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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에서 온 편지들

나주관련 언론 기사들

PD 수첩과 나주 진실

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희생"과 "보속"의 의미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의 가르침: 순명(순종)에 대하여

광주대교구 신부님들께 (이런 경우 신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광주 대교구 신부님들께 (율리아 자매는 어떤 사람인가?)

이번 광주대교구의 공지문은 억지입니다.

고통에 짓눌리는 삶에서 나주성모님을 뵙고 기쁜 삶으로

주님은 휘두르는 칼 앞에서 다시 사랑을 보이셨다

국경 없는 미사가 주는 감동

제가 본것만을 그대로 적습니다.

7월 2일 첫토요일 엄청난 성혈 방울들이 순례자들 위로....

종아리만 때리지 말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성모님집은 저희들을 올바르게 인도해주시는곳

30일 성심의 성혈이 첫토요일에도 튀었어요.

희생"과 "보속"의 의미
 (은총은 강물처럼 자유게시판의 "희생"과 "보속"의 의미에 대한 질문의 답변입니다.)


 "희생"과 "보속"이라는 말은 일반 생활이나 교회 안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라고 봅니다.  "보속"이라는 말이 사회에서는 잘 안 쓰인다고 하여도, "진 빚을 갚는다," "끼친 상처를 치료해준다," "끼친 손해를 보상한다," "죄값을 치른다," 등은 일반적으로 익숙한 개념입니다.

즉, "보속," 즉 "갚아준다,"라는 말은 우리가 누구에게 나쁜 결과를 끼쳐주었을 때 이를 원상태대로 회복시켜준다는 뜻이며,  또 누구에게 마땅히 좋은 것을 줄 의무가 있었는데 주지 못했던 데 대한 보상을 한다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즉, 이웃의 건강이나 명예나 재물 등을 해쳤을 때 갚아주는 것은 전자의 경우일 것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했다든지 가족을 돌볼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을 때, 또는 공인으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이에 대한 보상 내지 만회를 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일 것입니다.  

"희생"이란 손해끼친 것을 갚아주어 원상태를 회복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나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이들을 위해준다라고 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보속"이나 "희생"의 개념은 자아 중심의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뜻으로서, 진리와 정의를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내가 진리나 정의를 손상했다면 이를 바로잡고 보상을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다른 이를 돕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나 자신의 것을 소모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하는 촛불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는 인간의 삶을 참으로 값지고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보속"과 "희생"의 마음과 노력이 없다면 인간 사회는 지탱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정의와 진리를 덮어두는 경우들도 많으며, 나를 위하여 남들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결집력도 없고 와해되기 쉬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심지있고 저력있는 사회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정의감과 애족심으로 차있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또 지금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반드시 역사책에 기록될만큼 위대한 공헌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 길에서 유리 조각 하나를 집어서 치우는 사소한 일, 거짓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는 용기, 직장에서 회사와 동료를 위하여 드러나지 않게 충실하는 일들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주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시어 세상에 거하시면서 하신 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속과 희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살지 않으시고, 인류가 지은 죄악들을 보속하며,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희생의 삶을 살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도 보속과 희생의 삶을 살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충성은 오류를 버리는 행위로써 증명되며, 정의감은 정의가 짓밟힌 것을 보속하려는 노력으로써 확인되며, 참된 사랑은 희생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무한히 정의로우시고 무한히 선하시며 무한히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지성과 자유 의지를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좋으심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하신 하느님의 생명과 왕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들이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눈앞의 유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의와 진리가 유린되고 남들의 존엄성과 유익이 손상되는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즉 인간들이 죄를 지었으며 따라서 하느님을 거스렸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거스렸으니, 이에는 무한한 가치의 보속이 필요하였고, 바로 이것이 천주 성자께서 인성을 취하시어 고통을 받으심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분의 구원 활동에 의지하고 연결되어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걸음으로써 자신도 구하고 남들의 구원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보속"에 대한 개념이 흐려져서, "믿고 회개함으로써만"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할 필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충청도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이가 한양으로 가려고 하는데, 고의든 아니든간에 부산이나 목포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그는 점점 더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참 가다가 그가 잘못을 깨닫고 되돌아섰다면, 그는 그제사 바른 방향으로 가는 이가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회개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지금까지 잘못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거나 미워하고 있었다면, 그것을 뉘우치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끼쳐진 해악의 결과를 치유하는 일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과 자신의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니겠지요.  문제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유익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어 지고하시고 완전하시며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순명하고 사랑해야 할 의무를 외면하며, 또한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도 등한시해온 데 대한 보속의 필요성, 그리고 남의 구원을 도와주기 위한 희생의 중요성이 망각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나주에서도 성모님께서는 그에 대한 메시지를 거듭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도와서 온통 보속과 희생으로 연속된 사랑의 삶을 사셨던 성모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개인들이 따로 따로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가족입니다.  따라서 서로를 위해서 짐을 져주고 고생을 기꺼이 견디는 것이 당연한 곳입니다.  한 가족 안에서의 단결과 희생에 익숙해져있는 우리 민족이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그와 같은 사랑의 실천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족한 설명이지만, 도움이 되셨다면 기쁘겠습니다. 


이 분도 드림

2000년 1월 16일

 

 

  Name    FIAT

 Subject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의 가르침: 순명(순종)에 대하여

 

1. 우리나라의 일부 주교님들과 과격한 신부님들은 광주대교구 교구장의 나주관련 공지문이 하느님법과 교회법에 어긋나는 많은 오류와 불합리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교의 가르침과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신자들 앞에서 공지문을 공공연히 낭독하고, 공지문을 따르지 않는 경우엔 불순종의 죄 등 온갖 죄목을 덮어 씌우고 심지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도 못 받게 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오류를 강요한다고 합니다.

오류를 진리라고 가르치고 진리를 거슬러 이성(理性, reason)에 반하는 것을 명하더라도 권위(權位, authority)의 명령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런 분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이는 순명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순명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맘에서 신심학의 박사이신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성인의 가르침을 인용합니다.

2. "비록 장상들이 무식하고 그들의 무식에 따라, 게다가 또 험난하고 위험한 길로 아랫사람들을 인도하더라도, <<<분명히 죄가 아니고 하느님과 성교회의 계명에 어긋나지도 않는>>> 모든 것에 복종하는 아랫사람들은 결코 잘못할 수가 없다고 내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영적담화 66쪽)

"장상들이 하거나 말하거나 허락하거나 금하거나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에 분명히 어긋나지만 않으면>>> 모두 찬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명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은 순종해도 안 되고 찬성해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를 빼놓고는 아랫사람들은 장상이들이 썩 잘하며 그렇게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항상 믿어야 하고 자신의 판단력에 그렇게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장상으로 장상을 아랫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니, 우리를 장상의 입장을 검사하는 사람으로 만들겠기 때문입니다." (같은 책, 68쪽)

3. 주교님의 가르침과 명령이 하느님법과 교회법을 거스르는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순명을 강요하는 분들 중에는, 비유를 들어 장상이 아랫사람에게 나무를 거꾸로 심어라 하더라도 아랫사람은 그런 장상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참된 순명이라고 하면서, 나주관련 공지문도 주교님의 뜻이니 신자들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나무를 거꾸로 심는 행위 자체가 그 어떤 진리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무를 거꾸로 심어라는 장상의 명령과, 진리를 오류로 둔갑시키고 오류를 진리인 양 가르치며 오류를 받아들일 것을 명함으로써 가톨릭신앙을 손상시키고 신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며 진리를 거부하도록 강요하는 주교님의 공지문은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4. 인간은 지성능력(知性能力, power of intellect)과 의지능력(意志能力, power of will)에 바탕한 자유(自由, freedom)를 행사하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기만과 허위와 거짓에서 비롯하는 온갖 오류를 물리치고 진리를 수용할 때 실현되고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참된 의미는 매순간 선(善, good)을 사랑하고 행하며 악(惡, evil)을 피하는 자유로운 결단을 통해서 인간본성(人間本性, human nature)을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인간본성을 초월하는 진, 선, 미 자체이신 하느님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순명을 빙자하여 오류를 강요하는 분들은 자유 덕분에 존엄한 인간을 오류로 칠갑하여 악에 굴복하는 비열한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셔야 할 것입니다.


 

Name    소나무

Subject    광주대교구 신부 님들께
              (이런 경우 신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광주대교구 신부님들께 (이런 경우 신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대리자시며 베드로의 후계자이신 신부님. 신부님께 하느님의 무한하신 평화와 사랑이 함께 하길 기도드립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신부님을 목자로 세우시고 양떼들을 잘 돌보도록 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 명령에 따라 양떼인 저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시고 시원한 물가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에 대해 그 어떤 말로 감사를 드린들 지나치겠습니까.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 시대는 비인간화의 현상이 가속되어 삶의 터전 구석구석에 상처가 나서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병리현상이 만연하여 목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양떼의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이에 풀밭은 사막화되고 물은 말라가고 양떼들은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입니다. 따라서 목자이신 신부님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일부의 양떼들이 여기 아주 훌륭한 목초지와 맑은 물이 쉼없이 흘러내리는 곳이 있다며 몰려가고 있으니 목자이신 신부님들께서는 당연히 긴장하시겠지요. 혹시나 그 풀밭에 독초가 없는지 물은 오염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될 테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에 나주 성모님의 집과 성모님 동산에 순례를 가면서 그런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맺고 있는 열매를 보면서, 어떻게든 올바른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시점까지 왔다는 걸 느낍니다. 공지 이전 윤 대주교님께서도“눈물이나 피눈물을 보신 분들이 너무 많으니 부정할 수 없고 메시지도 오류가 있는지 찾아보아도 찾질 못했으니 이제는 열매를 보겠다,”하셨지요.

이에 그 열매를 보며 건전한 사고와 깨어 있는 의식으로 판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 판단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한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안되고 조금의 거짓이 개입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이에 근거하여 저 나름대로 판단하건대 결단코 풀밭에 독초는 없고 물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신부님들께서 그 풀밭에 독초가 가득하고 물은 썩었으니 가지 말라고 막으시니 저희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독초가 가득하다면 무엇이 독초고 물이 썩었다면 어떤 부분이 그런지 밝혀 주셔야 마땅합니다. 지금껏 핵심을 피하고 부풀린 소문에 근거하거나 추정적인 말로 주변적인 이야기만 하시니 불신만 가중될 뿐입니다.

