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싱거 신부님과의 인터뷰
(이 글은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1998년 6월호부터 8월호까지 연재된 엘싱거 신부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엘싱거 신부(Francis Elsinger)는 1961년부터
메리놀회에서 활동하시다가 1989년부터는 홍콩의 Our Lady of Lourdes Chapel(루르드의 성모님 성당)에서 사목하시고 계시며
'가톨릭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는 1998년 3월 12일에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적계시를 국내에서는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한국 가톨릭이 그에 대한 처리에 소홀하고 심지어는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주가 여러 성직자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가톨릭계 내부에서도 나주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활발한 논의를 거쳐 사적계시의 정의와 평가를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주를 방문한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게재해 나가기로 한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반대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오류가 있으면 자신의 주장도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연유로 가톨릭다이제스트는 게재하는 글과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의 의견도 애타게 기다린다. 자유로우면서도 건전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이 연재가 우리 가톨릭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빈다.)
신부가 되어야겠다고 언제부터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1934년 5월 13일에
미국 사우쓰 다코타 주에서 났는데, 그 해에 대단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 곳의 경제난은 요사이 한국에서의 경제 사정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 내내 수확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 부모님께서는 자동차는 있었는데 휘발유를
살 돈이 없으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속한 본당은 성 마리아 성당이었습니다. 저는 본당 소속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학교 이름도 성 마리아
학교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고저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아들들 중에, 단 하나라도 신부가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묵주 신공을 바쳤습니다. 제 생애 처음부터 성모님께서는 저를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래서 17세때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성 루이 드 몽포르께서 지으신 봉헌문대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해드렸습니다.
아버님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어린애일 때 늘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께서 먹여주시는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 일로부터 은퇴하신후 매일 15단의 묵주 신공을
바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대단히 행복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양심에 따라
사셨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그 후 여러 해 동안 철저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농사일은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는
경사진 땅에다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와도 물이 다 흘러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쯤,
아버지께서는 언덕에 수평으로 밭을 만들었고 밭뚝을 만들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어리석은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읍내에 잘 나가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농부들이 아버님을 놀리거나 듣기 싫은 말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 옳다고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정부에서 토양 보존 정책을 시작했고, 아버지께서 하셨던 것처럼 밭을 만들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제가 성모님께
대하여 이야기하고 저의 경험과 신념에 대하여 그리고 나주에서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의 일을 기억하면서 저의 양심에 따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이것이 제가 확신하는 것이고 저의 경험에 따른
결정입니다. 사람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지만, 그러나 동의하지 않으면, 그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합니다. 증거를 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반대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내성적입니다.
천성적으로 저는 대단히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에 대해 제가 확신할 수 있을 때에는 저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갖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요?
제가 진심으로 회개한 때는
1971년 이었습니다. 복음서의 내용대로 살라고 하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곧 성체 성사가 저의 기도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최소한 두 시간씩 성체 앞에서 기도드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제가 예수님께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은 없었습니다. 1969년부터 저는 묵주를 손에 쥐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3년에 우연히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콜비 신부님의 책 한권을 발견하고 매일 그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제가 성모님의 현존에 대해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 성모님과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사랑하는 아들들은 묵주신공을 바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묵주 신공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나요?
성체 앞에서 묵주 신공을 바치기
시작한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일이었고 많은 결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배운 신학 지식들이 오히려 저의 신앙을 깊어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식이 오히려 신앙을 가로막았습니다. 신앙보다는 오히려 따지며 생각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부들이 그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단순한 신앙,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우리 자신의 개념들을 더 중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신앙을 다시 자리잡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십니다. 그리되면, 하느님께 대하여 생각하는 우리의 지성 활동이 신앙에 봉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의 개념들이 우리의 신앙을 지도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사고를 지도해 나가야 합니다.
