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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에서 온 편지들

나주관련 언론 기사들

PD 수첩과 나주 진실

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로만 다닐랙 주교님의 편지  -  (2001년 11월 16일)

요셉 호믹 신부님의 청원서  -  (1998년 3월 1일)

에드워드 오코너 신부님의 청원서  -  (1998년 4월 19일)

로져 고데트 신부님의 편지  -  (1998년 1월)

엘싱거 신부님과의 인터뷰  -  (1998년 3월 12일)

루이 보스만스 신부님의 글  -  (1998년 7월)

가드윈 신부님의 편지  -  (1999년 6월 20일)

나주 공지문에 대한 논평  -  앙드레 가스뗄라  (1998년 5월)

요셉 리찌 씨의 편지  -  (1999년 8월 11일)

진 하러 부인의 청원서  -  (1999년 6월 1일)
 

로만 다닐랙 주교님의 편지

 

2001년 11월 16일
 

친애하는 세실리아 폴 자매님께,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주의 율리아 자매님에게 주시는 메시지와 발현들에 관련하여 전개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신 자매님의 친절한 편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7개월 동안 로마를 떠나 있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캐나다에 가 있었으며, 지난 주일에야 영원한 도시, 즉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자매님의 우려는 가톨릭교회 안의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바입니다. 먼저 한국 내에 계시는 분들과, 동부 아시아로부터 북남미 전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서 많은 이들이 같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보적이며 자유주의적인 한국의 젊은 신부들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의 방침이 결정되도록 그들의 주교님들을 떠밀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율리아 자매님이나 발현을 보는 다른 이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가톨릭교회 전체에 퍼져 있는 위기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톨릭 신앙 자체와 크리스챤 삶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히 가정 내의 삶과 자녀 교육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위기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중에 시작되었으며 사회의 모든 계층들을 감염시켰습니다.

이 문제는 특히 선진국들, 즉 서유럽과 북남이 및 동부 아시아에서 심각합니다. 그리고 경악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묵시록에 예언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윤리적 및 신앙적인 타락으로 인해 초래되는 많은 자연의 재앙들이 묵시록에 예언된 대로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때 아직 신앙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이들까지도 신앙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금 우리 주님께서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9월 11일의 재앙은 하나의 엄청난 징표입니다. 주님께서 여러 메시지들을 통하여 경고하셨듯이 그 재앙은 낙태 및 생명을 거스리는 다른 많은 죄악들로 인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는 대징벌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건물들을 파괴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며, 죽음의 신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살인하지 말아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 성서와 인류 역사로부터 배워 알 수 있듯이 그분께서는 인간들의 삶 안에 현존하시며, 심지어는 인간들의 어리석음까지도 이용하셔서 인간들에게 채찍을 가하시고 그들을 정화하십니다.

교황성하와 바티칸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전 세계적인 상황을 매우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교황성하께서는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여 일어난 기적에 대하여 알고 계시며 몸소 그 기적에 대한 증인이 되셨습니다. 첫 몇 년 동안에는 그 성체 기적에 대하여 바티칸에서와 교황성하께서는 침묵하셨더랬습니다.

Mary's Touch에서 우리에게 알려 준 바와 같이 교황성하께서는 2001년 3월 ad limina 방문차 로마에 오신 한국 주교님들께 나주 문제를 직접 거론하셨습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교황성하와 라칭어 추기경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더욱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계시며, 이는 그분들께서 하늘로부터의 소리로서의 이 일이 지니는 중요성을 깨닫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광주의 새 대주교님께서는 교구 내의 신부들의 압력에 계속 따르고 계십니다. 이제 바티칸에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실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지난 몇 개월 동안 나주의 기적들이 로마와 이태리 전역, 그리고, 멕시코와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알려지고 있으며 공개적으로 갈채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주교님들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활발하고도 점증하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의 소리를 계속해서 감추거나 사실이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교황청에서 개입해 주시기를 청원하는 운동을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황청에서는 현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계시며, 이제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은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주어진 이 기적들과 메시지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교황성하께서 그 기적들을 드디어 시인하셨으므로, 여러분들은 이제 더욱 용감하게 이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 하늘에서 개입하고 계심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며, 반대하는 신부님들이나 주교님들 때문에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르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주에 대한 진실 및 그곳에서의 기적들과 메시지들에 충실하시는 자매님께 충심으로부터의 감사를 드립니다.

2001. 11. 16

+로만 대닐랙 주교

S.E.R. Roman Danylak
VESCOVO TITOLARE DI NISSA
PARROCCHIA CATTOLICA UCRAINA
DEL SS. SERGIO E BACCO E DELLA
ROMA, ITALIA

Mary's Touch By Mail에서 번역

 

요셉 호믹 신부님의 청원서

 

1998넌 3월 1일
요셉 라칭거 추기경님
교황청 신앙 교리 성성
바티칸 시

존경하올 추기경님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와 추기경님께서 전통적이고 완전한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바치시는 모든 노력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현대와 같은 혼란과 불일치, 그리고 심지어 배교의 시대에 교황 성하와 추기경님께서 맡으신 사명은 무거운 십자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자신과 저희 수도원에 있는 모든 수도자들은 교황 성하와 추기경님을 위하여 계속하여 기도드릴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다음에 쓰는 내용은 저희 수도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고 저의 이름으로 드리는 글입니다.)

최근에 한국의 광주 대교구의 윤 빅또리노 대주교님께서는 나주의 윤 율리아 자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고 또 이와 연관하여 일어난 여러 가지 기적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도 그 공지문과 그에 대한 논평문("나주 성모님 관련 공지문을 읽고서")을 받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도 이 두 문서들을 받았으며, 저는 그 논평문의 내용에 동의합니다.

존경하올 추기경님, 저는 여러 해 동안 나주에서의 일들에 대한 출판물들을 고찰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교회 안의 신비로운 현상들은 그 현상들마다에 언어상, 진행방식상 독특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이 매우 비범(非凡)한 것들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섭리에 의하여 교회 역사 상 전반에 걸쳐서 기이하고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란치아노와 상타렘에서의 성체 기적들, 성 프란치스꼬와 비오 신부님의 오상, 그리고 돈 보스꼬 성인과 벨라데따 성녀, 그리고 파띠마에서의 목동들이 보았던 환시 및 예언 등입니다.

현대에 와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보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보도들에 대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분별하고저 하는 교회의 원의에 동의하며, 그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건전한 기준들을 적용하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지난 수 십년간에 있었던 많은 메시지들과 발현들과 내적 대화 형식의 메시지 등에 대한 자료들을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의 영신 생활을 위해서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극소수의 것들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주의 윤 율리아의 경우가 바로 제가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고 진실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극소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그 메시지들 및 관련된 현상들을 분석 평가한 결과 때문만이 아니라, 저 자신이 나주에서의 메시지들과 징표들로 인하여 얻게된 영적인 열매들 그리고 저의 마음 속에서 참으로 성모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부르심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겸손된 자세로서 그러나 동시에 긴급함을 느끼면서, 나주의 조사가 지방 교구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재개되게 해주실 것을 추기경님께 청원합니다. 이번의 공지문에 대한 논평문에서 지적된 사항들은 심각한 성질의 것이며 이 사항들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추기경님께서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시듯이, 오늘날 성교회 안의 여러 부분들에서 대단히 슬픈 상황이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목자들까지 성교회의 정신과는 다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이 돌보는 양떼들인 신자들이 성교회 안의 풍요로운 전통적인 신앙과 신심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러한 판단을 윤 대주교님의 믿음이나 선의에 대하여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윤 율리아 자매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주님의 어린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교황님께 충성스러우며,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이 깊은 이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큰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비판자들과 불순명하는 자들 중에서는 이러한 신심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현대화라는 미명 하에 세속의 일들과 타협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거부하고 있는 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신심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충성스런 이들의 사기와 신심이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교회의 손에 의해서 좌절되고 방해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율리아 자매가 받아온 메시지와 그의 증언들을 통해서 저에게 많은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 메시지들이 최대한 시급히 전파되고 실천되어야 할 이 시점에서 제가 율리아 자매를 변호하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저의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안에서 교황님과 추기경님께 존경과 충성을 바치는
 

요셉 호“H 신부 올림
성 변화 수도원 (우크라이나 가톨릭)
Redwood Valley, California 95470
U. S. A
 


에드워드 오코너 신부님의 청원서 

 

1998년 4월 19일
교황청 신앙 교리 성성 장관
요셉 라칭거 추기경님 귀하

존경하는 추기경님 귀하,

한국 광주의 윤 대주교님께서 나주 조사 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의거하여 발표하신 공지문을 읽고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공지문에는 심각한 신학적인 결함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귀 성성에서 나주의 일들을 새로이 조사해주시기를 청원하는 분들과 함께 이를 청원드립니다.