지금 저는 신부님을 설득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배경을 말씀드림으로 신부님이 알고 계시는 정보의 거짓과 부당함에서 벗어나 진실에 더욱 접근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몇 가지 질문을 통하여 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로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여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죄의 길에서 건져 주려 하시며 병은 치유해 주려 하시고 상처는 어루만져 주고 싶어하십니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 성모님께서 지금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땅이 비옥하여 풀은 무성하고 맑고 향기로운 물이 쉼없이 흐르고 있으니 양떼가 모여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막는 교회의 처사는 매우 부당합니다. 이제 말씀드린 대로 몇 가지 물음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이유로 냉담자가 되어 교회의 품을 떠났다가 나주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알게 되어 회개하여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다면 신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못 가게 막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려 수술하기 위해 머리나 가슴이나 배를 열었다가 병이 전이되고 깊어져 어떻게 손쓸 수조차 없어 그대로 닫고 죽음을 기다리던 중 나주 성모님의 집을 방문하여 주님 성모님의 사랑의 손길로 치유를 받았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못 가게 막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사정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목숨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나주 성모님을 찾아뵙고 눈물을 흘리고 회심하여 의욕을 찾고 누구보다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가지 말라 한 곳이니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친지나 가족 간의 불화로 한을 가슴 깊이 품고 어둠 속에 살다가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나서 모든 잘못이 오히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화해를 청하고 한에서 벗어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 때도 가지 말라 막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세속의 일에 매여 적당히 타협하며 죄의식없이 살다가 우연히마리아의 구원방주 나주 성모님 사이트에 들어왔다가 생활의 기도를 배우고 한순간 한순간의 삶을 기도로 봉헌하며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사실입니다. 한두 명이 아닌 수백 수천의 사람이 체험자며 목격자니 확인해 보시면 금방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가 조금이라도 아량을 갖고 있다면 먼저 이것부터 조사해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올 신부님. 저는 지금 인준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진실은 어떻게든 밝혀져야 하며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입니다.

신부님의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하나가 위와 같은 경우에 처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래도 막으시겠습니까? 정녕 막으시겠습니까?

거짓된 내용(무엇이 거짓인지는 게시판의 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저도 다음의 편지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의 핵심을 피해간 공지문(열매를 보겠다 해 놓고선 열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조차 없을 뿐 아니라 오류에 젖어 있음.)과 주장(거짓 소문들)에 의해 국내의 순례객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방문하는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까지도 몽땅 거짓 현시에 현혹되어 기적을 좇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천박한 족속이 되어 버렸으니 저희 입장에선 누명을 벗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 성모님 입장에서도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자니 어찌 피와 눈물을 쏟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명령이니 입을 꼭 다물고 있으란 말은 마시고 신앙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조사를 하셔서 꼭 진실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형태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맘은 추호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일곱 상처를 묵상하면서 일곱 번의 편지를 올릴까 합니다. 아무쪼록 자비의 맘으로 읽어 주시기를 청하며 평화가 신부님과 함께 하길 기도드립니다. <1> 

 

 

Name    소나무

Subject    광주 대교구 신부님들께 (율리아 자매는 어떤 사람인가?)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온누리에 가득한 주님의 평화를 마음 가득 받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한치의 오차 없이 운행되는 자연의 질서를 보며 그 분의 무한한 자비를 느낍니다.

오늘은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나주에서의 모든 기적 현상은 율리아 자매님을 통하거나 그 분 주변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나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정보를 만족할 만할 정도로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저의 사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추정적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받아들이고 들이지 않고는 자유나 이 이야기가 나주 문제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는 매우 예민할 뿐 아니라 사적인 문제에도 연결되어 있어서 이야깃거리로 삼기가 매우 꺼려지는 논제입니다. 그렇지만 세간에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판단과 추측성 소문이 너무나 많이 난무하고 있어서 누군가 나서서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더 큰 오해가 퍼져나가 진실이 영영 가려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거짓이 난무하는 곳에는 마귀가 들끓는 법입니다.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분의 영(성)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시자로서의 그 분이 환시를 보거나 메시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이나 성모님 또는 성부님, 성령님과의 영적 교류를 통해서일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 분은 육신의 옷도 입고 있어서 한 인간임을 피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영적인 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분이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현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더욱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다는 말은 영적인 눈과 영적인 판단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걸 말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만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를 알아볼 수 있다.- 저는 자격이 없으므로 몇 가지 자료를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러자면 자연 율리아님의 묵상록 -님 향한 사랑의 길-과 -나주 성모님 메시지- 책자와 율리아 자매님 자신과 주변의 여러 가지 기적 현상을 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님 향한 사랑의 길'을 읽으면서 저는 영성의 발전을 위해서 그만한 책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셈치고 사는 삶의 자기 희생적 사랑과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한순간 한순간 기도로 봉헌하는 생활의 기도는 분명 우리의 영성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줄 것임은 자명합니다.

'나주 성모님 메시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빨리 회개하여 사랑이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용서와 회개, 봉헌의 삶, 희생, 자아 포기, 사랑과 기쁨과 평화- 등이 될 것입니다. 메시지는 신앙의 핵심을 쉬운 말로 풀어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율리아 자매님의 영성이며 그 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 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메시지가 진실이라면 주님이나 성모님께서 "내 작은 영혼아, 내가 간택한 딸, 사랑하는 딸아."하셨으니 율리아 자매님은 영적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께 깊이 일치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비밀이 풀렸습니다. 그 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적 현상은 바로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징표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 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신앙과 직결된 영성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는 제쳐두고 주변적인 이야기만 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맘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을 보기 위해 소개받은 처녀의 집으로 갔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처녀는 보지도 않고 그 집 마당에 있는 개를 보고 와서 "그 처녀는 내가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그래서 나는 그 처녀와 혼인을 할 수 없소."한다면 이는 매우 비합리적인 처사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의 말을 전해들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말을 사실로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거짓은 이렇게 해서 자꾸만 유포됩니다.

선을 보러 오셨으면 처녀를 보아야 합니다. 개를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더구나 그 개조차 그 집 개가 아니고 돌아다니다가 무심코 그 집에 들린 다른 집 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제 율리아 자매님의 인간적인 면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는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런 이야기를 올릴 만큼 율리아 자매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에 바탕을 둔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이 글이 사실과 달라 율리아 자매님이나 혹은 신부님께 누가 된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분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의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러하듯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 거라 생각합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욕을 퍼붓고 싶으면 욕을 퍼부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어떤 일에 섭섭해하기도 하며 가끔씩은 불평이나 잔소리도 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별을 아쉬워하고 가는 세월을 원망도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 분은 영성의 깊이가 너무나 깊어 보통 사람과 달라 성인성녀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거룩할 거라 생각한다면 이 생각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는 현상이니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름대로의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단편적인 인간적 면모만 앞세우고 그 분을 판단한다면 적극 말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분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전체는 결코 영성을 떠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머리와 꼬리를 뭉텅 잘라 버리고 몸통 가운데서도 지느러미만 조금 잘라 보이며 "보아라. 여기 거대한 황금 잉어가 있다."한다면 어떻게 그 정보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율리아 자매님도 인간적으로 보통 사람과 똑 같다 말할 수 있을 것이나 다른 면모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떤 말이나 생각, 판단과 행실도 곧 생활의 기도에 연결되어 봉헌의 과정을 거쳐 주님과 성모님께로 올려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비범함을 지극한 평범함 속에 감추어 두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메시지에서 그 분에 관한 내용을 찾았습니다. 그 분의 결점은 주님께서 그 분의 겸손을 위해 남겨 두신 선물입니다.“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수를 통해 더욱 겸손하게 낮아지도록 하기 위해서”남겨 두신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잘못을 했을 때 곧바로 작은 자가 되어 “예수님, 성모님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 용서해 주세요”하고 고백할 수 있는 거지요.

죄인이 되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기에 결점이 없다면 주님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결점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남겨주신 선물입니다. 이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런데 말과 행위의 단편적인 조각을 들먹이며 판단하고 비판하고 등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지느러미 한 조각을 보고 거대한 황금 잉어라고 말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같은 이유로 율리아 자매님 주위의 많은 사람이 그 분을 떠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느러미 한 조각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 분을 욕하고 손가락질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성녀 중의 성녀로 존경받는 소화 데레사 수녀님이 하느님 품으로 떠나자 그분을 성녀 품에 올리고자 조사위원이 수녀님이 생전에 몸담고 있던 수녀원에 들렀습니다. 이때 수녀원 수녀님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데레사가 성녀라면 여기 있는 수녀들 가운데 성녀가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하고 말하며 그런 발상 자체를 비웃었습니다.

이제 이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율리아 자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말씀드린 것은 두 가지 의도에서입니다.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는 필히 신앙에 바탕에 둔 영적인 이야기되어야 하며 다른 한 가지는 단편적이고 왜곡된 인간적인 판단이 그 분의 영성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그밖의 몇 가지 정보로 어떤 사물을 판단하고 그것이 절대적인 양 확고한 틀을 만들어 놓고 진리처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틀에서 한치라도 어긋나면 거짓이라고 배척하게 됩니다.

율리아 자매님에 대한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그분에 대한 많은 소문이나 정보가 이런 그릇된 방식으로 유포되고 있음을 너무나 명백히 보고 있습니다. 제발 거짓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신앙의 본질에 맞게 그 분의 영성이 판단의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을 보러 왔으면 처녀를 보아야지 개를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만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를 알아볼 수 있다.- 영적인 면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은 그 분의 영성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이 시대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지울 수 없음을 밝힙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DATE: 2005.06.07 - 12:42

 

 

 Name    주님함께

Subject    이번 광주대교구의 공지문은 억지 입니다.

 

☞♥†♥☜                       전국에 계신 교형 자매님들께

평화신문의 한 면을 가득채운 공지문의 내용을 읽어 보고 너무 터무니 없는 주장에 그만 아연 실색을 했습니다.이 공지문은 한 국가의 가톨릭 대 교구이며 주교님들의 의장직을 충분히 이용하여 교도권을 남용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교님이 처음부터 주장하신 사도들로 부터 젼해져 오는 교회와 포도나무의 비유등의 이야기는 신자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읍니다.이런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주장하는것은 주교님이 갖고 있는 교도권의 합리성을 주장 하기 위한것임을 느낍니다.

모든 일이 합법성을 띄고 실행한것처럼 주장 하는 `교황청에 보고서를 보냈다`는 말씀은 전부터 거짓이었슴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차례 율리아님과 남편 율리오씨를 만나 하나부터 열까지 요구사항 뿐이었지 나주의 기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광주교구에서 나주의 기적에 대한 조사를 3년동안 한것처럼 주장했으나 사실은 단 하루의 형식적인 조사를 했을뿐이며 이나마도 조사를 하기전에 이미 나주를 성실하고 진실되게 조사하려는 마음은 이미 없었는데 그것은 현대신학의 오류에 물든 시제들이 이미 나주는 `거짓`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음 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엄청난 잘못을 저질르고서도 `나주는 아니다`라고 교도권만을 주장하는 주교님의 행위는 올바른 행위가 아니잖습니까?

