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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 사적 계시(私的啓示)"라는 용어의 모호성

"사적 계시"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으나, 그 용어가 주는 어감이 현실에 잘 부합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적 계시라면, 주님과 사도들의 시대에 완성된 공적 계시 이후에 주어진 초자연적 계시들을 통틀어서 일컫게 되는데, 그러나 공적 계시가 아닌 계시들을 일괄적으로 다루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그 계시들의 적용 범위에 따라서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째는, 어떤 개인이든지 일상 생활 안에서 하느님과의 교제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신자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므로, 매일의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영적인 교통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성화가 진보되고 하느님과의 일치가 밀접해지면서 더욱 강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특수한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드러내기도 하신다.  이는 어떤 특별한 영감(靈感)이나 깨달음일 수도 있고, 강력한 애덕이나 통회의 정일 수도 있고, 기적적인 치유, 기적적인 도움, 기적적인 향기,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안배하심일 수 있다.  하느님께서 개인들의 영적 진보와 보호를 위하여 특별히 개입하시는 것을 사적인 계시라고 부름은 매우 적합할 것이다.

둘 째는, 하느님께서 어떤 개인 또는 개인들을 도구로 선택하시어 다른 많은 이들, 심지어는 교회 전체와 인류 전체를 위한 메시지와 징표들을 주시는 경우이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의 경우가 그럴 것이고, 교회의 설립 이후에는 성인들을 통한 특별한 교훈, 그리고 특히 성모님의 개입하심이 그러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과달루페, 루르드, 파티마 등에서의 성모님의 방문을 "사적 계시"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의 중요성을 왜소화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트렌트 공의회에서 이미 "특수 계시 (또는 특별 계시), (speciali revelatione)"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으니 (DS 1566), 특히 많은 신자들 또는 전체 교회를 위하여 주시는 계시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교회 안에는 특수 계시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이를 경시하는 분들이 많으며, 그들은 그 계시들이 개인들을 위한 것이므로 심각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풍조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수 계시들은 교회 역사 전반에 걸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한 중대한 개입이시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개입하심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바른 길로 모아주시는 것이다.

즉, 특수 계시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지도하시기 위하여 수시로 쓰시는 중요한 도구들이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교계 제도와 은사의 여러 가지 은혜로써 교회를 가르치고 지도하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68)  여기에서 "은사의 여러 가지 은혜"라 함은 특수 계시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이끌어나가심에 있어서 교계 제도를 통한 성사들의 집행 및 진리를 가르치고 오류를 물리치는 교도권의 행사로써 신자들을 지도하시며, 아울러 특수 계시들을 통하여 교회의 구성원들의 신앙을 활성화하시고,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이를 바로 잡아주신다라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교계 제도를 통한 은혜만으로써 충분하며, 특수 계시는 필요없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이끌고 나가시는 주인으로써 특별히 말씀하시고 개입하심을 거부하는 것이 될 것이다.

◈ 모든 특수 계시들은 분별되어야 한다

계시란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우리의 자연적인 오관과 지성으로 판단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어떤 이가 메시지를 받았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하느님께서 직접 또는 성인이나 천사를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나의 비유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와서 임금님의 메시지라는 것을 전해주었다.  그러면,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임금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하는 확실한 징표 및 상황적인 여건들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있어야 하지만, 어린 아이도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구별할 줄 안다.

자연적인 차원의 일들이 그러할진대,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진리와 허위가 섞여있는 이 세상에서 초자연적이라고 하는 일들에 대한 분별은 어려운 일이지만, 필수적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으로는 약탈하는 이리들이다" (마테오 7:15). 사도 요한도 같은 뜻의 충고를 전해준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하느님에게서 온 영들인지 시험해 보시오" (요한 1서, 4:1).

◈ 특수 계시들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1.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부합되며 도움이 되는가?

인간들에게 관계되는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의 초점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신다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  그것이 모든 참된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담고 있는 주제이다.

그리고 그 주제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독생 성자의 육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구세주께서 이루신 구원 사업을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계속하고 계시며, 또 성모님께서 구세주의 필수적인 협력자로서 그분의 구원 사업을 돕고 계신다라는 것이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의 기본틀이다.  따라서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의 분별은 그러한 주제와 기본틀에 비추어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메시지나 환시나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한 주제와 기본틀과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한 주님의 구원 사업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보조적이며 활력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특수 계시를 주실 때에는 반드시 그러한 목적으로만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목적성없이 산만하거나, 독자적이거나, 인간들의 호기심이나 자극하는 현상들은 진실성이 결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내용이 좋아보이고 대단한 것 같드라도, 하느님께서 이미 시작하여 놓으신 인류 구원 사업의 기본틀과 정신에 맞지 않거나, 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신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완성이신 계시를 벗어나거나 그 계시를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계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한 종류의 "계시들"에 근거하여 세워진 그리스도교가 아닌 일부 종교들과 신흥 종파들이 그러한 경우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

2.  확실한 기적의 징표가 있는가?