Mary's Touch By Mail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발표한 공지문에 대한 고찰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추기경님께서도 그 고찰문을 받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고찰문의 내용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다음의 두 가지 점만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1.  조사 위원회에 의하면, 성체가 위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것과 성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살과 피로 변했다고 하는 것은 사제만이 성체 축성을 할 수 있으며, 축성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외형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하는 교회의 교의에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모순되는 주장입니다. 이 교의들은 성체 성사에서 정상의 경우에 어떻게 되는가를 선언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개입하심을 제한하기 위하여 선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사 위원들은 란치아노, 상타렘, 오르피에토, 기타 여러 곳들에서 일어났고 또 교회가 받아들인 많은 성체 기적들에 대하여 분명히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위원회에서는 또 윤 율리아 씨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참으로 초자연적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어쩌면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역사 상에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을 다 초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역사 상에 일어난 기적들과 나주에서의 기적들이 참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을 저로서는 의심할 수 없습니다. 위원회의 선언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위원회에서 "초능력"이라고 말한 이유는 마귀에 의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교회 안에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처럼 경박한 시도를 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암시를 할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단정을 하고 그에 대한 증거를 대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추기경 님을 존경하는

에드워드 디 오코너 신부(신학 교수)
University of Notre Dame
Notre Dame, In  46556,  U. S. A.

  


로져 고데트 신부님의 편지

 

가톨릭 교회 안의 주교님들의 교도권 행사에 관한 문헌 두 가지를 동봉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교도권에 의거한 가르침을 위해서는 교황 성하 및 다른 주교들과의 절대적인 일치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광주 대주교님께서 "교도권에 의거하여 유권적인 해석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심히 염려되는 바는 주교나 신부만이 빵과 포도주를 유효하게 축성할 수 있다라고 윤 대주교님이 추정하시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나주의 성모님 집에서 십자 고상과 성모님 상으로부터 내려온 성체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지도 신부님께서는 사적 계시와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관하여서는 항상 그 열매를 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선물로부터 결실이 없을 때에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될 것입니다.

저는 1996년 12월 8일 무염시태 축일을 기념하는 나주에서의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지난 12년간 나주에서 율리아 자매를 통하여 보여주셨던과 같은 어떤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경험하고 목격했습니다. 즉, "성령의 은혜가 기도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서 넘쳐 흘렀으며, 주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행동하고 말하는 그들의 마음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교회 역사 전반을 걸쳐 볼 때에, 많은 신비적인 경험을 한 이들이 기록하기를 이 분들의 거룩한 생활 안에서 과연 어떠한 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참으로 이해할 의향이 있고 또 이해할 능력이 있는 영혼 즉 사제를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시련을 거쳐나갔습니다. 성녀 쟌 다크는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대 데레사는 영적 지도자들이 성녀와는 너무나 생각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에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끼쳐주었습니다.

끝으로, 윤 대주교님께서 율리아 자매가 받은 사적 계시의 진실성에 관하여 발표하신 선언서를 보십시오. 진정한 사적 계시들은 교회의 인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적 계시는 그 자체의 신빙성 위에 서있습니다. 나주에서 지난 12년간 일어났던 현상들은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라고 말할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비록 그 놀라운 사실들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거기로부터 유래되는 훌륭한 열매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율리아 씨를 가짜이며, 남의 글을 표절, 인용하는 사람이며, 도둑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영적인 목자이셔야 될 분으로부터 상당히 심한 말씀이 나온 셈입니다. 파티마와 루르드의 메시지들을 고찰해 보시고, 거기에 내포된 인간적인 제한성을 보십시오. 하나의 중요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같은 말이 메시지 안에서 거듭 반복되고 있는 것도 보십시오. 그리고 성서를 보시고 그 안에 존재하는 제한성들을 보십시오. 성서를 썼던 저자들, 예언자들이 그들이 듣고 보았던 바를 그 당시의 제약성들과 풍 속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적인 유한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성서를 기록했던 사실을 보십시오.

1985년 이래로 기적들을 목격했던 수백 수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향유를 흘릴 수 있도록 조작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는지?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피를 흘리도록 조작을 할 수 있는 그런 지상 최고의 천재를 아는 분이 있는지? 여러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이 이러한 기적들을 보고 경이에 가득찼었으며 선서 하에 증언을 쓰셨습니다.

지금은 율리아씨를 위하여, 나주를 위하여, 그리고 나주의 성모님을 위하여 대단히 슬픈 시기입니다. 저에게는 대주교님께서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체 기적들과 성모님의 발현은 교회 역사 전반을 걸쳐서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율리아 씨와 같은 친절하고 겸손한 여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 기적들이 시작될때부터 율리아 자매는 자신의 전 생애와 자유 의지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완전히 바쳐드렸으며 또 이를 위하여 영적 지도자의 뜻을 따라왔습니다. 또 지금까지 대주교님의 모든 지시에 순명해왔습니다.

나주에 관한 이 슬픈 소식을 접하면서, 저는 또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나주 조사위원회에서 이 발표문을 썼으며, 대주교님께서는 단지 서명만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이 발표문 안에는 과거에 윤 대주교님께서 나주에 관하여 긍정적인 말씀을 하셨던 사실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한 교황 대사님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오신 고명하신 고위 성직자들과 신부님들의 말씀들은 왜 언급이 되어있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신학자도 아니며 단지 하느님의 일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또 이에 대하여 설교하는 단순한 신앙의 신부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납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증거를 대어도 소용이 없으며, 자신들의 생활 속에 하느님의 손길이 와닿으시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믿음으로서 족합니다." 슬픈 사실은 대주교님의 조사 위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주장들이 단지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고자 하는 바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세기에 성체에 대한 모독이 너무나 많이 자행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얼마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 성사 안에서의 예수님의 실존을 불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은 너무나 혼동 속에 빠져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현대 주의자들 즉 세속 주의자들 때문에 또 한 편으로는 마치 성령의 은총을 자기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듯이 날뛰고 있는 성령 쇄신 운동자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사들을 변조하여 모독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서를 남용하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현실입니까?

성체 성사에 대한 모독이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는지 저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지경입니다. 제가 나주의 율리아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천상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대한 신심 뿐 아니라, 성체 성사 안에 참으로 완전하게 계시는 예수님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축성 후의 빵과 포도주는 빵과 포도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참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입니다. 율리아 씨는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지도 신부님과 소수의 협력자들과 함께 홀로 서있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로써 전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손을 잡고서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녀를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나주에서 율리아 자매와 두 번의 철야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율리아 자매를 세심히 관찰했으며, 그 분의 착하고 겸손함에 대단히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돌보아주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철야 기도 중 증언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치유의 순진한 증언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나주에 순례온 이들이 사제에 대하여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신부로서 살아온 기간 전부에 걸쳐서 나주에서 만났던 단순하고도 겸손한 순례자들에게서만큼의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사제인 나를 저버린다고 할지라도, 나주에서의 철야 기도회에 참석했던 하느님의 백성들과의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하여 저는 사제로서의 삶을 끝없이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의 이 짧은 증언이 모쪼록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구원방주의 여왕이시며 우리의 가장 복되신 어머니를 공경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로져 비 고데트 신부
St. Thomas Apostolic Catholic Church
523 S. Merrill St. Fortville,
Indiana 46040  U. S. A.

