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나주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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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10일

나주는 성모님 메시지의 종합이며 완성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 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 주실 것이다" (요한 16. 13)

주님의 이 말씀이 우리 안에서 늘 함께 하시고 살아 숨쉬며 생명력 있는 말씀이기에 이 세상 마칠 때까지 그 시대에 맞는 언어와 표현으로 재조명해주시고 새롭게 해석해 주시며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성령의 몫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성령은 개방이시고 창조이시며 살아계신 호흡(능력)이시다. 성령은 정체성이 아니며 제도나 율법 또는 권위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2천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주님의 성령과 성모님의 발현 등을 통해서 수많은 경이로운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그러한 성령의 놀라운 능력(기적)으로 교회는 성화되고 성장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모친 마리아를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리아를 이 세상의 구원 계획에 깊이 관여하게 하시고 마리아는 아들을 잉태한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까지 한 시도 아들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슬픔과 번뇌, 단말마의 고통을 함께 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사업에 협조하셨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 당신의 모친을 우리의 모친이 되게 하시고 끝까지 돌보도록 유언까지 하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하시고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길이 곧 그분의 원의이고 곧 예수님을 따르는 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한 영혼도 빠짐없이 나에게 속하여 있기를 바라기에 이 모든 것을 내 어머니 마리아께 맡긴 것이고 또 맡긴다. 그렇기에 내 어머니를 따르는 길은 곧 나를 따르는 것이다"(1988. 6. 25)

사도 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교회에서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고 성찬을 나누며 생활했는데 (사도행전 1. 14참조) 이는 곧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님과 함께 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교회의 어머니로서의 그 분의 역할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로서의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를 따르는 길, 그 길이 바로 지름길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라. 내 어머니 마리아의 승리의 때가 다가온다. 어서 회개하여「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타도록 하여라. 내 어머니는 나의 빛나고 영광스러운 계시에 이르는 천상의 예언녀로, 또 나의 협력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의 말을 따르라. 내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1991. 6. 16)

AD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공식 선언함으로써 성모님에 대한 위상을 높였던 것이다. 三位一體의 제 二 位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결합을 부인한「네스또리오」파의 이단을 처단하기 위하여 소집된 「에페소」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선언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인성과 신성의 일치를 보장하는 동시에 일치의 주체를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월 22일 일반 알현 석상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삼위일체의 경배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황님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무엇보다 온 마음과 영혼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과 성모님과의 친교는 어머니에 대한 자녀의 사랑을 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황님은 "교회 초창기 때부터 성모 공경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해주었다"며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1997. 11. 2 가톨릭 신문 해외토픽에서)

"내 교회의 가장 큰 보배는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 마리아다. 내 어머니는 우주의 여왕이며 천상의 모후로서 너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어머니 마리아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를 사랑하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은총으로 하실 수 있단다...내 어머니 마리아를 따른다면 이 세상 생활의 어두운 미로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 어머니 마리아는 나에게 오는 지름길이며 쇄신된 내 교회의 빛나는 새벽이며 새로운 계약의 궤이기 때문이다."(1995. 9. 22)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중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1170년부터 1270년까지 백년간 불란서에서 대성당 80개가 세워졌고 거의 5백개에 달하는 커다란 성당들이 건립되었는데 이러한 대성당들은 거의 대부분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건물 전체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안에 성모당이라는 작은 부속 소성당을 하나씩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천상의 어머니께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16세기에 일어난 소위 종교 개혁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미사(성체 성사)와 고해 성사를 완전히 배척하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설립했던 것인데 초기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경멸한 이유가 "우리는 크리스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만 전심해야할 의무가 있고 마리아를 공경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드려야할 경의를 감소시키는 것이 된다"(세기의 승리자 15쪽)라고 하며 그럴듯하게 정당화 했지만 교회안의 모든 자녀들을 예수님께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이끄시는 성모님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는데서 초래된 오류라 하겠다. 어머니를 무시하면서 아들만을 공경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어머니 없는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고 내 어머니 마리아를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어머니만이 나의 노여움을 억제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데로 돌릴 수도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 어머니의 말씀에 그대로 맡기고 따르기 바란다."(1993. 3. 5)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하느님은 우리 원조가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이미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방주로서 메시아를 뫼실 거처를 위해 마리아를 원죄없이 잉태케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1992년 12월 8일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무나 많은 자녀들이 내 어머니의 사랑의 말을 따르지 못하고 부정적인 행위로 자기들의 신앙을 고집하며 전승하기에 그들은 닫힌 문 밖에서 서성이며 나를 만나지 못한다. 내 어머니는 너희들이 오로지 숭고한 나의 마음 안에서 더욱 열렬히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에게로 오는데 지름길인 내 어머니를 통하여 어서 나에게로 오너라." "내 어머니는 너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티없는 성심 안에 안전한 피난처를 마련하여 나에게로 인도하신다." 라고 말씀하셨다.

