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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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27일

성모님께서 기적수를 주시다.

             

신광리 산 29번지 7천 평을 육천 오백만원에 계약하였다 한다. 율리오씨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현금과 얼마간의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구입한다는 것이었다.

 율리아 자매는 몇 차례 그 산에서 환시를 보았는데 성모님께서 더러운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 양손으로 들고 발로 밀어 올리며 가파른 언덕위로 힘겹게 올라가셨는데 율리아 자매는 성모님의 왼편에 장부 율리오 형제는 자매의 왼편에 서서 올라갔다 한다.

한참을 올라가시다 빨래감을 내려 놓으시고 앉으시는데 금방 그곳에서 물이 흘러 내리고 그 밑으로 많은 사람들이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아주 기쁘게 놀고 있었다 한다.

율리아 자매도 발을 벗고 물에 들어갔는데 너무너무 깨끗하여 그곳에서 목욕도 했다 한다. 율리아 자매는 성모님께서 빨래하신 장소는 바로 영혼을 씻어 주시는 「영혼의 목욕탕」이라고 이곳을 기적의 샘터로 찾아낸 것이다.

언덕 위로 오르시는 것을 환시로 본 율리아 자매가 비탈길로 오르더니 두 손으로 맨땅을 그냥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매가 손으로 파는 그 곳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1, 2, 3, 4, 5, 6, 그리고 7구멍에서 맑은 물이 위로 솟구쳐 7번이 나오더니 그 뒤로 계속 팠지만 하나를 이루었기에 우리는 성모님의 칠고 칠락을 묵상하며 승리를 노래했다.

한 번 팔때마다 한줄기씩 물이 솟아 나왔는데 그 물의 양은 엄청났다. 한참을 더 파니 바위가 나오고 자갈이 나와 물을 떠먹을 수 있게 될 때 '얕은데서 나온 물이라 건수 냄새가 날텐데…' 하고 인간적인 생각이 앞섰으나 막상 물을 떠서 마셔보니 그렇게 맑고 시원하고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 물은 틀림없이 성모님이 주신 물이지만 그러나 이 물의 오염도 및 수질 검사를 해 보고자하여 율리아 자매의 장부 율리오 형제는 검사를 의뢰했는데 0.0200ppm 이었다. 일반 증류수 0.0286ppm보다 더 맑은 물이라는 것이다. 이때 율리오 형제의 사무실에서 물을 검사하던 직원이 "이 기계가 고장입니다"하자 율리오 형제는 "아, 이 물이 아주 깨끗하고 좋구나"생각하며 "다른 물을 검사해보면 기계고장인지 아닌지 알 것 아닌가"하고 말하자 그 직원은 "아, 그렇지"하고 보통 물과 일반 사용하는 증류수를 검사한 결과 고장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

성모님께서 주신 물이니 세상 사람 모두가 와서 먹고 마시고 바르고 씻으므로 영육간의 치유를 받게 될 것으로 확실하게 믿는다.

 

1992년 11월 2일

하혈병 환자가 성모님이 주신 물로 치유되다.

 

오늘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천 아녜스 자매의 장부는 나주에 몇 차례 왔던 분으로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했는데 당뇨와 간장이 나빠서 병원에 입원했으나 식사를 거의 못했기에 체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나주에서 가져간 성모님께서 주신 물을 마시고 밥맛을 되찾고 건강이 회복되어 한달 만에 체중이 4㎏이나 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 김 기돈 (아우구스띠노)형제는 나주에서 가져간 물을 본인이 마시지 않고 인천의 길병원에 입원한 자매가 산후 하혈이 너무 심하여 중환자실에 있는데 생명이 위독하다고 하여 나주 성모님의 젖이라고 생각하는 기적수를 조금 주어 그 물을 마시게 했더니 그 물을 먹고 절망 상태였던 산모의 하혈이 멈추고 정상으로 돌아와 산모와 아기가 치유 받아 건강해 졌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 너무 기뻤다. 이제 그런 기적들은 계속 될 것이다.

 

 

1992년 11월 2일

독일 엘레나 수녀의 나주 성모님 증언

 

이 곳 염주동 본당에서 성모 신심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오늘 저녁 둘째 주 강의는 서울 성령봉사회 엘레나 스미트 수녀님이 하셨다. 한 시간 강의 후 사제관에 들러 차 한잔 드시면서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수녀님은 "나주에 가서 직접 체험을 하였기에 누가 뭐라 해도 그 징표의 진실성을 믿는다"라고 하셨다.

언젠가 휴가 때 나주 성모님의 집에 가서 성모님 상의 성모님의 손을 잡았을 때 맥박을 느꼈으며 "성모님은 왜 우시나요? 성모님은 왜 슬퍼하시나요? 저도 눈물을 흘리게 해 주세요" 하자 그 순간 수녀님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으며 휴가 동안에도 계속 눈물이 그치지 않아 하도 이상해서 서울 성모 병원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별 이상이 없으니 안약을 바르라고 안약을 주었다 한다. 집에 와서 안약을 눈에 넣으니 눈이 더 아프기 시작하여 그 약을 버리고 성모님 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성모님! 죄송합니다. 나주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이 진실한가? 하고 의심했었습니다. 저의 불신을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순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즉시 그쳤다고 한다. 이러한 체험 때문에 나주 성모님의 징표에 대해서 확실히 믿고 증언한다고 했다.

나는 수녀님에게 영어판 메시지와 테이프 그리고 다른 유인물을 드렸더니 아주 감사하며 좋아하셨다. 수녀님은 독일인이지만 한국말이 수준급이신데 이런 질문을 하셨다. "성모님께서 한국 나주에서 징표와 메시지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성모님께서 1991년 9월 17일날 "내가 무척 사랑한 막내자녀인 한국을 통하여 나의 사랑과 승리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가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91년 11월 4일에는 "작은 이 땅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비옥해진 이 땅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작은 영혼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빛이 비추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 안에서 나의 티없는 성심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는 어머니요 아내요 주부인 평신도에게 주신 점이 루르드나 파티마, 바뇌의 그것과는 다른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1858년 벨라뎃다 소녀에게 발현하시어 당신이 무염 시태 성모라고 일러주신 것은 그 때 성모님의 원죄에 대한 논란이 교회 내외에 많았기 때문일 것이고 1917년 파티마에서 3명의 어린이들에게 나타나시어 주신 메시지는 세계 대전 중에 하신 예언의 말씀으로 러시아(공산당 창설)의 회두를 위해 보속하고 기도, 특히 묵주기도를 하도록 요청하셨던 것이다.  

이에 반해 1985년 한국 나주에서 네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남편이 있는 한가정의 주부인 율리아 자매에게 발현하시어 가톨릭 역사상 유래 없는 징표와 메시지를 주시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만연한 낙태 문제, 이혼 문제, 사제들의 문제, 신자들의 신앙 불감증과 형식주의를 경고하시면서 고해 성사의 중요성과 성체성사의 신비와 그 중요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성모님께서 특별히 호소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성모님께서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성모님을 따르는 자녀가 극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녀들을 일깨워 주시는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이라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니 엘레나 수녀님도 동조하시면서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가 너무 좋고 우리 전통적인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