  


엘싱거 신부님과의 인터뷰

 

(이 글은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1998년 6월호부터 8월호까지 연재된 엘싱거 신부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엘싱거 신부(Francis Elsinger)는 1961년부터 메리놀회에서 활동하시다가 1989년부터는 홍콩의 Our Lady of Lourdes Chapel(루르드의 성모님 성당)에서 사목하시고 계시며 '가톨릭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는 1998년 3월 12일에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적계시를 국내에서는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한국 가톨릭이 그에 대한 처리에 소홀하고 심지어는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주가 여러 성직자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가톨릭계 내부에서도 나주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활발한 논의를 거쳐 사적계시의 정의와 평가를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주를 방문한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게재해 나가기로 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반대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오류가 있으면 자신의 주장도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연유로 가톨릭다이제스트는 게재하는 글과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의 의견도 애타게 기다린다. 자유로우면서도 건전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이 연재가 우리 가톨릭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빈다.)

 
신부가 되어야겠다고 언제부터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1934년 5월 13일에 미국 사우쓰 다코타 주에서 났는데, 그 해에 대단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 곳의 경제난은 요사이 한국에서의 경제 사정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 내내 수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부모님께서는 자동차는 있었는데 휘발유를 살 돈이 없으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속한 본당은 성 마리아 성당이었습니다.  저는 본당 소속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학교 이름도 성 마리아 학교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고저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아들들 중에, 단 하나라도 신부가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묵주 신공을 바쳤습니다. 제 생애 처음부터 성모님께서는 저를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래서 17세때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성 루이 드 몽포르께서 지으신 봉헌문대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해드렸습니다.


아버님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어린애일 때 늘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께서 먹여주시는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 일로부터 은퇴하신후 매일 15단의 묵주 신공을 바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대단히 행복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양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철저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농사일은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는 경사진 땅에다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와도 물이 다 흘러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쯤, 아버지께서는 언덕에 수평으로 밭을 만들었고 밭뚝을 만들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어리석은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읍내에 잘 나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농부들이 아버님을 놀리거나 듣기 싫은 말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 옳다고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정부에서 토양 보존 정책을 시작했고, 아버지께서 하셨던 것처럼 밭을 만들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제가 성모님께 대하여 이야기하고 저의 경험과 신념에 대하여 그리고 나주에서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의 일을 기억하면서 저의 양심에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이것이 제가 확신하는 것이고 저의 경험에 따른 결정입니다.  사람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지만, 그러나 동의하지 않으면, 그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합니다.  증거를 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반대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내성적입니다.  천성적으로 저는 대단히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에 대해 제가 확신할 수 있을 때에는 저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갖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요?

제가 진심으로 회개한 때는 1971년 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내용대로 살라고 하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곧 성체 성사가 저의 기도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최소한 두 시간씩 성체 앞에서 기도드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제가 예수님께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은 없었습니다.  1969년부터 저는 묵주를 손에 쥐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3년에 우연히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콜비 신부님의 책 한권을 발견하고 매일 그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제가 성모님의 현존에 대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 성모님과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사랑하는 아들들은 묵주신공을 바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묵주 신공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나요?

성체 앞에서 묵주 신공을 바치기 시작한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일이었고 많은 결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배운 신학 지식들이 오히려 저의 신앙을 깊어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이 오히려 신앙을 가로막았습니다.  신앙보다는 오히려 따지며 생각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부들이 그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단순한 신앙,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우리 자신의 개념들을 더 중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신앙을 다시 자리잡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십니다.  그리되면, 하느님께 대하여 생각하는 우리의 지성 활동이 신앙에 봉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의 개념들이 우리의 신앙을 지도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사고를 지도해 나가야 합니다.


나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1994년 크리스마스 성탄절 편지에서 마리아 사제운동 한국 책임자인 요셉 슬레이비 신부님께서 당시 주한 교황 대사이셨던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나주에서 경험하신 바에 대하여 쓰셨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지금까지 나는 나주에 대해 아주 피상적인 소식들만 들어왔었다.  나주에 대하여 정말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슬레이비 신부님은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성체 기적을 경험하신 데 대하여 쓰셨다.  나주에서의 일들이 성체 성사에로 향하고 있으니, 참된 것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성모님의 발현들은 항상 사람들을 성체 성사에로 이끌어서 예수님의 현존을 믿게끔 해줍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흠숭하게 해주며, 거룩한 희생 제사인 미사에 참된 신앙과 신심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저는 나주에서의 일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홍콩의 신자들이 1995년 6월에 나주를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이 신자들이 매주 토요일에 성체 조배를 위하여 제가 관리하는 소성당에 오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1995년 6월 말 나주에서 일곱 개의 성체가 내려오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한 율리아의 입속에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홍콩에 돌아와서 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영적 지도 신부였고, 그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모범적인 신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헛것을 보고 온 것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주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요?

1995년 11월 24일 나주에 도착하여 맨먼저 경당에 들어갔는데,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히 믿지를 않고, 아마도 에어콘을 통해서 향수 냄새가 들어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당에는 에어콘 시설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난방이 대개 온돌 방식으로 되어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에어콘을 통해서 향기가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모송을 외울 때 저는 강력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성모송을 바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

그래서 저는 다른 신자 한 분에게 묵주 신공을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일생 동안 그렇게 감동적인 묵주 신공을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수요일에 저는 병이 났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한국의 사과 두 개를 깎지 않고 먹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씻어서 먹기는 했지만, 살충제가 껍질에 남아있었나 봅니다.  수요일 내내 저는 심하게 아팠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목요일에도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목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면서도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기도회 도중 밖으로 나와야 될 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회에 들어가기 전에 성모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님 상을 통하여 우시기까지 하셨는데, 제가 기도회에 잘 참석할 수 있도록 제 병을 고쳐주십시오, 라고.  그리고는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성모상을 모시고 있고 메시지를 받고 있다는 윤 율리아씨는 만나보셨는지요?

기도회가 한참 진행중일 때 율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성모님의 향기가 대단히 진하게 풍겨왔습니다.  저는 또 다시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 향기가 지금 열린 문을 통하여 밖으로부터 들어오나보다.  율리아가 향수를 잔뜩 뿌리고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기도회가 30분 가량 진행된 후에 복음서를 읽을 순서가 되었습니다.  사회자는 저와 또 한 분의 신부님께 올라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가서 율리아를 만날 수 있었고 저는 의식적으로 율리아의 손을 잡고 친구를 했습니다.  저는 율리아에게서 향수 냄새가 나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향기가 율리아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주에서의 체험이 신앙생활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상이 저의 나주에 대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분별하기 위하여 직접 가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도하고 있던 여러 신자들이 나주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직접 가서 알아봐야만 했습니다.  거기 가서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장소에 가서 기도를 해봄으로써 그 곳의 일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20여년간 본당 사목일 외에도 신자들의 영적 지도, 피정 지도일을 해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나주에 대하여 분별한 결과는 모두 긍정적입니다.  그곳에서의 영적인 결실들 또한 모두 긍정적입니다.