여기에서 기적의 징표란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즉 우리의 오관과 지성으로 감지될 수 있는 현상인데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대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의 맥락에 부합되는 현상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성체의 외양이 살과 피의 외양으로 바뀌는 기적은 성체 성사의 진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므로 공적 계시의 내용에 부합된다.  만약 성체의 외양이 성체의 진실과는 관계없는 형태로 변했다면, 이는 참된 기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기적은 하느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연적인 세계에 개입하셨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주님께서도 당신의 공생활 중에 수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께서 주시는 가르침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당신께서 육화(肉化)되신 천주 성자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어떤 메시지나 환시에 기적의 징표가 따르지 않았다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중대한 메시지를 주실 때에는 기적의 징표도 함께 주시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며, 또 합당한 일이다.  

만약 초자연적이라고 하는 메시지에 확실한 징표가 따르지 않았다면, 이는 그 메시지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는 하느님의 외적(外的)인 인증(認證)이 수반되어 있지 않음을 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활동할 때의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방에 복음을 전하였는데,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어 표징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 말씀을 굳건히 뒷받침하였다" (마르꼬 16:20).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세계와 인간의 자연적인 세계가 따로 떨어진 상태로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초자연적인 세계의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세계에 직접 개입하심으로써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들은 하느님께서 역사하심과 특히 육화되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심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실, 천주 성자께서 인간성을 취하시어 이 물리적인 세계에 들어와 계시는 자체가 가장 놀랍고 위대한 기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세계 안에서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를 통하여 실제로 현존하시면서, 자연적인 세계에 속한 인간들에게 진리의 빛과 은총을 주셔서 그들을 초자연화, 즉 성화하시는 것이 또한 위대한 기적이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는 시복과 시성을 위한 조사를 할 때 기적에 대한 조사도 하는 것이며, 메시지들의 신빙성을 분별할 때에도 기적들에 대한 조사는 큰 중요성을 띠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들에 확실하고도 공적 계시의 내용에 부합되는 징표들이 다수 수반되어 있음을 볼 때에 이것이 우연의 일인 것처럼 지나쳐 보아서는 안되며, 하느님께서 그 메시지들의 지극히 큰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계심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교회에 의한 공적인 분별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신자들을 진리로써 가르치고 은총으로써 양육할 사명을 받아있다.  따라서 특수 계시의 분야에서도 교회의 지도는 필수적이다.  신자들은 교회의 공식 가르치심 및 특수 계시의 분별에 있어서도 교회의 지도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즉 교회의 교도권은 존중되고 순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도권에 대한 순명을 강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련 사항들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첫 째, 교도권은 하느님께서 주신 진리를 가르치고 수호하기 위한 봉사의 기능이며, 진리를 제정하거나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즉, 하느님의 진리가 교도권 위에 있으며, 교도권이 진리 위에 있지 않다라는 뜻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6 참조).  

따라서, 만약 어느 지역 교회의 사목자께서 어떤 교리를 잘못 제시하셨다면, 신자들은 사목자께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변함이 없이 질문을 드리고 만일 오류가 확실하다면 이를 시정해주실 것을 간청드릴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구미의 주교님들 중 일부는 여성 사제직을 찬성하고 계신다.  그러면, 그 교구들의 신자들은 주교님을 따르기 위하여 여성 사제직을 함께 찬성해야 하는가?  여성 사제직은 교회에서 확정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므로 신자들은 이를 찬성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에서 여성 사제직을 금하는 것이 신덕 도리는 아니라는 핑계를 대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이 국가의 헌법에 없으므로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더구나 교황 성하께서 "확정적으로 (definitively)" 금하신 것을 계속 논하려는 것은 순명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둘 째, 교회에서 공적인 계시, 즉 교리들을 가르칠 때와 특수 계시를 인정해주실 때와는 차이점이 있다.

공적인 계시에 대한 가르침은 확정적이다.  신자들은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신앙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특수 계시의 경우는 다르다.  교회에서 어떤 특수 계시를 공적으로 인정하실 때에는 신앙의 순명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즉, 교회에서 루르드나 파티마의 일들을 인정해주실 때, "이는 확실한 것이니 신자들은 믿어야 한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조사해보니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도 없고 기적들도 신빙성이 있으니 진실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간주한다,"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신자들이 받아들여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광주 대교구의 나주 관련 공지문에서 나주의 일들이 참으로 초자연적이며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해줄 수 없다라는 식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은 특수 계시의 분별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교회에서는 특수 계시들이 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확정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를 분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개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내적 경험을 통하여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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