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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수첩과 나주 진실

가톨릭 신앙의 핵심

특수계시의 분별

 

 

1.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제(實際)로, 그리고 실체적(實體的)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계시며, 따라서 그리스도 전체가 계심을 부정하고, 단지 그분께서 그 성사 안에 징표로서, 상징으로서 또는 능력으로서만 계신다라고 말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1)

 

 

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다라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 그대로 남아 있고 빵의 실체 전부가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변하는 이 훌륭하고도 유일무이한 변화, 즉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적합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이 변화를 부인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2)

 

 

3. 만일 누구든지 존경받아 마땅한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어느 한 쪽의 형상 하에서도 그리고 그로부터 분리된 각 부분에도 그리스도의 전체가 내재하심을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트렌트공의회(DS 1653)

 

 

 

   

 

 

세계의 성체기적들

성체기적에 대한 설명  -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체는 완전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  존 하든 신부 (예수회)
 

 

세계의 성체기적들
 

성체기적들은 지난 2,000년 교회 역사상 꽤 많은 회수에 걸쳐 일어났으며 그 중의 상당수가 교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1997년 인도에서 30세 난 부인에게 두 차례 율리아 씨에게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를 목격하신 그 지방 대주교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가까운 예는 남미의 베네주엘라에 있는 베타니아라고 하는 곳인데, 거기에서도 메지시 및 병 치유의 사례가 많았고, 또 거기에 온 많은 사람들이 직접 성모님의 발현하시는 모습을 뵈었다고 합니다. 그 지방 주교님께서는 이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계셨으나, 확정적으로 인정하시지는 않고 계셨습니다. 약 2,000명의 증인들을 조사하셨다고 하는 데, 그래도 인정을 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성체에서 성혈이 흐르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 성체는 지금도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성체기적을 보시고 주교님께서는 확신에 이르셔서 베타니아의 일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30년에는 이태리의 시에나의 한 성당에서 성체가 가득 담긴 성합이 도둑을 맞았는데, 나중에 다시 찾게 되어 지금까지 보존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270년이 지난 후에도 조금도 변질하지 않고 신선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보통 미사때 쓰는 면병은 10년도 못가서 거의 다 변질해버리는 것인데 이렇게 오래토록 신선하게 보존되는 것 역시 기적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1980년 9월 14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 기적의 250주년을 기념하여 이 성당에 순례오셔서 그 기적의 성체 앞에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서기 700년 경에는 이태리의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꼬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신부님께서 성체 도리에 대한 의심이 갑자기 생겼습니다. 그러자, 성체와 성혈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살과 피로 변하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자기가 의심 한 것을 고백하고 뉘우쳤으며, 그 기적의 성체는 아직까지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난 1,300년간 여러분의 주교님들과 교황님들 께서 이를 재차 인정하셨으며, 1970년 대에는 다시 철저한 과학적 조사에 의하여 그 성체가 사람의 심장 근육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혈액형은 AB로 판명되었습니다 (나주에서는 sample 양이 너무 적어서 혈액형 검사는 하지 못했습니다. 수건에 묻은 피를 약간 잘라서 검사했기 때문). 1992년 5월에는 율리아 씨 부부와 필리핀의 오제리 신부님 및 순례자들이 란치아노의 그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율리아씨가 모신 성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살과 피로 변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성체기적들 중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소와 연대만 여기에 기록하며, 그 내용은 영어로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태리의 란치아노 ..........................  약 700년

    프랑스의 브렌느............................... 1153

    이태리의 페레라............................... 1171

    독일의 아우구스부르그 ..................... 1194

    이태리의 아라트리 ........................... 1228

    폴튜갈의 상타렘 ...............................13세기 초

    이테리의 피렌체 .............................. 1230년, 그리고 1595년

    스페인의 다로카 .............................. 1239

    첵코슬로바키아의 슬라보니체 ............ 1242

    독일의 레겐스부르그......................... 1257

    이태리의 볼세나-오르비에토............... 1263
    (미사 중에 성체에서 피가 흘러나왔음. 1964년 8월에 교황 바오로 6세 께서 이 성당을 방문하시어 기적이 났던 제대에서 미사 성제를 드리심)