제가 사제가 된지는 37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100명 이상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사제직과 수도 생활을 떠났고, 그 중에는 교회를 떠나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지금 교회 안에 떠돌고 있는 거짓 가르침들 때문입니다.  저의 사제 생활 37년을 통하여 저는 나주라든가 다른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이유로 사제직이나 수도직을 떠난 이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나주에 와서 기도했기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 경우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오류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 경우는 많이 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교회 안에 널리 퍼져가고 있는 오류의 가르침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활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지도하고 있던 많은 신자들이 나주를 다녀오고 있어서 그곳의 일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별해야만 했기 때문에 직접 나주를 방문했다고 하셨습니다. 나주에서의 첫경험외에 신부님께서 체험하셨고 분별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사실들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던 다음날 금요일 우리는 기적수 샘이 있는 산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싱가폴과 말레이지아에서 온 순례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오신 예수회 신부님과 함께 갔습니다.  율리아도 왔습니다.  성모님의 샘물터가 있는 그 산 위에서 우리는 율리아와 함께 미사를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날씨는 구름이 끼어있었습니다.  성체를 분배할 때의 시간은 약 오후 4시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쏟아져 내려왔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있던 장소에서는 나무 때문에 해가 바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분배한 성체를 받아 든 그들은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태양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성체 분배를 마치고 나서 그들이 서있는 곳으로 가서 태양을 보았습니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저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태양은 제가 늘 밤에 보던 성체와 같이 보였습니다.  저는 저의 소성당에서 밤에는 촛불이나 등불을 켜서 성체 뒤에 놓아두곤 합니다.  그래서 그 빛이 성체를 통과하여 성체가 밝게 보이게 합니다.  그날 본 태양은 꼭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체처럼 보이는 태양에는 어떤 가림막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날 약 60명 되는 우리들은 모두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태양의 현상을 보는 이 특별한 경험 후에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렸습니다. 더군다나 미사 중에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서 말입니다.  저는 모두들 미사의 파견 강복을 받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아직 신자가 아닌 중국 여자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냥 휴가 삼아 친구들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그 부인은 사진찍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미사 후에도 그 부인은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니 몇 장에는 태양이 산을 통과하여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태양의 둥근 모양이 산 중턱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경당에서 찍은 사진들에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태양이 경당의 지붕에 얹혀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진들이 특별한 징표를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아가 주는 징표가 아니라,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징표입니다.  저는 그 순례 여행 후에 홍콩 교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교님께 저는 더욱 많은 신자들이 성체 조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홍콩에서는 그 때까지 항구적인 성체 조배 신심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징표들은 율리아가 있는 곳에서 일어났으나, 저의 경우에는 율리아가 가까이 있지 않을 때도 많은 징표들을 경험했고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한 일들이 성모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확신이 섭니다. 수많은 이들이 율리아가 옆에 없는 데도 징표들과 은혜들을 경험했습니다.  율리아가 천 마일밖에 있을 때에도 성모님 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바칠 때 향기를 맡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성모님의 일입니다.  율리아의 일이 아닙니다. 율리아도 이 일의 한 중요한 임무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광주 대주교님을 만나 성체기적을 전하려 하신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경위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1997년 8월 27일의 성체 기적 때 저도 나주에 있었습니다. 8월에 나주에 갔던 이유는  '6월 12일에 제주교구 김 창렬 주교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위에서 내려왔다는 성체는 성체가 아니고 그냥 면병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성체 앞에서 기도함으로써 분별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어떤 일의 열매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직접 관련된 이들과 얘기하고 직접 관련된 장소에서 기도를 해보아야 합니다.

8월 27일에는 파 신부님께서 나주에 도착하셨습니다.  파 신부님은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고 계셨으며, 그 날의 일정에 대해 저에게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당으로 가서 성체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직 나주의 경당 안에서는 성체를 감실에 모시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으므로, 성당에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서 약 두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경당에 돌아왔을 때, 파 신부님께서는 마루에 앉아서 성체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성체가 위에서 내려오신지 약 10분 후에 제가 도착한 것입니다.  저는 사실 성당에서 '6월에 내려오신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6월에 내려오신 성체'를 대주교관에서 모셔갔기 때문에 광주의 대주교님께 찾아가서 그 성체 앞에서 기도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청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파 신부님께서 '6월에 내려오신 성체'와 꼭같은 성체를 들고 계신 것입니다.  성체의 크기나 문양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당에서 두 시간 동안 성체 앞에서 기도드린 데 대하여 너무나 놀라운 응답을 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난 20여년 동안 매일 하루 두세 시간씩 성체 앞에서 기도드려 왔습니다.  그 날 나주 성당에 가서 기도드린 것도 여늬날과 같은 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내려오신 성체가 참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이심을 마음 속에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에 제가 광주 대주교님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주교님께서는 그것을 믿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셔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주교님은 그것이 성체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으며, 저의 증언을 들으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기도와 많은 체험을 통해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으십니까?

그 질문에 대하여 뭐라고 확실한 대답을 드리기가 어렵군요.  아마도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성녀께서 당신이 경험하신 바에 대하여 증언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혹시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거짓말을 한 번 하기보다는 천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저의 경우도 제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바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성체기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가톨릭 신자는 진리 전체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진리의 일부분을 이용하여 진리의 다른 부분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도 계시 진리 전반에 대하여 열려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 내에서 오직 유효하게 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체 축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이용하여 예수님께서도 성체 축성을 하실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사제가 성체 축성 때 외우는 기도문과 그 기도의 힘은 예수님 자신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라는 대리자를 통하여 그러나 당신의 힘으로써 빵과 포도주가 당신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축성 기도문은 사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직접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1995년 9월 나주 부근의 산 위에서 율리아가 모신 성체가 몸과 피의 모습으로 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저는 1996년 10월에 나주 성당에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성체 기적들의 사진을 제가 처음 본 것은 그보다 몇년 전이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았을 때 저는 놀라면서도 좀 역하다는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고.

