에 갔습니다. 아 근데 경당엘 들어 갈수가 없었어요.

그날이 2002년 11월 20일 세 번째 목요일 기도회 하는 날이었는데 그동안 제가 너무 잘못 살았기에 들어가면 왠지 요절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무서워서 경당 앞 다리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피며 ‘이 담배만큼은 내가 오늘 꼭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애착이 가서 7대나 피우고는 기도회 참석하기 전 성모님 물을 마시는데 피비린내가 진동하였지만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셨습니다.

마시는데  바가지에서 막 피비린내가 그렇게 나는 거예요. 처음에 그걸 성혈 향기라고 생각 못하고 ‘바가지를 닦지 않아서 이렇게 냄새가 나나보다’ 하면서도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숨을 안 쉬고 쭈욱 다 마시고나서 경당 문을 살짝 열고서 뒤로 살금살금 들어갔더니 묵주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저는 묵주 기도를 해 본적이 없어요.  기도회가 한 2시간 정도 하는 데 거기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며 잘못 살아온 제 모습이 떠올라 계속 2시간을 울었어요.

기도회 마무리로 “마리아의 구원 방주” 성가를 하는데 갈증이 너무 나 아무 생각 없이 뛰어가서 성모님 물을 가득 받았는데 피비린내가 또 나는 거예요. 또마셨어요. 차를 몰고 군산 휴게소쯤 갔는데 갑자기 내가 담배를 안 피웠다는 생각이 들며 이상하게 담배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 거예요. 제가 “나주 성모님께 은총 받아 이제 담배 안 피워도 될 것 같아.” 하니까 담배를 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모두 실패한 사실을 잘 아는 가족들은 내 말을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정말로 제가 담배에서 해방된 것을 보신 어머니께서 그 뒤로 계속 저희와 성모님께 순례오십니다.

처음 우리 어머니가 보시고 뭐 좋은데 갔다 온 것 같다며 거기 “나도 좀 데려다 달라”고 하시어 그 뒤로 저랑 같이 쭉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울고불고 회개하고서는 나도 냉담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주 성모님을 집에 모셔 놓고 그날부터 9일 기도를 시작 했어요. 제가 그때부터 엄청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때 회사가 부도가 날 위급한 상황이라 삼성과 대우 계열 등 2군데의 회사와 매각 협상을 하였는데 성모님께 편지를 썼어요. “성모님! 빨리 이 힘든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해결을 해주십시오.” 라고 처절하게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2주후에 사업성을 2년간 검토한 삼성 계열회사가 못하겠다고 통보가 온 거예요, 대우계열 회사는 그 때 막 검토했기 때문에 1년은 걸릴 것이고 그러면 제 회사는 이미 부도가 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님이 저와의 첫 만남에서 “김우중씨가 없는데도 저를 믿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을 믿습니까?” 하여 “믿습니다.” 하였더니 “우리 성령님을 믿고 한번 해 봅시다.”해서 하게 되었는데 쉬지 않고 “성모님 가정이 부서집니다. 도와주세요.”하고 나주 성모님께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남지는 않아도 부도나려고 하면 성모님께서 메워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본 잠식 됐던 저희 회사를 대우라는 회사가 맡아서 M&A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흑자가 난 상태에서 넘어 가게 되어 잘 해결이 됐어요.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렇듯 다 들어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집 사람이 제 술버릇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여 어느 순간에 술을 봉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모님께 “이제 이 술까지 가져가십시오.” 하고는 한번은 횟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나주 성수를 술병에 탔더니 갑자기 장미향기가 방에 꽉 차는 거예요. 얼마나 진했는지 눈이 따가워서 앉아 있지 못할 정도라 종업원에게 “여기 누가 향수 뿌리고 다니냐?”고 했더니 “횟집에서 무슨 향수를 뿌리고 다니냐?”고 해서 성모님께서 술 그만 먹으라고 축복해 주신 것임을 알았지만 건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술을 어느 정도 먹었냐면 양주 같은 것은 앉은 자리에서 6-7병정도 먹었는데 봉헌한 뒤부터서는 맥주 한두 잔만 먹어도 꽝 꽝 넘어가는 거예요. 눈을 뜨면 집이 아니고 차에서 자고 컨트롤이 안 돼서 ‘이러면 큰일 나겠다.’ 싶어 성모님께 “저를 온전히 봉헌하겠으니 도구로 쓰십시오. 그 대신 술 마시는 악습은 제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으니까 성모님께서 쓰실 만큼 닦아서 쓰십시오,”라는 기도를 처절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첫 토요일만 되면 금요일에 밤새도록 술 마시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 2005년 6월 30일 행사 끝나고 7월 첫 토요일 날 복사를 섰는데 장백의에 한 방울 떨어지고 맹장 있는데 두 방울이 떨어졌어요. 성혈인가? 했는데 진짜 성혈인 거예요. 성혈 받고 조신했어야 되는데 술자리가 계속 더 생겨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8월 첫 토요일은 밤새 술을 먹고 와 힘들고 배가 아파 십자가의 길 조차 못했어요.

서울에 돌아와 맹장인 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 세 가지가 합쳐진 복합증상이라 염증이 심해 수술을 받고 열흘 정도 입원해 있어야 했습니다. 문병 온 사람들은 “어서 퇴원해 술 한 잔 하자”고 아우성이었는데 운 좋게 전화로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를 받게 되었어요. 자매님께서 기도를 시작하시는데 수화기에서 바람이 싹 나오는데 장미향 바람인 거예요. 장미향 바람이 코로 들어오면서 때리는데 제가 뒤로 팍 넘어졌어요. 그 뒤로 술을 가져가신 거예요.