나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1994년 크리스마스 성탄절
편지에서 마리아 사제운동 한국 책임자인 요셉 슬레이비 신부님께서 당시 주한 교황 대사이셨던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나주에서 경험하신 바에 대하여
쓰셨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지금까지 나는 나주에 대해 아주 피상적인 소식들만 들어왔었다. 나주에 대하여 정말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슬레이비 신부님은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 성체 기적을 경험하신 데 대하여 쓰셨다. 나주에서의 일들이 성체 성사에로 향하고 있으니, 참된 것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성모님의 발현들은 항상 사람들을 성체 성사에로 이끌어서 예수님의 현존을 믿게끔 해줍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흠숭하게 해주며, 거룩한 희생 제사인 미사에 참된 신앙과 신심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저는 나주에서의 일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홍콩의 신자들이 1995년 6월에 나주를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이 신자들이 매주 토요일에 성체 조배를 위하여 제가 관리하는 소성당에 오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1995년 6월 말
나주에서 일곱 개의 성체가 내려오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한 율리아의 입속에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홍콩에 돌아와서 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영적 지도 신부였고, 그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모범적인
신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헛것을 보고 온 것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주에서 무엇을
체험했는가요?
1995년 11월 24일 나주에
도착하여 맨먼저 경당에 들어갔는데,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히 믿지를 않고, 아마도 에어콘을 통해서 향수 냄새가
들어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경당에는 에어콘 시설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난방이 대개 온돌 방식으로
되어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에어콘을 통해서 향기가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모송을 외울 때 저는 강력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성모송을 바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
그래서 저는 다른 신자 한 분에게
묵주 신공을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일생 동안 그렇게 감동적인 묵주 신공을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수요일에 저는 병이 났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한국의 사과 두 개를 깎지 않고 먹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씻어서 먹기는 했지만, 살충제가 껍질에 남아있었나 봅니다. 수요일 내내 저는 심하게 아팠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목요일에도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목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면서도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기도회 도중 밖으로 나와야 될 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회에 들어가기 전에 성모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님 상을 통하여 우시기까지 하셨는데,
제가 기도회에 잘 참석할 수 있도록 제 병을 고쳐주십시오, 라고. 그리고는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성모상을 모시고 있고 메시지를 받고 있다는 윤 율리아씨는
만나보셨는지요?
기도회가 한참 진행중일 때
율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성모님의 향기가 대단히 진하게 풍겨왔습니다. 저는 또 다시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 향기가
지금 열린 문을 통하여 밖으로부터 들어오나보다. 율리아가 향수를 잔뜩 뿌리고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기도회가 30분 가량
진행된 후에 복음서를 읽을 순서가 되었습니다. 사회자는 저와 또 한 분의 신부님께 올라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가서 율리아를
만날 수 있었고 저는 의식적으로 율리아의 손을 잡고 친구를 했습니다. 저는 율리아에게서 향수 냄새가 나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율리아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향기가 율리아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주에서의 체험이 신앙생활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상이 저의 나주에 대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분별하기 위하여 직접 가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도하고 있던 여러 신자들이 나주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직접 가서 알아봐야만 했습니다. 거기 가서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장소에 가서 기도를 해봄으로써 그 곳의 일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20여년간 본당 사목일 외에도 신자들의 영적 지도, 피정 지도일을 해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나주에 대하여 분별한 결과는 모두 긍정적입니다. 그곳에서의 영적인 결실들 또한 모두 긍정적입니다.
