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성모님-은총은 강물처럼

 199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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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년 증언

   1999 년 증언

   2000 년 증언

   2001 년 증언

   2002 년 증언

   2003 년 증언

   2004 년 증언

   2005 년 증언

   2006 년 증언

   2007 년 증언

   2008 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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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2.gif 생활의 기도화와 봉헌의 삶을 가르쳐 주신 나주 성모님 - 신여하 수산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 정 말따

cross2.gif 네탓이 아닌 내탓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양 젬마

cross2.gif 굽었던 등이 쫙 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 레지나

cross2.gif '물이 상했나?' 했는데 젖으로 변화되었습니다. - 류프란치스카

cross2.gif 젖기름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 윤 카타리나

cross2.gif 고민하지 마시고 나주 성모님께 와서 무조건 매달리세요. - 이길자

cross2.gif 나주 성모님 집은 영혼의 목욕탕이며 구원의 집입니다. - 이 안나

cross2.gif 이곳은 바로 엄청난 회개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 고제충 요한

cross2.gif 나주 성모님 성수는 특효약 - 권 요안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 성수로 치유되었습니다. - 권 루시아

cross2.gif 변화된 저의 삶 자체가 바로 기적입니다. - 박대건 안드레아

cross2.gif 회개의 눈물 - 김 데레사

cross2.gif 3일에 한번 보던 소변을 하루에 다섯 번 보았습니다. - 윤정아 카타리나

cross2.gif 신부전증으로 남산만하게 불렀던 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 김 소화데레사

cross2.gif 엉망이던 바지도 새 바지가 되었어요. - 이 민용 루시아

cross2.gif 조건없이 베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어요. - 고 향란 아나스타샤

cross2.gif 이제는 저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렵니다. - 정영희 도다

cross2.gif 강한 힘을 받았습니다. - 강은영 뻬루베투라

cross2.gif 뿌옇게 젖빛으로 변화된 나주 성수에서 소독 내음이 - 배복순 마리아

cross2.gif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가… - 박윤숙 안젤라

cross2.gif 아!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해주신 일이야. - 김 바오로

cross2.gif 늘 토끼눈처럼 빨갛던 눈이 해맑게 되다. - 이 안나

cross2.gif 그것은 바로 죄인인 나 때문이야. - 신춘심 안나

cross2.gif 걱정하지 말아라. - 박수진 가브리엘라

cross2.gif 45년간 앓던 난치병을 나주 성모님께서.. - 김동성

cross2.gif '님 향한 사랑의 길'을 읽고 받은 은총 - 조수희 레지나

cross2.gif 요도암이 싹 없어졌어요. - 박순자 마리아

cross2.gif 기적처럼 좋아졌다고 놀라시는 의사 선생님 - 노 베로니카

cross2.gif 성혈 사진을 보는 순간 피비린내가… - 윤정아 카타리나

cross2.gif 모두들 감격하여 환호하였습니다. - 이 베로니카

cross2.gif 수술도 불가능한 희귀종양이 치유되다니… - 김성곤 테클라

cross2.gif 회개의 은총으로 10년 전에 집 나간 장부가 돌아오다. - 로사

cross2.gif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다시 찾은 놀라운 사랑 - 고 아녜스

cross2.gif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통해서 치유받았습니다. - 오 안나

cross2.gif 붙어있던 목구멍이 ‘뻥’ 뚫리다니요! - 한 벨라뎃다

cross2.gif 그렇게 많은 피를 쏟던 치질이 감쪽같이 나았습니다. - 문 헤드비제스

cross2.gif  ‘아멘’으로 응답하였더니 치유가 되었습니다. - 심 모니카

cross2.gif 폐색증으로 절단해야 되는 다리를 치유해주신 나주 성모님 - 홍 마리아

cross2.gif 원수처럼 미웠던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는 회개의 은총 - 안 카타리나

cross2.gif 심장 판막증과 축농증이 치유되었습니다. - 이 루시아

cross2.gif 불임 판정을 받았는데 아이를 주시다니요!!! - 토마스 왓킨슨

cross2.gif 지금까지도 계속 장미 향기가 … - 엘리사벳

cross2.gif 위독했던 조카가 성모님의 기적수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 백경선 세실리아

cross2.gif 아멘의 위력! - 김옥희 젬마

cross2.gif 한의사이시기도 한 나주 성모님 - 안경순 카타리나

cross2.gif 59년 간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던 귓병이 이렇게 치유될 줄이야! - 주 가밀라

cross2.gif 길 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으나 - 임은정 세레나

cross2.gif 이건 저에게 엄청난 변화예요! - 강혜숙 아녜스

cross2.gif 생활의 기도화와 메시지 말씀으로 성가정을 이루게 해 주시다. - 김지성

cross2.gif “우당탕”하며 내려오신 성체로… - 정효남 아녜스

cross2.gif 중국대륙에도 울려퍼지는 나주성모님의 은총 - 강순정 안나

cross2.gif 나주 성모님 사진을 통해서도 암이 치유되다. - 배낙준 가브리엘

cross2.gif 이것은 하늘의 기적입니다! - 박충섭 데레사

cross2.gif “아멘”으로 응답할 때 치유해 주셨습니다. - 김봉재 프란치스카

cross2.gif 첫토요일을 지키면서 받은 나주 성모님의 은총 - 윤정아 카타리나

cross2.gif 나주에서 되찾은 뜨거운 신앙과 회개의 은총 - 조경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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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도화와 봉헌의 삶을 가르쳐 주신 나주 성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온 신 수산나 입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저의 남편이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노름을 끊게 된 일에 관하여 증언을 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기에 저의 기쁨을 오늘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과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나왔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술을 끊게된 직후까지만 해도 사실 저는 '저러다 또 마시겠지' 하는 생각을 안해 본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쭉 지켜 보았는데 술좌석에도 많이 참석했지만 정말로 지금까지 술은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술을 끊은 뒤부터(봉헌) 가정이 절로 화목해 졌기에 지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엉엉 울다가 '그래, 지금 남편의 술주사나 노름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증언을 통해서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용기를 줘야지' 하고 생각하니 막 기쁨이 용솟음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사실 나주 성모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보고 "기적을 ?아서 나주에 다닌다." 며 비웃지만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생활의 기도화와 봉헌의 삶을 바로 이곳 나주 성모님 집에서 배우고 익혔기에 그것이 기쁘고 감사하고 너무 좋아서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술에 취해서 밤 늦게 들어와 괴롭히고 욕하고 때리거나 노름에 빠져 있을 때 생활의 기도화와 봉헌의 삶을 잘 몰랐던 저는 그런 남편을 받아 들일 수 없었기에 그런 남편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났겠다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왔을 때 봉헌의 삶과 생활의 기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생활을 비추어 보니 참으로 너무나 엉망이었기에 목이 터져라 울면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회개를 하게는 되었지만 집에가서 미운 남편을 보고 그대로를 받아 들이면서 사랑을 실천하기란 무척 힘들었고 나주 성모님 집에서 듣고 보고 배운바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더 괴롭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 해보자.' 하고 다짐하였지만 남편에 대한 미움이 워낙 컸기에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매순간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물을 떠다 달라고 하면 사랑의 마음으로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청했고, 남편이 듣기 힘든 험한 소리를 할 때도 사랑의 침묵으로 잘 봉헌하며 인내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청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술을 끊게 해달라고 청할 때는 "주님, 나주 성모님! 남편이 다른 사람들의 술 취한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술 취해 남을 고통스럽게 할 때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은총으로 저의 장부를 술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술을 끊게 된 장부가 어느 날 술 좌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는 말이 "아이고, 모두들 술 먹고 떠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게 어찌나 괴롭던지 술 좌석이 파할 때까지 심한 고문을 받은 것 같아" 라고 하기에 저희 가족 모두가 웃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나주 성모님 집에서 배운대로 작은 것 한가지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남편을 위해서 사랑과 희생으로 봉헌하면서 실천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끊게 된 뒤부터 저희 가정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지금은 얼마나 기쁘게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직 비신자인 남편이 지금은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돌아 올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전에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나주 성모님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2003년 1월 첫토요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 1동 대림아파트 301-406
신여화 수산나

 

 

나주 성모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 부곡 성당에서 온 말따입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한지 일년 되었습니다.
작년 10월 중순쯤에 교통사고로 목을 심하게 다쳐서 기브스를 하고 두달 간 너무나 아팠기에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때만 해도 다른 소원을 빌려고 했는데 신경이 끊어진줄 알았을 정도로 목이 워낙 심하게 아팠기에 목을 치유시켜 달라고 기도했더니 정말로 깜쪽 같이 치유되었습니다.

다른 은혜 받은 것도 너무 많지만 증언을 너무 안해 성모님께 죄송했었는데 오늘은 나주 성모님께 너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1월 첫토요일
부산시 금정구 부곡 4동 396-26
정 말따

 

네탓이 아닌 내탓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경기도 부천에서 온 젬마입니다.
올 한해도 주님과 성모님 은총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창피한 마음 때문에 몇달간 망설였었습니다.

5년전쯤인가요 어떤 자매님이 냉담중이던 저에게 나주 성모님 피 눈물 사진을 한 장 주기에 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 냉담중이었던 저는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무섭고 끔찍했지만 싫다는 소리 한마디도 못한채 일단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시는 상본을 받게 된 일) 바로 저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한 어떤 신호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 피 눈물 흘리시는 상본을 받아 본 이후에도 계속해서 냉담중이던 저는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그냥 낳고 싶었지만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원치 않았던 남편이 낙태를 원하기에 아이를 낳게 되면 혹시라도 남편과의 사이에 금이 갈 것을 두려워했던 저는  아이를 낙태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저의 생활은 정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낙태가 커다란 죄라는 것을 몰랐던 저는 그저 조그마한 일로 생각했었는데 그때부터 꿈과 생시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어두운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온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데가 없으니 만사에 모든 의욕마저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난 뒤에야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순례를 다녀간 이후에야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고백 성사를 드린 뒤 냉담을 풀고 레지오 활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다시 신앙안으로 돌아와 새 삶을 찾게는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낙태의 모든 원인은 바로 남편에게 있다며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지속적으로 순례를 다니는 동안 그 모든 것이 남편의 탓이 아니라 바로 제 탓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기에 회개를 통하여 장부에게 가졌던 원망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제가 죄인임을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고백성사를 드릴 때 "하느님이 정말로 계신지 믿을 수 없다." 고 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께 다닌지 한 2년쯤되었는데 남편은 제가 나주 성모님께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나주 성모님께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며칠간 머물면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생전 이혼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던 사람인데 엄청 화를 내면서 전화기까지 집어 던지며 이혼 말을 꺼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주 성모님 물을 떠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일단 화가 한풀 꺽이기는 했지만 "나주는 절대로 가지 말라." 며 강경하게 말하기에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마음으로 성모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남편과 저 그리고 두 아이들 몫으로 네 컵을 따라 놓은 후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하여 만든 성수를 집안 곳곳에 뿌린 뒤 남편 방에도 뿌릴려고 했는데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뿌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남편 방에도 살짝 뿌리고 나니 그제서야 약간 마음이 놓이기에 남편에게 다가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빌었더니 남편의 마음이 조금 더 누구러지더군요.

그리고 장부가 나중에 하는 말이 자다가 나와서 제가 떠 놓았던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는데 장미 향기가 진동하더랍니다.

유독 남편이 마신 나주 성모님 물에서만 짙은 장미 향기가 풍겼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장미 향기가 짙게 풍기는 나주 성모님 물을 마시게 된 저의 남편은 "부인은 성모님 일한다고 이렇게 열심한데 나는 그런 부인한테 이혼까지 하겠다며 전화기까지 부수면서 화를 냈으니.......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이런 죄인에게도 장미 향기를 주시는구나" 하면서 그날 밤 회개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일이 있고난 다음달부터 저희 가족 모두가 매달 나주 성모님께 함께 순례를 다니고 있으며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1월 5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4동 한라마을 102동 406호
양 젬마

 


굽었던 등이 쫙 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오늘 처음으로 온 레지나라고 합니다.

나주 성모님께 오기전까지만 해도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어떤 자매님이 장 알로이시오 신부님께서 쓰신 '오! 놀라운 사랑이여' 라는 책을 주기에 읽게 되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고 저의 영적 지도를 해 주시는 김창렬 주교님께 나주 성모님에 대한 영적 지도를 받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주교님께서 저에게 "교황청에서도 나주를 좋게 보고 있다." 고 말씀하시기에 그 동안 각종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된 나주 성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희석이 되면서 '나주에 가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 어른들의 말씀 한마디가 나주 성모님 인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루가 복음 2장 35절에 시메온 예언자가 성모님께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고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느끼지 못했었는데 저는 오늘 나주 성모님께 와서야 비로서 그 말이 의미를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울면서 '아, 정말로 시메온 예언자의 말대로 성모님의 가슴이 예리한 비수에 찔리듯 아프시고 예수님께서는 찢겨진 성심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계신다.' 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을 전할 때 우리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어른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에 지면상으로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 흘리시는 나주 성모님 사진을 본 적이 있지만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참으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현존, 그리고 살아 계신 성모님의 현존을 깊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메주고리에도 갔다왔는데 나주에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시간도 안걸렸습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의 놀라운 영성의 힘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또한 모든 영혼에게 깊숙히 파고 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비의 시간 전에 율리아 자매님이 말씀하시고 영가를 부르는 자료가 담겨 있는 영상을 보았는데 율리아 자매님이 부르는 영가 하나하나 마다 피맺힌 절규로 들리면서 내 가슴 속 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이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나주 성모님의 인준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이곳이 마지막이다." 하는 말을 떠 올리면서 이곳에 와서 힘을 받고 주님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비의 시간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남들이 "등이 굽었네" 하고 알아볼 정도로 등이 굽었습니다.

그런데 자비의 시간에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는데 아까 영상 속에서 보았던 율리아 자매님이 나타나서 "여기가 굽었잖아." 하면서 저의 굽은 등을 '탁' 쳤는데 그 순간 굽었던 등이 쫙 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나주 성모님을 전하는 일을 하라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저를 밀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12월 7일
충남 아신시 음봉면
레지나

 


'물이 상했나?' 했는데 젖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마포에서 온 류 프란치스카 입니다.

저는 작년 겨울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에 올때는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있었기에 나주 성모님께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관찰도 해보고 고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얻은 결론은 무엇보다도 회개의 은총을 얻는 것이 가장 올바른 정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아프신 엄마의 치유를 위해서 왔다는 사실조차도 잊은 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올 때마다 회개의 은총만을 청했는데 이번에 저에게 정말로 기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번에 나주 성모님께 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성모님 물을 떠가지 못했는데 물이 조금 남아 있었기에 오면서 마시려고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성모님 물을 엄마가 한 두어 모금 마셨을때만 해도 분명히 그냥 물 색깔이었던 나주 성모님 물이 첫 번째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 온 뒤 마시려고 보았더니 성모님 물이 뿌연 우유 빛으로 변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나는 '이상하다 물이 상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지난번에 비디오에서 나주 성모님 물이 젖으로 변화된 기적을 본 기억이 떠오르기에 "어?, 혹시 이 물도 젖으로 변화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하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성모님 물에 유분 같은 것이 떠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냄새를 맡아 보았더니 나주 성모님 물에서 상한 냄새는 전혀 나지를 않았고 우유 냄새가 나기에 혹시나 해서 레오나 자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어머, 어머, 얘 너한테 기적이 일어났다 얘 축하해" 하면서 기뻐하기에 저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에게 오늘은 정말로 또 한가지 기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하는 일이 그래픽 디자인 일이기에 한달에 한 번 있는 첫토요일에 딱 맞추어서 나주 성모님께 온다는 것이 정말로 쉽지를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도 새벽 1시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 였기에 '아휴, 오늘 나주 성모님께 갈 수가 있을까? 에이 모르겠다. 눈 떠지면 오고 안그러면 못 오는 거지'하며 포기하디시피 했는데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되었기에 저는 바로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스스로 일어나서 온 것이 아니라 나주 성모님께서 인도해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치유 받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저의 남은 한 생애를 나주 성모님을 따라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특히 요즘들어서 저와 같이 젊은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앞으로 살날이 더 많으신 젊은 분들께서 꾸준히 오셔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보여 주신 징표로 인하여 확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받은 은총은 나주 성모님께서 저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신 은총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도 나주 성모님께 더욱더 힘과 용기를 내어서 나주 성모님께 열심히 다니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2월 8일
류 프란치스카
서울시 마포구 성산 2동 595 성산아파트 102동 605호

 

 

젖기름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부천에서 온 윤 카타리나 입니다.

오늘 나주 성모님 물이 젖으로 변화된 기적을 많은 분들이 증언하시기에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나주 성모님 물로 인한 체험을 정말로 많이 했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이 젖으로 변화되는 기적도 많이 보았고 또 나주 성모님 물로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치유되는 기적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도 성모님 동산에서 물을 마시려고 바가지에 하나 가득 받았는데 성모님 물에 뿌연 기름이 둥둥떠 있기에 '내가 지금 눈이 아프니까 잘못봤나'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마셨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 맞어 이 물은 엄마 젖이지'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기에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물을 떠서 기도를 드린 뒤 마시려고 보았더니 정말로 뿌연 젖 기름이 둥둥 떠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더니 다들 뿌옇게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눈이 굉장히 아팠기에 그렇게 보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더니 어떤 자매님도 언젠가 한 번 눈이 몹시 아팠는데 성모님 물이 뿌옇게 보이기에 눈에 찍어 발랐더니 그 자리에서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얼른 뿌연 젖 기름으로 변화된 나주 성모님 물로 빠질 것 같이 아픈 눈에다가 찍어서 발랐더니 그렇게 아프고 쑤시던 눈의 통증이 이내 사라지면서 눈이 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물로 목욕을 할 때는 얼마나 짙은 장미 향기가 풍겼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목욕탕을 이용하기에 소변을 보기 위하여 간이 화장실로 갔는데 그 냄새나는 화장실 주변으로까지 장미 향기가 어떻게나 짙게 풍기던지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003년 2월 8일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44
성산연립 1동 106호
윤 카타리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마시고
나주 성모님께 와서 무조건 매달리세요.