이번 광주대교구의 공지문은 다음의 5섯가지의 내용이나 하나같이 그냥 교도권의 주장뿐이었지 진정으로 나주를 위해 부끄럽지 않은 교도권을 행사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1) 누구든지 교회의 공식검증과 인준을 받지 않은일을 `사적계시`라든지 `기적`이 일어 났다고 주장하고 선전 하며 광고 하는것은 우리 가톨릭교회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를 모독하는 일이 될것입니다.

(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합당한 조사를 한 일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자료를 공개 하시기 바랍니다.사적계시란 항상 있는것이며 존중 되어야 할 문제 입니다. 기적은 더 말 할것도 없구요.

저는 60평생 앓던 다리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죽음에서 기적수로 다시 살아 난 장본인입니다. 저에 대하여 조사한 일이 있습니까? 이것은 기적이 아니고 무었입니까?어떻게 이런 일이 가톨릭과 무관 하다고 하십니까?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의 치유기적은 또 뭡니까? 그리고 나주에서 일어난 성모님의 피눈물, 주님의 성혈 그리고 23건의 성체기적은 단 한건도 조사를 한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이것은 엄연히 주교님이 꼭 하셨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엉뚱한 교도권만을 주장했으니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2)교회의 공식 인준이 없는 나주의 `성모동산`이나 율리아의 집이나 경당에서 교회이름으로 집회를 주선 하거나 의식을 행하는것은 건전한 신심행위도,합당한 전례행위도 될 수 없다.

(그런 말씀은 주교님이 하셔야 될 일들을 다 하신다음에 잘못 되었을경우 해당 되는 말입니다.기도란 개인이나 단체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것을 모르십니까?)

3)1998년 1월 1일,2001년 5월 5일 발표된 광주대교구교구장의 공지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지역 교회공동체의 합법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교도권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공지문이 잘못 되었다는것은 일찌기 밝혀진 일입니다. 이 세상 어디서나 무었이 잘못 되었으면 다시 수정하거나 재 검토하는것이 상례입니다. 주교님은 그렇게 하셨습니까? 전혀 하시지도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까?그러면서 어떻게 합법적 운운만 할수 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남용입니다.)

4)나주 율리아가 주장하는 소위`사적계시`나 `기적`을 홍보하거나,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순례`하려는 행위는 교회의 순명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간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교구 당국에서 전혀 해 주지 않으니 그리 될뿐입니다.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제와 학자들로 구성 된 조사가 정당하게 이루어 졌고 또 공지문 후에라도 새로운 기적이 일어 나면 그것도 조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줄 압니다.그러나 주교님, 그렇게 했습니까? 교회의 순명정신에 어긋난다구요? 우리라고 순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줄 아세요? 주교님은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것도 없이 오직 순명만을 요구 했습니다.그것은 교도권의 남용이지요.)

5)성직자나 수도자들은 그가 어느교구, 어느나라에 속하더라도 교회의 공식신분을 지녔으므로 본 광주대교구 주교의 분명한 허락없이 `성모동산`이나 나주 율리아가 마련한 `경당`에 참배한다거나 그곳에서 종교의식,전례행위를 하는 것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힌다.

(잘 말씀 하셨습니다. 어느나라운운 하셨는데 필리핀이나 말레이지아등에서는 이미 교회가 인정이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광주대교구의 주교님도 인정을 하고 순명을 해야 할것입니다.그리고 사제나 수도자들이 가는것을 막으려 하는것은 전능하시고 엄위하신 주님께 도전 하는것이라고 봅니다.말끝마다 교도권 운운 하시지만 그교도권이 올바르게 쓰여져야 할때 가치가 있는것이지 무조건 억지로 주장하는것은 가치가 없는것입니다.

어떻게 성모님과 주님을 찾아 가는사람들을 제한 하려 하십니까?

주교님은 그들의 신심행위가 얼마나 높다는것이나 알고 계십니까?

성경에  마르코 복음 9장 38절에서 40절( 오늘 복음)

" 선생님(예수님) ,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게 다디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그런일을 못하게 했습니다."그러자 예수님은" 말리지 말아라.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것이다. 우리를 반대 하지 않는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주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것을 비추어 보지 않더라도 나주의 일은 매우 훌륭한것입니다. 아직도 의심스러우시면 주교님이나 반대하시는 시제들과 신자들이 매월 첫토요일에 하는 철야 기도회에 와 보시면 거기에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하신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지난 5월 첫토요일에 마리아의 동산에에서 치러진 기도회에 주님의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지 나주 사이트에 들어와 운영도우미님의 보고서를 읽어보며 사진에 찍힌 놀라운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매번 기도회때마다 엄청난 기적을 보여 주시는 이유는 이 어려운 시기에 모든것을 뿌리치고 주님과 성모님을 찾아온 영혼에게 베풀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인것입니다. 반대만 일삼는 이들에겐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지요.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잘못된 마음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누가 어떤것에 대한  한번 나쁘게 보이거나 나쁘다고 단정을 지으면 ,그 마음이 바뀌기 전에는 그의 모든것이 언제고 나쁘게만 보이는것입니다. 마치 나주가 거짓이라고 단정을 하고서 백번 수많은 기적을 바라봐도 그것이 나쁘게 보일뿐이라는 사실인데 이는 자기 기만이며 자기 도취라고 봅니다. 나주를 향한 광주대교구의 무지막지한 순명의 요구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Name    빛나들이

Subject    고통에 짓눌리는 삶에서 나주성모님을 뵙고 기쁜 삶으로

 

주님! 제가 올리는 이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읽는 모든 이에게는 유익이 되게 하소서.

저는89년도에 결혼하여 현재 중3 아들과 중1 딸을 두고 있습니다.

결혼당시 1년간의 신혼생활을 마치고 막내인 저의 간청을 못 이겨 우리부부는 부모님을 6년간 모셨습니다.

시집살이 하느라고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인지 6년째가 되어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 분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부부의 소박한 꿈은 아들 딸과 4식구가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하여 오순도순 살며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며 소외받는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하며 열심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단란하게 살던 가정도 2000년 10월 아내가 갑자기 쓰러지고 하반신을 전혀 못쓰면서 고통이 시작 되었습니다.

작은 병원들을 다 찾아다니며 검진을 받았으나 병명을 몰라서 민간요법을 쓰던 중 2001년6월 본당수녀님의 권유로 병원검사결과 척수종양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뿌리가 너무 길어 수술이 불가하다고 하더군요

인간이 고칠 수 없는 병은 오직 하느님만이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여러 기도회를 다니면서 아내의 병을 고치려고 했으나 이듬해 아내의 다리는 서서히 차갑게 식어가며 굳어짐을 느끼고 급히 병원에 입원하여 2차례 대수술을 하였습니다.

척추 8마디에 종양이 꽉 들어차서 신경을 누르고 있기에 12시간에 걸친 1차 수술, 10일을 쉬었다가 다시 2차 수술 12시간을 보낸 피투성이가 된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께 매달리는 기도뿐이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척추에 물이 고여서 뼈에 드릴로 구멍을 내고 호스를 꼽아 물이 차면 자동으로 물이 빠지게끔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아내는 8개월 만에 퇴원을 하고 재활에 들어갔으나 여지껏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안 해본 것 없이 좋다하는 요법은 다써보았으나 허사였습니다. 5년째 걷지 못하는 아내의 상태는 비참하기만 했습니다.

대변은 관장을 해야만 나오며 최근에는 관장약도 말을 안 들어 자주 파내야만 했고 소변은 기저귀로 받아내는데 자주 막혀서 멜라틴(기구로 소변을 빼냄)을 하곤 하는데 방광염에 쉽게 걸리곤 했습니다.

상체는 정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모든 것은 저의 손길이 필요하였습니다.

저는 하루일과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 둘을 깨워서 밥을 차려 학교에 보내고 아내의 밥을 차려주고 집안일을 치운 뒤에 일터로 나갑니다. 3시간정도 일하다가 다시 집에 들어와 아내의 밥을 주는 등 수발을 한 뒤 다시 일터로 나가고....다시 반복하여 하다보면 일하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서 가게수입은 늘 부족하기만 했습니다.

어쩌다가 멀리 현장으로 나갈 경우에는 아내가 밥을 굶거나 소 대변을 못 보아서 복부가 차오를 때는 안타까워 눈시울을 적실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늦게 오면 시장 볼 시간도  없어서 아이들은 자주 밥을 사먹어야 했는데 사먹는 밥이 입에 안 맞아서 굶고 자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찢기는 아픔을 느끼며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함을 슬퍼하며 아내는 목 놓아 울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가정에 우환이 있으면 신앙생활, 기도생활도 잘 안되고 어려움을 느껴서 어떻게 하면 기쁘게 기도생활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하고 기도회나 피정에 참석하려고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면 지금 내가 아픈데 어딜 가려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내가 피정에 가는 이유는 당신한테 더 잘해주려고 한다며 다녀오곤 했는데 그 은총과 기도 생활은 한 달도 안가서 잃어버리고 또다시 옛 악습에 빠져서 힘겹게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위로를 삼는 것이 있었는데 주일날 아내를 업고 차에 태우고 성당에 가서 휠체어에 다시 옮겨 태우고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교우들이 반가이 맞아주며 인사 할 때와 성체를 모실 때는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었으나 평화와 기쁨은 없었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된 지 5년이 되어가자 아내도 저도 지쳐가고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인간적으로 나약해질 때는 하느님도 원망해보고 자신을 비관하며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우리부부는 돈 때문에 다투다 보면 부모형제를 원망하며 모든 일이 내 탓이 아니라 남편 탓 부모 탓 형제들 탓으로 돌렸으니 마음에는 평화가 없고 늘 원망과 미움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분이 안 풀리면 애꿎은 아이들을 야단치곤 했는데 아이가 밤늦게 컴을 하는데 빨리 안 끈다고 매를 들다가 대들고 반항하는 아이한테 화가 나서 아이를 주먹질과 발길질로 ......

얼마나 때렸는지 걸음을 제대로 못 걷고 절뚝거리며 학교를 가는 모습을 바라 볼 때면 저 녀석이 이 못난 아빠만나서 사랑받지 못하는구나!

하고 되 뇌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한탄에 잠을 자고 나면 아내의 하반신 마비가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현실이라는 고통은 언제나 거대한 산처럼 커다랗게 제 앞에 놓여 져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저희부부가 죄가 있으면 얼마나 많다고.... 이렇게 큰 고통을 주십니까? 당신은 정말 살아 계십니까?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하느님이 서운 했습니다 ㅠ,ㅜ

2005년 1월 중순 저희 가정에 빛이 찾아오기 시작 햇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본당수녀님이 주신 수많은 책을 바라보면서 ‘저기 저 책 중에서 어느 책을 보면 마음에 평화가 올까?’하며 눈으로 책을 고르던 중???

