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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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7월 23일

직장암이 치유 되었음을 믿습니다.

 

나주에 갔더니 피트 마르시알 신부님의 반가운 편지가 왔다. 나도 피트 마르시알 신부님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다가가리라. 지금도 그분의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다.

"쥬리아의 메시지 시작부터 끝까지 울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하던 천진난만한 신부님의 고백,

모든 신부들이 이런 마음이라면 많은 양떼들이 길잃고 헤매지 않으리라고 생각해본다.

 

피트 마르시알 신부님의 편지

 

예수님과 성모님의 평화가 있으시기를!

괌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4월 20일, 부활 첨례 다음 월요일에 성주간 동안 나주를 다녀온 5명의 부인들 중의 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그날 저녁에 성 안토니오 교구의 성체성사 소성당으로 오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소성당에 그 순례단의 대표격인 카마죠부인께서 쥬리아가 보내신 것이라면서 나주 성모님 상과 비슷하게 만든 아름다운 성모님 상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활절 선물을 자매님께서 보내주신데 대해 사랑하는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토록 아름다운 선물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성주간 일본의 아키다를 방문하는 동안, 성 목요일에 성체의 여종회 수녀님들에게 강론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저는 주님께 부활절 선물을 하나 주십사고 청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 사랑스런 나주로부터의 성모님 상을 부활절 선물로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주에서 온 이 성모상은 이제 여기 제가 미사 때 사용하는 제대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얼마동안 카마쵸 부인께서 성모상을 빌려간 일이 있었으나, 곧 돌려주었고, 지금은 제가 기거하는 사제관에 모셔져 공경받고 계십니다.

율리아 자매님, 너무나, 너무나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또 우리가 만날 수 있겠지요? 아마 나주에서 그렇게 되도록 저는 기도합니다.

 현재 저의 대장은 정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기도로 저의 직장암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때 치유를 받은 후로 위장이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변을 보는 것도 정상이 되었습니다.

천주 성부와 그분의 독생 성자, 성모님, 그리고 자매님께 끝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따뜻한 사랑의 기도와 축복을 드립니다.

                     - 1992년 6월 15일

             미국 괌도에서   피트 엠 마르시알 신부

 

1992년 7월 27일

나주 신광리 땅 구입을 위하여 9일 기도를 시작하고

 

율리아 자매와 함께 나주군 다시면 신광리에 갔었다.

자매님은 자꾸 신광리 쪽으로 땅을 보러 가자고 했었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따라 기적수를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빨리 땅을 구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작년 가을 최 베드로 형제가 화순 자신의 땅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메시지를 그 곳에서 받았는데 성모님께서 성전터와 기적수인 샘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1991. 11. 25, 26) 그러나 그 약속이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율리아 자매가 항상 괴로워하던 차에 작년에 보았던 신광리 땅을 보러갔다. 그런데 큰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보아 두었던 산이 개간이 되어 평지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하려고 이 산을 이렇게 넓게 개간해 놓았을까? 이젠 땅값도 엄청나게 뛰었을 것이고 이 땅을 구하기는 틀렸다"고 하며 실망에 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율리아 자매는 이렇게 말했다.

"성모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땅 임자가 우리에게 팔도록 해 주실 것이니 이 땅의 주인과 그 땅의 용도를 알아보도록 하고 땅 구입을 위해서 9일 기도를 시작합시다."고 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 다음날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 땅은 대단위의 오리 사육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 왔는데 마을 주민들의 반대하는 민원 때문에 포기하고 그 땅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히 성모님께서 주신 것이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땅을 사도록 9일 기도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뜻을 이루소서.

 

1992년 8월 18일

피빛이 없어지고 하얀 성체로

 

율리아 자매가 며칠 전부터 심한 두통과 온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너무 고통스러워 입원을 시켰다. 평소에 병원에도 잘 가지 않던 자매가 입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한 모양이다.

자매의 고통은 남의 고통을 대신 보속해 주는 사랑이니 곧 좋아질 것이라고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나는 율리아 자매가 겪는 낙태보속 고통, 출산 고통, 늑방과 오상 고통 등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낙태한 어떤 자매를 위해 기도해 주다가 갑자기 배가 만삭이 된 듯이 불러오며 낙태 보속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자매가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자 율리아 자매의 배가 순식간에 꺼지는 것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율리아 자매가 병자 성사를 청하기에 병원에 달려갔다. 늑방과 귀 그리고 머리와 온몸 전체에 통증이 온다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을 넘길 수 있을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다. "주님! 당신이 도구로 쓰시기 위하여 부르신 율리아, 당신의 딸이 지금 이대로 가서는 안됩니다. 자매의 고통은 주님께서 다스려주실 줄 믿사오니 율리아의 고통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고 나는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병자 성사를 주며 성체를 영해 주었는데 그 때 예수님의 성체가 입안에서 붉은 피로 변하지 않는가! 양 동희 박사와 함께 나는 그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나는 눈물을 억제하며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 지금 죽도록 고통을 받고 있는 율리아와 함께 계신다."라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비디오 카메라에 담고 싶었으나 즉시 피빛이 없어지고 다시 하얀 성체로 남아있었다.

비디오에 담는 것을 주님께서 원치 않으셨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