찬미 예수님!
저는 전에는 목포 북교동 성당에 다녔는데 지금은 서울 천호동 성당에 다니고 있는 이 카타리나 입니다.

저는 1994년부터 나주 성모님 집에서 열리는 첫 토요일 철야 기도회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원래 의심이 많던 저는 나주 성모님께 다니는 동안 특히  항상 장미 향기를 많이 의심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의심 많은 제가 아들 문제 때문에 성모님께 달려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할 때마다 짙은 장미 향기를 풍겨 주셨고 오늘은 물통에다 성모님 물을 받고 있는데 전주에서 오신 자매님이 "어머, 자매님 몸에서 웬 장미 향기가 이렇게 많이 나요?" 하기에 깜짝 놀라서 "정말이요?"  하면서 몸을 풀석거려 보았더니 정말로 제 몸에서 장미 향기가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에 나주 성모님께 봉헌 편지 쓸 시간이 없었기에 오늘 성모님께 순례 오는 차안에서 봉헌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A4 용지 앞뒤로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 집에서 맡았던 장미 향기가 계속해서 풍기더니 편지를 다 쓰자마자 장미 향기가 사라졌습니다.

편지를 다 쓴 뒤 잠을 자려 했지만 잠이 오지를 않기에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기도를 바치는 내내 또다시 장미 향기가 풍기기에 '내 주위에 멋쟁이 아가씨가 탔나?'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남자 분들만 앉아 있는데도 계속해서 장미 향기가 풍겼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남편이 부도가 났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아들에게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지 너 유학을 보내줄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대신에 엄마의 소원이니 한 번만이라도 나주 성모님 집에서 열리는 첫 토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해 다오. 그러면 네 소원도 이루어진다." 하며 부탁했더니 아들이 저의 부탁대로 첫토요일 철야기도회에 한 번 다녀갔습니다. 유학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집안 형편이 너무나 어려웠기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힘들었는데 기도회 참석 후 저의 아들이 부유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함께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으니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주선해 주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딸도 "엄마 나도 유학을 갔으면 좋겠는데 어쩔 도리가 없네요." 하며 낙담하고 있기에 마음이 아팠는데 부자로 사는 형님이 뜻밖에도 딸의 유학비를 대주어서 딸도 유학을 갔습니다.

94년부터 나주 성모님께 단 한 번도 빠지지를 않고 다녔는데 피곤하기에  때로는 졸면서 기도회에 참석한 적도 많았지만 나주 성모님께서는 정말로 제가 입만 뻥긋해도 다 들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장미 향기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를 않으니 너무나 괴로웠기에 나주 성모님의 장미 향기에 대한 의심을 없애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의 모든 고민을 다 들어 주셨기에 저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미사에 참여해서 영성체만 모신 뒤 얼른 부랴부랴 성당을 나왔기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모르는 발바닥 신자였는데 나주 성모님께 다니면서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에 저는 하루 종일 '예수님, 성모님 사랑해요. 예수님 성모님 감사해요. 엄마 감사해요 아버지 감사해요.' 하며 감사의 기도가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성모님! 앞으로도 '강물처럼 넘치는 은총으로 축복해 주시어 제 마음과 생활과 입에서 감사가 바르지 않도록 지켜 주소서.' 하구요.

저는 지금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고민하지 마시고 나주 성모님께 와서 무조건 매달리세요. 그러면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2003년 2월 8일
이길자 카타리나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20
잠실시영아파트 19동 307호

 

나주 성모님 집은 영혼의 목욕탕이며 구원의 집입니다.

부산에서 온 안나 입니다.

저는 1995년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큰 고통을 통해서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둘째 여동생이 마귀가 심하게 들렸었는데 1995년 6월 30일 일곱 성체 내려 오시던날 바로 이 자리에서 완전히 치유되어 지금까지 정상인으로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외국에서 순례오신 많은 신부님들과 나주 본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던 중 율리아 자매님께서 영하신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성체 기적이 일어났을 때 마침 셋째 여동생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셋째 여동생은 아주 오기 힘든 상황에서 왔다가 성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눈으로 직접 봐야만 믿겠다면서 율리아 자매님의 입 안에서 살과 피로 변화된 성체를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 회개의 은총을 입고 만성 두통이 바로 그 자리에서 치유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렇게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예수님 사랑이 뭔지, 그리고 성모님 사랑이 뭔지, 전혀 몰랐던 저도 내적 치유의 은총을 받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백 성사도 고작해야 일년에 한 번 정도 드렸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나서부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쩔 때는 자발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보게 되었으며, 따라서 미사에 임하는 마음도 날로 새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희 자매들은 상당히 이기적이었는데 그때부터 사랑의 마음으로 일치하는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후 두 동생은 계속해서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많은 은총을 받았고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와 함께 지금 이 자리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 중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곳이 영혼의 목욕탕이며 구원의 집임을 깨닫게 해 주셨기에 지금까지 첫토요 철야 기도회를 비롯하여 성시간에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최근에 받은 은총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매월 셋째주 목요 성시간에 참여하기 위하여 나주 성모님께 오는데 부산에서 순례자들이 많을 때에는 대형 버스를 대절해서 옵니다.

얼마 전에 발에 유리가 박혔는데 그것도 모른 채 지내고 있다가 발등에 박혀 있는 큰 유리를 발견하고는 뺐지만 잘잘한 것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놔두었더니 시간이 지나자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던 꼬마아이에게 발을 보여주며 "발이 너무 아픈데 뭐가 있는지 니가 한 번 봐라" 했더니 "선생님 발이 반짝반짝해요."하여 유리가 박혀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셋째주 목요 성시간 전날인 수요일에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유리가 박힌채로 일주일간이나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곪았다면서 박혀 있는 유리를 빼낸 뒤 항생제와 진통제를 놔주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바로 목요 성시간이었기에 순례자들을 인솔도 해야 되는데 항생제 부작용까지 겹쳐서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그 날 레슨마저도 포기한 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나주 성모님께 열심히 다니고 있는 자매님과 통화를 하던 중 '목요 성시간마다 주님과 성모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했던 내가 이까짓 발 좀 아프다고 못가다니 될말인가 나는 갈수있어' 하는 확신과 함께 잠시라도 망설였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습니다.

그래서 예전과 같이 차를 대절해서 목요 성시간에 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항생제 부작용까지 겹쳐서 속이 너무 메스꺼웠기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그냥 차 안에 누운채로 힘들게 왔습니다.

성모님 동산에 도착하여 남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는데 모두들 안타까워하면서 그냥 앉아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받고 계시는 고통이 떠오르면서 매월 첫토요일 철야 기도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많은 고통을 받고 계시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분들의 고통에 비하면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님과 나주 성모님,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을 위하여 사랑으로 이 고통을 바쳐 드리자' 하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10일 후면 실밥을 뽑는다고 했기에 치유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성시간이 끝나자마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픈 발에 힘이 주어지면서 딛었는데 순간 전혀 아프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집을 나설 때만해도 퉁퉁 부은 발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쩔뚝거리는 발로 간신히 걸었고 발에 힘을 조금만 주어도 뒷골이 땡길 정도로 심하게 아팠었는데 그날 고통을 봉헌하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린 뒤 성시간을 마치는 순간 완전히 치유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10여일 후면 치료될 수 있는 병이었기에 중병은 아니였지만 주님께서 이렇게 작은 것까지도 치유해 주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껑충 껑충 뛰었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영혼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까지도 사랑한다고 하신 나주 성모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고 계신 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그 날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그 날 제가 잘 걷는 모습늘 본 모든 분들도 놀라면서 기뻐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리며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2003년 3월 1일
이 안나
부산 광역시 서구 암남동 81-23
삼경빌라아파트 A동 1026

 

 

이곳은 바로 엄청난 회개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서 온 고 세례자 요한 입니다.

저는 작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왔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된 동기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저는 올해로 영세를 받은 지 18년째 되는데 성당을 다니는 동안 묵주기도 한 번, 십자가의 길 기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성체 조배가 뭔지도 모를 정도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 14년 간이나 지독한 냉담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는 냉담 중에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매를 드시더군요.

바로 작년 4월달에 저의 장인 어른께서 구강암 판정을 받게 되었는데 연세가 75세나 되시니 수술도 여의치가 않았고 항암 치료도 너무 무리였기에 저희는 차선책으로 민간 요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민간요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나주 성모님 사이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달인 5월 둘째주 토요일에 저희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무작정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둘째 주 토요일이었기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장모님께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시던 중 어떤 묘한 향기가 계속 풍긴다고 하셨는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향기도 사라지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게 되었는데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극심한 냉담자 였기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방법을 전혀 몰라 제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주의 기도를 바치면서 1처 2처 올라갔습니다.

기도를 할 줄 모르니 그저 속으로 '예수님, 저는 장인 어른에게 효도 한 번 못해봤습니다. 이대로 보내지 마시고 저에게 효도 한 번 할 수 있는 기호를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는데 바로 그 순간 아주 진한 장미향기 두 줄기가 마치 바늘로 찌르듯이 제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나 같은 죄인에게도 은총을 주시는구나' 하며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그 자리에 엎어져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친 뒤 저희는 가지고 온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구강암 때문에 미음이나 스프이라든가 국물 음료 외에는 음식을 전혀 드시지도 못하던 장인 어른께서 나주 성모님 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거뜬히 드시기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장인 어른께서는 "야, 이따 집에 가는 길에 나 회 좀 사주라." 하시기에 우리 모두는 놀란 토끼 같이 두 눈이 댕그래져서  "아니 어떻게 드시겠어요?" 했더니 "야! 나 오늘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집으로 가는 길에 군산항에 들러서 회도 거뜬히 잡수셨는데 그 날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6월달 첫토요일에 왔을 때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태양을 보기에 저의 장모님께서도 무슨 일인가 해서 태양을 보았더니 태양이 이글거리면서 사람의 얼굴로 싹 바뀌는가 싶더니 예수님 얼굴처럼 느껴지더랍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태양이 십자가의 모습으로 바뀌더랍니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장모님은 신자지만 장인 어른은 신자가 아니였는데 두 분께서는 그 다음달부터 힘들다고 오시지 않다가 병원에서 암세포가 약간 남아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야, 저 암세포만 죽이면 나는 이제 괜찮겠다.' 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겠다고 하시기에 저는 극구 말렸습니다.

결국 방사선 치료를 받으신 뒤 한 두 달 정도는 괜찮았는데 다시 도져 버렸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주님과 성모님께서 해주시기로 했는데 인간적인 생각으로 거부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하다가 재발하셔서 저번 주에 돌아 가셨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곳에서 은총을 받으신 분들은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받으셨으면 끝까지 나주 성모님을 따르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 증언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저의 작은 아버님이 작년 8월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기에 가 보았더니 암 선고를 받으셨는데 암세포가 뇌까지 퍼져서 의술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은 없고 다만 진통제로 잠시 잠깐 통증이나 줄여주는 상태라며 앞으로 6개월 정도 남았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9월부터 '은총은 강물처럼' 책자와 함께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택배로 보내 드렸는데 말씀은 물론 걸음도 못걸으시던 분이 10월 달부터 점차 회복되시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치유 되셨습니다.

저의 작은 집은 천주교 신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집 사촌 동생들에게 "야, 사람이 치유 받았으면 뭔가 댓가는 드려야 될 것이 아니냐? 최소한 나주 성모님께 가서 감사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했더니 간다고 말만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올 12월 초에 작은 아버님께서 또 다시 쓰러 지셨습니다.

정말로 이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은총을 받으셨으면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꼭 한가지 이상은 하십시오.

그래서 저는 본인들이 직접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촌 동생에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보내 줄 수 없으니 이제는 니네들이 알아서 해라."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인가 "오빠, 나 나주에 왔는데 어떻게 해야돼 ?" 하고 묻는전화가 왔기에 "야, 성모님께서는 네가 신자든 아니든 전혀 개의치 않으시니 빨리 경당에 들어가서 나주 성모님께 기도를 해" 하고 말해 주었더니 제가 시킨대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1월 초입니다.

그 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았던 작은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아주 쌩쌩하게 잘 살고 계십니다.

아마 이런 체험들은 여기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한 두가지씩 다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주 성모님께 오기전과 나주 성모님께 다녀온 이후의 저의 생활이 확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14년간 지독한 냉담자였던 제가 나주 성모님께 다녀온 뒤부터 성당에 나가게 되었는데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할 때면 가끔씩 장미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데 저는 그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미사에 빠지는 일 없이 성당을 잘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백 성사도 드리게 되었고 성체 조배는 물론 묵주의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전혀 할 줄 몰랐던 저였는데 이제는 틈만나면 묵주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고 십자가의 길 기도도 가끔씩 바치게 되었고 시간만 나면 성체조배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분들도 저와 같이 나주 성모님 집에서 엄청난 회개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셔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은총도 많이 받으시고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타고 천국까지 갑시다. "아멘"

 

2003년 4월 5일
고제충 요한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아파트 242-106 

 

나주 성모님 성수는 특효약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 두산 본당에서 온 권 요안나 입니다.

저는 사람이 두서명만 있어도 떨려서 말을 잘 못하는데 오늘은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올해 24살로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데 14살 때(중학생)부터 나주 성모님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어린데다가 내성적이라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민망스럽고 부끄러워 늘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증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분들이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증언 하는 것을 듣고 저는 비록 작은 은총이나마 증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때 성모님께서 장미 향기를 풍겨주셔서 용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도 그때 그때 증언을 하지 않다보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 말과 같이 많이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잊어 버리기 전에 우선 제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증언하고자 합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올 때마다 나누어주는 물과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하여 만든 성수는 저에게는 정말로 특효약과도 같습니다.

저는 눈병으로 눈에 염증이 크게 도져 곪거나 심지어는 고름이 나올지라도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하여 만든 성수를 아픈 눈에 넣기만 하면  그 즉시 치유되는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릴 때부터 초코렛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이에 충치가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치통이 일단 한번 시작되면 정말로 말도 못하게 아픕니다.

그래서 치과를 가야하는데 돈도 돈이려니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시간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도 치과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기에 성모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성모님,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알지만 우선 제가 치과에 갈 용기가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 성수를 통증이 심한 이에 뿌렸습니다.

성수를 뿌리는 순간 곧바로 언제 아팠냐는 듯이 통증이 깨끗이 멎는 겁니다.

만약에 성수를 뿌린지 약 3초만에 나았더라도 아마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썩은데 물 한 방물만 닿아도 이가 시리고 아픈데 그 순간 완전히 통증이 멎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치통을 한 번도 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우연히 썩은 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만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까맣게 잊어 버린 채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이렇게 많이 썩었는데도 이빨이 더 이상 아프지를 않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냥 놔두어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그 순간 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나주 성모님께 너무 죄송하다며 용서를 청했고 결국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몸이 너무 약한 편이어서 조금만 신경을 써도 몸이 많이 아팠는데 목도 잘 아프고 편도선도 잘 부어 심할때는 말도 못할 정도였으며, 열도 심할 때는 온 몸이 뜨거울 정도로 펄펄 끓습니다.

그리고 위장도 좋지를 않아 어쩔때는 5분 간격으로 토하기도 하기에 이런 몸으로 5- 6 시간이 걸리는 나주까지 온다는 것이 저에게는 여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주 성모님께 왔다가 집에만 돌아가면 라면을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소화가 잘 됐고 몸도 언제 아팠느냐는 식으로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편도선이 주먹만하게 부을 때면 병원을 일주일 씩이나 다녀야 되는데 도 하여튼 나주 성모님께 다녀만 가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씻은 듯이 다 낫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우연의 일치라고 여길까봐 이렇게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지금 대구에서는 나주 성모님의 인준을 위하여 많은 분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7-8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기도회입니다.

그날도 마침 기도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제가 정말 엄청나게 아팠습니다.