<오! 놀라운 사랑이여!> 장홍빈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책을 꺼내어 읽게 되었으며 저도 곁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영적일기, 체험담, 메시지내용 등등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고 자석에 쇠붙이가 붙듯이 마리아의 구원방주 싸이트를 둘러 보았습니다.

제 마음은 끌려 어느새 나주에 가고픈 마음으로 꽉~차기 시작했고 우리부부는 2월 첫 토요일에 나주 성모동산을 8시간 만에 물어 물어 깜깜한 산골짜기 눈 덮인 동산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비닐성전에 들어갔더니 굉장이 큰 성전인데도 사람들은 벌써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오른쪽 뒤편으로 맨 구석진 곳에다 자리를 잡았는데 문 틈새로 얼마나 찬바람이 들어오는지 아내를 찬 바닥에 뉘이고 나니 아내는 오들오들 몸을 떨기에 모든 옷가지를 다 꺼내어 아내를 꽁꽁 싸맸습니다.

기도회 때 우리부부는 눈물을 펑펑 œP았습니다.

내가 정말 잘 못살아 왔구나! 부모 탓 형제들 탓 남의 탓을 해왔고 아이들한테 화내고 미워하고 때렸던 일들... 끊어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짓던 악습들.....

주님, 성모님! 주님과 성모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드리고 피 눈물 나게 한 죄인이 바로 저였습니다. 죄 많은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부모의 모난 성품 때문에 아이들을 학대 햇던 이 죄인 저는 힘없는 어린 예수님을 사랑 드리지 못하고 그렇게도 미워하고 때렸습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나주성모님께서는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저희 부부에게 은총과 사랑을 가득히 주셨습니다.

돌아온 후로 저희 부부는 매일 묵주기도와 생활기도를 바쳤고 가정 기도회에는 아내를 업고  참석했습니다. 묵주기도는 너무나 달콤했고 생활기도는 저희를 예수님성모님 사랑에로 인도하며 악습을 하나씩 끊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미워했던 아들을 정말 사랑할 수가 있었고 이해와 용서로 대하며 말을 잘 안들을 경우에는 ‘나는 그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안듣고 얼마나 주님마음을 상해 드렸는가?’하고 뉘우치고 보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수발드는 일이나 집안일, 바깥일 모두를 죄인의 회개와 성직자 수도자의 성화를 위해 봉헌하니 마음이 기쁘고 평화로우며 같은 일이지만 더 가볍게 느껴지며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이제부턴 봉헌의 가치를 부여하니 기쁜 마음으로 행할 수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다! 내가 분명히 힘들고 고통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이 기쁘고 평화로우며 무엇을 얻은 듯 부요로 울까? 그리고 어찌하여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고 만나는 사람마다 웃음으로 대할까?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짐스럽게 하는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아기처럼 귀여울까? ‘여보 당신은 대변, 소변을 보아도 왜 이렇게 이쁘지? 라고 하면 ‘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데 뭐가 이쁘다고 그래?’라고 대꾸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리는데 왜 돈 걱정이 안 들까? 밉기만 하던 아들이 사랑스럽고 용서가 되며 본당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을 더 사랑하게 될까?

이것은 바로 나주성모님이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축복이라 확신합니다.

아내를 사랑해 왓지만 자주 짜증이 났었고 귀찮을 때가 많았었지요

부족하지만 이제는 진정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고 겪게 되는 모든 고통을 송두리째 봉헌을 하니 고통은 단순이 고통이 아니라 은총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32년간이나 끌어 오던 악습을 나주를 다녀옴으로 완전히 끊을 수가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주님과 성모님께 영광!)

3월 나주성모동산 순례시에는 성모님상을 모셔왔는데 성모님상이 어찌나 아름답고 예쁘신지 감탄이 절로 나오며 온 세상을 다~~얻은 듯이 기쁘고 행복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여보 난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성모님상은 처음 봐!’ 라고 하면 아내는 너무 지나치게 그러지 말고 기도나 열심히 해요! 라고 하며

내가 성모님상을 너무 이뻐 한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합니다.

이렇게 나주에서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을 입고 기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나주만 생각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입니다.

그리고 나주성모님의 메시지를 읽고 배우면서 또 나주성모동산 철야기도회에서 배운 것들이 카톨릭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정통교리와 너무나 합일되고 도와주고 풍요롭게 해줍니다.

교회에 혼란이나 불일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성체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반드시 고백성사를 보고 마음을 깨끗이 한 후에 정말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최대한의 존경과 흠숭을 드리며 성체를 모시니 마음이 한량없이 기쁘고 평화로왔습니다.

우리부부는 함께 기도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저녁마다 함께 성서읽고 저녁기도 묵주기도를 매일 함께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에만 가면 성체의 중요성을 모르고 모령성체를 영하는 모든 교우들을 위하여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나주에 다녀옴으로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그만 두었던 레지오도 다시 나가니 나주성모님의 신심은 교회에 불일치나 혼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불일치 햇던 점이나 혼란을 오히려 막아주고 영혼의 질서를 회복하고 순결하게 하며 교회와 더욱 일치하여 봉사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나주성모님을 뵙고 와서 참다운 회개를 하였고 참사랑을 배웠으며 희생과 보속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주 성모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은 나의 영혼의 때를 말끔히 씻어 주며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하여 내가 짓는 사소한 죄로 인하여 예수님을 또 다시 못 박아서는 안 되며 이제부턴 내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모두 뽑아 드리는 사랑의 –u치가 되고 주님성모님의 눈에 흐르는 피눈물을 닦아 드리는 사랑의 손수건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나주에 가기 전 여러 기도회나 피정에 참여하여 받았던 은총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사탄에게 빼앗겨 또 다시 악습을 되풀이 하여 주님 성모님을 수없이 못 박고 고통에 짓눌리는 미움과 불평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대죄를 짓게 하지 않고 교묘하게도 작은 소죄부터 짓게 한 후에 대죄를 짓게끔 유혹을 합니다.

나주성모님을 뵙고 생활이 기도화가 되면 이 모든 죄악과 악습을 모두 끊고 씻어 버릴 수가 있고 삼구전쟁(마귀. 세속. 육신)에서 승리 할 수가 있으니

나주는 바로 영혼의 목욕탕이 아니겠습니까?

이 크신 은총 주님께 영광 돌리며 주위에 나주성모님을 아니 전 할 수는 없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주님과 성모님!~

이제는 제 곁에 머무르시며 제 안에 사시며 장미향기로 현존과 사랑과 우정을 보이시는 나주성모님을 피부로 느끼며 사는데 얼마나 행복한지 자신 있고 힘 있게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주성모님을 뵙고 행복하게 사는데 제가 나주에 다닌다는 사실이 본당 신부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본당신부님께서는 세 차례 사람을 보내어 나주에 다니지 말 것을 설득 하셨으나 저는 도무지 따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성당으로 레지오 주회에 갔는데 신부님께서 들어오셔서 강복을 주시더니 저를 밖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나주에 다니지 말라. 나주는 아직 인준이 안 났고, 주교님께서 교회의 혼란을 줄 소지가 있어 이를 금하고 있으니 순명하라. 순명하지 않으면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부님 ,전 그래도 가야 합니다. 저는 ‘나주에 가서 진정으로 회개를 하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배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그렇게 말려도 다닐려면 오늘부로 레지오도 그만두고

해설도 놓고 본당미사도 나오지 말아~ 알았지? ..................네~!알겠습니다.

봉사하면서 나주 다니면 다른사람이 물들어서 안되!

그리고 난 000한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신부님께 개인적으로 아무런 감정이 없구요 신부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다시 주회로 돌아왔다

단장님 ~!제가 잠시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3개월 전부터 나주 성모동산을 다니고 있습니다.

나주에 다니기 전만 하더라도 하반신 마비된 제 아내는 죽어 버리고 싶다며 저더러 새 장가들라고 까지 말하며 자주 울었었습니다.(울먹이며~)

그리고 저도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낫겠다. 라고 낙심하며 살아 왔었습니다.

그런데 나주성모동산 철야기도회를 가서 기도 해보니 제가 그동안 크게 잘못 살아 왔다는 걸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 하였습니다.

회개란 단순이 죄를 뉘우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분께 향하는 겁니다.

지금도 저희는 고통 속에 살지만 이 고통을 죄인들의 회개와 성직자, 수도자의 성화를 위해 기쁘게 봉헌하며 지냅니다.

아들이 컴을 오래한다고 걷지 못할 정도로 주먹과 발로 걷어차고 미워했었는데 이제 아들을 이해해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몸도 점점 좋아지고 기쁨과 평화를 찾게 되었는데 방금 신부님 말씀은 나주에 계속 다니려면 레지오도 전례해설도 본당미사도 나오지 말라 하십니다.(울먹이며~)

'그런데 왜 신부님은 못 가게 막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주성모님에게서 큰 은총을 받았는데 만일 다니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주님과 성모님을 배신하는 일이 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단원들은 모두 안타까워하며 이 단원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과 봉사를 해 왔는데 안타깝다면서 아내가 걷게 되면 다 해결되니깐 걷거든 우리 성당에 다시 꼭 나오라며 꽃다발을 주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아니 몸이 좋아지고~기쁘게 신앙생활 하는데 신부님이 막으시면 안되지!~

하는 단원도 있었습니다.

10년째 다니면서 나름대로 정붙이며 봉사를 해온 본당!!!

이젠  나주를 다닌다는 이유로 본당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에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모두들 서운하다면서 악수를 했고 모든 단원이 기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정든 본당을 나서면서 본당 사제관을 향해 큰 절을 하고 다시 성당 안에 들어가서 감실 앞에 큰절을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여보 축하의 꽃다발이야!'받아요!~

.......응???? 레지오 갔다가 잘렸다구?

여보 잘됐어 오히려 잘리니까 맘이 편하다!~

그래도 우리 신부님 미워하지 말고 본당교우와  신부님을 위해 기도 해드리자, 신부님이 불쌍하잖아!라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맞아 신부님은 모르시니까 그렇게 막으시는 거야!

그런데 우리 어느 성당에 다녀야 하지? 휠체어가 성당에 잘 들어가야 하고

주차도 원활이 되는 성당이라야 하는데.... 응~ 한번 찾아 봐야지 뭐!~

주님! 성모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우리가정은 본당에서 잘렸습니다. 이 고통을 기쁘게 봉헌 합니다.