마리아의 역할은 우리를 하느님께 접근시키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반란은 불란서 파리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악화되어 갔는데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과학과 그외 다른 분야에서 인간이 창조한 진보를 보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인류에게 위대한 새로운 시대가 동터온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신이 필요치 않다"(세기의 승리자 16쪽) 이러한 사상들이 위에서 아래로 파급되었는데 특히 노동자와 농부들에게서 흘러나왔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 세력들이 반 가톨릭적이었기 때문에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거나 혹은 목숨까지 빼앗겼으며 신에 대한 이 반란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다.

19세기는 물질주의가 태동하던 세기였다. 특히 독일에서는 과거의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인간 중심적이며 실존론적인 사고로 신을 거부하기 시작했는데 포이어바흐(Feuerbach, 1804 - 1872)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본질"(1841)과 "종교의 본질"(1845)에서 "인간의 감정이 신을 만들어 낸 것이며 종교는 인간의 이기적 감정을 투사하여 대상화한 인간 감정의 소산물"이라고 하였고 마르크스(Karl Max, 1818-1883)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으며 니체(Nietzsche, 1844-1900)는 "신은 죽었다."라고 까지 선언하였다. 이렇듯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인간 중심의 사상이 팽배해질 무렵, 전 유럽은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산업 혁명까지 일어났고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유럽을 휩쓸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든 기존 체제를 더욱더 뒤흔들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공장을 찾아서 도시로 몰리게 되고 열악한 노동 조건과 노동자 혹사로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 갈등이 심화되어 갔으며 그 때를 틈타 등장한 공산주의의 시조이며 유물론주의자였던 칼 맑스의 사상에 노동자들은 자연히 끌려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렇듯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표류하던 유럽에 1830년 복되신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거부한 채 악의 세력에 조정 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시고자 맏딸인 프랑스를 택하시어 파리의 한 작은 수녀원에 찾아오신 것이다. 애덕회의 예비수녀인 카타린 라브레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길 "지금은 악한 시대이다. 프랑스에는 곧 무서운 일이 닥쳐올 것인데 왕실도 넘어질 것이며 전 세계는 무서운 재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믿고 열심히 청하는 자들에게만은 풍부한 은총을 부어 주리라"(세기의 승리자 24쪽)하시며 성모님께서는 "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을 의지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이 새겨진 패를 만들라고 하셨으며, 놀랍게도 28년 후 1858년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다시 당신이 원죄없이 잉태된 자임을 확인시켰던 것이다.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라 살렛트(La Salette)에서는 성모님께서 두 어린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으며 5년 후 그 지방 주교가 이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하였다. 비오 9세 교황님은 라 살렛뜨의 비밀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보속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멸망하리라" 고,

한국 나주 성모님은 눈물과 피눈물을 700일 간이나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눈물과 피눈물을 무시하지 않고 내 말을 잘 받아들이며 복음적 생활을 한다면 구원을 받겠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중대한 재앙들이 계속 내릴 것이며 이 세상은 온갖 재앙을 면치 못하리라. 멀지않아 엄청난 환난의 순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우발적 사고라고 생각하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여라." (1989. 10. 14)

세계 대전 (1차)이 시작된 지 3년 후인 1917년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세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시어 "나는 평화의 모후"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회개하여라. 그리고 죄인들과 공산주의인 러시아가 회개하도록 티없는 나의 성심께 봉헌하라. 너희들이 희생 보속하지 않으면 공산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갈급히 외치셨다. 파티마 성모님은 공산주의자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과 보속하며 성모 성심께 봉헌하라고 하셨는데 나주에서도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계 평화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묵주 기도와 희생을 더 바쳐라. 희생은 바로 극기와 보속, 청빈과 자아포기에서 오는 아름다운 열매이다"(1986. 10. 23)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쳐달라고 모든 사제들에게 알려라. 묵주의 기도는 예전에도 말했거니와 마귀들이 굴복한다. 모든 신자들에게 묵주의 기도 5단씩을 더 바쳐달라고 전하여라. 나라의 일치를 위하여 바쳐진다면 위기를 면할 것이다" (1988. 1. 1) 라고 하소연하신다.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첫 토요일을 지키며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라고 하셨으며 나주에서는 더욱 더 구체적으로 첫 토요일을 지칠 것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아주 상세하게 첫 토요일을 지키는 방법까지 말씀해 주셨다.

"첫 토요일을 지키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는 자녀가 너무 많기에, 오늘 첫 토요일을 지키라고 한 이유를 알려 주겠다. 내가 아들 예수를 잃고 예수 없이 홀로 남은 길고 긴 날, 이날은 나에게 참혹한 고통의 날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들은 내 아들의 죽음과 부활 사이를 통과하는 시각을 나타내는 날이기도 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날이기도 하기에 이 밤을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한 것이다.

너희 모두를 사랑하는 이 어머니는 매월 첫 토요일에 나와 함께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특별한 사랑으로써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기도한 것처럼 항상 너희와 함께 할 것이며 영적인 나의 사랑의 젖을 줄 것인데 나를 받아들여 그 젖을 먹는 자녀는 회개의 은총을 얻어 평온함을 얻을 것이며 내 사랑의 큰 위로를 받아 어떠한 시련도 잘 이겨낼 것이다.

