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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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14일

모세와 지팡이
 

금년 휴가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었고 보람된 3일간 이었다. 아니 휴가라기 보다는 개인 피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율리아 자매로부터 성모님의 메시지와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또 율리아 자매는 서울 천호동 본당에서는 천여 명의 성령 가족들에게 3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며 사랑에 찬 나주 성모님 말씀의 전달이 있었다. 특히 사제들의 성화와 성체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이 많았던 것이 감명 깊었고 성령운동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였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참석한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말들을 들려준 것 같았다.

그 이튿날에는 인천 부평 1동 성당에서 약 3천 여명의 신자가 모였는데 성당 안과 밖의 마당에까지 꽉 차 있었으며 곳곳에 비디오가 설치 돼 있어 참 흐뭇했다. 그 날 저녁에는 나주에 가끔 오는 형제 댁에서 쉬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형제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저녁 기도를 하는데 율리아 자매가 낙태 보속 고통이 너무 심하게 온 것이다. 알고 보니 친지 중 한 분이 낙태 수술을 했었는데 그분의 죄에 대한 회개를 위하여 율리아 자매가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을 보고 그 자매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뻤다.

율리아 자매 말씀을 듣는데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은 것은 모세와 지팡이 사건이었다. 이야기인 즉 율리아 자매는 이틀간 냉담 한 적이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미사 참례는 했지만 성체를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율리아 자매는 어떤 분을 위해 헌신을 다해왔으며 미용실을 경영하면서도 그분을 위하여 조촐하게나마 친정어머니와 이모님들의 도움을 받아 회갑 잔치를 해 드렸는데 그 분은 다음날 찾아와서는 오히려 잔치 준비며 손님 초청이 미흡했다며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니 가정 살림을 도와주시던 친정 어머니께서 "여기는 영업을 하는 곳이니 하실 이야기가 있으시면 방에 들어가서 하시면 안되겠어요?" 하시니 그분은 "당신이 뭔데 그래?"하며 자매의 친정 어머니를 밀어 뜨려 허리를 크게 다치게 하여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들게까지 하고는 갖은 욕설을 퍼부은 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떠나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애썼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어머니를 다치게 하다니… 자매에게는 어떠한 모욕을 주고 짓밟아도 괜찮지만 어머니를 다치게 했으니 그분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아 미사에는 참례했으나 성체를 모시지 못했기에 그 이틀간의 영적인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깨끗하게 목욕하고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그분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본 후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모시기 위해 본당신부를 찾았으나 외출 중이셔서 나주에서 가까운 영산포에 갔으나 거기에도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다시 송정리로 갔다.

그러나 본당마다 신부님이 계시지 않아 또다시 광주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북동 성당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다시 갈아타야 되기 때문에 내리려고 하는데 늦게 내린다고 안내양이 자매를 사정없이 툭 미는 바람에 승강장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자매 밑에 어떤 할아버지가 누워서 죽어 있는 것 같이 숨도 쉬지 않기에 놀란 자매는 우선 크게 성호를 긋고 그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였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의 손을 통해 주님께서 친히 이 할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하고 기도했는데 할아버지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다.

그 때 일어서는 할아버지에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드리고 지팡이를 손에 쥐어드리니 할아버지는 자매의 어깨를 세 번 두들기면서 "이제 됐어 됐어" 하며 고맙다고 하더란다. 자매는 차를 타려고 버스를 보다가 교통비라도 드리려고 그 할아버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모두가 "금방 여기 계셨는데…" 하며 의아해 했다 한다.

자매는 그 근방을 모두 찾아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어 순간 '할아버지가 세 번 어깨를 두들겼던 자리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는데 그 먼지가 없어졌으면 아마 예수님일지도 몰라' 하고 어깨를 보니 먼지는 온데간데 없고 깨끗해졌더란다. 허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공용 터미널 앞에서 내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안내양에 의해 툭 떠밀려 밖으로 떨어지니 자매는 그 할아버지를 모시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북동 성당 사제관에 들러 신부님을 찾았으나 금방 나가셨다는 것이다.

시내 본당을 잘 모르는 자매는 아는 분에게 전화를 하여 "어느 본당에서 저녁 미사가 있습니까"하니 호남동 성당에 저녁 미사가 있다고 하기에 늦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호남동 성당에 갔는데 미사는 없고 어떤 수녀님의 사순절 특강이 있었다. 내용은 「모세와 지팡이」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아까 그분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기에... 강론 내용은

"지팡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자르고 가지를 치고 껍질을 다 벗기고 반듯하게 모가없이 깍아야 하니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플 것이다. 깍이지 않고 어찌 좋은 지팡이가 되겠는가. 우리도 하느님의 지팡이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깍이지 않고는 안되며 하느님의 지팡이로 쓰이기 위해 불림 받았으니 그런 아픔을 잘 봉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매는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으나 그분이 예수님이든 모세였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크나큰 사랑을 체험하고 깨끗한 영혼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고자 미리 예비하신 일이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를 기르시며 우리와 결합하시고자 성체성사를 세워 주셨고,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성사를 찬미해야 되는데 자주 성사를 보지 않으므로 영혼이 낡아지고 있다. 그래서 깨끗하게 옷을 세탁해 입고 높은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자주 성사를 보며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 주님을 영접하자.

아무리 깨끗이 보존한다 할지라도 영혼이 그대로 깨끗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으로 창조하셨다면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나 영육이 합일된 인간으로 창조하셨고 아담과 에와의 원죄를 물려받은 인간이기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통해 너희 영혼이 깨끗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1987. 6. 15 성모님 메시지 중)

자신의 고통이 주님의 지팡이로 쓰시려고 깎고 다듬어주신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는 순간 한없이 울었다 한다. 자매는 어머니를 다치게 한 그 분을 은인이라 생각하고 그분에게 가서 큰 절을 하면서 오히려 고맙다고까지 했다 한다. 그분이 아니셨던들 어찌 그런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고해 성사 보기를 결심하면서 예수님 만나기를 그렇게도 간절하게 원하며 갈망할 때 시험도 해보시고 친히 오셔서 깨끗한 영혼으로 만드신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매가 이미 갔던 성당에서 신부님을 만나 성사를 보았더라면 완전한 용서가 되지 않은 상태 였을터이니 형식적인 고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상처로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인데 오히려 은총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지금도 일명 「모세와 지팡이」사건을 신비스럽게 생각한 것은 율리아 자매가 그날 피정에 참여한 아는 형제 자매들에게 "그날 강론이 너무 좋았지요"하며 이야기하니 그들 중 모세와 지팡이 이야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율리아 자매는 너무 놀라 주님께서 자매가 노력하는 것을 보시고 피정 장소를 통해서 혼자에게 해 주셨는지? 아니면 그 강론 말씀을 듣고도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도 자신을 일깨워 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의 섭리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