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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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5일

눈먼 맹인 봉일동 할아버지 눈을 뜨다.

 

이번 주일에는 수해를 입은 경상도 주민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헌금하기로 했다.

오늘은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나주 성모님에 대한 영어 안내서 교정을 위해 강진 시튼 수녀원에 들렀는데 노린 수녀님은 바쁘신 중에도 친절히 그리고 자세히 교정해 주셨다. 환자가 있어 목포에 갔다가 나주 경당에 도착하니 지난 8월 27일부터 흘리신 성모님의 눈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성모님 앞에서 기도한 후 루비노 형제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기가 어떻게 해서 나주를 오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율리아 자매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많은 이들을 몰래 찾아다니며 돌보아주었는데 그중 세 사람 이야기만은 각박해진 요즘 세태에 귀감이 되겠기에 간략히 적어 본다.

루비노 형제는 공소 회장이었는데 그곳에는 폐병 환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다보니 심한 기침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아내가 뭍(육지)으로 가서 병을 다 고치고 오라며 공소 마당에 심어 수확한 마늘 판 돈을 주어 집을 나오기는 했으나 정작 갈곳이 막막했다.

그는 푸른 군대에서 함께 봉사해온 율리아 자매가 생각이 나 그를 찾아가 함께 기도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가슴을 치면서 울었는데 그 눈물과 콧물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렇게 심하던 기침은 멎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여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자 가져온 돈은 병원비로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율리아 자매에게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사양하기에 가족들에게 묵주라도 사주고 싶어 나주 본당 성물 판매소에 함께 갔는데 자매는 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러면 1단 묵주로 선물해 주세요"라고 하여 묵주를 고르고 있던 중 옆에 있던 성모상을 보고 "어머, 성모님 예쁘시다" 라고 무심코 했던 율리아 자매의 그 한마디에 잽싸게 그 성모상을 6.500원 주고 사서 선물했는데 바로 그 성모상이 1년 후에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이다.

루비노 형제는 나주를 자주 다녔다. 그런데 나주에 올 때마다 율리아 자매가 어디엔가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다니는 곳이 있어 가만히 따라가 보았더니 눈먼 맹인 할아버지를 시중들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마련하여 보살펴 주는 모습을 보게 된 루비노 형제는 '율리아 자매는 실천으로 사랑하고 나는 책을 보고 사랑하였으니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율리아 자매는 그 할아버지를 업고 다니며 세례명을 안드레아로 세례도 받게 했다. 다음날에 또 율리아 자매를 따라서 그 할아버지에게 갔는데 할아버지가 드셔야될 밥통의 밥을 쥐가 들어가 파 먹고 오줌 똥까지 싸놓아 새까맣게 더렵혀지고 다져진 냄새나는 밥을 본 율리아 자매는 얼마나 엉엉 울었던지…루비노 형제도 덩달아 울게 되었다. 루비노 형제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율리아 자매는 어느샌가 물을 데워 할아버지를 목욕 시켜 옷까지 입혀놨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를 붙들고 엉엉울던 율리아 자매는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하루만 살아도 좋겠다"라고 말하더니 온갖 노력 끝에 수술하여 결국 할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주어 심청이를 연상케 한다. 할아버지는 눈을 뜨신 후 5년을 더 사시고 90세에 돌아가셨는데 율리아 자매는 그 할아버지에게 더 잘해 드리지 못함에 장례를 치르면서도 얼마나 울었던지, 그것을 지켜본 주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부모 형제에게도 그렇게는 못한다"며 율리아 자매를 "희생벌레", "사랑을 더 주지 못하여 애타는 자매"라고 지칭했다 한다.

그 할아버지의 100일 탈상 미사를 성모님집 비디오실에서 본당 주임인 이천수 나자로 신부님께서 해 주셨고 조촐한 음식을 나누는 가운데 율리아 자매는 또 울면서 "한 번만이라도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를 더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안타까워했다 한다.

 

방지거 할아버지 이야기(예수님?)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의 백일 탈상 미사가 끝나고나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난 후 본당 신부님과 형제 자매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루비노 형제가 "율리아 자매님이 좋아할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 하며 너무나도 초라한 장애인인 불쌍한 할아버지가 길에 있어 이런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율리아 자매에게 데려왔다 한다. 율리아 자매는 그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정말 너무 고마워요.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더니 대신 보내주셨네요" 하면서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했다 한다.