그런데 성체 기적을 실제로 보았을 때 사진에서 본 것과 똑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 요한의 복음서에 있는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먹고 마실 나의 살과 피를 주겠노라.”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목격한 성체 기적들이 사실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볼 수 없지만,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성으로 이미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해져 있었습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나 있었고 이 세상의 모든 미사 때마다 그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주에서 일어난 현상은 단지 그 기적의 현실을 외적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기가 왜 그리 어렵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의 살을 보십시오. 그 살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제가 조금 전에 여기서 식사를 끝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음식이 소화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 소화 작용은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며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소화 과정을 통하지 않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왜 그렇게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까? 주님께서는 소화 기관을 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시어 영화롭게 되신 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화를 입으신 몸을 소화 과정을 통하지 않으시고도 빵과 포도주의 외양으로부터 살과 피의 외양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으십니다. 저는 이것이 그렇게 믿기 힘든 신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시는 것은 음식이 저의 몸 속에 들어가서 소화 작용을 통하여 저의 살과 피로 되는 것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살과 피인 성체의 외양을 빵과 포도주의 외양으로부터 우리가 볼 수 있는 살과 피의 외양으로 바꾸시는 것도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체 성사의 현실을 믿지 않고 온갖 이설(異說)들을 지어서 퍼뜨리고 있으니, 그래서 성체 성사의 현실을 밖으로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체 성사의 현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현실을 믿지 못하고 온갖 희한한 설들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의 생활 안에서의 성모님의 현존과 또 제가 성모님께 마음을 열어놓는 것은 제가 주님과 성령의 움직이심에 마음을 열어놓는데 도움이 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성모님의 임무는 성령을 통하여 완수됩니다.  성령과 성모님의 임무는 마치 손과 장갑과 같은 밀접한 관계입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모님께 대하여 그리고 성모님의 사랑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하심에 훨씬 더 민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저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교황 성하와 교회의 가르치심에 더욱 충실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 실존하시는 예수님과 미사의 희생 제사의 지극한 가치에 대하여 더욱 깊이 ƒ틈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묵주 신공의 가치와 크나큰 힘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성모님을 바로 잘 모신다면, 우리는 성령께 훨씬 더 열려있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훨씬 더 건강한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연 세계에 있어서도 어머니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바로 성장하는 데에 많은 애로를 겪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님을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법 1186조라고 기억합니다만, 하느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정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나주에서의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한 근거이며 전 세계적으로 성모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들의 중요성의 근거입니다.  인간 역사와 교회 역사 안의 이 시점에서 하느님께서는 가톨릭 신자뿐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이들이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그들의 영적인 어머니가 되심을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영적인 차원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와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면, 우리의 하느님과의 관계도 건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건전하지 못하게 되고, 인간들 사이의 참된 사랑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성모님께서는 세계 각처에서 그다지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하여 이루고저 하시는 바와 관련하여 현재 나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드리고 있는 기도가 중국 선교에 이미 크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기도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하고 계시는데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를 통하여 어떤 응답을 얻었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는 자아 포기의 기도라고 불리웁니다.  챨스 드쀼엘의 기도, 즉 성부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는 제가 약 10년간 바치던 주요 기도 중의 하나였습니다.  1971년부터 80년대 초까지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남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하지 않는 것.  단지 그러한 문제를 기도 속으로만 가져가며 주님께 바쳐드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며 신앙이 필요하며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1971년에 저는 회의차 서울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러한 부르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홍콩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봉사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정말로 노동자들을 위하려고 한다면 나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이 확실했습니다.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복음서 안의 인기없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기도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심리적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理性的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받은 신학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학은 해방 신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일간의 피정을 했습니다.  그 피정을 하고 있는 도중에 저는 갑자기 기도를 해야 했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 원한다면, 십자가의 지혜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데 대한 믿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라는 깨우침은 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저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울었습니다.  피정이 끝난 날은 저성 첨례 (All Saints' Day, 11월 1일)였는데 그날 저는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자문자답하다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예언을 본다든지 하는 은사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알고 있는 성인들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 바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챨스 드쀼엘의 벽에 있는 그림이 보였습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그림이었습니다.  제 기도에의 응답으로서, 저의 새로운 마음이란 그분의 사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준 새 마음이란 사실 예수님의 성심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현재 나주 문제를 교회나 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주에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조를 읽고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영어로는 아주 확실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사적 계시의 가치는 신앙에 의해 인도되고 신앙에 충만된 일반 신자들의 상식적인 분별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분별이란 바로 교도권의 인도 하에 일반 신자들이 그들의 신앙에 찬 상식에 의거하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된 사적계시는 교회 역사 안의 어떤 시대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더 충실히 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나주 지방의 교회 당국에서는 그런 인도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약들을 가해왔을 뿐입니다.  신자들의 분별을 이끌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즉 사적 계시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바른 인식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적 계시란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율리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적 계시라는 용어를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과거와 현재의 교회 안의 예언자와 예언에 대해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경우에 주님께서는 삭발 수녀회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성녀는 성 요셉 수녀원을 시작했고, 주님께서 주신 지시를 고해 신부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고해 신부는 그 소식을 성녀의 장상에게 알렸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녀가 이 수녀원을 시작했을 때, 그 지역의 돈있는 유지 신자들이 "수녀들이 아무런 재원이 없지 않느냐, 그러면 수녀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을 하게 될텐데 우리는 거지들이 찾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교나 대교구장을 설득하여 수녀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성녀는 주님께 기도드리며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이 일을 저에게 시작하라고 하셨는데, 당신의 대리자는 중지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녀가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드디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장상의 결정이 나의 결정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여라."  그래서 저는 나주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신부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도록 이제 떠나셔야 겠습니다.

저의 의사가 잘못 전달되는 경험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저는 성령께 기도드립니다.  제가 영감을 받는대로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말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솔직하게 말한데 대하여 염려할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정리되면, 출판하기 전에 저에게 보여주십시요.  제가 저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보호받아야 할 평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율리아와 나주의 형편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루이 보스만스 신부님의 글 

 

나주에서의 기적들

기적들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결코 기적이란 없을 것이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장님은 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참된 기적이란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당신의 자연 법칙들의 적용을 변경하실 때에 일어난다.  기적적인 현상을 목격한 이가 이것이 정말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기적인지 아닌지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현상을 수많은 이들이 함께 보았을 경우에는 그런 의심이 신빙성이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기적은 하느님의 좋으신 뜻에 달려있는 것이지 우리들의 이해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적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체 성사에서의 그분의 현존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성체 축성권을 유효하게 서품받았고 교회가 뜻하는 바를 기꺼이 시행하려고 하는 사제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특별한 경우에 주님께서 스스로 성체를 이루실 수 없다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논리는 다른 기적들, 예를 들면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중한 병들이 치유되는 기적들에도 적용된다.   기적적인 현상이 일어났을 때 아무도 이를 믿어야 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우리는 자유 의지와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증거가 확실해도 그 기적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장님으로 남아있으면 된다. 현대에 와서 기적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있다.  기적을 믿게 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 방식에 혼란이 오므로 짐짓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참된 기적은 언제나 하느님께로부터의 선물이다.  이를 목격하고 전해듣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다.  이를 믿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이는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거절은 무엇보다도 교만의 징후이며 교만은 다른 많은 악들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하느님께서 자연 법칙들을 만드셨는데, 그 법칙들을 스스로 취소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자연 법칙을 만드신 분이 하느님이시라면 이를 변경하시는 것 역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사실상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자연 법칙들의 적용을 변경하시어 그분께서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시며 당신께서 주시는 확실한 징표들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당신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1. 나주의 일들은 부정되어야 하는가

도메니꼬 마르꾸치 신부가 "스텔라 마리스" ("바다의 별")지 1997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고저 한다.  이 글은 산 다미아노에 관한 것이지만 나주의 경우에도 매우 적절히 적용된다고 본다.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에 대해서는 공적인 측면으로만 고려할 수 없다.  공적인 조처들은 은사들의 한 단면을 다룰 뿐이며 그 전체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은사들을 공적으로 다룰 때 일반적인 기준은 그 은사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교회의 선익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우리가 논할 문제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강조할 수 있는 것은, 만약 교회에서 은사들을 완전히 배척한다면, 그리고 신자들이 그 은사들을 통하여 영향받는 것을 금지한다면, 교회 안에서의 회개, 기도, 선행들이 또한 감소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할 것은 은사들이 좋은 열매들을 맺기 시작하는 것이 교회의 인정을 받고 난 후가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의 보도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들을 잘 분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들에 대하여 완전히 문을 닫고 있는다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방문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다,"라고 하는 주님께서 손수 가르쳐주신 기준을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교구장의 결정들이 변경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물론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은사들이 처음부터 교회 당국으로부터 어려움 없이 쉽게 인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오 신부님의 경우에는 확인되지 않은 중상(中傷)으로 인하여 교회 당국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제재 조치를 받음으로써 사제로서의 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었다.  나의 한 친구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만약 비오 신부가 시복된다면, 최소한 여섯 가지의 부정적인 교회 조치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시복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텔라 마리스"지의 편집장인 앙드레 가스뗄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프라이부르그 대학교의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교수이며 수도자인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가 내리는 모든 긍적적인 결정은 넓게 해석하고, 교회의 부정적인 결정은 좁게 해석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의 항례입니다.  다시 말해서 명백하게 금지하지 않은 것은 허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위에 인용된 신망있고 능력있는 분들의 생각에 비추어볼 때, 나는 나주의 일들이 제대로 조사되지도 않았으며, 아주 경솔하게 판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광주 대주교의 공지문은 그의 교구 안에서는 존중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그 일에 관하여 하느님 대전에서 전적인 책임을 질 사람은 바로 광주 대주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공지문의 내용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를 발표할 권리 및 의무까지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주교님이든 그의 조사 위원회이든 이 일에 관하여 무류지권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나주에서 하느님께서 특별히 드러내시는 일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다음은 1998년 1월 로마에서의 시노드에서 콜롬비아의 필라피첸시오 교구의 알퐁소 카베자스 아리스시자발 주교님께서 하신 연설의 일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특별한 방법들, 즉 영적, 신체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치유라든가, 환시, 메시지, 발현 등 우리가 일상의 사목 활동에서 사용하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법들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대했을 때에 혹시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기도회 그룹들을 만들어 열성적으로 함께 모여 기도드리는 신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신자들을 이러한 소규모의 활동적인 그룹들로 이끄시어 예수 그리스도와 보다 깊고 생동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함으로써 교회의 깊은 심장에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사들에 대하여 우리 교구들의 문을 더 열어놓아야 합니다.  물론 교구 내의 신자들이 참으로 영적인 도움을 받고 일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주교가 파견하는 주교의 대리자가 이러한 그룹들을 동행하고 인도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 안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의 긍정적인 경험들이 종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은 수많은 신자들의 관심과 따름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주교는 근거없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든가, 이유없이 거부한다든가, 무관심으로 인한 몰이해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3. 천주 성령의 은사들과 나주

