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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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4일

교황님의 비서 데니꼴레 몬시뇰, 나주에서 만나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오자마자, 교황님의 공식 비서 몬시뇰 데니꼴레 신부님께서 나주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주에 내려갔다.

지난 주일 오후 4시경에 오셨는데 순례객들이 이날 따라 많이 왔고(약 400- 500명) KBS와 MBC방송국에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와서 Video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비공식으로 오신 몬시뇰께서 그냥 떠나시었는데 그날 밤 11시경 다시 오시어 경당에서 기도할 때 성체가 성모님 상 앞으로 내려오셨는데 성체를 그 자리에서 영하셨다고 한다. 그때 성모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는데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도의 중심은 성체 안에 현존해 계시는 내 아들 예수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더욱 심취되거라. 막내 자녀인 한국, 이 작은 나라 한국에서 일어나는 징표들은 전 세계 교회의 표징이다.

사울 왕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너희는 잘 알지? 하느님께서 사울 왕에게서는 사랑을 거두셨지만 그러나 이제 나를 전하는 너희에게서는 사랑을 거두지 않을뿐더러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이제 너희의 친 어머니가 되어 줄 것이니 너희는 이 어머니의 친자식이 되어 서로 일치하여 일하기 바란다."

나는 그 사실을 CCTV에 찍힌 비디오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몬시뇰께서는 성모님의 산에서도 너무 좋았으나 메시지를 번역하여 몬시뇰께 드렸을 때 진한 장미 향기를 맡고 메시지 내용에 큰 감명을 받아 나주 본당에서 율리아 자매하고만 하려고 했던 미사에 "오고 싶은 신자들 모두와도 된다"고 하여 많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나주 성모님께 와서 인사드리고 곧바로 산으로 갔었다. 준비한 점심을 마리아 사제 운동 한국 전 대표이신 서 요셉 신부님과 함께 하였다. 몬시뇰께서는 성모님의 물로 머리도 감으시고 물도 여러 컵이나 들었는데 장미 향기도 많이 맡으셨다. 후에 마리아 사제운동에 참가한 젊은 신부 세명이 왔는데 몬시뇰께서 사제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오늘날 성모님께서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사제들이 잘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깊은 영성이 없으며 신비적인 것을 도외시하고 기도 생활이 미약하며 성체 신비를 모르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많은 징표와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지만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성체 성사이다. 그런 점에서 성체의 신비를 자주 보여주시는 나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번에는 마리아 사제 운동을 하는 사제들을 만나기 위해 왔으며 다음에 공적으로 나주에 다시 오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며 "은퇴한 후 여기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모두 함께 성모님의 물이 나오는 곳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고 몬시뇰께서는 공항으로 떠나셨다.

 

 

1997년 8월 27일

한국 나주에 성체가 강림하셨다.

 

파 레몬도 신부님께서 개인 피정 차 나주에 3일간 머무셨는데 2일째 되던 낮 12시경 성모님 상 앞에서 율리아 자매와 불란서인 두 사람과 박 루비노 그리고 몇몇 교우들과 함께 묵주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십자가 위에서 사제용 성체가 "쿵"하는 큰소리와 함께 아래로 내려오셨다.

제주 교구장 김 창렬 주교님이 오셨을 때는 성모상 앞에 큰소리를 내며 내려 오셨었고 교황님 비서인 데니꼴레 몬시뇰께서 오셨을 때는 제단에 큰 소리를 내며 내려오시고 오늘은 제단 밑에 파 신부님과 율리아 자매 사이에 낮게 내려오셨다.

성체 문양은 김 주교님께서 목격하신 것과 똑같은 심장에 가시가 둘러있고 심장 위에 성심 불이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율리아 자매는 오후 6시경 성체가 모셔진 성모님 상 앞에서 성체 조배를 하고 있었는데 오후 6시 40분에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까지 그토록 많은 사랑의 징표들을 보아 왔으면서도 살아 숨쉬며 너희와 함께 하고자 한 예수님의 실체인 성체를 면병이라고 생각하며 판단하다니… 아! 매우 슬프다"

하시며 "십자가에서 피투성이가 된 내 아들 예수는 왕관대신에 가시관을 쓰시고 인면수심(人面獸心)한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으로써 너희에게 오신 것이다. 너희의 구원자이신 주님은 세상 모든 자녀들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빵의 형상을 취하시어 너희에게 오셨으니 열절한 사랑과 정성된 마음으로 감사와 흠숭을 드리고 어서 지고한 마음으로 현존해 계시는 내 아들 예수가 당하는 능욕을 기워갚고 위로해 드리도록 하여라."  

"세상의 많은 자녀들이 혼란의 도가니에서 방향감각까지 상실되어 무분별한 채 영적으로 요양미정하여 인귀상반으로 가예언자들을 따라가려고 하니 마귀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그러니 어서 잠에서 깨어나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는 이 어머니의 호소에 응답하여 생활이 기도화 되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를 괴롭히는 마귀들을 처단하여 천국을 얻어 누리도록 세상 자녀들에게 어서 외쳐라." 하고 촉구하셨다.

밤 11시 30분경 나주 조사 위원이며 계림동 성당 주임인 정 종표 신부님이 오셔서 성체를 계림동 성당 감실에 모셨다가 다음날 교구청으로 모셔간다고 했다. 나주 본당 주임 신부님이 휴가 차 안 계셔서 정 신부님이 주교님의 명을 받고 모셔갔다는 것이다.

(주: 지금은 그곳에 상자를 만들어 "이곳은 성체가 내려온 장소"라고 표기 했으며 지금까지도 그곳에서는 지속적으로 장미향기가 진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