코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그 진물이 얼마나 독한지 진물이 뺨에 떨어지면 뺨이 헐고, 목에 떨어지면 목이 헐 정도였기에 콧속 안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진물이 목안으로 넘어가서 목 속까지 다 헐고 열도 40도나 나가니 큰 병원을 가야만 했는데 엄마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자면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주관하던 기도회를 열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아픈 저를 나주 성모님께 봉헌하시고 나를 그냥 기도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 날 정말로 말도 못하게 아팠기에 고통스러워 잠도 오지를 않았는데 거실에서 기도를 시작함을 알리는 "나주 성모님 찬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막 잠이 들었다가 (5분도 채 못된 것 같았음) 온 몸이 시원해진 느낌이 들기에 눈을 떴는데 온몸이 다 멀쩡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께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제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시면서 성모님께 맡기기는 했지만 너무 걱정했다고 하시기에 제가 "기도회는요?" 하고 물었더니 기도회는 끝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회는 보통 두시간 가량 걸리는데 제가 기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찬미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다 깬 시간은 5분도 채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 시간이 후딱 지났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날 저는 제 엄마의 믿음과 성모님 은총으로 몸이 완쾌되었기에 정말로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오면서 아쉽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지금 청소년들의 문제가 정말로 심각한데 엄마, 아빠들이 학업이라든가 기타 다른 문제들을 이유로 자녀들을 나주 성모님께 데리고 잡고 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릴때부터 엄마가 저를 나주 성모님께 데리고 다니시지 않았다면 '성모님을 모르고 살았을텐데' 하고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몸이 워낙 약했기에 고 3때도 다른 학생들이 다 하는 야간 자율 학습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나주 성모님께는 꼬박꼬박 다녔고 대구 가톨릭 대학 교리 교육학과도 들어갔고 영문학도 함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해 주신 일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원래 수학은 영 잼뱅이기에 수능시험때 수학 때문에 "큰일났다." 며 많이 걱정을 하니 엄마는 기도해 보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보는데 하나도 모르는 문제들이 갑자기 훤해지면서 다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도 막힘 없이 쓱쓱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저는 너무 쉬운 문제가 나와서 제가 잘 푸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 친구는  전혀 모르겠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께서는 그 날 마침 집에서 나주 성모님 상을 모셔 놓고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기도하시던 중 그냥 저를 한 번 봉헌하셨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를 봉헌하신 바로 그 시간이 제가 수학 문제를 쉽게 풀던 시간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에 들어간 것도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교리 교육학과와 영문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는데 영어가 너무 어려워 복수 전공한 것을 후회하자 엄마가 "나주 성모님께 맡겨라." 하시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시간에 장미 향기가 확 풍기더니 모르던 단어들까지도 다 이해가 되면서 해석이 되는 아주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 보았더니 엄마가 그 날도 다른 기도를 하시다가 잠깐 저를 나주 성모님께 봉헌했는데 바로 그 시간이 제가 영어를 쉽게 해석하던 시간과 일치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오시는 분들도 자녀들 공부 때문에 데리고 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성모님께 데리고 오셔서 봉헌하시면 나주 성모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사실 그렇게 많은 은총을 받고도 나주 성모님께 올 준비가 안되서 '올까 말까' 하고 망설였는데 엄마가 그래도 가야한다고 하시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구에서 순례 오는 버스 안에서 졸다가 갑자기 짙게 풍기는 달콤한 캔디 향에 놀라 잠을 깼는데 저만이 아니고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달콤한 캔디 향을 맡고는 "누가 지금 사탕 먹냐? 누가 향수를 뿌렸냐?" 하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저희 차 안에는 달콤한 캔디를 먹은 사람은 물론 향수를 뿌린 사람은 더더군다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달콤한 캔디 향을 맡으면서 '그래, 나와 같이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사람이나, 마음에 상처가 많은 분들, 그리고 고통 중에 계신 분들 모두가 이 사순시기를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모든 것을 달콤하게 봉헌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순간 어찌나 향긋한 장미 향기가 풍기던지 너무나 좋았기에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 사랑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4월 5일
권 요안나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화성아파트 103동 602호 Tel. 053-753-9809

 


나주 성모님 성수로 치유되었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대구에서 온 권 루시아 입니다.

며칠전 밤에 저의 아들이 편도선이 붓고 목도 많이 아프다고 하기에 보았더니 열도 많이 나더군요.

그래서 제가 "입 벌려봐라" 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모님 열을 내려주세요." 하고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인 뒤 한참 지난 후에 아이를 만져 보니 열이 가라 앉았습니다.

그런데 새벽 두 세시쯤인가 지나서 아이를 만져보니 또 열이 나면서 목도 뜨끈뜨끈하기에 "성모님, 이 새벽에 병원을 어떻게 갑니까? 성모님께서 낳게 해 주세요 예?" 하고 기도하면서 또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였더니 그 다음날 거뜬히 일어나서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저녁이면 또 열이 나면서 목이 붓고하여 그럴 때마다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이면 열이 가라앉았습니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니 아이 아빠가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지를 않겠냐고 하기에 저는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성수를 먹였는데 그때마다 열이 내렸고 새벽쯤인가 "괜찮다. 괜찮다."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잠을 깨서 아들을 만져보았더니 열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저의 딸이 학교에서 토하고 배도 아프다며 전화가 왔기에 집으로 오라고 하여 병원에 데리고 가서 피 검사를 해 보았더니 수치가 10,000 이상 나오면 맹장염인데 7천6백까지 나왔으니 아직 맹장염은 아니지만 초기 증상이라며 혹시라도 밤에 자다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더군요.

병원을 나오면서 딸 아이가 "엄마 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자꾸 겁을 먹기에 나주 성모님도 계시고 우리 집에 나주 성모님 기적수도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고 하면서 아이를 안심시키며 집으로 데리고 온 뒤 딸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성모님께서 주신 이 물을 예수님의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로, 그리고 성모님께서 흘려주신 눈물과 피눈물과 향유와 젖으로 변화 시켜주시어 이 약 물을 통해서 저의 딸을 낫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딸에게 먹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의사의 걱정과는 달리 딸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잠도 잘 잤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딸 아이가 "엄마, 학교 가서 배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기에 "걱정하지 마라 성모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는데 뭘 그리 걱정하노. 학교에서 배가 아프지 않으면 중간에 집에 오지 마라" 하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피 검사를 하러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지만 저는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셨는데 병원에 갈 필요가 뭐 있겠나 싶어서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안간지 2주나 지났지만 지금까지 딸 아이는 한 번도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받은 은총은 많지만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3년 4월 5일
권 루시아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 천마아파트 231동 1503호

 

 

변화된 저의 삶 자체가 바로 기적입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대구에서 온 박 대건안드레아 입니다.

사실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기복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때만 주님과 성모님을 찾았고 제가 하는 일이 잘 되면은  성당을 열심히 나갔지만 만약에 제가 하는 일들이 잘 안되면 저는 언제든지 개종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심할 때는 성모님 상조차 방에서 치워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자매님과 형제님으로부터 나주 성모님에 대한 말을 듣게 되었는데 저는 그저 신기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주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올 1월 2일 갑자기 제가 하던 일을 쉬는 한이 있더라도 나주에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전날 눈이 굉장히 많이 왔기에 가족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나주 성모님께 왔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 회개의 눈물을 엄청 많이 흘렸는데 그 날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남들이 다 맡는다는 장미 향기를 맡지는 못했지만 저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날 저는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으로부터 무슨 특별한 체험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저는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후부터 저의 삶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업과 현실적인 것이었지 결코 하느님은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녀온 후부터 저의 삶의 중심이 생업과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으로 그 자리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의 일 순위가 하느님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변화된 저의 생활자체가 바로 저에게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기 전에 어떤 형제님과의 대화 중에 향기를 맡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 그 향기가 성체 예수님께서 내려오시는 자리에서 풍기는 장미 향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이후 성당에서 영성체를 할 때 장미 향기가 풍기기에 저는 순간 '신부님이 향을 사용했나?' 하는 의심도 들어 그 다음날 지금 신부님으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 신부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그것은 천국의 향기다." 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제가 맡은 향기는 바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향기가 아니라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향기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4월 5일
박대건 안드레아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663-6
 

 

회개의 눈물

대전에서 온 김 데레사입니다.

저는 작년 12월 달부터 나주 성모님께 다니기 시작했기에 불과 몇 달도 안되었지만 나주 성모님께서는 제가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 2처에서부터 신발을 벗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다가 신발을 벗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4처 쯤인가 전혀 지향을 두지 않았던 친정 아버지의 얼굴이 확대된 사진처럼 크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친정 아버지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과 겹쳐지더군요.

사실 저는 친정 아버지를 미워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친정 아버지의 영상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회개의 눈물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4월 5일
대전광역시 서구 용문동 278-22


 

3일에 한번 보던 소변을 하루에 다섯 번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천 삼성동에서 온 윤 카타리나 입니다.

지난 3월에 나주 성모님 물에 향기름이 떠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날 떠간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물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시집갔을 때 저의 시댁은 불교와 미신을 믿는 집이었기에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희 손위 동서는 제가 결혼한 지 11년 내내 제가 성당에 다니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하시면서 많이 핍박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제가 시집간 뒤부터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저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제 탓으로 돌렸고, 어머님이 아프시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제가 이 집안에 들어 와서 그렇다고 하면서 11년 동안 정말로 저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심지어 저희 부부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6년 동안 저희 집에만 오면 재수가 없다며 시 부모님 생신 날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요즘 제가 전단지 붙이는 부업을 하고 있는데 그 손윗 동서 부부가 하던 일이 잘 안 되어 그냥 집에서 놀고 있다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도 한 번 해보겠다면서 저희 집에 왔기에 그 동서와 한 2개월 가량 같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그 일을 하던 동서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목이 손바닥만하게 두군데나 시뻘겋게 짓무르면서 허물이 벗겨졌습니다.

아무리 약을 써보아도 낫지를 않자 주위 사람들이 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하기에 제가 "형님 이거 제가 다니고 있는 나주 성모님 집에서 가지고 온 성수인데 특히 피부병에는 특효약입니다." 하고 말씀 드렸더니 "그래, 한 번 발라보자." 고 하시어 먼저 성호를 그은 뒤 예수님과 성모님게 기도를 드리면서 발라드렸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집에 돌아가서 보았더니 너무 신기했던 일은 제가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발라준 곳만 딱지가 앉으면서 치유되어 있었고 다른 부분은 여전히 발갛게 짓무르고 부어 있더랍니다.

그 다음날 형님께서 저희 집에 오시자마자 "동서, 그 물 좀 또 발라줘 참 신기하네" 하시기에 나주 성모님 물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린 뒤 기도를 하면서 발라 주었는데 금새 살이 굳기 시작하면서 아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 물을 바르면 괜찮고 안 바르면 다시 짓무르기를 반복하더니 계속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바른지 3일만에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형님이 고백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형님께서 치유되신 것이 피부병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앓고 계시던 모든 병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일도 하지 않고 형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형님께서는 그동안 산후풍으로 속이 냉해져서 찬물만 먹었다하면 곧바로 설사를 해서 병원을 가야 했고 전에 담석증 때문에 쓸개 제거 수술을 받으신 이후부터는 음식 먹으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소화제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만약에 하루에 밥을 두 공기 정도만 먹어도 병원에 실려 갈 정도 였답니다.

뿐만 아니라 소변도 잘 못봤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소변을 3일에 한 번 볼 정도로 심했답니다.

그러니 물을 먹기는 먹어도 배설을 못하기에 늘 배가 부어 있었는데 저는 형님이 그냥 뚱뚱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형님이 저희 집에 온 날부터 이미 나주 성모님께서는 치유를 시켜 주시기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형님이 신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성당에 다니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에 저희 집에 오시면 드시라고 보리차를 끓여 놓았는데 형님은 보리차 대신에 나주 성모님 물만 드셨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은 "동서 나는 이렇게 일을 해서 몸이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더니 이번에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하시면서 나주 성모님의 물로 치유 되셨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날부터 형님은 저와 함께 고기를 먹어도 괜찮았고 또 "동서 나 이상해 왜 이 집에만 오면 소변이 자주 마렵지?" 하시면서 3일에 한 번 보던 소변도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보았습니다.

저희 형님은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과 성모님 물로 오랜 세월 앓고 있던 지병들을 완전히 치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시 아주버님도 무척 좋아하시면서 굉장히 신기해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은 형님의 육적인 치유도 중요 했지만 무엇보다도 결혼 생활 11년 내내 내가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렇게 나를 핍박하며 괴롭히던 형님과 완전히 화해를 하게 되었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형님은 저에게 "나는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동서가 믿는 신을 열심히 믿으면서 열심히 전해야돼" 하고 오히려 저를 격려 해주게까지 되었습니다.

형님께 나주 성모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서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을 보여 주었더니 "너무 좋다. 집에 가서 보게 복사 좀 해 줘" 하면서 나주 성모님을 잘 받아 들였습니다.

형님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철의 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동안 내 안에 응어리 져 있던 모든 상처들도 치유되어 화해와 용서를 통하여 사랑으로 거듭나게 되었기에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제가 지난달에 몸이 너무 좋지를 않았는데 먹기만 해도 토했기에 아무것고 먹지 못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토요일이 한식하고 겹치는 바람에 나주 성모님께 오는데 무려 8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계속 토하고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버스를 타고 그 긴 시간을 달려 왔으니 도저히 경당에 들어 갈 엄두가 안 났기에 경당 밖에 쳐 놓은 천막 안에 들어가서 누워서 '성모님, 저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 기도도 못하지만 엄마 앞에 누워 있으니 너무 좋아요. 이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엄마, 아시죠?' 하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비의 시간 바로 전에 눈이 딱 떠져 자비의 시간을 하게 되었는데 회개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천막 안에 인삼 냄새가 진동을 하기에 '누가 이 좋은 기도 시간에 인삼을 먹나' 하며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인삼을 먹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인삼 달이는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옆에 자매님이 "어머, 인삼 향기가 난다." 하자 옆에 있던 자매님들도 "맞아! 인삼 냄새야" 하며 몇몇 분이 저와 같이 인삼 냄새를 맡았습니다.

첫토요일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날 아침 복사 모임이 성당에 있다고 하기에 쉬지도 못한 채 아이의 손에 이끌려 성당을 갔는데 그날 수녀님과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전날 그렇게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철야까지 했는데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야기도회 때 맡은 인삼 냄새는 바로 성모님께서 저의 영혼 육신을 치유시켜 주시고자 밤새 인삼을 달려 영적인 젖으로 먹여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2003년 5월 3일
윤정아 카타리나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44 25/6 성산 연립1동106호
Tel. 683-9558

 

 

신부전증으로 남산만하게 불렀던 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찬미 예수님!

저는 부산에서 온 소화데레사 입니다.

저희 친정쪽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인데 신자가 아닙니다.

저보다 한 살 위인 막내 올케가 20년전부터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아니지만 저번에 제가 나주 성모님 물을 보내 드렸더니 그 물을 먹고 남산만하게 불러 있던 배가 많이 들어갔다며 부탁을 해서 나주 성모님 물을 여러 번 보내드렸는데 나주가 어떤 곳인지 가보고 싶다고 하여 이번에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올 때마다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3년 5월 3일
김 소화데레사
부산시 진구 양정 1동 유림아파트 101동 506

 

엉망이던 바지도 새 바지가 되었어요.

부산 대현성당에서 온 이 루시아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는 동안 성모님 동산에는 가보질 못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성모님 동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성모님 동산에 가서 성모님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장미향기가 많이 났습니다. 물을 마실 때마다 장미 향기가 나서 너무 신기해 가지고 두 바가지를 연거푸 마셨는데 구역질이 두 번 정도 나오기에 저는 '아 성모님께서 치유시켜 주시는구나'하고 생각하며 성모님 상을 바라보았더니 또 진한 장미향기가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 졌습니다. 그 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십자가를 지시고 갈바리아를 오르신 주님을 묵상하면서 1처에서부터 나무 십자가를 제 어깨에 매었습니다.

'내가 잘못 살 때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생각하며 나주 십자가를 메고 기도를 하면서 올라가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평상시 그렇게 아프던 어깨죽지가 전혀 아프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처 한처 올라갈 때마다 너무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이 떠 올라 무릎을 끓고 예수님께 용서를 청하며 깊은 통회의 기도를 올렸는데 비록 바지는 진흙이 묻고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마음 만은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살아오는 동안 저의 십자가를 저 혼자 지고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함께 져 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기에 저는 앞으로 어떤 십자가를 만나더라도 절대로 절망하거나 원망치 아니하고 잘 지고 가겠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뒤 처음으로 성모님 동산에서 성모님 물로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남들과 함께 옷을 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이 좀 쑥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옷을 홀랑 벗고 성모님 물을 온몸에 '쫙' 끼었는 순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시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물로 지금 내 몸을 씻겨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를 드리는데 장미향기가 '확' 하고 풍겨 "어머니, 제가 어디가 아픈지 잘 아시죠? 구석구석 다 씻어 주세요"하면서 온 몸 구석구석을 다 씻었습니다.

집에서 머리를 감을때에는 머리를 감아도 시원치를 않아 샴푸보다 더 좋은 것을 구입해 머리를 감아 보아도 역시 제 마음에 안들었는데 성모님 물로 머리를 다 감고나자 머릿결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럽던지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성모님 물로 목욕만 하고픈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목욕을 마친 뒤 수건으로 몸을 닦지 않았는데도 옷이 젖지를 않았고 금새 말라 버렸으며 진흙이 되어 엉망이 되어있던 바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흔적도 없이 새바지처럼 깨끗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벅찬 감격을 난생 처음으로 체험했습니다.

내게 아름다운 선물을 주신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6월 30일
이민용 루시아
부산시 대연 1동 353-18


 

조건없이 베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어요.

부천에서 온 고 아나스타시아입니다.

지난 6월 30일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제 18주년 기념 철야기도회에 왔다가 '님 향한 사랑의 길'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한구절 한구절 읽을 때마다 정말로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잘못했던 것들, 생활의 기도화 되지 못했던 일들, 등등 사무치는 회안으로 다가오면서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일생기를 읽고 난후부터는 가슴이 뜨거워져서 누구한테나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마침 외삼촌이 본당에 있는 서울대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사는 그동안 만나지를 못했었는데 다 만나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외사촌 형제분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하기에 병원으로 찾아가서 일일이 다 안아주었는데 너무너무 반가워 했습니다.

큰 외삼촌은 말기암 판정을 받았고, 가족들은 영혼이 지쳐 보였기에 너무 측은한 생각이 들어 준비해간 나주 성모님 기적수와 성수를 조심스럽게 내 놓았습니다.