 "교회가 탄생할 때에 많은 기적들이 있었음과 같이 그 이후에도 성령의 은사들이 풍부히 내려져 왔다.  성령 강림 때에 성 베드로 사도가 요엘 예언자를 인용하며 말했던 바가 (사도 행전 2:16-21) 지금 우리들의 눈 앞에서도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선물들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공공연히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공적 계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물론 사적 계시가 공적 계시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적 계시들은 성서에 내포되어 있는 뜻을 하느님의 생활하신 빛으로 비추어주며, 아직도 숨겨져 있거나 암시만 되어 있는 내용들을 우리가 더 확실히,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도와준다.  라 살레뜨, 루르드, 파티마, 곱비 신부, 에스꼬리알 등에서의 은사들이 이를 확인해준다.

한 편으로는 공적 계시 이외의 모든 것을 거부하려는 스스로 높은 이들이 있으며, 또 한 편으로는 성령께서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서 충만히 퍼부어주시는 은사들로부터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증가를 퍼내는 겸손한 신자들이 있다.  사적 계시들을 통하여 이 두 부류의 신자들이 서로 일치에로 접근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파블로 마르틴 신부의 명료하고도 통찰력있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나주 조사 위원회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자문해보았다.  진정한 조사를 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부정을 하기로 작정하고 나섰던가. 한국의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위원회는 진지하고 정직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진실된 사건들과 정직한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처음부터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위원회가 그처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내린 결론에 대하여 합리적인 설명을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진실된 조사도 없이 나주에 관련된 사람들의 진실됨과 사건들의 사실성에 대하여 의심에 가득찬 가운데 경솔한 결론을 내려버렸던 것이다.  한 교구의 조사 위원회가 이래서는 안된다.  위원회는 객관성과 정직성을 지녀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된다.


4. 순명과 나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의거한 고찰)

교도권과 순명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어떠했는가?  다음은 T. Getti가 쓴 "영성 생활에 관한 사전"에서의 발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도권을 설명하면서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 교도권이 남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교계 제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주교들은 그리스도를 대리한다.  그러나, 공의회에서는 설사 인간성이 성성(聖性)에 의해 둘러싸여 있을 때라도 그 인간성은 여전히 제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권위가 아무리 높고 고상할지라도, 악한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때로는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정없이 빠져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성령을 드러내는 임무를 받았지만, 때로는 인간들을 성령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인간들을 자유롭게 해줄 사명을 가지고 있으나, 때로는 그들을 지상(地上)의 제도들에 예속시키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신자들이 주님을 존경하고 그분께 밀착된 삶을 살아야 됨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그들의 장상에 대해서 노예적인 태도를 지니지 말 것을 가르친다.  권력이란 것이 성령의 빛을 하등의 하자도 없이 완전하게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고까지 믿을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  

권위는 봉사를 위해 있는 것이지 지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권력은 선을 위해서도 악을 위해서도 쓰여질 수 있는 속성이 있다.  권력이 성사를 통하여 수여된 것일지라도, 그 권력이 봉사의 임무를 벗어나서 쓰여질 수가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크리스챤적인 자유에 도달하기 위하여 완전한 순명을 실천해야 한다.  동시에 노예적인 처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신자들은 그들의 장상 위에 계신 분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교도권이 신자들 위에 행사될 때에는 각 개인의 주권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개인을 비인격화하고 그를 피동적인 맹종으로 밀고 가는 것은 크리스챤적인 순명이 아니다.  교도권을 행사하는 이와 이를 따르는 이들 사이는 상호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이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관계가 완성될 수 있으며, 함께 천주 성부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위의 글을 읽고서 나는 나주에서의 일에 관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광주의 조사 위원회에서는 위에 설명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 같다.  위원회가 공의회의 가르침을 묵살해버린 것일까?  나주 관련 공지문을 읽어보면 그러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5. 잘못된 분별, 즉 억측의 위험

의식적이거나 아니거나간에 미리 짜여진 테두리에 맞게끔, 다시 말해서 아전인수 격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나는 억측이라고 부른다.  사실들이 그 현실적인 구체성을 손상당할 때에 억측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실들의 객관적인 내용을 왜곡되게 조명하기 위하여 엉뚱한 전후 관계로 묘사할 때에 억측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억측이란 사실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사물들에 대한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가 아닌 내용들을 첨가시키는 것이다.  억측은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며, 오히려 사실을 지배하려고 든다.  사실이 가지는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실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온통 허위이며 무너지기 쉬운 바탕 위에 절대적인 체계를 세운다.   

사실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로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과학이 제공하는 객관적인 분석의 도구들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성급한 판단을 피해야 된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시대의 징표들을 이해하고 분별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사실을 바로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가 그저 위험성을 피하려는 의도로써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지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나 손해를 가져올는지 미리 계산하고 걱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건들을 이미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 문을 열어놓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대한다면 그런 선입견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들에 대하여 적의없는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의 결여 때문에 크리스챤 신학자들의 세계에서는 시대의 징표들에 대한 이해가 더딘 것이 자주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서 나는 광주 대교구의 위원회가 객관성 있는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을까 하는 데 대하여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준비한 문서를 보면 지성적이며 크리스챤적인 정직함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혀 사실에 근거두지 않은 부정직한 고의와 오류에 대하여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한 순진한 인간을 고발하고 있는 데에서 그러한 결여를 볼 수 있다.


6. 나주에서의 "초능력"에 대하여

(A. Tanqueray 박사의 글: "극기 및 신비 신학의 요약"에서 발췌)

"Preternatural" 즉 "초능력"이란 하느님께서 아담과 에와에게 허락하셨던 선물들, 즉 "초자연적"은 아니지만 자연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주입된 능력들을 가리킨다.  이 능력들은 다음과 같다.

1.  천사들이 받은 것과 같은 직관적인 지식.  이 지식을 통하여 모든 주요 진리들을 알 수 있으며, 경험을 통한 지식도 더 수월하게 습득하게 됨.

2.  세 가지의 욕정을 쉽게 통제할 수 있음:
     a. 말초 신경의 만족을 무질서하게 탐함
     b. 지상 물건들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과 탐욕
     c. 교만, 즉 허영심, 자애심, 자랑함, 위선, 질투 등

3.  병들거나 죽지 않음.
     자연적으로는 인간은 병들고 죽게 되어 있다.

위의 글을 읽고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 분께서 주시는 모든 선물들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그러한 선물들을 당신께서 주고저 원하시는 이들에게 주신다.  특히 지금은 성령의 은사들을 여러 가지 양상으로 자주 주시는데, 이들은 치유의 은사 및 다른 특별한 징표들, 심지어는 기적들까지 포함한다.  왜냐 하면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은 없으시기 때문이다.  