나주성모님을 박해하고 체면과 이목 때문에 외면하는 전국의 모든 주교와 사제,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회개와 성화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그리고 하루빨리 나주성모님이 인준이 되어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한 영혼도 결코~멸망 하지 않고 모두~모두 구원 받게 하옵소서. 아멘

두서가 없는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오며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Name새벽
Subject  [순례기] 주님은 휘두르는 칼 앞에서 다시 사랑을 보이셨다

 

칼과 사랑 -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한가. 어제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 성모님 동산에서 열린 철야기도회의 핵심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그러므로 이 순례기는 다분히 논리적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칼은 광주대교구로부터 날아왔다.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주교님은 5월 5일자로 사인한 사목 권고를 통해 나주 성모님의 집을 향해 교구 단위로는 세 번째로 칼을 던졌다.

이 서한은 주님과 성모님의 나주로의 발현 문제를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로 격하시킨 채 독한 말씀을 쏟아 놓았다. 사목 권고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누구든지 교회의 공식 검증과 인준을 받지 않은 일을 “사적계시”라든지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선전하며 광고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교회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를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교회의 공식 인준이 없는 나주의 “성모동산”이나 율리아의 집이나 “경당”에서 교회 이름으로 집회를 주선하거나 의식을 행하는 것은 건전한 신심행위도, 합당한 전례행위도 될 수 없다.

3) 1998년 1월 1일, 2001년 5월 5일 발표된 광주 대교구 교구장의 공지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지역 교회공동체의 합법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교도권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4) 나주 율리아가 주장하는 소위 “사적계시”나 “기적”을 홍보하거나,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순례”하려는 행위는 교회의 순명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건전한 신앙 생활이라 할 수 없다.

5)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그가 어느 교구, 어느 나라에 속하더라도 교회의 공식 신분을 지녔으므로 본 광주대교구 주교의 분명한 허락 없이 “성모동산”이나 나주 윤 율리아가 마련한 “경당”에 참배한다거나 그곳에서 종교의식, 전례 행위를 하는 것 은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지역 교회의 교구장님이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공동체에 계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 교회의 장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고,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받들며 신심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톨릭교회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 분이 성실한 신앙인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이상야릇한 파문권(破門權)이라도 보유하고 있단 말인가.

본래 윤공희 전임 교구장님이 발표하여 인준을 거부했던 이른바 '공지문'이라는 것이 보편 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성체의 기적을 전면 부인하는 오류 내지는 폭거를 저지른 셈이므로 원인무효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종교재판을 하면 해당교구에 서릿발이나 벼락이 칠 수도 있다는 것이 유능하고 양심적인 교회법학자들의 견해다.  

나는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1천 5백여 작은 영혼들로 가득 찬 비닐하우스의 한 모퉁이에서 잠을 한 숨도 안 자며 기도하는 동안에 이른바 '교도권'이란 것이 교도소를 운영하는 권리가 아닐진대 누구든지 현대사회에서 그 이름 하나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에 계엄을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같은 잔인박행(殘忍薄行)은 대명천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타임머신을 거꾸로 타고 중세사회로 내동댕이쳐진 것으로 짐작하고 내 살을 꼬집어보았다.    

광주대교구장님이 칼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절대적인 존재이신 주님은 어떻게 대응하셨는가.

지난 4월 16일 밤 나주에서 모임을 가진 성모님의 집 봉사자 2백 50여 명이 성모님 동산에서 외국인 신부님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그 때 신부님 부근에 성체 2개가 떨어졌다. 신부님은 성체를 성합에 모시고 뚜껑을 닫은 채 숙소의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

5월 6일 오후 율리아 자매님이 자택에서 지인들과 얘기하던 중 갑자기 앞으로 강하게 쓰러져 탈혼상태에서 현시를 보았다. 얼마 후에 깨어난 자매님은  4월16일 성체 위로 안개꽃같은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면서 "신부님께서 모셔두고 잇는 성체가 어떤지 얼른 가서 보라"고 협력자들에게 당부했다.

몇 사람이 달려가서 신부님께 그 말씀을 전했다. 신부님은 오후 5시 50분 경 모셔둔 성체를 보자 두 개의 성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 쪽 성체는 아주 진한 검붉은 피로 물들여져 있었으며, 다른 쪽 성체는 묏산(山)자를 위 아래로 배치해놓은 모양으로 피가 솟아 있었다. 신부님은 이 엄청난 성체기적을 접하고 깜짝 놀라 엉엉 울었다.

기도회 진행자들은 그 모습을 비디오 테이프로 보여주었다. 부족한 죄인인 나는 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시점과 그 내용을 전해 들으면서 주님은 참으로 오묘하신 기적을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님은 광주대교구장님이 5월 5일자로 또 다시 칼을 뽑아 휘두르자 바로 5월 6일에 성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또한 주님은 그 기적의 내용도 성체가 공중에서 내려오시는 형식을 취했으며, 당신을 흠숭하는 사제가 모시고 있는 그 성체가 직접 피를 흘리셨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야말로 주님께서 광주대교구장이 세 번 째로 칼을 휘두르며 나주로의 주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부인한 데 대해 지체없이 성체 및 성혈 기적으로 사랑을 발휘하심으로써 칼을 무력화시키신 것이 아닐까.

이어서 주님은 광주대교구장 및 교구 신부님들이 '이름 없는 들꽃' 율리아 자매님을 싫어하고 무시하는 나머지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입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성체기적을 부인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제가 모신 성체에서도 성체 및 성혈 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교회와 세상을 향해 일대 경종을 울린 것이 아닐까.

 

Name  새벽
Subject  국경 없는 미사가 주는 감동


 
미사에는 국경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언어가 다르고 관습이 다른 곳에서도 그 정신은 하나다. 미사 중에 죄인들은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시며 그리스도와 하나 된다.
 
성모 마리아가 나주에 발현하시어 눈물 흘리신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미사는 인종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 전 세계에서 모여든 6천 5백여 신자들이 한 마음으로 주님과 성모님을 받들며 주님, 성모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담은 장엄한 종교 의식이요, 아름다운 축제였다.
 
2005년 7월 1일 새벽 1시 10분에 시작돼 새벽 2시 30분에 끝난 이날 미사는 인도네시아의 이삭 주교, 요시 주교, 말레이시아의 폴트윗 몬시뇰, 말레이시아의 프란시스 수 신부, 필리핀의 오 제리, 리차드 빈센트, 산토스, 기자가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또 한 분의 필리핀 신부, 인도네시아의 라주, 벨리바리, 보르넬리 신부, 미국의 피로판, 에드워드 보넷, 죠세핀 신부 등 11명의 신부들이 공동으로 집전한 국경을 뛰어넘은 국제적인 행사였다.
 
이 미사에는 나주 성모 발현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카나다, 인도,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각국에서 온 6백여 명의 외국인 순례자들도 기쁜 표정으로 참례했다. 국내의 모든 순례자들은 외국인들을 위해 의자를 양보하고 비에 젖은 땅에 비닐 등을 깔고 앉아 미사에 참례했다.
 
이 미사는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20주년 기념 성체의 해를 나주 성모님과 함께'라는 구호가 가로로 크게 쓰이고, 왼쪽에 세로로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복합적인 사랑과 구원의 장소이다', 오른쪽에 세로로 '성체는 우주 창조의 기적에 뒤지지 않은 지속적인 기적이다'라는 글씨가 적힌 특별 무대에서 거행됐다.
 
낮에 쏟아진 폭우가 그치고 고운 밤 하늘에 짙게 낀 구름 사이로 가끔 별이 반짝이며, 시원한 바람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성모동산의 상쾌한 자연 경관 속에서 진행된 이 미사는 성모 마리아가 '우주보다 더 큰 내 사랑의 품'이라고 표현한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타고 하늘 항구에 도달하려는 작은 영혼들이 잔 꽃송이를 엮어서 바치는 은총의 장이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라 적힌 조형물 위에 서서 제단의 한 가운데서 약간 오른쪽에 모셔진 높이 55cm 가량의 성모 마리아 상(순례자들은 이 상을 '우시는 성모 마리아'라고도 부른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의 충성스런 사제들이 공동으로 집전하고 '가장 사랑하는 딸' 율리아 자매를 비롯한 작은 영혼들이 바치는 미사가 이어지는 동안 눈물 대신 당신의 '현존이요 사랑이요 우정'의 표시인 향유를 줄줄 흘리시어 이마에서 발 끝까지 흠뻑 적셨다. 성모상 주변은 물론 성모 동산 곳곳에 장미 향기가 진동했다.
 
인도네시아의 이삭 주교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 "성모님은 슬픔 자체이시다. 징벌의 때가 다가오기에 고통을 호소하시는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로 하여금 징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징벌을 피하고 안전하다. 주님은 왜 나주에서 기적을 행하시는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는 의인(율리아 자매를 가리킴)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체의 기적을 내려주시고 계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삭 주교는 "그러나 지금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갑자기 강론을 마쳤다. 미삭 주교의 짧은 강론의 마지막 지적은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억압하는 광주대교구의 행태에 대한 탄식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그것은 고회의 이름으로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주님께서 성모동산에 여러 차례 성혈을 콸콸 쏟으신 사실을 떠오르게 했다.
 
주님과 성모님이 발현한 나주를 지리적으로 관할하는 광주대교구는 교구장 이름으로 내놓은 세 차례의 공문(공지문, 회람 등의 용어를 쓰고 있음)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부인하고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을 교회로부터 추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특히 성모님을 모시는 나주시 교동 성모님의 집(경당이라고도 함)에서 5백m 이내에 있는 나주성당(주임 송홍철 루까 신부)는 탄압의 선봉에 서서 채찍을 휘둘러 왔으며, 요즘에는 성당 마당에 "나주의 기적은 거짓이니 믿지 마십시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을 정도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늘과 땅, 광명과 암흑의 차이처럼 머나면 공간의 한 쪽에 선 죄인들이 죄악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몰각하고 있다. 배은망덕한 자녀들의 회개를 위해 눈물과 피눈물을 흘려오신 성모 마리아를 성직자의 신분으로 난도질하는 세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 줄 모른 채 오로지 '순명'이란 이름으로 반봉건적 굴종의 길을 고수하는 일부 평신도들의 맹목적 신앙관이 둘러 싼  그 한 가운데에 나주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칠흑같은 어둠도 새벽이 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작은 영혼들은 심야에 금성산 뒷자락에 자리잡은 성모동산에서 모기들에게 뜯기며 '포기로 엮어진 잔 꽃송이들'을 바치는 미사를 통해 이 척박한 땅에도 기름진 은총이 스며들고, 이 완악한 사람들의 마음을 성모님의 손길로 쓰다듬어 주실 것을 기도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온 누리의 주 천주.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 높은 데에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에 호산나"(가톨릭 성가 327번)라고 작은 영혼들이 성찬의 전례 때 부르는 성가가 고요한 산야를 울리며 밤 하늘로 퍼져 나갔다.
 