외삼촌께서는 병으로 인하여 짜증스런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주 흔쾌히 받아들이시면서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외사촌 동생이 "어? 이상하다. 아버지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밝아졌지?" 하며 놀라기에 '아, 주님과 성모님께서 기회를 주시는구나'하고 '바로 이때다' 싶어 나주 성모님 발현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 내 비추었습니다.

그랬더니 순복음 중앙 교회에 다니고 있던 외사촌 여동생이 정색을 하면서 거부하기에 나주 성모님의 발현의 의미와 자비하신 사랑에 대하여 침착하게 말해 주었더니 서서히 귀가 솔깃해져서 내 말을 들으려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왜 아이를 일곱이나 낳으면서도 낙태를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제가 체험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굴 색이 점점 상기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일어 설때는 "나주 성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고 가면 안되나?"하고 오히려 저를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나 내일 나주 성모님한테 가니까 네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봉헌도 할거다"라고 했더니 외삼촌과 외숙모님께서도 너무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저희 친정 식구들에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기도를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3년 7월 6일
고향란 아나스타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55-11 3층

 

 

이제는 저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가렵니다.

충주에서 온 정 도다입니다.

저는 오늘 철야기도회에 오면서 참으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응답받고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이혼할 작정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나주 성모님께 오는 내내 남편과 이혼할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으니 차 안에서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잠만 쏟아지데요. 이제는 더 이상 못살겠고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고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왔기에 예전에는 성모님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때면 그렇게 눈물만나더니 이번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바라볼때마다 눈물은커녕 오히려 남편의 미운 얼굴만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전에 나주 성모님 비디오를 보았을 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남을 판단하지 말라 모든 판단은 하느님께 맡겨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원망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으로 잘 지고 예수님과 성모님을 따라야한다." 고 했던 말씀만 계속 머리 속에서 빙빙 맴돌며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바로 이것이 내가 오늘 응답 받고자 했던 나주 성모님의 응답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변화되기보다는 남편만 변화되기를 바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보면 이 십자가는 바로 나 자신이 만든 십자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않겠다고 원망하고 불평만 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남편을 용서하고 남편에 대한 일은 주님과 성모님께 모두 맡겨드리도록 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고 가렵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중의 하나는 저는 나약한 인간이라서 만약 집에 돌아가면 무너지고 흔들릴까봐 오늘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모님께 봉헌의 힘을 주십사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7월 6일
정영희 도다
충주시 칠금동 동신 아파트 203-502호




강한 힘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온 강 뻬루베뚜라 입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내적, 육적으로 많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최근에 저는 치질 때문에 성가 연습을 할 때나 기도회에 와서 앉아 있을 때 아파서 여간 고통스럽지를 않았었는데 나주 성모님께서 순례와서 완전히 치유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지난 6월 첫토요일에 떠간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엄마가 다 버리는 바람에 너무 속상했는데 레지오에서도 어려운 일을 만나 너무 괴로운 나머지 울면서 성당에를 갔습니다.

레지오 회합 전에 이대로 들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성체 조배를 하면서 마음을 달랜 뒤 레지오 회합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인삼 냄새가 솔솔 풍기기에 '어, 이상하다.' 하면서 인삼 냄새가 풍기는 곳을 찾아 보았더니 바로 제 목에 걸고 있는 나주 성모님 스카폴라에서 인삼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렇게 슬펐던 저의 마음이 완전히 기쁨으로 바뀌면서 내적으로 치유를 받고 정신적으로도 강한 힘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제 스카폴라에서 인삼 냄새가 풍기거든요. 정말로 저는 지금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감사합니다.

 

강은영 뻬루베뚜라
인천시 화수동 영풍아파트 102-403

 

뿌옇게 젖빛으로 변화된 나주 성수에서 소독 내음이 진동하다니!

인천에서온 배 마리아입니다.

어느날인가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보았더니 뿌옇기에 '왜 이러지'하고 생각하면서도 나주 성모님 기적수이니까 그냥 먹었는데 남편이 "왜 물이 이렇게 뿌여냐?"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성모님 젖이라는 것을 그때에야 깨닫고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아주 강한 소독약 냄새가 났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서 피를 줄줄 흘리게 되었는데 워낙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라 제가 아무리 나주 성모님의 은총에 대하여 말해도 믿지를 않았기에 나주 성모님 기적수라고 하면 바르지 않으려고 할 것이 뻔하여 남편이 안볼 때 나주 성모님 성수를 몰래 발라주었는데 뚜껑을 여는 순간 강한 소독약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남편의 이마를 보았더니 심하게 다쳐 피를 줄줄 흘리던 이마가 아주 깨끗하게 치유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물을 마실때마다 목에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데 성모님께서 저희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병든 영혼과 마음도 치유시켜 주신다고 믿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배복순 마리아
인천시 옥련동 백산 아파트 201-101호
032-832-55930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가…

찬미 예수님!

저는 말레이시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성당에서 온 박 안젤라 입니다.(교포)

저는 1995년 나주 성모님께 처음으로 순례를 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저는 7년째 냉담중이었고 말레이시아 사람인 남편은 5대째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때 나주 성모님 집에서 만난 인연으로 인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사실 저의 부부는 나주 성모님의 중매로, 그리고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맺어진 부부입니다.

그이후부터 저희 부부는 매년 6월 30일과 10월 19일이면 싱가폴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순례자들을 모아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고 있답니다.

작년 6월 30일 저의 부부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 왔을 때 저는 임신중이었는데 출산 예정일이 10월 30일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을 훨씬 앞당겨 8월 13일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두달반이나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아기의 몸무게가 1.27Kg 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아기의 상태가 너무 좋지를 않았기에 의사들에게 아기의 상태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아기가 살 확률이 25%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수가 터지고 4일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으면서도 성체를 영했기에 그랬는지 아기가 하루만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쉰 뒤 그 뒤부터는 스스로 숨을 쉴수 있게는 되었지만 문제는 너무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젖을 빨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기의 생명을 지탱시킬려면 하루에 최소한 우유 20cc 정도를 매일 먹여야하는데 아기가 스스로 빨 수가 없어 10cc는 호수를 통해서 주입시키고 나머지 10cc는 아기의 온몸에 바늘을 꼿아서 아기의 몸에 주입시켜야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워낙 미숙아 상태로 태어났기에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여 우유 10cc 만 넘어가면 아기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인큐 베이터에 안에서 4주째 되는 날부터 링겔을 맞게 되었는데 패혈증까지 걸려 항생제를 맞다보니 혈관이 자주 막혀 혈관을 찾기 위하여 아기의 몸을 바늘로 여러번 찔러 대야 했는데 어쩔때는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아기의 혈관을 찾기 위하여 주사 바늘로 아기의 온몸을 찔러 댔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한 번이 아닌 하루에 세차례나 그렇게 했으니 말 못하는 아기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말 못하는 아기지만 주사 바늘로 아기의 온 몸을 사정없이 찔러 댈때는 아기의 온몸이 발발 떨리면서 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렵사리 혈관을 찾아 링겔 주사를 꼿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 순간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바라보시며 미소지으시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우리 아기의 고통을 통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던 성모님의 마음을 나에게 알려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기의 혈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어 살 가망이 사라지자 의사들이 이제는 아기의 목에서 혈관을 찾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목에서 혈관을 찾아 링겔을 꼿아 놓으면 한 5일은 버틸것이라고 하여 결국 아기의 목에 링켈 주사 바늘을 꼿게 되었는데 퉁퉁 부어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남편과 함께 주님과 성모님께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아기가 더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차라리 아기를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절망 중에 있다가 나주의 율리아 자매님께 전화를 했더니 빨리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이라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가 입원해 있는 곳이 '집중관리실'(intensive care unit) 이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그 어떤 물건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지금 패혈증 증상으로 목에다 링겔 주사 바늘을 꼿고 있는 상태인데 만약에 제가 아기에게 나주 성모님 물을 먹이다 발각 되는 날이면 저는 곧바로 살인 혐의가 적용되어 구속되거나 병원에서 아예 ?겨 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 죽어도 주님의 것 온전히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 뜻대로 하소서." 하고 고백 하셨던 율리아 자매님의 말씀에 따라 저도 이미 아기의 생명을 하느님께 맡겼기 때문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3시간에 한 번씩 아기의 우유를 먹일때마다 간호사들 몰래 호수를 통하여 나주 성모님 성수를 한방울, 두방울 세방울 이렇게 숨어서 살짝 살짝 흘려 넣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인지 5일째가 되자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기의 상태가 좋아져서 아기의 목에 꼿았던 링겔 주사 바늘도 뽑게 되었고 혼자서도 우유를 잘 빨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아기의 몸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늘어났습니다.

의사들조차도 살 가망이 25% 밖에 없다고 했던 아기가 나주 성모님 물로 축성하여 만든 성수를 마신지 10일째 되던날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들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며 모두들 놀라워 했는데 나주 성모님 물을 먹인 일에 대하여 밝힐 수는 없었지만 저는 속으로 '나주 성모님 성수를 먹여서 나았어요. 예수님, 나주 성모님 찬미 받으세요.' 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번에 올 때 저희 아기도 함께 데리고 왔는데 지금 한국 나이로 세 살입니다.

지금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찬미와 감사 받으소서. "아멘"     

박윤숙 안젤라
63 Jln Bentara 5
Taman Iskandar, Malaysia

 

 

아!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해주신 일이야.

찬미 예수님!
부천에서 온 김 바오로 입니다.

지난달 저희 집에 하마터면 큰 불이 날 뻔한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 성모님께서 막아주셨습니다.

첫 토요일 날 아침 저희 부부가 나주에 오려고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제 아들 녀석이 조금 못된 짓을 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많이 혼낸 뒤 반성하는 마음으로 성모님께 촛불을 봉헌하라며 촛불을 켜 주었습니다.

촛농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종이컵에 받쳐 둔 초를 켜 주었는데 그만 그 촛불을 켜 둔 채로 그냥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아침 9시 30분 정도가 되었는데 집안이 온통 그을음으로 가득한 게 한마디로 난리도 보통 난니가 아니었습니다.

한쪽 촛대는 초가 반 정도 남은 채 여전히 타고 있기에 아들 녀석이 우선 불을 껐는데 종이컵에 있던 초는 다 타버렸어요. 다 타 가지고 촛대까지 녹아 버렸어요.
여러분 그걸 제가 갖고 왔는데 이것이 바로 그 촛대입니다.
보시다시피 재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급한 마음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서둘러 집안을 청소하다가 성모님께서 막아주시지 않았다면 집에 불이 날 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 타버린 촛대 바로 옆에는 얇은 성서가 있었고 밑에는 받침보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불똥이 튀었다면 십중팔구 불이 났을 텐데 그을린 곳 조차 하나 없이 아무데도 불이 번진 데가 없어요.

그런데 촛대 바로 앞에 성모님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성혈 사진을 코팅해서 놓아두었는데 그 곳만 약간 누렇고 다른 곳은 아무런 이상도 없기에 저는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이것은 바로 성모님께서 해 주신 일이야." 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자칫 불이 날뻔 했던 저희 집을 은총으로 지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집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이 모습을 보게 된 아들은 너무 놀라 이 일이 있고 난 난 후부터는 "아, 다시는 불 장난해서는 안되겠다"하며 불장난 하던 나쁜 습관도 고치게 해 주셨습니다.

아들은 평소에 라이터만 있으면 곧 잘 불장난을 했는데 하다 못 해 동생 인형까지 다 태워 먹은 적도 있었기에 애들 엄마에게 많이 혼이 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4년전부터 나주 성모님께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98년도에 저는 개인 사업을 해 볼 욕심으로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는데 생각했던 것 만큼 일이 뜻대로 풀리지를 않아 한참 방황을 했습니다.

이쪽 회사 저쪽 회사를 일주일씩 žグ?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묵주의 9일 기도가 무슨 기도인지 자세히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에 있던 회사에 다시 들어가게 해 달라며 나주 성모님께 무작정 매달렸습니다.

묵주의 9일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그 회사에 두 번씩이나 찾아가서 사장님께 다시 다니게 해 달라고 청 한 적이 있었는데 번번히 거절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묵주의 9일 기도 감사의 기도를 마치기 1주일 전에 다시 그 회사에 놀러 갔다가 그 회사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회사에 다시 들어오게 해 달라는 말은 일체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시간이 되어서 집에 갈려고 일어서는데 사장이 막 뛰어 나오면서 내일 꼭 전화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날 전화를 드렸더니 사장님이 뜻밖에도 내일부터 무조건 출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10년이 넘게 기계쪽 일만 하다보니 실증이 났기에 다른 부서로 옮겼으면 했는데 부서도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승진까지 해서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저희 회사도 구조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총 8명을 자른다는 방침이 나왔는데 제가 그 명단에 0순위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정을 하는 당일 날 사장님과 회사 간부들과 미팅을 가졌는데 한 10여분 간 이야기를 하다보니 도저히 못참겠기에 그 자리에서 수첩을 집어 던지면서 "자를테면 자르십시오. 나는 나주 성모님이 더 좋으니 기도회에 가야겠습니다." 하고 나주 성모님 집에서 열리는 목요 성시간에 참여했습니다.

목요 성시간 바로 다음날이 발표 날이었는데 세상에 명단에 올라갔던 인원 모두가 해고를 당했는데 저만 안 잘린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에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저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나주 성모님께 다니고 있는데 제 아내는 지금 율동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내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오면서 짜증을 냈는데 기도회 내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자비의 시간이 끝나고 평화의 찬미를 부르다가 아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아내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제 아내 젬마에게 정말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도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2003년 8월 첫토요일
김 바오로
부천시 원미구 중동 한라마을아파트102동 406

 

 

늘 토끼눈처럼 빨갛던 눈이 해맑게 되다. 

반갑습니다. 부산에서 온 이 안나 입니다.

얼마전 '님 향한 사랑의 길' 에 보니까 오랫동안 대변을 보지 못해 고생하던 어떤 자매님의 아들이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를 통해서 치유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제 조카도 그 아이와 똑 같이 변비가 너무 심해서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저희 조카는 5일에 한 번씩 소아과 병원에 가서 변을 빼내야만 했는데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을 아무리 먹어봐도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첫 토요일 철야 기도회 자비의 시간 때 "율리아 자매님이 오늘 고통을 많이 받고 계시는데 설사도 심하게 하신다"면서 "장과 관련된 질환을 앓고 계신분들이 치유될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 '어머, 우리 효원이 대변을 못 보는데' 하며 얼른 효원이를 봉헌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날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로 "언니야, 우리 효원이가 지금 변을 너무너무 잘 봤다. 병원에서는 약을 넣어도 딱딱하게 굳은 변이 나오다가 서서히 묽은 변이 나오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너무너무 잘 나온다" 하며 너무너무 기뻐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조카는 변비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아이 중에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는 사내 아이가 있는데 언제나 아이의 눈이 제가 보기에 겁이 날 정도로 토끼눈 같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도대체 무슨 병이 있기에 눈이 저렇게 빨갛노? 오늘은 나주 성모님 성수 좀 넣어 주어야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아야, 이 물은 아픈 사람들이 많이 치유되는 아주 좋은 물이란다. 선생님이 네 눈에 좀 넣어 줄테니 겁내지 말고 눈 한 번 벌려봐라." 하면서 아이의 눈에 나주 성모님 성수를 넣어 주었습니다.

나주 성모님 성수를 넣어준 뒤 눈 안 따갑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안 따갑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레슨이 끝나자 아이가 그날따라 "선생님, 오늘은 저하고 같이 가요" 하여 아이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이가 또 "선생님!" 하고 부르기에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눈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의 눈에 나주 성모님 성수를 넣어 주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빨갛던 아이의 눈이 아주 해맑은 눈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참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아이는 학교갈 때나 바깥에 나갈 때도 제가 준 나주 성모님 성수를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엄마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엄마에게 왜 아이의 눈이 그렇게 빨갰었냐고 물었더니 알레르기성 비염때문에 눈이 늘 그렇게 빨았었던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되는 일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안나
부산 광역시 서구 암남동 81-23
삼경빌라아파트 A동 1026

 

그것은 바로 죄인인 나 때문이야. 

안녕하세요. 인천에서 온 신 안나입니다.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전에 성모님께서 피 눈물을 흘리신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저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은 바로 죄인인 나 때문이야' 하면서 얼마나 통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늘 남편에게 눌려 살고 있던 나는 착하고 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면서 바로 제가 더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인천시 주안 8동 신창운 아파트  2-305
신춘심 안나

 

걱정하지 말아라. 

찬미 예수님!

저는 김해에서 온 박 가브리엘라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단 한사람도 없는 집에서 자란 저는 가톨릭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영세를 받다보니까 신앙에 깊이 들어가지를 못한채 성당을 다니다 안다니다가를 반복하면서 고백성사도 거짓말로 보고 모령성체도 하다가 결국 한 10여년간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작년 겨울에 우연찮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나주 성모님 사이트를 보고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알게 되었는데 직접 가서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기에 일단 나주 성모님께 가 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첫 토요일날 회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불연 듯 '아니,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 '갈까?말까?' 하고 망설이게 되었는데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마음 속으로부터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울림이 들려오기에 무작정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께 오게 되었는데 나주 성모님의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 징벌에 관한 메시지 말씀 등등을 접하고 나니 되게 무섭고 떨려 '괜히 왔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세번째 왔을 때까지도 저에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어느날 점점 변화 되어 가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께 세 번째 왔을 때 7년간이나 피우던 담배와 술을 끊게 되었고, 괴팍하던 성격이 점점 온화한 성격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성질이 강했느냐면 남이 저에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절대로 참지 못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콱' 쏘아붙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직장 상사에게 대들다가 해고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술먹고 새벽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주사를 부린적도 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저 같은 사람을 잘 참아 준 저의 남편은 참으로 성인군자 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참지 못하는 순간을 만날때마다 보속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며 잘 참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요.