너희들이 계속해서 첫 토요일을 잘 지키고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을 그대로 행한다면 너희가 중재자인 이 어머니에게 청하는 모든 은총을 내려줄 것이며 임종의 순간에 특별한 보호와 영원한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받아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태우고 하늘 항구까지 데리고 가 주님께 봉헌해 주리라. 그러나 이 날은 진정한 고해 성사와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로써 주님과 함께 일치하고 신성이 담긴 성서를 가까이 하여 복음을 묵상하고 주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배은망덕을 사랑으로 기워 갚고 희생과 보속의 마음으로 주님께 온전히 봉헌하여라.

그리고 티없는 나의 성심에 잘 봉헌하며 정성껏 로사리오를 바치고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온전한 신뢰로써 겸손하고 유순하게 모든 것을 잘 받아들여 작은자로서 불타는 나의 성심 안에 살도록 하여라" (1993. 2. 6)

80년 전 파티마의 메시지는 공산주의와 무신론에 대한 경계였고 그들을 추종한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그들을 위해 우리의 기도와 보속을 요청했던 반면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는 회개에 대한 폭이 크게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는데 "낙태는 살인이다"라고 하시면서 낙태하지 말 것을 강조하셨다.

또한 "많은 가정이 병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여 가정 성화를 이루도록 하여라" 라고 하셨으며 생활의 기도화와 생활의 신앙화인 전인적인 신앙관을 강조하면서 고해 성사와 성체 성사의 중요성을 전하도록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성체의 기적을 보여주고 계신다.

1990년 9월에 나주를 방문하신 바티칸 신학자 몬시뇰 마티아스 페데스 메리노 신부님의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나주는 성모님 메시지의 완성이다. 왜냐 하면 나주에서 성모님의 모든 메시지와 많은 징표가 있기 때문이다". 눈물, 피눈물, 향기름, 장미 향기, 성체, 기적수, 태양의 기적, 고통 등…

나는 나주에 다닌 6년 동안 수많은 징표 즉 눈물, 향유, 장미 향기, 성체 변화, 태양의 기적, 낙태 보속 고통, 오상 고통 등을 보고 체험하므로써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을 엄청나게 받아왔던 것이다. 특히 1995. 9. 22의 성체 기적 체험은 나의 사제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였다.

카나다 토론토 주교님과 함께 미사 중 율리아 자매가 영한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면서 심장 모양의 움직이는 살과 피의 모습을 주교님, 핀 신부님과 함께 나는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후 성모님 집에서 성체(大, 小) 가 일곱 번이나 내려온 사실을 비디오를 통해 확인하고 직접 목격했던 증언자들의 증언을 듣고 더욱 더 성체에 대한 신심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성체 기적을 목격한 뒤의 미사 집전은 온 정성과 사랑이 담긴 미사 집전이 되었고 성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체가 내려온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들을 보였지만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성체를 일곱 번이나 내려보내셨나? 하는 물음에 우리는 메시지를 잘 기억하고 자신있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1995년 7월 1일, 성모님상 앞에 일곱 개의 성체가 내려왔을 때 맨 마지막으로 영한 율리아 자매의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큰 소리로 성체가 내려오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비디오에 찍혔기에 이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성체의 신비를 묵상하고 성체적인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평화 신문(1997. 8. 17)에서 미국 천주교 신자의 65%가 미사 때 축성된 성체를 믿지 않고 기념하는 잔치로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성체를 살아 계신 예수님의 살과 피로 믿고 모시는가? 나 자신부터 자문자답하면서 우리 신앙의 자세를 정립해야만 할 것이다.

 교황님께서 1997. 10. 19일에 소화 데레사 성녀를 우리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시었다. 별로 배우지도 못한 봉쇄 수녀에게 무엇 때문에 그런 엄청난 칭호를 부여했겠는가? "작은 자의 영혼"이 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배울수록 더욱 더 겸손하게 주님의 신비를 묵상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내가 너를 완전하게 할 수도 있지만 겸손하고 작은 자의 길을 따라 오기를 바라기에 부족한 죄인으로서 하느님께 늘 고백하기를 원한단다. 길 잃었던 영혼이 내게로 몸을 돌리면 그를 구하기 위해 내 품의 피난처는 항상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아야 한다.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을 걸어 더욱 겸손하게 그 길을 똑바로 가거라. 하늘 나라의 문은 작기 때문에 작은 영혼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작은 영혼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더욱 단결하여서 나를 따라야 한다.

과도한 교만으로 우주의 불균형을 초래한 수많은 영혼들이 애타는 나의 눈물과 호소 그리고 작은 영혼들의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 회개할 것이며 세계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1989. 11. 26)

                  1997. 11. 10

          천주교 동산동 교회  

장 홍빈(알로이시오)신부