 

Name   퐁소
Subject   제가 본것만을 그대로 적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많은 망설임을 하였습니다. 내가 잘난체 하는 글이 되지 않을지, 아님 교회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닐지,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있는그대로 밝히는 것이 옳은 행동이고 다른 형제 자매님께도 나주를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더이상 침묵으로 제가 본 사실을, 교회가 인준하지 않는 나주라 하여 밝히지 않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을 그대로 적습니다.

저는 1975년도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던 중 학창생활이 끝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고 오로지 세속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며 육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리 만치 다시 교회에 나가야 되는데 하는 생각은 쉬지 않고 들더군요. 이렇게 살다간 내가 갈 곳은 지옥뿐인데 하는 생각에 가끔 가다 성당에 나가긴 하였지만 그 순간 뿐이었습니다.

돌아서면 먹고 마시는 세속적인 생활에서 즐거움과 모든 것을 얻을려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어렸을때의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나름대로 세속적인 노력(?)을 한 덕분에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생각될 때 이상하게 마음에 평화나 기쁨보다 근심걱정이 끊이질 않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러던중 제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월간조선을 구독하고 있었는데 1998년 5월호라고 기억합니다만 나주 성모님 발현소식이 자세하게 나와 있더군요.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사막에서 오하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던 같습니다. 옆 동료들은 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어렸을때 세례를 받았고 학창시절에는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저로선 엄청난 희열로 다가오는 거였습니다.

학창시절 교리시간에 수녀님께서 들려주셨던 성모님 발현소식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겁니다. 바뇌의 성모님, 루르드의 성모님, 파티마의 성모님 등등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가슴이 요동치더군요. 저는 무신론자인 월간조선 기자가 쓴 그 글이 처음부터 이건 분명히 진실이다라는 믿음이 생기더군요. 나도 조만간에 나주 성모님집에 가서 회개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지 실제 생활은 여전히 주일 미사도 어쩌다가 한번 나가는 생활이고 여전히 먹고 마시며 부질없는 세속적인 생활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2002년 초부터 이상하게 주님께로 나가지 않으면 나는 끝장이라는 생각이 자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주를 한번 찾아가 봐야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던 나주 방문을 저는 2002년 5월 29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서둘러 나주 성모님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나주 첫방문도 지금 생각하면 뭔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나주 성모님 집에서 저를 보고 꼭 와주세요 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누구랑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늘 꼭 가봐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안산인데 이곳에서 나주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기차로 갈려면 수원까지 가야하고... 저는 안산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다시 나주로 나주 터미널에서 택시로 성모님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의집을 찾았을때는 묘한 흥분같은 것이 들더군요.

경당 안에서 잠시 기도를 드리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호기심이죠. 잡지에 나왔던 향유가 흘렀던 자리인 유리관 안의 냄새를 맡아보고 여러 사진들을 관찰하고 성모님께 잠시 기도를 드린 다음 바로 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봉사활동하던 자매님께서 멀리서 힘들게 오셨는데 성모님 동산도 한번 올라가서 기도도 하고 성모님이 주신 물이 있는데 목욕도 하고 가라고 권고하시는 겁니다. 저는 내려올때 성모님 동산이 있는것도 몰랐었습니다.

저도 이왕 온 거 한번 찾아 가보자 하고 택시를 대절하여 성모님 동산을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평일이고 늦은 시각 (대략 오후 5시에서 6시 정도 아니였을까)이라 신자분들은 몇분 안 계시더군요. 저는 제사보다는 젯밥에 마음이 있다고 목욕은 어디서 하고, 성모님 동산이 어떻게 생겼고 물은 어디서 먹나 하고 두리번 거리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예수님 성혈흘려주신 곳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지더군요. 그리고 정 중앙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앞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지려고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도 양심은 좀 살아있었는지 아무 죄도 없는 하는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는생각이 들었던것같습니다. 당시 저의 짧았던 생각으로는 당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던 자매님들이 4분 계셨는데 큰 소리고 울면서 기도를 바치고(대성통곡)있는 것을 보며 개신교 신자도 아니고 가톨릭 신자가 이런 성지에서 저렇게 크게 소리내어 울부짖어도 괜찮을까 하는 못난 생각도 하였던게 사실입니다.

저는 십자가의 길 기도는 바치지 않고 성모님상 앞에서 성모송만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던 자매님들이 큰 소리로 소리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겁니다. 저는 성모님상을 향해 있었기에 태양 반대편으로 눈이 향해져 있는 거고 자매님들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끝마치고 내려오며  태양을 바라보고 소리치는거였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성모님상을 향해 있었기에 왜 저렇게 떠들지 하는 생각에 약간은 화가 나더군요. 하지만 저도 왠지 쳐다봐야 겠다는 생각에 뒤돌아 보게 되었고 저는 제 눈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제 수첩에 적혀 있는 그대로를 적습니다. 제가 혹시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올바르지 않을까봐 기록해 두었습니다. 태양에서 태양크기만 하다고 할까 좀 작다고 할까한 태양 또는 달처럼 생긴 물체가(?) 여러개 나와 영성체 모양으로 변해 하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아마 7~8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물체가 같이 겹쳐지면서 한동안 있는거였다. 뭐랄까 굳이 비교하자면 올림픽의 오륜기처럼 둥근 원형 모양의 물체 여러 개가 겹쳐지는 모습을 한동안 하고 있었다. 그런 모양이 한동안 지속되고 잠시 후에 태양이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거였다. 그 다음 모든 것이 끝나고 태양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 떠있는 거였다. 언제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은 제가 수첩에 기록해둔 내용 그대로를 적은 겁니다. 정말 그때는 놀랐습니다. 제가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파티마 메쥬고레등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더군요. 메쥬고레에 대해서 쓴 어떤 작가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태양이 창백해졌다" 그 표현이 딱 맞는 표현 같더군요. 성서에도 세상 종말에 태양이 그 빛을 잃어 란 부분이 나오고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나주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때문입니다. 진실이 전부 거짓말로 매도당하고 온갖 영육간의 고통을 당하고 계시고...그것도 내 외적인 고통은 이교도로부터도 아니고 같은  교회내에서 당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성지 신부님께 고해소에서 (그곳은 사제와 고해자가 얼굴을 맞대고 고해를 봄)나주에서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나주 성모님의 힘이 되어 줄 것을 부탁드리자 신부님왈 나주는 이단이다 세계기타 성모님 발현지는 사제를 통해 성모님의 말씀이 관리되고 사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지만 나주는 명백한 이단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나주에서 본 태양의 기적(?)을 말씀드리자 형제님이 잘못봤다고 단정을 지으시던군요. 태양을 잘못 보면 그런 착각이 들 수도 있다구요. 참 답답하였습니다.

하기사 처음 보고 온 날 그 얘기를 제 처에게 하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그 말을 어떻게 믿냐고 했으니 남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 뒤 저는 2002년 8월경에 나주를 방문하게 되었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각 처마다 무릎을 끓고 있을때마다 엄청난 장미 향기를 맡게 됩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큰 믿음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많은 순례자들께서 오셨는데 많게는 백여명 적게는 몇명이서 그룹을 지어 기도를 바치게 되었는데 우리팀을 이끌었던 자매님께서는 돌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가시며 처마다 무릎을끓고 장시간(?)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본인이 직접 적어온 기도문을 읽으면서 말입니다.

대다수 다른 팀들은 통상 드리는 십자가의 길을 바치니 금방 끝나는데 우리팀은 처마다 수십분씩 기도를 바치니 처음에 많이 계셨던 형제자매님들이 나주에는 20여명으로 줄어 있더군요. 우리팀이 맨 마지막에 끝마쳤고 끝마친 시각이 밤 9시를 넘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낮에 시작했던 기도가 말입니다. 하지만 인솔했던 자매님의 믿음은 정말 본받고 싶었습니다. 기도를 바치며 제 마음에서 큰 평화나 믿음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솔하는 자매님과 같은 믿음을 달라고는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고 인솔했던 자매님이 우리 일행에게 십자가의 길 기도 중 장미향기 맡은분 손들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모두 다 맡았겠지 하고 손을 들었습니다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거였습니다. 저는 각 처마다 장미가 놓여져 있기에 거기서 나는게 아닌가 하였는데 인솔자님과 다른분들이 그 장미는 생화가 아닌 조화라고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나주 성모님 동산에서 장미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첫 토요일이라서 성모님의 집 경당에서 철야기도를 하는데 그곳에서 산 성모님상이(종이박스포장상태였습니다)쿵쿵거리면서 뛰는 겁니다. 즉 종이박스로 포장상태인 새로산 성모님상을 세로로 경당바닥에 세워놓고 무릎꿇은 상태에서 성모님상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성모님상이 심장이 크게 뛰는것처럼 쿵쿵거리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전 옆에 계신 자매님께 있는그대로를 말씀드리자 은총체험 시간에 앞에나가서 발표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 마음이 평화로 가득하지도 않았고 아직제가 나서서 발표할 정도로 믿음이 깊지도 않기에 사양하였습니다. 그 뒤로 전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파견하신 뜻대로 살려고 노력중이랍니다. 그리고 얼마전 내가 나주에서 보았던 태양의 여러 현상들이 혹시 일식을 보고 착각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배운 개기일식하곤 전혀 차원이 틀리지만 혹시나)하고 기상청에 문의 하였습니다.

기상청에서 자기네 업무가 아니라며 대전에 있는 천문대 전화번호를 주더군요.그곳에 전화해서 2002년 5월29일 우리나라에서 일식이 있었는지 문의하니 제 전화번호를 남겨주면 확인하여 전화주겠다고 하여 전화를 끊고 기다리자 잠시 후 연락이 왔는데 그날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책임연구원을 바꿔 주기에 제가 그날 본 내용을 상세히 말씀드리자 과학적인 측면으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으며 그리고 오후 5~6시 사이에 태양을 눈으로 쳐다보기도 납득하기가 힘들다고 말씀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는 가톨릭 신자고 1917년 파티마 그리고 지금도 옛유고연방의 메쥬고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자 흥미는 느끼는 것 같으나 자기는 과학자로서 전혀 금시초문의 이야기들이고 과학으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얘기라고 하더군요.