이렇게 저의 모습이 차츰차츰 변화되어 가자 맨 처음에는 제가 나주 성모님께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남편이 이제는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 다니라고 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다니고 난 후부터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저뿐만이 아니라 저의 가족들에게도 은총을 주시더군요. 막내 동생이 하나 있는데 학교에서 뻑하면 친구들을 패고 말썽을 피워서 저의 엄마는 허구한날 학교에 불려 가고는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예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였기에 4년제 대학은 물론 2년제 전문 대학에 간다는 것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썽쟁이 동생으로부터 상위권 대학에 특차로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아, 이건 바로 성모님께서 은총으로 해 주신 일이야' 하는 확신일 들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비록 신자가 나 혼자이고 나 혼자서 성모님께 다니고 있지만 나중에는 저의 장부와 저희 가족들이 다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은총을 얻어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 나주 성모님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박수진 가브리엘라
김해시 장유면 무계리 대동아파트 1005동 1804호

 

45년간 앓던 난치병을 나주 성모님께서..

저는 서울 금호동에서 온 김 동성이라는 사람인데 올해 나이가 74세 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안식구가 올해로 72세인데 45년전(28세)부터 심한 두통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머리가 아프면서 마음이 진정이 되지를 않았기에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이리저리 눈을 감고 아무리 진정해 보려고 애를 써보아도 잘 되지를 않았으므로 진정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진정제를 한알씩 먹으면 가라앉았지만 지금은 두, 세알씩을 먹어야 겨우 잠을 자고 일어나는데 새벽 5시나 6시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9시나 10시가 되도록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5월 25일 3살난 손녀 딸을 미장원에 데리고 가서 머리 좀 볶아 줄려고 했는데 애가 하도 울고 난리를 쳐서 할 수 없이 미용실 하시는 분을 우리 집으로 모셔다가 아이 머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파마를 해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미용실 하시는 분이 나주 성모님과 나주 성모님 기적수에 관하여 이야기 해 주어서 지난 6월 7일 첫토요일에 나주 성모님께 순례를 오게 되었고 성모님 물도 떠 가지고 가서 아들, 딸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식구가 9일부터 12일까지 나주 성모님 물을 마셨는데 13일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45년간이나 심하게 아프던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7월 2일 첫토요일 나주 성모님께 다시 와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아들에게도 나주 성모님 물을 부쳐 주었습니다.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둘째 아들은 7년전부터 앞 가슴과, 두 다리에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간지러울 때마다 피를 철철 흘릴 때까지 박박 긁어대다보니 앞 가슴과 두 다리가 전부 헐고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야, 피부병을 앓던 사람들 중에 이 나주 성모님 물 을 먹고 바른 뒤 치유 받은 사람들이 많다." 하면서 나주 성모님 물을 먹고 바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나주 성모님 물을 딱 두 달 먹더니 딱쟁이가 하나도 없이 전부  떨어지면서 가려운 증상도 완전히 사라졌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물이 보통 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집안 모든 동기간들에게 나주 성모님 물을 부쳐 주고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 감사합니다.


김동성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233-30호

 


 '님 향한 사랑의 길'을 읽고 받은 은총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목포 대성동 본당에서 온 조 레지나 입니다.

저는 오늘 율리아 자매님이 받으신 지옥불의 고통을 보면서 저야말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영혼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를 율리아 자매님의 희생과 고통을 통하여 성모님 품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불러 주셨고 또한 이 은총의 자리에도 설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주님과 나주 성모님,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저는 본당 레지오 활동을 할 때마다 "성모님의 겸손을 본 받고 성모님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 는 말은 수 없이도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성모님의 겸손을 본 받는 것이고, 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의 일생기인 '님 향한 사랑의 길' 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이 참 겸손이고 참 사랑의 실천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었고, '아, 이 책이 조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해 드렸을텐데…' 하는 회한과 함께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지난날의 저의 죄들을 비춰주셨고 저는 그때마다 깊이 회개하면서 메모지에 적어 두었다가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고요. 아니, 아마 평생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님 향한 사랑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서 하느님은 정말로 자비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또한 우리가 드리는 희생과 보속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아주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의 일생기 1부에서 「셈치고」 사는 삶에 대해 읽어보았기에 머리로는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어떻게 하는 것이 '셈치고' 사는 삶인지 잘 깨닫지 못했었기에 율리아 자매님의 영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와 있는 율리아 자매님의 행적을 보면서 나도 율리아 자매님께서 사신 모습대로 따라 산다면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 안에 완전히 용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에 비로소 새롭게 하나하나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저는 특히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는 삶을 살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에 생활의 기도를 통해서 아주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활의 기도를 통해서 받은 은총을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장부가 TV를 좋아하기에 집에만 들어오면 TV를 봅니다.

저의 장부는 신앙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고 나주 성모님께 봉사도 하고 있으나 아직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을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저는 콘센트를 뽑거나 자동차 키를 뽑을 때마다 장부의 악습을 뽑아주시라고 기도하고 특히 TV를 많이 보는 습관을 없애 달라고 봉헌하며 생활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저희 장부에게 여러 악습들을 끊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 장부는 지금 토목일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늘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 아침에 일어나면 짜증을 잘 냈는데 성모님께서 장부에게 그런 자신의 잘못된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비춰 주셨기에 나주 성모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모습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빠가 그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잘 못된 일인지를 모르고 살았었는데 너무나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 그래서 아빠는 오늘부터는 고칠거야. 그러니까 너도 오늘부터는 아빠와 함께 고치도록 노력하자. 응" 하며 아들과 약속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정말로 얼마나 기뻤던지 저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사실 저희 아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짜증을 부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날 아빠와 약속한뒤부터는 저희 장부는 물론 아이도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습관을 완전히 고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저와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조수희 레지나  
목포시 산정 3동 중앙 하이츠 8동 804호

 


요도암이 싹 없어졌어요. 

+ 찬미 예수님

저는 나주에서 사는 박 마리아입니다.
제 자신이 받은 은총도 많지만 오늘은 일본에 사시는 소피아 자매님의 부탁으로 증언을 하고자합니다.
소피아 자매님은 지난 7월 첫토요일에 두 아들과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기도회를 마친후 성모님 기적수로 만든 성수를 가지고 일본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분에게서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다니시는 성당의 성체조배회 총회장님 부인이 요도암에 걸렸는데 그때 마침 수술을 하기 위해 예약을 해 놓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피아 자매님은 요도암에 걸린 그 부인에게 나주에서 가져간 성모님 기적 성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수를 마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 검사를 하였는데 검사결과 그 요도암이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만약 요도암을 수술하게 되면 일생동안 호스를 꽂아서 주머니를 차고 거기에 소변을 받아내야만 되는데 그런 엄청난 고통을 치유해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자기 대신 첫토요일 기도회에 꼭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치유된 그 자매님은 내년 2월달 첫토요일 기도회에 와서 증언을 할 생각이라 했습니다.

주님 모든 영광, 찬미 받으소서! 자애로우신 엄마, 성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2003년 9월 6일
박순자 마리아
나주시 금계동 우영 아파트 109호

 


기적처럼 좋아졌다고 놀라시는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제기동 본당에서 온 노 베로니카입니다.

대수술을 여러 번 받은 저는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작년 5월부터 나주 성모님의 집에 순례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집에 다니면서 한 차례 수술을 더 받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었는데 제가 식당을 하고 있는 관계로 바빠서 몇 개월 동안 기도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게 제 몸무게가 계속 빠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몸도 많이 피곤하고 해서 병원엘 갔더니 저의 수술을 담당하셨던 의사선생님이 수술 후 한 달에 한번씩은 와서 진료를 받아야 되는데 안 왔다고 저에게 막 야단을 쳤습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으니까 바로 검사를 시작하자고 하면서 검사를 하여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CT촬영을 하고 다시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래서 위 내시경, 장 내시경, 초음파 검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심장과 신장도 좋지 않을뿐더러 순환기장애와 여러 가지로 상태가 좋지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수술 받기 전에 나주 성모님 집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싶어서 지난 6월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의 집에 다녀와서 검사 결과를 보러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놀라며 기적처럼 좋아졌다고 희한해 하시면서 수술 안 해도 되겠으니 6개월마다 한번씩 검사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 너무 감사하여 이제부터는 자주 순례를 다니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본당에 아들 두분을 신부님으로 두신 자매님이 계신데 그 자매님은 팔에 옻이 오른 것처럼 피부병으로 엄청 심한 고통 중에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으나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게 나주 성모님 기적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이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에 대하여 잘 알고 계셨고 예전에는 수녀님들하고 나주성모님 인준되시라고 기도도 많이 하고 다니셨다 합니다.

그런데 아드님 두 분이 신부님이 되시고 나서 순례를 못 오신다고 하더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그 자매님에게 조금 드렸는데 한 주 지나서 성당에 가니까 그 자매님이 저에게 다가와 꼭 끌어안으면서 "베로니카야, 나 그 물을 먹고 바르고 기도했더니 이렇게 깨끗이 나았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니 정말 깨끗해졌더군요.

저의 장부는 이런 것을 반신반의하면서 잘 믿지를 않는 스타일입니다.

어느 날 장부가 습진이 온 몸에 심해서 기적수를 발라 주어 하루 밤 새 많이 좋아졌었는데도 장부는 "믿을게 따로 있지."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식당에 손님이 많으니까 급하게 서둘다 보니 장부가 삼겹살을 썰다가 엄지손가락을 잘랐습니다. 피가 엄청 많이 쏟아졌지요.
그래서 지혈제를 사다가 많이 썼는데도 피가 멎질 않았습니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피가 멎지를 않는 거예요.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막무가내로 병원엘 가지 않겠다고 해서 상처에 나주에서 가져온 성모님의 기적수를 발라주었습니다.

딱 한 방울 떨어뜨렸는데 그렇게 쏟아지던 피가 거짓말 같이 딱 멈추었고 상처난 자리가 우윳빛처럼 하얀 색깔로 살이 변하더니 그 기적수 물방울이 옅은 노란 진액처럼 변해서 그곳이 응고가 되었습니다. 그걸 보더니 장부가 자기도 모르게 성호를 긋더군요.

마지막으로 지난 8월 28일날 일어난 고 2학년인 저희 막내아들의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아침에 정상으로 학교를 갔는데 정오 12시 쯤에 애가 쓰러져 성바오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아마도 요도 결석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걱정한 만큼 큰 병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놓이더라구요.

그래서 응급치료만 하고 오후 4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는데 다시 통증이 시작되어 아이가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였더니 요로 결석증이 아니라 요로 협착증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수 촬영한 사진을 보니 오른쪽 콩팥이 육안으로도 알아 볼 만큼 많이 부어 있고 소변줄기(요로) 내려가는 곳도 손가락 마디만큼 하얗게 고여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더 하고 나서 의사선생님이 보호자 수술동의서를 받으면서 하는 말이 "수술을 하려면 성기에 기구를 넣어서 수술을 해야되는데 만에 하나 잘못하다 뭘 건드리면 불임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이거 수술을 시켜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고 고민을 하였으나 아이가 당장 통증을 참지 못하니까 동의서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병실로 돌아왔는데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나주 성모님께 의지하며 묵주기도를 하면서 나주성모님 집에서 가져온 기적수를 애 옆구리에다가 계속하여 바르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밤새 기적수를 바르며 기도했는데 아침 6시에 X-ray를 찍으라고 하더군요.

X-ray를 찍고 와서 애가 바짝 겁을 먹고 긴장을 해서 마취하면 하나도 안 아프다고 안심을 시키고 있는데 7시 40분쯤 되니까 의사 선생님들이 회진차 들어오셨습니다.

옆에 있던 한 의사가 그 과장님더러 귀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그  과장님이 우리 아들을 보고 "어? 이 애야?" 그러더니 우리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너 참 잘생겼다. 이 자식, 아프긴 어디가 아프냐?"고 말하더군요.

그리고나서 우리 아들더러 누워보라고 하더니 옆구리를 두드려보며 몇 번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아들이 괜찮다고 하니까 과장선생님이 "야, 다 나았어, 집에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나 놀라워 제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 병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들도 모두 다 깜짝 놀라며 기뻐했습니다.
 
제가 너무 황당해서 "선생님, 정말 그냥 집에 가도 되는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다 낳았으니까 집에 가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집에 가서 아프다고 또 뒹굴고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니까  의사가 괜찮다고 집에 보내는데 뭐가 걱정이냐면서 아프면 또 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여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어요.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2동 187-55
노 베로니카

 

성혈 사진을 보는 순간 피비린내가… 

안녕하세요. 부천에서 온 윤 카타리나 에요.

첫토요일 기도회 도중에 있었던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8월 15일날 예수님께서 성심을 열어서 흘려주셨던 묵상자료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혈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피비린내가 "확" 스쳤습니다.

성혈사진이 영상 화면에 처음 나왔을 때 제 코끝으로 피비린내가 "확" 스쳤는데 또 다른 성혈장면이 나왔을 때도 또 피비린내를 맡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상을 통해서도 실제로 성혈을 흘려주시며 상처받고 병들은 영혼, 육신을 치유해 주시고 우리의 추한 때도 깨끗이 씻어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비록 묵상자료라 하더라도 그것을 볼 때 정말 내가 마음을 열고 주님께 아멘 하고 응답하는 자세로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할때 주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03년 9월 6일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44 성산연립1동 106호
윤 정아(카타리나)

 

모두들 감격하여 환호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군포에서 온 이 베로니카입니다.

올 2월 18일 처음으로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8월 15일, 말레이시아에서 온 수주교님과 여러 외국 신부님들이 성모님 동산에서 미사를 드렸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미사를 마치고 봉사하시는 분들이 제대보를 걷는데 큰 돌 제대 위에 향유가 많이 흘러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많은 외국 분들과 우리 한국순례자들은 향유를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며 너무 감격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 분들이 하늘을 보면서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저도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태양이 동그란 성체모양으로 변하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색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감격하여 환호하였습니다.

태양이 돌면서 밑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동으론 실천하지 못했던 내가 그 체험을 하고 나니까 나 자신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정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데 내 자신이 죄인이기에 그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니까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보여주시는가 보다' 생각 하면서 많은 통회와 반성이 되고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주님께 마음을 더 열 수 있을까?' 하고 자꾸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그런 소리가 자꾸 나오고 몸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1119번지 백두한양APT 981동 1905호
이 베로니카



수술도 불가능한 희귀종양이 치유되다니… 

+ 찬미 예수

저는 서울 상계동 김 테클라입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감사를 전해야 했기에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모두 세례를 받고 수년간 모두가 냉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02년 11월 저희 둘째딸 율리아나가 감기 증상으로 아프기 시작하여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긍긍하면서 두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딸아이 증상은 점점 악화되고 처음은 목이 아프다, 침 넘기기가 힘들다 하더니, 귀에서 소리가 난다, 물이 고인다 하기에 '중이염인가?' 하고 병원을 다녀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고 머리가 아프다, 눈이 아프다, 중심이 안 잡힌다, 목소리도 안 나온다, 씹기도 어렵다, 입도 벌려지지 않는다 하여 안과를 비롯하여,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 보니 증세는 더 심해지고 급기야 큰 병원가서 MRI 사진을 찍어 본 결과 선암종3기(일종의 두경부 암)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흔히 나타나는 병이 아닌 아주 드물게, 간혹 어렵게 나타나는 희귀종양이라 치료가 굉장히 힘들다는 진단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딸애가 먹지를 못하니 미음으로 빨대를 꽂아 겨우 넘기며 급기야 고통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MRI 사진에서는 분명 악성종양인데 전신마취 조직검사를 3번이나 했지만 종양이 귀 뒤에서 턱뼈사이에 너무 깊이 박혀 조직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검사를 하고 또 하고 그러다 무려 MRI사진을 4번이나 찍었고 또 두달을 흘려 버리고 애는 진통제를 하루 3, 4알씩 먹고 치료하기만을 기다리던 중 대구에 사는 애들 고모가 나주 성모님 얘기를 하며 나주의 기적수를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고 그 무거운 물통을 직접 서울까지 가지고 와서 먹이라고 하고 나주의 기적을 수없이 얘기해도 "그럴 수가, 그건 우연이야" 하며 반신반의하면서 애들 고모의 정성과 사랑이 고마워 '그래 한번 가보기나 하자' 마음먹고 있던 중, 마지막 진단은 수술도 불가능. 조직 검사도 불가능, 항암 치료도 불가능, 최후는 턱밑에서 귀 뒤쪽까지 15cm가량 절제하여 조직검사를 위한 가장 위험한 수술을 해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딸은 아직 27세 꽃다운 나이의 미혼인 아가씨인데 그 아이의 얼굴에 수술자국을 남길 수가 없고 본인 또한 죽으면 그냥 죽었지 얼굴에 수술자국을 남길 수 없다고 완고하게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의사선생님도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그런 치료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결론은 무조건 방사선 치료를 해보자고 하시면서 방사선 치료도 안되면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조직검사결과가 없는데 방사선 치료를 할 수는 없다고 해서 이비인후과와 종양학과 의사진들의 회의와 회의 끝에 드디어 3월 중순부터 방사선 치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방사선치료 10일 후 반응이 좋아 계속 치료를 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4월 5일 한식, 식목일에 나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왜 그렇게도 차는 막히는지…

저녁 6시 나주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은 "저런 애를 데리고 어딜 가느냐?"고 하였지만 왠지 저는 꼭 한번 가야되겠다는 일념으로 나주행 차를 탔고 가는 도중에도 딸아이는 진통제를 먹어가며 너무나 걱정스럽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주로 내려가는 도중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아이가 차안에서 김밥을 3쪽이나 먹지 않겠습니까!