광주의 조사 위원회가 공지문에서 "어떤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듯이 율리아가 이러한 선물을 받는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통찰력을 경하해야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율리아가 받은 은사가 참된 것임을 암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그에 관련된 증언들과 특별한 현상들 또한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그러한 "초능력"의 현상들의 "초자연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무죄한 사람을 단죄하지는 않았어야 했다.  어떤 조사 위원회든지 조사 대상이 되는 현상들의 "초자연성"을 증명하는 것이 위원회의 임무가 아니며, 또 어떤 위원회도 그런 증명을 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임무는 사실에 입각하여 개연성을 판단하는 것이며 조사하는 현상들이 허위일 가능성들을 배제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7. 교도권, 은사 그리고 나주

나는 지금까지 나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하여 많은 이들과 함께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서명된 증언들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 대교구의 조사 위원회가 이러한 여러 주교들, 그리고 많은 신부들과 평신도들의 자세한 증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증언들은 1998년 1월 1일에 공지문에 발표되기 휠씬 전에 광주 대주교님께 보고되었던 것들이다.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약함과 믿음의 부족함 때문에 당신을 우리가 볼 수 있는 외적인 방법으로 드러내신다.  때로는 빛으로 또는 불의 형태로, 때로는 다른 초자연적인 징표들을 통해서.  즉 성상에서 피와 향유가 흐르게 하신다든가,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주기도 하시며, 십자 고상으로부터 성체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하강시켜 주기도 하시며, 성체의 외양을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기도 하신다.  그 밖에도 많은 징표들을 주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무한히 좋으심과 자비에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불쌍한 자녀들인 죄인들을 당신께서 마음을 활짝 여시고 측은히 여기시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시켜주기 위하여 못하실 것이 없으시다는 것을 뜻한다.  그분께서는 모든 나약함을 용납하여 주시며 모든 고의적 또는 고의적이 아닌 잘못들을 용서하여 주는 분이시다.

루이 보스만스 신부
C.P. 1210 - PASPEBIAC - QUE
G0C-2K0 - CANADA
1998년 7월
 
 


가드윈 신부님의 편지

 

성모님의 일꾼들께,

귀하께서 보내주신 1985년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나주 관련 자료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챤의 입장에서 신앙의 눈과 마음으로 그 자료들을 읽었으며, 신부의 입장에서는 신학적, 사목적, 그리고 교회법적인 견지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윤 대주교님께서 이처럼 부정적인 공지문을 내신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그 공지문의 영문판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편에 의한 성모님의 손길"에서 낸 공지문에 대한 논평문도 읽었습니다.  저는 또 다음 자료들을 읽었습니다.

       (i)  로져 고데트 신부님의 증언
       (ii) 윤 학 씨의 "참된 일치는 성실한 교도권의 행사에서"
       (iii) 요셉 호“H 신부님께서 교황청으로 보내는 청원서
       (iv) 이러한 글들에서 인용된 모든 교회 문헌들

리 순성 신부님께서 대주교님의 공지문을 신학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쓰신 글 全文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다음 사항들을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1) 현재 닥쳐있는 위기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뜻을 더 빨리 전파하시기 위함입니다.  아시다싶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사도들이 전했을 때 그 당시의 종교적 및 정치적 지도자들은 엄중한 조치를 취하여 이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국에서 압박을 하면 할수록, 복음의 소식은 더 빨리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저의 의견으로는, 나주의 메시지들은 긴급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나주의 일들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메시지들이 빨리 전파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셔야 했습니다.  

(2) "성모님의 손길" 특별호 1998년 제 2호의 논설문을 읽고서 저는 리 순성 신부님께서 피력하신 신학적 오류들은 교회 안의 많은 이들 사이에서 넘쳐흐르고 있는 현상임을 생각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러한 오류들을 더 이상 두고보실 수가 없으셔서 그분의 사상을 다른 이들에게 노출시키려고 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의 장래도 구하고 많은 젊은 신학생들도 구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의 사제들의 교육을 맡고 계신 리 신부님같은 분들이 소위 "일치"라는 제단 위에서 성체 성사에 대한 진리를 희생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한국의 교회는 위기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분들은 "일치"라는 구실로 낙태, 안락사, 동성 연애자들의 결혼 등까지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저는 염려가 됩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을 인도해주시기를 저는 기도드립니다. 성 교회의 가르치심에 항상 충실하시고, 개별적인 신학자들의 사상을 따르지 마십시요.  교회법 상으로 볼 때 교회 내의 최고 교도권(THE MAGISTERIUM)은 한 교구의 주교님께서 행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남아 연방에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저희들의 활동에 대하여 상세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성 요셉 안에서,

가드윈 나도지 신부
성 마리아 가톨릭 교회
마피켕, 남아 연방
1999년 6월 20일

 


나주 공지문에 대한 논평

 

다음의 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리아 잡지인 "바다의 별 (Stella Maris)"지의 주간 앙드레 가스뗄라(Andre Castella) 씨가 쓴 것이다 (1998년 5월호).  까스뗄라 씨는 빠르비 출판사(Editions du Parvis)라고 하는 큰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다:

Editions du Parvis
CH-1648 Hauteville, Switzerland
 

광주 대주교께서 임명한 나주 조사 위원회는 서류들을 검사하고, 율리아의 집을 방문했으며, 메시지를 참조하고, 율리아를 포함한 14명의 증인들을 인터뷰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처음 9년간 아무런 공식 조사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진보를 한 셈이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선의의 조사 활동을 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 뒤에는 여러 가지 결함들이 숨겨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함들은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성질의 것들이다.

(1)  메시지를 받고 환시를 보는 당사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증언이 아니었다. 그가 받은 은사와 메시지의 내용에 대하여 일련의 질문을 했어야 했다.  율리아와 같이 많은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는 충실한 증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글 몇 장으로 어떻게 12년이 넘는 기간의 여러 가지 신비적인 체험을 요약하고, 그가 받은 많은 메시지에 대한 종합을 내놓으란 말인가?  위원회에서 사용한 조사 방법은 근본적으로 사실과 상황에 적합하지 않았다.

(2)  "기적"을 목격하셨던 교황님과 네 분의 주교님들께 문의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  회개, 봉사에로 부르심을 받음, 병의 치유 기타의 결실들은 전적으로 불문에 붙여졌다.

(4)  "공지문"은 나주의 사정을 다른 어떤 사제들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율리아의 영적 지도자 파 신부 (Fr. R. Spies)의 관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세속의 어떤 기관도 감히 하지 못할 것을 주교님의 선언에서는 자만과 강경일변도로 권위를 행사하는데, 그러한 선언문은 교회의 얼굴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정당한 자율성을 존중하시는 것과 같은, 자녀들을 사랑하는 모성적인 자애로움을 찾아볼 수가 없게 한다.  이상은 일반적인 고찰이었고, 다음은 좀더 자세히 공지문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광주 대주교는 나주시가 속해있는 교구 안에서 교구장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의 권한 밑에 속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의 뜻을 선언할 수 있다.  교회법 제212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그들 자신의 책임을 의식하는 신자들은 신성한 목자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앙에 관한 스승의 자격으로서 선언하거나 교회의 지도자로서 결정하는 사항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다운 순명으로 따라야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6항)은 교도권의 행사 범위에 관하여 이렇게 규정한다.  "그러나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며 성실히 진술하고, 또한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제시된 모든 것을 이 단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퍼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적 계시는 인정된 것까지도 사도들이 받아서 교회에 위탁된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사적 계시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은 그 발현이나 메시지나 기적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 공식적인 인정은 주교가 그 사적 계시들이 하늘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 개연성(蓋然性)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 내용에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그러니까, 사적 계시가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보존하고 가르칠 사명을 가진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 만큼 각자의 평가에 맡겨져야 한다.  관할 교구장은 공식적인 전례의식으로 하는 공적인 종교 예식을 허가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 외에는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현대의 다른 계시들의 구절들과 비슷한 메시지의 구절들이 있다는 것은 근원이 같은 (주님, 성모님) 이상 논리적인 것이다.  율리아의 글에서는 때로는 메시지 앞에 있고, 또 때로는 메시지 뒤에 있는 율리아 자신이 쓴 해설과 메시지 자체를 구별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가 환시를 보는 본인의 해설에서 어떤 요소들을 변경하거나 지우거나 또 어떤 것은 추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는 사람들의 정신에 메시지의 내용이 "들어가게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사에서 강론하는 사제들이 성경을 가지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같은 목적으로 영적 지도자는 메시지를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환시를 보는 이들의 영적 지도자들 여러 분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에게 확인해주었다.  나중에 경우에 따라서는 연루(連累)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적절하면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한 시대의 종말"을 연기하셨을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 관해서는 "한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구분하는 한 가톨릭 신앙에 반대될 수가 없다.  사도들과 성 아우구스티노 이전의 교부들도 이 구별을 했는데, "예수님의 중간 재림"은 그레고리 주교의 책에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최근에 라칭어 추기경께서 뻬나사(Penasa)신부에게 확인한 것과 같이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딱잘라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에 속하는만큼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잘 이해하거나 모든 것을 잘못 이해하거나 할 수 있읍니다,"하고 어떤 참사원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계시와 발현의 분야에서는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분명히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한다.  