장황하게 이런 글을 올리는것은 윤 율리아 자매님이 보고 듣고 배운게 전부 사실이라는것을 제가 잘 알기에 미천하고 사악한 제가 경험한 일을 올립니다.저의 집에 본당 수녀님이 방문하시어 나주 피눈물 흘리는 성모님 사진을 보며 당장 떼어내고,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행위는 하지 마십시오 형제님 하시기에 제가 나주는 진실이고 언젠가는 교회에서 인준을 해줄 겁니다, 하며 제가 나주에서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자 말씀은 안 하셨지만 좀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그 뒤로 성당에서 뵈어도 눈길조차 피하시는것같구...제 자격지심이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제가 직접 목격한 것들이 부정당하고 비판하면 마음에 상처받고 속상하고 하던데...율리아 자매님은 마음이 어떨가요? 못난 제가 볼 때 진실은 간단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주를 통해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말씀과 기적들쁜인데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율리아 자매님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세상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저와 제 가정을 위해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DATE: 2005.05.23 - 12:33
 

  

Name    잔꽃송이

Subject    7월 2일 첫토요일 엄청난 성혈 방울들이 순례자들 위로....
 

 

저도 7월 첫토요일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기도회가 끝날 즈음. 많은 분들의 셔츠와 미사보와 복사하셨던 분들이 입으시는 흰옷 여러 분들의 바지 등등에 성혈 방울들이 튀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 놀라우신 사랑.

30일 십자가의 길 중에 비와 함께 붉은 방울들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 오시는 것을 같이 갔던 친구가 봤답니다.  왜 비가 투명하지 않고 붉은 색으로 앞사람 우비에 떨어질까. 이상하게 생각했다는데. 그 때부터 이미 그 빗줄기 안에 예수님의 성혈이 내리고 있었나 봅니다..

30일 참석하셨던 분들도 혹시 모르니 옷을 한 번 확인해 봄이 어떠실지요.


그리고...30일 엄청난 태양 기적 때... 개신교 신자분 3명이 성모님 발현을 목격했다 하시고 10년 15년 냉담 중이시던 분들께서 예수님을 성모님을 보셨답니다.

알렐루야. 아멘. 주님 영광 받으소서. 성모님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나주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발현지가 확실합니다.

기적만을 좇아 나주를 다닌다고 비난하시는 많은 분들.

기적만을 좇아서 다니는 것 같아 걱정을 유발시키는 부족한 그들에게 내려주시는 그 분의 사랑, 부족하기만한 죄인인 저희들에게 보여주시는 그 엄청난 사랑,

기적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통해 느끼고 볼 수 있게 해 주시며 예수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호소하시는 그 엄청난 사랑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예수님께서 성모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보여 주시는 데에는 그만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죄인들의 회개만을 바라시면서 슬프게 호소하시는 성모님을 외면하지 맙시다. 판단하지 마시고 나주를 비난하지 마시고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작은 영혼으로서 회개합시다.


 

 

Name    바람

Subject    종아리만 때리지 말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주세요
 

 

광주대교구에서 발표한 3차 공지문을 보았습니다. 공정한 입장에서 아무리 객관적인 판단을 해 보려고 애써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광주대교구는 나주의 일에 대해 매를 들고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때리면서도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종아리를 때리기 위해서는 잘못이 무엇인가 먼저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공지문에서 잘못이라고 주장한 것은 핵심을 피해 간 것들뿐입니다.

1. 공지문에서는 나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신심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매를 대기 위해서는 상대편에게 무엇이 잘못인가 이해가 가도록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순례객들 사이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고 신심행위가 어떤 것인지 밝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2. 공지문에서는 나주의 일에 대한 열매에 대해서는 조금의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보고 일을 판단하라는 요지의 말은 성서에도 나옵니다. 나주 일에 대하여 국내외의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목격자이거나 직접 간접 체험자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신앙적인 경험을 통하여 열매를 맺었거나 맺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조사가 당연히 이루어야 합니다. 이 열매는 진실을 판단하기 위해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사항입니다.

3. 공지문에서는 나주의 일과 거기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심행위에 교리적으로 어떤 오류가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 핵심을 피해가면 그것이야말로 교회의 일치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초능력이니 마술사니 하는 추정적이고 상식 없는 말로 변죽만 울리지 말고 과학적이고 교리적인 진지한 자세로 핵심에 접근해야 합니다.

종아리를 맞으면서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그냥 맞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잘못이라는 판단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이신 하느님은 오로지 진실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을 그냥 덮어둔다면 진실이 가리어지게 됩니다. 진실이 가리어지면 거짓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며 하느님 앞에서 신자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거짓은 새로운 거짓을 만들어 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점점 커지게 되며 거짓이 커지면 좋지 못한 어두운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무슨 잘못이 있는가 묻는 것입니다.

2. 많은 사람들 앞날에 숨겨진 무시할 수 없는 큰 열매를 위해서입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나주를 통해서 회개와 치유와 영적성장의 은혜를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도 똑같은 열매가 맺을 것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생각한다면 이번 공지문은 많은 사람이 앞으로 맺게 될 회개와 치유와 영적성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무슨 잘못이 있느냐 꼭 물어 보아야 합니다.

3.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입니다.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거짓이라며 소리쳐 보았지 그 발길을 절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가 갈 만한 근거를 내세워 제시해야 합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권위를 앞세워 순명을 강요하며 무조건 막는 행위는 일치를 깹니다. 일치는 깨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무슨 잘못이 있는가 객관적인 잣대로 확실하게 판단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있다면, 그리고 그 답변이 교리적으로 전혀 오류가 없다면 교회에서 나주에 가라고 권해도 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DATE: 2005.05.11 - 11:12

 

 


Name    내탓이요

Subject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주보나 카톨릭 신문에서 나주 성모동산 참배를 금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래서 알게 되었지요.


저에게는 오히려 나주에 대한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지침과 각종 비판 자료가 아니었으면

저는 전혀 알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최근의 그 나주에 대한 떠들썩함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처럼 전혀 모르다가 알려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나주에 대한 일들이 긍정적인 일로 다가올테니까요.


그동안 이 사이트에 와서 이것 저것을 읽어 보았지요.

그리고는 이 홈페이지에 있는 기록들이나 또 나주 기도회를 이끌어가시는 분들이나 모두 전혀 상업적이지도 않고 사이비는 전혀 아니며 사탄 어쩌구는 더더우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우기 조작은 물론 아니구요.

일단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이 뻔한 신비스런 일들의 체험을

누가 일부러 만들어 낼까 생각했습니다.


어젠가 본 어떤 댓글에는 봉헌금도 받지 않는다는 부분도 있더군요.

봉헌금이 아니라 기도 내용을 적어 넣는 다면서요. 그리고 순례 차량을 알아보았는데 서울에서 나주 2만원이라고 해서 아마 편도이겠지 했는데 왕복이 이만원 이더군요.  기름값과 통행료가 비싸고 터미널에서 타는 고속 버스도 편도가 이만원 하는데 순례 차량은 왕복이 이만원 밖에 안한다구요.  서울에서 나주 성모동산까지.


이 홈에 들어와 윤율리아님의 자서전 같은 글들을 모두 읽으며 더 믿음이 가게 되었습니다. 목욕비 250원을 아껴서 집에서 대신 연탄불로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연탄비 제하고 200원을 봉헌하셨다는 부분이나 기타 모두 겸손하고 소박한 생활속에서의 믿음의 글들.

성모님은 이런 분에게 나타나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홈에 와서 여기 저기 눌러보고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그저 놀랍고 그리고 저의 믿음에 굉장한 도움이 됨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반대하고 계시다는 성직자분들의 심정에 대해서 이해해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고정관념, 경직된 종교관, 권위주의 등등의 문제로 보여 답답합니다.


대전카톨릭 대학교의 나주에 대한 글이라고 검색이 되었는데 결론을 회피하면서도 나주에 대해 의심스러운 듯이 서술하고 있더군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들로서 성체성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바뀌면 안된다는 말)

잘못된 종말관 (하느님만이 종말을 아신다는 말) 파급효과가 너무 크다는 것 (국내나 국외에서 방문자가 끊이지 않아 부정적인 영향력이 커진다는 말)

등등을 주로 들고 있더군요. 이것은 광주 교구의 공지문인가요. 에서도 보았던 이유들인 것 같구요.


저는 견진성사만 받았지 성당에 주일에 나가서 성체성사 받는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신자입니다.  성체에 대해서 호기심만 갖고 있었고 남들이 다 받아먹는것이니까 나도 꼭 받아 먹어야지 하는 어쩌면 먹는 거라는데에서, 무언가 받는 거라는데서 오는 욕심 또는 호기심에서 형식적으로 참여하던 성체성사 였습니다.  고해성사에 대해서도 불성실 했었구요. 
 

그러다가 성체기적 이라는 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이트에선가.

평화방송에서 방영했던 것인 것 같은데 이태리의 성당에서 한 신부가 성체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한 기록이었습니다.

그 신부는 그 때부터 형식적으로 영하던 성체성사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였으며 믿음이 깊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등이었습니다. 


즉, 이미 다른 나라에서 카톨릭 신부에게 이미 일어났던 성체 기적에 대해

우리나라 성직자분들은 빵과 포도주가 형태가 바뀌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 이시더군요.  이것은  '내몸이다' 할 때의 그것을 막상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믿지 않으신다는 것이더군요. 제가 믿지 않았던 것 처럼.


저는 이 곳을 몇달 전 알게 되어 놀라운 사진들과 경험들을 읽게 되어서 비로소

성체성사가 정말 예수님 몸이다 라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하나씩 받아 먹고 싶은 그냥 그런 호기심 대상. 아니면 나도 영세를 했으니 당당히 받으러 나가야지 하면서 참여했던 것. 혹은 그냥 미사에 참여했으니 마치 그 댓가로 꼭 받아야하는 것. 그저 그런 것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어떤 사진에서든가요. 어떤 외국 신부님이 윤율리나님에게 성체를 넣으시는데 사진에 찍힌 뚜렷한 예수님 모습.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옆으로 수평으로 어디론가 들어가는 모습.


믿지 않으려는 분들께는 사진이 조작이고 합성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면 예수님이 아무리 사진에 보이셔도 소용이 없겠지요.


신기한 사진이나 사건이 한두가지 라면 그건 그냥 착시현상, 착각, 환상 등등으로 스스로도 믿을 수 없겠지요.


여기 홈페이지에 와서 아무리 읽고 또 읽으려도 해도 너무나 많아서 다 읽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넘쳐나는 이야기들은 바로 여기 나주에 와서 정말로 체험했고 그래서 회개하거나 병이 낫거나 영혼이 구원된 그런 얘기들이었습니다.


광주교구에선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온갖 기적들이 그저 초능력이라구 한다더군요. 진정한 예수님과 성모님이 주신 것으로 볼 수 없고 그럼 마귀가 한 일이라는 뉘앙스 같더군요.교구에서 마귀라고 하면 너무한 듯 하니까 초능력이라는 표현을 한 듯 하군요.


