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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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19일

타는 냄새란?

 

내가 나주 성모님 경당에서 묵주의 기도를 하고 있는데 타는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기에 혹시 옆집에서 모닥불을 피우나? 했는데 모닥불이나 또는 무엇을 태우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왜 그런 냄새가 나느냐?"고 율리아 자매에게 물었더니 "영혼을 태워 주는 내음"이라고 하여 나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더불어 성모님께서 내 영혼의 더렵혀진 것을 태워주신 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감사할 뿐이었다.

 

1991년 7월 23일    

성모님 상의 손에서 맥박이 뛰다니...     

 

필리핀에서 제리 오르보스 신부님과 교우 15명이 성모님 집에 순례와서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나는 눈물 흘리신 성모님 상 손을 잡았는데 맥박이 선명하게 뛰어 깜짝 놀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성모님 상의 손과 발을 잡고 맥박수를 세어보았더니 1분에 82회나 뛰었다. 성모님은 이 때 장미 향기를 무척 많이 주셨는데 이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하다고 생각하던 차 율리아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맥박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고 피눈물을 많이 흘리실 때는 맥박수가 높아져 103번도 뛰었고 때로는 맥박수를 잴 수도 없이 빠를 때도 있고 또 평온하신 때는 70-72번도 뛰시고 어쩔 땐 40-43번 또 어떨 땐 아주 뜨겁게 진동이 오기도 하고 또 우리 살과 똑같이 말랑말랑하여 놀란 이들이 많은데 그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들이 많다하니 놀랄 수밖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1991년 7월 30일

희생을 바쳐 봉헌하면 더 기쁘다.

 

저녁에 율리아 자매 부부 그리고 협력자 몇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봉헌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사제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으나 오늘 나도 드디어 봉헌된 삶을 살기로 굳은 결심이 선 날이다.

이야기인즉 성모님이 우실 때 서울, 광주, 목포, 나주 신자들이 모여 처음 눈물 흘리셨던 미용실에서 9일 철야기도를 시작했다.

12시경에는 철야기도 하러 오신 분들에게 일일이 커피를 타주고 3시경에는 간식까지 주게 되었는데 율리아 자매는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커피를 먹으면서 잠을 몰아내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커피를 봉헌하면서 희생으로 기도했다 한다. 낮에는 미장원 손님 받으면서 순례자들 도우랴 철야기도 하러오신 분들 커피와 간식을 혼자서 봉사하랴, 9일 기도가 2번째 끝나는 18일 동안 철야기도 하면서 잠은커녕 누워보지도 못한 채 기도했으나 잠을 자지 않아도 너무 행복하고 기쁜 나날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미용실 바로 옆 건물에 목욕탕이 있는데도 목욕탕에 가지 않고 연탄과 난로 불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목욕탕에 갔다고 생각하며 목욕료 500원 중 연료비 50원을 빼고 450원씩 계산해서 매번 애긍함에 넣었고 택시 타야될 때 버스 타고 버스 타야 될 때 걸으면서 그 돈을 애긍함에 넣어 모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곤 했다 한다. 일류 기술자가 되어 미용실을 경영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했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 고생하지 않고도 머리 한사람만 해 줘도 목욕탕도 갈 수 있고 불쌍한 사람 도와 줄 수 있을텐데…"하고 말했더니"쉽게 번돈으로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것은 희생이 따르지 않기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그만 것일지라도 피땀 흘려 희생과 사랑들을 모아서 베풀고 나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몰라요"라고 하여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제로서의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러나 '부끄러워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지. 나도 이제부터 봉헌된 삶을 살면서 이제까지의 잘못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보속의 의미로라도 주님과 성모님께 더욱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나아가 어린아이처럼 더욱 작아져 주님 닮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