    이태리의 오피다 ............................... 1280

    벨기에의 하쎌트 ............................... 1317

    이태리의 시에나 ............................... 1330년, 그리고 1730년

    프랑스의 블라노 ............................... 1331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 1345

    이태리의 마체라타 ............................ 1356

    벨기에의 브라쎌 ................................ 1370

    벨기에의 미들부르-루벵 .................... 1374

    오스트리아의 제펠트 ......................... 1384

    프랑스의 디죵 ................................... 1433

    프랑스의 아비뇽 ................................ 1433

    이태리의 토리노 ................................ 1453

    이태리의 모로발레 ............................. 1560

    스페인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 .............. 1597

    프랑스의 파베르네 ............................. 1608

    이태리의 팔레르노 ............................. 1772

    프랑스의 페질라 라 리비에르............... 1793

    프랑스의 보르도 ................................. 1822

    폴랜드의 두브나 ................................. 1867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유니옹도 ........... 1905

    독일의 스틱히 .................................. 1970 (2회)

 

이외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성체 기적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미 교회의 인정을 받은 폴튜갈의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이 1917년 5월 13일부터 동년 10월 13일까지 있었는데, 그 도중에 성 미카엘 대천사가 성체를 모시고 와서 세 아이에게 영하여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왜 이렇게 누차에 걸쳐서 성체의 기적들을 보내주시는 것이며, 또 이 세상에서는 그 성체 기적들을 놓고서 인간들이 왜 그렇게 논쟁이 많은가 하는 데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철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가 다 가끔 우리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또 결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등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즉 인간에게 주어진 지성과 자유 의지를 잘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만유를 창조하고 주재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또 그분께서 무한하고 완전한 진리와 선과 생명과 정의와 힘과 사랑 그 자체이심도 깨달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자아의 탈을 깨트리고 나와서 하느님께 결합되고 그분의 거룩하시고 완전히 선하신 뜻에 스스로 종속되며, 또 이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존중과 자비로써 대하며 진리를 전한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과 선에 참여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목적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조인 아담과 에와가 허영심에 빠져 자유 의지를 잘못씀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결합되어 있던 복된 처지를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서는 악과 오류와 병과 죽음 등의 세력을 이겨낼 수가 없으므로, 이 세상에 온갖 나쁜 것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천주 성자를 보내시어 우리 대신 고통을 받고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세주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주신 계명을 지킴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구원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천주 성자께서 구세주로 오셨다라고 하는 사실은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성을 취하시어 우리 사이에 와서 거하시게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즉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만난 것이며 연결된 것입니다. 이는 엄청난 사실로서 물질 문명에 깊이 물든 현대인들로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그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을 보던 많은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한낱 인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천주 성부와 동등한 하느님이심을 밝히시는 그분을 체포하여 처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구세주께서는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이 지상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셔서 그 교회 안에 당신의 계속 되는 실존을 주시고, 인간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고, 진리와 계명을 가르칠 임무와 권위를 주시고, 기타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은총들을 주시기 위하여 7성사 등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리스도와 꼭같이 그분의 실재를 지니고 있고 그분의 능력과 권위가 있고 그분의 진리가 있는 곳입니다.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혁명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또 성경을 믿으면서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연속이라는 사실은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체 도리를 부인하며,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단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기타 고해 성사, 성직 제도, 연옥, 성모 신심 등 수많은 진귀한 것들을 배척해버렸습니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가톨릭 교회 안의 신앙도 많이 침식되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교회 안의 절대적인 진리와 절대적인 계명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믿는 신자는 약 30%밖에는 안된다고 합니다. 이를 믿지 않는 신부님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여 진리가 진리 아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최근에 나주를 통하여 성체기적들이 누차 주어진 것은 현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하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진리를 인간 중심, 물질 중심, 세속 중심의 사상에 물들어 이를 양보하고 희석화 시켜온데 대한 하늘의 경고이며, 또 끈질기게 우리를 진리와 생명에로 이끌고저 하시는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격려이십니다.