율리오 부부는 그 할아버지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는데 아무리 닦아도 때가 벗겨지지 않았다. 목욕시킬 때 그 자리에서 오줌을 누더니 방에 데려가니 거기에서도 오줌을 누어버릴 뿐 아니라 화장실에서는 변을 사방에 뿌려 놓았지만 율리아 자매는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며 그 할아버지를 목욕시켜 주고 손수 머리를 깎아 주고나서 보니 할아버지가 아니고 중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말도 못하고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없으니 율리아 자매가 손수 먹여주어야 될 형편이었다고 루비노 형제는 술회한다. 자매는 그에게 노래도 해주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였기에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 종이에 50부터 60까지 글씨를 써서 가르키며 순차적으로 50? 51? 52? 하고 물어보면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그래서 이번엔 밑으로 내려 가 보았더니 40대도 아니었다. 그런데 30? 31? 32? 33? 바로 그 때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한다. 그래서 그의 나이가 33세라고 알게 되었고 이름은 「방지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방지거 씨는 놀라울 정도로 말을 빨리 배우기 시작했고 율리아 자매가 노래해줄 때마다 흥얼거리며 웃음을 잃지 않고 노래에 맞추어 몸짓까지 움직여가며 즐거워했다.

자매와 함께 있지 않을 때는 경당 입구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자주 율리아 자매의 방인 다락방만 쳐다보곤 했는데 하루는 자매의 고통테이프(비디오)를 보고서 대성통곡을 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눈물과 콧물을 닦은 화장지가 방지거씨 앞에 수북이 쌓였다 한다. 그는 자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경당에 모셔진 성모님 상을 계속 바라보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흥얼거리며 노래하고 춤까지 추었다 한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신 5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많은 이들이 방지거를 걱정하자 자매는 "걱정하지 마세요. 내 옆에 있게 할거예요. 혹시 알아요?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어 완전하게 해주실지…" 하며 자매는 목욕물을 데워놓고 방지거에게 "이 곳에 가만히 계셔요. 목욕하고 새옷을 입혀 드릴께요" 하며 목욕시킨 후 새옷을 입혀서 성모님께 데리고 나가기 위하여 목욕물과 새옷 준비를 다해놓고 방지거를 찾았으나 방지거는 온데 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고 연락할 길이 없어 파출소, 경찰서, 나주 사회 복지과, 병원, 여러 곳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 날은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신 5주년 기념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걸음으로 나갔으면 누가 봐도 볼 수 있었을텐데… 하며 자매는 방지거에게 입히려고 사두었던 새옷을 부둥켜 안고 울다가 파출소, 사회복지관, 병원, 심지어는 경찰서까지 다니며 찾다가 나이가 들었지만 나주 종합 병원에 입원해 있던 방지거 비슷한 분을 대신 맞기로 하고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파 신부님께 전화로 말씀드렸다.

파 신부님은 "그가 천사일 수도 있고 예수님일 수도 있어요" 라는 그 말을 들은 자매는 "어머, 어머나 방지거가 33살! 그래 맞아, 예수님일지도 몰라"그 소리에 그를 지켜 보았던 순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맞아요, 맞어 예수님이 틀림없어요. 율리아 자매님의 고통 테이프를 비디오로 볼때도 그 분이 통곡하는 소리에 우리도 함께 울었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분은 6월 15일날 오셨다가 30일날 자취를 감추었으니 15일간 머물다 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누추한 장애인인 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경당 앞 의자에 자주 앉아 계셨으며 고통 테이프를 보시고 "율리아가 나와 함께 저렇게 고통에 동참하고 있구나!" 라고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자매는 그분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마태오 25장 40절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때 하신 말씀처럼 되리라 믿는다. 즉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무형의 하느님을 만나려면 유형의 예수님을 통해서 만날 수 있듯이 이젠 무형의 예수님을 만나려면 유형의 인간(예수님의 닮은꼴)을 통해서 가능하리라.

루비노 형제는 율리아 자매의 영가속에서 시편 29장을 그대로 한획도 틀림없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 '이제 나주에 와서 율리아 자매를 도와 성모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주에 오게 됐음을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 당시 루비노 형제의 본당 신부가 나였으므로 내가 나주에 가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결국 우리가 이렇게 성모님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