"어머나! 감사해라." 이런 말이 제 입에서 저절로 나왔습니다.

성모 동산에 도착하여 저희 딸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맨발로 힘들게 하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장미향기도 맡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힘들어하면서도 밤새 철야기도 시간을 잘 견뎌 주었습니다.

다음 날, 2, 3개 먹던 진통제를 먹지 않았습니다. "너 안 아프니?" 물으니까 아프긴 해도 견딜 만 하다면서 진통제를 먹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성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순례 후 서울로 돌아와서, 방사선 치료가 너무 힘들어 정말 물도 못 먹을 지경에 딸아이는 자꾸자꾸 말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성모님께 왔다가니 물도 못 먹던 아이가 죽을 먹지 않겠습니까! 또 한번 감사!

저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애는 나을 거라고. 예수님이 낫게 해 주실 거라고…

5월 말로 2달간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건강식품을 잘못 먹여 딸 아이가 식중독에 걸렸고 온몸에 오돌토돌한 발진과 열이 났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주사와 약을 먹고 치료를 했지만 한달 동안이나 몸에 오돌토돌한 것은 낫지를 않았고 긁으면 수포가 생기며 진물기가 촉촉이 젖곤 하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지난 6월 성모님 동산에서 목욕을 하고 집에 갔는데 그 수포가 다 가라앉아 하얀 껍질이 보송보송하더니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후 7월, 8월 나주 성모님을 뵙고 올 때마다 조금씩 차도가 있으면서 변화되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치료가 끝난 후 8월 21일 마지막 전신 PET(암조직이 남아 있는지의 검사)촬영 결과는 생각 의외로 치료가 너무 잘 되었다고 앞으로 재발하지 않게끔 건강관리 잘 하고 정기검진도하면서 직장을 가져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으로 요즈음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 저희 딸 너무나 예쁘게 변하여 모두들 18세 소녀로 본답니다.

"율리아나야! 성모님이 너를 사랑하시어 고모를 통해서 성모님의 기적을 널리 전하라고 율리아나 너를 불렀나보다."

저희 딸아이가 새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예수님과 성모님 감사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멘. (의사 진단서 1부, 소견서 1부 첨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1동 은빛APT 105-805호
김  테클라

 

 

회개의 은총으로 10년 전에 집 나간 장부가 돌아오다.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형제 자매님들께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당진에 사는 로사라고 합니다.
제가 예수님과 성모님께 받은 은총의 선물을 여러분에게 잘 전달해야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기뻐 하실텐테…
우선 예수님과 성모님께 기도 드립니다.

예수님 성모님 아무것도 잘 한 것 없는 이 보잘 것 없는 죄인에게 이런 크나큰 은총을 내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저는 10여년이라는 세월을 아들하나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장부는 저희 애가 6살 때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 때 당시 성당에 다니고는 있었지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그렇게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오직 돈을 벌어서 아들하고 살아야 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제겐 기쁨이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초라하고 남을 만나기도 꺼려지고 그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주 성모님 집에 다니시는 자매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희 집에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그 뒤로 그분들의 따뜻한 배려로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좋은 것도 몰랐고 그냥 그 자매님들을 열심히 따라 다녔습니다.
나주에 다니기 전에는 기도 같은 것은 할 줄도 몰랐고 나주에 다니면서도 기도는 했지만 진심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께 간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는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첫토요일 철야기도 은총의 나눔의 시간에 자매님들이 예수님과 성모님께 받은 은총을 증언하는데 그때 저도 생각했습니다.

'나도 예수님과 성모님께 간구를 해 보자. 그러면 꼭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첫토요일 기도회에 참석하면서도 간절히 기도 할 줄도 잘 몰랐으며, 또 장부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용서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돌아온다고 해도 좋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비의 시간에 갑자기 편지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첫토요일에 성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성모님,
장부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또한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나 좀 알게 해 주십시오.
그것만 알아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하고 2002년 7월 첫토요일에 기도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7월 19일 서울에서 시누와 생질이 와 있었는데 저는 밖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누이가 나를 급하게 불러 들어가 보니 전화가 왔다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으니 10년 전에 집을 나간 장부가 울먹이며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다 용서 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세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던 제 생각은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용서를 했습니다.

그 뒤 첫 토요일 기도회에 또 참석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만나게 해 주셨으니 같이 살게 해주십시오" 하고 또 성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부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다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제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기도하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내가 장부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다면 또 만나도 옛날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왔다간 장부는 몇 달이 지나도록 또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다시 생각을 바꿨습니다.
주님, 성모님 이제 제가 확실히 결정했습니다.
장부가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겠습니다. 이해하겠습니다.
 생활 능력이 없더라도 제가 돈을 벌어 같이 살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장부가 저렇게 된 것은 제 탓도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잘못을 회개하는 뜻으로 장부를 어떤 처지에서도 사랑하겠노라고 주님과 성모님께 약속했습니다.

그 뒤 몇 달이 지나서 장부는 같이 살던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부는 이제 옛날의 장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성당에도 나가고 아주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형제 자매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저보다 더한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곤경에 빠진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저의 증언을 들은 모든 형제 자매들이 저처럼 크나큰 은총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아멘.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다시 찾은 놀라운 사랑 

안녕하세요. 서울 신월동 본당 고 아녜스입니다.
저는 3년 정도 냉담중에 있었는데 작년 8월에 딸의 권유로 나주에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도 모르고 왔었지요.

그런데 처음 나주 성모님의 집에 와서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시는 사진을 봤는데 가슴과 온 몸이 저려올 정도로 너무너무 슬펐고 그 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있었던 부끄러운 얘기들을 조금 하겠습니다.
저는 남편을 만난 지가 33년쯤 됐는데 결혼하기 전부터 구타를 당했습니다.
남편은 결혼한 후에도 한 달에 27일 정도는 술에 완전히 절어서 집에 들어왔고 와서는 "무릎꿇어!" 하면서 심한 언어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개 똑바로 돌려" 할 때 똑바로 돌리지 않으면 욕하면서 때렸습니다.
술만 먹으면 똑 같이 반복되는 이런 힘든 나날들을 이유도 없이 맞고 당하면서 살아온 33년.
제가 아무리 맞았을지라도 그 다음날이 되면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만 골라서 해주었습니다.
저는 19살 때 영세를 받았습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 '그렇게 맞아도 살아야 되는 거다' 라며 참고 살아 왔는데 제 나이 40쯤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이 멀어지며 저도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죄도 많이 짓고 맨 날 같이 싸우고 남편이 집어 던지면 나도 같이 집어 던지고 하면서 불화가 끊이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였지요.
제가 냉담을 3년쯤 했을 때 이제 부부 둘이 다 죽게 생겼으니까 우리 딸이 작년 8월에 저를 나주 성모님 집으로 데리고 왔었습니다.

그 동안의 시련들이 사랑의 매인 줄도 모르고 남편을 원망만 하고 입만 열면 험담하였기에 그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리고 눈으로 본것을 얘기 안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으로 40여일 동안 1분도 자지 못한 적도 있었고 신경과와 정신과 병원을 번갈아 다니며 아무리 약을 써봐도 단 1분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너무나 큰 미움 때문이었습니다.

나주에 와서 성모님을 만난 뒤로 이번에 가면 그 사람이 용서가 됐나 싶어서 쳐다보면 또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 다음달에 와서 또 완전한 용서가 됐나 싶어서 보면은 가슴이 또 답답하고 그랬었는데.. 오늘은 진짜로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의 이 마음안에는 30년 한이 맺힌 게 있어 미움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성모님 동산에 올라갔을 때 뜻밖에도 율리아 자매가 보여 다가가서 끌어안고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때부터 경당에 올 때까지 장미향기가 떠나질 않는 거예요.
아까도 이곳 경당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계속 장미 향기가 짙게 나고 한약 달이는 냄새도 계속 나서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눈물로써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술만 취하면 나를 때리는 남편을 보며 "하느님 왜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어요?" 하고 원망을 하며 살아왔는데 나주에 와서 성모님을 만나고 보니까 '아! 과연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사람을 나의 십자가로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지금 8개월째인데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예수님과 성모님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답니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953-3 101
고 아녜스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을 통해서 치유받았습니다. 

서울시 녹번동에서 온 오 안나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받아왔던 상처들을 치유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모님 집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차안에서 성가를 듣고 기도 드리는 과정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성모님 동산에 가서 마음이 나름대로 많이 새로워졌습니다.

경당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던 중에 빛의 신비 끝나고 고통의 신비 1단 들어갔을 때 여럿이 함께 하는 그 묵주기도 소리가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소리처럼 저에게 울리는 거였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너무너무 아름다운 소리야. 이건 정말 마귀들의 도당을 싹 쓸어 없앨 수 있는 힘있는 천둥소리야' 라는 느낌이 들면서 묵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모님 사랑해요' 하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자비의 시간 때에는 가슴이 더 답답해졌습니다.

그때 사회보시는 형제님께서 "지금 율리아 자매님께서 가슴이 답답한 고통을 받으시고…" 라며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제가 한숨을 굉장히 깊게 내리 쉬었는데 그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편안해 지더니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2003년 9월 6일
서울특별시 응암1동 39-251 석전 아트빌라 402
오 안나

 


붙어있던 목구멍이 ‘뻥’ 뚫리다니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리 상현동 본당에서 온 벨라뎃다입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나주 성모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푸른군대 봉사와 본당 첫토요일 미사 성가대에서 봉사하느라고 자주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무실을 오픈 하는 날, 방문오신 아는 자매님의 권유로 성모님 집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상담을 많이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일 년 전부터 목이 많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은 아프다 못해 이 직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말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목 양면 안쪽에 살이 너무 차있고 목구멍이 붙어있어서말을 못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이 너무 아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이제는 정말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던 차에 그 자매로부터 나주 성모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순간  '아, 정말 때가 왔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 날 즉시 첫토요일 참석 날짜를 잡았습니다.

남편도 승낙을 해서 같이 오는데 차에서 봉사자님이 나주 성모님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순간부터 감사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밥 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전혀 냄새를 맡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너무 놀랍게도 장미향기가 진하게 나더군요.

그래서 성모님 기적수를 들고 집에 돌아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주님 성모님께 "오늘도 밝은 태양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기적수를 마셨습니다.

마시면서 "예수님의 성혈로, 예수님의 성혈로, 우리 모든 영혼 육신 치유하소서. 아멘. 아멘." 하고 노래하면서 정말 열심히 계속 기도하면서 마셨습니다.

이렇게 3개월 동안 빠짐없이 첫토요일에 와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3개월 되는 날 경당 화장실을 갔다오는데 옆의 자매님이
"아니 벨라뎃다씨, 온 몸에서 장미 향기가 너무 많이 나네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 하고는 밖에 나갔더니 저희 남편도 제 몸에서 장미 향기가 너무 많이 나서 놀랐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재차 확인하려고 남편에게 "제 몸에서 정말 향기가 납니까?" 하고 물었더니 "응. 당신 몸에서 장미 향기가 너무나 많이 났어" 하고 말하므로 저는 너무나도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그 뒤, 제가 성모님 집에 온지 4개월쯤 됐을 때 목이 많이 나아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목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기도도 못했고 성가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좋아져서 기도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성가도 부를 수 있게 되어 주님과 성모님께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경기도 수지 상현동 쌍용ATP 602-903호
한 벨라뎃다

 

그렇게 많은 피를 쏟던 치질이 감쪽같이 나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천 삼전동에서 온 헤드비제스입니다.
저는 2000년도부터  첫토요일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그 동안 받은 은총이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로, 저희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한 뒤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가족들을 무척 못살게 굴었는데 어느 날 어떤 자매님이 알코올 중독인 남편이 치유받은 증언을 할 때 제 남편을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아멘!' 하고 응답했더니 저의 남편도 치유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저희 부부가 제주도 여행 중에 눈병이 심하게 났는데 눈이 얼마나 부었던지 소 눈 만하게 퉁퉁 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갔다온 날 피곤해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성모님 얼굴이 평소와는 달리 너무 창백해 보이고
피눈물 흘리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동안 잘못 살아왔고 남편도 잘 못 섬겼고 자녀들도 내 마음대로 판단해서 두들겨 패고 욕하고 또 내 이웃들과 교우들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했던 일들이 너무 마음이 아파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바라보시면서
"네 눈 조금 부은 것 가지고 그토록 아프다고 하느냐? 내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질 때 나는 얼마나 아프겠니?" 하시는 것 같았고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피눈물을 끊임없이 흘리시는데 나는 나주 성모님 집에 와서도 어머니의 아프신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축복만 달라고 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 손수건 하나를 다 적시도록 울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날이 밝아 남편과 함께 안과를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 눈은 안 나았는데 할머니 눈은 빨리 나았네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너무나 아프고 상태가 심했는데 울다가 보니까 성모님께서 그 눈을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치질이 너무 심해서 화장실에 가면 피를 너무 많이 쏟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항문이 너무 가렵고 해서 성모님 기적수를 아픈 곳에  발랐더니 바르고 일어서자마자 너무나 감쪽같이 치질이 없어졌습니다.

성모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57-1 우남 1차 나동 109호
문 헤드비제스

 

 ‘아멘’으로 응답하였더니 치유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주에서 온 심 모니카입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좌골신경통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신경 크리닉을 받는데도 차도가 없던 중 지난 8월 첫 토요일 기도회에 참석하여 율리아 자매님께서 좌골신경통에 고통을 많이 받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서  "아멘!" 하고 응답했을 때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집에서도 끙끙 앓으면서 일을 할 정도로 머리에서부터 목과 온몸이 여기저기 무척 아팠습니다. 그런데 성시간에 참석하고 나니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딸은 정신질환이 있는데 얼마나 심한지 병원의 의사도 "당신 딸은 치료해도 못 낫습니다." 고 했습니다. 딸은 분열증세가 너무나 심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성모님 집에 다닌지는 올해로 만 10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달부터 율리아 자매님이 고통을 받으실 때마다 "아! 저건 바로 우리 딸아이 때문에 받으시는 고통이구나" 하고 느꼈고 그때마다 제가 '아멘', '아멘' 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묵주기도를 전혀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올해부터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상태가 좋아져서 지금은 묵주기도도 '계' '응'으로 20단씩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래고래 악쓰고 돌아다니며 기물파손등 말썽부리던 것도 없어졌고, 물을 한 대접 먹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성모님 물 한 양푼씩을 꿀꺽 꿀꺽 마시게 되었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전주시 평화동 1가 458
심 모니카

 

 

폐색증으로 절단해야 되는 다리를 치유해주신 나주 성모님 

저는 인천 작전동에서 온 홍 마리아입니다.
저희 오빠가 치유를 받은 사례를 증언하겠습니다.
저희 오빠가 동맥 폐색증에 걸려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해야 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다리를 자르지 않기 위해서 퇴원을 하여 집으로 와버렸습니다.

'신앙이 없고 고집도 센 오빠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빠의 아픈 발을 만져 봤습니다. 오른쪽 다리 발가락 부위가 거의 절반이 썩어있었습니다.

발톱도 다 빠진 상태인 오빠에게 "오빠, 나주 성모님 기적수도 있고 성수도 있는데 오빠 한번 먹어보고 발라볼래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너무 아프니까 급했던지 발라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페트 병에 성모님 기적수를 넣어 갖다 주고 작은 성수 병 두 개를 가지고 가서 오빠 발에 발라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부위를 비닐로 싸고 붕대로 감으면서 "오빠, 이거 아파도 풀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하며 신신당부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와서 전화를 했더니 너무 아파서 붕대를 풀고 다른 약을 바르고 있다 하더군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오빠 집에 가서 다른 약들은 다 치워버리고
"어느 약보다도 성모님 물이 훨씬 좋은 거니까 계속 먹고 발라 보세요"  
말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발에 비늘이 일어나고 피부색도 시커멓게 되고 해서 차도가 없어 보였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한 달이 다르게 좋아지더니 피부가 뽀얗게 되어  발이 썩어 들어가던 곳에 새살이 찼습니다.

기적수를 바르기 시작한 것이 작년 6월이었는데 올 봄에 싹 나았습니다.
그 뒤 우리 오빠와 언니가 세례를 받는 은총까지 입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 찬미받으소서!

인천시 작전 1동 현대 차 101-909호
홍 마리안나

 

 

원수처럼 미웠던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는 회개의 은총  

안녕하세요? 평택에서 순례 온 안 카타리나입니다.

저희 가정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제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저희 집과 재산이 모두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이를 계기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저희 재산을 그렇게 다 날리게 만든 장본인인 제 시누이가 원수처럼
미웠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참으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자매님의 소개로 4년 전에 성모님 집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성모님께서는 그 날 처음 여기에 온 저에게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시누이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잘 할 수 있도록 힘을주신 것이지요. 저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모님집에 다녔고 생활의 기도화를 실천하였습니다.