제가 사제가 된지는 37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100명 이상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사제직과 수도 생활을 떠났고, 그 중에는 교회를 떠나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지금 교회 안에 떠돌고 있는 거짓 가르침들 때문입니다. 저의 사제 생활 37년을 통하여 저는 나주라든가 다른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이유로 사제직이나 수도직을 떠난 이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나주에 와서 기도했기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 경우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오류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 경우는 많이 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교회 안에 널리 퍼져가고
있는 오류의 가르침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활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지도하고 있던 많은 신자들이 나주를 다녀오고 있어서 그곳의 일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별해야만 했기 때문에 직접 나주를 방문했다고 하셨습니다. 나주에서의 첫경험외에 신부님께서 체험하셨고 분별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사실들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요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던
다음날 금요일 우리는 기적수 샘이 있는 산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싱가폴과 말레이지아에서 온 순례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오신
예수회 신부님과 함께 갔습니다. 율리아도 왔습니다. 성모님의 샘물터가 있는 그 산 위에서 우리는 율리아와 함께 미사를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날씨는 구름이
끼어있었습니다. 성체를 분배할 때의 시간은 약 오후 4시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쏟아져 내려왔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있던 장소에서는 나무 때문에 해가 바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분배한 성체를 받아 든 그들은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태양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성체 분배를 마치고 나서 그들이 서있는 곳으로 가서 태양을 보았습니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저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태양은 제가 늘 밤에 보던 성체와 같이 보였습니다. 저는 저의 소성당에서 밤에는 촛불이나 등불을 켜서 성체 뒤에 놓아두곤 합니다. 그래서
그 빛이 성체를 통과하여 성체가 밝게 보이게 합니다. 그날 본 태양은 꼭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성체처럼 보이는 태양에는
어떤 가림막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날 약 60명 되는 우리들은 모두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태양의 현상을 보는 이 특별한
경험 후에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렸습니다. 더군다나 미사 중에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서 말입니다. 저는 모두들 미사의 파견 강복을
받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아직 신자가 아닌 중국 여자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냥 휴가 삼아 친구들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그
부인은 사진찍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미사 후에도 그 부인은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니 몇 장에는
태양이 산을 통과하여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태양의 둥근 모양이 산 중턱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경당에서 찍은 사진들에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태양이 경당의 지붕에 얹혀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진들이 특별한 징표를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아가
주는 징표가 아니라,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징표입니다. 저는 그 순례 여행 후에 홍콩 교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교님께
저는 더욱 많은 신자들이 성체 조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홍콩에서는 그 때까지 항구적인 성체 조배 신심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징표들은 율리아가 있는
곳에서 일어났으나, 저의 경우에는 율리아가 가까이 있지 않을 때도 많은 징표들을 경험했고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한 일들이
성모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확신이 섭니다. 수많은 이들이 율리아가 옆에 없는 데도 징표들과 은혜들을 경험했습니다. 율리아가 천 마일밖에 있을
때에도 성모님 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바칠 때 향기를 맡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성모님의 일입니다. 율리아의 일이 아닙니다.
율리아도 이 일의 한 중요한 임무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광주 대주교님을 만나 성체기적을 전하려 하신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경위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1997년 8월 27일의 성체
기적 때 저도 나주에 있었습니다. 8월에 나주에 갔던 이유는 '6월 12일에 제주교구 김 창렬 주교님께서 오셨을 때 내려오신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위에서 내려왔다는 성체는 성체가 아니고 그냥 면병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성체 앞에서
기도함으로써 분별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어떤 일의 열매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직접 관련된 이들과 얘기하고 직접 관련된
장소에서 기도를 해보아야 합니다.
8월 27일에는 파 신부님께서
나주에 도착하셨습니다. 파 신부님은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고 계셨으며, 그 날의 일정에 대해 저에게 알려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당으로 가서 성체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직 나주의 경당 안에서는 성체를 감실에 모시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으므로, 성당에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저는 성당에서 약 두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경당에 돌아왔을 때, 파 신부님께서는 마루에 앉아서 성체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성체가 위에서 내려오신지 약 10분 후에 제가 도착한 것입니다. 저는 사실 성당에서 '6월에 내려오신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6월에 내려오신 성체'를 대주교관에서 모셔갔기 때문에 광주의 대주교님께 찾아가서 그 성체 앞에서 기도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청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파 신부님께서 '6월에 내려오신 성체'와 꼭같은 성체를 들고 계신
것입니다. 성체의 크기나 문양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당에서 두 시간 동안 성체 앞에서 기도드린 데 대하여 너무나 놀라운 응답을
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난 20여년 동안 매일 하루 두세 시간씩 성체 앞에서 기도드려 왔습니다. 그 날 나주 성당에 가서 기도드린
것도 여늬날과 같은 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내려오신 성체가
참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이심을 마음 속에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에 제가 광주 대주교님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주교님께서는 그것을 믿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셔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주교님은 그것이 성체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으며, 저의 증언을
들으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기도와 많은 체험을 통해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으십니까?
