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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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21일

운명 직전인 자매가 나주 기적수로 살아나다.

 

오늘 38세된 미혼 여성인 신영자 마리아라는 자매가 나주 성모님의 기적수로 운명 직전에 치유된 사실에 대하여 김기돈 아우구스띠누스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너무 좋아 펜을 들었다.

그러니까 2년 전 그 자매는 90년도 초부터 성모 자애 병원과 인천 길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병명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2개월 전부터는 음식은 물론 물 한방울만 먹어도 토하고만 있어 물도 마실 수 없을뿐더러 링겔까지 맞지 못한 채 체중이 20-30Kg이 되고 말았다. 종부 성사까지 받았으나 병이 악화되어가니 그녀의 집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굿이라도 해 보려고 했다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주님과 성모님께 마지막 기도로써 저 세상에서라도 평화를 누리도록 하자고 설득하였다는 것이었다. 뼈만 남아 해골 같아 무서워 보이는 신 마리아 자매에게 아우구스띠누스 형제가 "신 마리아! 예수님, 성모님을 믿습니까?"하자 고개를 끄덕였기에 "이 물은 나주 성모님 물인데 당신이 죽기 전에 성모님께서 당신 젖을 생명수로 주셨으니 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며 마셔봐요"하고 나주 성모님 물을 주었더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던 그 자매가 한 컵의 물을 여러 차례 나누어서 먹었다한다. 물을 마시고 난 뒤 의식을 잃었기에 성모님으로부터 마지막 은총을 입고 죽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려주시어 주님 영광 드러내시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었는데 한시간이 지나자 그 자매가 깨어나서 목이 탄다며 "물을 달라"고 하여 넘치도록 한 컵을 주었더니 단숨에 다 마셨다 한다.

그래서 아우구스띠누스 형제는 당장 죽지 않은 것과 물이라도 먹도록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병원에서 300m의 거리인 집에 도착하니 전화가 오기에 운명한 것이 아닐까? 하고 전화를 받으니 신 마리아 자매가 밥을 달라고 하기에 "먹으면 살 수 있다"며 미음이나 죽을 주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속으로 이것이 바로 옛 어르신들이 말하는 사자밥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마리아 자매는 죽을 먹고 복숭아 통조림 등을 다 먹고 그 다음날은 혼자 택시 타고 다니며 짜장면도 사먹고 시내 공원도 돌아다니고 친척집 방문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자매를 보는 사람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놀라고 뼈만 앙상한 여자가 돌아다니니 마주치는 사람과 택시 기사는 등이 오싹할 정도였단다.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다. 7일간이나 먹지 않고 금식하다가 갑자기 밥을 먹으면 큰 일이 난다고 하는데 성모님께서는 이 자매를 살려내시어 하루빨리 많이 먹여서 살찌우게 하시려나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두고 어찌 주님께 찬미 찬양 드리지 않으리오, 주님! 영광 받으시고 찬미 찬양과 흠숭 받으소서.

 

 

1992년 11월 23일

이 범주 신부님의 나주 방문

 

성모 신심 세미나 5주째 되는 날 염주동 본당에 봉헌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오신 이 범주 (바오로) 신부님을 만났다.

한국 천주교 성령 봉사회 전담 신부요, 성모 신심 그리고 성체 신심 봉사회 지도 신부이신 그는 일반 대학을 나와 교편 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고등 학교 시절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하여 활동하면서 몽포르의 루도비꼬 성인이 쓴 "참된 성모신심"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장차 성모님의 사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성모님의 이끄심으로 지금의 사제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사제로서 성모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리면 좋을까? 하며 생각하다가 성모 신심 세미나를 위한 교육용 책자를 만들어 성모 성년인 1987년에 성모님께 봉헌하게 되었다 한다.

저녁 식사 후 봉헌 미사를 함께 드렸는데 성모 신심 세미나 5주째인 봉헌 미사는 나에게 하라고 하셨다. 미사를 경건하고 힘있게 드리시며 강론도 참 좋았다. 모든 예절이 끝나고 나주에 갔었는데 시간은 저녁 11시경이었다. 나주 성모님집에 몇 번 오셨다는 신부님은 메시지를 모두 읽었다 한다.

성모님은 당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이 왔으니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장미향기를 강하게 풍겨 주시어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물,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 상의 손과 발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실제로 맥박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신부님도 느낀다고 하였다.

 성모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성모님 앞에서 약 2시간 동안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992년 12월 9일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철야 기도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인 어제 나주 성모님 집에서 철야 기도가 있었다. 전주 교구에서 신부님과 수녀님도 오셨다 한다. 철야 기도 중 참석자들에게 퀴즈를 내고 맞추는 이에게는 묵주를 선물로 주었다 한다.

  나주 성모님이 맨 처음 눈물 흘리신 날은?

  피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신 날은?

  최근의 메시지에서는 어디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율리아 자매가 루르드에서 받은 메시지 내용은?

등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큰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완전히 맞춘 이들에게는 5단 묵주를, 비슷하게 맞춘 이는 1단 묵주를 주었는데 그 묵주들을 눈물 흘리신 성모님 상 앞에 봉헌하는 순간 성모상 머리 위에서 많은 기름이 나와 발등까지 흘려 주셨으며 그 기름에서 장미 향기가 진동하였다 한다.

그날 율리아 자매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주요 내용은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시다.

"오늘은 내 어머니 마리아가 나를 이 세상에 보내기 위하여 원죄없이 잉태되신 날이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셨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내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실 때‘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하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내 아버지께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 모두도 내 어머니 마리아를 따라서 더욱 겸손하게 "예" 하고 응답하여라. 너희들의 잘못을 단순하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순명하여 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써 더욱 강렬하게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을 갈망하여라.

그러면 쾌락과 명성, 지위와 권력과 지상 재화 그리고 자존심과 체면 존중이 변하여 영웅적인 행위로 바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자녀들이 내 어머니의 사랑의 말을 따르지 못하고 부정적인 행위로 자기들의 신앙을 고집하며 전승하기에 그들은 닫힌 문 밖에서 서성이며 나를 만나지 못한다.

내 어머니는 너희들이 오로지 숭고한 나의 마음 안에서 더욱 열렬히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에게로 오는데 지름길인 내 어머니를 통하여 어서 나에게로 오너라."

"세상 자녀들에게 게쎄마니와 갈바리아의 고통과 징벌의 시간이 다가오지만 너희 작은 영혼들의 기도와 아름다운 봉헌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1992.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