이번 광주 대교구의 신부님들 몇 분의 주도 하에 나주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난 것도 그 신부님들께서 정통적인 가톨릭 신앙에서 떠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쓰신 글들을 읽어보면 너무나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왜 구세주의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모습 안에 숨기고 계시는 것일까요?

한 가지 이유는 성체와 성혈이 사람의 살과 피의 모습으로 되어있다면, 신자들이 이를 영하기가 대단히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성혈을 받아모시는 목적은 주님과의 내적인 일치에 있으므로, 살과 피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빵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되어있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죽은 살과 피가 아니라, 주님의 신성과 영혼이 함께 결합되어 계시는 완전하시고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그분과의 내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천국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더 중요한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테스트하기 위하심입니다. 주님께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시어 하느님의 완전하시고 찬란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세상의 그 어느 누구가 주님을 모시기를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천상 천하의 왕의 모습으로 오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면, 이는 진정한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내가 누추하고 병들고 힘없고 가난한 모습인데도 네가 그래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조그맣고 하얀 둥근 성체의 모습에는 인간의 허영심을 끌게 할 그 어떤 외적 모습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존재만을 드러내시는 주님께서 우리와의 내적 일치를 위하여 오시기 전에 우리의 믿음과 신뢰와 사랑을 먼저 보고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바른 선택을 통해서만 주님을 모실 수가 있고 하늘나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모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왜냐 하면,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그 통로이셨기 때문입니다.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실 때 그냥 무조건적으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성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동의를 먼저 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를 가졌던 마리아께서 사랑과 순명의 동의를 하심으로써 비로소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육화하시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세주의 잉태와 탄생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생 전체를 통하여,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도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셨으며 협력자이셨습니다. 아직도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인류 구원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천주 교회를 위해서도 성모님께서는 필수적인 역할로써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이끌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998.  5.  30
Gresham, Oregon, U.S.A.
이  분도

 

성체기적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설명

 

'살이나 어린 아이의 모습이 성체성사 안에 기적적으로 나타났을 때, 그리스도의 몸이 참으로 거기에 현존하는지에 대하여'

이러한 모습이 이를 보는 이들에게 변화가 일어나서가 아니라, 실제로 외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며, 그 모습이 잠시만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그러한 현상이 참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어떤 이들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보이지 않고 그분 살의 일부만이 보인다든지, 그분의 성장하신 모습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중에 더 설명하겠지만, 아직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지 않은 인간들의 눈에 그분의 몸 전체가 보이든지 부분적으로만 보이든지, 또는 당신 고유의 모습으로 보이시든지 아니면 달리 보이시든지 하는 것은 영화롭게 되신 당신의 육신의 능력 안에 속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 .

결론적으로, 형태라든가, 색깔이라든가, 기타의 외양이 변하여, 살이나 피 또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전에도 언급되었듯이 이러한 현상(성체기적)은 기만(속임, deception)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상은 진리를 드러내어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기적적인 현상을 통하여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참으로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학대전 제 3, 질문 #76,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방법에 대하여, 8)


It sometimes happens that such apparition comes about not merely by a change wrought in the beholders, but by an appearance which really exists outwardly. And this indeed is seen to happen when it is beheld by everyone under such an appearance, and it remains so not for an hour, but for a considerable time; and, in this case some think that it is the proper species of Christ’s body. Nor does it matter that sometimes Christ’s entire body is not seen there, but part of His flesh, or else that it is not seen in youthful guise, but in the semblance of a child, because it lies within the power of a glorified body for it to be seen by a non-glorified eye either entirely or in part, and under its own semblance or in strange guise...

While the dimensions remain the same as before, there is a miraculous change wrought in the other accidents, such as shape, color, and the rest, so that flesh, or blood, or a child, is seen. And, as was said already, this is not deception, because it is done to represent the truth, namely, to show by this miraculous apparition that Christ’s body and blood are truly in this sacrament.

- S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Part III, Question 76: Of the Way in Which Christ is in This Sacrament, Article 8

 

 

성체는 완전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예수회 존 하든 신부님 (Rev. John A. Hardon, S.J.)