저의 그런 어려운 사정을 불쌍하게 생각해서인지 어느 날 남동생이 제게 가게를 하라고 돈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 8월에 저희 장부와 저에게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9월 초에 가게를 계약하고 나서 첫토요일 기도회 때 성모님집에 왔고 "성모님 저는 몸이 약합니다. 제가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보약 먹을 돈도 없으니, 성모님 저에게 건강을 주십시오" 하고 성모님께 기도를 드린 후 성모님 은총의 물을 떠 갔는데 글쎄 거기서 인삼향기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을 다 마시고 그 물통에 성모님 기적수를 다시 부으면 또 계속 인삼향기가 계속해서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차안에서 우리 일행들과도 함께 나누어 마셨습니다.

기도회 도중에 '이것을 증언해야되나 어찌해야되나?...'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인삼향기가 계속 제 주위에서 났기에 '이것은 성모님께서 증언하라고 주시는 향기다' 생각하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성모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큰 은총을 주신 것은 제가 성모님 사랑을 실천하고 성모님 사랑을 주위에도 전하는 사도가 되라고 저를 부르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모님께 감사 드리옵고 모든 분들께서도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을 풍성히 받아 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심장 판막증과 축농증이 치유되었습니다. 

영산포에서 온 이 루시아입니다.

저는 심장판막증을 앓은 지 5년이 넘었습니다.
심장판막증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약도 먹고 했지만 저는 평소에도 병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일할 힘이 없으니까 밥도 겨우 해먹을 정도로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저녁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또 저는 옛날부터 축농증이 있어서 고생했는데 축농증까지 다 치유시켜주셨는데도 여태껏 증언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 앞에 증언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불임 판정을 받았는데 아이를 주시다니요!!! 

제 이름은 토마스 왓킨슨이며 미국 캔사스에서 왔습니다.

저는 캔사스에서 큰 가구점을 하고 있는데 지난 5월에 여기에 순례와서 성모님 물을 많이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아내가 말하기를 나주 성모님물이 전파가 빨리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어떤 분이 우리 가게에 와서 성모님물을 달라고 두 분이 왔다갔다고 합니다.

작년에 어떤 분의 어머니께서 성모님 물을 가지러 저희 가게에 오셨습니다. '뉴저지'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제가 사는 '캔사스'시 하고는 굉장히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성모님물을 구하기 위해 오신 거였습니다.

그분이 나주 성모님물을 가지고 가서 마셨더니 앓고 있던 그 분의 병이 완전히 치유가 되었답니다. 그 이후에 그 분의 며느리 되시는 분과 딸이 와서 성모님물을 더 달라고 해서 두 병을 더 가지고 가셨습니다.

또 어떤 분이 나주 성모님물을 알고 찾아 왔었는데요, 그 분이 참석하시는 기도모임 중에 지도 신부님께서 나주 성모님과 기적수에 대해 말씀하셔서 그 소문을 듣고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나주 성모님물을 미국에서 많이 전파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양을
가져가는데 성모님 물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먼 거리에서도 저희 가게에까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나이가 20세에서 30세 사이쯤 되어 보이는 자매님이 두 분 있었습니다.
의사로부터 불임 판정을 받은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의사들은 "임신이 불가능 하며 만일 임신을 한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며 회의적인 소견을 말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자매들은 낙심하지 않고 나주 성모님의 기적수를 열심히 마시고 배에 바르며 기도했더니 아기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지난 주에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장미 향기가 … 

저는 홍콩에서 순례온 엘리사벳입니다.

저는 너무너무 게을러서 기도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 처음 순례왔을 때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의 사진을 보며
"성모님은 왜 울고 계시는 걸까? "라고 생각하였고 '무엇이 그렇게도 성모님을 많이 아프시게 하는 걸까?' 하고 너무너무 궁금해지면서 저의 가슴도 아팠습니다.

그 때 갑자기 나주 경당의 성모님 상에서 빛이 나며   "마작(중국 도박의 일종)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도록 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고 하시는 성모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가 나주에서 모셔 간 성모님 상에서 지금까지도 계속
장미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독했던 조카가 성모님의 기적수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순례 온 백 세실리아 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던 동생을 제가 저희 본당으로 입교시켰습니다
이미 아이가 둘 있는데 입교 후 즉시 임신하게 되어 배는 불러오는데 차도 없이 가파른 길을 아이 둘 손을 잡고 성당을 오가며 영세도 받고 아이도 무사히 낳았습니다.

동생은 아기 먹일 우유까지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하루는 제게 "언니, 나 언니 아파트 1층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그게 내 꿈이고 소망이에요" 라고 하더군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동생을 영세 이후 물질축복을 많이 주셔서 1년 만에 집도 사서 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1층으로 이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어느덧 2, 3년 동안 자기가 풍족하게 생활을 하게 되니 자꾸만 저를 피하고 멀리하더니 기도생활에도 소홀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동생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변화되겠지 하고 그냥 놔뒀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3년을 다녔는데 지난 달에 갑자기 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으니 저에게 자기 집으로 빨리 와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가보니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른쪽 발이 녹슨 쇠고리 같은 데에 찍혔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 퉁퉁 부어 있었기에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도 " 정확한 병명을 모르겠다"고 했다는데 애가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9일,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기념일에 나주에 왔다 갔는데, 집에 돌아온 다음날 이 아이가 위독하다며 동생한테서 또 전화가 왔습니다.

" 언니 큰일났으니 병원으로 빨리 와라. 아이 발의 증상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똑같이 옮겨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 균이 온몸 장기로 다 퍼져서 아이가 위급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병원으로 아이를 옮긴 후 장기 사진을 모두 찍게 했더니 그 곳에서도 "균이 온몸으로 다 퍼지고 간에까지 전이가 돼서 생명이 위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아이가 뇌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열이 심하고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 또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지고 간 성모님 기적 수를 아이의 머리에서부터 등하고 발하고 발라줬는데 등부터 시작해서 금새 온 몸의 열이 내려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부산시 남구 감만 1동 유창APT 109동 905호
백 경선 세실리아

 


아멘의 위력! 

저는 대구에서 순례 온 김 젬마입니다.

지난 번 기도회 때 저희 형님네 손자가 아파서 제가 그 아이를 위한 지향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율리아 자매님께서 머리가 너무나 많이 아픈 고통을 받고 계시다고 하면서 오늘 뇌암이 치유를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저 혼자 `아멘' 하고 큰소리로 응답하면서 완전히 치유 받았을 거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아이가 너무 심한 상태라 수술을 몇 번씩 했었는데 제가 봐도 아기가 수술을 참 잘 참았습니다.

머릿속에 주먹만한 암 덩어리가 있는데 그것을 제거하면 어른도 고통스러워서 못 참을 건데 아무리 아파도 기도만 해주면 다 참아내더군요.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가 8개월 때부터 머리수술을 일곱 번이나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대구시 내당 1동 243-1번지
김 옥희 젬마

 

 

한의사이시기도 한 나주 성모님 

평택에서 순례 온 안 카타리나 입니다. 지난 번엔 성모님께서 저에게 인삼 물을 선물로 주신 은총을 증언하였는데 오늘은 제가 인삼향기가 났던 성모님 물로 치유 받은 것을 증언하겠습니다.

저는 왜 성모님께서 저에게 인삼향기가 나는 물을 주셨을까?,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을 때 인삼 물을 주셨는데 그 인삼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푸른 군대에서 오는 `마리아' 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잡지의 첫 장에 `묵주기도는 우리 사람으로 말하자면 심장을 뜻한다. 그런데 그 심장을 강하게 해 주는 데에는 우리 한국에서 나오는 인삼이 효능이 참 좋다' 고 하신 하 안토니오 신부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조금 힘든 일만 하면 숨이 차고 소화도 잘 안되고 신장도 안 좋아서 소변도 자주보고 장도 안 좋고 그랬어요. 또 신경도 예민해서 잠도 푹 자지 못하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주신 그 인삼 물을 먹고 나서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자고 소변도 정상인과  똑같이 보고 아무튼 성모님께서 육적인 질병을 다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제가 회개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어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은총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군문동 주공 APT 212동 502호
안 경순 카타리나

 

 

59년 간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던 귓병이 이렇게 치유될 줄이야! 

저는 서울에서 순례 온 주 가밀라 입니다.

왜정 시절 국민학교 1학년 때, 동네 시골 도랑에서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간 이후로 오랜 동안 귓병을 앓아왔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었고 개인 병원을 하던 오빠가 귀에다가 빨간 약을 발라주고 마이신 같은 주사를 놔 줬었는데 그때는 괜찮았지만 이후에 다시 도져서 계속 낫지를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암 환자도 있고 불치병으로 저보다 더 심환 환자도 많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귀아픈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도 한번도 낫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 기도가 많이 필요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기도는 했지만 저에 대한 기도는 해보지 않았고 또 죄송해서 축복을 달라고 기도도 못했어요.

이 병 때문에 제일 걱정스럽고 어려웠던 때가 결혼 할 때였습니다. 얼마나 심했느냐면,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이 제 옆에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귀에서 심하게 냄새가 났고 고막이 다 녹아버려 없어질 정도로 매일 피고름이 흘렀습니다.

항상 남편이 옆에서 못 자고 내 스스로 베개를 아픈 귀 쪽에 대고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가 다 젖어있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항상 우리 집에는 솜하고 이쑤시개하고 준비해 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냥개비하고 솜하고 하얀 데에다가 싸서 신문에다 말아서 화장실에다 넣어놓고 귀를 후비다 보면 아주 크게 부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럴 때면 오빠 병원으로 찾아가서 임시 치료를 해 가지고 친정엘 갔지요. 그대신 시집에선 굉장히 구박을 받았어요. 내 속도 모르고 친정에 자주 간다고요.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도 서울에 올라와서 남편한테는 처녀 때 아팠다는 말은 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죠. 갑자기 아픈 것처럼 병원에 다녔는데 수술을 하려고 보니까 "나이가 먹어서 수술을 해도 귀가 운다"고 해서 종합검진도 받았지만 그 결과도 "수술은 불가능하니 그냥 이대로 살라"고 하면서 아프면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저희 본당의 데레사 자매가 제게 "귀가 그렇게 아프시면 나주 성모님 물을 드릴까요?" 하며 다음날 10시 미사 때에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10시 미사에 나갔더니 바카스 병으로 반 병 분량을 주기에 저는 "이거 넣는다고 낫겠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나주에 온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해서 그 뒤로는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 물을 좀 얻어 받아놓고는 이 물을 귀에 넣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 고민하면서도 하도 아프니까 한 번 시험삼아 해보자 하고는 소파에 앉아서 넣어봤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한번 해보자. 남들도 나았다고 하니까. 하고는 그 물을 귀에 부어버렸어요. 너무 아파서 귀를 다시 털었더니 소파에 물이 다 흘러내리고 손에도 피고름이 막 흘러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인상을 쓰면서 한 30분을 귀를 싸안고 있었는데 흘러내린 그 물을 닦아낸 뒤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혀 물이 안 나오는 거였습니다.

1년 지난 뒤 물이 한 번 나온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는 지금까지 4년이나 되었어도 귀속에서 고름이나 물이 한번도 안 나왔어요.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59년 동안 앓아왔던 귓병을 낫게 해주신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도 조금 들린답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백산 블루밍APT 606호
주 양심 가밀라

 


길 거리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으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신 나주 성모님

저는 경기도 성남에서 순례 온 임세레나 입니다.
12년 전에 성모님께 받은 은총을 증언하려고 나왔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예수님 성모님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저의 남편은 12년 전에 조그마한 회사를 다녔는데 그 회사 상무이사란 분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듣고 목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사장님께 말씀 드렸더니 사장님께는 되려 저희 남편을 그 회사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될 텐데.. 하고 그 회사를 나왔는데 그 뒤로 그 회사가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남편은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신 5주년 기념일 때 저와 함께 나주에 순례를 왔었습니다. 와서 철야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성모님께서 남편의 꿈에 나타나셔서 "수일 내로 네 직장을 구하게 해주마" 하고 말씀하셨답니다.그런데 정말 며칠 후에 어디에서 전화가 오고 이러이러한 곳에 직장이 났으니까 이력서를 한번 내보라고 해서 이력서를 냈는데 합격을 했어요.

그곳은 개인 병원이었는데 재정적으로 참 힘든 직장이었습니다. 처음 5∼6개월 동안은 봉급도 반밖에 나오지 않아 여섯 식구가 생활하기가 참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성모님께서 해주신 직장이었기 때문에 참고 견디어 보면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하며 계속 다녔었는데 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그 병원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총무과에 잘 다니고 있어요.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 저희가 2001년도에 집을 새로 짓기 위해서 업자를 선정을 했는데 하필이면 사기꾼을 만났습니다. .
저희 남편과 저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믿고 저희 제일 중요한 서류들을 모두 다 내줬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채업자에게 가서 근저당을 해주고 돈을 몇 천만원을 쓰고 집을 지하 뚜껑까지만 한 상태에서 도주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1년이라는 세월을 정말 피눈물 나는 힘든 일을 겪고 살았습니다. 그리고서 두 번째 업자가 그걸 새로 지어 주겠다고 와서 인수를 했는데 그 업자조차 사기를 쳤습니다.

그래서 진 빚과 이자 갚느라고 너무나 힘이 들었고 겨우 전세를 들었지만 그 전세금 마저 사채업자가 빼앗아 갈려고 해서 빼앗기고 저희는 추석 바로 3일 전에 전세 집에서 완전히 내 쫓기는 신세가 됐었습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께서 저희가 집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진짜 생각지도 않았던 집을 월세 방 얻을 돈도 안 되는 금액을 가지고 샀습니다. 또 그 집을 사고 나서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 그 빚도 다 갚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주님과 성모님께 받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정말 순례는 와야 됩니다. 이번 첫 토요일도 본당에서 피정이 있고 친목계니 결혼식이니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런 유혹들을 다 물리치고 이곳에 성모님 집에 왔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찬미 영광 받으소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1545번지
  임 은정 세레나

 

이건 저에게 엄청난 변화예요! 

반갑습니다. 저는 용인에서 순례 온 강혜숙 아녜스 입니다.
저는 두 가지를 증언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지난번 아일렌 조지 여사님의 피정엘 갔었는데, 거기에서 수원교구 성령 기도회 지도 신부님의 강론 이야기를 간단하게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신부님께서 묵주기도성월에 대한 강론을 하시는데 분명하고 확실하게 신부님 자신이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 상본을 놓고 묵주기도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14살 때 소신학교에 들어가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40년째 하고 사제가 되어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이제야 내가 정말 성모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은총받는 사제라는 실감이 들고 이제야 정말 내가 사제구나 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 상본을 놓고 묵주기도를 해라.

엄청난 은혜를 입을 것이다"라는 정말 기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자리에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함께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불교 집안으로 시집을 가서 18년 동안 냉담 생활을 했습니다. 저의 결혼 생활은 남들이 겉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멀쩡한 결혼 생활인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엄청난 고통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성당엘 가는 것에 대해 온 가족이 너무나 탄압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제 결혼 생활 중에 최대의 고통이었습니다.

 또 남편이 술 담배를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더군다나 저희 시어른께서는 폐암으로 작고 하셨는데 남편이 담배를 좋아하니까 정말 고민거리였지요.
그런데 제가 나주성모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주님과 성모님은 놀랍게도 남편에게 변화를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성모님 물을 4년 전에 처음 가져갔을 때 아이들에게 "이 물은 너무나 귀한 물이기 때문에 우리 집의 하늘이신 아빠가 먼저 드신 다음에 먹어라" 고 했어요. 그 물의 귀함을 알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안 했는데도 어느 순간 담배를 완전히 뚝 끊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아무리 제가 바가지를 긁고 화를 내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주저앉을 때까지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게도 안하무인격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그냥 스스로 알아서 조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려도 절대로 말리지 않고 철야를 간다든지 성모님 집에 간다고 하면 "기도 많이 하고 오게" 하면서 데려다 주는데.. 이건 저에게 엄청난 변화예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런 모든 변화는 물론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이지만 더 중요한 건 제 자신이 회개의 은총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제가 그렇게 큰 죄인인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여기 와서 자비의 시간만 되면 항상 눈물을 폭포수 같이 쏟는데 제 자신이 얼마나 죄 덩어리였는지.. 그렇게 제 자신이 큰 회개의 은총을 입으면서 남편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에요.

 또한 마지막으로 중요한 봉헌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제가 회개하기 전에는 전부 주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은 제 것이 아니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회개를 하고 나서 교무금 내는 거나 봉헌하는 마음의 자세가 변화되었답니다.

어디 피정을 가든 혹은 여기에 오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에 내가 7을 하면 70을 주실 것이고 700배를 주시겠다고 그러셨잖아요.
하느님께서는 어쩜 그렇게도 정확하게 챙겨주시는지.

저는 제 인생에 그렇게 큰 집을 갖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또 하는 일 마다 어쩜 그렇게 날개를 달아 주신 것처럼 그냥 거칠 것 없이 나가게 해 주시고,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도 저를 탄압하고 반대하던 남편도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기도회에 간다고 해도 성내지 않고 어서 가라고 합니다. 주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 723 벽산첼시빌APT 501동 1105호
강 혜숙 아녜스

 

 

생활의 기도화와 메시지 말씀으로 성가정을 이루게 해 주시다.

반갑습니다. 부산교구 동대신본당에 김지성 세례자 요한 입니다.

