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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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26일

고 카타리나 자매 병 문안


어제 계림동 본당 교우 고 카타리나 자매에게 병 문안을 갔다. 자매는 지금 폐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인데 자녀 없이 장부 시몬 형제와 함께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봉사하며 살아온 작은 영혼이다. 성 프란치스코 재속 회원으로서 수도자답게 자신의 삶을 내놓고 첫 째도 전교, 둘 째도 전교, 셋 째도 전교라며 백방으로 전교하러 다니면서 대녀도 수 백 명이나 된다.

내가 계림동 본당에 재직 중 성모회 회장으로서 본당 살림의 궂은 일은 모두 도맡아 하신 할머니신데 본당 대모님이라 해도 옳을 것이다. 나는 보좌 신부 황 바오로와 함께 방문하여 기도하는데 자매님의 얼굴에 빛이 났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밖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채 오히려 감사하며 봉헌된 삶을 사시는 것 같다.

늙어 노망하기보다 암을 주시어서 자신과 이웃을 위해 보속할 수 있도록 3년 전부터 기도하여 왔다고 하면서 문병 온 사람에게 자신의 영적 체험과 살아온 과거 신앙 체험담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생명의 귀함을 모두가 알기에 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고 영생에로 가는 새로운 생명의 모습으로 기도할 때 힘이 생긴다고 한다.

스카풀라를 목에 걸어주며 손가락에 1단 묵주를 끼워주고 나주 성모님의 사진 (성체기적)과 메시지 테이프를 주고 돌아왔다.

병문안을 하러 갔던 나 자신이 오히려 위로와 기쁨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린다.


 

1993년 12월 8일

평화 방송국 사장 박신언 신부 증언

 

6일 서울 평화 방송국 사장 박 신언 신부가 광주 교구 윤 대주교님을 뵈오러 광주에 오게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우리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체 신심 세미나 봉헌식을 위해 전국 담당 신부인 이 범주 신부님도 오셨기에 함께 봉헌 미사에 참례하여 저녁 10시 30분에야 끝났는데 박 신부는 나주의 성모님께 가기 위해 계속 묵주 기도를 20단이나 바치고 있었다.

마음을 열고 성모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으로 묵주 기도를 바쳤다는 것이다. 훌륭한 사제이시다.

15년 전 군종 신부로 있었을 때 교통 사고로 죽음의 터널에서 깨어난 경험을 하면서 그 때부터 열심히 살고 계시는데 요즘은 아침 5시에 기상하여 한시간 동안 성체 조배하시는 열심한 신부님이시다.

밤 10시 45분에 나주를 향해 출발하였고 차내에서 율리아의 생애와 나주 성모님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신부님의 친지도 이 곳 본당에 사는데 나와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고 급기야는 나주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고 하였다.

성모님의 집에 도착하여 향유 흘리신 성모님 상 앞에 꿇어 기도하였다. 장미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였으며 흐르고 있는 향유도 성모님 상의 발치에 고여있었다. 신부님은 그 향유를 손에 찍어 보시더니 끈적거리는 향유에 놀랍기만 하다고 하였으며 그것을 기도하러 온 순례자들의 이마에 발라 주시며 강복해 주셨다.

성모님 상의 발에서 두근거리는 맥박을 느끼셨는데 손에 전해지는 감촉이 석고가 아니라 살아계신 몸으로 느꼈다고 증언하셨다.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사제에게 당신의 살아있는 현존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였는데 이 범주(바오로) 신부님은 그 때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신부님은 세미나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으나 전에 세번이나 나주에 다녀왔다고 한다.

박 신부님은 이 신부님에게 향유에 대해서 그리고 맥박에 대해서 "믿어야 되나, 안 믿어야 되나?"하고 묻는 것이었고 이 신부는 "있는 그대로 믿어야죠,"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어제 저녁에 있었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박 신부님은 서울의 형님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체험담을 말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전화했을 때 형님이 피곤할 테니 나주에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봉헌된 삶을 사는 착한 사제들이 있기에 오늘날 눈물과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께서 위로를 받으실 것이다.

 오늘 성모님 무염 시태 대축일 아침 6시 50분에 향유를 많이 흘려주셨다고 한다. 성모님이 사랑하는 사제에게 당신의 현존, 사랑, 우정을 보여주셨나보다.


 

1993년 12월 17일

꿈에서 본 윤대주교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어제 밤 꿈이 생각났다.

나는 꿈을 꾸어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뚜렷이 기억할 수가 있었다. 윤 대주교님께서 혼자 말(馬수레)을 타고 나주의 성모님 집으로 가고 계셨는데 외롭게만 보였기에 나는 생각했다. '주교님께서 나주 성모님을 뵙고는 싶지만 주위 신부님들의 이목 때문에 못 가시는 것은 아닐까? 혹은 주위 신부들의 반대 때문에 혼자 외롭게 나주의 성모님께 마음을 향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하며 생각해 보았다.

지난 11일 주교님의 요청으로 주교관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주교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지금도 나주에 자주 가느냐? 라고 물으시면서 그것은 대답 안해도 좋지만 혹시 고해 성사줄 때 보속으로 나주에 가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전에 가톨릭 신문사 사장 최현철 신부, 대구 가톨릭대 교수 이홍근 신부, 성령 쇄신 전국지도 신부인 이 범주 신부 그리고 평화 방송 사장 박 신언 신부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고 그 때마다 나주 주임 신부에게 보고했었습니다. 그런데 고해 성사 사건은 금시초문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 사건의 유언비어가 많다는 것을 주교님께서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주교님의 강복을 받고나서 나주 성모님께서 흘려주신 향유천을 드렸더니 그 순간 주교님의 방에 장미 향기가 가득했다.

영세반 종합 교리와 면접을 마치고 피곤해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11시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주 율리아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으니 강복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능욕을 기워 갚기 위한 목요 성시간에 율리아 자매가 경당에 가서 순례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도중 심한 기침과 함께 배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날 목포에서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가 왔었는데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해 주자 암 환자의 기침이 그쳤고 바위처럼 굳어진 배가 부드럽게 되기 시작하였으며 그후 기적수를 몇 잔 마시고 나서는 배가 푹 꺼졌다 한다.

암 환자는 오 데레사 라는 자매인데 임파선 암으로 1992년 11월 수술하여 혹을 떼냈다 한다. 그런데 1993년 11월 갑자기 쓰러져 골롬반 병원에 갔으나 더 큰 병원으로 옮기라하여 광주 전남 대학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였는데 그 병원에서도 어찌할 수 없다며 1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한다. 물도 마실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주 성모님 집을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 환자가 오기 전 며칠 동안 율리아 자매는 심한 기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감기인줄 알고 계속 치료를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는데 목요일 저녁 기도하면서 기침이 더 심해졌고 암 환자를 위해 기도하자 심한 복통까지 앓게 되었다. 자매의 배가 낙태 보속 고통 때보다 더 심하게 부르며 고통을 받아 여러 자매가 손발을 잡고 율리아 자매의 거쳐인 다락방에 옮기던 중 중간계단까지 가다가 더 이상 옮기지 못하고 강복을 청했던 것이다.

그 환자는 물 한모금도 넘기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성모님 물 10컵을 다 마시고나서 굳은 배가 말랑말랑해지고 온몸에 부기가 빠지면서 화장실도 걸어서 갈 수가 있었고 얼마 후에는 김치에다 밥까지 먹게 되었다 한다.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