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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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25일

Alma 회

 

서울 가톨릭 대학 동창(25주년) 모임인 일명 Alma회가 서울 엠버서더 호텔 19층에서 열렸다. 소신학교 출신, 별과, 철학과, 신학과생이었던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은사님들을 모시고 한 자리에 모였다. 학장이셨던 제주도 교구장이신 김 창렬 주교님 ,박 고안 신부님, 정 의채 신부님, 백 민관 신부님 그리고 史家이신 이 원순 교수님 외 몇 분의 은사님과 40여 명의 동창생들이 지난 날의 회포를 풀었다. 환속한 이 민상, 조 선우 형제도 왔었다. 소 신학교 출신들은 거의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새로 알게 되어 기뻤고 이런 모임이 해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존경했던 영성 신학 교수 최민순 신부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그 분의 강의 중 기억나는 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 대 데레사 성녀의 영성을 가르치면서 "칠흑같은 어둔 밤에 한 가닥의 빛을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 하시면서 "대 데레사 성녀는 무려 24년간이나 어둠이라 표현하는 건조 시기를 거쳐 빛이신 님을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소는 임종 때 결정되니 안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기도하되 특히 여성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성모님께서도 "내 사랑하는 사제들이 정덕죄에 떨어지고 있다.… 마귀들이 사제들을 유혹하지 않도록 희생, 고행으로써 그들을 위해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자 문제는 나이에 관계없이 조심해야 할 것이다.


 

1996년 6월 13일

지속적인 성체 조배

 

지속적인 성체 조배 회원들을 위한 일일 피정이 전주 숲정이에서 있었다. 전주 교구가 마련한 이번 피정에 약 1500여 명이 모였는데 우리 교구에서는 버스 2대가 동원되어 갔으며 그 중 한 대가 염주동 본당 성체 조배 회원들이었다.

강사는 이 병호 주교님과 강 길웅 신부였는데 신앙 체험 발표도 있었다. 전주 교구 석권 공소 신자 공동체는 25명이 7일간 계속 24시간 성체 조배한 결과 냉담자가 회두하는 등 초대교회의 신앙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염주동 본당은 성체 조배실을 아름답게 만들어 화 - 금요일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도 교우들과 함께 매일 성체조배를 하고 있으며 성모님과의 만남의 시간도 매일 갖고 있다.

"몸소 음식이 되시기까지 온 인류를 사랑하여 너희에게 오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무관심과 모독 그리고 능욕을 기워갚고 게쎄마니에서 당한 죽음의 고통과 제자들에게서 버림받은 슬픔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다."(93. 2. 18)
 

 

1996년 6월 14일  

백문이 불여일견

 

계속 성체 조배를 하면서 많은 묵상를 하다보니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고 성모님의 열렬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기에 참으로 좋았다.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도 주님과의 무언의 대화속에서 성모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감실 앞에서 깊은 묵상을 해보지 않고서야 어찌 이 기분을 알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습」이라 했던가? 그렇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 떠오르는 수녀님이 계시는데 그 수녀님의 체험담이 1986년 10월 19일에 나주 성모님께서 많은 피눈물을 흘리셨다.

며칠 뒤 성모님께서는 "수도자를 부를 것이다."하셨는데 그날부터 많은 수도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버스를 대절하여 하루에도 몇 백명씩이 다녀갔는데 어느 수녀원에서는 수련장 수녀님이 보다못해 수녀들이 가지 못하도록 말렸으나 막무가내였다. 그 수련장 수녀는 하는 수없이 자기가 직접 가보고 나서 가지 못하도록 말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주 성모님이 모셔진 수강아파트로 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을 보는 순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나주에 오기 전에도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녀들에게 말했다. "이 세상을 한번 되돌아보아라. 성모님이 피눈물 흘리시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진복자다"라고 말하였는데 직접 성모님의 피눈물 앞에서는 자신이 말했던 그 말이 부끄러움으로 변해갔다.

수녀원에 돌아온 그는 밤에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많은 기도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다고 자부했던 그는 자신이 얼마나 형식적인 기도로 일관해 왔던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성무일도를 바치다가도 T.V 연속극하는 시간이 되면 빨리빨리 끝내고 연속극을 보았고 묵주기도를 하다가도 그랬는데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얼마나 많은 날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이기적인 생활을 해왔던가. 한번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 수녀님은 성모님의 피눈물 앞에서야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모님께서 피눈물까지 흘리시는 것을 생각할 때 밤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며 그 이튿날 또다시 피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을 찾아와 증언까지 했다.

"보지않고 믿는자는 진복자다라고 큰소리치던 제가 이렇게 성모님의 피눈물을 보고서야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잘 살도록 노력하여 성모님의 피눈물을 생활로 닦아 드립시다." 라고 말한 그 수녀님을 생각할 때 감회가 새로워진다.

그렇다.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하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터이니 그 수녀님에게는 얼마나 큰 은총인가. 인준되기를 기다리면서 나주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죄인으로서 주님과 성모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니 죄인이 되지 않고서야 어찌 주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통하여 죄인으로서 주님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언제나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어린아이가 되어 주님과 성모님을 따르도록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