그 질문에 대하여 뭐라고 확실한
대답을 드리기가 어렵군요. 아마도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성녀께서 당신이 경험하신 바에 대하여
증언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혹시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거짓말을 한 번 하기보다는 천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저의 경우도 제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바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성체기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가톨릭 신자는 진리 전체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진리의 일부분을 이용하여 진리의 다른 부분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도 계시 진리 전반에 대하여
열려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 내에서 오직
유효하게 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체 축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이용하여 예수님께서도 성체 축성을 하실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사제가 성체 축성 때 외우는 기도문과 그 기도의 힘은 예수님 자신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라는 대리자를
통하여 그러나 당신의 힘으로써 빵과 포도주가 당신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축성 기도문은 사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직접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1995년 9월 나주 부근의 산 위에서 율리아가 모신 성체가 몸과
피의 모습으로 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저는 1996년 10월에 나주 성당에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성체 기적들의 사진을 제가
처음 본 것은 그보다 몇년 전이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았을 때 저는 놀라면서도 좀 역하다는 느낌이 들었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고.
그런데 성체 기적을 실제로 보았을
때 사진에서 본 것과 똑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 요한의 복음서에 있는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먹고 마실 나의 살과 피를
주겠노라.”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목격한 성체 기적들이 사실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볼 수 없지만,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성으로 이미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해져 있었습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나 있었고 이 세상의 모든 미사 때마다 그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주에서 일어난 현상은 단지 그
기적의 현실을 외적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기가 왜 그리 어렵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의 살을 보십시오. 그 살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제가 조금 전에 여기서 식사를 끝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음식이 소화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 소화 작용은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며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소화 과정을
통하지 않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왜 그렇게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까? 주님께서는 소화 기관을 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시어 영화롭게
되신 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화를 입으신 몸을 소화 과정을 통하지 않으시고도 빵과 포도주의 외양으로부터 살과 피의 외양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으십니다. 저는 이것이 그렇게 믿기 힘든 신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시는 것은 음식이 저의 몸 속에 들어가서 소화 작용을 통하여 저의 살과 피로 되는
것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살과 피인 성체의 외양을 빵과 포도주의 외양으로부터 우리가 볼 수 있는 살과 피의 외양으로 바꾸시는 것도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체
성사의 현실을 믿지 않고 온갖 이설(異說)들을 지어서 퍼뜨리고 있으니, 그래서 성체 성사의 현실을 밖으로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체 성사의
현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현실을 믿지 못하고 온갖 희한한 설들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의 생활 안에서의 성모님의
현존과 또 제가 성모님께 마음을 열어놓는 것은 제가 주님과 성령의 움직이심에 마음을 열어놓는데 도움이 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성모님의 임무는
성령을 통하여 완수됩니다. 성령과 성모님의 임무는 마치 손과 장갑과 같은 밀접한 관계입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모님께 대하여 그리고 성모님의 사랑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하심에 훨씬 더 민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더 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저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교황 성하와 교회의 가르치심에 더욱 충실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체 안에 실존하시는 예수님과 미사의 희생 제사의 지극한 가치에 대하여 더욱 깊이 틈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묵주 신공의 가치와 크나큰
힘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성모님을 바로 잘 모신다면, 우리는 성령께 훨씬 더 열려있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훨씬 더 건강한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연 세계에 있어서도 어머니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바로 성장하는 데에 많은 애로를 겪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님을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법 1186조라고 기억합니다만, 하느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정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나주에서의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한 근거이며 전 세계적으로 성모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들의 중요성의 근거입니다. 인간 역사와 교회 역사
안의 이 시점에서 하느님께서는 가톨릭 신자뿐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이들이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그들의 영적인 어머니가 되심을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영적인 차원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와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면, 우리의 하느님과의
