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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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10일

깊은 사랑은 세상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다.

 

어제 율리아 자매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죽음에 이르렀다.

캄캄한 곳에 누워 있었는데 파란 망토를 걸치신 성모님께서 찬란한 빛을 발하시며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시어 슬프게 우시면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어서 세상에 나가 외쳐야 한다" 하시며 율리아 자매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는데 그때 죽음에서 살려 내신 것이었다. 율리아 자매가 더 이상 죽음에 이르도록 극심한 고통은 안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자매에게 당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해 본다. 이날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분노하고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덕이 될 모든 행동을 마비시키며,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믿음을 소멸시킨다. 어서 내 은총에 대하여 신뢰하는 마음으로 '예'하고 응답하여라." "믿음과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믿음은 저 높은 산을 옮길 수 있지만 그러나 깊은 사랑은 세상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단다."

"자녀들아! 더욱 낮아지고 작아지자. 성부의 독생 성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보잘 것 없는 말구유에 내려놓았는지 아느냐? 그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에게 섬김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무죄하고, 유순한 어린양으로 변장하고 약탈하는 늑대들의 공격에서 많은 영혼들을 보호해야 될 너희가 섬김을 받으려 하면 안된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행하였던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겸손하게 너희를 낮추어라." "어서 일어나 세상을 이단으로 휩쓰는 악의 세력에 너희의 사랑으로 충성을 다하여 대적하기 바란다."


 

1996년 9월 2일

이집트 순례기

 

일기를 쓴 지가 퍽 오래간만이다. 지난 7월 22일 부터 8월 7일까지 33명의 본당 교우들을 인솔하고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이집트, 이스라엘, 로마, 바티칸, 아씨시, 피렌체, 밀라노, 취리히이다. 먼저 이집트에 대해서 몇 가지를 기록해 본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곳 나일강의 기적을 이룬 이집트는 가난한 후진국으로 전락됐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난 저력있는 민족으로 보여졌다. 조상을 잘 섬기는 민족이며 코란 법을 따르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죽여도 된다는 율법주의적인 민족이었다.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수많은 유물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나라인데 그 유산들을 상대로 먹고사는 민족이다. 지금으로부터 4600년 전 7월 - 10월 사이로 10만 인원을 동원하여 20년간 쌓아올린 피라미드를 조서왕이 만들었다는데 BC 2690년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하늘의 계단이 보였다는데서 감흥을 받아 구상했다고 하며 △ 피라미드 모양은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나이 산으로 나오는데 도심 속에 무덤이 너무 많아 마치 무덤 아파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주위에는 집이 없어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수백년 된 무덤들은 대부분 힘있는 자의 무덤이기에 무덤을 옮길 수가 없어서 도시 발전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일일장을 치루는 것은 영혼이 즉시 하늘에 오른다는 신앙관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관 속에 넣어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무덤은 땅속 지하방을 만들고 봉한다. 같은 무덤에 묻을 때 전에 묻었던 유해는 추려놓고 그 자리에 관을 묻어 안치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모스크의 확성기에서 계속 기도하자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들은 아랍의 선조를 아브라함이라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난 자식이 이스마엘인데 하갈이 사라에 의해 ?겨나 사막에서 방황해야 했던 민족이 아랍의 원조인 것이다. 사막에서 살아왔던 그들이 오늘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으로 종교 박해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이집트가 이슬람교 외에는 타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고 믿게 되면 국외로 추방당하게 되는데 특히 아프리카 수단이 종교 박해를 가장 심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12만 명이 희생하여 개발한 수에즈 운하,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는 27개 모하메디, 함니 터널로 모세의 지팡이가 없어도 쉽게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모세가 건넜던 갈대 바다가 수에즈 운하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며 6일 전쟁 때 빼앗겼던 홍해를 이집트에 돌려줌으로써 막대한 유전이 매장되어있는 홍해가 이집트의 보화가 되고 있다. 가끔 오아시스를 볼 수가 있는데 그곳은 쉼터라는 나무가 있는 곳을 말한다.

모세의 우물터인 아윤(물), 무샤(모세)에 들렸었는데 베디윈 족의 부녀들과 애들이 모여 있었다. 4만여 명이 있는 베디윈 족은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방랑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번 순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해발 2285m의 시나이산인데 750개의 계단이 있었다.

모세는 40년간 궁중 생활을 하다가 40세에 도망하여 80세에 출애굽할 때 장정만 60만명을 대동하였다고 하며 2차례나 시나이 산에 올라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시나이 산 입구에서 하룻밤을 쉬고 새벽 2시에 기상하여 3시에 어둠 속을 헤치며 일부는 걸어가고 일부는 낙타를 타고 산 중턱에서 내려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오르니 동이 텄다. 바다에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으며 그 곳에서 우리 일행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듯하여 감개무량하였다.

미사 끝에 우리 모두는 큰 소리로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을 부르며 외쳤다. 힘든 걸음으로 하산하니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있었는데 헤레나 성녀의 후원으로 6세기경에 완성한 이 수도원은 동방 교회 소속인데 성당만 개방하고 수도원은 봉쇄하였다.

우리 일행은 또 뜨거운 아스팔트를 버스로 달리는데 풀 한포기 없는 바위 산 들이 계속 펼쳐졌기에 지루하고 피곤하여 잠깐 잠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키던 때는 이 길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집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면서 광활한 광야를 개발하고 있었다. 멀지 않아 녹색 혁명이 일어날 이집트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골드 해협인 홍해 지역 뉴에봐에서 점심을 먹고 출애굽할 때에 잠깐 머물렀던 에일락(지금은 휴양 도시)을 거쳐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는데 조사가 얼마나 철저한지 이스라엘의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스라엘 첫 방문지는 유태인의 마지막 항거 성지인 맛사이다였는데 높이 400m로 돌출이 되어 로마 군인들이 1년 반 동안 정복하지 못한 유태인의 자존심이며 마지막 요새였다. 로마인들이 흙과 돌로 길을 만들어 올라왔을 때는 이미 부녀자와 애들 5명만 남아 있고 모두는 자결했는데 이것은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기 위한 증거 자료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