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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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 14일

사랑의 집 할머니 선종하시다.

 

윤 율리아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 나주군 신광리 「사랑의 집」양노원에 모셨던 최 안나 할머니가 오늘 선종하셨다.

최 안나 할머니는 젊어서 여 경찰이었는데 결혼하여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다가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하고 40여 년을 혼자 살다가 뒤늦게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를 만나 같이 산지 1년 후에 고치기에는 이미 늦은 자궁암 말기로 사형 선고를 받고 입원했는데 그 사이 남자는 살림을 다 가져가 버렸기에 집에 돌아온 그는 가슴을 치며 울다가 홧병까지 겹쳐 몸부림하고 있을 때 병은 더욱 악화되어 환부의 썩은 냄새가 이웃집까지 나자 월세 기한이 두 달이나 남았는데도 집 주인이 거동도 못하는 그를 나주 종합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입원실에서도 악취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병원을 옮기거나 퇴원을 하니 병원 측에서는 할머니에게 퇴원하라고 성화를 해댔다. 그러나 기저귀를 찬 채 움직일 수조차도 없었던 그는 병원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고자 하였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퇴원해서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으나 셋집에서도 그 할머니를 살게 할 순 없다며 이미 방을 다 치워 버렸으니 그 집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때 율리아 자매가 이 딱한 사정을 듣고 찾아가 기도해주고 병원 측에도 찾아가 "크리스마스가 모래이니까 그때까지만 봐주시면 제가 모셔가겠습니다"하고 사정사정 한 뒤 집으로 돌아와 급한 일을 보고 먹을 것과 기저귀며 물건 등을 챙겨 가지고 병원을 찾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에게 물었으나 모른다고 하여 수소문해서 그를 찾아가보니 눈물겨운 장면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강 추위의 12월 23일 밤 그는 불도 없는 냉방에서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에 들어가 보니 세찬 바람이 문풍지도 없는 방으로 계속 들어와 방문했던 사람들조차 발이 얼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혹독한 강풍이 부는 추위였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율리아 자매는 환자를 붙들고 대성 통곡을 하며 즉시 그 할머니를 경당의 손님방으로 모셔갔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26일날 자매가 운영하는 양노원 「사랑의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주님께 향한 율리아 자매의 깊은 사랑의 기도로 악취는 장미향기로 바뀌었고 그의 건강은 매우 좋아져 못 먹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할머니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하며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게 연락하여 맡겨논 패물과 돈을 돌려 달라고 하였으나 피를 나눈 친동생마저 그로부터 등을 돌려버려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율리아 자매가 "주님과 성모님만 보고 삽시다"하고 달래어 그 이후로는 아주 기쁘게 살다가 저 세상에 가신 것이다.

「사랑의 집」은 1995년 8월 15일에 개원하여 방 마리아, 이 로사 할머니를 모셨는데 1995년 9월 28일 새벽에 방 마리아 할머니가 선종하여 양산동 천주교 묘지에 묻었으며, 나머지 이 로사 할머니 등은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하시며 감사해 하신다.


 

1996년 3월 1일

예수회 아우구스띠누스 신부님의 증언

 

월남 출신 예수회 아우구스띠누스 신부님이 지난 월요일 나주 성모님의 집에 오셨다. 1967년에 월남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시고 공산 정권에 의해 예수회가 철수됨에 따라 불란서에서 유학하시고 미국, 필리핀을 거쳐 현재 호주에서 사목하고 계신다.

1993년에 나주 성모님에 대해 알았고 미국의 이 상민 분도 형제를 통해 비디오 테이프와 영어판 메시지 책을 구하여 보고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틀간 이 곳 염주동 사제관에 머물면서 같이 미사도 드렸다. 떠나면서 내게 말하기를

"성체께서 내려오신 나주의 일은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이태리 란치아노처럼 성체를 성광에 모셔 순례자들이 모두 조배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하시면서 한국에 오기 전 로마 바티칸 교황님의 개인 비서인 몬시뇰 투를 만났는데, 교황님께서 "나주를 믿는다. 그러나 교구 주교가 조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한다.

 나는 성모님께서 아우구스띠누스 신부님을 나주로 부르셨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읽으셨기에 93년부터 나주 성모님께 월남의 신앙의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셨고, 교황님께서 나주 성모님을 온전히 신뢰하시지만 지방 교구의 주교님도 신중히 배려하시는 깊은 심중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빈다.

조사 위원회가 마지막으로 윤 율리아 자매를 불러 조사했고 나주 성모님의 집에 와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조사해 갔다고 하니 이제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뜻하시는대로 조사가 마무리되어야 할텐데 혹시라도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신 교황님께서도 받아 들이시는 나주 성모님의 일들이 잘못되면 안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율리아 자매가 조사를 받을 때 메시지나 증표에 대해서 즉 눈물과 피눈물이나 향유, 성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성모님이 메시지를 주시려면 하늘에서 내려와야 되는데 추워서 어떻게 내려올 수 있느냐?"는 등 야유하며 비아냥 거리는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