성체성사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성체는 누구이신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이 대답 안에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체의 의미를 정의(定義)하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그분의 영혼 및 신성(神性)과 함께, 따라서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제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성체성사 안에 계신다." 라고 선언하셨다.

트리엔트 공의회 후 얼마 안 되어 성 비오 5세 교황께서는 로마교리서(The Roman Catechism)의 출판을 인가하셨는데 이 교리서는 교회의 사목자들을 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를 기초로 해서 공의회의 가르침들을 설명한 것이었다.

교리서는 성체성사에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심에 관하여 사목자들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 성사 안에는 진정한 몸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 즉, 뼈라든가, 신경이라든가, 기타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참 몸만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그리스도의 전부가 계신다."  따라서 성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 및 완전한 인성이 현존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의 영혼 및 몸과 피가 이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계신다.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분이신 인격체 안에 그분의 인성 전체가 신성에 결합되어 계신다. 성체성사에서는 그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성체는 마리아의 아들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억측이 아니라 냉철한 사실이다.  그리스도를 형성하는 모든 것이 성체 안에 계신다.  성체가 그 이하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변화(聖變化: Transubstantiation)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살아계시고 영광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빵과 포도주로부터 남아 있는 것은 우리의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빵과 포도주의 외적 성질들뿐이다.  

교회의 동방 교부들이 말했듯이 빵과 포도주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즉 현실로 변화되는 것이다.  

제대 위에서 축성된 후에는 빵과 포도주였던 것이 더 이상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셨으며 마지막 날에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영광 속에 오실 바로 그 예수님이신 것이다.  

천국에 계시는 예수님과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사이에 어떤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같으신 단 한 분의 예수님이실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오로지 우리들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지상에 있는 우리들은 우리의 오관으로 그분의 본래 모습을 보거나 감촉할 수 없다.  이는 그분께서 지니신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한계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예수님께서는 성체를 통하여 지금 참으로 지상에 계신다.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위에 반복하여 재차 강조된 여섯 문장들은 가톨릭교회가 왜 성체성사에서의 주님의 실제적인 현존을 역사 상 줄기차게 강조해 왔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떻게 교회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톨릭 세계의 모든 감실마다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나는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약속 교회는 믿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맥박이 뛰고 있는 그분의 성심을 포함하여 그분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지니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전심을 다하여 그분께 봉사하는 데 필요한 빛과 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그분의 구속사업을 계속하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성체성사에서의 주님의 실제적인 현존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성장해야 한다.  살아서 숨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 안에 계신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존"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더 깊은 뜻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영적으로는 서로에게 현존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영적으로 현존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지성(知性: Intellect)으로 인식하여 그를 자신의 지성 안에 지니며, 또 그를 사랑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마음 안에 지니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하여 지상에 계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암시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심화시키는 것, 그리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써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성체강복 때 부르는 성가:Tantum Ergo에서 우리는 "우리의 오관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의 믿음이 보충하는도다." 라고 노래하는데 이는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하신 인성의 모든 본질들을 지니시고 성체 안에 계시며, 이는 우리가 비록 오관으로는 느끼지 못하나 신앙에 의거해서 진실임을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체의 현실은 명백하다.

그것은 동정녀 마리아께로부터 나신 나자렛의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실을 지성으로 의식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믿는 바에 기꺼이 응답하도록 노력을 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지상에 계신다.  왜인가?  이는 우리들이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이들 못지않게 지금의 우리들이 그분께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함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사랑에 찬 신앙으로 다가간다면, 그분께서 해 주실 엄청나게 놀라운 일들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잠잠하라!" 고 하심으로써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고 "라자로야, 일어나 나오라." 고 하심으로써 죽은 그를 살리셨던 바로 그 입술을 지니신 그분께서 성체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체성사에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인성을 통하여 행사하시는 그분의 힘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한 제한이 있다면 그것은 그분의 전능하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약함과 신뢰의 부족함 뿐이다.

(Soul Magazine, 1989년 11-12월호)

 

The Holy Eucharist is The Whole Christ

by Rev. John A. Hardon, S.J.

