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4일
장미 향기로 성모님을 받아들이시는
신부님
파 레몬도 신부님의 초청을 받고 율리아 자매와 몇
명의 협력자와 함께 안양에 갔다. 우리는 파 신부님 근무처에 있는 경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미사 끝에 율리아 자매는 탈혼 상태에 들어갔으며 얼마
후에 심한 고통을 받았다.
율리아 자매의 고통은 테잎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보게 되니 처음
본 나로서는 그 처절함에 고통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조차 없어 '도대체 어떠한 고통이며 얼마만한 고통이길래 저렇게 고통스러워할까? 하며 율리아
자매가 받는 고통을 실제로 보면서도 감히 짐작도 못한 채 어쩔줄 몰라하며 약 40여분 동안 파 신부님과 함께 혼이 났었는데 그 당시 율리아
자매는 고통 중에 기침을 어떻게 심하게 하는지 목에서 피가 많이 넘어와 그 붉은 피를 휴지로 닦았는데 그 휴지에서 장미 향기가 진하게 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휴지에 닦아낸 뻘건 선지피가 조금 후엔 희미하게 변화되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는데 자매는 그 당시 입에서 뿐만
아니라 아래로도 피를 쏟았다고 한다.
고통이 멎은 다음 자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너의 정의로운 그 마음 안에 순교의 씨앗을 모아
아름답게 꽃피워 마귀에게 승리했구나." 하시며 메시지를 주셨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지금은 선과 악의 투쟁의 시대이기에 악의 세력이 이제 엄청난 이적(異蹟)을 행하므로 수많은 인간의 무리가
유혹될 것이다." "어서 사랑의 어머니인 나와 함께 유혹에 빠져가는 영혼들의 앞길을 밝히자꾸나. 그러기 위하여 '마리아의 구원방주 대성전'을
너희 모두가 힘을 모아 마련하여라.
나는 거기에서 내 성심의 비밀을 너희에게 알도록 하여 나를 찾는 누구에게나 기쁨과 사랑과 평화의 표지가 되도록
하겠다." "이제 너희들의 하찮은 것까지도 아름답게 봉헌하여라. 나는 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초월하는 힘을 주겠다." 라고 하셨다.
다음날 오전 11시 성모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자매는 수원 교구 성남 단대동 성당으로 갔다. 봉사자들이
우리를 본당 신부 사무실로 안내하여 본당 신부님을 만났는데 그 순간 갑자기 장미 향기가 진동하여 본당 신부님도 장미 향기를 맡게 되었으며 무척
기뻐하였다. 성모님의 눈물을 인정하지 않았던 신부님에게 성모님께서 향기로 현존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율리아 자매는 약 3천여 명의 교우들에게 2시간 동안 성모님을 전하고 떠나왔다.
1991년 11월 10일
나이 카운트
다운
윤 공희 대주교님께서 60여 명의 교우들에게 견진
성사를 주시기 위하여 보성 본당에 오셨는데 마침 대주교님의 생신 및 67번째 맞이하는 영명 축일이었기에 미사 끝에 축하식도 간단히 가졌었다.
보성 본당 교우 일동의 이름으로 영적 꽃다발을 봉헌하였고 보성 특산품인 녹차와 미니 토마토를 선물로
드렸으며 이 두재 마태오형제 지휘하에 청년 합창대의 축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대주교님께서도 답례로 한 말씀 하셨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50대까지는 나이가 드는구나 했는데 이젠 70객이 다 되고 보니 D-day를 80으로 잡고 67세부터
카운트다운하는 식으로 나이를 헤아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즉 "이제 나의 인생이 13년밖에 안 남았구나" 하면서 사는 삶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먼 인생이 아니라 가까운 종말을 생각하며 묵상하게 된다는 솔직한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미사 후 사목회 임원들과 식사를 나누고 득량 칼바위로 주교님을 모시고 등산하였다.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주교님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잘 드시고 가끔 등산을 즐겨하시며 매일 목욕을 하신단다.
주교님의 건강 비결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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