무슨 마귀가 사람들이 회개하고 반성하고 서로 사랑하게 만듭니까.

무슨 사탄이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도와줍니까.

무슨 사탄이 저의 마음까지 움직여서 형식적으로 모시던 성체, 진심으로 감동적으로 영성체 하게 합니까.


주보에 났던 부정적인 공지문으로  처음 이곳을 알게 되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이곳에 와서 감동만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하는 논지가 약간 달라졌더군요.

교구권에 순명하지 않는다는. 그것을 갖고 부정하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해 좀더 잘 설명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구권.  교황님 말씀이라고 하면서 신부에게 순명하라했고 그러면 그 신부의 옳고 그름은 그 다음에 하느님이 판단해 주시면 될 일이라고 하셨다는데 어떻게 보면 성직자분들의 권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지만 이에 대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즉, 이제는 그 모든 기적에도 불구하고, 설사 그런 기적이 어떻건 간에 순명하지 않기에 부정한다라는 어떻게 보면 순환논리에 빠지는 듯한,  말장난에 빠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정말로 이 홈에 오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주동산에 직접 오시지는 않아도 호기심에나마 여기 오셔서 일어났던 일들을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귀가 태양을 움직인다는 것은 태양을 움직여 성체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 분들도 사탄이라고는, 초능력이고는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이 한 일이라고 믿으려는 그 분들께도 그냥 마귀가, 귀신이 한 일이라고 무시하시려는 분들께도 태양이 성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진들. 그 사진들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의심이 많은 저는 나주 사이트를 알고 여기 저기 다른 발현 기록들을 많이 읽어 본 후 다른 발현에서의 경험들과 나주는 일맥상통하는 일들이 많았으며 그래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신앙심이 깊어진 것. 예수님, 성모님을 정말로 가까이 느끼게 되고 믿게 된 것. 제가 회개하게 된 것. 성당을 잘 나가게 된 것.

이는 바로 사탄이 아닌 예수님이 원하시던 것이 아닌가요.




Name    오뚜기

Subject    성모님집은 저희들을 올바르게 인도해주시는곳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진실되더라도 느끼지를 못하지요.

처음 저의 사례를 보더라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믿으려 하지도 느끼지도 못하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죄를 주님께 드렸나를 뒤늦게 느끼고 후회하였지요.


처음 성모님집을 가게되었을땐  딸을 위해서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으로 나주라는곳에  처음  방문하였을땐  아무런 느낌도 없이 괜히 왔다는 기분으로 왠종일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투덜거리며 마음 가는데로 구경만하고 따라다녔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마음 한구석엔 마음의 잔잔함과 평온함이 엄습해옴을 느낄수가 있더라구요. 모든게 사랑스럽고 이세상의 모든것들을 다 용서할수 있을것만 같은 마음이 들더랍니다.


율리아자매님의 낙태보속을 볼수있는 은혜를 접하고 율리아자매님께서는 저희들의 죄때문에 많은 고통을 달게 받으시고 계시구나하는 생각도 하였답니다.


의심이 많은 저에게 장미향기가 나느냐구? 물어 왔을때 비웃듯 단호하게 짜증섞인 말투로 웃긴다는듯 안난다고 짤라말을 해버렸던 그런적이 있었지요.

그때가 1997년 11월 11일였나봅니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만남의시간에 저는 율리아자매님 앞에 서는 순간 진한 장미향기를 맡고 그만 그자리에 쓸어져버리고 말았지요.


열심하지 못한 자신이 성모님께  자신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되뇌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어제의 일인양 느껴옵니다.


성모님집을 다녀오고난후, 집에 도착하니 예전에 없었던 일이 저의 집 문을 띵똥하는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반갑게 문을 따주시는 저의 시어머님의 환한 모습과 방안 가득히 장미향기가 진동을하고 있음에 저는 또 한번 놀라고말았지요.

얼어 붙었던 저의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내리고 모든것에 감사함을 느꼈으며 사랑으로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 서면서 기적수 한잔을  저의 시어머니께 드렸드니  맛있게 잡수시고 "광아 나도  성모님집 한번 데려가자꾸나" 하시기에 "예" 하였지요. 그러고난후 어머니께서는 두어번 성모님집을 다녀 가셨답니다.

 

저보다 심성이 고우시고 열심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장미향기를 맡으신후 얼마나 좋아하시고 기뻐하셨는지 지금도 눈에 서-언 합니다.

돌아가실때까지 생활의 기도를 실천하시면서 사시다 임종 삼일전까지도 손에서 기도책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모습도 예전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는걸 느낄수가 있었지요.


사제가 주님 대리자임을 모른체 숨어 기둥뒤에서 미사를 드리고 신부님을 피해서 돌아다니며 아무것도 모르고 신부님을 미워한채 영성체를모셨고 그행동이  죄인줄도 모르고......뒤늦게 성모님집을 다녀오고난후에야 모령성체인줄 알았으니 얼마나 많은 죄속에 살고 있었나를 깨닭게 해주었지요.

 

고백성사를 보고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모령성체가 무엇인가를 나주 성모님집을 다녀온후에야 알게 되었지요. 그런저가 은혜스럽게도 몸과마음이 치유되고 지금까지 벗어나지 않은 범위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찌 나주 성모님집이 거짓된 곳이라 말할수 있을까요.


기적을 좀 따르면 어떻습니까. 저번에 다니던 저의 본당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신자들이 믿으려하지않으니 기적이라도 보여서라도 믿게 했으면 좋겠다고하시던 신부님 말씀이.... 성모님께서 원하시듯이 사제님들 두눈을 크게 뜨시고 어느것이 옳은가를 판단해주셨으면 하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Name 로사리맘
Subject  30일 성심의 성혈이 첫토요일에도 튀었어요.

 

찬미 예수님, 성모님 사랑해요.

나주 성모님은 마치 만나면 만날수록 더 좋아지고 보고싶어지는 애인 같아요.  
매번 만날  때 마다 느낌이  다르고 체험도 다르고. 저는 기념일에 못가서 다른 분들의 체험을  읽어보고는 그래도 기념일이랑 가까운 첫토요일 갈 수 있다는게 감사하고 출발 전부터 왠지 가슴이 설레는게 꼭 기념일의 감동이 느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저희 순례버스는 저녁때 도착해서 은총의 목욕을 하고 십자가의 길을 했는데
3처때 부터 비가 이슬비 처럼 내리기 시작하고 신선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답니다.
십자가의 길을 계속할 수록 비도 조끔씩 더 왔지만 많이 온 게 아니라 마치 우리에게 사랑을 내려주는 것처럼, 성혈로 목욕시켜 주시려는 것처럼 내려서 그 빗방울을 얼굴에 느낄때 마다 예수님의 성혈이 저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았지요. 마지막 갈바리아 동산에서 예수님의 발을 만질 때 예수님 발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니 마치 진짜 십자가의 달린 예수님을 보는 것같았어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런데 거기 요한 사도의 동상의 눈에 빗방울이 흘러내리는게 꼭 진짜 눈물 두 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평소 제가 좋아하던 사도 요한을 붙잡고 저도 요한 사도님처럼 예수님 마음에 평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저녁은 생략하고 묵주기도를 하러 또 나가야 했는데 저는 율리아 자매님으로 부터 직접 촛불을 받았어요! 그 때 율리아 자매님 온 몸으로 풍기는 나주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어요. 저는 그 때 깨달았지요. 주님의 사람은, 주님으로 부터 오는 고통을 허락하는 사람은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이런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것에서,축복한 모든  것에서 향기가 나는 건 당연한 거다.

사실 고백하건데 처음 나주 방문했을 때 성모님 사진 코팅한 거에서 나는 향기는 성모님상 향유를 적신 수건으로 닦았겠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용서해주세요.

수 신부님의 말씀에 나주성모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희생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사실 성모님도 계속 기도와 희생을 봉헌해 달라고 하면서 천상 구걸자에게 애긍을 베풀어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실 파티마의 어린이들이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것 희생하는 것 보면서
나는 어린애 만도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빵 과자 ,포기로 봉헌해야지 결심하는 순간부터 눈 앞에 빵 과자가 왔다갔다 하는데...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결심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하고 생각했는데 율리아 님의 성모상을 목욕시키면서 이제는 다시 시작하는 거다라는 말씀을 듣고 그래, 다시 시작하자. 나는 어린애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럴때 마다 다시 시작하는게 당연하다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님의 영가.
저는 다른 사람들이 막 우는 소리를 듣고도 저는 눈물도 안 나오고 할때 마다
저 사람들보다 내가 훨 죄인 일텐데 주님 이  딱딱한 심장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가중  '주님 저는 이때가지 사랑없는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증오만을 키우며 자라서  마음속에 아직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이가 남아있는 저를 성모님과 예수님은  사랑해 오셨고  너의 부모가 되어 줄 터이니까 이제부터 너는 증오의 기억을 지우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기억으로 너는 사랑넘친 가정의 일원이 되고 그러면 증오의 기억으로 언제나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속이 편했던 너는 이제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30일 예수님이 성심을 열어주시며 성혈을 뿌려 주셔서 옷에 성혈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소개하시는시간에 오늘도 성혈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옷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살펴보는데 제 바지 끝단에 핏방울 2방울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모기때문인가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런것 같지는 않고 성혈받은 사람들은 앞에 와서 이름을 적어라고 해서 일단 앞에 나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앞에 나갔더니 여러분들이 있었는데 사진찍는 분이 제 것은 성혈이 튄 거같다고 하셨습니다.
좋아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저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순례버스를 타고서도 계속 생각했습니다. 저를 기도와 희생으로 부르시는게 확실한데 저는 자신도 없고 그러면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자신없어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너 자신까지도 스스로 판단하지 말아라. 내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라고 하시는 것같았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새벽에 휴게소에서 바짓단이 더 이상 더러워지지 않도록 접어올리는데
바깥 성혈 안쪽에 4방울이나 더 떨어져 있는걸 발견했고  모기나 등등의 의심할 수가 없게 확실했습니다. 집에 와서 벗어보니 다른 곳에도 떨어져 있었어요.
성혈 부분만을 짤라서 보관할 지 바지 전체를 보관해야 할지..
바지는 다른 벌레들로 많이 더러워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요?

참, 순례버스에서 내린후 비는 오는데 물통들고 제가 집까지 어떻게 갔겠습니까, 같이 갔던 자매님이 집까지 태워 주셔서 편하게 갔답니다.
모든 걸 해주시는 성모님 감사해요. 자매님 가정에 평화주세요.

이 나라땅 나주에 성모님, 예수님 손길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저를 불러주신 어머니, 저 다시 시작해 볼께요.
예수님, 예수님의 뜻을 따르도록 언제나 저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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