The most fundamental question to ask about the Blessed Sacrament is,
"Who is the Holy Eucharist?"  

And the correct answer is:
"The Holy Eucharist is Jesus Christ."

There is more behind this answer than many Catholics realize. When the Council of Trent in the sixteenth century defined the meaning of the Eucharist, it declared that "the Body and Blood, together with the Soul and Divinity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refore the whole Christ, is truly, really and substantially contained in the sacrament of the Holy Eucharist."

Shortly after Trent, Pope St. Pius V authorized the publication of the Roman Catechism, which built on the Council of Trent and explained its teachings for the pastors of the Church.

Regarding the Real Presence, the pastors were told to explain that "in this sacrament is contained not only the true Body of Christ - and that means everything that goes to make up a true body, such as bones, nerves, and so on - but also Christ whole and entire." Consequently the Eucharist contains Jesus Christ in the fullness of his divinity and the completeness of his humanity.

Jesus is therefore in the Blessed Sacrament "whole and entire: the Soul,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with all their component parts. In heaven a complete human nature is united to the divine nature in one… person. It is a denial of the faith to suppose that in this sacrament there is anything less."

It is not speculation but cold revealed fact that the Holy Eucharist is the Son of God who became the Son of Mary.

Whatever makes Christ, Christ, is in the Holy Eucharist; nothing less.

Consequently when we speak of transubstantiation, we mean that the whole substance of bread and wine, its "breadness" and "wineness," is replaced by the living and glorified Jesus Christ. What remains of what had been bread and wine, is only their external properties that can be perceived by the senses. As the Greek Fathers of the Church say, the ousia or being of bread and wine is changed into the being or reality of Jesus Christ. On the altar after the consecration there is no longer bread and wine but the same Jesus who was crucified, died and rose from the grave; and who will come in his glory on the last da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s there any real difference between Jesus in heaven and Jesus in the Eucharist? No, it is the same Jesus. The only difference is in us. We now on earth cannot see or touch him with our senses. But that is not a limitation in him; it is a limitation in us.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Jesus is really now on earth in the Eucharist.

The foregoing six statements, repeated and separately emphasized, explain why the Catholic Church has defended the reality of the Real Presence so strenuously down the centuries.

What else could she do? She believes that our Lord's promise, "I will be with you all days, even to the end of the world," is being literally fulfilled in every tabernacle of the Catholic world. He is in our midst with all that makes him man, including his pulsating Sacred Heart. And he is here to continue his work of redemption by giving us the light and strength we need to serve him with all our heart.

We speak correctly of believing in the Real Presence. But we should grow in our understanding of what this implies.

The living, breathing Jesus Christ is in the Blessed Sacrament. This is the reality. When we speak of presence, however, we are saying something more.

Two people may be really near each other physically, but not present to each other spiritually. To be present to some, one means to have another person in mind by being mentally aware of their existence, and to have them in one's heart by loving that other person.

What, then, is the most important implication of our belief that Jesus is on earth in the Holy Eucharist? It is our duty to cultivate an awareness of this fact and to act on the awareness with our love.

When we sing the Tantum Ergo at Benediction, we ask, "that our faith may supply for what our senses cannot perceive." What are we saying? We profess to believe that Jesus is in the Eucharist with all the qualities of his risen humanity, although our senses cannot perceive what we know, on faith, is true.

The reality of the Eucharist is clear. It is Jesus of Nazareth who was born of the Virgin Mary. But we must make ourselves mentally conscious of this reality and voluntarily respond to what we believe.

Jesus is on earth in the Blessed Sacrament. Why? In order that we might come to him now no less than his contemporaries did in first century Palestine. If we thus approach him in loving faith, there is no limit to the astounding things he will do. Why not? In the Eucharist he has the same human lips that told the raging storm, "Be still!" and commanded the dead man, "Lazarus, come forth!"

There are no limitations to Christ's power, as God, which he exercises through his humanity in the Eucharist. The only limitation is our own weakness of faith or lack of confidence in his almighty love.

Taken from the November-December issue of "Soul Magazine"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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