저번에 율리아 자매님께서 알코올 중독자의 고통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자매님의 희생보속고통을 통해 제가 술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속에 찌들고 부족한 제가 이런 은총을 받은 것은 나주 성모님을 신뢰하였기에 처음에는 이틀에 한 번씩도 오고 부부싸움 하면 같이 이곳에 와서 풀고 올라가고 계속 매달린 것이 주효했나 봅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이 되고 전에는 돈을 아무리 모아도 자꾸 부족했는데 나주 성모님을 통해 주님을 모시고 사니까 조금만 갖다놓아도 넘치고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솔직히 기적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모님한테 와서 변화 되었고 내가 성모님께 얘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어요. 성모님 감사합니다.”

 

서울시 양천구 신정 7동

최 요한


지팡이가 필요 없게 되었어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배재철 베드로라고 합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처음 찾은 것은 작년 10월 첫째 토요일이었는데 그때까지는 나주라는 곳을 잘 몰랐어요. 저는 오십견으로 어깨를 쓰지 못해 4년 동안 머리조차 제대로 감을 수가 없었는데 11월 달에 2번째 순례 와서 미사시간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올라가지도 않던 어깨를 치유 받았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성모님을 위해 쌓은 공로가 별로 없는데 나주에 순례 온 것만으로 그렇게 은총을 주시다니!

저는 월남참전 용사인데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중추신경마비가 와서 지난 구정 때인 2월 17일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응급조치를 받고 입원을 일주일간 했는데 왼 쪽으로 전체가 마비가 와서 오랫동안 입원해야 한다는 것을 답답해서 일찍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잡고 아주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다가 오늘 나주 성모님께 찾아와서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어렵게 십자가의 길을 오르며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끝나고 내려올 때는 지팡이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왼쪽 다리에 힘이 생기고 마비되었던 왼쪽 팔이 풀렸습니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지 않고 제 발로 내려왔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해서 집어던졌던 지팡이를 성모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 라이프 APT 101동 1105호

배 재철 베드로

 

2007년 4월 6일 성금요일 율리아 자매님의 십자가 고통을 목격하시고
 
 

거의 20년 전 어떤 이가 한국 나주 성모님 상의 우시는 사진을 버마, 카친 지방의 마이트카이나 교구에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처음 보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는 피정 차 싱가폴에 갔었는데 그 곳에 사는 몇 분들로부터 나주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나주를 방문할 수 있기를 열망하였으나 그럴 기회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집된 순례단으로부터 저에게 나주에 함께 가서 성주간을 지내자는 초청이 왔습니다. 

다음은 제가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나주에서 목격한 놀라운 사건들의 일부입니다.

* 2007년 4월 6일, 성금요일, 오후 3시 경 저희 순례자들은 모두 함께 십가가의 길 신공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머리에 가시관을 받으셨고, 저희는 자매님의 이마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 인도네시아에서 오신 헤르만 안도 신부님과 저는 율리아 자매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었는데 도중에 자매님은 세 차례 넘어지셨습니다.

* 제15처를 지난 후 우리는 큰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드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있다가 율리아 자매님이 십자고상 위의 예수님 발을 손으로 만지셨는데, 자매님의 손바닥이 향유로 젖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은 헤르만 신부님과 저에게도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유했는데, 저희가 십자고상의 예수님 발을 만졌더니 저희의 손바닥도 향유로 젖게 되었습니다. 

* 십자가의 길 신공과 묵주신공을 마친 후 저희는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로부터 또다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성토요일 저녁에 저는 율리아 자매님이 모시고 오신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님의 기적적인 성상을 환영하시라는 요청을 주위 분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타고 오신 자동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 있던 모든 이들은 매우 강한 장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순례자들은 성모님 상에 흘러내리는 향유를 목격했습니다.

* 부활성야의 미사 전에 묵주 기도가 끝난 후 헤르만 신부, 저, 사진기를 들고 있는 몇 분들, 그리고 지도하시는 몇 분들은 비닐 경당 뒤쪽에 마련된 방에 모여서 율리아 자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희 신부들이 걸치고 있던 영대 위에 피가 몇 방울 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걸치고 있던 흰색 영대의 오른쪽에 짙은 선혈이 묻어있었고 또 같은 영대 위에 또 하나의 핏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헤르만 신부님의 영대 위에도 두 군데에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나주에 머무는 동안 저는 율리아 자매님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진정한 겸손과, 깊은 기도 생활, 거듭되는 금식, 그리고 모든 이들에 대한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저는 또한 자매님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전 세계에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매우 강하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매님이 여러 종류의 심한 고통들을 견디어낼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들을 주고 계십니다.

저는 또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내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이제 나주의 메시지들과 징표들로 인하여 올바른 삶의 길이 들어서게 되었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 특히 저 자신의 기도 생활에 있어서 많은 모자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매우 깊이 통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했어야 했으며 또 할 수 있었던 기도 생활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음에 대하여 깊이 뉘우쳤습니다.

나주에서 보낸 이번 성주간은 우리 모두에게 은총이 가득한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나주로부터 집에 돌아온 후에 제 누이들 중 하나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전보다 너무 달라지셨네요,”라고.  

그렇습니다.  저는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새롭게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나주의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Fr. Donald Lasap Khawng Lum
430 N 21st Street
Camp Hill, PA  17011, U. S. A.
2007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