성모님을 통해서 정말로 회개의 은총을 입어서 부활의 삶을 살고 있기에그 은총을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제가 처음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된 것은 2001년도에 인터넷상으로 '마리아의 구원방주' 사이트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교구에서 금지한 곳이니까 거기에 신경 쓰지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성모님 상에서 향유를 흘려주고 계시며 눈물도 흘리시고 피눈물도 흘리시고 교황님께서도 성체기적을 직접 목격하셨다는데 왜 교구에서 금지했을까 이상하다? 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저는 다시 세속에 빠져서 그냥 넘어 갔습니다.

사실 저는 10년동안 냉담을 계속 했거든요.

나주 성모님을 알고나서 그동안 제가 지은 죄를 한번 돌아보니까 10계명 중에 살인만 안하고 나머지 죄는 다 지었습니다. 살인도 할 뻔했습니다.
여기서 밝히지마는 제 큰딸을 낙태할 뻔 했습니다. 그랬다면 저도 살인자가 됐을 텐데 성모님께서 지켜주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세속에 빠져 있던 저를 하느님께서도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2003년 4월달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안면신경마비가 오른쪽으로 왔습니다.

일반 안면신경마비는 한 열흘쯤 침맞으면 돌아오는데 저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라서 처음에 의사가 2개월쯤 걸릴 거라고 하더니 6개월, 나중에는 1년쯤 보더라구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한 20일 했지만 차도가 없어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하려고 퇴원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피눈물 흘리시는 나주 성모님의 얼굴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성모님께서 이 병을 통해서 나를 불러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퇴원하고부터 인터넷에서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통해서 다시 나주 성모님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성모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주셔서 메시지 말씀을 제 가슴속에 읽혀 주시더라구요.

그렇게 메시지를 읽어보니까 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고 저 때문에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피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4월달까지 병원에 있다가 5월 한달 동안을 본당에 다니면서 고해성사를 계속 보고  매일 영성체 하려고 하고 성모님 메시지 말씀따라 매일 성서를 읽고 기도생활을 시작하다가 6월 첫 토요일날 어머니께 나주 성모님집에 갔다온다고 하니까 굳이 갈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시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생활이 변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 드리러 오고 싶었고 또 육적인 치유도 같이 받고 싶은 바람으로 6월 첫토요일에 처음으로 성모님집에 왔거든요.

첫토요일 기도회에 다녀오고 나서 제가 두 분으로부터 한의원을 소개받았어요.
 
그런데 기도중에 한군데가 계속 생각이 나서 어머니께 말씀드리니까 "그럼 그 병원에 한번 가보자" 그러시길래 그 병원에 갔는데 별로 치료도 특별한게 없는데 하루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거예요.

성모님께서 저를 직접 치유시켜 주실 수도 있으시지만 성모님께서는 의사분들도  존경하시고 사랑하셔서 저에게 맞는 그 한의사를 보내주셔서 치유를 시켜주셨는데 지금 제 오른쪽 얼굴을 보세요.
거의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보이시죠?

그리고 또 제가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실천하려고 두 달동안 생활의 기도 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노력해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악습들을 제가 고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먼저 성모님 메시지 말씀에 순명하라고 많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성격도 무뚝뚝하고 말도 없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더라도 거의 대화를 안 하거든요.

그렇게 무미건조한 생활을 했는데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읽고 나서부터는 아버지말씀에 "예" 하고  제가 먼저 순명하니까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가족간의 평화도 찾아 주셨구요.

저는 또 그전에는 설거지하고 청소, 이런 것은 절대로 안 했거든요.
남자가 무슨 청소, 설거지냐고 그랬었는데 이제 생활의 기도를 하니까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제 영혼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영혼도  가족, 친지, 주위사람들의 영혼 모두를 봉헌 할 수 있고 이 모든것이 저에게 공로가 된다니 일석이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가르쳐준 이 기도 덕분에 영혼이 풍요로워지고 가족 관계가 좋아지니 저는 더 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설거지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저는 더욱 기쁩니다.
'오늘은 회개할 영혼들이 정말 많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거든요.
 
그리고 또 컴퓨터를 통해서 안 좋은 영상들을 습관적으로 많이 봤거든요.

요즘엔 컴퓨터를 켜면서 "주님 제가 쓰는 이 컴퓨터를 통해 주님 영광 드러내소서. 아멘" 하면 그때부터 제 오른 쪽엔 예수님이 계시고 성모님도 함께 계시며  현존이 느껴지는데 컴퓨터로 좋지 않은 영상들을 도저히 볼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리고 또 생활 자체가 봉헌이 되니까 이 생활의 기도를 통해서 저는  
너무나 많은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또 율리아 자매님의 일생기를 통해서 진정 '내 탓이요'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중에 항상 '내 탓이요' 라고 하지만 정말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못 했는데 율리아 자매님을 통해서 '내 탓이요'를 어떻게 실천하는지 알 게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아내하고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서 말씀드릴게요.
 
그때 무슨 반찬을 만든다고 저는 계속 생활의 기도화로 봉헌하면서 마늘을 까고 있었고 제 아내는 감자 깎는 칼을 찾는데 그게 안 보이는 거예요.

제가 쓰고 제 자리에 안 놔두고 다른 데에다 놨거든요.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까 아내가 짜증을 팍 내는 거예요.
 
순간 저는 '아! 마귀가 우리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려고 하는가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 그럼 내가 한번 찾아볼게"  하면서 찾았는데  제가 쓰고 놔 둔 거기 그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있네" 하니까  "원래 있던 자리에 놔둬야지 뭐한다고 거기에 놔두노?" 하는 거예요. 아내말이 맞죠.
내가 딴 데에다가 놔둬서 못 찾았기 때문에 "내 탓이다. 미안하다" 하니까 다 풀어지고 우리 부부사이를 분열시키려는 마귀한테 승리 했습니다.

이렇게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7개월, 8개월 사이에 세속의 삶에서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해 주심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또 제가 술을 한번 마시면 날 셀 때까지 먹었거든요. 제 스스로 절제를 못 했습니다.
그런데 병을 통해서 술도 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으니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3가 63-245 정림파크 109호
김 지성(세례자 요한)

 


 “우당탕”하며 내려오신 성체로…

안녕하세요 경기도에서 순례 온 아녜스입니다.

저는 나주를 다닌 지 만 10년이 넘었지만 앞에 나서는 것이 싫어 증언을 않고 있다가  우리 노총각 아들을 위해 나주 성모님께 "성모님, 우리 아들 장가만 보내 주시면 잘 못하지만 용기 내서 앞에 나가 꼭 증언할게요" 하고 기도를 드렸는데 지난 10월에 제 청을 들어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나주성모님 집에 다니면서 은총을 너무나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1995년 6월 30일 철야 기도회에 왔을 때 경당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경당 안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서 경당 안으로 들어가니 성체가 내려오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나는지 막 하늘이 무너지고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군요. 경당 안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 내가 믿음이 모자라니까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날 불러주셨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고 그 뒤로 매일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고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정효남(아녜스)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889-3 (202호)


 

중국대륙에도 울려퍼지는 나주성모님의 은총 

저는 중국 하얼빈에서 순례 온 강 안나입니다.
중국에 있으면서 나주 성모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메시지 책을 보지 말라는 등 부정적인 평을 많이 하였지만 우리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보니까 너무너무 좋아서 몇몇 봉사회 회장님들이 나주에 한번 오시기를 원했습니다.

작년에 세분이 중국에 오셔서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피정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스카풀라하고 나주 성모님 기적수를 저희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그 때까지 우리는 루르드 기적수만 알고 있었기에 이 기적수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을 어느 신부님께서 임종하는 사람에게 사용하였더니 그 사람이 병이 나아서 지금은 식당에 일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이 기적수를 연변에서 할머니 두 분이  가져 가셨는데 한 분은 몇 년 동안 앓던 눈을 이 기적수로 씻으니 눈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할머니는 허리병으로 고생하셨는데 그 기적수를 마시고 허리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백 수산나 라는 기도회 회장님은 허리에 병이 있어서 큰 수술을 해야되었는데 수술 전 날 집에 가서 이 기적수를 마시고 발랐는데 허리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에서는 나주에 오고싶어하고 나주의 성모님 메시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에 대해서 한국에서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있지만 우리는 머지 않아서 모든 것이 증거되고 메시지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또 기도 드립니다.

중국의 지하교회는 무척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공산당이 반대를 해서 신부님이 사제복을 못 입고 수녀님들도 수도복을 못 입고 숨어서 일을 하고 있으며 먹는 것조차 곤란할 정도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하교회와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 좀 많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순정 (안나)
중국 하얼빈시
0451-84502111

 


나주 성모님 사진을 통해서도 암이 치유되다. 
 

대구에서 순례 온 배 가브리엘입니다.
저는 이전에 나주 성모님을 제일 박해했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이 자리에서 한번 증언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대구 영남대학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에 성모님 동산에서 찍은 이 사진을 천 장이나 뽑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나주에 순례 와서 율리아 자매님께 이 사진을 보여 드리니까 "아! 우리 성모님이시잖아" 하시면서 이 사진에 기도 해 주셨고 그 이 후로 치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암이 완전히 치유되셨고 영남대학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들한테 이사진을 보여주니 "성모님!" 하면서 막 손짓을 하는 등, 그들이 죽는 순간에 많은 위로를 받으며 임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낙준 가브리엘
대구시 대명 1동 781-1

 

이것은 하늘의 기적입니다! 

서울 중화동에서 순례 온 박 데레사 입니다.
저희 시어머님은 80세 노인이셨는데 성격이 아주 별나서 싸움만 하니까 집 안에서 아무도 받아주지도 않고 상대를 안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시골에 가신 길에 제초제를 사오셔서 홧김에 잡수셨어요.
새벽에 한 5시쯤이었는데 갑자기 누가 자꾸 저를 불러서 나가보니까 노인네가 그 제초제를 다 잡숫고 토하셨더라구요.

그래서 애 아빠를 막 깨워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속이 다 타버려서 가망이 없다" 고 하면서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으라" 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성수 통에 넣어 둔 나주성모님 기적수가 생각 났습니다.
그래서 이모한테 전화를 해서 빨리 그 물 좀 가져오라고 전화를 했지요.
의사는 물을 먹이면 환자가 금방 돌아가신다고 하였지만 이왕에 돌아가시는 거 기적수를 잡숫고나 돌아가시라고 의사 몰래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혀도 완전히 꼬부라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였지요.
그런데 그 물을 꿀꺽 꿀꺽 잘 삼키시는 거예요.
그리고 조금 있으니까 혀가 다 돌아와서  제대로 말을 하시는 겁니다.
의사는 "속이 다 타버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고 하면서 "이것은 하늘의 기적이지 이럴 수가 없다" 고 하였습니다.

물을 드시고 1시간이 지난 후 시어머니는 아주 멀쩡해지셨고 그 이튿날 퇴원하셨습니다.
퇴원 후에도 속도 편하다고 하시고 밥도 젊은 우리들보다도 더 잘 잡수시더니 그렇게 한 5년을 더 사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소에 머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머리가 하도 아파서 머리에 뭘 뒤집어 쓴 것 같고 뭐가 붙어 다니는 것 같았어요.
지난 6월 말에 성바오로 병원에가서 MRI를 찍으니까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하더군요.
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검사해보자고 해서 원자력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를 하니까 또 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의사는 "종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뇌에 구멍이 세 군데나 뻥뻥 뚫어져 있다"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병이 천명에 한 명 걸릴까 말까 한 병이며 그것도 암 종류인데 아주 무서운 암이라고 하였습니다.
골수 검사를 한 뒤 집에 왔는데 집에서는 죽을병에 걸렸다며 난리가 났고 저는 성당에 가서 성사를 보고 임종준비를 해야되겠다 싶어 청량리 성당엘 갔습니다.

저녁미사에 갔는데 도착하니 미사시간 5분 전 이더군요.
그래서 "신부님, 저기 성사 좀 주세요" 하고 신부님께 갔는데 갑자가 장미 향기가 진하게 확 풍겨왔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께 성사를 보고 나와서 자리에 앉으려 했을 때도 장미 향기가 진하게 확 풍겼습니다.
그 때 같이 간 동생도 순간 장미 향기가 확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또 성당입구에 지나가다가 요셉성인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성상 앞에서 한 차례 더 장미향기가 확 풍겨 나왔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는 나주 성모님 기적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한테 기적수가 좀 남았냐고 물어봤더니 남았다고 하길래 그 기적수를 마셨어요.

그런데 그 물을 마셨는데 갑자기 또 장미향기가 확 나는 거였습니다.
물에서 향기가 계속 나는데 그 물을 다 마시고 다시 채워놔도 장미향기가
계속 진하게 났습니다.

골수 검사 후 20일 지나서 다시 검사하러갔어요.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 벌벌 떨면서 갔지요. 그런데 병원 문 앞에서 장미향기가 또 한 번 진하게 풍겼습니다.

의사한테 갔더니 "축하합니다" 하면서 "이럴 수가 없다" "이건 하늘의 기적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제 머리 속이 아주 깨끗해진 것입니다.
주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박충섭 데레사
서울시 중랑구 중화 1동 148-73

 

 

“아멘”으로 응답할 때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온 김 프란치스카 입니다.
지난 달 기도회에 왔을 때 철야기도회에 진행하시는 분이 오늘 관절 아프신 분들과 목이 아프신 분들, 천식 끼가 있는 분들은 치유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제가 '아멘!' 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저는 여기 기도회에 오려면 전 날부터 다리에 파스를 붙이지 않으면 올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다리도 안 아프고 허리 아프던 것과 눈 침침하던 것도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목도 아팠던 것이 많이 가라앉았어요.

저는 올해 72세인데요 전에 농장을 했을 때 일을 많이 해서 허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물통도 잘 못 들었는데 지금은 물을 혼자서도 잘 들을 수 있고
40대부터 써오던 돋보기를 요즘은 안 쓰고도 책을 잘 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김봉재 프란치스카
인천시 항동 7가 27번지 라이프맨션 2동 1017호


 

첫토요일을 지키면서 받은 나주 성모님의 은총

저는 부천에서 온 윤 카타리나입니다.
첫토요일을 지키면서 받았던 은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제 어머니는 친정아버지를 무척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남들한테는 잘 하시는데 가정에서는 너무너무 무서운 분이셨고
살려고 너무너무 노력하셨지만 되는 일이 없었고 사업도 하시다가 몇 번 실패하시면서 술을 많이 드시게 되어 거의 알코올 중독까지 갔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동생은 정신 장애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는 모든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나주는 1996년부터 다녔고 1999년 5월 달에 난소암을 치유 받으면서 "어머니, 저를 살게 해주신다면 계속해서 첫 토요일을 지키고 가족들을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성모님께 약속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려고 많이 노력하셨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기도하면 할수록 또 기도회에 참석해서 은총을 받고 오면 꼭 집안이 뒤집어지곤 하였습니다.
좀 나아질 듯 하다가 다시 그런 상황이 오니까 어머니는 많이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였는데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놀라우신 방법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변화되기를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기도를 했는데도 변화가 안되시더니 저희 엄마가 먼저 나주 성모님 집에 오시게 되면서 엄마는 변화되셨고 얼마 전에는 아버지를 용서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용서하시게 되면서 두 분이 서로 화해하시고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께서도 차츰차츰 변화되셔서 최근에 저희 아버지는 가르멜 재속회에 입회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술도 끊으시고 아침저녁으로 정말 열심히 기도하십니다.
집에 가보면 아버지는 안방에서 성서를 펴고 열심히 기도하시고 엄마는 마루에서 묵주를 들고 성모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 저희 남동생은 성모님집에 다니면서 정신 장애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이 좋아졌습니다.

11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3개월 간 다리의 신경이 눌려 가지고 다리가 마비가 된 상태 이셨는데 오랜 세월 무거운 것을 들고 힘들게 일을 하시다 보니까 허리가 휘셨기에 밤에 주무시다가 갑자가 다리에 마비가 오면 방바닥을 구르실 정도로 통증이 심하셨다합니다.

또 시아버님은 갑자기 노환으로 쓰러지셔서 자리에서 못 일어나시고 대 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주에서 주님과 성모님께 청하여 지금은 두분 다 회복되셔서 시아버님은 차츰차츰 일어나 앉으시더니 지금은 유모차를 붙들고 서실 정도가 되었고 저희 친정아버지는 12월 5일에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수술 안 하셔도 되고 이제 병원에 안 나오셔도 된다고 하였답니다.

주님, 성모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윤정아(카타리나)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44 성산연립 1동 106

 

 

나주에서 되찾은 뜨거운 신앙과 회개의 은총

저는 대구에서 온 조 막달레나 입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 드리고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2002년부터 나주에 순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 남편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성당에서 나주에 가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한 3∼4개월 나주에 오지 않은 이후로  저희 남편은 성당에 나가지 않고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주에 다닐 때 남편이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던 게 생각이 나서 '아 이제는 나주에 다시 가야되겠구나' 하고 지난 10월 첫 토요일에 남편하고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자비의 시간에 제 옆에 앉아있던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해주면서 저는 남편한테 항상 상처만 받고 늘 피해만 입고 살아왔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때 제 머릿속에서 적대감이란 말이 떠오르며 내가 남편에게 적대감을 갖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주님께 죄송했고 '남편이 오히려 저에게 상처받은 일이 더 많았구나' 하고 눈물로써 뉘우치며 남편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고 내가 잘못 살았던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회개를 하고 집으로 돌아 온 후 남편은 가족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너무나 잘해주었고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디스크도 치유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회 때 율리아 자매님께서 좌골신경통에 고통을 받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제가 '아멘' 으로 응답하였는데 회개함으로써 치유 받았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경아 막달레나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219-4 대동빌라 3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