3.  성체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고 싶으실 때에, 오고자 하시는 곳에, 오고자 하시는 모양으로 오시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미카엘 대천사가 파티마의 세 목동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었을 때 그 성체가 하늘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어느 감실에서 모셔온 것일 수도 있다.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이 나주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것에 관하여는 만일 윤 대주교님의 해석을 일반화하면 교회가 이미 인정한 모든 성체 기적들(란치아노, 시에나, 파베르네 등)이 다 교회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이고, 그 기적들의 진실성을 믿은 사람들은 오류에 빠진 것이 된다.

4.  성모상에서 일어나거나 (눈물, 피눈물, 향유 등) 율리아의 몸에서 일어난 현상들(고통, 오상 등)을 초능력에 의한 현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주교의 권한이 아니고 과학자들의 임무이다.

5.  교회법 제823조 제1항에 근거를 두고 윤 대주교님은 나주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출판물의 발행과 유포를 금하고, 이를 읽고 보는 것까지 삼가라고 권고한다.  대중 통신 수단과 특히 출판물에 관하여 교회법 제3권, 제4절은 특별히 편집상 정확도가 기해진 것이 아니므로 신앙을 거스리지 않으면서도 여러 점들에 대하여 여러 모로 이해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다른 문헌들이나 교황들의 선언들을 참조함으로써 보완되어야 하고, 특히 대중 통신 수단에 관한 공의회의 법령(Inter Mirifica)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법령의 제5항은 알아보고 알리는 권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혀준다 (교회법에서는 이를 묵과하였다).

"정보(수집, 전달)는 아주 유익하고, 대개의 경우 필요불가결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개인의 자격으로서나 어떤 사회의 일원의 자격으로서 사람들에게 관계되는 문제들에 관한 정보(수집, 전달)에 대한 권리는 인간 사회에 고유한 것이다.  그러나, 이 권리의 올바른 행사는 전달된 내용이 객관적으로 진실하고, 또 정의와 사랑의 요구를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또한 전달 방식은 성실하고 적절하기를, 즉 소식을 얻고 전파하는 데 있어서 도덕률과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의 견해로는 한 지방 교회의 목자인 윤 대주교님께서 메시지의 전파를 금지하신 것은 공의회의 법령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베드로의 후계자에 의하여 승인된 권리와 출판과 보도의 자유와 기자들과 신문, 잡지 발행자들의 의무에 관한 수많은 다른 문헌들과 교황들의 선언문과 상치된다.  그런 결정은 무효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6.  사목상의 규율에 관해서는 (전례적인 성격을 가진 의식 거행) 윤 대주교님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개입의 결과로 잃어지는 영적인 결실들을 잘 의식하고 있는가?  우리가 확신하는 대로 참으로 하늘이 말씀하신 것이라면, 주님과 그의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막는 사람의 책임은 엄청나게 크다.  메시지의 전파를 금지하려면, 주교는 그 메시지가 하늘에서 오지 않고 또 영혼들의 구원에 해를 끼친다고 하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실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발현들과 메시지들이 사람들을 신앙에로 이끄는 데에 있어서 정규적인 사목 활동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자주 있다.  주교님의 공지문의 내용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사실로 믿고 있는 바와 상치된다.  어떻게 하여 이런 명백한 모순들을 주교님께서 간과하셨단 말인가?

결    론

"만일 이 의도나 이 일이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면 저절로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은 스스로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5:38-39)  가믈리엘의 이 충고를 오늘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나주에서의 일들의 진실성을 믿고 있다.  부정하거나 단언함에 있어서 아무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주교님의 공지가 나주를 방문해서 또는 메시지들을 읽음으로써 갖가지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의 확신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대제사장 안나스에 의해 비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경비병 한 사람에 의해 뺨을 맞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으면 대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으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대보아라..."  즉, "부인할 수 없는 증명을 해보아라."  예수께서 안나스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고소를 당하는 누구든지 당국에 요구할 수 있다.  불행히도 현대의 계시와 발현과 마주친 많은 주교님들이 마치 그들의 권위가 복음적 권고보다 높고, 보편적인 교회가 교회 법규에 의해 보장한 권리보다 높은 것처럼 행동한다.  보편적인 교회가 그 구성원들의 권리를 어떻게 박탈할 수 있겠는가?

대주교님의 공지문 발표 후에 율리아 또는 그의 영적 지도자가 반응을 한 것을 우리가 정확히 알게되면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려드릴 것이다.

첨가사항:  스위스 프리부르의 주교님은 메시지를 읽는 데 대한 일반 신자들의 권리를 명확히 밝혀주셨다.  광주에서는 이 권리가 침해되었다.

앙드레 가스뗄라 (Andre Castella)
 
 


미국의 요셉 리찌 씨의 편지
 

성모님의 일꾼들께,

나주 성모님께 관한 많은 출판물들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들을 모은 "사랑의 메시지" 책을 지금 두 번 째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참으로 영적인 보화가 가득찬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이 메시지들을 읽고 나주에 대하여 배우면서, 저는 저의 기도 생활이 더 심화되는 것을 느꼈으며, 저의 마음이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으로 깊이 감동됨을 느꼈습니다.  지방 주교님께서 나주에 대해 부정적인 발표를 하신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저도 공지문을 읽어보았는데, 분별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주교님을 위하여 기도드려야 겠습니다.  나주의 성체 기적들은 성체 성사 안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계심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을 더 깊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띠마에서도 성 미카엘 대천사가 성체를 모시고 와서 세 아이들에게 영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주에 대한 주교님의 반응에 대하여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주교님의 마음을 밝혀주시기를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나주에서의 어려움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루르드, 파띠마 등 과거의 경우들에도 지방 교회 당국의 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의 귀중한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의 진통입니다.  우리는 성모님께서 요청하시듯이 대단히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하겠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사진들을 더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친구들에게도 주고 제 방에도 붙여놓으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요셉 리찌
미국 뉴욕 주 스테이튼 아일랜드
1999년 8월 11일

 


미국의 진 하러 부인의 청원서
 

바티칸 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

존경하는 교황 성하께,

저는 나주에서의 일들에 대한 재조사를 열어주시기를 저의 충심을 다하여 청원드립니다. 저는 나주의 일들에 관하여 캐나다의 로만 다닐랙 주교님의 증언을 들었으며, 많은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저는 나주에서의 기적적인 일들의 진실성에 대하여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성하께서도 잘 아시다싶이,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께서는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계심을 세상이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해오고 계십니다. 저는 나주에서의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귀중한 성체 성사의 선물을 보통의 방법으로는 잘 깨닫지 못하고 등한시하고 있는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아름다운 기적들 중의 하나라고 믿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을 통해서만 신앙이 잠자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성하께 인사드리며,

진 하러 (부인)
미국 미시간 주 랜싱 시의 성모님 센터
1999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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