관계도 건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건전하지 못하게 되고, 인간들 사이의 참된 사랑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성모님께서는 세계 각처에서 그다지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하여 이루고저 하시는 바와
관련하여 현재 나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드리고 있는 기도가 중국 선교에 이미 크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기도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하고 계시는데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를 통하여 어떤 응답을 얻었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는 자아 포기의 기도라고 불리웁니다. 챨스 드쀼엘의 기도, 즉 성부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는 제가 약 10년간 바치던 주요 기도 중의
하나였습니다. 1971년부터 80년대 초까지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남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하지 않는 것. 단지 그러한 문제를 기도 속으로만 가져가며 주님께 바쳐드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며 신앙이 필요하며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1971년에 저는 회의차 서울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러한 부르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홍콩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봉사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정말로 노동자들을 위하려고 한다면 나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이 확실했습니다.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복음서 안의 인기없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했습니다. 기도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심리적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理性的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받은 신학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학은 해방 신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일간의 피정을
했습니다. 그 피정을 하고 있는 도중에 저는 갑자기 기도를 해야 했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 원한다면, 십자가의 지혜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데 대한 믿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라는 깨우침은 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저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울었습니다. 피정이 끝난 날은 저성 첨례 (All Saints' Day, 11월 1일)였는데 그날 저는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자문자답하다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마음을 주십사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예언을 본다든지
하는 은사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알고 있는 성인들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 바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챨스 드쀼엘의 벽에 있는 그림이 보였습니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그림이었습니다. 제 기도에의 응답으로서, 저의
새로운 마음이란 그분의 사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준 새 마음이란 사실 예수님의 성심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현재 나주 문제를 교회나 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주에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조를 읽고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영어로는 아주 확실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사적 계시의 가치는 신앙에 의해 인도되고 신앙에 충만된
일반 신자들의 상식적인 분별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분별이란 바로 교도권의 인도 하에 일반 신자들이 그들의
신앙에 찬 상식에 의거하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된 사적계시는 교회 역사 안의 어떤 시대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더 충실히 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나주
지방의 교회 당국에서는 그런 인도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약들을 가해왔을 뿐입니다. 신자들의 분별을 이끌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즉 사적 계시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바른 인식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적 계시란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율리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적 계시라는 용어를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과거와 현재의 교회 안의 예언자와 예언에 대해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경우에
주님께서는 삭발 수녀회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성녀는 성 요셉 수녀원을 시작했고, 주님께서 주신 지시를 고해 신부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고해 신부는 그 소식을 성녀의 장상에게 알렸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녀가 이 수녀원을 시작했을 때, 그 지역의
돈있는 유지 신자들이 "수녀들이 아무런 재원이 없지 않느냐, 그러면 수녀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을 하게 될텐데 우리는 거지들이 찾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교나 대교구장을 설득하여 수녀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성녀는 주님께 기도드리며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이 일을 저에게 시작하라고 하셨는데, 당신의 대리자는 중지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녀가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드디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장상의 결정이 나의 결정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여라." 그래서 저는 나주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신부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도록 이제 떠나셔야
겠습니다.
저의 의사가 잘못 전달되는 경험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저는 성령께 기도드립니다. 제가 영감을 받는대로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말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솔직하게 말한데 대하여 염려할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정리되면, 출판하기 전에 저에게
보여주십시요. 제가 저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보호받아야 할 평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율리아와 나주의
형편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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